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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의 행복한 결혼생활,크리스천의 행복한 결혼, 크리스천의 결혼 유지 비결: 만족과 감사를 배우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대다수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가장 행복한 결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결혼은 여러 가지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고 물질적인 풍족함이 없으면 굶주리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사랑에는 추가 조건이 붙었습니다. 물질이 사랑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 경제적 기반이 없는 사랑은 서서히 식는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함'이 없는 결혼은 무엇으로 유지해야 할까요? 결혼 후 사랑은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요? 저는 공기업에서,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합니다. 결혼 후, 우린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지만, 남편은 제게 잘해주었습니다. 저는 부귀영화보다 남편만 내게 잘 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시동생 두 명이 모두 대도시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초대할 때마다 화려한 호텔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평소엔 밥과 청소를 해주시는 도우미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동서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명절 때면 비싼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고, 자유롭고 호화로운 모습에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직장도 다니고 아이도 돌보고 심지어 집안일까지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매년 고향에 내려갈 때면 버스에 껴서 내려가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는 동서들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겨났습니다. ‘나도 동서들처럼 살면 좋을 텐데. 똑같은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다른 삶을 사는 거지? 왜 나는 부자 남편이랑 결혼하지 않았던 걸까?’ 이러한 생각에 저는 마음이 삐뚤어져 집에 가면 남편이 뭘 해도 탐탁지 않았고 무능력하고 가난한 남편 때문에 동서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었다고 원망했습니다. 끝없는 제 잔소리에도 남편은 묵묵히 참았고 저를 타일러 줬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결국 본인 손해야. 다른 사람이랑 비교할 게 아니라 만족할 줄 알아야 해.” 하지만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돈을 못 버는 자신을 감싸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다투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평온했던 우리의 삶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줄곧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고, 집은 전쟁터와 다름없었습니다. 싸우다가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단계까지 접어들어 결국 참을 수 없었던 남편은 회사에 무급휴가를 신청하고 외지로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허약한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큰 병에 걸렸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닫자 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억눌러야만 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태어나서 자라고, 취직하고 결혼을 하는 것 모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며 얼마의 부를 갖고 어떤 삶을 살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셨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삶의 궤도를 바꿀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주재에 순종해야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해주신 것임을 모르고 이런 결혼 생활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이 하는 모든 행동이 탐탁지 않고 평탄한 제 삶에 불만을 품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서들처럼 부유한 삶을 주진 못했지만, 남편은 항상 제게 잘해주었고 제가 원망하고 미워할 때도 남편은 묵묵히 참고 저와 시시콜콜 다투지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남편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축복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배정해주신 것임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막내 동서는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별장에 놀러 가보니 으리으리한 저택은 유럽식으로 지어졌고 주변에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모든 가구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고급스럽고 어마어마한 기운을 풍겼을 뿐만 아니라 집에 취미생활을 위한 방이 따로 있고 비싼 술로 가득한 와인셀러도 있었습니다. 둘러볼수록 부러운 마음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난 평생 이런 집에 살 수 없을 거야. 우리 남편이나 동서 남편이나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데 어째서 막내 도련님은 아내에게 누구나 우러러보는 삶을 주고 우리 남편은 내게 이런 것을 누리도록 해주지 못하는 걸까?’ 생각할수록 기분이 별로였고 종일 우울했습니다. 나중에 이런 제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서의 집을 구경하고 나자 제게 같은 삶을 주지 못한 남편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당신의 섭리에 순종해야 함은 분명히 알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부디 저를 이 고통 속에서 꺼내주옵소서.” 기도드린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네가 얼마나 굳세고 평소에 얼마나 믿음이 있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다 한동안 연약해진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이 크면 며칠이나 일어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누가 대학에 붙은 것을 보면 질투하고, 누가 관직에 오른 걸 보면 질투하고, 누가 직장에서 월급이 오르고 가정 생활이 좋아지거나 다른 사람이 어떤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한다. …사람이 우러러보는 이런 것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지식, 지위, 명리, 돈, 세력, 어떤 것이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이냐?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는 것이냐?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의 대인 관계 및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사람이 지위, 세력, 돈을 특별히 중요시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씀을 읽고 나자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밝히신 모든 것이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돈이 많고 호화로운 삶을 사는 동서를 보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원망 속에 살아 남편을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의 사악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물질적으로 풍족한' 결혼을 꿈꾸며 ‘결혼 생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물질적인 부분’, ‘물질적 풍족함은 결혼 생활을 유지해주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저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남편이 제게 얼마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해주지 못할 때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고, 매일 원망만 하는 고통 속에 살아 남편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고 심지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빠지기까지 했습니다. 지금에서야 이 모든 것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킨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제 속에 있는 허영심을 이용해 제가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고 돈과 육체적인 즐거움을 숭배해 남과 비교하도록 부추긴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남편을 향했던 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나 이해와 배려는 사라졌고 사랑의 기반을 물질적인 조건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인 수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저는 남편과 다투거나 냉전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엔 균열이 생겼고 남편과 저 모두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탄의 뜻대로 살면 끝없는 고통과 씁쓸함만 느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불만인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고 결국 화목했던 가정에 웃음소리가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통의 근원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치스러운 욕망을 내려놓고 사탄의 철학대로 물질적인 결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재와 배정에 순종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의기양양한 말투로 제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차 한 대 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차 한 대 사러 가자. 올해 설에 고향에 내려가 친지를 만나면 자랑할 수도 있을 거야.” 남편의 말을 들은 전 무척 기뻤습니다. ‘직접 운전하고 고향에 내려가 설을 쇠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할까!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것이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차를 사기엔 어려운 집안 형편이 떠올랐습니다. 제 허영심을 채워주기 위해 남편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참고 견뎠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원하는 차를 운전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네가 말해 봐라, 이방인이 추구하는 그런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가? 사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사람이 상상한 것인데, 하나의 타락의 방식이고 사람을 타락시키는 길인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자체가 바로 정상 인성에 있어야 할 목표가 아니고 사람의 삶의 가치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여기는 행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고 하나님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봉헌하는 것은 심령이 가장 위로를 얻는 일이고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며,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며 사람의 심령을 가장 평안하게 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행복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며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한다면 심적인 안정을 얻고 그것이 바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과거 저는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삶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걸어야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남편에게 다정히 말했습니다. “지금 차 살 형편이 안되면 무리해서 살 필요는 없어.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이 말을 하자 마음이 해방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랏! 당신 변했네. 어쩌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거야?” 남편의 말을 듣자 저는 하나님께 끝없는 감사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한다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 더는 사탄의 생존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되며 마음도 홀가분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사로잡혀 소위 높은 수준의 삶을 추구했던 과거를 떠올려 봤습니다. 그때 저는 행복은커녕 매일 고통 속에 살며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부부 사이도 소원해져 괴로움 속에 살았고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제게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되는지 보여주었고, 사치스러운 삶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게 되자 가정에는 예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왔고 남편과의 사이도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어 제 삶은 평온하고 행복하게 바뀌었습니다. 이런 삶은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할 것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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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이혼,크리스천이 행복을 다시 찾다, 남편의 배신으로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구원

남편의 불륜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한순간에 산산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소송이나 복수하고 자살하겠다는 생각도 했던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을까요?

말 안 듣는 아이, 부모로서 어떻게 교육해야 효율적인가

부모가 되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말 안 듣는 아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교육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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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한 계획에 따라 아이를 교육하려고 합니다. 계획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아이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더해 주곤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할까요?

딸의 성적표를 기다리던 나에게 전해온 한장의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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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부모가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준 가장 좋은 선택

양환애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공부환경을 제공해주어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돈과 권력이 없으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다. 그래서 아이의 학교 선택이 부모에겐 큰 짐이 되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해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아들이 더 좋은 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명문 학교의 입학시험을 치르러 갔다. 학교 측은 500명의 신입생만 받겠다고 말했지만, 응시자는 3000명에 육박했다. 교문 앞에 빼곡히 있는 학생과 학부모를 보며 ‘경쟁률이 엄청나네. 우리 아들은 이 학교에 오긴 힘들겠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시험을 보고 난 후 나는 혹시 모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집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그때 나는 혹여 전화를 받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재중 전화가 있으면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학교 측의 전화를 받지 못해 아이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학교 측에서는 시험 성적과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희망의 끈을 놓았고 실망도 커져 아들이 이 명문 학교에 들어가기는 그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XX 학교 가기 싫어요. 거긴 학교도 별로인 데다가 나쁜 애들도 많아요. 저는 XX 명문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요. 거기가 수업 질도 좋고 학교 분위기도 좋아요.” 아이의 말을 듣자 마음이 더 조급해졌지만 나도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해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남편 일자리도 안정적이지 않는 데다가 대출받은 높은 집값에 두 아들의 교육비, 게다가 노인 세 명까지 부양해야 했다. 이미 등골이 휠 만큼 휘었는데 아들을 명문 학교에 보낼 만큼 쏟아부을 돈이 어딨겠나? 아들의 학교 문제로 머리가 아파져 오고, 막막해졌을 때 나는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기도드리고 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인ㆍ사ㆍ물의 영향(직역: 훈도(薰陶)와 영향)을 받게 될지, 어떤 지식과 재능을 배우게 될지, 어떤 습관을 기르게 될지 하는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모와 가족이 누구이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무엇일지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고, 그 사람과 주위의 인ㆍ사ㆍ물의 관계가 어떠하고 주위의 인ㆍ사ㆍ물이 그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마찬가지로 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인ㆍ사ㆍ물이 형성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모두 창조주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이다. 』 『한 사람의 성장 배경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라면, 그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에 생활하게 되는 환경도 당연히 정해 놓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선택이나 사람의 취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계획에 달려 있고, 창조주의 정성스런 안배에 달려 있으며, 그 사람의 평생 운명에 대한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우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어떤 학교에 가건, 거기서 나쁜 것을 배우건, 앞날의 일체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명문 학교라고 해서 모두 좋은 학생이 되는 것만도 아니었다. 우리 옆집에 사는 아이만 보더라도 부모가 엄청난 돈을 들여 명문 학교에 보냈지만, 아이의 성적은 여전히 별로였다. 그에 반해 내 친구 딸은 평범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나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고에 진학했다. 단 한 푼의 돈도 쓰지 않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들의 학교 문제로 인한 고민과 걱정은 모두 창조주의 주재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훌륭한 학생은 좋은 학교에서만 배출된다’, ‘지식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등 사탄 독소의지배를 받으며 아이가 명문 학교에 진학하면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내게 심어놓은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논리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한 사람이 어디에 있든, 어떤 직책을 겸임하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다 끝없는 슬픔과 가시지 않는 고통이어서 사람으로 차마 다시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게 한다. 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예전에 명문 학교에 진학하려 힘쓰고, 지식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학교를 선택할 때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얻었지만, 부모님과 문제가 생겼고, 아버지의 반대로 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쳤다. 나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망쳤다고 원망했고, 그렇게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졌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명문 학교에 진학했다면 지금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명문 학교를 졸업한 내 친구처럼 말이다. 예전에 그 친구는 한 회사의 유명한 강사였다. 나중에 친구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관련 부처와 세무서의 ‘능력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 탈세 혐의에 연루되어 구속될뻔 했고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았다. 실제로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명문 학교를 졸업하고 더 나은 삶의 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며 물불 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에 비해 나는 평범한 월급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안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야 나는 지식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 수 있다. 이때, 마음속의 고통이 점차 사라졌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겪은 일과 내 생각을 아들에게 말해주어 아들이 창조주의 주재에 따르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아들의 마음가짐도 점차 바뀌었다. 더는 명문 학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나한테 “엄마, 우리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요.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정말 기뻤다. 비록 아들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아들의 운명과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어떤 학교에 가는가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과 나는 담담히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자녀관계가 한층 가까워질 수 있는 3가지 방법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딸이 점점 저와 얘기를 안 하려고 하거든요. 제가 입을 열기만 하면 딸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거나 일어나서 자리를 피합니다. 저랑 한 마디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물론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지만, 실생활에서 실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대로 아이를 교육하려 하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는 점점 엇나가기만 합니다. 제가 힘들게 키운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낯선 사람 취급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대체 문제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 정희   정희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우셨을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수년간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위해 많은 대가를 치렀습니다. 다 자식들이 말을 잘 듣고 착한 아들, 착한 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고 아이들은 부모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오히려 부모와 관계가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의 학업에 있어 부모들은 자녀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엄격히 요구합니다. 특히 아이의 성적이 하락할 때면 때리고, 압박하고, 억압하여 아이의 성적을 올리려고 합니다. 아이에게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말이죠.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기를 탐내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요. 부모들은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들은 자녀가 왜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을 멀리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인터넷을 좋아해 온종일 인터넷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자녀를 보면 부모들은 자식을 통제하려고만 하고 자녀가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해도 잔소리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듣기 싫어할뿐더러,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식들은 부모의 잔소리와 통제가 귀찮다고 느껴 PC방에 가버리거나 집에도 들어오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부모는 어찌해야 할 줄을 모르죠. 그럼,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윗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 또 하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부모는 뭘 해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면 잘못이 없다.’라는 이런 사상 관점도 있는 것이다. 부모라고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똑같은 패괴된 인류인데, 어떻게 잘못이 없겠느냐! 뭘 보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 있느냐? 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왜 사사건건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단속하고 자녀를 단속하면서 모든 일에서 자녀에게 네 말을 듣게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 아니냐? 그것은 교만한 성정이고 흉악한 성정이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자녀와 잘 지낼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는 항상 부모의 입장에 서서 아이를 통제하며 모든 일에서 우리 말을 듣게 하려고 하죠.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게 모두 아이를 위한 일이며 우리가 하는 것은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다수 부모들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런 사상관점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의 자녀를 대할 것입니다. 부모가 뭐라고 하던 자녀는 무조건 들어야 하고, 듣지 않으면 잔소리하며 모두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소원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 결국 자녀들은 마음속에 억압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를 멀리하고, 우리와 마음의 벽을 쌓아 관계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사탄의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초래된 결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만족게 하기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에 소홀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성경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라고 말씀하신 걸 알고는 있지만 현실은 주님의 뜻에 따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실제의 어려움과 결부해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 한다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부모로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자녀를 도와주고 그들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만 하지 말고, 자녀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과도하게 자녀를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 더 나누겠습니다.『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이 말씀에서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그 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부모라고 해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옳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일단 자신을 진리가 없는 패괴된 인류로 인정한다면 네게도 잘못이 있고, 너도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자녀에게 우리 말을 무조건 들으라고 하는 것은 이성이 없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자녀들도 다 커서 자기만의 사상과 관념, 생각과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을 때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에게 강제로 주입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견을 아이들에게 말하고, 아이들이 생각하게 해야지 아이들에게 우리의 뜻대로 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둘째, 아이들과 평등한 위치에 서서 지내야지 부모의 위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의 반항심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사실 아이들도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아이와 부모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아이들은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며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딱딱한 말투로 자녀에게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강요하거나 아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 취급하며 잔소리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와 벽이 생겨 소통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자녀와 평등한 위치에서 차분한 말투로 자녀와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며 마음속에 있는 얘기를 털어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자녀가 우리의 생각을 알고, 서로 이해해야지만 자녀와의 관계가 정상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아라, 진리를 교통하고, 마음속 말을 해서 어떤 일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 줌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유익을 얻게 하고, 오해와 그릇된 해석에서 나오게 하는 일에 있어 높은 위치에 서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하는 어투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나눠야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우리와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셋째, 놓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고 하며 아이에게 속박을 주거나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면서도 아이들을 존중해 주어 아이가 자기 힘으로 어떤 일을 해내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의 품을 떠난 아이도 스스로 잘 지낼 수 있으며 다방면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부모는 애가 어려서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 역시 부모가 늙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바깥 일을 아는 게 너무 적기 때문에 신경 쓰고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고, 다 정상인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이성적으로 대할 줄 모르는 것이다. 상대방을 많이 보살펴 줘야 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줘야 하는 아주 멍청하고, 유치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자식이 부모를 떠나 혼자 밖에서 2~3년 지내는 것을 보면 더 잘 지내고, 각 방면의 일도 더 잘 처리한다. 부모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은데도 부모는 도무지 믿지 못하는 것이다. … 』 많은 부모들이 “요즘 사회가 싸우고, 게임하고, 마약하고, 도박하고 얼마나 위험한데 아이를 단속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라고 걱정합니다. 물론 그 말도 맞는 얘기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엄격하게 통제해도 타락할 아이는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볼 수 있게 되고, 사악한 조류의 잠식을 스스로 막아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이들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도록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놀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었는데, 부모님과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부모님의 통제도 소용없고, 선생님의 교육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나이가 어려서 경망스럽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부모님과 잘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나타난 효과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은 늘 딸에게 “나는 네 엄마이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엄마를 멀리했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정말 힘들었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함을 알게 되었고, 딸과 평등한 위치에서 지내려 하지 않았던 과거를 반성했습니다. 그 후 자매님은 딸과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부모의 지위를 내려놓고 진실한 마음으로 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딸이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자매님의 단점을 지적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매님도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후로 자매님과 딸은 자주 마음속 말을 털어놓았고, 지금 두 모녀는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어 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녀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딸과 마음을 열어 소통하고, 딸을 우리의 친구나 형제자매로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딸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약속

장애인 딸의 운명,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딸의 출생, 그리고 고통 딸이 태어난 지 3일만에 갑자기 땀범벅이 된 채로 경련을 일으켰다. 경련 증상이 보이자 남편은 아이들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문 뒤에 숨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차마 내게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빨갛게 부은 남편의 눈을 보며 분명 딸에게 큰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내가 계속 추궁하자 남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의사 말로는 뇌출혈이 심해 나중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귀를 의심했다. 작디작은 체구, 앳된 얼굴의 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문득 마을에 있는 바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 채 온 종일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모습이 생각났다. 딸이 자라 정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하반신을 못 쓴다면 이 아이의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딸이 돌이 되던 때 다행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기댈 곳을 마련해주시어 나는 전처럼 무기력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이를 맡겨, 하나님의 주재로 딸을 인도해주시길 바랐다.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아이는 서서히 말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걸을 때 절뚝거리고 한쪽 팔은 쭉 펴지 못했지만, 의사가 말했던 상태보단 훨씬 좋았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극진한 보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육 강화, ‘먼저 나는 느린 새’ 딸이 4살이 되던 해 이웃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아이가 이상하게 걷는 걸 보곤 비웃으며 얘기했다. “쟨 왜 저렇게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 이웃의 말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웃이 간 후에도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데도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사는데, 크면 더 많은 사람이 비웃지 않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딸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노력으로 아이를 도와 느릴수록 먼저 날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배울 내용을 가르쳤다. 곧잘 배우는 딸아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장애가 있는 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학년이 되고 수업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힘들어했다.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45점도 잘 맞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아이 선생님은 내게 “아이가 너무 잘 울어요. 배우려는 욕심은 있는데 배우는 속도도 늦고 빨리 잊어버려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 걱정이 또 스멀스멀 떠올랐다. ‘딸 아이 지능이 원체 다른 아이보다 낮은데, 어떻게 다른 아이를 따라잡겠어?’ 그래서 난 그저 좋은 말로 “선생님이 좀 더 신경 써주세요. 소신껏 아이를 잘 가르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혹독한 교육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아이에게 숙제하도록 했고 저녁 10시, 11시까지도 했다. 가끔 숙제를 마친 후 딸 아이가 못 풀었던 문제를 살짝 바꾸어 몇 번이고 풀어보게 했다. 하지만 그때는 할 줄 알았던 딸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리고 말았다. 배운 걸 금세 까먹는 딸아이를 보며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맨날 뭐 하는 거야? 남들 다 하는 걸 너는 왜 못 해? 이렇게 쉬운 문제도 기억 못 하다니. 어이구. 너처럼 해서 언제 발전하겠어?” 딸은 잔뜩 겁먹은 채 가만히 서서 울면서 나를 흘겨보았다. 불쌍한 딸 아이의 눈빛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만 흘렀다. 분명 다른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한 요구를 했다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딸아이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딸아이가 더 열심히 공부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강압적으로 나가니 딸은 우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무렵 딸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울기만 했다. 밥을 딸아이 책상으로 가져다주어도 알아서 먹는 법이 없었다. 내가 먹으라고 해야만 겨우 깨작깨작 먹고는 다시 책상으로 갔다. 잠든 아이의 얼굴엔 눈물 자국이 자주 보였다. 마음이 아파 딸에게 내가 싫으냐고 물어봤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열심히 딸을 가르치는데 어째서 발전은 없고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고 눈물만 흘리게 된 건지. 나는 그저 딸아이를 잘 가르쳐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어쩌다 아이에게 고통만 안겨준 걸까? 고통 속에 문득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그저 아이에게 다양한 지식을 심어주려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딸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발 저를 인도해주세요!” 말씀의 심판, 갓 깨어난 꿈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조금밖에 없는 네 육체의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 동경하던 그런 인류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다음 세대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힘이 없으면서 오히려 자식의 운명을 독자적으로 조종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주제넘는 짓이 아니겠느냐? 어찌 사람의 무지몽매함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의지가 있든 없든,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고,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평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게 되는지는 그 사람의 부모나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이나 야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정하심에 달려 있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한 사람의 운명이 좋고 나쁘고는 창조주께서 정하시는 것이며 지식 수준이나 다른 재능과는 관련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 등 사탄의 철학 속에 살며 내 힘으로 딸의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딸이 앞으로 어떤 능력을 갖추게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하나님께서 모두 정해놓으신 것은 몰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된 인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딸이 장애로 다른 사람에게 차별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내 힘으로 딸의 지식 수준을 높여주고, 다양한 기술을 익혀 부족함을 메꾸려고 하였고 함부로 딸의 운명과 앞날을 바꾸려고 했었다. 내가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딸이 정상 아이보다 부족한 걸 알면서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때리고, 압박하고, 억누르는 방식으로 공부시켰고, 자주 화내기까지 했다. 결국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아이는 밥도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자지 못했으며 말수가 적어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게다가 나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이루 말할 수 없을 고통 속에 허덕였다. 오늘에서야 꿈에서 깨어나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하고 사탄의 독소로 운명과 맞서며 딸과 자신에게 행복은커녕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는 사탄의 황당무계한 논리이며 거짓말로 믿을 게 못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부터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딸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 힘으로 운명에 맞서지 않을 것이다. 딸아이를 부양하는 책임을 다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이 한결 좋아졌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그 후 나는 <인간 영혼의 엔지니어는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보고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주인공인 엽 선생은 교사 평가에서 맨날 꼴찌였다. 하루는 주변 동료들이 학생들 점수와 진학률을 높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고, 억압하고, 압박하는 식의 교육을 하는 걸 보게 되었다.그걸 본 엽 선생은 동료들에게 배운 그대로 학생들에게 써먹었다. 그러자 반 성적은 올랐지만,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 후 엽 선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겼고, 수업 내용에 많은 영감이 생겨 아이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껴 놀랄 만큼 성적이 올랐고, 1등을 거머쥐었다. 게다가 그는 아이들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가 딸을 대할 때도 엽 선생이 처음 아이들을 가르칠 때와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딸이 더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딸의 마음은 헤아리지도 않고 그저 화가 나면 불같이 혼냈다. 인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자책하며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직시하여 내 뜻대로 딸에게 요구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길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 공부 못하면 또 혼낼 거래요.” 순간 걱정이 또 올라왔다. 속으로 오늘 제대로 잘 가르쳐주지 않으면 학교 가서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는 정말 너의 자손 후대를 모두 ‘사람’이 되게 교육할 수 있겠느냐?』 문득 하나님이야말로 딸의 운명을 주재하시는 분이시며 딸이 할 수 있고 없고는 하나님에게 달렸지 내가 가르침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나는 하나님에게 기도드리며 내 마음을 다잡고 인내심을 갖고 딸의 숙제를 가르쳐 주었다. 딸이 못 하는 모습에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예수께서 ‘다른 이를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가르쳐 주신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를 보니 딸에게 사랑이라고는 없었다. 사람다운 모습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난 또 자책감이 들었다. 사랑으로 딸을 대하고 인내심을 갖고 딸을 가르치며 남들보다 부족한 딸을 헤아려줘야 함을 깨닫자 화가 누그러졌다. 나는 딸을 격려해주며 말했다. “천천히 해. 급할 거 없어.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이번에 35점을 받으면 다음에 40점만 받아도 발전한 거야.” 내가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딸을 격려하고 위로해주며 딸에게 압박을 가하지 않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고 딸이 우는 일도 없어졌다. 진리 실천, 뜻밖의 기쁨 그때부터 딸의 숙제를 봐줄 때면 일부러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지했고, 점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본문을 외울 때면 딸이 본문 내용을 더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동작이나 시범을 보여줬다. 예를 들어 개구리가 나오면 ‘개굴개굴’소리를 냈고, ‘엄마’가 나올 때면 나를 가리켰다. 그 후로 딸은 눈물이 적어지고 웃음이 많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뭐든 빨리 외웠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친 딸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엄마, 나 몇 점 받았게요?” 잔뜩 신난 딸아이를 보니 분명 시험을 잘 본 거라 생각해 60점이라고 말했다. 딸은 틀렸다고 했고 나는 70점이라고 했다. 딸은 또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0점부터 90점까지 하나씩 다 얘기했다. 딸은 “다 틀렸어요. 나 100점 받았어요!”라고 말했다. 난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 가득 찼다. 최근 들어 예전처럼 애써 딸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여 마음을 다잡고 딸을 가르쳤더니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묘임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딸의 절뚝거림이 서서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팔은 아직 다 낫지 않았지만 그다지 방해되지는 않았다. 딸의 앞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 후 학교 이전으로 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가끔 방학 때 집에 오면 나는 딸의 숙제를 같이 봐주려고 했다. 그런데 딸은 “엄마, 괜찮아요. 벌써 다 한 걸요”라고 말했다. 나날이 자라고,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뻤다.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딸에게서 나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 말씀의 실질적인 의미를 직접 느끼게 되었다. 과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주재를 잘 알지 못하고, 딸이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길 바라는 욕심에 ‘지식으로 바뀌는 운명’, ‘운명은 내 손 안에’라는 틀린 관점으로 딸을 가르쳤고, 그 결과 딸의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독선적이고 교만한 타락 성품으로 인해 딸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고통 속에 살았으며, 딸에게는 많은 상처를 줬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잘못된 인생 관점을 내려놓고 딸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에 옮기니 모든 것이 즐겁고, 딸도 기묘하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학업뿐 아니라 몸도 좋아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재하시며 우리에게 마련해주신 것은 모두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을 알도록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곤경에서 벗어나 올바른 인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자녀교육, 나의 욕심을 먼저 내려놓는다

어린 시절 집안이 궁핍했던 동신은 학비를 낼 돈조차 없어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신은 성인이 된 후, 시(市)의 방직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매일 바쁘고 고되게 일해도 한달에 겨우 32위엔밖에 받지 못해서, 근근히 끼니를 해결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녀는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아들만큼은 내 힘으로 꼭 대학에 입학시키고 말거야. 아들이 남들에게 출발선에서부터 뒤지게 할 수는 없어. 안 그러면 평생을 출세도 못 해보고, 찌질하게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동신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같이 건재 장사를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생활이 점점 넉넉해졌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동신은 아들의 학습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에게 영어, 작문, 수학 올림피아드 등등 여러 학원을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아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들의 숙제를 검사하며 재촉하였고, 명절이나 공휴일에도 그를 데리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동신은 아들을 사립학교에 입학시켰으며,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아들은 시험 때마다 늘 반에서 3등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동신은 기뻤고 많은 위로를 받았으며, 자신의 노력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이보다 더 힘들다 하여도 역시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이 우물쭈물거리며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중3 과정이 너무 타이트하고, 학교의 요구가 너무 엄격해서 못 견디겠어요. 나 일반 중학교로 전학가고 싶어요.” 동신은 매우 의아했습니다. “내가 매일 죽도록 힘들게 돈 버는 게, 다 네가 명문고에 가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나중에 네가 사회에서 발붙일 자리를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엄마가 평생 별 능력없이 살아서, 너를 엄마처럼 되지 않게 하려는 건데, 넌 엄마의 이런 깊은 생각을 왜 몰라주는 거야?” 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았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동신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들을 한 대 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갑자기 창문 쪽으로 다가 가더니, 만약 더 이상 자기에게 강제로 다니라고 한다면, 창 밖으로 뛰어내릴 거라고 말했습니다. 동신은 분통이 터져 말했습니다. “내 모든 희망을 너에게 걸었는데, 네가 뛰어내려서 죽으면, 내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차라리 나도 같이 죽고 다 끝내자!” 그날 엄마와 아들 모두 고통의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치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신은 아들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몇 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릴 것이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앞날에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간절히 애원하였습니다. 하지만 학업 스트레스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아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동신은 아들과 타협하고 양보하여, 그를 일반 중학교로 전학하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들의 담임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동신의 아들이 아침 수업시간에도 졸 뿐만 아니라 숙제 내 준 것도 해오지 않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동신은 마음이 다급해져 생각했습니다. ‘아들의 공부를 위해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아들은 왜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릴까? 계속 이렇게 공부한다면 명문 고등학교에 어떻게 합격할 수 있겠어?’ 이런 저런 고심 끝에, 동신은 학비가 비싼 기숙사가 있는 사립학교에 아들을 강제로 전학시켜버렸습니다. 그러나 동신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 달쯤 지난 어느날, 아들의 학급 담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은 동신에게, 저녁 자습시간에 출석 점검할 때 동신의 아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기숙식 학교에서 학생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 몹시 당황했었었고, 결국 모든 수업 담당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교내와 교외까지 아들을 찾아다니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PC방에 있던 동신의 아들을 찾아냈으며, 그가 담을 넘어 도망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신은 피가 치솟고 현기증이 나서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렇게 고생한 것은 다 아들이 앞으로 잘 되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들은 왜 계속 말을 안 듣고, 그녀를 절망하게 하는지, 동신은 자신의 운명이 왜 이렇게 고달플까라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동신의 어머니가 그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하나님 말씀 책 한권을 주면서 꼭 이 책을 잘 읽어보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네가 갓난아기로 이 인간 세상에 와서부터 너는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정하심으로 인해 너의 배역을 맡아 네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다. 너의 배경이 어떠하든, 네 앞날의 여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하늘의 섭리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오직 만물을 주재하는 그 한 분만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어머니의 교통을 들은 동신은, 원래 한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직업을 갖게 되며, 그 사람의 운명이 어떠할지,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정해놓으셨기에, 사람이 제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돌이켜 생각해보았습니다. 동신은 자신의 출신이 안 좋아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자신이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늘 원망하였기에, 운명에 맞서 싸우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전가하였습니다. 동신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들을 강요하여 각종 학원에 보냈고, 아들로 하여금 학업 스트레스가 큰 나머지 세상을 비관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그러한 일념만으로 아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동신의 이러한 방법은 아들의 마음에 이미 크나 큰 상처를 남겼고, 심지어 아들이 죽으려고까지 하였으며, 그들 모자관계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동신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님의 주재를 깨닫지 못하고, 자꾸만 운명에 맞서려고 하였고, 아들에게 이미 심각한 상처를 주었으며, 자신도 여러 해 동안 날이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다시는 운명과 맞서서도 안되고, 다시는 이전처럼 그렇게 자신의 희망대로 아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자신만의 흥미와 취미가 있고, 마땅히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하며, 그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공간을 되돌려주고, 그가 배우고 생활하는 것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을 졸업하던 해, 시험 점수를 352점밖에 받지 못한 아들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동신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 시험을 망쳤어요. 엄마 체면을 못 세워줘서 미안해요. 엄마가 친척을 찾아가서 연줄도 대보고, 교장 선생님에게 잘 좀 말씀드리고 로비도 좀 해서, 명문고에 뒷문으로라도 들어갈 수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만약 명문고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게요.” 아들의 말을 듣고 동신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비록 아들의 장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만약 아들이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좋은 대학에 합격하기 힘들고, 그렇게 되면 그의 장래 직업과 앞길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기에, 다시 한번 힘껏 아들을 도와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자신이 처음 아들에게 가졌던 희망도 이루는 것은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동신은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몰라, 그녀는 곧바로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생각과 뜻을 살펴주시옵소서. 아들의 학교 진학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고 아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저는 잘 알지 못하오니,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후, 동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동신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수천 년 동안 타락된 현재의 사람들은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살며, “모든 것이 다 하찮은 것이고, 오로지 독서만이 고상하다.”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 이러한 말들이 이미 수많은 사람들 마음속의 명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공부를 통해 운명을 바꾸려고 하며, 자신도 모르게 사탄에 유혹당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동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며, 너무 큰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결국은 자살하게 되는, 이러한 참혹한 사건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고 지켜주시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서, 결국은 철저하게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잡아먹히게 될 수 밖에 없어.’ 동신은 자신이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아들에게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아들이 이로 인해 이미 트라우마가 생겼고, 아들은 시험을 망치기만 하면 꾸중을 듣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하지만 동신은 자기가 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훈계하고 독촉한 것은 다 그의 앞날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했던 사랑의 표현이라고 줄곧 생각했었습니다. 동신은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란 말입니까? 이것은 분명 아들을 철저하게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는 짓이었습니다. 동신은 다시는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을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신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학교 들어가는 문제는 순리에 맡기자. 어떤 학교에 합격하든 거기엔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고, 네가 어떤 학교를 다니든 다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운명으로 정해주신 거야. 예전에 내가 그렇게 너에게 요구했었던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아. 내가 너에게 공부를 강요했던 건 다 나의 체면과 명예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을 뿐, 네 생각은 전혀 고려해주지 못했어. 내가 정말 사탄의 철학에 판단력이 흐려져서, 이성적이지 못했어.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너에게 요구하지 않을게.” 아들은 엄마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동신은 아들의 미소 속에서 아들의 홀가분해진 마음과 자유, 그리고 오랜만의 즐거움을 보았습니다. 개학 때, 동신은 아들이 일반학교에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 후 동신은 다시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그를 돕고 인도하였습니다. 아들은 날이 갈수록 동신과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모자간의 관계도 날이 갈수록 가까워져서 허심탄회하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아들은 한 민영회사에 채용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시종일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루는 동신이 뜻밖에 아들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엄마, 내가 예전에는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엄마가 어떤 심정일지도 신경쓰지 못했어요, 지금 어른이 되고 보니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무엇인지 많이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 이제는 더 이상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문자 메시지를 본 동신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마음속이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예전에 사탄의 철학에 의지하여 아들을 교육할 때는, 서로간의 벽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헤어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동신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얼마간의 진리를 깨닫고 사탄 철학의 실질을 꿰뚫어 보고, 자신이 변화되기 원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목격하고, 모자간의 정상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며, 오랜만에 집안에 기쁨의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동신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지금 이렇게 철이 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나님이 보살펴주시고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고, 다시는 그런 그릇된 주장과 잘못된 논리에 의지하지 않게 된 것은, 완전히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으로 도달하게 된 효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희에게 임하여, 우리 모자가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충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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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을 배우다

저는 올해 22살입니다. “젊어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은 저의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는 제멋대로 떠벌이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몰랐고, 컴퓨터 기술을 좀 안다고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얕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에게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저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도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필요가 없어. 내가 잘하니까 어머니도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졌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었는데, 몇 번 가르쳐 줘도 할 줄 모르니 조금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세요?” 그러고는 속으로 '나이가 들면 정말 둔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빨리 배워 … 어머니가 마우스를 클릭할 줄 모르니 답답한 저는 어머니 손에 쥔 마우스를 빼앗아 클릭했습니다. 어머니는 짜증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나이 드신 형제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저는 형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이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어 못 먹었고, 예배할 때 형제님이 말을 횡설수설하게 해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제님의 말을 가로채고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고 소질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궤사로 가득하고 사람을 경멸하는 눈길이 가득한 것은 연소한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도 젊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은 잘못된 것에도 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순결하고 정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해 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타락 성정을 인식하였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과 인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지난날 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도 할 만한 기능이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는 취할 만한 부분도 있고, 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이 많고,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 원칙이 많고, 언제나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활기가 없고, 너무 융통성이 없는데, 이런 것은 취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듬직하여 성정이 안정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언제나 시종일관한데,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결함이 아니다. … 젊은 형제자매든 연로한 형제자매든, 자신이 해야 할 기능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젊은 형제자매들은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얕보지 말고, 연로한 형제자매들도 독선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냐? 너희가 다 이런 심지(心志)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너희 이 세대의 사람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나이 든 형제자매가 비록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더는 이전처럼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자고자대 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하루, 어머니가 휴대폰 네트워크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뭘 하나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짜증을 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제서야 저는 저의 교만한 성정이 또 흘러나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머니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가 컴퓨터나 휴대폰를 사용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면서 마음도 점차 평온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형제자매나 어르신들과 우정의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직장동료,직장관계
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정 회복,크리스천직장생활, 서로의 벽이 되었던 이익을 내려 놓으니 다시 회복된 우정

이익 앞에선 진심이 없다라는 것처럼 의리마저도 지키기 힘든 것이 이익이었습니다. 그녀는 동료와 막연한 친구사이였지만 이익 앞에선 동료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봤었고, 화가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진리를 깨닫고 이익을 버리니 다시 전처럼 회복된 우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회 생활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수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기존 직원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속의 화를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그는 본인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와 간구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인도로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장님의 신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의 교회 생활 — 예배에서 굳게 닫혔던 입을 열다

예배를 드릴 때면 항상 적극적이었던 그가 무심하게 던진 자매님의 말 한마디에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재를 통해 소극적이 된 근원을 알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자 마음의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상)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간증 나눔 :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14살 크리스천인, Mandy라고 합니다. 저는 항상 남들이 칭찬해주는 말만 듣길 바랐고 누가 제 단점을 얘기하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어떤 모습을 지적하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두 가지 일을 겪고 난 후 제 관점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청소년 예배조에 들어가 매일 온라인에서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서로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 생활을 좋았고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각자 묵상할 시간을 가진 후 서로 인식한 것을 나눴습니다. 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느라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공유할 내용의 생각을 마쳤을 때 다른 자매님이 나누고 있기에 제가 공유할 내용을 글로 적어 단체 채팅방에 올렸습니다. 올리자마자 실수로 제가 올린 메시지를 그만 삭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수로 공유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얼른 글을 썼습니다. 쓰면서 ‘형제자매들은 분명 괜찮다고 해줄 거야. 말로 하면 된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Lily자매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금 올린 글을 좀 봤는데 별 의미도 없고, 쓸데없는 내용만 가득하네요.’ 이 메시지를 보고 화가 난 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말을 이렇게 하지?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Lily자매가 자신의 인식을 채팅방에 공유하자 마음속으로 경시하며 ‘자기가 쓴 것도 별로 구만. 나보다 못 썼으면서 주제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자매님한테 메시지를 보내 따지고 싶었지만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자각하니,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써 마음속 화를 억제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는 바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좀 전에 Lily자매가 제게 뭐라고 하자 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화를 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화를 내는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주소서’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Lily자매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교제를 못 했나? 그 정도는 아닌데! 하긴 교제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긴 했지. 마음으로는 아는데 그걸 말로 표현 못 할 때도 있었고. 정말 자매가 말한 것처럼 내 교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휴, 이렇게 부족한 나라면 차라리 교제를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형제자매들도 내가 교제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기력함에 힘이 빠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고, 심지어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풀이 죽은 저는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저는 교회의 Vivian언니에게 메시지로 저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Vivian언니는 내게 인터넷으로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면, 다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 끝까지 고집부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된다. 너는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 “정말 그러네, 그럼 고쳐야지.” 하면서 고치니, 누군가 “이젠 좀 괜찮네요. 보니까 느낌도 좋고 큰 문제도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됩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되면 한 방면으로는 너희가 업무적인 면에서 점차적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숙련되고 능숙해질 수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 공과를 배우게 되는 것도 있다. 일에 부딪혔을 때 독선적이면 안 된다. ‘내 말대로 해야 돼, 다들 말할 자격이 없어. 난 원칙을 알고 있는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잖아. 난 잘 알아!’라고 생각한다면 독선적인 것이다. 독선적인 것은 사탄의 타락된 성품이고,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독선적이지 않겠느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고, 다 같이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봤을 때 다 찬성해서 통과시킨다면, 그것은 참 잘한 것이다.』 이어서 Vivian언니가 내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우릴 지적하고 훈계할 때 사탄의 교만한 성품 속에서 살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선 받아들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찾고 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어.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만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훈계와 책망 중에서 이익과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족했던 점을 바로잡아야 해.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만족해 하실 거야. 이번 일도 마찬가지야. 그 자매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든, 듣기 좋은 말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단번에 짚어주지 않았니?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만 맞다고 여기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이 있게 되었는데 이러는 건 결코 우리에게 유익한 점이 없어. 오히려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랄 기회만 잃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각별한 고심을 저버리게 되는 거야. 예전에 나도 너와 비슷한 체험이 있었어. 어느 날 형제자매와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가 나랑 예배를 드리면 누림이 없다고 하는 거야. 처음엔 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자매님과 예배에서 열심히 듣지 않아 초래된 문제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 후 그 자매가 한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예배 때 내가 보였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교제한 건 모두 이론과 도리이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전혀 없었어.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 그때 나는 자매의 의견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구하게 되었어. 다음 예배 때, 이런 방면에 대해 고치려고 노력하니 차츰 효과가 나타나더라고. 그러니까 우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우리가 모든 일에서 진보될 수 있거든.” Vivian자매의 말이 끝나자 그동안 제가 보였던 모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자매가 제가 공유하는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을 때 저는 속으로 교만하여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자매가 공유하는 내용이 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그 표현이 바로 고집스럽고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던가? 자매가 내게 제안한 것도 사실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고, 자매를 통해 나의 문제를 지적하여 내가 스스로 깨닫고 고치게 하시려는 거였어. 하지만 난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매가 지적한 문제로 소극적이 되어 대항하며 앞으로 예배에서 교제를 하기도 싫고, 예배도 드리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잖아. 내 못난 모습을 자세히 되돌아보니 나는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억지만 부렸었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책이 물밀 듯 밀려왔고 그 자매가 훈계한 말 때문에 더 이상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Vivian언니에게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과 언니와의 나눔을 통해 앞으로 남들이 어떤 제안을 하든 겸손한 자세로 우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함을 깨달았어요. 만약 정말 제 잘못이라면 다음엔 고치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야 제 생명에도 진보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하자, Vivian언니 역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Lily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제게 뭔가 잘못된 모습이 보이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제가 고치도록 노력할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보며 그때 자판을 두드리던 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쓸까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은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났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걸 중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걸 중시해야 하며 형제자매의 나눔에 귀를 기울여야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생명 자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서야 저는 자매가 내게 의견을 말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을 바로 자매와 나누었고, 의견을 제기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다음 예배 때, 저는 다른 사람의 나눔에 귀를 기울이니 형제자매의 나눔이 모두 좋았고 저도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저에게 또 새로운 공과를 배치해 주셨습니다. …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와 다른 한 친구가 한 팀으로 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기쁜 마음에 제가 쓴 프로젝트 방안을 그 학생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제가 낸 방안에 의견을 제기했으며 심지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말을 마치자, 저의 마음은 몹시 불쾌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쓴 게 뭐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자기는 뭐 얼마나 잘 쓴다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뭐라고 쏘아붙일까 하던 찰나 지난번에 체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사탄의 성품 속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교만하거나 자신을 고수해서는 안돼. 그건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안을 제대로 쓸 수도 없어’라고 자신한테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진짜 그렇게 하면 안 좋고, 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한두 번 봤을 때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도, 세 번, 네 번 보면 볼수록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그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가 있으니 우리는 이 일에서 바로잡고 개선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이러면 문제점을 고친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서 교통을 하니 성령이 또 깨우쳐 준다. 그리고 그대로 하였더니 다들 “맞아요, 원래보다 훨씬 좋네요!”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냐? 얼마나 좋은 일이냐! 네가 이렇게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행하며, 자세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독선적으로 하지 않으니 어떻게 되었느냐? 성령 역사의 기회를 얻어 성령의 깨우침을 받았다. 성령이 깨우쳐 주니 어떻게 되었느냐? 업무 방면에서 또 하나를 배웠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사탄의 성품 속에서 자신을 고수하지 말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한 후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셨어. 그렇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어 일도 더 순조롭게 잘 될 수 있다고 하셨지.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이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니 나는 또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려 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더 좋은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반항심이 없어졌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학생이 제안한 내용이 제가 했던 제안 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그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우리의 프로젝트안은 순조롭게 완성되었고, 선생님도 예전보다 훨씬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의 체험을 통해 저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지적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스스로도 더욱 진보할 수 있고 일도 더 잘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적하고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저를 부정하고, 난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며, 저의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왜 예배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예배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사실 예배는 크리스천에게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예배를 가기 싫어하던 글쓴이가 나중에는 예배를 즐기게 되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음은 자매님의 실제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저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예배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했고, 집안에 일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만두 빚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내일은 딸이 찐빵 찌는 걸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또 남편도 챙겨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교회와 집이 먼데다 나이가 들어서 쉽게 피곤해져 틈만 나면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예배를 드리러 가기가 귀찮고, 심지어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왜 꼭 예배를 드려야 하지? 혼자 집에서 말씀을 읽으면서 예배는 가끔 한두 번씩 나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교회에 나가자고 전화가 올 때마다 저는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댔습니다. 하루는 자매님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마침 제가 집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싼푸텐(三伏天) 자매님은 아래층에서 저를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습니다. 자매님의 인내심과 열정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은 저를 만난 뒤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바쁘신 거 알아요. 다들 집안에 해야 할 일이 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은 이상 시간을 내야 해요.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도 많이 읽고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예배 드리고, 교제도 해야 해요. 그러면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점차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생명도 자란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예배 나가는 게 싫었어요. 시간 낭비 같았죠.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성령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역사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에게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게 역사하면 네가 체험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에게 역사하면 너는 빨리 따라야 한다. 현시의 빛을 따를수록 생명은 더욱 자라게 된다. 어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의 역사이기만 하면, 너는 따라야 한다. 그리고 네가 체험하는 중에 그의 경험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진보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진보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지 모르고,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너로 얻게 하고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크다는 것을 설명하고, 네가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너의 앞날은 어둡고 막막하고 빛이 없을 것임을 설명한다.』 『비록 내가 말을 다 하였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람의 소질이 낮은 까닭이다. 이 문제는 교회생활이나 서로의 교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말씀을 보면서 성령 역사를 얻고 생명이 자라려면 교회생활 없이는 안 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많이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야 교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며,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벗어나게 되고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예배를 안 나가고 집에서 혼자 말씀을 보면 표면적인 의미는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건지, 이러한 진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에요. 또 머릿속에서 상상해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의미만 받아들여서 말씀에 대해 관념이 생기기도 하고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우리 자질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요. 예배 때,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말씀을 교제하다 보면 간혹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교제하는 경우도 생겨요. 또 각자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하면서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고 공급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생명이 더 빨리 자라고 우리에게 임한 문제점이나 힘든 점도 예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죠.”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서야 저는 예배를 드리면 이로운 면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생활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유지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기도도 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배에 나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에 잘 다니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소홀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예배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일을 보자니 예배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일을 겪고 나서야 크리스천은 예배를 떠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설 전날, 며느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데, 손주 녀석의 지난 번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말에 며느리는 제가 자기를 탓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자기 누이 앞에서 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올케와 오빠가 합심해서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같다며 오빠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후 아들은 씩씩대며 찾아와 저를 나무랐습니다. “어머니, 한 번이라도 아들이랑 며느리를 신경 쓰고 이해해 본 적 있으세요? 동생 말로는 어머니가 과로로 편찮으시다는데, 저 때문은 아니잖아요?” 아들의 비난을 들으니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 어머니인데, 나를 그렇게 대하다니 정말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화를 내며 아들과 말다툼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습니다. 아들이 가고 난 후,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마음속에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무척 힘들고 괴로운 그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는 자매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해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챙겨주고, 한국에서 고생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집도 사주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 말 한 마디에 나를 이렇게나 몰아 부치다니 도대체 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교회에 가자는 자매님의 전화였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갈 길이 없어 혹시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갔더니 제 안색이 좋지 않을 것을 보고 자매님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자매님들에게 얘기하니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찾아 주었습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반대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태도는 어떠냐? ‘흥, 나한테 잔소리하는 것밖에 더 있어? 듣기 싫어!’라고 하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맨날 맨날 단속해, 내가 다 컸는데도 계속 단속하려고 하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또 하나, 어떤 자녀들은 항상 어떻게 생각하느냐? ‘난 엄마(아빠) 자녀야. 그래서 나한테 뭘 해 주든 다 당연한 거야. 날 위해 돈 쓰는 것도 당연하고, 나한테 먹을 거 해 주는 것도 당연하고, 내가 아플 때 보살펴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정상 인성이 맞느냐? 항상 뭐든지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면 부모가 괴로워한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뭘 해 줘도 너는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아직 철이 없구나!’라며 부모는 괴로워한다. 부모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든, 자녀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든, 자녀 쪽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항상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고, 부모는 괴로움이나 아픔을 모르고 고통이나 슬픔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다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자매님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로는 사탄의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게 되었어요.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관용이나 인내를 베풀 줄 모르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식과 며느리와 지낼 때도 타락된 성품대로 서로를 대하지요. 부모들은 항상 높은 위치에 서서 자식과 대화합니다. 때로는 자식들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자식이 잘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자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억압합니다. 이것은 모두 교만한 성품 때문이에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예요. 부모의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모가 당연히 이것저것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아주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아예 부모에게 관심이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부모 자식 간에 자주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타락된 성품 때문이죠.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아껴주고,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며, 더 많이 사랑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어요!”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니 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탄에게 너무 타락되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실행하기 원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며느리가 혼자 중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며느리에게 신경도 안 쓰고, 며느리를 이해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저를 원망하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마음이 풀리고 아들에 대한 화도 풀렸습니다. 저 자신을 내려놓았고 아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서 교회생활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교제하지 않았으면 저는 계속 타락된 성품에 묶여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분명 화병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TV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예배 시간에 자매님들이 제 상황에 맞는 말씀을 찾아 교제해 주고 가끔은 형제자매들도 본인들의 체험을 공유해 주십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도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실행의 길을 찾게 되니 마음은 홀가분하고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시련이 닥치든, 어떤 환경이 임하든, 네 육체에 병이 생기든, 형제자매들이 너를 멀리하든, 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든, 너는 정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고, 정상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네가 이 정도에 이르면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음을 설명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본인의 어려움을 교제하여 진리를 구하고, 모두가 실제 문제에 비춰 말씀을 교제하는 것이 저에게는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라는 가장 좋은 길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앞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개인적인 일로 예배를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인 일과 예배 시간이 겹칠 때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조정하여 예배를 우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배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츰차츰, 예배를 드릴수록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시험이 제게 임했습니다… 하루는 한국어가 서투른 아들이 저에게 다음날 휴대폰을 개통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예배가 있어 난처했습니다. 예배도 빠지기 싫고 그렇다고 아들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딜레마에 빠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자매님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매님이 저에게 예배에 나오지 말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난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해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결정하거나 스스로 선택하지 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겪어내야 비로소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답니다. 오늘 생긴 일은 우선 하나님께 맡기세요. 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 손에 있으니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셨어요.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2) 또한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길을 열어 주시고 제물을 예비하셨죠. 지금 우리에게 임한 일은 작은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믿음이 있어야 해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고민과 생각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고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빌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어요.”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난 후 제게 실행의 길이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저에게 휴대폰을 개통하러 같이 가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배를 드리러 가고 싶어서 입장이 난처합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우선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길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아들한테 일찍 가서 하자고 하자. 그래도 안 되면 예배를 먼저 드리러 가야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야. 아들 일은 늦게 가서 처리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빠 휴대폰은 제가 처리할게요. 제 차로 가는 게 빠르잖아요.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은 저는 뛸 듯이 기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와 아들이 다툰 이후로 딸은 아들과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딸이 나서서 돕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둘이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도 예배를 지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높지 않다.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원뜻대로라면 사람이 다 즐겁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모두 고생하기 싫어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예배로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을 내서 예배를 드리면 진리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저의 일에도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전에는 저에게 진리가 없어서 아무일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임하면 괴로운 나머지 원망만 늘어놓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생기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많은 일에서 길이 생기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면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생활이 저에게 정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행복한 생활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어느 날 알고 지낸 지 10년 지기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오후 티타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제일 고급스러운 화차와 케익, 디저트를 준비하여 저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명품 가방과 브랜드 옷을 사들이는 데 돈을 얼마 쓰게 되었다고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수두룩한 신용카드 고지서를 발견하게 되어 친구에게 고지서가 왜 이렇게 많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던 친구가 울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는 자기 주변 친구들이 명품을 좋아하고 서로 허세 부리며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중시하는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체면이 깎이지 않으려 계속 사들이고 카드로 긁다 보니 이제는 은행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명품을 좇다가 가계 경제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을 본 저는 깊은 공감을 느꼈는데, 마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체면을 중히 여기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7살 때부터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친구관계가 순수한 편이었고 물질적인 생활에도 요구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소박하게 입고 배부르면 그만이었기에 중압감이 없이 비교적 홀가분하게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주변에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화이트칼라들이었습니다. 명품 가방,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을 품평하고 비교하는 게 그들의 일상입니다. 그들은 늘 자신의 옷은 어떤 브랜드인데, 옷 하나에 몇만 위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렇게 자랑을 하다가도 저에게 옷은 어디서 사는지, 가격대는 얼마인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제가 가격을 말하면 그녀들은 바로 경멸하는 말투로 “뭐? 어떻게 그런 싸구려 옷을 입을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속으로 “쟤네들에게 무시당할 순 없어! 쟤들이 가진 건 나도 꼭 가지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저도 자신의 겉치레를 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카드를 긁어 G 브랜드의 가방을 사고 난 후, 동료들이 입을 모아 제 가방이 정말 이쁘고 저에게도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칭찬을 받게 되자 저는 속으로 너무 기뻤고 체면이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품 가방을 갖고 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저는 차츰 그녀들의 생활 라인에 녹아 들게 되었고 동료들과도 같이 나눌 화젯거리도 생겼습니다. 결국 자기도 모르게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동료가 3만 위안이 넘는 시계 하나를 구입했는데 매일같이 제 앞에서 자랑을 했습니다. 저는 약이 올라 며칠 뒤에 가격이 2만 위안이나 더 비싼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그 동료는 또 십만 위안 넘는 다이아 반지를 구입했는데 저는 더 이상 동료와 비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은 또 하나둘씩 집을 장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부족했지만 주변의 동료들에게 얕보이기 싫은 저는 긁어 모은 15만 위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집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겨우 집 대출 이자를 다 갚게 되자 그들은 또 자가용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뒤질세라 일제 신형 차 한대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저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로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친구와 몇년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그 후 몇년동안 저희는 함께 교회를 섬겼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심령에 위로도 얻어 믿기 전보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저의 생활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한 친구가 또 3만 8천 위안짜리 유명 브랜드 가방을 샀습니다. 그 친구는 매일 제 앞에서 가방이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친구와 함께 가서 똑같은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그러자 매장 직원은 곧바로 저에게 만 7천 5백 위안짜리 선글라스 하나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선글라스까지 구입하고 매장을 나오려고 할 때 친구는 또 만 3천 위안짜리 작은 가방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친구는 한꺼번에 가방을 두 개나 구매했는데 하나는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둘이 같은 백을 갖고 다녀야 남들 눈에 절친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서 저도 하나 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작은 가방은 별로 실용 가치가 없어. 게다가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싸. 이 가방까지 사게 되면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거의 7만 위안이 돼. 이 돈을 갚으려면 몇 개월이나 일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살 의향이 없는 것을 보자 가방이 정말 귀엽고 제게 참 잘 어울리는데 왜 사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순간 체면이 체면이 깎인 것 같아 속으로 ‘사지 않는다면 쟤는 꼭 내가 돈이 없어 사지 못한다고 생각할거야. 그럼 쟤 마음속에 여태 쌓아왔던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카드를 긁어 사고 말았습니다. 신용 카드의 최저 한도를 지불하기 위해 저는 반드시 투잡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일해야 했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제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기억력도 점점 감퇴되었습니다. 체중도 계속 줄었고, 장기간의 과로로 인해 제 피부도 누렇게 되었으며, 위장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늘 ‘왜 난 스트레스를 점점 쌓이기만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척, 친구, 동료도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다 허세를 부리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남들과 돈을 비교하고 집도 비교하고 자동차까지 비교하며 정말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번 주님께 기도 드렸고 성경에서도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하게 되니 참 막막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크리스천 형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형제와의 교제를 통해 예전에 몰랐던 성경 속의 비밀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형제가 아주 경건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얘기할 줄 아는 크리스천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좋은 영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는 저에게 주님이 벌써 돌아오셔서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심판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조류를 따르고 허영을 추구하며 죄 속에서 살면서 해방을 얻지 못한 것이죠. 성경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저희처럼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셔서는 주로 우리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저희의 본성 실질을 여실히 드러내셨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통해 저희는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진면모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사탄의 패괴 성정과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았고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시는 심판 사역이 확실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교통을 들은 저는 비록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님을 몇 년 동안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영화와 뮤직 비디오도 보았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수확이 있었고 성령이 역사하여 인도하심을 확실히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디마디 말씀마다 다 권세가 있고 다 하나님 성품의 발표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예전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몇개월 동안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정성껏 화장을 하고 멋지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뒤에 옷장에서 제일 값비싼 가방을 꺼내 들고 예배하러 갔습니다. 예배 장소에 도착하여 형제자매들의 차림새를 보니 모두 아주 소박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중에서 너무 튀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어울려 지내면서 저는 형제자매들이 아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사회 조류를 따라 명품을 좇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만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느라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고통을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성정은 나날이 악랄해져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거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아무도 없고, 더욱이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진흙탕에서 자신의 육체를 진탕 패괴시키고 있다.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통과 고민의 근원을 밝히셨어요. 사탄은 사회의 나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진리가 없으면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사탄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회 조류를 따르면서 점점 더 타락되죠. 예를 들어 사회에서 경쟁하는 풍조, 사치 풍조, 그리고 부를 자랑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풍조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어 사람마다 경쟁하고 있는데, 누구의 소유한 집이나 자가용차가 더 좋은지, 누가 돈이 더 많고 세력이 더 큰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브랜드 옷, 휴대폰, 3C제품(컴퓨터, 카메라, 게임기 등)이 더 좋은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경쟁심과 질투심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자신의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성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교통에 깊이 공감이 되었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1서 5: 19)”라고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먹고 입고 겉치레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명품을 좇다가 결국 자동차의 노예나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우리가 일시적인 물질적 누림을 얻고 허영심을 충족시킨 것 같지만 이런 고지서들을 마주할 때의 경제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쓰라린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근검절약하거나 소박한 것은 치욕으로 여기지만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비뚤어진 사상의 영향으로 저도 주제넘게 높은 것만 바라보고 허영을 탐내면서 분수에 맞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우러러 봐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랐던 저는 억지로 체면을 유지하면서 돈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했고, 늘 자신의 체면을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정말 위선적으로 살았는데, 그 고통은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저는 건강도 잃고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도 줄었던 것입니다. 이제 보니 자신이 다년간 추구해 온 것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서로 경쟁하면서 명품을 좇고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치중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우롱하는 사탄의 수단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저에게 명품을 사러 가자고 하면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찾고 구하던 중,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의 마음을 밖으로 끌어갈 수 있는 일은 접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지 말라. 어떤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면, 너는 그런 일을 내려놓고 하지 말거나 멀리하여라. 그러면 너의 생명에 더욱 유익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 길과 방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을 유혹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니, 더 이상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늘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또 백화점의 세일 시즌이 왔는데, 친구는 또 저에게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미친 듯이 옷을 열 몇 벌이나 고르고 난 후 저에게도 사라고 권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허영을 탐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비웃던 말든 저는 “난 더이상 함부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집에 옷이 너무 많아 다 입지도 못해. 난 안 살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은 너무 자유롭고 해방받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진리를 실행하게 된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또 몇 번이나 친구와 같이 백화점에 갔었지만 저는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더 이상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체면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억지로 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허영심과 체면의 묶임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명품이 없어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체면이 깎여도 속이 뒤집혀질 정도로 괴롭지 않으며, 또한 예전처럼 신용카드 고지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할 필요도 없게 되면서 점차 건강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하루하루가 매우 의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 깊은 곳이 밝아지고 편해지며 더없이 즐거울 것이고,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저를 구원해 주시고 저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인생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19살 소녀가 찾은 죄에서 벗어나는 길

저는 마루(Maru)라고 부르며 필리핀 사람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었고 매주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 목사가 자주 야고보서 4장 4절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비록 이 성경 구절을 자주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의 생활은 방탕하여 이방인과 다름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학교 과제와 여러가지 활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따라 수업 빼먹고 번화가로 나가 활보하며 놀기 좋아했던 저는 세상 조류를 따르며 유행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갖지 않았던 저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번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땐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예배만 끝나면 생활은 예전과 마찬가지었습니다. 평소 저는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와 웃어른을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았는데, 늘 그들의 단점과 흠을 집으며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이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 자신을 뉘우치긴 하였지만 타인의 흠과 단점은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매번 교회에 가서 청소하거나 주일 예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주며 일손을 도울 때도 제가 한 일에 항상 관심을 갖고 칭찬해 주길 바랐습니다. 제가 한 이 모든 출발점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란 것이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태복음6:1~4)이 말씀에서 저는 자책감을 받았고 자신이 아주 이기적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행한 모든 것은 사람의 높임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전도서 11장 9절의 말씀을 늘 상기하였습니다.“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저는 이런 가르침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책을 받았고 자신의 죄로 인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님께 늘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는 늘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며 당신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기도는 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저를 버리지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비록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지만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없었고 죄속에 살면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원인인지 몰랐지만 주님만은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냥 이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마닐라에서 돌아온 워시 아주머니가 감격에 겨워 저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지금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주님이예요. 하나님은 이미 땅에 오셨고 6000년 경영계획에서의 마지막 한단계 사역을 하고 있어요. 이 한단계 사역의 목적은 바로 인류를 정결케 하고 인류의 죄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저희는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조심스레 “저는 아직도 무의식중에 죄를 범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천부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만약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낙담하고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어요. 주님은 은혜시대에 죄를 사하는 사역만 하셨지 죄의 뿌리를 없애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를 범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주님의 구속사역의 기초 위에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여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구원하는 거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 두단락을 우선 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그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이런 문제를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에 대해 폭로한 말씀들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고,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고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위의 말씀을 읽은 다음 워디 아주머니는 계속 교제하여 주었습니다. “은혜시대에서 주님은 한 단계 구속 사역을 하였지요. 비록 우리는 속죄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우리의 죄성은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을 받아 늘 죄를 범하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면서 늘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늘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자주 의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의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한단계 심판의 사역 즉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발표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의 실질과 진상 그리고 인류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심판하고 폭로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본성이 교만자대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등 사탄성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려고 추구하고 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인식하려고 추구한다면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생명 성정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점점 양심과 이지가 있게 되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어 나중에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은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몇 천년간 죄를 범하고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끝내고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흑암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기 위한 거죠. 우리가 심판 사역에서 정결함을 얻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죄 사함만 받았지 죄성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예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늘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보니 제 안에 아직도 죄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결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는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생활은 이방인과 같았는데, 세상의 조류를 따르며 거의 기도하지 않거나 성경을 보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데만 머물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데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성정이 조금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서 개인적인 일로 바빴는데 집안의 어른이 저더러 밖에 나가 뭘 좀 갖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화가나서 성질 부리려 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정말 적합할까? 나는 정결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저를 일깨워 주면서 혈기를 내지 않게 되었고, 저는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까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가지 일이 닥치면, 우선 자신을 내려놓고 육체를 가장 비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구는 더욱 한도 끝도 없게 되어,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육체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 너에게 늘 그것을 만족시키게 하여 항상 누리려고 한다. 먹거나 입거나 성질부리거나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고 나태하거나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은 더 커지고, 또한 점점 더 방탕하게 되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사람의 육체는 더 깊은 관념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치켜세우게 되며,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의심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면 화를 내고 화를 낸 원인은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교만한 본성이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에 따라 일을 한 것이며 이렇게 할수록 저는 성질만 더욱 잘 부리고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저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순복하는 것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반성할 때 저의 정서는 통제되었고 성질부리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체통에 관한 교통에서 예의를 차리고 범절을 알며, 연장자를 존중하고 아랫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연장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차분해졌는데 진정한 포용과 인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저에게 임한 것이며 여기에서 진리에 순복하는 것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이 조금씩 벗겨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다》라는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너에게도 베풀어 주고 나에게도 베풀어 주고 그에게도 베풀어 주며,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하나님은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가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한번도 저를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의 생활은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저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본분은 열심히 하면서 예전처럼 세상의 것을 좇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임하면 먼저 순복하는 것을 배우고 그 다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찾고 구합니다.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기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나중에 철저히 사탄의 패괴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리가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