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일이 바빠 예배하고 말씀 볼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2019년 05월 15일

안녕하세요! 저는 불과 얼마 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새 신자입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당연히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일을 마치고 나면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기운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요?

소동

소동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었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진리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면 예배를 드리거나 일할 때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인식을 말씀드릴게요.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

사실 우리가 일이 너무 바빠 예배드릴 시간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리 추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가치를 깨닫고 진리 실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해방감, 자유를 느낀다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또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겉으로 봤을 때 이해하기 쉽든 심오하든, 전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져야 할 진리이며,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가기 위한 생수의 근원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행동하는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 방향을 공급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한 보장이자 일용할 양식이며, 사람이 굳세어지고 우뚝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창조된 인류가 정상 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가득하고, 인류가 타락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진리가 가득하며,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가득하다. 그는 사람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알도록 인도하고 깨우치는 등불이자 정의와 아름답고 선한 것을 구현하고 가질 수 있게 하는 보장이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구원과 광명의 길로 이끄는 등대이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공급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그저 우리의 의식주만을 해결해 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공허함과 일과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나 문제 등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고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으며 사람과 만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며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이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여러 사람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람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야 한다’라는 사탄의 지배를 받아 지위와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위가 없을 때는 사람과 다투며 지위를 얻은 후에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해치지 않을까 경계해야 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교제함으로써 명예와 이익,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망가뜨리는 방법이며 명예와 이익, 지위를 좇는 사람은 죄악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지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앞에서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사탄의 잘못된 가치관이 바뀌어 일하면서도 명예와 이익, 지위 때문에 환득환실하지 않고 이기기 위해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평온하고 안정되며 자유로워집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마음이 의지할 곳이 생기고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며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평온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됩니다. 마음의 위안과 평안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많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31~32)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식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길 바라지 않으시며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생명을 중시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엘리야는 추격을 피해 산골짜기에 숨었습니다. 그곳엔 아무런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3년에 걸친 대기근 때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거두도록 하셨고, 그들은 약간의 기름과 밀가루로 3년의 기근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형제자매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깊이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며 자신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일이 술술 풀릴 때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할까

우리는 ‘태어났으면 당연히 일해서 돈을 벌고 생계를 책임져야지. 그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육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돈을 법니다. 돈을 더 벌어서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더 나은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길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명예와 이익, 지위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육적인 편안함이나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하나님의 앞으로 올 시간이 사라지고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경배할 기회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단어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란 단어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는 방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게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이 인생의 꿈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진짜로 넘겨 버렸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강한 유혹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는다 해도 다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린 어려서부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사탄의 생존 법칙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법칙의 영향으로 우리는 돈을 숭배하고 육적인 즐거움을 좇으며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등 명예와 이익, 지위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혀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이루고 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타인의 시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고 다른 사람과 서로 뺏고 뺏기며 이익을 위해 속이고 이용했습니다. 결국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심지어 몸까지 상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서도 우리는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무조건 명예와 이익을 좇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도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돈 버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며, 점점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를 이용해 하나님 앞에 있던 우리를 끌어내어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죄악의 늪으로 점점 깊이 빠져 결국 하나님에 의해 사탄과 함께 훼멸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명예와 이익이 바로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며 잡아먹는 방법 중 하나이며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길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인식하고 분별하고 나면 올바른 태도로 일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중심을 바꾸어 일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일할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겪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 성령의 역사를 얻으면 우리 마음은 위안을 받고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은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만 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예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일은 매우 바빴고 매주 몇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이 없으며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고 따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님이 제 어려움에 대한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하나의 사실이 입증된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기준과 멀지 않은 것이다.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 실행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주어지면 가볍게 생각해 흘려보낸다. 사실 그 일이 주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그 일이 너에게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저는 매일 제가 맞닥뜨리는 사람과 일은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제게 배치해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물과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졌는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했는지, 여러 방면의 진리에 진입했는지를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주변의 사람과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을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 삶 속으로 가져 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여 제 생명을 점차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때 제가 식당에서 메뉴를 적고 있을 때 매니저님이 다가와 손님들이 시킨 메뉴에 추가로 몇 개 더 써넣어 돈을 더 받자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간사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저도 손님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니저님에게 찍혀 앞으로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거나, 인센티브가 깎이거나 심지어 일자리를 잃진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문득 이 일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제 곁에서 제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으로 옮겨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며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드린 후 제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고객의 메뉴를 써 내려갔고 매니저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매니저님이 사장님께 제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직원이라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고 진리를 실행한 후 마음속에 찾아오는 평안과 안정,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일을 하면서 저는 주변의 사물과 일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서서히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일할 때에도 힘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샤오둥 형제님, 여기까지 들었으니 아마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합니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지 말고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더 많은 마음을 쏟아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연습을 하며 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과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점점 진리를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며 마음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행복까지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 사랑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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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세요! 바리새인들의 길을 걸어가지 마세요

이경애 하나님께서 이전에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하신 역사를 회상해보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면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였고 직접 조물주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너무나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예수님이 뜻밖에 우리 가운데 은밀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마치 당시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역사하신 것이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비록 그분의 사역이 완전히 저의 상상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와 위력을 지닌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력을 회상하면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에 직면하여 저는 진심으로 순복하고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대조하고 가늠하였으며 자기의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미 적그리스도로 되어 하나님께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념을 내려놓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실질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실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저는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초의 저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주님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주님의 도래를 저버리고 주님의 도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는 공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메시아를 아예 본 적도 없고 그저 구약 성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소식만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여태껏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역사하시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접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하신 3년 반 동안에 많은 사역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조금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0)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단지 신약 성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조금 알게 된 것이지 전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모두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며, 이 속에는 또 사람의 상상이 너무 많아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시에 성전 안의 사람들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규정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저버릴 수 있었는데, 설마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념과 상상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바리새인과 같은 선택에 직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님, 아래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더욱 분명히 보고 일찌감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영원한 징벌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표현과 오늘날 각 종파에서 말세의 도성육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을 대조해봅시다. 형제자매 모두가 자신의 귀숙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를 신중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1. 오늘의 신도와 바리새인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의 글귀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관념 속에서 오실 그분은 마땅히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며, 다윗처럼 싸움에 능하여 그들을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사 7:14,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상상한 것과 같지 않았고, 그들이 본 것은 성경의 예언(문자 표면상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본 예수님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요 7:52 참조) 성경 예언에는 오실 그분이 임마누엘로 불린다고 했지만 오신 분은 예수로 불렸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와서 정권을 담당하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정권을 담당하시기는커녕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절대 오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에 그들은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상상과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는 안 되고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유대인의 의복을 입고 유대인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날아오셔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은 마치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져 지워 버릴 수 없는 듯하고, 게다가 사람은 또 성경의 근거를(이런 근거는 다 글자 표면상의 뜻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 11)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니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이런 관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런 상상과 관념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상상과 참으로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차 육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굳어진 상상과 관념으로 대조해보는데, 맞추지 못하면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합니다. 거짓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2.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전하는 도가 아무리 높아도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5-49) 이 두 곳의 경문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자신이 율법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들을 미혹하여 “당신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생명도 작으니까 저의 말을 들으면 틀릴 리가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세요.” “그들이 아무리 잘 설교해도 듣지 마세요. 참 도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의 실질은 바리새인들의 표현과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오만 자대(自大)와 진리에 불복하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3.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각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모독하고 정죄합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마 22:15-16)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 그들의 오만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천고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재차 도성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많은 언어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찾고 구하고 고찰하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어떤 말씀이 성경의 글귀와 부합되지 않으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본받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여 정황을 알아보게 한 후 사실을 왜곡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훼방하며, 심지어 거짓 증거를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해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농락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대적하면서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관청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2) 오늘 각 종파의 인솔자들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를, “전능자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정부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청에 보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5. 오늘날의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의 또 한가지 최대 공통점은 바로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도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발표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이런 말씀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의 도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여 모든 은밀한 속사정을 살피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분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이렇다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소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걸을 수 있게 하시고 문둥병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을 미혹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두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새 시대를 개척하셨고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셨으며 모든 비밀을 풀어주셨고 참으로 사람에게 진리ㆍ길ㆍ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아주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번에 도성육신 되어 정복과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무릇 진심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극히 큰 구원을 받아 인성의 살아냄이 갈수록 정상적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알고 패괴 성정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사역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룬 효과입니다. 하지만 각종각파의 인솔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정도 버리고 믿는데 모두 미쳤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오늘의 정죄와 대적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것과 또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들의 끝장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위의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모두 바리새인들의 길을 다시 걷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왜 말세에 재림하신 구주 예수를 저버리고 이전 사람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왜 메시아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최종에는 또 메시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말해보아라, 그들이 이렇게 우매하고 완고하며 이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바로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없고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오만함과 완고함, 진리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대적하고 정죄했는데, 그럼 우리는 오늘 또 어떻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의 재림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처럼 혼미한데, 예수로부터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사역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린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송이송이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를 줄곧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형제자매님, 예수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주님께로 향한 사람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범치 않은 역사는 더욱더 포도원 안의 ‘악한 종’들을 드러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롬 11:33-34 참조) 하지만 사람은 오만 자시하여 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이 정말 이러할까요? 마치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 27:25)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판단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눅 23:44-48) 그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고 규정하며 말세에 도성육신 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든 지간에 우리는 모두 이런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인 이상,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사람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도성육신 되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적ㆍ훼방ㆍ거절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소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신 복음은 여전히 우주 땅끝까지 널리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각성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던 주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하나의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버리고 겸손하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계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님, 우리 함께 현실에 직면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매우 정확한 진리입니다! 미혹될까 두려워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악한 종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유언비어를 곧이듣지 마십시오. 형제자매님, 바리새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대조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리새인들의 몸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며 따라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매사마다 목사나 장로를 따르며 순복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지, 사람을 높여서는 안 되고 사람을 앙망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첫째로 보고 네가 앙망하는 사람을 둘째로 보고 네가 셋째라고 해서는 안 된다. 너의 마음속에 어떠한 사람의 지위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사람을 특히 네가 숭배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등호로 긋고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말한 “마지막 날의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리킵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어느 때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

좋은 교회를 찾으려면 꼭 알아야 하는 2가지 조건

성도들에게 좋은 교회를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 일까요? 좋은 교회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꼭 알아야 할 2가지 조건을 알려드립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질문: 저는 성경의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일까요? 답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전부의 역사, 하나님 경영의 취지,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4장4절에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 사역하셨으면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하고, 또한 하나님 오늘날의 뜻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싹 따르지 못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땅에 있는 사람을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셨는데, 사람들에게 계명, 율례, 법도를 지키도록 요구하셨고, 사람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엄격히 실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 그리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셔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며,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하여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등등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더 이상 율법으로 정죄 받거나 사형 당하지 않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만 지키고 주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할뿐더러 정죄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와 마태 등과 같은 그런 사도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고수하던 서기관, 제사장, 바래새인들은 비록 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전도하고 일생동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었지만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러 오셨을 때, 그들은 율법을 고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신도들 가운데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이 하기 위해 도처에서 예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트려 신도들을 미혹했으며 최종에는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고통을 받고 화비했었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다시 육신으로 돌아 오신 예수님,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 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 나라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가져왔고,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한다는 사역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16장12~13절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진리로 심판, 형벌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실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다만 예수님의 그 단계 구속 사역에만 순복하고 하나님 말세의 역사에 대하여 순복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후,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역사를 거쳐 패괴 성정도 어느 정도 정결케 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역사만 지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는 정형에서 살고 있으며 죄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여전히 죄의 자손들이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4~3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로지 정결함을 얻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전체 경영 계획, 다시 말해 6천년 경영 계획은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뉘는데, 그것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역사한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행한 궤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킴으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해 내는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멈추지 않았고, 그의 발걸음도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이 늘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이 인류를 6천년동안 경영하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3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 나라시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3단계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고 매 단계 사역은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드높고 깊어진 것이고 또한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한 사역입니다. 사람이 만약 율법시대 여호와의 사역만 지키면서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죄는 사함 받을 수 없고 예수님께 인정 받지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에 사람이 만약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만 고집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범죄 본성이 깨끗함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타락함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떠날 수 없고 동시에 사람의 협력도 아주 관건적인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에 순복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오늘날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그 단계 사역은 성도들에게 갈 곳을 예비하는 사역이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야말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을 믿은 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오로지 말세 이 단계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 중에서 한 단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정결케 되어 온전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먼저 계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시를 받지 못했으니 주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

기도하는 방법 - 올바른 기도를 위해 꼭 알아야 할 4가지

기도가 중요한 만큼 기도하는 방법을 찾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더 깊이 있는 기도를 하기 위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 기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4가지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