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좋은 교회를 찾으려면 꼭 알아야 하는 2가지 조건

2018년 10월 27일

세계 각지에서 재난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주님의 재림의 예언이 대다수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교계 전반이 황량해졌고, 신도의 믿음과 사랑은 보편적으로 약하며, 많은 신도들이 세속에 물들어 바쁘게 사느라 주님을 위해 사역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목사와 장로 사이에도 암투를 벌이고,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며, 심지어 패거리를 짓고, 편을 가르며, 헌금을 횡령하고, 문란한 남녀 관계를 맺는 일 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각성하기 시작했고, 본인이 속한 교회가 이미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사방으로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교파가 난립하여 서로 본인이 믿는 교회가 주님의 뜻에 가장 합당한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럼 대체 어떤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참 교회일까요? 어떤 사람은 참 교회를 판단하려면 교회 인원수가 얼마인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무슨 교파인지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각자가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참 교회를 찾는데 필요한 두 가지 원칙에 대해서 교제해 보겠습니다.

초기 성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던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에도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역대하 7:16)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항상 성전에 충만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성전에서 언제나 공손한 태도로 하나님을 섬기고, 누구도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성전에 뛰어 들어가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역대하 26장 참조)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성전은 뜻밖에도 ‘도둑의 소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성전에서 돈을 바꾸고, 소, 양, 비둘기를 암거래하는데도 하나님의 징계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미 성전을 떠나시고 예수님으로 오시어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똑같은 성전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성전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진정으로 합당한 성전이며, ‘도둑의 소굴’이 되어 버린 성전은 이미 하나님의 미움을 받아 더 이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참 교회이고, 그 반대는 거짓 교회가 틀림없습니다.

좋은 교회를 찾는 방법,

참과 거짓 교회를 판단하는 두 번째 원칙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생명이 점점 성장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가 진리를 사랑하는지, 진리를 추구하는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진실로 진리를 이해하고 실행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진리가 장악하고 있는지 아니면 적그리스도가 장악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장악하는지 아니면 악인과 소란을 피우는 사람이 장악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 장로의 설교와 사역이 신도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신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인도할 수 있다면, 그들의 설교를 통해서 신도는 하나님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갈수록 정상화되며, 하나님과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또한 사탄의 성품에서 점차 벗어나서 갈수록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효과들을 이룬다면 목사와 장로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분명한 것입니다. 좋은 목자의 인도로 신도의 생명도 점점 자라납니다. 만약 목사와 장로가 성경의 글귀만 해석하거나, 규례를 가지고 신도를 단속하고 옭아매려 한다면 진리를 나눌 수 없고, 오랫동안 설교해도 신도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 글귀와 영적인 이론만 있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앎이 없으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 실생활에서 정상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목사와 장로는 오랫동안 사역을 해도 신도는 생명의 공급을 조금도 얻지 못합니다. 그들은 신도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자신의 지위와 밥줄을 위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아 나가는 신도를 가로막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전혀 없고 완전히 하나님과 대적하는 악한 종임을 증명합니다.

또한, 진심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고, 진리를 묵상하고 구하며, 맹목적으로 목사와 장로를 따르지 않고, 목사와 장로가 하는 말과 행동이 진리에 합당한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지,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가 있는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의 말과 행동에 대해 진리에 합당하면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이해하고, 분별력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만약 흐리멍덩하게 따라다니다가 복만 받으려 하고, 쓸데없이 소란을 피우는 사람인데 진리를 증오하고 미워하기까지 한다면, 이런 사람은 모두 마귀가 분장을 하고 교회에 들어간 가라지이며, 결국에는 불태워지는 대상입니다.(마태복음 13:30 참조)

만약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다면, 그 교인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이 차츰 자라서 갈수록 진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점점 알게 됩니다. 그럼 그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참 교회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교회가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태복음 7:17~20)

결론적으로, 참 교회인지 거짓 교회인지를 판단하는 관건은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인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분별해 낼 수 있고, 이러한 원칙 및 교회 현황을 근거로 판단하면 어렵지 않게 참과 거짓 교회를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고 하는데,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열심히 사역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먼저 계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시를 받지 못했으니 주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틀렸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말세에 주님이 오시면 왜 영체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써 사람을 억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신복(信服)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만약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분이고 세례 요한은 그저 선지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신분과 세례 요한의 신분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다음의 3가지 방면에서 구별할 수 있다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이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그렇게 행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자신을 반성해 보시고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어릴 적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코끼리의 등에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소경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소경들에게 함께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소경이 손을 내미니 마침 코끼리의 코가 만져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아! 이제 보니 코끼리는 구불구불한 끌채(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처럼 생겼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단단한 상아를 만지고는 바로 “아니야! 코끼리는 쌀을 찧고 옷을 두드릴 때 쓰는 홍두깨(다듬잇방망이) 같아”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후 “아니야! 코끼리는 잡동사니를 담는 삼태기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고는 “틀렸어! 코끼리는 향을 피우는 세발 향로 같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등을 만지고는 “당신들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나서 “사실 코끼리는 뭐 별거 아니네, 두텁고 넓은 벽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만지고는 “아니야! 코끼리는 고목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어깨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기둥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발을 만지고 “아니야! 아니야! 코끼리는 움푹 파인 돌절구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당신들의 말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밧줄로 엮은 길다란 채찍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장님들은 자신이 만진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소경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국왕은 웃으면서 “여러분! 여러분은 크게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진 것은 코끼리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코끼리는 채찍도 돌절구도 아니고, 고목도 담장도 아니며, 작은 언덕도 향로도 아닙니다 ……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있는 여러 교단과 교파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교파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틀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한데,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신청의(以信稱義)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칭함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생명파는 성경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므로 자신들이 거듭남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파는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자신들이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미파는 성경에 다윗이 북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렇게 믿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파는 여호와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여 사람들에게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으므로,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각 교파 사람들이 다 자신들이 믿는 교파의 관점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이 믿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누가 알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들아 ……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크리스천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믿음의 파(派)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에 속하고, 아볼로가 전한 것은 아볼로에 속하고, 게바가 전한 것은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당시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분열되면 안되며,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인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 사람을 믿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인데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몸을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지금까지 전해져 와서, 처음에 바울에게 속하고, 아볼로에게 속하고, 게바에게 속하던 것이 이제는 이미 2,000개(중국 기준)가 넘는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은 뜻밖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관념 속에서 살면서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더군다나 저마다 이치를 말하면서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이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이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 연고이며, 모두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전설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으나 하나님 역사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매우 적게 들은 까닭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한해 믿은 사람도 관념에서 신앙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도 역시 관념에서 신앙 한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언제나 벗어 나지도 못한다. 사람은 또 자기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였다고 여기는데, 어찌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관념이고 소문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난 주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야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막연한 하나님만 믿을 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만물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등등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교리를 지키지만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 자대(自大)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하는 것으로 주님과 거래하여 맞바꾸려고 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거듭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사람들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주님께 가장 인정받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 아래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믿어도 그 믿음이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우러러보고 따랐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위의 사실 앞에서 우리는, 오늘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각자가 자기 것만 고집하고 게다가 또 서로 배척하고, 서로 논단하고, 서로 공격하고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지 않고 이렇게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칭찬하실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이사야서 2장 2절~5절에는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화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우리는 주님의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인 지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각 교파 사람들은 주님의 몸을 사분오열시켰습니다. 오직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ㆍ형벌 속에서 죄악과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모두가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살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민인 것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함으로 심판 사역을 하여 한 무리 이기는 자를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였는데, 이 한 무리 사람은 각 교파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이고, 더군다나 모두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야만 권병과 능력으로 만교(萬敎)가 하나 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주는 다만 어느 한 종파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분을 대표하지 못한다. 교주는 전체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는 있지만 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주는 다만 하나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조물주)과 동등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최종에는 또 조물주의 수중에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어서, 무슨 교파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중의 지고자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류를 적합한 귀숙에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전 우주 아래위에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고 다른 파별이란 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하는 이는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무릇 하지 못하는 자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이외의 원수이다. 사교이라면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원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주도 수많은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주는 그저 한 종교만 통솔할 수 있을 뿐, 모든 종교를 다 통솔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물주는 인류를 창조할 수 있고, 땅에서 인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이 전체 시대를 끝마칠 수 있고, 전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인데, 이미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이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전 인류에게 공개되어 각 교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의 교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다른 교파에서 왔는데, 모두가 방방곡곡에서 모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양과 양육을 받아들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해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은 오직 자신의 관념에서 나와야만 주님의 나타남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을 받아야만 사람은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비로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막연한 가운데서 살지 않게 됩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미국 사람이든 아니면 영국 사람이든 또는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이든지 간에, 너는 마땅히 자기의 국적 범위에서 벗어나 자아를 초월하여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해야 한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한 범위에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많은 사람들은 관념에서 하나님이 어느 한 국가나 어느 한 민족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 하는 의의가 그토록 심오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또한 그토록 중요한데, 어찌 사람의 관념과 사유로써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네가 너의 국적과 민족 관념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래야만 네가 관념의 속박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래야만 네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영접할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方音

어떻게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글자 표면으로 하나님 말씀을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으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이고 사람의 사유이니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관건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진정으로 들림받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 참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계 19:9) 관련된 하나님 말씀: 『‘들림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들림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무릇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무릇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받는다.』 <제104편 말씀>에서 발췌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미 형성되었는데, 전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고 영정(靈程)에 오른다. 유일한 참 하나님이 이미 말씀이 육신 되고 우주의 통치자가 만유를 주관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입증이고 철 같은 증거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 오늘 당신께서 뭇 교회―빌라델비아 교회를 완성하셨고, 당신께서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이미 이루셨나이다. 뭇 성도는 당신 앞에 겸손히 순복할 수 있으며 영 안에서 서로 통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따르며 원천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는 쉼없이 솟아흘러 교회의 흙탕물을 깨끗이 제거하여 재차 당신의 성전을 정결케 하나이다. 실제의 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행하며 자기의 기능과 본분을 알고 최대한 모두 교회를 위해 화비하고 있나이다. 항상 당신 앞에 안정하고 성령 사역에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뜻이 우리 몸에서 가로막음을 받지 않게 하리이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이 있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나이다. 늘 영 안에서 행할 수 있고 성령이 빛 비춰 주고 깨우쳐 주어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행하고 새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나이다. …………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협력과 섬김이 하나로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하루속히 거룩한 영체로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마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앞에 들림받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나타난다.』 <제2편 말씀>에서 발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섬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주 연약해지기도 하고 또 자주 강건해지기도 하면서 모든 행위는 다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는 또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주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며, 주 예수의 영광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땅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이 <계시록>에 예언한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재난을 가져오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며, 그를 따르는, 그의 돌아옴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감개무량하였고, 자신이 말세에 태어나 운 좋게 주님의 강림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다행스러워하였다. 비록 박해는 당하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꿔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이 모든 간절한 바람과 주님이 베풀어 준 은혜는 우리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다그쳐 예배하게 하였다. 혹시 내년에, 혹시 내일에, 또 혹시 더욱 빠른, 사람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여 그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다투며 누구도 뒤떨어지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님의 나타남을 제일 먼저 보는 자가 되기 위해서였고, 주님께 들림받는 자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였다 …………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 ……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그에게 정복되어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와 말씀을 저촉하지 않았고, 온 몸과 마음이 그의 앞에 엎드러졌으며, 오로지 이 한평생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만을 원하였고, 그에 의해 온전케 되어 그의 은총에 보답하고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에 보답하며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역사에 협력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부탁을 완성하기만을 원하였다. ………… 우리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한 무리 평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은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거름 더미에서 끌어올린 궁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정죄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정복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도를 얻었다. 하늘 끝이든 바다 끝이든, 핍박이든 환난이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떠날 수 없다. 이는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고 우리의 유일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