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일이 바빠 예배하고 말씀 볼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2019년 05월 15일

안녕하세요! 저는 불과 얼마 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인 새 신자입니다. 기독교 신자로서 당연히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든 나머지 일을 마치고 나면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기운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돈은 벌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에요.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할까요?

소동

소동 형제님:

안녕하세요. 저도 같은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었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일과 하나님을 믿는 것 사이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그리고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진리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면 예배를 드리거나 일할 때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인식을 말씀드릴게요.

진리 추구의 가치와 의미

사실 우리가 일이 너무 바빠 예배드릴 시간이 없고 하나님 말씀을 보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리 추구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리의 가치를 깨닫고 진리 실행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해방감, 자유를 느낀다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또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겉으로 봤을 때 이해하기 쉽든 심오하든, 전부 사람의 생명 진입에 반드시 갖춰져야 할 진리이며, 사람의 심령과 육체가 생존해 나가기 위한 생수의 근원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행동하는 법칙과 신조를 공급하며,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길과 목표, 방향을 공급한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진리를 공급하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 하는지에 관한 모든 진리를 공급한다. 그는 사람이 살아나가기 위한 보장이자 일용할 양식이며, 사람이 굳세어지고 우뚝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견고한 방패이다. 그에게는 창조된 인류가 정상 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진리의 실제가 가득하고, 인류가 타락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올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진리가 가득하며,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간곡한 가르침과 권면, 격려와 위로가 가득하다. 그는 사람이 모든 긍정적인 사물을 알도록 인도하고 깨우치는 등불이자 정의와 아름답고 선한 것을 구현하고 가질 수 있게 하는 보장이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가늠하는 준칙이자, 사람을 구원과 광명의 길로 이끄는 등대이다.』

이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공급입니다. 물질적인 것은 그저 우리의 의식주만을 해결해 줄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속 공허함과 일과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나 문제 등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세상이 불공평하고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많으며 사람과 만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며 형제자매와 교제하고 이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여러 사람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게 되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람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야 한다’라는 사탄의 지배를 받아 지위와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위가 없을 때는 사람과 다투며 지위를 얻은 후에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해치지 않을까 경계해야 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교제함으로써 명예와 이익,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망가뜨리는 방법이며 명예와 이익, 지위를 좇는 사람은 죄악의 늪에 점점 깊이 빠져 고통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지위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앞에서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사탄의 잘못된 가치관이 바뀌어 일하면서도 명예와 이익, 지위 때문에 환득환실하지 않고 이기기 위해 사람과 다투지 않으며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평온하고 안정되며 자유로워집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건 마음이 의지할 곳이 생기고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이며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평온하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게 됩니다. 마음의 위안과 평안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많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힘쓰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25~2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31~32)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의식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길 바라지 않으시며 자주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생명을 중시하길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과 관련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엘리야의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엘리야는 추격을 피해 산골짜기에 숨었습니다. 그곳엔 아무런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가져다주셨습니다. 3년에 걸친 대기근 때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과부에게 엘리야를 거두도록 하셨고, 그들은 약간의 기름과 밀가루로 3년의 기근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하나님을 따르는 많은 형제자매도 하나님의 이 말씀을 깊이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며 자신의 삶을 모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일이 술술 풀릴 때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심지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넘쳐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할까

우리는 ‘태어났으면 당연히 일해서 돈을 벌고 생계를 책임져야지. 그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육의 사치스러운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돈을 법니다. 돈을 더 벌어서 좋은 집, 좋은 차를 사고 더 나은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길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정확히 말하면 명예와 이익, 지위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육적인 편안함이나 우리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기 위해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결국 하나님의 앞으로 올 시간이 사라지고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경배할 기회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단어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란 단어이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는 방법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게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이 인생의 꿈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진짜로 넘겨 버렸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르고 있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강한 유혹을 느낄 뿐만 아니라, 그것은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는다 해도 다 가지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린 어려서부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등 사탄의 생존 법칙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법칙의 영향으로 우리는 돈을 숭배하고 육적인 즐거움을 좇으며 다른 사람 위에 서려고 하는 등 명예와 이익, 지위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사상에 사로잡혀 우리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이루고 자신을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타인의 시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쏟고 다른 사람과 서로 뺏고 뺏기며 이익을 위해 속이고 이용했습니다. 결국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으며 심지어 몸까지 상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돈을 벌고 나서도 우리는 공허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무조건 명예와 이익을 좇고 하나님을 멀리하며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인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도 점점 흥미를 잃어갔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이 돈 버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며 아예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며, 점점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를 이용해 하나님 앞에 있던 우리를 끌어내어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죄악의 늪으로 점점 깊이 빠져 결국 하나님에 의해 사탄과 함께 훼멸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명예와 이익이 바로 사탄이 우리를 미혹하고 해치며 잡아먹는 방법 중 하나이며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길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인식하고 분별하고 나면 올바른 태도로 일을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일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중심을 바꾸어 일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일할 때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겪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 성령의 역사를 얻으면 우리 마음은 위안을 받고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시간이 없어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해 드릴게요. 막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 저는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은 별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려야만 정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예 몰랐습니다. 당시 저는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일은 매우 바빴고 매주 몇 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이 없으며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 기회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할 때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고 따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님이 제 어려움에 대한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려면 우리 곁이나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무시하지 말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검증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어떠하냐? 너에게 이런 태도가 있다면 하나의 사실이 입증된다. 너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너에게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네가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그 기준과 멀지 않은 것이다.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일이나 평소 사람들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일은 작은 일로 여기고 진리 실행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주어지면 가볍게 생각해 흘려보낸다. 사실 그 일이 주어졌을 때는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때이다. 또한 너는 그 일이 너에게 주어졌을 때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더욱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너의 곁에서 너의 언행을 관찰하고 너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저는 매일 제가 맞닥뜨리는 사람과 일은 경중에 관계없이 모두 하나님께서 세심하게 제게 배치해 주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물과 일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경외심을 가졌는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했는지, 여러 방면의 진리에 진입했는지를 시험하고 검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 저는 주변의 사람과 일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얻을 기회를 많이 놓쳤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 삶 속으로 가져 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여 제 생명을 점차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때 제가 식당에서 메뉴를 적고 있을 때 매니저님이 다가와 손님들이 시킨 메뉴에 추가로 몇 개 더 써넣어 돈을 더 받자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그건 간사한 행위이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당시 저도 손님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니저님에게 찍혀 앞으로 직장 생활이 힘들어지거나, 인센티브가 깎이거나 심지어 일자리를 잃진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문득 이 일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제 곁에서 제가 어떤 태도로 진리를 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으로 옮겨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며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드린 후 제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고객의 메뉴를 써 내려갔고 매니저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매니저님이 사장님께 제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직원이라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보았고 진리를 실행한 후 마음속에 찾아오는 평안과 안정, 그리고 자유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일을 하면서 저는 주변의 사물과 일을 대할 때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서서히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일할 때에도 힘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샤오둥 형제님, 여기까지 들었으니 아마 일과 하나님을 믿는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길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야 합니다.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지 말고 그저 입을 옷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더 많은 마음을 쏟아 더 많은 진리를 갖추고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연습을 하며 하나님 말씀을 우리 삶과 올바른 사람이 되는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점점 진리를 깨우치게 되고 하나님에 대해 점점 알게 되며 마음의 자유를 얻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행복까지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 사랑의 쉼터

  • 추천 내용: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경을 떠나면 가짜이고 이단입니다. 이 말이 도대체 성립됩니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너희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이전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대충대충 하여 속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너는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식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 기도는 천천히 훈련하는 것이다. 평소에 집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기도할 수가 없고, 평소에 소예배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대예배에서도 기도할 수가 없다.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할 말도 없고, 설사 기도한다고 해도 입술뿐이지 진실한 기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너는 이러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네 속의 진실한 정형과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도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더듬기를 구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고할 수 있기만을 구하여라.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전에 당신을 거역했습니다. 오늘에야 제가 정말 패괴되어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을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이 늘 저에게 역사하시고, 늘 빛 비춰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당신 앞에서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당신의 간증을 보고, 당신이 이긴 증거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면,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받을 것이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우면, 언젠가 너의 심지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고, 너의 마음과 전인(全人)까지도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며, 나중에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는 너희에게 있어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네가 기도하여 성령 역사를 얻으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동받을 것이고 네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네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을 털어놓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기도로 마음속 말을 다 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네가 속으로 격려받지 못하였다면, 너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너의 말이 진실하지 않으며 아직도 불순물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네가 기도한 후에 누림을 얻게 되었다면, 너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도 너에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가 부족하면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잠을 적게 자고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으냐?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냐? 이전에 너희는 기도할 줄 몰랐고, 게다가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지금은 기도하는 것을 잘 훈련해야 한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마음으로 당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저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고, 당신의 영이 제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 앞에서 모든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나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당신 앞에서 제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게 하셔서 저의 전인(全人)이 완전히 당신 앞에 봉헌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시련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저는 앞날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죽음의 통제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찾기 원합니다.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운명도 당신의 수중에 있으며, 저의 일생은 더욱 당신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당신이 저로 사랑하게 하시든 아니하시든, 사탄이 어떻게 방해하든, 저는 꼭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이렇게 기도하여라. 네가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점차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진실한 기도에 진입하는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여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의 의의를 깨달을 수도 있지만, 기도에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개인의 기도 생활은 기도의 의의와 기도의 상식을 깨달은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자기의 결함 때문에 간구하며 기도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기초에서 기도하여라.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 생활을 확립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찾고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실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실사구시하고, 방식을 중요시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 체험이 있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 생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묵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등등, 목적 있는 이런 영적 교통의 사역은 모두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게 하고,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든, 묵도하거나 큰 소리로 외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이 네게 이루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기 위한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도달하여 너의 생명이 한층 더 자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제일 낮은 기준은 반드시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너에게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없을 수 있겠지만, 너는 반드시 기도로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조목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너의 영 생활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로 인해, 너는 네게 원래 있던 이상(異象)을 지킬 수 없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며, 심지도 그에 따라 사라진다. 영 생활에 진입한 표징은 너의 기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는지의 여부로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이 실제에 진입해야 하고, 다 의식적인 훈련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실로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너는 처음 기도할 때에 엉뚱한 생각으로 첫술에 배불리려고 하지 말라. 너는 사치한 요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입을 열자마자 성령께 감동받기를 바라고, 입을 열자마자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의 기도를 온전케 하는 것에는 모두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의 믿음을 시련하여 네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지를 본다. 너는 기도할 때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심지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훈련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더듬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감동 더듬기를 중요시하고, 찾고 구하며 모색하기를 중요시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네가 실행하는 길이 틀리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속셈과 관념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으며,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네가 충성하는지를 본다. 어쨌든, 훈련할 때에 너는 대가를 많이 치르거라. 네가 자신이 실행하는 길에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기도해도 된다. 네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기만 하면, 성령은 꼭 너를 이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어떤 때에는 네가 진심으로 기도하는데도 별로 감동을 더듬지 못하게 될 텐데, 그때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기도하는 데에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궤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너의 성정은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다. 진정한 영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성령께 감동받는 생활이다. 성령께 감동받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생활은 영 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종교 의식에 속한다. 자주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 생활에 진입한 사람이다. 사람의 성정은 기도에 따라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될수록 적극적인 성분과 순복의 성분이 더 많아지고, 사람의 마음도 점차 정결함을 받게 되며, 성정도 그에 따라 점차 변화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로 가져온 효과이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니, 사람이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그분은 꼭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매우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끝까지 따르는데, 그분이 그래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좋은 교회를 찾으려면 꼭 알아야 하는 2가지 조건

성도들에게 좋은 교회를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 일까요? 좋은 교회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꼭 알아야 할 2가지 조건을 알려드립니다.

참 진리를 찾고 구함에 있어 갖춰야 할 이성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 』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어떤 것인가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 입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택하심과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고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주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말세에 하나님이 하신 새 사역에 직면하여 어떻게 찾고 구해야 참 도(道)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난측(難測)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1)

관련된 하나님 말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와 매우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을 믿는 일을 매우 간단하고 가볍게 보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게 되고, 끝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글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과 공허한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질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여전히 하느님에게 자신들을 보우하사 평안과 충족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안정시키고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란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가 단지 은혜를 많이 받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이다. 특히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이 시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더욱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시작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텅 빈 도리 가운데서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령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있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흐름 가운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든지 모두 아주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하지 못하면 새 사역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없고, 새 사역에 순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또한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고, 사람의 관념이 아물기 어려운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으며, 계속 역사하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한 무리 또 한 무리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계속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으며,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씩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왜 늘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했으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인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표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모두 사람에게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베드로의 그 풍격이 있게 되면, 그때는 너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떡으로만 배불리는 것’이다. 사소한 간증, 쓸데없는 것, 겉면의 것들만 말하고 실제는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바른길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먹고 마시지 않고 천국에 가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최소한 겉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각 나라, 각 교파, 각 종교, 각 분야를 모두 말씀으로 정복한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온전케 한다.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어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바로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너희가 모두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할 수 있다. 네가 체험한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만약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없다면, 성령이 너에게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찾게 됨으로써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으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것은 바로 실제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이고, 실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며, 그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어 넣어 사람에게 그의 소시(인성 소시(所是)든지 아니면 신성 소시든지)와 그의 말씀의 실질이 가득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사람에게서 살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는 것은 주로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발하는 음성으로 사람의 결점을 대처하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폭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 하고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각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여 더러운 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 얻어지는 가장 깊은 의의는 바로 실제 하나님을 푯대와 본보기로 하여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거리도 없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면 네가 그대로 실행하고 그가 요구한 것에 모두 도달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