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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은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신앙 Q&A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어제 저는 한 교우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예전에 몰랐던 성경의 많은 비밀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저는 듣고서 유익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가 목사와 장로의 행동을 폭로하고, 목사와 장로가 바로 당대의 바리새인이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약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교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목사와 장로를 비판하는 것이고, 사람을 비판하는 것은 주님께 정죄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그러나 교우는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분별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결부시켰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7:15) 교우는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본질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듣고 난 후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무엇이 분별이고, 무엇이 비판일까요? 형제자매님들이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소란 자매

소란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편지를 받게 돼서 기쁩니다! 무엇이 분별이고 무엇이 비판인지에 관해서 저의 깨달음을 나누어 드릴 테니, 우리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우리는 분별할 줄 아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누가복음 12:1) 2천 년 전을 돌이켜 보면, 유대 백성은 바리새인을 분별하지 못해서 맹목적으로 바리새인의 말을 믿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실패로부터 우리는 분별하지 않으면 사람을 따르고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저질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우리 곁에 있는 외식하는 자를 경계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은 비유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분별하는 비유 등은 우리가 진짜 신도와 가짜 신도, 진짜 목사와 가짜 목사를 분별할 줄 알게 해서 사람에게 현혹되거나 지배를 당하지 않고, 이용당하거나 통제받지 않으며, 진실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태복음 15:14) 분별할 줄 모르면 쉽게 잘못된 길로 빠지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따르고 경배해서 결국에는 구덩이 속에 빠지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분별할 줄 아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열심만 있다고 해서 온전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에게는 체험과 인식이 필요하다. 일할 때도 원칙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역사를 얻어야 한다. 너에게 체험이 있으면 많은 일을 분별할 수 있고, 선과 악, 정의와 사악, 혈기에 속하는 것과 진리에 속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이것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길을 잃고 헤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너의 실제 분량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분별하는 것일까요?

무릇 진리로 사람의 영적 상태와 행위를 해부하고, 진리에 완전히 합당해야 하고, 사실에 부합되며 속셈과 목적이 없어야 합니다. 이런 나눔이 바로 분별입니다.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게 하고 현혹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28) 바리새인은 겉으로는 좋은 행동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경건함을 나타내려고 옷가지에도 경문을 가득 수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서 전혀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이 위협을 받았다고 생각해, 예수님의 사역이 율법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로마 정부에 넘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바리새인의 행위로 볼 때 그들이 외식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조금도 거짓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가리켜 한 말씀이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드러내 보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에 부합한다면 이는 비판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목사와 장로에게 대입시켜 본다면, 그들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포용과 인내를 가르치고 연약한 신도를 돕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었을 때만은 전혀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진리를 구하고 알아볼 때, 그들은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손아귀 안에 통제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해 위협하며 진리를 구하고 알아보는 신도들을 백방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는 형제자매들을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이런 모습들을 볼 때, 하나님의 눈에 그들이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이 한 모든 일을 칭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의 행동이 바리새인과 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들을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합니다. 우리가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을 분별하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실제적이고 정확하며 매우 적절해서 전혀 사람을 비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람의 행위를 분별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입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평가하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이 비판하는 것일까요?

사람을 비판할 때는 모두 속셈이 있습니다. 개인의 비열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말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실과 다르고, 과장된 말을 하며, 모든 문제를 정치적 관점에 따라 분석하고,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함부로 규정하고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며 남을 모함해서 사람들에게 고통과 타격과 상해를 가져다줍니다. 예를 들면, 욥이 시련을 겪을 때, 그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도 전에 함부로 욥을 비판했습니다. 성경 욥기 4장 6~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이 말의 속뜻은 욥이 이런 고통을 받게 된 것은 분명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했기 때문이니 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과 연단을 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판단했기 때문에, 욥을 함부로 비판하고 공격해서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결국 욥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린 후에야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욥기 42:7~8)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해서는 안 되고, 함부로 정죄하고 마음대로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미움만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욥을 본받아 입으로 범죄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고 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시련 중에 굳게 섰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세의 오늘날, 우리 곁에는 온갖 비판과 비방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대세에 따르면 안 되고, 반드시 사실과 진상을 알아본 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란 자매님, 이런 나눔이 자매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약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메일로 소통하기를 바랍니다.

신앙 Q&A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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