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서로의 벽이 되었던 이익을 내려 놓으니 다시 회복된 우정

이익 앞에선 진심이 없다라는 것처럼 의리마저도 지키기 힘든 것이 이익이었습니다. 그녀는 동료와 막연한 친구사이였지만 이익 앞에선 동료를 곱지 않는 시선으로 봤었고, 화가치밀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진리를 깨닫고 이익을 버리니 다시 전처럼 회복된 우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수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기존 직원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속의 화를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그는 본인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와 간구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인도로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장님의 신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렇게도 가까워 질 수 있었던 동료와의 관계

주변에서는 사람이 너무 착하기만 하면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고, 강해져야만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크리스천은 어떻게 해야 이런 생각을 내려놓고 직장 생활을 하든, 동료와의 관계를 맺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모습으로 살아낼 수 있는 걸까?

실적에 얽매여 괴롭고 우울한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자유

박명희 2018년 3월 19일 월요일 맑음 오늘은 새로운 회사에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너무 기쁘다! 정시에 집을 나와보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경쾌한 발걸음으로 출근했다. 돌이켜보니, 3개월 전 고민 끝에 이 회사를 선택한 후 출근 첫날부터 지금까지 다 순조로웠다. 3개월 동안의 고생과 노력으로 마침내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이제는 매출액에 따라 월급을 가져간다고 생각하니 단단히 벼르게 되었다. 가게에 도착하니 동료가 손님들과 열심히 상담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 '이 동료랑 앞으로 한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데 어떻게 주문을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센 편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받은 주문을 뺏겨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난 고생스럽게 일만 하고 실적이 없으니 손해가 아닌가. 그럴 순 없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점장에게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점장은 돌아가면서 주문을 받자고 했고, 동료도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2018년 3월 25일 일요일 작은 비 요 며칠 기분이 정말 답답하다. 똑같이 주문을 나눠 갖기로 해놓고선 동료는 번번이 내 주문을 뺏어갔다. 동료의 행동에 불만스러웠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와 다퉈서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포용하고 인내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료가 주문을 뺏어가는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어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는데 동료는 상대가 부자인 줄 알고 얼른 다가가서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뭐지?' 왜 또 주문을 뺏어가는 거야? 아! 나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얼마 전에 점장이 내가 잘하고 있다며 칭찬하고 날 점장 보조로 뽑아주었다. 게다가 매달 남모르게 200위안(한화 약 3만 2천원)을 더 얹어주었다. 하지만 동료가 이렇게 내 주문을 뺏어가니 점장과 본점에서 내 실적이 나쁜 것을 보면 나에게 업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 이 점장 보조를 어떻게 맡겠는가? 저녁에 나는 걱정으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계속 낮에 동료가 내 주문을 뺏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동료가 주문을 뺏어갈 때 우쭐대던 모습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계속 양보할 수 없다. 그랬다간 월말 실적 결산 때 내가 꼴찌를 차지할 것이다. 내일 출근하면 눈 크게 뜨고 잽싸게 움직여야겠다. 2018년 3월 28일 수요일 작은 비에서 중간 비로 바뀜 요 며칠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 내 기분도 답답하다. 가게에서도 저기압이 머리 위를 누르며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울적한 기분이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요즘 나는 매일 손님이 찾아오길 기다리는데 주문을 받고 싶을수록 받지 못하고 있다. 주문을 받더라도 다 작은 주문이었다. 나와 동료는 이미 며칠째 대화하지 않고 있다. 말해야 할 때도 내키지 않아 딱딱하게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출근하면 우울하고 퇴근하면 피곤해지는 등 너무 힘들다. 오늘 아침, 동료가 또 나의 한계에 도전했다. 내가 막 주문을 받고 있는데 그녀가 갑자기 끼어들더니 조금도 거리낌없이 이 주문의 실적을 그녀의 이름으로 올렸다. 나는 정말 화가 나서 콧구멍에서 연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점장에게 이야기해 내 몫을 찾아오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갑자기 혈기로 사람과 다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이 일에 화내지 말고 냉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퇴근 시간까지 버티었다. 집에 도착한 후, 그동안을 돌이켜보았다. 혼자서 참고, 양보하고, 겉으로는 다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동료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스스로 반성하지 않았는데, 설마 나에게는 문제가 없을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은 분명 내가 배워야 할 과제가 있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실,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를 떠나지 못한다. 그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사탄에게 그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구절이 지금 나의 실제 모습이 아닐까? 그동안을 생각해 보니, 나는 명리를 다투는 삶을 살았다. 이익을 위해 동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옥신각신 다투었다. 동료가 내 주문을 빼앗아 가기 시작할 때 나는 화를 내고 점장에게 고발하려고 하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밀어내며 반감을 가졌고 그녀가 제발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빌었다. 나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항상 내가 어떻게 빼앗아올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다가 주문 받는 기회를 놓쳐버릴까 봐 가게 입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손님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동료가 바쁠 때도 도와 주기 싫었다. 실적이 오르면 나는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쥘 수 있다. 점장과 본점에서 내 업무 능력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성과급과 보조금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러면서 점장 앞에서는 능청스레 말했다. “제가 계속 그녀한테 양보하지 빼앗지는 않아요.” 지금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명예'와 '이익'의 속박에 단단히 갇혀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의 고통이 다 사탄이 명리를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타락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을 돌이켜보니, 나는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하늘이 멸망시킨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의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제가 일하는 동안 동료가 저의 주문을 빼앗든지 말든지 저의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저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적을 올리고, 명리를 위해 다투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2018년 4월 19일 목요일 흐림 저녁 무렵, 나는 단골 손님 한 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다가가 인사했다. 동료도 이 손님이 큰손이라는 것을 듣고 다가와 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오늘 간신히 겨우 큰 주문을 받나 했는데, 이 사람이 또 끼어들다니, 얼굴이 어쩜 그렇게 두꺼울까? 동료가 손님에게 계속 소개하는 것을 보고 답답하면서도 '이 손님을 뺏어와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투며 빼앗다가는 이 주문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괴로웠지만 속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 나의 혈기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드렸고, 기도한 후에는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이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 『네가 포기하고 내려놓을수록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며 너의 정형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네가 겨루고 빼앗을수록 너의 정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질투심과 미워하는 마음도 더 커지며 더 얻고 싶어진다. 얻고 싶어할수록 얻지 못하고, 얻지 못할수록 너는 더욱 미워하게 되며, 미워할수록 너의 안이 더 캄캄해지고, 캄캄해질수록 너는 본분을 잘하지 못하게 되며, 본분을 잘하지 못하면 점차적으로 너를 쓰지 않게 되고 너는 도태된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인데 믿지 못하겠다면 네가 시험해 봐라! 네가 이런 정형을 되돌리고 싶어하고 이런 것에 통제받지 않으려 한다면 너는 반드시 먼저 내려놓고 먼저 포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는 마음속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탄은 명리로 나를 구속해서 내가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명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포기하고,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는 너그럽게 앞으로 가서 그녀가 손님 접대하는 것을 함께 도와주니 뜻밖에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나중에 동료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내가 그 손님의 주문을 받았지만 완전히 내 실적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일부는 당신이랑 나눠야 해요. 나중에 큰 주문을 받을 때도 같이 나눠요.” 180도 바뀐 동료의 모습에 나는 순간 반응하지 못할 뻔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행할 때, 사람과 명리를 다투지 않으면 자신의 마음이 해방될 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사이에서 이해와 신뢰도 높일 수 있고, 자신과 사람, 그리고 업무에서도 이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8년 4월 30일 월요일 흐리다가 갬 오늘 점장이 우리의 실적을 통계할 때 동료의 실적이 나보다 좋다는 것을 들었다. 고개를 돌려 동료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니 마음이 조금 불편했고 동료에게 계속 주문을 양보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드렸다. 더 이상 명리를 다투며 살면서 명리의 구속을 받고 살 수는 없었다. 기도를 드린 후 마음은 점차 평안함을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 … 영원한 이익이란 없다. 지위도 체면도, 돈도 물질도 다 잠시적인 것이다. 사람이 그런 방면의 성정을 해결해 진리를 얻고 구원을 받았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귀히 여김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또한, 사람이 얻은 진리는 영원한 것이다. 사탄은 물론, 그 어떤 사람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다. 네가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어도 반대로 진리를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럼 그것 역시 너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얻은 것이다. 진리 실행을 선택한 사람은 가장 명철한 사람이다. 자신을 보전하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모르고 이익을 얻기 위해 진리를 포기하기로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실 눈앞의 이런 이익과 체면은 일시적인 것이고, 진짜 소중한 것은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 속성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과 방향이기 때문에 우리가 진리에 의지하여 살아갈 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또한, 명리는 사탄이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이다. 우리가 명리를 위해 살면 사탄에게 우롱당해 말할 수 없이 괴롭다. 이런 것들을 내가 모두 직접 체험했다.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해야만 정말로 똑똑한 사람이다. 마치 욥이 시련을 받았을 때, 온 들과 산의 소와 양이 다 사탄에게 약탈당했지만 그는 사람을 보내 뺏어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했다. 또한 이런 말을 했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욥기 1:21) 욥은 이 말로 하나님은 증거할 수 있었고, 사탄은 듣고 도망쳤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에게 복에 복을 더해주셨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셔서 그가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욥을 본받아서 다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이익을 내려놓고, 진리를 구하는 똑똑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활짝 열린 창문처럼 내 마음을 환히 밝혔고 나아갈 방향도 생겼다. 2018년 5월 6일 일요일 맑음 오늘은 쉬는 날이다. 날씨가 맑아서 기분도 좋았다. 요 며칠을 생각해보니, 동료가 주문을 받고 싶어 할 때마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양보했었다. 겉으로는 내가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 적어도 나는 매일 이익의 득실을 따지며 고통스럽게 살지 않게 되었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진리를 행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내가 다투고 빼앗을 필요가 없다. 내가 이렇게 할 때마다 마음에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또한 예상밖으로 점장은 매달 점장 보조의 월급으로 200위안을 보조해 주셨다. 동료도 전처럼 그렇게 주문을 뺏어가지 않았다. 요 며칠 나는 또 큰 주문을 연달아 2건 받아서 동료와 실적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동료와 협력해 또 많은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점점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과의 관계도 점점 정상적으로 되었다. 더는 점장과 본점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마음의 기쁨과 해방을 얻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매번 인도하셔서 나는 사탄의 명리의 속박으로부터 점차 벗어났고, 사람들과 더 이상 옥신각신 다투며 힘들게 살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면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는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정당당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크리스천이 직장 생활에서 어려움을 해결하는 법

연지는 한 영화사에서 일한다. 지난달 월말에 한 고객이 그의 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업로드 시키려는데, 연지와 다른 동료들은 부활절 전에 글한 편을 위한 6개의 알림 글로 동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상의를 거쳐 연지가 첫 번째 임무를 맡아 3일 내에 완성하기로 했다. 연지에게 이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예전에 이런 동영상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연지도 조금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그는 하나님이 바로 그가 의지해야 할 분이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지는 만들어야 할 동영상에 참고할 그림을 고른 후, 평소에 쓰던 소재 라이브러리에서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해 동료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동료는 급한 일이 있어 동영상을 도와줄 시간이 없다며 인터넷에서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속으로 난처하고 실망했다. 연지는 평소에 인터넷으로 소재를 찾은 적이 거의 없어서 자기가 잘못 처리해 동영상의 저작권에 걸릴까 봐 걱정스러웠다. 연지는 낙심하여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하나님을 떠올렸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그런데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낙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그가 하나님께 기도 한 후 동료가 약간의 소재를 추천해 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적합한 것을 찾아내 순조롭게 이번 임무를 완성했다. 연지는 후에 다른 몇몇 동료들이 계속 본인의 작품을 참고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뻐하며, 자기가 이번에 한 작품이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다들 그의 작품을 참고하겠는가! 생각할수록 만족스러워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렸다. 연지는 다음 임무에 착수했다. 홈페이지에 두 곡의 노래 동영상을 만드는데 협조하는 것이다. 동영상은 다 만들었는데 썸네일만 나오지 않았다. 연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썸네일이 만들기는 어렵지만 나에게는 기술적 내공이 있고, 지금 많은 그림도 모았으니까, 참고 자료를 좀 더 보면 천천히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흘렀지만 연지는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녹슨 것처럼 참고 그림을 아무리 많이 봐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렇게 노력했는데 왜 아직도 만들지 못했지? 예전에 그림을 만들 때는 아이디어가 넘치지 않았나?’ 곁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임무를 완성해가는데 본인만 전혀 진전이 없자 연지는 점점 조급해져서 속으로 ‘다른 사람이 날 어떻게 보겠어. 난 미술 디자인도 전공했는데, 썸네일 하나도 만들지 못하다니!’라고 생각했다. 연지는 짜증이 났다. 마침내, 연지는 가까스로 썸네일을 하나 만들었지만 동료들에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연지는 서화에게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연지가 샤오샤에게 “나 좀 도와줘. 정말 방법이 없어.”라고 말하자 샤오샤가 시원스럽게 수락했다. 이틀도 안 돼 샤오샤는 완성품을 내놓았고, 동료들의 만장일치까지 얻어 통과되었다. 결국에는 샤오샤가 만든 그림을 쓰기로 해 연지는 더욱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낙심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열흘이 걸려도 못 했는데 다른 사람은 이틀 만에 다 만들어 내다니, 내가 왜 이렇게 형편없이 변했을까?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 연지는 계속해서 두 번째 썸네일을 만들어야 했지만 여전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연지가 궁지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지금 그림을 만들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환경이 임했을 때 제가 어떻게 체험해야 하고,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할까요?” 기도 후, 교회의 복음 사이트를 열어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설교자로 자신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실로 인해 득의양양하며 우쭐거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살게 되었다. 마침 주인공이 보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건드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자신을 하늘보다 더 높게 보지 말라. 마땅히 자신을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이성 있는 어떤 사람보다 더 낮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진입해야 할 길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게 보아야지 그렇게 대단한 척할 필요가 있겠느냐? 자신을 그렇게 높게 볼 필요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너희는 영원히 갓난아기이고, 너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요소가 얼마 없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손에서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자만자족의 심리를 갖게 된다면 하나님께 혐오 받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구구절절 연지의 실제 상황을 정확하게 알아맞혔다. 그는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이 겪은 상황과 자신의 처지가 비슷했다. 주인공이 처음에 교회를 돌볼 때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여 교회의 사역이 좋은 결실을 맺었지만, 나중에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며 득의양양하고 교만해서 사역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며 갈 길을 잃었다. 연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이 지난번 새로운 임무를 받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고,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인도하셔서 임무를 완성하도록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객이 찬성하고 동료가 참고하는 것을 보고는 본인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져서 홀로 기쁨을 만끽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훔쳤다. 오히려 자신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 이 임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임무를 받았을 때는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지 않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해 만들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로 구하지 않고 결국에는 작품을 만들지 못했다. 이를 반성한 연지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나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성심성의를 다해야지 게을리해서는 안 되며, 시시로 나와 교통하고 나를 더 가까이해야 한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급히 이루려고 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내 앞에서 나를 의지하는지, 나에게 의지할 믿음이 있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너는 늘 나를 가까이하고 모든 일을 나의 손에 맡겨야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네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한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더듬어 낸다면 참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고, 또한 참으로 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러면 네 속이 무척 환하고 편안해질 것인데, 의지할 데가 있고, 능력과 믿음도 있고, 앞길도 생기게 되며, 어떤 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연지는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지혜와 총명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환경이 임하든 어떤 어려운 일에 부닥치든 항상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자신의 어려움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비록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우리가 꾸준히 하나님을 앙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근심을 없애고, 어려움을 해결할 길을 열어주신다. 연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인도하셨다. 그날 오후, 그가 일을 시작했을 때 우선 하나님 앞에 나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반성을 통해 제가 이렇게 며칠 동안 그림을 만들지 못한 근원을 알았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회개하고, 당신에게 의지하여 썸네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그는 소재를 찾아 그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또 어려움에 부닥쳤다. 그의 기술적 한계로, 몇 번을 시도해도 참고 그림을 좋은 효과에 도달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소재 라이브러리에 이런 종류의 적합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 연지는 이 작업을 완성하기가 참 힘들다고 느꼈지만 이번에는 낙심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고민 끝에, 기왕 이런 소재를 못 찾는다면 다른 소재를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하면 된다. 천천히 그가 하나님께 의지해 구상했을 때 아이디어가 나왔다. 순간 그는 아주 기뻤다. 이튿날 연지는 샘플 하나를 만들어냈고 회사의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어떤 동료는 그가 고른 글자체가 너무 크고 화면의 원소에 작은 것들을 너무 많이 놓았다고 지적했다. 연지가 동료의 의견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그런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발견 되었고, 다시 수정하여 셋째 날 작품은 통과되었다. 이 과정을 보고 연지는 하나님이 정말 그의 곁에 계심을 깊이 깨달았다.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가 앞으로 나가도록 인도하신다. 연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지 않으면 사람은 다 바보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도하면 사람은 매우 총명해지고 지혜가 생긴다.』 이런 일을 체험하고 연지는 진심으로 깨달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어떤 분야의 은사와 특기, 자질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깨우침이 없으면 우리는 여전히 미련하고 실행할 방향과 길도 없다. 하나님은 지혜롭고 전능하신 분이다. 하나님에게는 무궁무진한 총명과 지혜가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의지하기만 하면 더 이상 어려움에 부닥쳐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 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직장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

시간이 빠르게 흘러 내가 싱가포르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력밖에 없는 내가 해외로 일하러 온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고 더 열심히 일해서 여기서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기쁨에 빠져있을 때 매니저가 갑자기 나에게 다음날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다. 처음에 난 카운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동료를 통해 매달의 금전출납부를 계산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서 어리둥절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날 더러 계산을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고, 영어는 한마디도 이해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계산하는 업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생각할수록 스트레스를 받았고, 심지어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또 마음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나는 학력이 낮고, 언어도 안 통해, 나이는 또 많고, 해외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면 훨씬 힘들 거야!' 순간, 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자신이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물러날 수 없다고 느꼈다. 고심 끝에 매니저를 찾아가 나는 학력이 낮고, 영어를 못해서 그 일을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시켜달라고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매니저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말을 끊고 말했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다 사장님이 안배하신 거예요. 기왕 당신이 하기로 안배된 것이니 다른 건 아무 것도 말씀하지 마세요." 매니저는 말을 마치고 나갔다. 매니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끝났다. 이제 정말 끝장이구나. 보아하니 짤리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이때, 나의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되었다. 나는 일할 기운도 없어서 퇴근 때까지 겨우 버텼다. 저녁 예배 때 나의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고, 한 자매님이 찬송가 한곡을 틀어주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주재를 믿는다면 매일 발생하는 일들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거나 일부러 너를 겨냥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안배하고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배치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너의 몰골을 드러내거나 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너를 드러내는 것은 최종 목적이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려 하고 너를 구원하려 하는 것이 목적이다. 너를 어떻게 온전케 하는가? 너를 어떻게 구원하는가? 우선 너로 하여금 자신의 패괴 성정을 알게 하고 자신의 본성 실질과 자신의 부족함과 결점을 알게 한다. 네가 이것을 알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인데, 너는 기회를 잡는 것을 배우고 알아야지 소처럼 떠받지 말고 맞서지도 말아야 한다.』 이 찬송을 듣고 내 마음은 훨씬 밝아졌다. 나는 모든 일이 생길 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하나님이 안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러한 환경을 통해 내가 자신의 타락한 성품을 알고 이로써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게 하여 나를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매니저가 나더러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학력이 낮아서 당연히 그 일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어려움에 살면서 자신의 본성과 실질이 너무 나약한 것을 보았다. 일이 생기면 자신을 규정하고 어려움에 맞서서 나아가지 않고 항상 도망치고 회피하려 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도 입으로만 인정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 내가 믿음이 작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 환경을 빌어 나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이때, 나의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해 이 일을 받아들일 자신도 생겼다. 월말 때, 매니저는 나에게 다음 달부터 프런트에 가서 카운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니저의 말을 들은 나는 긴장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는 학력도 낮은데, 계산을 컴퓨터로 하더라도 배워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실제 체험을 할 때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너무 작은 것을 보고 곧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드리며 나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다! 기도 후,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누가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느냐? 하나님이 아닌 아담이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 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사람은 협력할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에게 진심이 있으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너를 위해 모든 나갈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어려움도 문제 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네가 전력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하지 못할 일을 너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다.네가 입만 살아 생각 없이 말은 했지만 할 마음이 없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끝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은 전혀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각종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의 근원이며, 총명과 지혜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나는 비록 학력이 낮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이끄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께 의지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 순간 나는 자신만만해서 이 일을 해낼 자신이 생겼다. 마침내 내가 카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출근 후 나는 자발적으로 프런트에 갔고 매니저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제가 동료를 붙여서 가르쳐 드리라고 할게요." 매니저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라는 것을 안다. 잠시 후, 한 동료가 계산서를 들고 왔는데, 동료는 참을성 있게 열심히 나에게 어떻게 계산을 하고, 어떻게 계산서를 분류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한 뭉치 한 뭉치의 영어 계산서를 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천천히 제가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계산서를 분류하지 못하는 것이다. 계산서는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순간 전에 내가 전혀 계산할 줄 몰랐을 때,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드린 후 계산을 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면 계산서를 분류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렸다. 그 후, 나는 모든 계산서를 꺼내서 확인하다가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어를 볼 줄 몰라도 계산서를 맞출 수 있어. 업체마다 계산서는 거의 다 달라. 예를 들면 원고지의 크기, 원고지의 색상, 원고지 위의 글자체의 방위 등등.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업체마다 표제도 다 달라. 그러니까 표제 위의 자음 몇 개만 맞추면 돼. 이러한 생각에 눈앞이 환해졌다. 나는 얼른 오래된 계산서와 새로운 계산서를 모두 꺼내놓고 대조해 봤는데, 과연 틀리지 않았다. 나는 이 방법으로 금세 계산서를 분류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런 것이 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에서 왔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라는 것을 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나는 아주 순조롭게 당일 업무를 다 마쳤다. 그 후, 매니저는 동료 직원들 앞에서 내가 카운트 업무를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내가 전혀 학력이 낮은 사람 같지 않다고도 말했다.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실제 겪었던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했다. 『분량이 크든 작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사람이 떠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범사에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동료와의 전쟁, 이렇게 끝났다

함께 일하는 언니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 언니를 보며 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때, 저도 모르게 언니와 있었던 ‘전쟁’이 떠올랐고 한 장면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운 동료가 불만이다 저는 아침식사를 하는 식당에서 일합니다. 처음 일을 했을 때, 언니는 주방에서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는 일을 담당했고, 저는 홀 서빙과 포장, 분류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손님이 주문하면 얼른 언니에게 말했고 언니는 바로 음식을 담아 제게 전달해주었습니다. 매일 아침 각자 맡은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주방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으며, 가끔 바쁠 때는 서로 돕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주문하기만 하면 언니는 본인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언니의 그런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제 일이 많을 때 언니가 도와준 적도 있었고, 더군다나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시시콜콜 따져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인내와 양보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니는 계속 손님이 올 때마다 음식을 담아 주지도 않고 재빨리 다른 일을 한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렇게 언니는 언제부턴가 본인의 일을 전부 제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잔꾀를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언니를 원망했습니다. 속으로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번 언니 일을 대신할 순 없어! 게다가 일을 많이 한다고 사장님이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그래도 저는 참았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계략이 떠오르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손님이 여러 명 들어왔습니다. 세트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고 단품을 주문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없이 바쁜데 한가하게 여기 닦고 저기 닦고 하는 언니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솟았습니다. 너무 바빴던 터라, 언니한테 큰소리치고 싶은 것도 참으며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직접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날따라 언니가 정리한 소스가 도통 보이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웃으며 언니에게 “언니, 소스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퉁명스럽게 소스가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있잖아, 직접 가져 가!” 언니의 이런 태도에 화가 불끈 치솟았지만, 저는 겨우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언니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 언니, 정말 너무하네. 나는 이렇게 바쁜데, 언니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모자라 말을 그렇게 야멸차게 쏘아붙여? 이 일은 원래 언니 담당이잖아. 내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나한테 함부로 막 대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날 얕봐도 되는 건 아니야. 지금 언니랑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참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영업이 끝나자 피곤함이 몰려왔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온 후,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직원이었다면 진작에 언니랑 싸움이 났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사람들에게 베풀고, 인내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언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조목조목 언니한테 따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사람들한테 당하라는 말인가? 나는 힘들어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하겠어. 그동안 계속 참으면서 언니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는데, 내가 참을수록 언니의 행동은 더욱 심해졌잖아? 내일 출근하면 언니가 게으름 피웠던 걸 꼭 사장님에게 말해야겠어. 그럼 사장님도 언니를 안 좋게 볼 거고, 앞으로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도록 주의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앞으로 나 혼자만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하에 계략을 포기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니 자책감이 들었고, 불현듯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행이 제멋대로이고 규제를 받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이방인보다도 더 사악한데…...』 순간, 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쁜 마음으로 뒤에서 고자질하는 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뒤에서 남을 괴롭히는 건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이 아니니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부글부글 화가 끓었습니다. 언니를 다치게 하고 싶진 않지만, 사장님에게 언니 행동을 말하지 않으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겠습니다. 언니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디 저를 이끌어 주세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사람의 패괴 본성은 같으나 단지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즉 어떤 사람은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말해서 드러나며, 어떤 사람은 겨루고 빼앗고, 어떤 사람은 겨루지도 빼앗지도 않지만 뒤에서 나쁜 짓을 하고 말을 퍼뜨리며, 어떤 사람은 속으로 불평하고 불만을 털어놓고 물건을 내팽개치고 부순다. 방식이 다르지만 본성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같으며 대부분 다 이런 것이다. 』 『너희의 명성은 망가졌고, 너희의 행동거지는 천하며, 너희의 말투는 상스럽고, 너희의 생활은 비열하며, 심지어 너희에게 갖추어진 인성마저 저속하다. 사람 됨됨이는 너무나 도량이 좁아 언제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의 명예나 지위를 위해 다투는데,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고 불못에 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 이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과 제 마음과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감찰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 중 『뒤에서 나쁜 짓을 한다』 라는 구절을 본 후, 저의 추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반성했습니다. 음식을 담아주지 않는 언니가 일을 적게 했고, 언니 때문에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고생했으며,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하고 양보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언니를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정면충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언니 모르게 사장님에게 사실을 알린 후, 사장님이 언니에게 주의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언니 일까지 떠맡지 않아도 되고 화도 풀릴 것 같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니가 계속 나를 만만하게 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참을 수도 없고 참을 필요도 없다’ 등 이런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니한테 보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인격이 미숙하고 속이 좁으며, 자질구레한 걸 시시콜콜 따졌고 너무 음흉하고 악랄했습니다. 이 모든 걸 깨달은 후, 육체를 배신하길 원했기에 얼른 하나님 앞에서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비열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한이 있어도 비열한 소인배 같은 짓은 하지 않겠어.’라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손해 본 것을 항상 마음에 두다 사장님한테 언니의 행동을 말하진 않았지만, 손님이 왔을 때 변함없이 딴짓하는 언니를 볼때마다 저는 여전히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사장님이 가게에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한테 뭘 하라고 하니까 선뜻 그걸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속으로 ‘아, 이 언니는 원래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사장님이 있을 때 일부러 언니한테 일을 시키거나, 아니면 일부로 다른 일을 해 사장님이 직접 언니에게 일을 시키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했더니 언니한테 화낼 필요도 없고, 언니보다 일을 많이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게에는 손님이 많았고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할 일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겪어 온 게 있었기에 이번에도 자신 있게 “언니! 죽 하나 포장해 주세요!”라고 소리쳤는데, 언니의 반응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대뜸 제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네가 직접 해!” 언니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손님을 응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반성했습니다. “하나님, 지금껏 매일 생겼던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전부 하나님의 안배였습니다. 이건 당연한 언니의 일이었고, 제가 그렇게 심한 걸 요구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갑자기 저한테 이러는 걸까요? 저는 언니 때문에 화내지 않아도 됐던 며칠 동안 아주 좋았습니다.언니에 대한 편견도 내려놓았고 언니의 행동을 문제 삼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이 변했다고도 느꼈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이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하나님의 일깨우심으로 정상 인성을 살아내다 그동안 언니를 대했던 제 태도를 떠올려보니, 진심으로 편견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저 방법을 바꿨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고 덕분에 언니와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도 제 일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거 역시 음흉하고 비열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정상 인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더는 언니를 노려보지 않았고 그저 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정상 사람의 성품에는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부패하지 않다. 또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관통되게 하며, 사람 사이에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처럼 순진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한 적이 없고, 오로지 하나님의 땅에서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한 가지 일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기를 원한다. 지금 너에게 무슨 큰일이 닥치지 않았고 네가 큰 증거를 하지도 않았지만, 일상생활의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도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형제자매들과 가족이 감탄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며, 언젠가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해 다 탄복하고, 하나님이 행한 것이 그야말로 너무나 좋다는 것을 보게 되면, 너에게 있어서는 바로 하나의 간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속의 교활한 계획을 알고 계셨고, 언니의 불만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으며, 제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반성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언니의 행동을 뒤에서 고자질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행동에 옮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매번 언니가 일을 적게 하고 제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그걸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장님을 이용해 언니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이런 행동이 잔꾀를 부린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겉으로 볼 때는 문제 삼지도 않고 사장님한테 알리지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교활한 계획을 꾸민 것이었습니다. 이는 정말 비열한 행동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칭찬할 정도로 말과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하며,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입니다. 저도 앞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갈 것이며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시시콜콜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일을 더 많이 하고, 피곤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것이며, 오직 진리의 실제만을 살아내어 정상 인성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언니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내려놓고 싶습니다.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고, 다시는 자신의 이익 때문에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쓰고 싶지도 않습니다. 언니가 일을 제대로 하든 하지않든 상관없이 저는 양심에 따라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입니다.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도 제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길 원합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아주 바빴습니다. 언니는 바쁠 때도 여전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 화가 솟구칠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육체를 배신할 믿음이 생겼고, 언니의 행동으로 기분이 좌우지되지도 않았습니다. 언니의 행동을 봐도 더는 화가 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저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얼른 하나님께 기도해서 제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덕분에 조금씩 언니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다시는 이런 일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면 하나님 축복이 보인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또 손님 여러 명이 몰려왔지만 저는 언니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가지고 나오다 문뜩 고개를 들어보니, 뜻밖에 언니 손에도 똑같은 음식이 들려있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랄 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니가 제게 친절한 말로 “앞으로 내 일은 내가 할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장님이 있든 없든 우리는 예전처럼 본인이 맡은 일을 하게 되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왔습니다. 평소에도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언니는 일을 꼼꼼히 잘한다며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이나마 정상 인성으로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언니가 저를 칭찬하면서 언니와의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신고를 당한 후 …...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거짓말 속에 숨겨져 있었던 비밀

거짓말로 스스로를 위장하다 "왕제씨, 저는 아직 이 설계 초안을 분석해보지는 않았는데요, 혹시 설계 초안에 무슨 문제점은 없었습니까?"교육훈련실 강사의 질문이 한참 생각의 나래를 펴고있던 나를 깨웠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강사 왕주임이 회의실의 단상 위에서 우리의 설계 초안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 직원들의 인사이동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녀의 돌발 질문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장님, 부서장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자, 겉으로는 태연한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왕주임이 지난번 교육 시간에 질문했을 때, 내가 답변을 못했던 건 건축설계도면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회사의 유능한 디자이너인데, 만약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겠어? 하물며 이번에는 회사 사장님도 자리에 계시는데,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무턱대고 바로 말했습니다. "네. 약간요." 부서장님은 만족스럽게 나를 쳐다보았고, 강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계속 그녀의 분석을 이어갔고, 나는 한 숨을 돌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동료 장판이 미심쩍은 말투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네, 우리는 아무 문제도 못 찾겠던데, 너는 그게 눈에 보였어?"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오히려 살짝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장 뒤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다 저녁에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일어났던 그 일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마 5:37)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한 것이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시고,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며, 거짓말하지 말 것, 사람을 속이지 말 것, 일 처리와 사람됨에 있어 거짓이 섞여서는 안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고, 디자인 원고의 문제점을 분명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왕주임과 사장님, 동료들을 기만하였고, 그 후 동료가 질문하였을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활하게 변명을 하며, 자신을 계속 덮어 감추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진솔한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간교하게 사람을 기만하였습니다.이것은 전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반감과 미움을 사게 될 것입니다.순간,나는 후회스러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기만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길 원합니다..." 기도 후, 나는 내가 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사람에게 간사함과 속셈이 있고 늘 유동적인 생각과 사심이 있으며 늘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 그리고 이익을 고려한다. 진솔한 말을 함에 있어 어떤 때는 두 글자도 그렇게 힘들고 한참 입에 맴돌다가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통제받고 패괴 가운데서 사는데 확실히 하나님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능히 사람을 속이고 기만할 수 있었던 것은 간사한 본성 때문이고, 자신의 헛된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사장님과 동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사장님과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타락한 성품의 통제를 받은 나는 왕주임의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간단한 "모르겠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으니, 내가 진솔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전혀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어선 안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예를 들어, 네가 누구에게 어떤 일로 그 사람을 기만하였거나 네가 한 말에 불순물이 있었거나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면, 그에게 찾아가 해부하며 말하여라. “제가 그때 당신에게 한 말에는 제 자신의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실 수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나의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솔한 사람이 되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만약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자신이 그때 거짓말을 하였던 본심을 해부해서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는 남에게 거짓말하고 기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데 방해를 받다 이튿날 오전, 우리의 교육과 디자인 원고 분석은 계속되었습니다. 강사가 강단 위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에게 사죄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생각했습니다. "사과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지? 사장님과 동료들,그리고 왕주임이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나중에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치지?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굳게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리라 기도하였는데,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어!" 이때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며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 강의가 끝나려고 할 때, 왕주임이 우리에게 다른 문제는 또 없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사과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또다시 연속으로 세 번을 물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와 우롱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어 강사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을 뗄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핸드폰의 앱으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말씀에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행하여야 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계획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옳지 않은 속마음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것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원칙이였습니다. 자신을 대조해보니,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진실된 말을 털어놓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할 용기도 없고, 유난히 자신의 체면만 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비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진솔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기 원했다면, 동료들이 바라보는 시선따윈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저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면을 내려놓고 진솔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군요 일주일 간의 교육 학습도 이제 마지막 하루가 남았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아서 강사가 지도해주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동료들 면전에서 강사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니 마음이 긴장되어 손바닥에 계속 땀이 났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않고,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적합한 시간을 예비해주시고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때 뜻밖에 강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가 질문한 문제에 대답을 끝내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왕주임님, 죄송합니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회의실 안에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이 무엇일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습니다. "지난번 주임님이 저에게 질문하셨을 때, 사실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어서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제 체면 때문에 주임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임님을 속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 드립니다." 나는 단숨에 말을 모두 끝내고 나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졌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제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양심에 거리낌없는 진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뜻밖에도 사장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동료들 앞에서 나를 격려해 주시며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데 실수를 하거나 말을 실수했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얻기란 참 힘들죠.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죠, 당신은 정말 진솔한 직원이군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앞날이 밝을 겁니다!" 강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동료 장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네가 이렇게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 대단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쓸데없는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진솔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이제까지 없었던 든든함과 평안과 기쁨이 넘쳤고, 진실로 진솔한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런 누림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진솔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습니다.

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이어리] 하나님께서 나의 양심을 지켜주셨다

2018년 4월 24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심장이 무척이나 두근거렸다. 왜냐하면 노인복지관에 채용 전 업무 테스트를 받으러 가기 때문이다. 만약 채용된다면 난 꽤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보다 생활 리듬이 빠르다. 밥을 먹는 속도나 길을 걷는 속도도 빠르고, 일할 때도 두뇌 회전을 빨리해야 하고 동작도 민첩해야 한다. 예전에 미국의 빠른 생활 리듬에 적응하지 못해 업무 테스트를 받고도 채용되지 못한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었다. 오후에 복지관에 도착한 후에도 떨리는 마음이 도통 진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얼른 묵묵히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긴장되는 업무 테스트가 몇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침내 사장님이 나를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불안했던 마음이 드디어 진정되었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2018년 4월 26일 목요일 흐림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 이른 아침에 식당에서 어르신들에게 아침을 배식할 때, 카트를 밀다가 실수로 비닐봉지가 찢어져 버렸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츄러스 몇 개가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난 크게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되었다. 속으로 ‘이렇게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 하다니… 이걸 사장님이 알면 날 해고하지 않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시 사오지도 못하잖아. 에잇. 어쩔 수 없어. 난 크리스천이니까 솔직하게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게 맞아. 그 후엔 사장님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 전부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다. 복지관으로 돌아온 후, 나는 전전긍긍하며 사장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츄러스 비용은 임금에서 제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괜찮아요. 이따 더러워진 부분을 잘라내고 아침밥으로 드세요.”라고 했다. 사장님의 대답에 나는 감격해서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나는 사장님이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밥을 나눠줄 때, 사장님이 더러워진 츄러스를 모두 꺼내 대충 먼지를 털고는, 그걸 어르신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본 나는 속으로 너무 겁이 났다. 어르신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사장님과 함께 사람들을 속이는 거잖아? 그러다 어르신들이 그거 먹고 탈이라도 나면 어쩌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정말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더러워진 츄러스는 제가 변상할게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에 사고를 친 사람은 나인데, 사장님 말을 듣지 않다가 해고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잇, 아니야, 그냥 입 다물고 있자. 계속 일하려면 사장님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둬야지 뭐!’라고 생각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플라스틱 일회용 도시락통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자, 사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일회용 도시락통은 싱크대로 가져가서 씻으세요. 그리고 내일도 계속 이걸로 쓰세요.” 깜짝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 사장님을 쳐다보았다. 이건 너무 더럽다고, 아무런 소독도 하지 않고 재사용했다가 어르신들이 전염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사장님은 퉁명스럽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거 씻는 거 절대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안 돼요.” 사장님의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고, 나는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말을 다시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나 같은 임시직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이렇게 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장님 앞에서는 마지못해 싱크대에서 플라스틱 식기들을 씻기 시작했다. 퇴근 후, 내 마음은 아주 무거웠다.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내가 한 교활한 행동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정말 해고당하면 어떻게 하지?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소독도 하지 않은 일회용 도시락통을 재사용하는 것은 노골적으로 사람을 기만하는 것인데 이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게 궤사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비록 어르신들은 우리가 뒤에서 이런 수작을 부렸다는 걸 모르겠지만, 내 말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모두 감찰하고 계실 것이고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인데, 이것이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란 말인가? 하나님 심판의 말씀을 통해 내가 했던 모든 행동을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었다. 다시는 누군가를 속여선 안 되며, 이는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고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행동이란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솔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일자리를 잃는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더는 할 수 없다고 사장님에게 꼭 말할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일에서든지 절대 누군가를 속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제게 의지를 주십시오. 제발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 출근 시간을 기다리며 이번에는 꼭 사장님께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일은 못하겠다고 말하리라 다짐했다. 2018년 5월 3일 목요일 맑다가 흐림 오늘 나는 자신만만하게 출근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굳게 마음먹었고 사장님께 내 생각을 말할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관에 도착하자, 취사 담당 동료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제 사장님이 자네를 해고할 생각이라고 했어. 나 혼자 이 일을 하라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풀이 죽었다. 진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실행하려고 했던 의지도 전부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날 해고하려는 마당에, 시킨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싱크대에 있는 그릇들을 보면서 옆에서 마작하는 사장님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이걸 씻으려니 진솔한 사람이 아니고, 그럼 하나님 앞에서 증거를 잃는 꼴이 되고. 이걸 안 씻으려니 사장님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 자리에서 해고당할 거 같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마음도 너무 불안했다. 그 순간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일회용 식기들을 몰래 버리는 것이었다. 그럼 하나님께도, 사장님한테도, 미움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장님이 내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은 틈을 타, 오래된 식기 들을 얼른 쓰레기통에 버린 후 그 위에 다른 쓰레기를 놓고 안 보이게 덮었다. 이렇게 하면 사장님한테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매우 착잡했다. 만에 하나 사장님한테 들키면 한바탕 욕을 먹고 바로 해고될 텐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는데,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사람을 기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 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는 진솔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봐 몹시 두렵습니다. 저는 진리를 실행할 신심도 없고 용기도 너무나 부족합니다. 부디 저를 다시 한 번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원한다면 너는 육체를 버릴 용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으며, 소극적이거나 연약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으며, 앞에서 한 것이든 뒤에서 한 것이든 모두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 네가 진솔한 사람이 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실행하면 바로 온전케 된 사람이다. 앞에서 이런 수작을 부리고 뒤에서 저런 수작을 부리는 궤사한 사람들은 온전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고 …』 하나님 말씀을 본 후, 진솔한 사람은 진리와 육체의 이익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육체의 이익을 선택하지 않고 반드시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솔한 사람이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겉으로 하는 행동은 모두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일들을 반성해보니,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계속 어르신들을 속이고 더러운 츄러스를 나눠줬으며, 이미 사용한 일회용 용기를 씻어서 재사용했다. 나는 이것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감히 사장님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의미를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진리를 행하지 못했고 진솔한 사람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다. 진리를 행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태도가 하나님을 실망시켰고, 마음 아프게 했다. 사실 내가 아무리 걱정한다고 해도 해고를 당할지, 계속 일할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내가 할 것은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밖에 없다. 하나님 말씀은 내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다. 일자리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을 꺼내 사장님께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며칠 동안 제게 더러운 츄러스를 어르신들에게 나눠주고, 이미 사용한 일회용 식기를 씻어 재사용하라고 시켰습니다. 저는 이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그런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이 제게 그 일을 계속 시킨다면, 저는 더 이상 이 일을 못 하겠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그런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한다면 여기에서 계속 열심히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장님한테 전화가 와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런 결과가 생길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때 나는 진리를 행한 후 마음이 편안해지고 홀가분해지는 것을 직접 느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8년 5월 4일 토요일 맑음 사장님께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기 때문에 다시는 누굴 속이는 일을 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아침 식사 때마다 어르신들은 우유와 두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유가 우유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안 사장님은 두유에 물을 섞었다. 그리곤 내게 어르신들이 두유를 많이 마시도록 유도하거나 아니면 아예 물어보지 말고 바로 두유를 떠주라고 했다. 사장님이 그렇게 시켰지만,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고, 이것 때문에 화가 난 사장님이 날 해고할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 배식이 끝난 후, 사장님은 나를 구석진 곳으로 부르더니 다시 주의를 주었다. “여기 어르신들은 별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아예 두유를 떠주거나 아니면 두유를 마시도록 더 강하게 유도하란 말이에요. 알겠어요?” 이 말을 들은 후, 내 머릿속엔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내게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같이하자고 유혹하는 걸 분명히 알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퇴근하면서도 계속 이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성경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고 자신과 동침하자며 권세를 이용해 요셉을 협박했다. 하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기에 감옥에 갇힐지언정 그 여자의 악행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장님이 돈을 아끼려고 어르신들이 두유를 마시게끔 하라고 내게 시켰을 때,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할까 걱정되어 진솔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아니다! 난 다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야 다시 찾으면 되지만 계속 이렇게 사람들을 속이면 하나님께 미움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진리를 행하는 의지와 힘이 생겼다. 집에 돌아온 후, 사장님께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직원인 저는 반드시 사장님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만일 사장님이 시킨 일과 하나님의 가르침이 충돌하면 저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살아가는 원칙입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정상 사람의 언행이 있다는 것은 말할 때 조리가 있고,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라고 하며, 말이 사실에 부합되고 매우 적절하며, 기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는 “진솔한 사람의 말과 행동은 가식 없이 솔직하다.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의 교통으로 진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의 실행 의지가 더욱 굳건해졌다. 설령 이번에 해고를 당해 앞으로 다른 곳에 출근하게 되더라도 진리를 행하고 진솔한 사람이 되는 훈련을 계속하여 내 몫의 일은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내게 남을 속이라고 하거나,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5월 15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정말 뜻밖에도 그날 사장님은 나를 해고하지 않았다. 나는 해고하는 것도 계속 일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걸 보았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내 의지도 더욱 커졌다. 며칠 전 아침 배식할 때였다. 어르신들은 다들 우유를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그래도 두유를 더 많이 팔고 싶어했다. 내가 우유를 뜨는 걸 보더니 얼른 말했다. “우유 다 떨어졌다고 하세요.” 하지만 난 우유 한 통이 더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사장님이 유혹한다는 걸 분명히 알았다. 하지만 난 사장님이 좋아하든 말든, 나를 해고하든 말든, 진리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고 진솔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 했다. 그 후, 우유를 마시겠다는 어르신들에겐 계속 우유를 드렸다. 나중에 우유가 진짜 동이 난 후에야 우유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곁눈으로 화가 난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지만 난 이미 앞으로는 절대로 누구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어제, 사장님은 청소할 때, 교활한 수단으로 어르신들을 눈속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또 내게 양심을 속이는 일을 시킨다는 걸 분별해낼 수 있었고,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너희는 반드시 시시각각 깨어 기다려야 한다. 내 앞에 자주 있으면서 사탄의 각종 음모와 궤계를 간파해야 하고, 영을 알고 사람을 알아야 하며, 각종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청소할 때도 더러운 곳이 있으면, 사장님이 따로 시키지 않더라도 알아서 청소한다. 나중에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에게 “지금까지 여기에 청소하러 온 사람이 엄청 많은데, 단 한 사람도 여기 더러운 곳을 청소한 적이 없어요. 저분은 정말 근사 하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사장님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요.” 복지관 어르신들도 자주 내게 “복지관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해주다니, 정말 고마워요! 지금까지 아무도 여길 치워준 사람이 없었거든요.”라고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잘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사람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알려 주셨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진솔한 사람이 되는 것만이 하나님 뜻에 맞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도 홀가분해지고 평안해질 수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장사의 성공 비결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2008년, 나는 둘째 형과 동업해 제과점을 열고, 빵, 카스텔라, 과자 등 다양한 제과를 만들었다. 우리는 제과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 밀가루, 식용유, 설탕 등 재료를 가장 좋은 것으로 사용했다. 계란 역시 100리 가까이 달려가 신선한 것으로 구매했다.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첨가제 등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지만 품질이 좋으면 분명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시간은 나날이 지나가고, 장사도 점점 잘 됐다.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연말에 결산을 할 때, 원가를 제하고 단돈 900원밖에 남지 않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가게의 위치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마을 중심가에 가게 하나를 또 내고 속으로 이번에는 장사가 분명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른 뒤, 손님은 정말 전보다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제과의 품질이 마을에서 좋게 소문이 나서 어떤 과자와 카스텔라는 또 슈퍼마켓에 도매로도 팔렸다. 나날이 상승하는 판매량을 보며 나는 마음이 흐뭇했다. 연말에 잔뜩 기대하며 연 수입을 계산했을 때, 우리가 번 돈이 겨우 일상 지출을 유지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형의 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도 있는데, 수입이 적어 남는 돈이 없다면 나중에 형의 가정이 무슨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는 마음이 답답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가게에 와서 빙 둘러보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여기서 만든 카스텔라는 다른 집보다 못한 것 같네요!” 나는 손님이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얼른 물어보았다. 손님이 대답했다. “여기서 파는 카스텔라는 색깔이 덜 노래요. 계란을 많이 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손님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떠나는 손님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 집 카스텔라가 노랗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넣은 계란은 이미 충분히 많은데 왜 색이 노랗지 않는가? 이 때 나는 마음이 괴로웠다. 지금처럼 카스텔라를 만들어 팔아도 많이 벌지 못하는데, 계란을 더 넣게 되면 손해를 봐야 했다. 그러나 계란을 더 넣지 않으면 색이 좋지 않아 사는 사람이 또 많지 않고, 많은 손님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중에 나는 카스텔라를 만드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카스텔라의 색깔을 보기 좋게 하려면 색소를 넣어야 해. 정직하게 계란을 넣는다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겠어? 게다가 색소를 넣으면 계란은 조금만 넣으면 돼. 겉으로만 봐서는 계란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무도 몰라. 장사를 할 때는 너무 솔직하면 안돼. 돈을 벌고 싶으면서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지금 사람들은 모두 겉모습을 좋아해. 영양이 없더라도 보기 좋고, 맛만 있으면 돼. 그러면 사려는 사람이 많지.”나는 그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카스텔라는 좋은 식재료를 썼지만 손님은 이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보았다. 친구는 나처럼 2년 동안 제과점을 운영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는데 정작 본인은 본전만 겨우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나도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색소를 넣는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불안했다. 식용 색소라고는 하지만 안에 섞여 있는 것이 사람의 건강에 해로운 것인데...... 갈등하던 중 내가 제과 일을 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사촌 형이 말했다. "색소를 넣으면 되지. 정직하게 장사하면 정말 돈을 벌 수 없어. 지금 사회가 그래. 네가 돈을 벌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해. 너도 우리 마을에 있는 다른 제과점을 봐. 몇 년 동안 장사하더니 차도 사고, 집도 샀잖아. 그게 다 그렇게 번 것 아니겠어? 네가 안 넣는다면, 내가 먼저 넣을게." 그 후, 사촌 형은 정말 계란 대신 색소를 쓰고, 최상급 샐러드유 대신 드럼통의 보통 식용유로 바꿨고, 밀가루도 가장 낮은 등급으로 바꿨다. 사촌 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니까 전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벌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는 역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는데 형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색소를 샀어. 네가 만들때 조금 넣어."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마음속은 괴로웠다. 이 색소라는 것은 먹으면 건강에 나쁘다. 하지만 형이 이미 사왔고 사촌 형을 비롯한 다른 사람도 모두 넣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그럼 조금만 한 번 넣어 볼까? 이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색소를 쏟아 부었다. 과연, 색소를 쓰고 난 후 카스텔라의 색깔이 보기 좋아졌다. 그런 금빛 찬란한 카스텔라를 보면서도 나는 기분이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고 손님이 먹고 탈이 날까 봐 걱정했다. 특히 손님과 마주할 때 마음이 찔려서 그들을 쳐다볼 수 없었다. 마음이 무엇에 짓눌린 듯 괴롭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손님한테도 아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돈의 유혹을 받아 나도 사촌 형처럼 질이 떨어지는 밀가루를 쓰고, 식용유도 낮은 등급으로 교체했다. 원가가 줄어들면서 버는 수입도 많아졌고, 서서히 나의 양심의 불안도 차츰 사라졌다. 내가 자아를 잃어버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하나님의 발자취와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으며, 모두 사탄과 악한 자에게 잠식되어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 하고, 이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려고 한다. 이 지경에 처해 사람의 마음과 영은 사탄에게 바치는 진상물과 사탄의 먹이가 되었고, 더욱이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 되었으며,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가 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사람됨의 도리를 더 이상 모르게 되었고, 사람의 생존 가치와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더 이상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곰곰이 헤아려보니 이 물욕 넘치는 사회에서,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이 가져야 할 양심, 도덕을 상실하고 기꺼이 이 악한 사회의 흐름에 따르고, 사탄에 의탁했다. 간사한 수단으로 속임수를 쓰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침으로써 돈을 많이 벌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나는 정말 속이 검은 장사꾼이었다! 처음에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장사를 하던 생각이 났다. 비록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속임수로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서 나는 사람으로서의 한계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돈은 좀 벌었지만 인격을 잃었고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런 나의 모습이 조금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나는 후회했다. 다시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었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너희는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게는 신실한 본질이 있으므로, 그가 하는 말씀은 본래부터 미더운 것이고, 그의 행사는 더욱더 사람이 흠잡거나 의심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진솔한 사람을 좋아한다.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솔이란 일하고 말할 때, 불순물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사람처럼 살고 싶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말과 행동이 정정당당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속임수를 쓰지 않고,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감찰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리를 도모하려고 속임수를 쓰는 비열한 수단도 서슴지 않고, 불의의 재산을 얻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해친다면, 그런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이다. 오늘 본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명백하게 알려주었다.나는 더 이상 사회의 흐름을 따라 실수를 반복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자 나는 마음이 한결 밝아졌다. 그날 나는 형에게 우리 앞으로 더 이상 색소를 넣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러나, 내가 정직하게 살려고 했을 때 어려움을 느꼈다. 모두가 속임수를 쓰는데 나만 안 쓴다면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고 우리 가게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지닌 채 나는 하나님께 기도 드렸다. "하나님,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직하게 장사를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게 없을 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시고 저에게 믿음을 더해 주세요.”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보았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25-26、31-33) 하나님의 말씀은 나에게 아주 큰 믿음을 주었고,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우리의 일, 생활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나의 장사가 좋고 나쁘고, 카스텔라를 사러 오는 손님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재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회상하니 부유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내게 부족함을 느끼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 욕심이 너무 커서 돈에 두 눈이 먼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살면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배불리 먹고, 육체적으로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떳떳하게 살면서 광명정대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살아야지 존엄성이 있고, 가치가 있어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장사했다. 더 이상 색소를 쓰지 않았고 품질이 낮은 식용유와 밀가루를 쓰지 않고, 품질이 좋은 것으로 모두 바꿨다. 손님이 내가 만든 카스텔라가 색깔은 안 예쁘지만, 아주 맛있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그분에게 카스텔라에 색소를 넣지 않고 계란만 넣었다고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손님은 듣고 나서 나의 방법을 칭찬했고, 주위에 내가 만든 제과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위안이 되었다! 그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식품 안전사고가 잇따라 보도되면서 사람들은 식품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모두 우리 집의 제과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한 도매상이 우리 가게의 한 과자를 맘에 들어 하면서 주동적으로 도매에 나섰다. 나중에 우리는 도매 장사를 시작했고, 장사도 아주 잘 됐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쁨을 진정으로 체험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우리가 속임수로 가게를 운영하지 않고, 정직하게 장사했을 때 뜻밖에도 매상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이 일을 통해 나는 이 사악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만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고, 평안하고, 성실하게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을 배우다

저는 올해 22살입니다. “젊어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은 저의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는 제멋대로 떠벌이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몰랐고, 컴퓨터 기술을 좀 안다고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얕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에게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저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도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필요가 없어. 내가 잘하니까 어머니도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졌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었는데, 몇 번 가르쳐 줘도 할 줄 모르니 조금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세요?” 그러고는 속으로 '나이가 들면 정말 둔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빨리 배워 … 어머니가 마우스를 클릭할 줄 모르니 답답한 저는 어머니 손에 쥔 마우스를 빼앗아 클릭했습니다. 어머니는 짜증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나이 드신 형제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저는 형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이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어 못 먹었고, 예배할 때 형제님이 말을 횡설수설하게 해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제님의 말을 가로채고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고 소질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궤사로 가득하고 사람을 경멸하는 눈길이 가득한 것은 연소한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도 젊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은 잘못된 것에도 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순결하고 정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해 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타락 성정을 인식하였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과 인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지난날 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도 할 만한 기능이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는 취할 만한 부분도 있고, 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이 많고,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 원칙이 많고, 언제나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활기가 없고, 너무 융통성이 없는데, 이런 것은 취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듬직하여 성정이 안정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언제나 시종일관한데,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결함이 아니다. … 젊은 형제자매든 연로한 형제자매든, 자신이 해야 할 기능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젊은 형제자매들은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얕보지 말고, 연로한 형제자매들도 독선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냐? 너희가 다 이런 심지(心志)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너희 이 세대의 사람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나이 든 형제자매가 비록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더는 이전처럼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자고자대 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하루, 어머니가 휴대폰 네트워크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뭘 하나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짜증을 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제서야 저는 저의 교만한 성정이 또 흘러나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머니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가 컴퓨터나 휴대폰를 사용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면서 마음도 점차 평온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형제자매나 어르신들과 우정의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마디에도 갈등 빚는 난처함에서 벗어나는 길

현대사회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갈수록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관계가 매우 좋은 두 사람이라도 상대방의 말 한마디나 한 가지 행동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바로 외면하고, 견해가 다르면 바로 화를 내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닥치면 우리는 항상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는데, 어떻게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 저와 소림 자매는 서로 협력하여 본분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상에서 비교적 익숙하고 경험도 많아 소림자매는 업무상에서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늘 저에게 물었고, 저 또한 기꺼이 스승노릇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오후, 소림자매는 기쁜 마음으로 자신이 방금 완성한 방안을 가져와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방안의 어떤 곳을 제가 이전에 제안한 것에 따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소림자매가 저를 안중에 두지 않는다고 여겨 조금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저는 소림자매의 방안을 볼수록 속이 끓어올랐고, 자매가 제안한 방안의 곳곳에 문제가 있고 그래도 제 자신이 제안한 것이 더 낫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자매가 제안한 방안을 직접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저의 행동을 본 소림자매가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제 생각엔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 같은데요! 왜 고치는 거예요?” 이 말을 듣자, 저는 속으로 더욱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믿었으니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제멋대로 화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가까스로 분를 삭혔습니다. 그러나 말할 때는 그래도 참지 못하고 “이 곳은 확실히 문제가 되잖아요.…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전에 제가 알려주지 않았나요?”라고 여전히 사람을 가르치는 어투로 말했습니다. 소림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자신의 견해가 높아 반응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자매를 거들떠보지 않고, 다시 고개를 숙여 몰입하여 자매의 방안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식사할 때, 소림자매의 안색이 좋지 않고 또 저와 말도 하지 않았을 때, 저는 갑자기 바늘에 찔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전에 자신이 소림자매의 방안을 직접 수정할 때, 자매의 동의도 거치지 않았음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자매가 저에게 수정한 원인을 물었을 때, 저는 아주 귀찮아하면서 직접 자매가 한 것이 틀렸다고 말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소림자매가 틀렸는지 틀리지 않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지도 않고, 자매의 방안을 직접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 내 그런 행위와 말투는 옳지 않았어.” 저와 소림자매 사이에 갑자기 경색된 관계를 마주해 저는 무기력했습니다. “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사람과 함께 지낼 때,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나 취한 행동이 내 뜻에 맞지 않으면 화를 내고, 훈계하니 무심결에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어, 이게 어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때, 제 자신의 이러한 성격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야 할지 정말로 알 수 없어 아주 막막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애로사항을 하나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찾고 구하는 가운데서 며칠 전에 한 자매와 함께 먹고 마셨던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문뜩 생각났습니다.『재능이 좀 있고 좋은 일을 좀 하면, 생명이 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 기세등등해지고 다 업신여기면서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으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이냐? 교만이다! 이것이 교만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게 바로 교만이 아니냐! …… 교만한 성정이 있으면 틀림없이 교만한 표현이 나타나게 되고, 틀림없이 교만한 말을 하게 되고 교만한 짓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냐? (맞습니다.) 그게 맞다. 그럼 이 방면의 성정이 없는데, 이 방면의 유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그 말이 성립이 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것 보세요, 제가 순간 실수로 입단속을 못해서 매우 교만한 말이 한마디 튀어나왔어요.”라고 한다면, 이 말은 성립되느냐? (성립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교만한 성정을 유로하지 않으려면 교만한 성정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 한 마디를 시정하거나, 하는 방법을 하나 바로잡는 일이 아니고, 규례를 하나 잘못 지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맞다, 사람의 성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정을 말하면 사람은 자신을 좀 더 깊이 알게 되지 않느냐? (맞습니다.)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을 아는 것은 겉면의 성격이나 성미, 교육이나 태어난 가정 배경 등을 아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본 후, 저는 문뜩 자신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견해가 다를 때 표현하는 말과 행위는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일만 봐도 소림자매가 제가 제안한 것에 따라 방안을 수정하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소림자매가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생각에 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자신의 제안은 다 좋고 옳으니 당연히 채택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유아독존 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자신에게 순복하게 하는 것인데, 교만한 성정의 유로였습니다! 전에 저는 자신의 패괴 본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저 성격이나 행위상에서 자신을 단속하고 자제했을 뿐,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적합한 환경이 임하면, 말하고 일을 함에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을 유로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괴로웠던 것입니다. 다음 날,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에게 생기를 주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소유소시(所有所是)도 조금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런 것을 준 후,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낼 수도 있었고, 생각해 낼 수도 있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나 해낸 일들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면 하나님은 열납하였고,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것이 옳은 일이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고 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각종 생물들의 이름에 대해 하나님은 그 어떤 정정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뭐라고 이름 지으면 하나님은 “그래”라고 말씀하면서 그 이름을 확정하였다. 하나님께 의견이 있었느냐?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너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로 일을 했다. 만약 사람이 한 것이 하나님이 보기에 긍정적인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확정되는 것이고 인정되는 것이고 열납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평가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인류나 그 어떤 악령도 사탄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 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 독선적인 것은 전혀 없다. 그런 점은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저는 이 말씀을 보고 아주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담은 단지 하나님 수중의 피조물일 뿐임으로, 그의 지혜 또한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준 지혜로 만물의 이름을 짓는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동의를 표시하였고 결코 수정이나 비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지고무상하지만, 결코 자신의 지위와 자신의 신분을 자처하면서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듣도록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드러내지 아니하는 성품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다만 사탄에게 깊이 패괴된 사람일 뿐으로, 소림자매와 동등한 위치이고 그 자매에게 제 말을 듣도록 요구할 어떠한 자격도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비록 업무 방면에서 소림자매보다 좀 익숙하지만, 많은 문제에서 저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해 결코 소림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늘 자신의 것이 옳다고 견지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요구했고,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혈기와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 자신도 이로 인하여 속이 상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저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소림자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또 자신의 교만한 성정이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고 너무나 이지가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성품이 가장 아름답고 선하므로 제가 추구하고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후에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의 교만한 성정을 변화시키겠다고 심지를 세웠습니다. 그 후, 저는 주동적으로 소림자매와 얘기를 나누면서 그 자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말이 없는 소림자매를 보고 저는 아주 난처했습니다. “내가 사과까지 했으면 너는 당연히 얼른 받아들여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보았던『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 독선적인 것은 전혀 없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비록 자매에게 사과를 했지만, 전에 했던 자신의 행위가 자매에게 가져다 준 상처는 말 한 마디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과를 했다고 상대방이 곧바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바라는 이런 사과는 요구성을 띄고 이지가 없으며, 유로한 것은 여전히 교만 자대한 성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것을 돌이켜 보면 의견이 서로 맞지 않을 때, 비록 때로는 자신의 표정이나 말투를 자제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기 싫어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분풀이를 하면 또 사람들과 불쾌해지고 마음은 여전히 괴롭기만 했습니다. 어쨌든, 견해가 다른 것 때문에 속앓이를 했는데 자신이 고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저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화내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았고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이 임했을 때, 자신이 또 교만을 유로했다는 것을 의식하면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을 부인하고 내려놓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많이 기울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차츰차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갈수록 정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는 비결

어렸을 때, 저는 자주 어른들이 함께 모일 때 “사는 동안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면 삶의 큰 행복이고, 억지를 부리는 이웃을 만나게 되면 팔자가 사납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어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말이 사실보다 과장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가 커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게 되면서부터는 이웃과 지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의 집 위층에는 여교사가 살고 있었는데, 가정 형편도 넉넉하고 옷차림도 세련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이 이웃과 접촉하고 난 후에는 그가 다른 집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일이 없으면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 오지랖 넓게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알고 나자 저는 갈수록 그가 미워 보였고 눈에 거슬렸습니다. 어느 날 저희 집의 침실 북쪽 천정에서 물이 새었습니다. 저는 대야 4개로 물을 받았는데 북쪽 벽이 푹 젖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집에 가 혹시 어디에서 물이 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그의 집에 갔지만 그는 얼굴을 붉히며 한사코 인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틀림없이 자신의 윗집에서 샜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저는 마음속에 화가 발칵 나서 높은 소리로 그와 이치를 따졌습니다. “댁의 위층에서 물이 샌다면 먼저 댁에 물이 새야 하지 않나요? 물이 댁을 건너 뛰어 저희 집에서 샐 수 있단 말인가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자신과 상관없다는 자세를 취하며 저를 무시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입이 덜덜 떨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었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전문가를 찾아 그의 집에 가서 원인을 알아보았는데, 그 집의 태양열 온수기 하수관이 터져서 물이 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얼굴이 굳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이미 십여 일 동안 물이 샜었는데 그는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저는 화가 치밀어 사람을 너무 깔본 것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곤 합니다! 때로는 그의 빨래에서 물이 떨어져 제가 말리고 있던 옷이 다 젖게 되면 저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곤 했습니다. 그런 이웃과 지내야 하는 것에 화밖에 나지 않아 너무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후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상 사람의 성정은 교활과 궤사가 없고, 사람들과 정상 관계가 있으며, 독단적이지 않고, 생활이 속되거나 문란하지 않다.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연결되며,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모두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 간다. 땅에는 조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 사탄의 방해가 없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근본으로 삼는다. 이런 사람은 모두 천사와 같고 단순하고 활발하며, 하나님께 원망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땅에서의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친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이 정상 인성을 살아내고, 사람과 지낼 때 간사함과 교만 방자함이 없고,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길 바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며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간증하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인솔 아래에서 살게 되고, 자유 해방을 얻어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게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 뜻을 깨닫게 된 후 진리를 실행할 심지가 생겨 위층 사람을 증오하던 데에서 용서하려고 노력했으며, 그와 정상적으로 지내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내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쌓인 원한을 풀자니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았는데, 실행하자니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릴 때,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패괴(역주: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된 중화 민족이 오늘날까지 존류하여 각종 바이러스가 부단히 커지고 있는데 마치 온역처럼 도처로 만연되고 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 몸의 바이러스가 얼마나 많은지를 충분히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엄밀하게 봉쇄된 이런 바이러스의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의 성격, 사람의 생활 습관, 사람의 품행, 사람의 모든 생활 속에서의 표현 및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황폐하기 그지없으며 나아가 사람의 지식, 사람의 문화까지 모두 하나님께 죽을 죄로 정죄받았다. 더군다나 사람이 가정 및 사회에서 배워 온 여러 가지 경험, 이런 것도 다 하나님의 안중에서 판결받았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먹은 바이러스가 너무나 많아 사람들이 모두 습관이 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깊이 패괴된 곳의 사람일수록 대인 관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암투를 벌이고 서로 모해하고 참살하는데, 마치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 도시와 같다. 이렇게 두렵고 불안한, 유령이 도처에서 횡행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전개하자면 그것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하나님께서 밝혀주셔서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토록 화목하지 못한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무신론 정부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탄 악마가 권력을 장악한 것이고, 그것이 사탄의 사설과 그릇된 논리, 사탄의 처세 철학과 생존 법칙을 추앙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사탄 패괴 성정의 묶임과 지배를 받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없으며, 곳곳에서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아귀다툼을 하기에 포용과 인내가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저와 위층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패괴되고 우롱당하고 있으며, 모두 사탄의 독소로 살면서 인성을 잃은 것입니다. 위층 사람은 자기 집이 부유하고 교사라는 높은 신분이 있다고 우쭐대며 높은 곳에 앉아 누구에게도 불복했는데, ‘유아독존’이라는 사탄 성정의 지배를 받아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고, 누굴 봐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뒤에서 논단하고 헐뜯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저는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법칙으로 살고 있어서 위층 사람의 그런 못된 성깔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정확히 대할 수 없었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인데, 이것도 교만하고 독선적인 사탄 성정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탄의 성정으로 인해 제가 위층 사람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저 그의 각종 결함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고, 특별히 물이 샌 일로 저의 마음에 ‘증오’의 씨앗이 심어져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원한이 가득하였고, 늘 기회를 노려 그에게 보복하고 그와 겨루고 논쟁하여 본때를 좀 보여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야 제가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라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괴롭힘을 당해 이렇게 교만 방자하고, 악독하게 변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양쪽이 모두 상처를 받게 되었고, 모두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의 교만 방자한 본성을 해결해야 하고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고,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독소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근원으로부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위층과의 관계를 완화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를 포용하고 인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참았지만 또다시 그가 하는 일이 눈에 거슬려 공격하고 보복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집에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물을 줄 때면 신발 바닥에 늘 흙이 묻어 계단을 올라갈 때에 흙이 떨어져 복도가 더러워집니다. 처음에는 그를 포용하고 자신을 억제하면서 복도의 흙을 청소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시선이 또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제가 채소를 사고 돌아왔는데 또 진흙으로 더러워진 복도를 보자 화가 솟구쳤습니다. 속으로 ‘본인만 깨끗하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네, 날 깔보는 거야?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날 건드리면 똑같이 돌려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저는 한 손에 채소를 들고 있어서 허리를 굽혀 다른 한 손으로 진흙을 주워 그의 집 복도에 다 던져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웠던 흙을 미처 던져 보기도 전에 제 손에 들고 있던 채소 봉지가 갑자기 찢어져 감자가 다 땅에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때는 감자를 주워 담기에 바빴는데 진흙을 위층 집에 던질 겨를이 있었겠어요? 저는 집에 돌아와 거듭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내가 이웃에게 보복하려고 했을 때 채소 봉지가 찢어져 감자가 떨어졌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때 저는 “너에게 정말로 진리가 있으면 가는 길도 자연히 정확할 것이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악을 저지르게 되는데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네게 교만 자대(自大)가 있으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해도 반드시 대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 자대 본성의 지배를 받아 하는 것이다. 교만 자대로 네가 하나님을 경시하게 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되며, 교만 자대로 걸핏하면 자신을 높이게 되고,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게 되며, 교만 자대로 나중에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신을 증거하게 되고 최후에 자신의 뜻과 자신의 사상과 자신의 관념에서 나온 것을 다 진리로 삼아 공양하게 된다. 보라, 이 교만 자대의 본성에 지배되어 나쁜 짓을 얼마나 많이 하게 되느냐!”라는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가 행한 것이 또 교만 자대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사탄의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독소에 의해 행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땅의 진흙을 보았을 때 또 그를 보복하고 공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도 저와 똑같이 진흙을 던졌다면, 우리는 점점 갈등이 생겨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아유, 봉투가 찢어져서 다행이야.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악한 일을 하지 말라고 가로막는 것이었구나.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 거룩하시어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구나!’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말씀은 저를 심복구복하게 하고 마디마디 진리입니다. 오늘 임한 이 일에서 저는 자신이 사탄에게 확실히 너무 깊게 패괴되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남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남을 건드리지 않으며,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그를 건드린다.”는 독소의 영향과 침식으로 늘 보복하고 괴롭히고 다스리려 했습니다. 저의 본성은 확실히 너무 교만합니다. 하나님, 이제야 저는 자신이 인성이 너무 없고 인격이 너무 저속해서 늘 이웃과 시시콜콜 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당신을 믿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저는 자신이 행한 것을 증오하고 후회합니다. 저는 사탄의 철학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람답게 사는 것으로 당신을 만족하길 원합니다.’ 연말에 위층에서 해파리 한 박스를 창문 밖에 내놓았는데, 거기서 가끔씩 물방울이 떨어져 금방 닦아 놓은 저희 집 창문 유리가 얼룩덜룩해지고, 심지어 창문 밖에 놓았던 물건이 물에 젖어 꽁꽁 얼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된 저는 분통이 터져 이전과 같은 잘못을 또 범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급히 하나님 앞에 와서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깨우쳐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느냐?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것이든 다 너에게 말하고, 자신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는지,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느껴지지 않겠느냐? 그가 너에게 꺼리지 않고 말하는 것은 너도 그에게 속에 있는 말을 하여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려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실행의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일이 닥치면 사람과 소통하게 하고, 속에 있는 말 하는 것을 배우게 하며, 사탄 성정에 지배받는 대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더듬게 되어 다시는 사람의 뜻대로 함부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위층과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이웃이 나오는 것을 보고 행여 자신이 화를 이기지 못해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가슴이 계속 쿵쾅거렸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웃이 저의 집 문앞까지 왔을 때 저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 일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실제 상황을 보여 주었습니다. 제가 자신을 낮추어 ‘남이 나를 건드리면 나도 반드시 남을 건드린다’는 사탄의 생존 법칙으로 살지 않았을 때 이웃도 바뀌었습니다. 계속 저에게 사과하면서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금방 올라가서 옮겨 놓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이웃이 고의로 저를 깔보는 것이 아니라 박스에 물이 새는 것을 몰랐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번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여전히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이웃이 고의로 저를 괴롭힌다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이의 모순은 영원히 해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차츰차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이웃과 사귀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쓰레기를 버릴 때 마침 이웃도 버리려 하면 제가 가는 김에 그의 것도 가져가고, 복도를 닦을 때도 저는 이웃의 복도도 닦아주고, 어떤 때 비가 내리는데 이웃이 집에 없으면 아래층에 말리는 것을 제가 도와서 거두어 줍니다. 이웃은 기뻐하며 “당신 같은 이웃을 만난 것이 참으로 행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자신이 이웃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저에게서 도달한 효과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저와 이웃층과의 관계가 형편없었는데 모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고 완전히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정상적인 대인 관계가 없었고 사람과 지내면서 포용과 이해와 용서가 없었고 더욱 주동적으로 남을 도와줄 수 없었으며 사랑이 없었고 늘 남의 약점만 보기에 모순이 끊임없이 격화되고 깊었던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웃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솔한 덕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인솔이 없었다면 사람은 다 사탄의 철학에 의하여 살고 영원히 서로 명리를 다투고 암투하는 어두운 상태에서 아예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을 정결케하고 변화하고 구원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찾고 구해야만 현실생활 속에서의 애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잘 믿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위로를 얻으시게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쇼리(肖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