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일이 바빠 예배하고 말씀 볼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2019년 05월 15일

안녕하세요! 저는 불과 얼마 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새 신자입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당연히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일을 마치고 나면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기운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요?

소동

소동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었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진리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면 예배를 드리거나 일할 때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인식을 말씀드릴게요.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

사실 우리가 일이 너무 바빠 예배드릴 시간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리 추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가치를 깨닫고 진리 실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해방감, 자유를 느낀다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또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겉으로 봤을 때 이해하기 쉽든 심오하든, 전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져야 할 진리이며,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가기 위한 생수의 근원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행동하는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 방향을 공급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한 보장이자 일용할 양식이며, 사람이 굳세어지고 우뚝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창조된 인류가 정상 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가득하고, 인류가 타락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진리가 가득하며,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가득하다. 그는 사람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알도록 인도하고 깨우치는 등불이자 정의와 아름답고 선한 것을 구현하고 가질 수 있게 하는 보장이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구원과 광명의 길로 이끄는 등대이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공급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그저 우리의 의식주만을 해결해 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공허함과 일과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나 문제 등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고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으며 사람과 만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며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이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여러 사람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람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야 한다’라는 사탄의 지배를 받아 지위와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위가 없을 때는 사람과 다투며 지위를 얻은 후에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해치지 않을까 경계해야 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교제함으로써 명예와 이익,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망가뜨리는 방법이며 명예와 이익, 지위를 좇는 사람은 죄악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지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앞에서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사탄의 잘못된 가치관이 바뀌어 일하면서도 명예와 이익, 지위 때문에 환득환실하지 않고 이기기 위해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평온하고 안정되며 자유로워집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마음이 의지할 곳이 생기고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며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평온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됩니다. 마음의 위안과 평안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많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31~32)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식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길 바라지 않으시며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생명을 중시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엘리야는 추격을 피해 산골짜기에 숨었습니다. 그곳엔 아무런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3년에 걸친 대기근 때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거두도록 하셨고, 그들은 약간의 기름과 밀가루로 3년의 기근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형제자매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깊이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며 자신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일이 술술 풀릴 때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할까

우리는 ‘태어났으면 당연히 일해서 돈을 벌고 생계를 책임져야지. 그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육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돈을 법니다. 돈을 더 벌어서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더 나은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길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명예와 이익, 지위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육적인 편안함이나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하나님의 앞으로 올 시간이 사라지고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경배할 기회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단어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란 단어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는 방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게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이 인생의 꿈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진짜로 넘겨 버렸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강한 유혹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는다 해도 다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린 어려서부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사탄의 생존 법칙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법칙의 영향으로 우리는 돈을 숭배하고 육적인 즐거움을 좇으며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등 명예와 이익, 지위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혀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이루고 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타인의 시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고 다른 사람과 서로 뺏고 뺏기며 이익을 위해 속이고 이용했습니다. 결국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심지어 몸까지 상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서도 우리는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무조건 명예와 이익을 좇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도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돈 버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며, 점점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를 이용해 하나님 앞에 있던 우리를 끌어내어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죄악의 늪으로 점점 깊이 빠져 결국 하나님에 의해 사탄과 함께 훼멸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명예와 이익이 바로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며 잡아먹는 방법 중 하나이며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길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인식하고 분별하고 나면 올바른 태도로 일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중심을 바꾸어 일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일할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겪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 성령의 역사를 얻으면 우리 마음은 위안을 받고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은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만 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예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일은 매우 바빴고 매주 몇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이 없으며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고 따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님이 제 어려움에 대한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하나의 사실이 입증된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기준과 멀지 않은 것이다.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 실행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주어지면 가볍게 생각해 흘려보낸다. 사실 그 일이 주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그 일이 너에게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저는 매일 제가 맞닥뜨리는 사람과 일은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제게 배치해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물과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졌는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했는지, 여러 방면의 진리에 진입했는지를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주변의 사람과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을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 삶 속으로 가져 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여 제 생명을 점차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때 제가 식당에서 메뉴를 적고 있을 때 매니저님이 다가와 손님들이 시킨 메뉴에 추가로 몇 개 더 써넣어 돈을 더 받자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간사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저도 손님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니저님에게 찍혀 앞으로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거나, 인센티브가 깎이거나 심지어 일자리를 잃진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문득 이 일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제 곁에서 제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으로 옮겨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며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드린 후 제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고객의 메뉴를 써 내려갔고 매니저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매니저님이 사장님께 제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직원이라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고 진리를 실행한 후 마음속에 찾아오는 평안과 안정,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일을 하면서 저는 주변의 사물과 일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서서히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일할 때에도 힘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샤오둥 형제님, 여기까지 들었으니 아마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합니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지 말고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더 많은 마음을 쏟아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연습을 하며 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과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점점 진리를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며 마음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행복까지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 사랑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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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말한다면 대다수 사람들은 욥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럼 욥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했을까요? 아래에서 하나님을 경외한 욥의 3가지 모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금식 기도를 드렸으나 해결되지 않는 이유

정신 최근, 림하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형제자매가 강건해지고, 자신의 신앙이 굳건해지도록 얼마나 많이 금식 기도를 드렸는지 자신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는 언제나 주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자신의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 걸까요? 림하는 금식 기도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며 호숫가에 있는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동역자 효진이 그를 몇 번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효진이 관심을 보이자, 림하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 몇 년 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저 역시 연약해요. 이번에는 4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는데 모든 상황이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요. 저도 주님의 뜻을 모르겠어요. 제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지 고민도 했어요. 아니면 주님이 저의 믿음을 시련하고 계신 걸까요? 지금 저는 마음이 연약하고 주님께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림하 자매님, 왜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며 주님께 교회가 부흥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데도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기만 하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전제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고생스럽게 금식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을 거예요. 지금 교회의 황량함은 한두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계 전반에 퍼져 있는 문제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에요.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황량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인지 구하고, 아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금식 기도를 드려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굶어서 병이 날 거예요!” 림하가 곤혹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그럼 교회의 황량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죠?” 효진이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봤어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복음 24: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아모스 4:6~7) 바로 이러한 구절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불법적인 일이 점점 많아져서, 도둑질하는 사람과 강간하는 사람이 나오고, 목사와 장로, 유명한 설교자조차도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성경의 지식만 설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증거해서 형제자매에게 숭배를 받으려고 해요. 하나님은 전혀 높이지 않고, 증거하려고 하지 않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형제자매를 자신의 권위 아래 두었고, 하나님 말씀은 진작에 벗어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교회가 어떻게 황량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고, 주님이 돌아오시는 결정적인 시기에요.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고, 성령의 역사도 옮겨갈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아서 어둠 속에 떨어졌어요. 마치 율법시대 말기에 유대교 지도자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오직 사람의 유산만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으며, 소, 양, 비둘기를 매매하고 돈을 바꾸는 곳이 되어버린 성전은 점점 황량해졌죠. 이것이 성전이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린 주요 원인이에요. 또,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때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시 성령의 역사를 얻고 평안과 기쁨과 희락을 누릴 수 있었어요.” 림하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뜻은 지금 교회의 황량함이 율법시대의 말기와 똑같이 목사와 장로가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께 버림받고 진작에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주님은 이미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네, 그래요,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교회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요. 형제자매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같이요. 강단 위에서 하는 설교는 항상 똑같고, 강단 아래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자꾸 손목시계를 보고, 노인들은 쿨쿨 잠을 자죠. 7시에 예배를 시작하면 8시에 도착하거나, 9시에 와서 듣는 사람도 있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도망쳐요. 만약 성령이 아직도 교회에서 역사한다면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목사와 장로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고, 형제자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끌어들여서 마지막에는 주님에게 버려지고 도태될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금식 기도를 드려도 다 소용없어요!” 말하면서, 효진은 태블릿 PC를 켜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루고자 한다. 즉, 전 우주의 사람들이 다 와서 하나님을 알현하게 하고, 다 와서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될 것이다. 요셉에게 먹을 양식이 있었기에 사람마다 먹을 것을 얻으려고 그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된다. 온 종교계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명수의 원천이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어요. 현재 교계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생명수가 흐르는 원천을 찾는 거예요.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가 있어요. 우리는 지금 예언에서 말씀하신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지금 당장 할 일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계속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는 정말 바싹 말라죽을 거예요!” 림하는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 자매님의 나눔은 성경과도 일치해요. 계시록에 기록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교회의 황량함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불안한 외부 상황과 점점 커지는 재난 등 여러 가지 조짐으로 볼 때,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은 모두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능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어린양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까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계시록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시록 2:7) 또, 요한복음에도 있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여러 교회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고, 타락에서 벗어날 모든 진리를 알려주시고, 모든 비밀, 예언, 인류의 결말, 종착지를 다 드러내신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성령이 가장 최근에 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시는 진리의 공급을 누려야 해요. 이렇게 해야 교회의 황량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림하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반평생 성경을 읽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비밀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주님은 벌써 우리에게 알려주셨네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고요. 이것은 계시록의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6~17)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 아닌가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물을 얻기만 하면 교회의 황량함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의 문제는 금식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림하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힘들게 금식 기도를 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던 날은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석양의 어스름이 그들을 비추었고,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빠른 영적 성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진입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게 되고, 영적 생명도 자라날 수 있는데, 성도들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4가지 실행 방법, 함께 알아 보실까요?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오십니까?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성경 참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 3:17)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은혜시대의 모든 사역을 대표하였는데, 그는 성육신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한 은혜시대를 시작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완성하러 온 분이자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시작한 분이다. 그래서 그를 ‘대원수’, ‘속죄제’, ‘구속주’라고 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과 여호와가 한 사역은 내용은 같지 않지만 원칙은 같은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시작하여 땅에서 역사할 근거지, 즉 발원지를 세웠고, 계명도 반포하였다. 이것은 그가 했던 두 가지 사역인데 율법시대를 대표한다. 예수가 은혜시대에 한 사역은 계명을 반포한 것이 아니라 계명을 온전케 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은혜시대를 가져왔고, 2천년이나 지속된 율법시대를 끝마쳤다. 그는 은혜시대를 시작하고 개척한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그래도 구속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사역도 역시 두 가지로 나뉜다. 다시 말해, 새 시대를 개척하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때부터 인류에게는 율법시대가 끝났고 은혜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가 한 사역은 그때 그 시대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그의 사역에 따라 그는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져온 모든 성품은 겸손, 인내, 사랑, 경건, 포용, 긍휼, 자비였고, 사람에게 가져온 것은 풍부한 은혜와 축복이었으며, 또한 사람이 누릴 온갖 물질이었다.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다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또한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에 사람은 구주 예수를 의지했기 때문에 대량의 누릴 물질을 접할 수 있었고, 마음이 평안하고 영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들이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처한 시대와 관계가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의 패괴를 겪었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려면 그 사역 효과를 위해 반드시 풍부한 은혜가 있어야 하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할 수 있는 속죄제도 있어야 하였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내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속죄제, 즉 예수라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예수의 긍휼과 자비만 보았는데, 그런 것은 모두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준 많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였다. 그렇게 해야 그들에게 비로소 유익이 있게 된다. 그들이 은혜를 누림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또한 그들에게 베풀어 준 예수의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예수가 베풀어 준 풍부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만약 예수가 성육신 되어 가져온 성품이 심판과 저주이고 사람이 범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가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은 영원히 죄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은 율법시대에 정지되어 그 시대가 6천년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죄는 점점 많아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어 인류를 만든 의의가 전부 없어지게 되므로 사람은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를 섬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류의 죄업은 오히려 처음에 만든 인류의 죄업을 넘어섰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할수록,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충분히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께 구원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고, 예수가 비싼 값으로 사온 길 잃은 어린양이라 칭함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며, 사탄도 그 사역에 틈탈 곳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하였고, 그들에게 노하지도, 그들을 혐오하지도 않고 오히려 위로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으며, 또한 예수가 그들 가운데서 진노를 발한 적이 전혀 없었고, 그들의 죄업을 포용해 주고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도 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감화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포용으로 인해 비로소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말씀이 육신 된 예수는 비록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늘 제자들을 위로해 주고 공급해 주었으며, 도와주고 부축해 주었다. 그는 많은 사역을 하였고 많은 고통을 당했어도 사람에게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았고, 계속 사람의 죄를 인내하고 포용하였기 때문에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친근하게 그를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라고 불렀다. 당시에 사람이 보게 된, 즉 모든 사람이 본 예수의 소유소시는 긍휼과 자비였다. 예수는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았고, 사람의 과오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시대가 같지 않았기에, 그는 사람이 배부르도록 늘 풍부한 양식을 베풀어 주었다. 예수가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고 병을 고쳐 주며, 귀신을 쫓아내 주고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것은 사람에게 그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가 한 모든 것은 다 진실함과 진지함에서 나온 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썩은 시체를 살려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라도 그의 손에서는 부활될 수 있음을 보게 하였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계속 그렇게 묵묵히 인내하면서 그의 구속사역을 하였다. 사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사람의 죄를 담당하였고, 이미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던 것이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십자가의 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긍휼과 자비와 거룩을 인류에게 베풀어 주었다. 그는 사람에게 한결같이 관용하면서 보복한 적이 전혀 없었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었고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인내하고 포용하고 사랑해야 하고, 그가 걸은 길을 걷고 십자가의 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한 것은 마리아를 사랑한 것을 넘어섰다. 그가 한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런 사역은 모두 그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는 무릇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는데, 가난한 사람은 부유하게, 앉은뱅이는 걷게, 소경은 보게, 귀머거리는 듣게 해 주었다. 심지어 그는 가장 비천했던 궁핍한 그 사람들, 즉 죄인들을 불러 모아 그와 자리를 함께 하게 하였고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계속 인내하면서 “목자가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나중에 찾으면 대단히 기뻐하리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어미 양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을 사랑하였다. 그 사람들이 비록 무지몽매하였고, 그의 안중에는 모두 죄인이었으며, 또한 사회 최하층의 비천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는 오히려 그 죄인들, 즉 남이 업신여기는 그 사람들을 눈동자처럼 여겼고 그들을 마음에 두었기에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또한 예수는 제단 위의 어린양과 같았는데, 그는 그들 가운데서 마치 그들의 종인양 그들에게 마음대로 부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무조건 순복하였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였지만, 높은 강단에 서서 사람을 훈계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혐오와 반감이었다. 그가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한 사역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다만 가끔 책망하고 질책하였을 뿐 구속 사역을 하지 않았고, 표적과 기사도 행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긍휼과 자비를 모두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든 모욕을 참아내심으로 비로소 전 인류를 완전히 구속하였다. 이것이 그가 한 모든 사역이다. 예수의 구속이 없었으면 사람은 계속 죄에서 살면서 죄의 자손이 되었을 것이고, 귀신의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온 땅은 사탄이 기거하는 땅이 되었을 것이고, 또 사탄이 살아가는 땅이 되었을 것이다. 구속 사역은 반드시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이 사함받을 수 있고, 최종에 비로소 온전케 될 자격이 있게 되며,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질 자격이 있게 된다. 만일 이 단계 사역이 없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은 전개될 수 없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데에만 그친다면 사람은 여전히 완전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는 땅에 와서 3년 반 동안 사역하여 구속 사역의 절반만 완성하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고 그 악한 자에게 넘겨져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고 인류의 운명을 장악하였다. 그를 사탄의 손에 넘겨준 후에야 비로소 인류를 속량할 수 있었다. 예수는 세상에서 33년 반 동안 고통과 조소를 받았고, 훼방과 저버림을 당했는데, 심지어 머리 둘 곳이 없었고 안식할 곳도 없었다. 그 후에 또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자신(원문: 全人), 즉 거룩하고 무고한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든 고난을 다 받았다. 집권자들이 그를 희롱하고, 채찍질하고, 심지어 병사들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어도 그는 여전히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고, 죽기까지 무조건 순복하여 모든 인류를 구속하였다. 그때에야 그는 비로소 안식하게 되었다. 그가 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할 뿐 율법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말세 사역도 대체할 수 없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의 실질이며, 인류가 겪게 된 두 번째 시대, 곧 구속시대이다.』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와서는 (단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닌) 타락된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본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가 충만하였고 항상 사람을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와서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는데, 십자가에 올라 인류를 죄에서 철저히 구속하기까지였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었다. 즉,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준 것이다. 그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있었고, 또한 인내와 사랑도 있었다. 무릇 예수를 따랐던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매사에서 인내하고 사랑이 있었고, 그저 고난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에서 발췌 『예수가 왔을 때에도 일부분 사역을 하였고, 얼마의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것은 주로 어떤 사역인가? 그가 주로 완성한 것은 십자가의 사역이다.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여 전 인류를 구속하였는데,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가 된 것이다. 그는 주로 그 사역을 완성하였다. 결과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그 후의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가리켜 주었다. 예수가 온 것은 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전 인류를 구속하여 천국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천국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예수 그 뒤로, 사람들은 모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십자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처음에 다른 사역도 조금 하고 말씀도 좀 하여 사람에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게 하였지만, 그의 직분은 그래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그가 3년 반 전도한 것 또한 이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예비한 것이었다. 그가 몇 차례 기도한 것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었고, 그가 정상 사람의 생활을 하고 33년 반 동안 땅에서 생활한 것도 주로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힘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한 사역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그의 소유소시는 은혜,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관용인데,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것은 바로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이다. 그의 긍휼과 자비에 의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그가 자신을 전부 바치기까지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사탄은 “네가 사람을 사랑하는 이상, 끝까지 사랑해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십자가에서, 곧 죄에서 구해내야 하고 너 자신을 바쳐서 전 인류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탄이 “네가 긍휼 자비의 하나님인 이상,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면 너 자신을 십자가에 바쳐야 한다”고 이렇게 내기를 걸자, 예수는 “인류를 위한 것이기만 하면 나는 나의 전부를 내놓기 원한다”고 한 후 조금도 서슴없이 십자가에 올라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고, 그의 사랑, 그의 긍휼, 그의 구원으로 각 사람을 동반하고 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의 임재를 받아들여야만, 평안과 희락을 얻을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통해 무릇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였는데,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는 구약 성경을 벗어나 한 단계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났다. 이것이 그가 한 사역의 전부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가 당시에 말씀하고 역사할 때, 그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성경 구약 율법시대의 사역에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하였다.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사역에 따라 한 것이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직분에 따라 역사한 것이지 구약 율법에 따라 역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것은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계마다 사역할 때,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하는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고, 이전에 한 사역에 방해되지도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의 가장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새 사역을 전개한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오직 예수는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전개하고 또한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타파하며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그의 낡은 규례대로 하지 않으며 어떤 규례에도 맞추지 않고 그가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시대를 개척하고 또한 하나님이 스스로 시대를 끝마친다. 사람은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을 할 수 없고,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도 할 수 없다.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치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가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쳤고, 또한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사역을 전개하였고,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시대임을 증명하고, 예수는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하나님 성육신의 사역을 끝마치고 전 인류를 다 구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음부의 열쇠도 잡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철저히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보기엔 그의 사역을 단지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만 하였을 뿐 정복하지 않았고, 더욱이 사람의 사탄의 추한 몰골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비록 사망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내가 말씀이 육신 된 모든 목적이 아니다. 예수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그는 나의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지 않고 일부분만 하였다.”라고 말씀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또 성육신의 사역을 잇는 두 번째 계획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최종 뜻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해 낸 사람을 다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원칙

1.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진실한 의의는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절대 종교 의식을 해서는 안 된다. 2. 반드시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에 결부시켜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지 실제를 벗어나 빈말과 글귀 도리를 말해서는 안 된다. 3. 반드시 본분을 하는 것과 생명 진입의 모든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며, 진리를 찾고 구하고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4. 간구하고 기도함에 있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또한 이지가 있어야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거래해서도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기도는 형식만 따르고 과정만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좀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도여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은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흐리멍덩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만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진입한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적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흡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행실을 중요시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이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편차적인 면이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표준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참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사람은 모두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면 매우 괴로워하는데, 괴로울 때 누구와 말이라도 하면 조금 후에는 괴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괴롭지 않아도 자신의 정형은 해결되지 않았다. 때로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훈계와 책망이 임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한 적이 있느냐? 모두 스스로 조절하여 흐리멍덩하게 지나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아무렇게나 하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마치 거지가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가득 주워 담아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모두 제멋대로 한다. 보라, 사람은 항상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가다가 빗나가게 된다. 여기서도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배반이다. 사역을 하다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게 되면, 사람은 또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지?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역을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이 일은 가장 깊은 것이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섬겨도 기도마저 없다면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너의 정형이 비정상일수록 더욱 효과가 없게 된다. 기도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너무 형편없어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사역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도 해내지 못하면 너 같은 사람은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이지적으로 기도했는지 분별해야 하니, 그러면 기도도 할 수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한동안 훈련하면 되기에 괜찮다.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평소에 네가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때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너는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일 기도가 부족하면 너는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매임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잠을 좀 적게 자고 좀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된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훈련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당신께서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저는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케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여 너에게 이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너에게 어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로 사역을 가져오고 기도로 섬김을 가져오는 것이다. 네가 인솔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기도에 공을 들이지 않고 기도를 참답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저렇게 섬기다가 넘어질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늘 혼자 하고 늘 기도가 없이 하나님을 등지고 이것저것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영을 하면 정죄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네가 방해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모독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엇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비록 네가 엇나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성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본분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너는 언제나 ‘이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진리를 찾고 구하며,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은 그런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런 참된 정형과 이런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이 실행 방면에서 범하는 가장 큰 착오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또 어디에서 실현되겠느냐? …… ……네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든 아니면 너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지, 네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이런 것은 네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는 바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일과 모든 진리를 참답게 대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으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에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지, 어떤 것을 사모하든지,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지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지,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지,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지, 이런 말의 표현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저로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얼 무얼 주십시오. 저를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결정한 것이다. 비록 네가 이렇게 기도할지라도 이런 기도에 대해 성령은 ‘네가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이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기도에는 마땅히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고, 당신 앞에서 찾기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며,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하기만을 원합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저에게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주셔서 저로 사역을 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한다면, 이렇게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께 너의 뜻대로 일을 해 달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기도할 때 한 말에 이지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네가 우매하든지, 일부러 그렇게 했든지 너의 기도에 이지가 없으면 성령이 네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기도할 때, 이지 있게 말해야 하고 어조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의 패역을 아십니다. 저에게 힘을 더해 주셔서 이런 환경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시오. 저는 그저 이렇게 구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설사 저로 효력을 하게 하시고 안받침물이 되게 하실지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구하기만 한다면 구한 후에도 역시 빈말 무더기뿐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람의 정형을 아십니다. 이 일에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저의 마음이 당신께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킨다. 만약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면 무미건조하고,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네가 중얼중얼하기만 하고 묵도하거나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것은 순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다. 네가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데 성령이 역사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면 공손하고 정직해야 하며,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율법시대를 보면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칠 때,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또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기도에 이지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은데, 모두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인솔자가 되게 하신 이상, 제가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하고 당신의 사역에 엇나가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꼭 제가 이렇게 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말투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런 기도에는 이지가 없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이지가 없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겠느냐? 네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내게 말할 때 이지가 없는데, 내가 들어줄 수 있겠느냐? 너를 단번에 차버리겠다! 네가 영 앞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앞에 온 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해야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해야 정형을 경건한 위치에까지 조절하여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기도하면 좋아질 것이고, 기름을 바른 것 같을 것이다.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예수의 기도를 언급하는 것은 사람이 꼭 그의 그 각도에, 그 위치에 서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라고 기도하였는데, 즉 만약 할 수 있으면이라는 이런 뜻으로 상의한 것이지 “해 주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순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순복하는 상황에서 기도하였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두 번째도 같은 말로 기도하였고, 세 번째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듬어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완전히 순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조금도 없었다. 그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피 흘릴 것을 생각하니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에 관련되는 일이고 또한 그가 아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더듬지는 못한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것을 생각했음에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아주 순복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정상인데, 조건을 따지며 말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것이다. 첫 번째로 기도할 때는 깨닫지 못하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순복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두 번째도 역시 그렇게 기도했는데, 모두 세 번 기도하였다(물론 세 번 기도한 시간은 3일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 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처음 두 번 기도할 때는 모두 찾고 구하였는데, 역시 순복하는 상황에서 찾고 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어떻게 어떻게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마 너에게 적합한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고 너로 그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사람이 기도할 때 늘 “하나님, 저에게 마련해 주시고,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런 기도는 얼마나 이지가 없느냐! 너는 기도할 때 이지가 있어야 하고, 순복하는 전제하에서 기도해야 하며,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어떻게 어떻게 해 달라고 구해야지.’라고 정해 놓는데, 이런 기도는 너무나 이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그 영이 사람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기도해도 무미건조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