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사탄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련의 차이점을 논하다

성경에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약 1:13) 그럼 사탄의 시험과 하나님의 시련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아마 많은 분들은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의문을 자세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하나님 성육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분이고 세례 요한은 그저 선지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신분과 세례 요한의 신분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다음의 3가지 방면에서 구별할 수 있다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볼 때마다, 비록 도리상으로는 알지만 누가 알곡이고 가라지인지를 분명하게 분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이 실생활에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3가지 원칙으로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쉽게 간파하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길에서 우리가 분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하면, 수시로 사이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런 시험에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그릇된 주장과 황당무계한 논리를 분별하는 몇 가지 실행 원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3가지 방법

지금 많은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이 두려워 진짜 그리스도을 찾고 알아보기는커녕 회피와 거절을 선택하곤 합니다. 예수 재림의 중요한 이 시기에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찾고 알아볼 수 있도록,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고 진짜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3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리새인은 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는가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미친 듯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여 결국 하늘에 사무치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 바리새인이 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해야만 했는지 알고 계시나요?

좋은 교회를 찾으려면 꼭 알아야 하는 2가지 조건

성도들에게 좋은 교회를 찾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교회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그럼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 일까요? 좋은 교회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꼭 알아야 할 2가지 조건을 알려드립니다.

목사와 장로를 따르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

많은 크리스천들은 목사와 장로들이 성경을 숙독하고 신학 이론들도 풍부하여, 목사와 장로를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 맞을까요? 자신의 관점이 하나님의 뜻에 맞을지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대다수 유대인들이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정죄한 2가지 이유

며칠 전 저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태복음 27:24~26)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여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을 받은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었습니다. 저는 이점이 한탄스러우면서 또 ‘대체 왜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구하다 보니, 저는 한 책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완전히 성경 안에 국한시키고 유한한 사역에 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한 것임을 증명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정해진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메시아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하나님을 생명이 없는 조각상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너는 높디높은 지위를 가진 저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지,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그들의 명예, 그리고 사탄의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모든 지위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들의 세력과 권세를 바라보면서도 그리스도의 역사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고 있다. …너의 마음속에는 높디높고 크디큰 형상이 우뚝 솟아 있다. 너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그들의 말과 두 손도 잊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의 그들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너희 마음속의 그는 영원히 초라하고, 영원히 경외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권세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으며, 흠모할 만한 곳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단락을 본 저는 대다수 유대 백성들이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째, 그들이 교만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규정하고, 자신의 고정 관념과 상상에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7) 당시 바리새인 및 유대 백성들은 오실 구세주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유대인의 왕이 되어서 그들을 고난에서 건지고, 로마인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부모님도 계시고,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고귀한 신분과 위대한 지위가 없었고, 그들을 이끌고 로마인의 통치를 전복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도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였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도처를 다니며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 예수님의 사역은 곳곳에서 그들의 관념과 달랐고, 성경 글귀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상상과도 맞지 않자 그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정죄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대제사장, 바리새인의 지위와 권세를 숭상하며, 마음속에 오직 사람의 지위만 보았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은 모두 종교계의 지도자로 성경을 숙독하고, 율법에 정통하며, 겉보기에 경건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적으로 항상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지위와 위엄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 백성들은 그들을 숭배하고 올려다보며, 그들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하며, 어디서나 그들을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신은 고귀하지도 않고, 아무 배경과 권세도 없었습니다. 겉보기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일반인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았고, 행하시는 사역은 누구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으며, 예수님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렸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바리새인의 지위만 보여서, 맹목적으로 바리새인의 말을 믿고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 미친 듯이 예수님의 사역을 비방하고 정죄할 때, 그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차라리 바나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결과를 따지지 않은 그 말이 하나님의 성품을 심히 거슬렀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망국을 초래하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세아 4: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태복음 15:9)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일이 닥칠 때마다 분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뒤따라 결국에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대다수 유대인의 실패한 예는 바로 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특히 지금은 주님의 재림의 예언이 이미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3:6) 성경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하셔서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비밀을 전부 열어서 알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사역이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든 아니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고정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규정해서는 안 되며,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 대적하고, 정죄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 야곱, 요한 등은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일에서 지위와 권세의 구속을 받지 않았고, 고정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동적으로 주님의 사역과 말씀을 구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으면 우리도 베드로, 요한처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주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가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참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금식 기도를 드렸으나 해결되지 않는 이유

정신 최근, 림하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형제자매가 강건해지고, 자신의 신앙이 굳건해지도록 얼마나 많이 금식 기도를 드렸는지 자신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는 언제나 주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자신의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 걸까요? 림하는 금식 기도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며 호숫가에 있는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동역자 효진이 그를 몇 번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효진이 관심을 보이자, 림하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 몇 년 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저 역시 연약해요. 이번에는 4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는데 모든 상황이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요. 저도 주님의 뜻을 모르겠어요. 제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지 고민도 했어요. 아니면 주님이 저의 믿음을 시련하고 계신 걸까요? 지금 저는 마음이 연약하고 주님께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림하 자매님, 왜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며 주님께 교회가 부흥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데도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기만 하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전제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고생스럽게 금식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을 거예요. 지금 교회의 황량함은 한두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계 전반에 퍼져 있는 문제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에요.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황량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인지 구하고, 아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금식 기도를 드려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굶어서 병이 날 거예요!” 림하가 곤혹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그럼 교회의 황량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죠?” 효진이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봤어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복음 24: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아모스 4:6~7) 바로 이러한 구절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불법적인 일이 점점 많아져서, 도둑질하는 사람과 강간하는 사람이 나오고, 목사와 장로, 유명한 설교자조차도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성경의 지식만 설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증거해서 형제자매에게 숭배를 받으려고 해요. 하나님은 전혀 높이지 않고, 증거하려고 하지 않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형제자매를 자신의 권위 아래 두었고, 하나님 말씀은 진작에 벗어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교회가 어떻게 황량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고, 주님이 돌아오시는 결정적인 시기에요.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고, 성령의 역사도 옮겨갈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아서 어둠 속에 떨어졌어요. 마치 율법시대 말기에 유대교 지도자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오직 사람의 유산만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으며, 소, 양, 비둘기를 매매하고 돈을 바꾸는 곳이 되어버린 성전은 점점 황량해졌죠. 이것이 성전이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린 주요 원인이에요. 또,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때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시 성령의 역사를 얻고 평안과 기쁨과 희락을 누릴 수 있었어요.” 림하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뜻은 지금 교회의 황량함이 율법시대의 말기와 똑같이 목사와 장로가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께 버림받고 진작에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주님은 이미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네, 그래요,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교회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요. 형제자매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같이요. 강단 위에서 하는 설교는 항상 똑같고, 강단 아래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자꾸 손목시계를 보고, 노인들은 쿨쿨 잠을 자죠. 7시에 예배를 시작하면 8시에 도착하거나, 9시에 와서 듣는 사람도 있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도망쳐요. 만약 성령이 아직도 교회에서 역사한다면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목사와 장로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고, 형제자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끌어들여서 마지막에는 주님에게 버려지고 도태될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금식 기도를 드려도 다 소용없어요!” 말하면서, 효진은 태블릿 PC를 켜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루고자 한다. 즉, 전 우주의 사람들이 다 와서 하나님을 알현하게 하고, 다 와서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될 것이다. 요셉에게 먹을 양식이 있었기에 사람마다 먹을 것을 얻으려고 그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된다. 온 종교계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명수의 원천이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어요. 현재 교계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생명수가 흐르는 원천을 찾는 거예요.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가 있어요. 우리는 지금 예언에서 말씀하신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지금 당장 할 일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계속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는 정말 바싹 말라죽을 거예요!” 림하는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 자매님의 나눔은 성경과도 일치해요. 계시록에 기록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교회의 황량함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불안한 외부 상황과 점점 커지는 재난 등 여러 가지 조짐으로 볼 때,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은 모두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능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어린양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까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계시록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시록 2:7) 또, 요한복음에도 있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여러 교회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고, 타락에서 벗어날 모든 진리를 알려주시고, 모든 비밀, 예언, 인류의 결말, 종착지를 다 드러내신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성령이 가장 최근에 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시는 진리의 공급을 누려야 해요. 이렇게 해야 교회의 황량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림하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반평생 성경을 읽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비밀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주님은 벌써 우리에게 알려주셨네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고요. 이것은 계시록의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6~17)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 아닌가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물을 얻기만 하면 교회의 황량함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의 문제는 금식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림하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힘들게 금식 기도를 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던 날은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석양의 어스름이 그들을 비추었고,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2)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체험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지 아십니까?

송려 지금은 이미 말세의 마지막 때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네 번의 피빛 달 예언도 완전히 이루어졌고, 각종 재난도 나날이 전 인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에나 주변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은“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태 24:23~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을 엄두도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대접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또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여 오히려 참 그리스도를 문밖에 거절한다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수년간의 추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도래를 영접하려면, 우리는 피동적으로 회피하고, 경계하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면의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영접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짓 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라고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세에 거짓 그리 스도는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타내는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고 재림 예수님으로 잘못 알도록 해서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일부 교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모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쫒아내는 등, 하찮은 이적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디모데후서 2장 9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 실질이 악령이 사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사역를 모방하여 보잘 것 없는 이적을 좀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풍랑과 바람을 잠잠케 하는 등의 표적과 기사를 거짓 그리스도는 아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말세에 만약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고, 또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거짓 그리스도이고 악령이 사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이고, 또한 우리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실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개척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사함 받게 하셔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셨는데, 그 모든 사역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시고 역사하시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속해내시기 위해 추호의 원망도 없이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고 더욱이 지위에 서지도 않으셨으며 독선적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표하신 긍휼과 사랑의 성품, 그리고 포용과 인내의 소유소시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에게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비록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이 평범한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완전히 정반대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표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면서 자신을 힘써 추켜세우고,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하는데, 그들이 유로해내는 것은 모두 교만하고 망령되며, 사악하고, 간사한 등의 사탄 성정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합니다. 세째,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진리, 길, 생명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발표하신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 실행의 방향을 가르켜 줄 수 있어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로 지키게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땅위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죄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하는 등을 다 알게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난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킴으로 질서정연한 삶이 있게 되었고 과거의 난잡하고 무질서하던 생활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또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사람을 용서하라는 등을 가르쳐 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인성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중복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행의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요한 등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발표하신 것이 다 진리임을 보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나 악령은 아무리 그리스도라고 자칭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실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에, 그들은 단지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할 줄만 알고 진리는 전혀 발표해 내지도 못하며, 단지 예수님 사역의 기초에서 모방하고, 뒤따르고, 이적을 행하여 사람을 미혹할 뿐, 사람들에게 실행의 길은 전혀 가져다 주지 못해 결국 스스르 무너지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따르던 사람들도 아무런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악령이 들려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의 일부 교파들에 다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위에서 어떻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가 하는 진리 원칙의 교통을 통해, 저는 세상 끝날에 주님이 오실 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을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 어디에나 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사람을 미혹할 때가 바로 참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나셔서 역사하실 때인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갖추어 그리스도의 실질에 대해,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에 대해 알고 분별할 줄을 알아야만 재림하신 예수님, 즉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분명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피동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경계하고 회피하고 듣지 않거나 무턱대고 대적하거나 거절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고 구하며 알아 보고 분별하면서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는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세에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또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시며 진리를 발표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예언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2:11)우리들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발하신 음성과 말씀을 듣고 갈망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꼭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밝히 분별할 수 있게 하시여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조심하세요! 바리새인들의 길을 걸어가지 마세요

이경애 하나님께서 이전에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하신 역사를 회상해보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면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였고 직접 조물주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너무나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예수님이 뜻밖에 우리 가운데 은밀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마치 당시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역사하신 것이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비록 그분의 사역이 완전히 저의 상상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와 위력을 지닌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력을 회상하면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에 직면하여 저는 진심으로 순복하고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대조하고 가늠하였으며 자기의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미 적그리스도로 되어 하나님께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념을 내려놓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실질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실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저는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초의 저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주님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주님의 도래를 저버리고 주님의 도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는 공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메시아를 아예 본 적도 없고 그저 구약 성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소식만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여태껏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역사하시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접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하신 3년 반 동안에 많은 사역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조금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0)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단지 신약 성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조금 알게 된 것이지 전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모두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며, 이 속에는 또 사람의 상상이 너무 많아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시에 성전 안의 사람들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규정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저버릴 수 있었는데, 설마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념과 상상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바리새인과 같은 선택에 직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님, 아래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더욱 분명히 보고 일찌감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영원한 징벌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표현과 오늘날 각 종파에서 말세의 도성육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을 대조해봅시다. 형제자매 모두가 자신의 귀숙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를 신중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1. 오늘의 신도와 바리새인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의 글귀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관념 속에서 오실 그분은 마땅히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며, 다윗처럼 싸움에 능하여 그들을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사 7:14,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상상한 것과 같지 않았고, 그들이 본 것은 성경의 예언(문자 표면상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본 예수님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요 7:52 참조) 성경 예언에는 오실 그분이 임마누엘로 불린다고 했지만 오신 분은 예수로 불렸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와서 정권을 담당하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정권을 담당하시기는커녕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절대 오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에 그들은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상상과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는 안 되고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유대인의 의복을 입고 유대인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날아오셔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은 마치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져 지워 버릴 수 없는 듯하고, 게다가 사람은 또 성경의 근거를(이런 근거는 다 글자 표면상의 뜻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 11)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니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이런 관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런 상상과 관념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상상과 참으로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차 육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굳어진 상상과 관념으로 대조해보는데, 맞추지 못하면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합니다. 거짓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2.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전하는 도가 아무리 높아도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5-49) 이 두 곳의 경문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자신이 율법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들을 미혹하여 “당신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생명도 작으니까 저의 말을 들으면 틀릴 리가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세요.” “그들이 아무리 잘 설교해도 듣지 마세요. 참 도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의 실질은 바리새인들의 표현과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오만 자대(自大)와 진리에 불복하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3.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각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모독하고 정죄합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마 22:15-16)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 그들의 오만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천고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재차 도성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많은 언어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찾고 구하고 고찰하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어떤 말씀이 성경의 글귀와 부합되지 않으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본받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여 정황을 알아보게 한 후 사실을 왜곡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훼방하며, 심지어 거짓 증거를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해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농락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대적하면서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관청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2) 오늘 각 종파의 인솔자들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를, “전능자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정부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청에 보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5. 오늘날의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의 또 한가지 최대 공통점은 바로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도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발표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이런 말씀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의 도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여 모든 은밀한 속사정을 살피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분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이렇다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소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걸을 수 있게 하시고 문둥병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을 미혹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두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새 시대를 개척하셨고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셨으며 모든 비밀을 풀어주셨고 참으로 사람에게 진리ㆍ길ㆍ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아주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번에 도성육신 되어 정복과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무릇 진심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극히 큰 구원을 받아 인성의 살아냄이 갈수록 정상적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알고 패괴 성정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사역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룬 효과입니다. 하지만 각종각파의 인솔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정도 버리고 믿는데 모두 미쳤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오늘의 정죄와 대적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것과 또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들의 끝장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위의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모두 바리새인들의 길을 다시 걷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왜 말세에 재림하신 구주 예수를 저버리고 이전 사람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왜 메시아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최종에는 또 메시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말해보아라, 그들이 이렇게 우매하고 완고하며 이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바로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없고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오만함과 완고함, 진리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대적하고 정죄했는데, 그럼 우리는 오늘 또 어떻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의 재림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처럼 혼미한데, 예수로부터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사역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린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송이송이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를 줄곧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형제자매님, 예수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주님께로 향한 사람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범치 않은 역사는 더욱더 포도원 안의 ‘악한 종’들을 드러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롬 11:33-34 참조) 하지만 사람은 오만 자시하여 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이 정말 이러할까요? 마치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 27:25)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판단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눅 23:44-48) 그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고 규정하며 말세에 도성육신 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든 지간에 우리는 모두 이런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인 이상,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사람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도성육신 되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적ㆍ훼방ㆍ거절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소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신 복음은 여전히 우주 땅끝까지 널리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각성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던 주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하나의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버리고 겸손하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계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님, 우리 함께 현실에 직면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매우 정확한 진리입니다! 미혹될까 두려워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악한 종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유언비어를 곧이듣지 마십시오. 형제자매님, 바리새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대조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리새인들의 몸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며 따라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