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비교 심리 — 현대인들의 마음속 살인마

오늘날, 사회에는 비교 심리가 특별히 성행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다. '비교심리'의 피해와 마주하며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가?

‘과로사’를 생각하며

최근 몇년간, '과로사'라는 화제는 끊이지 않았고 '과로사'의 사례도 빈번히 생겨났는데, '과로'는 현대인의 직장과 일상에서 생활화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사업을 위해 그리고 원대한 꿈을 위해 몸을 혹사시킴과 동시에 생명의 흐름을 가속화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인터넷에서...

유전자 변형 — 도대체 복인가 아니면 해인가

며칠 전에, 저는 아주 충격적인 뉴스 한 컷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2014년 7월 15일, 미국에서 "미국은 유전자 변형식품에 독성이 있다고 정식으로 공표한다"라고 보도한 내용입니다. 프랑스 과학자가 유전자를 조작한 옥수수는 종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영화 리뷰 <적색 교육> 꺼져가는 불씨, 공산당의 교육

  영화 리뷰 <적색 교육> 꺼져가는 불씨, 공산당의 교육 안녕하세요, 영화 리뷰입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기독교 영화 '적색 교육'이라는 리얼리즘 영화인데요. 아버지 정위국은 종교국 국장으로 종교 신앙을 탄압하는 인물이고 그런 반면, 그의 자녀 정의와 정예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죠. 그렇게 가족 간의 종교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중국 공산당 통치 속에 있는 크리스천들의 어려운 상황을 종교국 국장의 가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공산당 독재체제의 적색 가정은 자녀를 어떻게 교육할까요? 크리스천은 또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중국 공산당의 그릇된 논리를 반박하고 그 사악함을 폭로하며 하나님을 증거할까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영화 리뷰 <아들아, 돌아오거라!>게임에 빠진 청소년의 변화기

  영화 리뷰 <아들아, 돌아오거라!>게임에 빠진 청소년의 변화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화 리뷰입니다. 요즘 종교 소재 영화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주인공이 신앙의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죠. 오늘 제가 소개할 영화, <아들아, 돌아오거라!>도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과 인도 등 여러 국가에서 많은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요. 특히 미국의 기독교 영화제에서 최우수 교육 영화 등 총 7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습니다. 이 영화는 게임에 빠져 자신을 잃어가던 고등학생 이신광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로 게임의 중독성과 해악을 깨닫고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하나님 집에 돌아와 새 삶을 살아가는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내 집은 어디에>, 국제 기독교 영화제 노미네이트, 주최 측 "세계는 이런 영화를 원한다"

  <내 집은 어디에>, 국제 기독교 영화제 노미네이트, 주최 측 "세계는 이런 영화를 원한다"   2018년 5월 5일 국제 기독교 영화제가 미국 남부 지역 올랜도에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행사 기간 세계 각국에서 제작된 기독교 영상 작품 700여 편을 선보였습니다. 그중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내 집은 어디에>가 최우수 각본상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좋은 성적이 좋은 운명을 가져다줄까요

어느 날, 친구가 자기 자식이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매우 고민스럽다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녀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명문대에 갈 수 있고 명문대를 졸업하면 일정한 수입이 있는 직장에 다닐 수 있으며 좋은 직업이 있어야만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자식들이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하지 못할지라도 돈을 들이고 연줄을 써서 좋은 학교에 다니게 합니다. 친구의 말에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늘 저에게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라고 얘기해주셨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선생님이셔서 저에 대해 아주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열심히 공부해야 했는데 문제집도 남들보다 더 많이 풀어야 했고 남들이 놀 때에도 공부를 해야 했으며 남들이 잘 때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적은 항상 평범했습니다. 평범한 대학, 평범한 직업, 평범한 생활…… 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학교에서 아주 말썽을 부리던 친구가 지금은 오히려 회사를 세워 사장이 되었고, 심지어 일찍 중퇴했던 친구들은 요리를 배워 식당을 차려서 아주 잘 나가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친구는 성적이 아주 우수했지만 지금은 힘들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성적이 정말로 좋은 운명을 가져다주는지 의아했습니다. 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독립할 때 그가 어떤 사회 환경에 직면할지, 어떤 직업과 사업에 직면할지, 이런 것은 모두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그의 부모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붙어 좋은 전공과목을 택하고 졸업한 후 마음에 드는 직업을 얻게 되는데, 인생길에서 내디딘 첫걸음이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롭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기능을 배우고 익혔지만 자기에게 맞는 직업을 도무지 찾지 못하고 자기의 위치를 찾지 못하며 자기의 사업이 있다고는 더욱 말할 나위도 없는데, 인생길에서 내디딘 첫걸음이 곳곳마다 좌절을 겪고 우여곡절이 가득하고 앞날이 암담하고 인생이 막막하다고 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고생스럽게 공부해도 결국에는 고급학부와 인연이 닿지 않아 마치 명예 지위와 인연이 없는 것으로 운명이 정해진 듯한데, 인생길에서의 첫 번째 소원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고 앞길이 순조로운지 아니면 험난한지 평생 처음으로 사람의 운명에 변수가 가득함을 느끼고 따라서 인생에 대해 공포로 가득차고 기대도 가득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문화 지식이 비록 높지 않지만 책을 쓸 수 있어 제법 유명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일자무식이지만 상업에 종사해 이익을 얻고 자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사람이 어떤 직업을 택하든, 무엇을 생계로 하든, 잘 택하고 잘못 택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가? 사람의 소원과 결정에 근거하는가? 다수 사람들은 모두 일을 적게 하고 돈을 많이 벌고 가만히 있으면서 바람도 맞지 않고 햇볕에 쬐이지도 않고 그럴듯하게 입고 어디를 가든 체면이 서고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가문을 빛내고 싶어한다. 사람의 소원이 이처럼 ‘완미’하지만 사람은 인생길의 첫발을 내디딜 때 점차 사람의 운명이 그처럼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또 사람이 대담하게 자기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고 아무 거리낌없이 여러 가지 꿈을 가질 수도 있지만 사람에게 자기의 꿈을 실현할 능력과 권력이 없고 자기의 미래를 장악할 능력도 없음을 처음으로 진정 의식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현실은 영원히 사람의 꿈과 거리가 있고 영원히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뜻대로 될 수 없으며, 사람은 이런 현실 속에서 흡족함을 얻을 수 없고 만족함을 얻을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거듭 시도해보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갖가지 경로를 찾아 자기의 밥줄과 자기의 전망을 위해 또 자기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갖가지 노력과 희생을 한다. 하지만 최종의 결과는 사람이 설령 사람의 노력에 의해 자기의 꿈과 소원을 이룰지라도 영원히 자기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고 사람이 어떻게 몸부림치든지 다 자기의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이 크든 작든, 아이큐가 높든 낮든, 심지가 있든 없든 하지만 운명 앞에서는 사람마다 평등하며 크고 작음과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람이 일생 동안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무엇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지, 재부를 얼마큼 소유하는지는 사람의 부모에게 달려있지 않고 사람의 재능과 사람의 노력이나 야심에도 달려있지 않고 오직 조물주의 명정에 달려있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저는 그동안 몰랐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어떠한지는 어떤 학교를 다니는지와 관계가 없고, 성적의 좋고 나쁨과도 관계없고 부모님과도 관계없으며 이 모든 것은 다 조물주의 명정에 달렸습니다! 아무리 반항하고 몸부림쳐도 사람은 영원히 자기의 운명을 바꿀 수 없고 자기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어려서부터 많은 이상을 품고 완벽한 인생을 꿈꾸면서 이런 이상을 위해 노력하고 온 힘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실현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조물주의 명정에 달렸습니다! “오십천명(五十天命, 오십이 되어 천명을 안다)”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즉 반평생을 몸부림치다가 더 이상 몸부림치지 못할 때가 되어서도 조물주의 명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그때에야 비로소 ‘천명은 거스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운명에 대해 순종이 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이상 차라리 “사람이 할 일을 하고 천명에 따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자식이 어떤 학교를 다니든, 성적이 좋든 나쁘든 다 하늘의 뜻이 있으니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씀을 본 후 저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도 보여주었는데 그 친구도 많은 것을 깨닫고 자식의 인생을 정확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 리뷰 <공산주의 유언비어―중국 공산당 세뇌기록> 크리스천들의 사상을 파괴시키는 중국 공산당의 만행

  영화 리뷰<공산주의 유언비어―중국 공산당 세뇌기록> 크리스천들의 사상을 파괴시키는 중국 공산당의 만행 여러분, 안녕하세요 <동방의 빛——영화 가이드>입니다 오늘 제가 들고 온 영화는 공산당이 중국 전역에 '세뇌 교육원'을 만들어 크리스천들에게 강제로 사상을 전향 교육을 시키는 내용이죠. 바로 <공산주의 유언비어―중국 공산당 세뇌기록>입니다. 이 영화 제목의 '선언'이 '유언비어'로 바뀌고 있는데요. 그럼 공산주의를 왜 '유언비어'라고 했을까요? 이 영화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걸까요?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같이 보시죠.

영화 리뷰 <내 집은 어디에> 마음의 안식처를 찾다

  영화 리뷰 <내 집은 어디에> 마음의 안식처를 찾다 영화 <내 집은 어디에>는 한 크리스천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정말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감독은 복선과 암시로 나누어 '집'에 대한 스토리라인을 잡아 촬영했다고 하는데요, 복선은 주인공 문아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문아가 2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이혼하고 각자 새 가정을 꾸립니다. 문아는 아빠를 따라갔지만 새엄마가 탐탁지 않아 하고 친엄마는 친엄마대로 바쁜 일 때문에 돌봐주지 못합니다. 어린 문아는 아빠, 엄마, 친척 집을 오가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빠와 서로 의지하며 살지만 수능을 앞두고 엄마는 중풍, 아빠는 간암 말기라는 연이은 불행이 닥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모두 문아를 떠나가고 문아는 어려움에 빠지게 되죠.. 문아의 그림은 모티브인데요,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그림으로 캐릭터들의 감정을 보여 주며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죠. 첫 그림에는 네 가족이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다가 그림이 두 장으로 나뉘며 한 장에는 문아와 아빠, 또 다른 한 장에는 언니와 엄마가 있습니다. 행복했던 한 가정이 두 가정으로 나뉜 것이죠. 문아가 언니에게 "다른 친구들은 다 집이 하난데 왜 우린 두 개야?"라고 질문했을 때 언니는 그림을 합치면서 "이럼 온 가족이 같이 있네!"라고 대답합니다. 순수한 두 아이의 대화는 가슴 아픈 현실과 대비됩니다. 문아에 대한 동정심이 생기는 한편 물질만능주의를 강조하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가족의 정은 점차 사라져가고 유수 아동, 독거노인 등 사회문제는 점점 심각해져만 가는데요, 이런 것은 인류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요?

수백 년간 봉해져 있던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다시 빛을 보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위치한 성묘교회 안에 있는 예수의 무덤이 수백 년간 봉해져 있다가 현지 시간으로 10월 26일에 200여 년만에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프랑스 통신사와 영국의 '데일리 스타(Daily Star)'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묘교회를 복원하던...

‘성형’을 말하다

성형은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이 너무 크거나 코가 오똑하지 못하다는 등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뼈를 깎고, 보형물을 넣고, 필러를 맞는 방법으로 자신의 외모를 바꾸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 끊임없는 ‘탐구’에 따라 보톡스는 성형 수술의 필수 ‘양약’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름을 없애기 위해, 곧 소위 말하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독극물을 투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보톡스가 일종의 치명적인 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맞으면 신경 계통이 파괴되고, 만약 장기간 사용하게 되면 심각하게는 얼굴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즉, 안면 신경이 마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성형 수술을 하는 걸까요? 사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다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으면 모두에게 주목받을 수 있어. 얼굴이 예쁘면 좋은 직장을 좀 쉽게 구할 수 있고 이상적인 배우자를 구할 수 있으며, 좋은 전망이 있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욕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통을 참아가며 거액의 돈을 들여서라도 성형 수술을 하는데, 이것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망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형 수술을 하고 나면 정말로 사람이 상상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형 과정에서 사람은 또 무엇을 경험하고 맛보게 됩니까? 성형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성형하면 대표적인 인물로 미국의 유명 가수 마이클 잭슨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10여 차례의 안면 성형 수술을 받았는데, 코 6차례, 턱 3차례, 입술 2차례, 볼 2차례입니다. 그의 코는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가장 기괴한 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형 수술을 너무 많이 받은 탓에 얼굴이 무너지고 헐어서 곪아 가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원래는 자신을 완벽한 모습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결과는 결코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얼굴을 언급하면 대중들은 다 미간을 찌푸리고 머리를 흔들면서 성형 수술 후의 마이클 잭슨을 하나의 괴물로 생각합니다. 정상인의 얼굴이 이미 성형 수술로 완전히 딴판이 된 것입니다. 고액의 성형 수술 비용은 둘째 치고 반복되는 피부이식, 즉 인공 보형물을 제거하고 집어넣고 또 뼈까지 깎는데, 육체에 가져오는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거울을 통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이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고통은 도대체 누가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제 주변에도 성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한(韓)모양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친구의 얼굴은 수술을 받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그 친구는 아주 귀엽고 꽤 예쁘게 생겼는데, 그 친구 스스로는 항상 자신이 그다지 예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친구는 성형 수술 전에 자주 저에게 “내 코가 조금만 더 높고, 눈이 조금만 더 크고, 턱이 조금만 더 뾰족하고, 양 볼이 조금만 더 작고, 입술이 조금만 더 도톰하면 완벽할 텐데! 그 어떤 미남을 만나도 당당할 수 있잖아.”라고 말했습니다. 친구의 소원은 성형으로 자신을 더 아름답게 만든 후에 키 크고, 돈 많고, 잘생긴 남자를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면 위험이 크고 일단 성형 수술이 잘못되어 전보다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늘 친구를 말렸습니다. 게다가 성형 수술은 매우 아파서 보통 사람은 참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오히려 “여자는 말이야, 자신에게 모질어야 해. 아이를 아까워하면 늑대를 잡지 못하는 법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고집 끝에 2년이란 긴 시간의 성형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친구가 아름답게 보이고 “좋은 미래”를 위해 그런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는 것과 마지막에는 성형이 실패해 그가 받는 고통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제일 먼저 받은 수술은 볼을 갈고 뼈를 깎은 것이었는데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저는 친구가 어떻게 그런 수술을 받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볼을 갈고 뼈를 깎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얼굴 생김새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구강 내부 아래턱 부위에 칼로 살을 갈라 뼈가 드러나게 한 후에 쇠톱으로 뼈를 잘라내고 봉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친구를 보았을 때는 온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얼굴은 팅팅 부어올라 원래 모습을 조금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놀란 나머지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친구가 맞는지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는데, 친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며칠만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수술을 받은 뒤라 밥도 먹지 못하고 웃지도 못하고 물만 마시는 그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인가? 사랑을 위해서인가? 행복을 위해서인가? 행복은 고사하고 고통에 시달릴 뿐이었는데 도대체 무엇에 이끌려 그런 쓰라린 대가를 치르는 건지 아무리 해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의 큰 성형 수술을 겪고, 그 친구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예뻐지기 위한 계획의 그 “성과”를 자랑스럽게 뽐내었습니다. 이어서 친구는 자신의 얼굴의 각 부위를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건드리기 시작했는데, 얼굴이 부어서 돌아오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눈이 불편하고 흐릿하다고 하더니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고 계속 눈물을 흘리며 머리까지 아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 다녀온 친구는 눈물을 줄줄 쏟으며 코에 넣은 실리카겔을 불합격된 걸로 써서 피부 조직이 감염돼 빨리 보형물을 다시 빼내야 된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보형물을 빨리 빼내야 낫지 않겠냐고 말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보형물을 뺐고, 그로 인해 코가 내려앉고 콧등에는 주름살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 그 친구는 다시는 거울을 보지도 않을 것처럼 자리에 누워 눈물만 흘리며 매일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성형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친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고집한 성형이 결국은 자신의 얼굴을 망가뜨렸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제 친구와 같은 이러한 예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성형 실패로 마지막에는 자살을 택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고통은 도대체 누가 가져다준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답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하나하나의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그럼 이런 조류는 어떤 것인가? 이 조류는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조류가 유행될 때, 아마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봉이 되어 그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런 사상과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도 부지중에 계속 이런 조류에 감염되고 동화(同化)되고 매료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조류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런 조류에 파묻히고 통제되기까지 한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에게 기꺼이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이 모든 고통은 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고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도 없기 때문에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과 시험으로 사람은 야심과 욕망의 지배를 받아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예쁘고 완전무결함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외모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합니다. 이로써 차츰차츰 사탄에게 유혹되어 타락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형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하나의 방식이고 역시 하나의 조류인데, 이 안에는 사탄의 음험하고 잔인한 속셈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런 허황된 것을 이용해 미모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사람을 미혹하고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를 참해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람의 심령을 패괴시켜 정상 인성을 잃게 합니다. 사람의 우매하고 무지함으로 인해 부지중에 사람은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고통이든 참고 이겨내서라도 아름다운 얼굴로 바꾸려고 하는데, 결국에는 사탄에게 속고 괴롭힘 당해 이런 사악한 조류에 휩쓸려 미혹돼 헤어나오지 못하고 또 마지막에는 자신을 망치고 어떤 사람은 생명까지도 잃었습니다. 볼 수 있는 바, 사탄이 손을 어디까지 내밀면 거기에는 사탄이 손을 뻗치는 곳은 더 이상 평안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악과(惡果)는 다 사탄의 사탄이 이런 사악한 조류를 통해 사람에게 가져다준 것이고, 사람을 갈수록 타락하게 하고 갈수록 악독하게 하고, 양심과 이지를 잃게 하는데, 사탄은 바로 이렇게 아무도 몰래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 이래,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품, 소질, 생김새, 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 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오게 한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누리게 하는 것은 네가 얻어야 할 몫인데, 내가 창세 이래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또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서 말씀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생김새가 생긴 게 별로라 성형 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성형 수술을 하면 조금 바뀔 수는 있겠지만 손해가 너무나 크고, 수명에 영향을 줍니다. 성형이 생김새는 바꿀 수 있겠지만 운명도 바꿀 수 있습니까? (바꿀 수 없습니다.) 운명은 절대 바꿀 수 없고, 죽을 때가 되면 죽습니다. 잘못하면 더 일찍 죽을 수도 있는데,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성형은 수명을 단축시키는 것이고, 좋은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너무 크다고 갸름하게 깎으려고 하는데 고생이 아닙니까? (고생입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잘생긴 얼굴을 본다고 뭘 할 수 있습니까? 좋은 배우자를 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에게 정해 놓으신 혼인을 바꿀 수 있습니까? 만약 줄곧 음란을 행하면 또 저주를 받을 것인데 도리어 골칫거리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 사람의 생김새는 모두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고, 사람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고친다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명정과 안배를 어기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방법으로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데,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현실적입니까? 인류는 하나님 수중의 조그마한 피조물이고, 사람의 힘은 너무나 작아서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인류가 어찌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인류가 패괴된 근본 원인과 인생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인류는 오직 하나님 앞에 와야만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고 좋은 전망과 운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혼인이 어떠한지, 사람의 그 일생이 가난할지 부유할지는 조물주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신 것이지, 사람이 외모를 고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형으로 혼인을 바꿀 수 있고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구실들은 모두 사탄이 사람을 기만하는 허튼소리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꿈을 엮어 주어 진짜인 것처럼 믿게 하는데, 이것은 사람을 참해하고 패괴시키는 거짓말이고 수단입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사탄은 실질이 사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만 일삼고, 하늘의 뜻을 어기는 짓만 저지르는데, 오늘날 패괴된 인류도 이와 같아 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멀리하게 하며 하나님의 주재를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피의 교훈에서 보다시피, 성형은 사탄이 가져온 사악한 조류로 그 목적은 바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참해하다가 최종에는 망치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은 모두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고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배해 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떨쳐버릴 수 있고 홀가분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인류의 장수 비법

편집자의 말: 자고이래로 인류는 끊임없이 탐색하고 찾고 구하면서 장수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오늘날은 더욱더 첨단기술을 함부로 사용해 인류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약품을 연구 제작하는데, 도대체 누가 진정으로 사람에게 장수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장수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사회 풍조”는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여름 방학에 딸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딸이 집안일을 좀 도와서 저의 부담을 덜어줄 거라고 내심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딸은 밥 먹고 자는 시간 외에 인터넷만 하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딸이 계속 사이버세계에 빠져 살다가 퇴폐해질까 봐 너무 애가 탔습니다. 제가 늘 딸에게 눈 버리지 말고 밖에 나가 활동을 좀 하라고 말했지만 딸은 듣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지금 인터넷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없는데 힘들게 걸어다닐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딸이 컴퓨터에 홀린 것을 제 힘으론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애들이 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와는 말 한마디 하려 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얘기라도 좀 해 보려고 말을 걸면 짜증만 냅니다. 채팅과 영화와 게임에 빠져서 인생의 목표도 없고 인정머리란 조금도 없습니다. 딸이 이 지경이라 저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딸은 원래 이렇지 않았고 말을 잘 듣는 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저에게 말해 주었고 집안일로 힘들어할 때는 어깨도 주물러 주면서 엄마를 아낄 줄 알았습니다. 학교를 쉬는 날이면 스스로 밥이며 빨래며 청소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 딱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자기들 애들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컴퓨터를 뺏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PC방으로 갈 것이 뻔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회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한탄할 뿐이었습니다. 비단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세상이 다 사회 풍조에 따라 엉망이 돼버렸습니다. 남자들은 돈이 있든 없든 바람을 피우고 여자들은 집안일은 뒷전이고 너만 그러냐 나도 그런다는 식으로 부부의 신뢰가 무너져 버린 가정이 부지기수입니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에서 서로 “아내를 바꿔” 즐긴다는 글을 보게 됐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이 정말 너무 사악하고 무섭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 세상이 어떤 지경이 될까요? 세상은 갈수록 발전하고 경제 생활도 향상하는데 왜 사람은 갈수록 타락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나서 계속 그분이 하신 말씀을 보면서 저는 인류가 사악하고 타락한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있은 이래, 과학과 지식이 인류의 심령을 차지하였고, 더 나아가 과학과 지식이 인류를 통치하는 도구로 되어 인류에게 하나님을 경배할 넉넉한 공간을 없이하였고 하나님을 경배할 더 많은 유리한 조건을 없이하였으며, 온 인류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지위는 갈수록 하락하였다.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세계는 어둡고 소망이 없고 공허하다. 이에 따라서 많은 사회 과학자ㆍ역사학자ㆍ정치가들이 일어나서 그들의 사회 과학론ㆍ인류 진화론 등등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진리와 어긋나는 이런 논조들을 발표하여 인류의 두뇌와 심령을 충실케 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하였음을 믿는 사람은 점점 적어졌고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많아졌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역사의 기록과 하나님의 구약시대에서의 말씀을 신화로 대하였기에 하나님의 존엄과 하나님의 위대함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신조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희미해졌으며, 인류의 존망과 국가 민족의 운명이 사람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인류는 모두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만약 한 국가나 민족의 인류가 하나님의 구원 또는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면 이 국가와 민족은 몰락으로 나아갈 것이고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훼멸될 것이다. 혹시 너의 국가가 현재 매우 흥성하겠지만 네가 만일 너의 국민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하게 한다면 이 국가는 갈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국가의 문명이 갈수록 더 많이 사람에게 짓밟히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이 국가의 인류가 일어나서 하나님을 반대하고 하늘을 저주하고 욕할 것이다. 부지중에 한 국가의 운명이 이렇게 상실된다. 하나님은 강대한 국가를 일으켜 하나님께 저주받는 그런 국가들을 대처할 것이고, 심지어 지구에서 이러한 국가를 소실되게 할 것이다. 한 국가나 민족의 흥성과 존망의 관건은 이 국가의 통치자가 하나님을 경배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있고, 그의 국민을 이끌어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하는지 하지 않는지,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있다. …… 왜냐하면 어느 한 국가의 통치자도 하나님에게 그의 국민을 통치하게 하지 않을 것이고, 어느 한 국가의 정당도 그의 백성을 조직하여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이 매 국가, 매 민족, 매 집권당의 마음속에서 심지어 각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에게 있어야 할 지위를 잃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에 일부분 정의의 세력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통치는 매우 취약한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정치 무대는 혼란한 것이고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번화하여 사람들이 보고 마음이 모두 거기에 끌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사기꾼들과 술법사들은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만약 네가 진보하려고 하지 않고 꿈이 없다면 이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갈 것이다.』 『사탄이 유혹한 후, 사람의 육체가 타락된 후 이런 것이 있게 되었고, 육체의 고통, 육체의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패괴(역주: 부패, 타락)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후에 점점 타락되었고 사람의 질병도 점점 심해졌으며 사람의 고통이 점점 심해졌고 더욱더 인간 세상의 공허함, 인간 세상의 비참함, 인간 세상의 생존불가를 느낀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대해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패괴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어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문득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류가 이토록 사악하고 타락한 것은 소위 ‘과학 의 성과’에서 총결해낸 여러 가지 사설과 그릇된 논리의 미혹과 통제를 받음으로 인해 사람이 갈수록 타락되고 갈수록 인성이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목숨도 하나님께서 주셨기에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히려 과학ㆍ지식을 치켜 세우며 이것으로써 사람 마음속의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하게 하였습니다. 인터넷 게임을 보면 폭력과 살육으로 가득차고 사람으로 하여금 사이버세계에 빠져들게 하는데 무의식중에 바로 사탄을 숭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쇼핑은 “편하다”는 간판을 내걸고 동시에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 생활에서 조금씩 떠나 사이버세계에 빠지게 합니다. 사람은 점점 폐쇄하고 자아가 강해지는가 하면 갈수록 이기적이고 비열해져 주위 사람에게는 관심을 갖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 풍조는 조금씩 사람의 마음을 부식시켜 사람은 갈수록 타락하고 공허하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의 타락으로 초래된 것입니다. “과학의 성과”의 미혹 때문에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고 주관하는 하나님임을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점차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최종에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이러한 사회 풍조가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하였고 동시에 인류가 하나님의 인도를 잃으면 고통스러운 처지에 빠지게 됨을 알게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딸에게 보여 주면서 딸이 사회 풍조를 따르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사람을 점점 더 타락 되게 하고 공허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니 인류는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충실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