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면 형상을 바꾸실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의 형상은 당시 유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거라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유대인의 형상이라고 예언하지 않았기에, 만약 예수님의 형상이 바뀐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알아보고 제때 영접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는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그렇게 많은 교파가 생겨났고, 왜 끊이지 않는 논쟁과 공격이 있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믿으면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이 오실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과연 이런 깨달음이 정확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라고는 하셨지만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분별과 비판은 자신의 판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해야만이 진리에 부합되고 예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율법시대는 바로 여호와를 대표한 하나님 이름의 사역이고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전부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며,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고 그가 한 사역에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다 신약에 기록되었다.』

모든 파별이 다 자기가 믿는 것이 참 진리라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합니까?

『참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천당에 가기 위하여, 은혜를 받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는 그리스도를 차라리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고자 하고,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버리고자 하며, 성경의 영원한 존재를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두 번째로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재차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악독하고 사람의 본성이 이렇게 나와 적대되는데, 또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어도 사람은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의 빛을 사람의 몸에 비출 때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의 존재를 모르며, 나의 진노가 사람의 몸에 임할 때에 사람은 더욱더 나의 존재를 부인한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 위의 나를 앙망하고 하늘 위의 나의 존재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무도 육신 중에 살고 있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미소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는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줄 수 있는 하나님이며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지배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비천함은 그야말로 차마 말할 수가 없다. 나와 적이 되는 이 사람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이 사람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 사람들, 나를 거역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해야 한다≫에서 발췌 『더 높은 도가 있는 이상, 하필 그 낮고 때가 지난 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 이상, 하필 아직도 낡은 역사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있는가?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이 너를 배부르게 할 수 없고 너의 현시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이것은 역사(歷史)이고 현시의 사역이 아님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바로 최신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니,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아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歷史)로 되었고, 아무리 참고 가치가 있어도 옛 도이다. 비록 ‘성서’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옛 도는 역사(歷史)이며, 비록 ‘성서’에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새 도는 현실이다. 이 도가 너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도가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준행하였는가를 보려면, 너는 구약 성경을 보아야 한다. 네가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해하려면, 신약 성경을 보아라. 그러면 말세에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네가 어떻게 보는가? 반드시 오늘의 하나님의 인솔을 받아들여야 하고 오늘의 역사에 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고 성경에 또한 아무도 앞당겨 ‘기록’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어 따로 중국에서 또 얼마간의 선민을 택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 몸에 역사하여, 그의 땅에서의 사역을 이어서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잇는다. 오늘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걸은 적이 없던 길이고, 역시 아무도 보지 못하였던 도이며, 여태껏 하지 않았던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의 최신 사역이다. 그러므로 하지 않았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현재이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이외에서 또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를 벗어났고 선지자의 예언도 초과하였음을 모르며, 예언 이외의 신기(新奇)한 사역이고 역시 이스라엘 이외에서의 더욱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사역임을 모른다. 이러한 사역이 성경에 어찌 명확한 기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오늘의 사역을 앞당겨 조금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누가 관례를 타파한 이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사역을 오래되어 곰팡이 핀 그 책에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현시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의 새 길을 걸으려면, 너는 성경에서 나와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이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걸을 수 있고 새로운 경지에,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현재 무엇 때문에 너더러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이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너는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너희들이 깨달아야 할 바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왜 제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집에서 항상 사소한 일로 까닭없이 화를 냅니다. 남편과 아이한테서도 단점이 많이 보여 주님께 저의 마음을 고요히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남편과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한효   한효 자매님: 우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기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이야기 해놓고 주님께 기도드렸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기도를 좋아하실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와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말하고 싶으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질지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표 없이 말을 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진실한 기도는 주요하게 세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부분에 힘쓰고, 세 가지 부분을 따라 연습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분명 주님의 응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 없이 말하거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도는 주님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지 계속 우리의 생각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처해진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 33) 2.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드리기 전에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과정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현실적 뜻에 따라 기도드린다면 우리는 쉽게 주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인성있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구해야 합니다. 빈말을 하거나, 큰소리를 치거나, 하나님에게 함부로 약속의 말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채권자 취급하며 요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런 정직한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이 항상 우리의 상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기도드린 후 주님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현실의 어려움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리고 나서도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주님께 기도드리며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한효 자매님, 며칠 전 제가 겪었던 체험을 나눠드릴게요. 얼마 전, 저도 집에서 괜히 화가 났고, 항상 가족들의 단점에 눈이 갔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쁜데 남편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가사일을 도와주지도 않아 화가 났죠. 나중에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런 환경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진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남편의 단점만 보이고 항상 남편을 변화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14)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항상 남편의 단점만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바라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만 쳐다보며 항상 남편이 잘못했고, 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원망했지만, 사실 남편도 요즘 야근이 많아 피곤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질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제 남편이 나쁜게 아니라 제가 나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볼 줄 모르고 항상 남편만 탓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신기하게도 제가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 남편을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원망과 불만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정확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여러 해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매번 만족을 얻고 누림이 있었습니다.” 네가 그에게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기를, “가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형제자매들도 모두 입을 열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매우 원합니다. 그다음 노래하고 찬미하는데 노래하면 모두 감동되어 온 얼굴에 눈물범벅입니다! 어떤 때는 흥분되면 땀이 계속 나서 수건을 다 적십니다. 형제자매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교회 생활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습니다. 여럿이 교통하면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교회 생활을 해도 나중에는 어떠한가? 누구도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부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정형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실질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이 10여 년의 교회 생활을 이렇게 허송세월로 보냈고, 이렇게 춤을 추면서 사람의 감각 속에서 사람의 누림 속에서 보냈다. 사람의 그 누림과 그 쾌락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 몸에서의 변화를 보려 하고 사람 몸에 이미 하나님 말씀의 실제적 살아냄이 있는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려 하는 것이지 네가 집회할 때에 또는 매우 열성적일 때에 찬양책을 들고 노래하거나 하나님을 찬미하며 춤을 추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대단히 가슴 아파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하였지만 참으로 어떠한 사람 몸에서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하여 하나님이 매우 슬퍼하고 조급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걱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 생활이 좀 있으면 자만자족하며, 기쁨과 평안과 희락이 좀 있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마음이 즐겁고 위로되거나 정신적 풍부함이 있으면 이미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여긴다. 이런 가상(假相)을 줄곧 보존하고 이런 가상을 줄곧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최고로 얻어야 할 것과 자신이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것으로 성정 변화와 구원받는 길에 진입한 것을 대체하므로 사람은 추구하지도 않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경력을 함께 나누고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바로 네 개인의 마음속에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의 패괴 성정을 다 말해낸 다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교통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보임이 있다든가 네가 시가의 어느 절에서 어느 정도 보임이 있어 아무렇게나 교통하고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실제 생활과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다들 도리적 인식만 말하고 이론적 인식만 말하는데, 실제 경력의 인식은 조금도 없다. 누구나 다 빙빙 돌려 말하며, 개인의 생활을 피하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생활의 그 범위를 피하고 개인의 내적 세계를 피하는데, 이러면 사람 간에 어찌 진정한 소통과 진실한 신뢰가 있겠는가? 없다!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여태껏 마음속 말을 한 적이 없다면 그들 둘이 절친한 부부인가? 서로를 잘 알겠는가? 모른다. 가령 남편이 밤낮 아내에게 “자기야 사랑해!” 아내도 밤낮 남편에게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야.” 단지 이렇게 말할 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에 대해 어떤 요구가 있는지, 또는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남편에게 아예 말하지도 않고 흉금을 털어놓는 말이 없다면, 그들 둘이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가? 둘이 함께 있으면 전부 원칙적인 말만 하는데 이는 참된 부부인가? 틀림없이 아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허물없이 지내고 서로 도와주고 공급해주어야 한다. 반드시 사람마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해야 한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지 않고 원칙적인 말만 하고 글귀 도리와 글자 표면의 뜻만 말한다면 너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언어 소통이 없고 심령상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간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었는가?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말이나 다 너에게 말하고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든지, 어떤 기쁜 일이 있든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가 너에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은 너도 마음속 말을 그에게 하고 네가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리며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교회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이런 것이 없다면 영원히 형제자매들 간에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한 조목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니 이렇게 어렵구나,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다 남에게 말해야 합니까? 긍정적인 것만 교통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어두운 방면이나 패괴된 방면은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네가 말하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이 어떤 놈인지를 모르며 다른 사람도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네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를 신뢰하게 하려면 먼저 네가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먼저 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너의 마음을 보게 하고 너의 생각을 알게 하고 너의 진실한 면을 보게 해야 한다. 가장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라. 그래야 다른 사람이 너를 신뢰하게 되고 너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다. 이것이 전제이다. 네가 늘 가장하고, 늘 자신이 거룩한 척하고, 늘 자신이 고상한 척하고, 늘 자신이 위대한 척하고, 늘 자신의 인격이 높은 척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패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너의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상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네가 아주 정직하고 아주 위대하고 아주 자신을 희생하고 아주 공정하고 이기적이 아니라고 여기게 하는데, 자신을 가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네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나 하려고 한 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면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이는 성실한 것인가 아닌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하나님도 너를 보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도 다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나의 앞에서도 틀림없이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단지 다른 사람 모르게 하나님께만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하고 고상한 척하고 또는 대공무사한 척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겠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는 진짜 궤사한 사람이고 진짜 위선자이고 소인이지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사람 앞에서 한 것이든 다 마음을 털어놓고 드러내야 한다. 이것을 쉽게 해낼 수 있는가? 여기에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싸움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전혀 너 자신의 비밀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도 해부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사적인 일을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고, 남에게 털어놓고 교통하고 해부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네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네가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의 패괴 성정이 영원히 변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뜻이다. 네가 변할 수도 없는데 무슨 구원받는다고 말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이 단락 말씀의 뜻이다. 무엇 때문에 자꾸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직접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매 한 편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현시에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듬을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효과에 달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입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현시 역사의 동태와 성령 역사의 경향을 더듬을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마시고 나서도 실행할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가 여전히 먹고 마실 줄 모르고 먹고 마시는 방법과 원칙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몸과 마음을 하나님 말씀 안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기를 중요시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면에서 도리를 깨닫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을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데에 달한 것이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과 사람의 진정한 부족함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달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에서 이렇게 많은 정확한 실행이 있게 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데의 가장 좋은 협력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이 밖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그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달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한 점이 있다.』 ≪베드로의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말씀하는 것에 의하여 너에게 공급하는데,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꼭 네 몸에서 역사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성령이 어떻게 한다. 너희들이 내가 말한 것에 따라 행하면, 성령은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나는 새 빛을 내보내어 너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너희들을 모두 현시의 빛 속으로 이끌어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에 들어가면 성령이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여 “저는 절대로 당신의 것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현재에 길이 없을 것이고 메마를 것이고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말하니, 성정 변화를 경력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은 가장 관건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쓰는 일부 사람들 몸에서 역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의 몸에서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경력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얼른 뒤따르라. 현시의 빛을 뒤따를수록 생명이 더욱 자라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성령이 한 것이기만 하면 너는 뒤따르라. 너의 경력 중에서 그의 경력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된다.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자라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의해 너를 온전케 할 것인지를 모르며,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너로 하여금 얻게 하고 보임이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매우 희망이 있음을 설명한다. 네가 만약 이 길에 들어설 수 없다면, 너의 전망이 어둡고 암담하여 빛이 없음을 설명한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면, 모든 일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경력하면 너의 생명으로 될 것이다. 너는 이 경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말을 흉내내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은 경력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빛비춤과 깨우침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적으로 직접 경력한 것과 인식한 것을 말하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 너는 이렇게 경력하여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에 순복하며, 너의 생명이 자라나도록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무엇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는가?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으로 드러내면 시인하고 순복하며, 다른 말 없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얼마나 마음을 찌르게 말씀하든,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하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시인해야 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질문: 저는 성경의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일까요? 답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전부의 역사, 하나님 경영의 취지,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4장4절에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 사역하셨으면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하고, 또한 하나님 오늘날의 뜻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싹 따르지 못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땅에 있는 사람을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셨는데, 사람들에게 계명, 율례, 법도를 지키도록 요구하셨고, 사람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엄격히 실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 그리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셔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며,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하여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등등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더 이상 율법으로 정죄 받거나 사형 당하지 않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만 지키고 주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할뿐더러 정죄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와 마태 등과 같은 그런 사도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고수하던 서기관, 제사장, 바래새인들은 비록 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전도하고 일생동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었지만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러 오셨을 때, 그들은 율법을 고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신도들 가운데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이 하기 위해 도처에서 예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트려 신도들을 미혹했으며 최종에는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고통을 받고 화비했었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다시 육신으로 돌아 오신 예수님,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 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 나라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가져왔고,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한다는 사역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16장12~13절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진리로 심판, 형벌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실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다만 예수님의 그 단계 구속 사역에만 순복하고 하나님 말세의 역사에 대하여 순복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후,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역사를 거쳐 패괴 성정도 어느 정도 정결케 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역사만 지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는 정형에서 살고 있으며 죄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여전히 죄의 자손들이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4~3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로지 정결함을 얻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전체 경영 계획, 다시 말해 6천년 경영 계획은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뉘는데, 그것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역사한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행한 궤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킴으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해 내는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멈추지 않았고, 그의 발걸음도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이 늘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이 인류를 6천년동안 경영하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3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 나라시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3단계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고 매 단계 사역은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드높고 깊어진 것이고 또한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한 사역입니다. 사람이 만약 율법시대 여호와의 사역만 지키면서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죄는 사함 받을 수 없고 예수님께 인정 받지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에 사람이 만약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만 고집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범죄 본성이 깨끗함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타락함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떠날 수 없고 동시에 사람의 협력도 아주 관건적인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에 순복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오늘날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그 단계 사역은 성도들에게 갈 곳을 예비하는 사역이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야말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을 믿은 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오로지 말세 이 단계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 중에서 한 단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정결케 되어 온전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까? 왜 아무도 성경을 풀 수 없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우리가 먼저 맞추지 말고 성령이 어떻게 하는가를 좀 봅시다. 진리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성령의 사역인가를 대조해보고, 성령 사역으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옳은가를 검증해 봅시다.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지 않았고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람은 참견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좋기는 그래도 성령이 하는 사역을 말해보고 하나님의 현재의 최신 사역을 말해 봅시다. 성경은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당신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감히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들은 감히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없지요.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며,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말세는 다만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율법시대도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말세에서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런 비밀은 어떤 사람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는 혹시 얼마간의 진리를 터득하거나 얼마간의 글귀를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귀에 포함된 뜻은 사람이 영원히 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죽은 글귀이지 여호와가 역사한 장면과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며, 사람은 또 이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최대의 비밀이고 가장 은밀한 것이어서, 사람은 아예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친히 사람에게 해석해야 하고 사람에게 풀어놓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영원히 폐쇄되어 있는 비밀이다. 종교계의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오늘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들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6천년의 사역은 모든 선지자의 그런 예언보다 더 심오하고, 창세부터 현재까지의 최대의 비밀이며, 역대의 선지자도 완전히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오직 마지막 시대에서만 풀어놓았고 이 이전에는 풀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비밀을 깨닫고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 인사들도 이 비밀에 의해 정복될 것이다. 오직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상이고, 사람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이것은 모두 그들의 패역한 본성과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초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의 사람도 성육신인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무릇 성령 사역이라면 너는 일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사역이라면 ‘흐름’이 옳은 것인즉, 너는 조금도 고려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골라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몸에서 네가 더 많은 견식을 넓히고 딴 속셈을 갖는데, 이것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더 많은 성경의 근거를 찾지 말아야 하고,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고찰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근거를 찾아서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내 앞에 이끌어올 수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비록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리라고 예언하였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의 몸에 응할 것인가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이 사람에게 모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나와 예수는 서로 다른 일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집회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그는 다만 당시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논하였다. 그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사역만 하였지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구약 율법을 제정하였는데,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데에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는 다만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담당하리라고 예언하였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매 시대의 사역을 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 사역을 앞당겨 하지 않는다. 이래야만 그의 매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데, 네가 만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을 받쳐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지, 설교자든지 누가 미리 오늘의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세상은 왜 어둡고 사악합니까?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면 훼멸되어야 합니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로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배치되면서 사탄을 경배하였으니,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었고 즉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잃었다……』

인류는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기에,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게 한다. 그는 만유로 하여금 다 그의 수중에 있도록 만유를 주관할 것이다. 무릇 피조물은 동물ㆍ식물ㆍ인류ㆍ산하ㆍ호수를 포괄하여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하늘 위의 만물과 땅 위의 만물도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하고, 어떠한 선택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두 그의 지배에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규정한 것이고 역시 하나님의 권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고, 만물을 모두 층차있게 하고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기 종류대로 하고 각기 자기 위치에 거하게 하기에, 아무리 큰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초월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를 위하여 복무한다. 어떤 물질도 감히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다른 요구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하나의 피조된 사람으로서는 반드시 사람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사람이 만물 중의 주인이든지 아니면 만물 중의 주재이든지, 사람이 만물 중에서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는 작디작은 사람이다. 단지 하나의 작디작은 사람이고 하나의 피조물이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보다 높을 수 없다. 하나의 피조물로서 추구해야 할 것은 바로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고 조금도 선택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이 사랑할 만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걷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이 인간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하나님이 베풀어준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의 이 생명체를 인간 세상에 가져옴으로, 사람은 부모가 있게 되고 육친이 있게 되어 더는 고독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이 물질의 세계를 보기 시작해서부터, 사람은 하나님이 정해준 운명 속에서 생존해야 하였는데,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하나하나의 생명체를 받쳐서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생존하면서 ‘성장한다’고 여기지 않고, 도리어 부모의 키워준 은혜라고 여기고, 사람 생명의 본능이 사람을 ‘성장하도록’ 지배하고 있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사람의 ‘생명’이 누가 베풀어준 것이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지 못하며, 더욱이 생명의 본능이 어떻게 기적을 창조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만 양식이 사람 생명이 연속되는 근본이고, 의지력이 사람 생명이 존재하는 근원이며, 사람 두뇌의 신념이 바로 사람이 생존하는 자본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하나님의 은택과 공급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베풀어준 생명을 헛되이 소모하고 있으며…… 밤낮으로 하나님이 보살펴주고 있는 어느 한 사람도 주동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로지 어떠한 가망도 없는 사람에게 계획 중의 사역을 하면서 언젠가는 사람이 꿈속에서 깨어나 문득 생명의 가치와 의의를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준 모든 것에 지불한 대가를 깨달을 수 있고, 사람들이 되돌아오기를 고대하는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고 이 인류를 창조하였으며, 더욱이 고대 희랍의 문화와 인류의 문명도 창조하였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위로하고 있고, 또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늘 보살펴주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인류의 진보는 하나님의 주재를 떠날 수 없고, 인류의 역사(歷史)와 인류의 미래도 하나님 손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네가 만일 하나의 명실상부한 크리스천이라면, 너는 꼭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가 모두 하나님의 안배 아래에 있음을 믿을 것이다.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운명이 장차 어떠할 것인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알고, 이 인류가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장악하고 있다. 인류에게 좋은 운명이 있고 한 국가에 좋은 운명이 있으려면, 인류는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귀숙은 곧 한차례 불가피한 큰 재난일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짓던 시대를 회고해보자. 인류는 심히 패괴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잃게 되었고, 하나님의 빛이 없는 흑암 속에서 살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인류는 음란이 본성으로 되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까지 타락되었다. 이러한 인류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는 받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이 없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으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풀어준 모든 것을 포기하였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타이른 말씀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짐에 따라, 닥친 것은 그들이 타락되어 이지(理智)를 잃고 인성을 잃은 것이다. 그들은 점점 악해졌고 더 나아가 사망을 향해 갔기에, 하나님의 진노 중에 떨어지고 하나님의 징벌 중에 떨어지게 되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악을 멀리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을 듣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부탁대로 방주를 짓고 각종 생물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예비된 후 하나님은 곧 세상을 멸하는 사역을 시작하였다. 세상을 멸할 그 때에 오직 노아의 일가 여덟 식구만이 다행히 재난을 피하여 생존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노아가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악을 멀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서 발췌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아무런 의의도 없는 희생과 탐색은 다만 갈수록 사람에게 많은 고뇌를 가져다주어 사람으로 하여금 황공하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면서 인류의 미래에 어떻게 직면하겠는가를 모르게 하고 이후의 길에 어떻게 직면하겠는가를 모르게 하며, 심지어 인류로 하여금 과학을 두려워하고 지식을 두려워하고 더욱이 공허한 느낌을 두려워하게 할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네가 자유의 국가에 있든지 아니면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지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으며, 네가 통치자든지 아니면 피통치자든지 너는 인류의 운명ㆍ비밀과 귀숙을 탐색하는 욕망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고 더욱이 이상야릇한 공허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류의 이런 공통의 현상이 사회학자에게 사회 현상으로 불렸다. 하지만 또한 나서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은 필경 사람이다. 하나님의 지위와 하나님의 생명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배부르게 먹고 사람마다 평등하고 사람마다 자유로운 공평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생명 공급이다. 오직 이래야만이 인류의 필요와 인류의 탐색 욕망과 인류의 심령의 공허함이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이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경을 떠나면 가짜이고 이단입니다. 이 말이 도대체 성립됩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어떻게 만교를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하십니까?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한 일을 해서 덕을 쌓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솔이 없으면 설사 통치자거나 사회학자가 모두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도 인류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울 수 없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도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고 어떠한 사회 논조도 사람의 공허함의 괴롭힘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은 늘 성경으로 하나님을 규정합니까? 하나님을 성경에 제한시키면 왜 그릇됩니까?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

하나님은 말세 역사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심판, 형벌의 말씀을 발표하셔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

하나님의 역사와 성경은 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 있었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습니까?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사역의 증거일 뿐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취지를 알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두 단계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십니까?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봐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까?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가히 말해서,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인바,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器官)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며,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달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으며,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이러한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고 더욱 하나님의 최신의 깨우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만이 성령께 되도록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저는 어떤 교나 다 좋은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교를 믿든 진심으로 믿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역사는 2천년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말세에 옛 시대를 끝마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개척하시는 사역은 얼마나 걸립니까?

『비록 지금은 이미 말세이지만, 너희들은 마땅히 ‘말세’는 단지 한 개 시대의 대명사이고 한 개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며,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처럼 전체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지 마지막의 몇 년이나 최종의 몇 개월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은혜시대에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형상인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말세 성육신은 아시아 사람의 형상입니까?

『전 우주 위에서, 전 우주 아래에서 하나님이 제일 큰데, 그가 단지 하나의 육신의 형상으로 그 자신을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하나님이 이 육신을 입은 것은 한 단계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다. 육신의 형상은 그 무슨 논법이 없고 시대의 변천과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에 관련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의 역사는 착한 사람만 구원하고 악인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십니까?

『망망한 우주 궁창에 많은 생령이 번식하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의 규율을 따르고 있고 하나의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가고 살아있는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누가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지? 또 누가 이 인류를 창조하였는지? 설마 정말로 대자연의 조화는 아니겠지? 인류가 정말로 자기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지? ……’』

말세에 주님이 오시면 왜 영체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써 사람을 억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신복(信服)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만약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합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그의 역사하는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주님의 보혈이 이미 우리를 깨끗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히 구별되어 죄에 속하지 않으므로 더는 정결케 하는 사역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논법이 왜 틀렸습니까?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하리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성경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는데, 당신들은 왜 성경이 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까?

『성경은 하나님이 친히 음성을 발한 전부의 기록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일 뿐이다. 그중 일부분은 선지자 예언의 기록이고, 일부분은 역대에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 써낸 경력과 인식이다. 』

어떻게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글자 표면으로 하나님 말씀을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으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이고 사람의 사유이니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관건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성경 여러 곳에 확실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이 이미 응하였음을 어떤 하나님의 말씀들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말세에 내가 나의 책을 펼칠 때(책은 내 입의 모든 말을 가리키고 마지막 때에 하는 말을 가리키는데 다 내 책의 내용이다) 나는 이것을 너희들에게 알린다.』

인류의 귀숙과 하나님 나라의 미경은 도대체 어떠합니까? 증거로 삼을 말씀들이 있습니까?

『나의 나라는 나의 말의 완선(完善)함에 따라 땅에서 차츰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나의 마음속의 나라를 세운다. 나의 나라에서 모든 자민은 다 정상 사람의 생활을 회복한다. 더는 쌀쌀한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 날씨 같은 세상이다. 』

하나님이 예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미경은 도대체 어떻게 응하여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이 크게 진노할 때 온 세상은 이로 인하여 각종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하늘 위에 올라서면 땅 위에 각종 재해가 하루하루 전 인류에게 다가오는 것을 족히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니, 땅 위는 마치 지진 전의 각종 광경과 같다.』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은 무엇 때문에 여성입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이 하는 매 단계 사역은 다 실제적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가 올 때는 남성이었고, 이번에 올 때는 여성이다. 여기로부터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영이 와서 마음대로 하나의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육신은 그를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와서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시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여자 아기이고 남자 아기가 아니라 해도, 그 단계의 사역을 여전히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 이 단계의 사역을 남성으로 바꾸어서 해야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한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 않지만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 하였는데, ‘자’라 하면 남성이다. 이 단계에는 무엇 때문에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가 사역을 하는 데는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지 다 실제 의의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두 차례인데, 말할 것 없이 말세에는 최후 한차례이다. 그는 와서 그의 모든 행사를 나타낸다. 가령 이 단계에서 도성육신으로 친히 역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 관념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다만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긴다. 이 이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남성일 수밖에 없고 여성을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남자를 여자의 권세로 삼았고, 여자가 권세를 담당해서는 안 되고 남자만이 담당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또한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 하였고, 여자는 남자에게 순복해야 하고 남자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한 것은 뱀의 유혹을 거친 아담과 하와를 놓고 말한 것이지, 여호와가 시초에 만든 남자와 여자를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로서는 반드시 자기의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고 자기의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으로서는 반드시 식구를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때 준수해야 할 여호와가 정한 율례와 규례이다. 여호와가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을 한 것은 다만 인류(바로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인류가 순서있게 생활할 수 있고 관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호와는 모두 적합한 규정을 하였다. 이것은 다만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말한 것일 뿐,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과는 결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말씀한 것은 단지 피조된 인류에게 말씀한 것인데, 피조된 인류의 정상 생활을 위해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모두 규정이 있게 된 것이다. 여호와가 시초에 인류를 만들 때 남성과 여성 두 유별의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도 곧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는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을 정한 것은 아니다. 그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완전히 시초에 그가 인류를 만들 때의 생각에 근거하여 정한 것이다. 바로 패괴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근거하여 그의 두 차례 도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여호와가 당시에 ‘뱀의 유혹을 거친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대로 하나님 도성육신의 사역에 맞춘다면, 예수도 ‘사모해야 할 아내를 사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이 그래 하나님인가? 이와 같다면 그가 그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도 크나큰 착오가 아닌가? 만일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아내를 얻지도 않았고 자기 아내를 사모하는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러면 예수는 오늘의 도성육신과 사람이 말한 대로 똑같이 착오가 아닌가? 네가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써 오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한 이상, 너는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써 은혜시대에 말씀이 육신 된 주 예수를 가늠해야 하는데, 이것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닌가? 네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으로써 주 예수를 가늠한 이상, 너는 뱀의 유혹을 거친 여성으로써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네가 만일 이렇게 가늠한다면 너에게 이지(理智)가 없음을 증명한다. 여호와가 말씀으로 된 두 차례 육신의 성별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과 연결되는 것이고,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에 따라서 두 차례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너는 예수의 남성을 뱀의 유혹을 거친 후의 아담의 남성으로 여기지 말라. ‘그’와 ‘그’는 조금도 관련이 없으며, 다른 성질의 두 남성이다. 설마 예수가 남성이라 하여 그를 모든 여자의 머리이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모든 유대 사람(남자와 여자를 포괄함)의 왕이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자신이고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그는 모든 피조물의 주이자 모든 피조물의 머리이다. 네가 어찌 예수의 남성을 여자의 머리의 상징이라고 정하겠는가? 이것은 모독이 아닌가?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성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주인데, 그가 어찌 패괴된 후의 아담의 남성일 수 있겠는가?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을 구비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다 틀리지 않겠는가? 여호와가 그래 유혹을 거친 아담의 남성을 예수 안에 더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도성육신은 예수와 다른 성별이면서도 성질이 같은 도성육신의 다른 한차례 역사가 아닌가? 네가 또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기에 하나님 도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여자는 가장 더럽고 인류의 패괴된 기원이어서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으로 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감히 “여자는 영원히 남자에게 순복하고 여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창현(彰顯)이 될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라는 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만약 예수 그 단계 사역만 하고 말세에 이 단계를 보충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에서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즉 하나님은 아들 하나뿐이고 이후에 또 하나의 이름으로 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길 것이다. 사람은 관념에서 무릇 속죄제로 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무릇 하나님을 위하여 정권을 담당하는 자, 온 인류를 구속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무릇 남성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수 있고 즉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이라 하고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크나큰 관념이 아닌가? 만일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 사역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하나님에 대하여 음영을 덮어씌우게 된다. 이러면, 남자는 스스로 여자보다 높다고 여기게 되고, 여자는 영원히 머리도 들지 못하게 된다. 그때에, 무릇 여성은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남자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여자를 혐오하고 하나님이 여자를 구원 얻게 할 리도 없다고 여긴다. 이렇다면, 여호와가 만든 또 마찬가지로 패괴된 모든 여자는 구원받을 기회가 영원히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여자를 만든 것, 바로 하와를 만든 것도 역시 의의 없는 일로 되지 않겠는가? 여자는 또한 영원히 멸망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자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전 인류를 위한 사역이지 여자만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여긴다면, 사람은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와 나는 한 분의 영으로부터 왔다. 비록 육신은 관계가 없지만 영은 한 분이다. 역사한 내용이 같지 않고 담당한 사역이 같지 않지만 실질은 같은 것이다. 육신이 취한 형상이 같지 않은 그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역의 필요로 인하여 같지 않은 것이다. 직분이 같지 않으므로 가져온 사역도 같지 않고 사람에게 나타낸 성품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 본 것과 터득한 것은 이전과 같지 않은데, 이것은 모두 시대의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의 성별은 다르고 형상도 다르며 한 가족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한 분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어떠한 혈통 관계도 없고 어떠한 육체 관계도 없지만 이런 것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서로 다른 두 시기에서의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 이것은 미룰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혈연이 아니고 공통의 인류의 언어도 없다(한 분은 유태어를 할 줄 아는 남성이고 한 분은 중국 한어만 말하는 여성이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어 또한 서로 다른 시기에서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한 분의 영이고 즉 같은 실질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육신의 외각은 아예 완전히 비슷한 데가 없으며, 다만 같은 인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육신의 모습ㆍ출생은 서로 다르다. 이런 것은 각자의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한 분의 영이기에 누구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으며, 비록 그들이 혈연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이 그들의 전인(全人)을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육신은 한 혈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듯이, 또한 예수의 영이 전혀 여호와의 영의 아들이 아니듯이, 그들은 한 분의 영이다. 마치 오늘의 도성육신인 하나님과 예수처럼, 혈통은 서로 연결이 없으나 그들은 본래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원래 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 자애의 사역을 할 수 있고,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도 할 수 있고, 사람을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최종에는 또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이 아닌가?』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케 되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자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기 마련이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기 마련이며,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 하여금 그의 새로운 뜻과 새로운 성품을 보게 하기 마련이다. 만약 새로운 시대에 사람이 새로운 성품의 발표를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가령 하나님 도성육신이 다만 남성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남성으로 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정할 것이며, 언제나 여자의 하나님이라고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남자는 하나님을 남자와 같은 성별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 남자의 머리일 것인데, 여자는 또 어떠할 것인가?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 대우 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하나님이 구원하는 자가 모두 그와 같은 남자라면 여자는 구원을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할 때는 아담을 창조하고 하와도 창조하였다. 그는 아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역시 여자의 하나님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여 그의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 하는데, 예수 그때의 긍휼ㆍ자애가 아니다. 또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된 이상, 이 새로운 사역이 새로운 성품을 가져온 것이다. 그럼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이 사역도 완성하게 되고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는 전부의 사역도 완성하게 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을 통해 하시지 않고 반드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하셔야 합니까?

『전체 경영 계획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는 것이다. 제1단계의 창세는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한 것이다. 하나님이 만일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인류를 창조할 수 없다.』

왜 하나님의 재림에는 은밀히 강림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성경에 있고 성경 외에 더는 하나님의 계시와 말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논법이 왜 틀렸습니까?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여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되어야지, 한 지경에만 정지되어 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 사역에 정지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그 패역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

하나님은 왜 말세 역사를 이스라엘에서 하시지 않고 중국에서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말세의 사역을 중국, 이 가장 어둡고 가장 낙후한 곳에서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어두운 곳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니, 사람이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그분은 꼭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매우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끝까지 따르는데, 그분이 그래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해야만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바이고 이런 일을 모두 꿰뚫어보아야 한다. 진리를 너무 적게 깨달으면 쉽게 착오가 생기고 치우친 길에 들어선다.』

은혜시대의 종교계로부터 말씀이 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시작했는데, 왜 그리스도는 언제나 종교계의 대적과 정죄를 당하십니까?

『우매 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함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流露)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시인할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가 그의 순복과 비미를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더욱 그리스도를 경시한다. 』

당신들은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먼저 계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시를 받지 못했으니 주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 저는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당신들은 왜 제가 이렇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까?

성경 참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나 의인으로 온전케 되려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세상에는 의인이 없고 의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나니”란 이것은 참말이다. 너희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너희들이 입은 옷을 좀 보고 너희들의 일언일행, 일거일동, 매 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좀 살펴 보아라. 너희들이 날마다 꾸는 꿈마저도 자기를 위한 것인데, 이것이 실정이 아닌가? ‘의’란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말다툼하지 않고 빼앗지도 않고 훔치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부탁을 자신의 임무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함을 천직(天職)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마치 주 예수가 한 모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의이다. 롯이 의인으로 칭함받을 수 있었던 것은 롯이 자기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를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에 한 일을 의롭다고 칭할 수 있을 뿐, 그를 의인이라고는 칭할 수 없다. 롯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두 딸을 두 천사와 바꾸려 하였지만, 그가 이전에 행한 것이 다는 의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의인이 없다”고 한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는다≫에서 발췌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되기만 하고 거룩함에 달할 수 없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에서,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관건적인 한 단계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산업을 직접 이어받을 수 없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야 인류의 불의를 다 정결케 하며, 형벌ㆍ심판의 사역이라야 인류 중의 그 패역한 것들을 다 드러내어 구원할 만한 사람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내고 존류할 만한 사람과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낸다. 사역이 끝날 때, 존류할 만한 사람은 다 정결함을 받고 인류의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 인류의 땅에서의 더 아름다운 두 번째 생활을 누릴 것이며, 머지않아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은 형벌ㆍ심판을 거친 후 원형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후에 다 훼멸되어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는 땅에서 생존할 수 없다. 이후의 인류 가운데 더는 이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최후의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징벌받을 대상이고 악한 자이지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최종에 “제가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공로는 없다 하더라도 고생은 했으니 하다못해 천당에 들어가 생명 과실을 먹게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국도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네가 비록 다년간 사역하였지만 결국은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나의 국도에 들어가려 하는데, 그것은 이치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떠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이전에 사람 몸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며,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무엇 때문에 정결한 처녀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찾고 구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낡은 관념을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는 이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만세전의 예정이고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예수님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과 말씀을 지키기만 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직접 천국에 데려가실 거라 믿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지금은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습니다. 이후에 한가할 때 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사람의 생활 속에 다정함이 조금도 없고, 사람의 생활 속에 사람의 분위기가 조금도 풍기지 않고 광명이 조금도 없지만 사람은 줄곧 자기를 양보하며 자기의 일생을 평범하게, 가치 없게 내버려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날이 다가오는데, 사람은 이렇게 원한을 품은 채 죽어간다.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지도 못하고 무엇을 얻지도 못하고 이렇게 급히 왔다가 급히 떠나간다. 나의 안중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무엇을 가지고 온 적이 없고 누구도 무엇을 가지고 간 적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인간 세상의 불공평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도 총총히 떠나기를 원하지 않고 단지 그가 헤매고 있을 때 다시 영생의 도를 보도록, 하늘에 있는 나의 약속이 갑자기 인간 세상에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제20편 말씀≫에서 발췌 『사람은 언제나 세상으로 달아나고, 소망ㆍ전망ㆍ사치한 요구가 너무 많으며, 언제나 육체를 위해 고려하고 육체를 위해 타산하며, 하나님을 믿는 도를 찾고 구할 마음이 전혀 없다. 사람은 또한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사탄에게 빼앗겨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일심으로 사탄을 위하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은 간증을 잃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광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광명 속에서 살면서 광명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네가 칠흑 같은 밤중에서 살 때면 광명의 귀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네가 후회할 것이다. 현재에는 네가 어떻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네가 후회할 그날이 있다. 그때에 가서 흑암이 닥치고 더는 광명이 없게 되면, 네가 후회해도 늦은 것이다. 현재에 네가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은 네가 아직도 현재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우주의 사역이 전개되기만 하면, 즉 오늘 내가 한 이 말이 다 성취되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통곡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흑암 속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네가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회를 찾지 않고 앞다투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가서 후회할 것이다. 현재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고 절호의 시기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힘껏 추구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 네가 기회를 놓친다면 늦을 것이다. 너의 심지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네가 지쳐 죽어도 온전케 될 수 없다. 이 기회를 타서 성령이 크게 역사하는 것에 의하여 네가 협력하여라. 만일 네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이후에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한번 또 한번 인류를 일깨우고 권면하는 것은 바로 그의 손에 지금까지 없었던 재난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재난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며, 사람의 육체만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겨냥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물거품으로 될 때, 하나님의 일깨움과 권면이 보답을 받지 못하였을 때, 그가 어떤 노기를 발할 것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 피조물도 여태껏 체험한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재난이 전례 없는 것이고 이후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이번만 인류를 만드는 것이고, 또 이번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번이자 마지막 한번이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깨어나라, 형제들! 깨어나라, 자매들! 나의 날은 지연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곧 생명이니, 시간을 잡는 것이 곧 생명을 급히 구하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길지 않을 것이다! 대학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면 한번 또는 두 번 보충 학습을 해도 되지만, 나의 날은 더 이상 지연되지 않는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이는 나의 충고이다. 세상의 결국이 이미 너희 눈앞에 펼쳐지고, 대재난이 곧 다가오는데, 너희의 생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너희가 자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중요한가? 모두 숙고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진담으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제30편 말씀≫에서 발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근데 왜 하나님께서 또 사람을 심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예수가 왔을 때에도 일부분 사역을 하였고 얼마간의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로 어느 사역을 완성하였는가? 그가 주로 완성한 것은 십자가의 사역이다. 하나의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되어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고 전 인류를 구속하였으며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로 되었는데, 그는 주로 이 사역을 완성하였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사람이 순식간에 거룩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왜 하나님이 또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셔야 합니까?

『마지막 때에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형벌과 심판인바, 모든 불의를 드러내어 만민을 공개적으로 심판하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러한 성품이라야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 』

말세에 하나님이 하신 새 사역에 직면하여 어떻게 찾고 구해야 참 도(道)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난측(難測)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

사탄, 악령이 사람을 모두 산 귀신, 더러운 귀신으로 패괴시켰는데,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것들을 일찍이 멸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비록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전능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한다. 그는 줄곧 어리둥절해한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권세가 있어 모든 것을 주재하실 수 있는 이상, 왜 또 사탄을 만들고 그것이 인류를 6천년 동안 패괴시키고 세상을 엉망진창이 되게 하셨을까? 왜 그것을 멸하지 않으실까? 사탄을 멸하시면 인류가 좋아지지 않을까?’ 너희가 지금 이 문제를 해석할 수 있는가? 이것은 이상(異象)에 관련되는 문제이다. 』

성경의 서신은 모두 사람이 쓴 것인데, 만일 사람이 한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사람은 언제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여기기를,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것만큼 말씀하였고 성경의 그렇게 많은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여기기를, 신구약 66권의 모든 책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두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이 한 말씀의 기록이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터득법이며,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온전케 함을 받아들이는 데에 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에 의하여 달하는가? 만약 고난 연단이 없고 고통스러운 시련이 없고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전부 은혜이고 전부 자애와 긍휼이라면, 네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데에 달할 수 있겠는가? 시련 중에서, 한 방면으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자신이 미소하고 비열하고 미천하고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게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왜 많은 선행을 예비해야 좋은 귀숙이 있게 됩니까?

『나의 긍휼은 나를 사랑하고 자신을 버리는 사람에게 발표한다. 그러나 그 악인들이 받는 징벌은 나의 공의로운 성품의 증거이고 더욱이 나의 진노의 증거이다. 재난이 닥칠 때, 나를 대적한 모든 사람은 기근과 온역 중에 떨어져 슬피 울 것이며,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다년간 나를 따른 그 사람들도 죄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말세에 하나님이 이미 새로운 사역을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은혜시대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까?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 벗겨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내려면, 예수가 속죄제로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가 다르고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아지며,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고 차츰차츰 더욱 높은 단계로 계속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만일 따라가지 못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것이며, 사람이 만일 순복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새로운 시대이다. 』

각 종파마다 자기가 믿는 분이 참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럼 어느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지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였기에, 모든 피조물로 하여금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고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게 한다. 그는 만유로 하여금 다 그의 수중에 있도록 만유를 주관할 것이다. 무릇 피조물은 동물ㆍ식물ㆍ인류ㆍ산하ㆍ호수를 포괄하여 다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하늘 위의 만물과 땅 위의 만물도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하고, 어떠한 선택도 있어서는 안 되며, 모두 그의 지배에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규정한 것이고 역시 하나님의 권세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고, 만물을 모두 층차있게 하고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기 종류대로 하고 각기 자기 위치에 거하게 하기에, 아무리 큰 물질이라도 하나님을 초월할 수 없고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를 위하여 복무한다. 어떤 물질도 감히 하나님을 배반하거나 하나님께 다른 요구를 제기할 수 없다.』

본분을 하는 것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구원을 받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람은 모두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차츰차츰 변화를 얻는 것이고 역시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충심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네가 자기의 본분을 할수록 더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고 또한 네가 표현하는 것도 더욱 실제적이다. 그러나 다만 속이면서 본분을 할 뿐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그 사람들은 최종에는 역시 도태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본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본분을 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곧 변화되지 못한, 화를 입을 대상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것에 뒤섞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표현해내는 것은 모두 다 악이다.』

우리는 매사마다 목사나 장로를 따르며 순복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지, 사람을 높여서는 안 되고 사람을 앙망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첫째로 보고 네가 앙망하는 사람을 둘째로 보고 네가 셋째라고 해서는 안 된다. 너의 마음속에 어떠한 사람의 지위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을 특히 네가 숭배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등호로 긋고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라면, 무엇 때문에 악인은 형통하여 윤택하게 살지만 착한 사람은 오히려 괴롭힘과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겪습니까?

『금생(今生)에서 복을 얻는 자는 영세(永世)에서 반드시 고통받을 것이고, 금생에서 고통받는 자는 영세에서 반드시 복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명정(命定)한 것이니, 누구도 바꿀 수 없고 아무도 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하나님이 왜 각 시대마다 새 사역을 하십니까? 새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탄생된 것입니까?

『『나의 전체 경영 계획, 곧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도합 세 개 절차 즉 세 개 시대,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하나님나라시대로 나눈다. 이 세 개 시대는 시대의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성경에 말한 “마지막 날의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리킵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어느 때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분이라면 예수님이 어떻게 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땅에 한번 오면 이름을 한번 바꿔야 하고, 한번 오면 성별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형상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한 단계 사역을 바꾸는데, 그는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중국에 은밀히 강림하여 말세 역사를 하십니까? 여기에 어떤 의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