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성육신이란 무엇일까요? 성육신의 실질은 또 무엇일까요?

성경 참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 14:9~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 10:30)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이란 바로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고, 하나님이 육신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한 이상, 일단은 반드시 육신이어야 하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함의는 바로 육신에서 역사하고 육신에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정상 인성이 있는 그리스도는 영이 실제화되어, 정상 인성이 있고 정상 이지가 있으며 두뇌의 사유가 있는 그런 육신이다. ‘실제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 거하는 것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통해 자신의 신성의 역사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화’, 즉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하나님 성육신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칭하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도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짜이다. 그리스도란 땅에서 창현(彰顯)되는 하나님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땅에서 사역을 전개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역사를 완성하는 하나님만의 특유한 육신을 가리킨다. 이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육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육신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 수 있는 육신이며, 하나님을 충분히 대표할 수 있는 육신이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바로 그가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조된 어떤 인류보다 높고,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는 어떤 사람보다 높다. 이런 연고로 그와 같이 사람의 외형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오직 그만이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며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피조된 인류이다. 똑같이 인성을 구비했지만 피조된 사람은 인성 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성육신은 다르다. 그의 육신에서 인성 외에 가장 주요한 것은 바로 신성이다. 인성은 육신의 외관상으로 볼 수 있고, 또한 일상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신성은 사람에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신성은 인성이 있는 전제하에서라야 발표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비범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가장 발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신성이다. ……하나님이 성육신 되었다고 한 이상, 그의 실질은 바로 인성과 신성의 결합이다. 이 결합을 하나님 자신이라 칭하고, 또한 땅에 있는 하나님 자신이라 칭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그가 성육신하여 생활하고 역사한 것은 모두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는 직분을 시작하기 전의 생활인데, 보통 사람의 가정에서 생활하고 극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상 생활의 윤리와 법칙 그리고 사람의 정상적인 필요(먹고, 입고, 자고, 거하는 것)가 있고, 사람의 정상적인 연약이 있으며, 정상인의 희로애락이 있다. 즉, 첫 번째는 신성이 아닌 완전히 정상적인 인성에서 생활하면서 정상인의 모든 활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직분을 시작한 이후의 생활인데, 여전히 정상 인성의 외형이 있는 보통 인성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그는 외적으로 초자연적인 것들이 전혀 없고, 직분하는 것을 생활로 한다. 이때의 정상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직분을 할 때의 정상 인성이 이미 충분히 직분을 할 수 있는 인성으로 성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생활은 정상 인성에서 직분을 하는 생활이다. 즉,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의 생활이다. 첫 번째 생활을 완전하고 평범한 인성에서 한 까닭은 그때의 인성이 결코 신성의 모든 역사를 유지할 수 없고 성숙되지 않은 인성이어서 반드시 인성이 성숙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즉 직분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는 인성이어야만 비로소 그가 해야 할 직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육신인 이상, 반드시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생활은 단지 정상 인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그러나 두 번째 생활은 인성이 이미 충분히 사역을 담당하여 직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직분을 하는 기간의 생활은 바로 인성과 완전한 신성에서 하는 생활이다. 만일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강생하자마자 정식으로 직분을 시작하고, 또 모두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나타낸다면 육신의 실질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의 실질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인성이 없는 육신은 존재하지 않고, 또한 인성이 없는 사람은 비인류이다. 그리하여 육신의 인성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고유한 속성이 되었다. 누가 “하나님이 육신이 되면 오직 신성만 있고 인성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논법이고, 또한 성육신이 되는 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는 직분을 시작한 후에도 여전히 인성의 외형이 있는 신성에서 살면서 역사하는데, 그때의 인성은 전적으로 신성이 그 정상 육신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하는 것은 인성 속에 있는 신성이고, 신성이 역사하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신성은 인성에 가려진 신성이기에 그 실질은 여전히 완전한 신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지 인성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하는 것은 이 육신이므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는 하나님이 되어 사람의 외형과 사람의 실질이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질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예수가 땅에서 한 생활도 모두 육신의 정상 생활이었고,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생활한 것이다. 역사하고 말씀하는 권병(역주: 권세)이든지,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권병이든지, 이런 비범한 일들은 그가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없었다. 그가 29세 이전, 즉 직분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를 단지 정상 육신이라고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정상 육신인 데다가 또 직분을 하지 않아 사람은 그에게서 하나님이라는 낌새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를 정상 사람이나 보통 사람으로 보았을 뿐이다. 이는 당시에 사람들이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여긴 것과 같다. 사람이 보기에 그는 보통 사람의 아들이었기에 그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임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비록 그가 직분을 할 때에 많은 표적을 나타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가 정상 인성의 외형을 갖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그의 정상 인성과 그가 한 사역, 이 두 방면은 첫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하나님이 이미 완전히 육신에 왔고 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었음을 실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역사하기 전에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는 것도, 그 후에 그가 사역을 한 것도 여전히 그가 평범한 육신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그가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든, 모두 정상 인성의 육신에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표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육신이 하나님의 권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의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권병이 있음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그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가 해야 할 직분 내의 사역이고, 인성으로 가리워진 신성의 발표이다. 그가 어떻게 표적을 나타내든지, 어떻게 그의 권병을 분명히 나타내든지, 그는 여전히 정상 인성에서 생활했고, 여전히 정상적인 육신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고 죽음에서 부활하기 전에는 계속 정상적인 육신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에게 은혜를 주고 사람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모두 직분 내의 일이었고, 모두 정상적인 육신에서 역사한 것이었다. 그가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어떻게 했든지 그는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을 떠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하나님 자신이고 행한 것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일지라도 그는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기 때문에 식사도 하고 옷도 입었으며, 그에게 정상 인성의 요구도 있었고 정상인의 이지(理智)와 사유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정상적인 사람임을 증명하고, 그 정상적인 사람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이지 결코 비범한 육신이 아님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성육신의 인성은 육신에서 하는 신성의 정상적인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정상 인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또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는 바로 육신에서 하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육신에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면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육신에서 해야 할 사역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비록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가 있지만, 그의 역사에는 사람의 사유가 전혀 뒤섞여 있지 않다. 그는 정상 사유가 있는 인성에서 역사하고, 사유가 있는 인성의 전제하에서 역사하는 것이지, 결코 정상적인 두뇌의 사유를 발휘하여 역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하고 있는 육신의 사유가 얼마나 높든, 그의 역사에는 여전히 논리학이나 사유학이 뒤섞여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역은 육신의 사유로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신성의 역사가 인성에서 직접 발표된 것이다. 그의 사역은 모두 그가 해야 할 직분이고, 어느 단계도 그의 머리로 궁리해 낸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것은 머리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또한 두뇌 사유가 있는 그 어떤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정복 사역도 마찬가지로 성육신 하나님이 해야 할 직분이다. 그러나 이 사역은 결코 사람의 뜻이 아니다. 이 사역은 모두 신성이 해야 할 사역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반드시 두뇌의 정상적인 사유가 있어야 하고, 정상 인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가 반드시 정상 사유가 있는 인성에서 역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 역사의 실질이자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이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성육신 된 인자는 인성을 통해 하나님의 신성을 발표하여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전달해 주었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하는 것을 통해,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계에 있는 하나님을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형상이 있고 뼈와 살이 있는 하나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육신 된 인자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 지위, 형상, 성품, 소유소시 등등을 모두 구체화하고 인성화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말하면, 인자의 겉모습은 어느 정도 국한성이 있지만 인자의 실질과 소유소시는 완전히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할 수 있는데, 단지 발표하는 형식상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인자의 인성이든 아니면 신성이든 다 하나님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은 그 기간에 육신의 방식으로 역사하고, 육신의 각도에서 말씀하고, 인자의 신분과 지위에 서서 인류를 마주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실제적인 말씀과 역사를 접촉하고 체험하는 기회가 있게 하였을 뿐이다.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신성과 자신을 낮춘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또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실과 실제에 대해 기초적인 인식과 기초적인 정의도 있게 하였을 뿐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비록 하나님 성육신의 겉모습이 사람과 똑같고 또한 사람의 지식도 배우고, 사람의 언어로 말하며, 심지어 어떤 때는 사람의 방식을 쓰거나 사람의 논법을 인용하여 자신의 뜻을 표현하였지만, 인류를 대하고 일을 대하는 그의 실질은 패괴된 인류와 절대로 같지 않고, 또한 그가 서는 각도와 높이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도 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 자신이 입은 육신도 하나님 자신의 실질을 구비하고 있고, 그의 마음과 인성에서 발표해 낸 것도 다 진리이다. ……하나님의 그 성육신이 얼마나 평범하든, 얼마나 정상적이든, 얼마나 낮든, 심지어 사람들이 얼마나 업신여기든 그의 생각과 인류를 향한 태도는 아무도 구비할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신성의 각도에 서서, 조물주의 높이에 서서 인류를 관찰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실질로, 하나님의 마음 상태로 인류를 대하고 있다. 그는 절대로 보통 사람의 높이에서, 패괴된 사람의 각도에서 인류를 대할 리가 없다. 사람은 인간의 안목으로 인류를 바라보고, 사람의 지식과 사람의 규례, 사람의 학설 등등을 가늠 기준으로 삼아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범위이고, 패괴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범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목과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가늠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그 범위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위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육신과 패괴된 인류가 확연하게 다른 부분이다. 그 다른 점은 각자의 실질로 인해 결정된 것인데, 바로 그 다른 실질로 각자의 신분과 지위가 결정된 것이고, 사물을 대하는 각자의 각도와 높이도 결정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그가 역사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직접 영을 대표한다. 그가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것이고 하는 말씀도 영이 하는 것인데, 다만 말씀으로 된 육신에 의해 발표할 뿐이다. 실제상 바로 영의 발표이고 그가 하는 사역과 말씀은 그의 실질을 대표한다.』 <실행 (7)>에서 발췌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고유한 육신이다. 하나님의 영은 지고지상하고 하나님의 영은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롭다. 그러면 마찬가지로 그의 육신도 지고지상하고 전능하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것이다. 이러한 육신은 공의로운 일만 하고 인류에게 유익한 일만 하며 거룩하고 휘황하고 위대한 일만 할 뿐, 진리와 도의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 영을 배반하는 일은 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아주 엄중한 문제―배반 (2)>에서 발췌 『성육신한 하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이 육신은 육체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다. 같지 않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혈기에 속하지 않는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이 있는데, 그의 신성은 어떤 사람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에서의 모든 정상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다 천부의 뜻에 순복한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영이자 신성이므로, 그의 실질 자체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다. 이 실질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할 리가 없으며, 그는 자신의 사역을 허무는 일을 할 리가 없고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할 리도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경영에 방해되는 사역을 할 리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성령 역사의 실질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을 위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역사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성육신 된 이상 그의 실질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그의 육신이 족히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 된 기간에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를 대신하고, 게다가 말씀이 육신 된 기간의 전체 사역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핵심으로 한다. 그 외에 어느 한 시대의 사역도 섞여 있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된 이상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고, 육신에 온 이상 육신에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한다. 하나님의 영이든 그리스도이든 어쨌든 다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직분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그 자체가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권병에서 비롯된 모든 것에 순복할 수 있는데, 영의 역사이든 아니면 육신의 역사이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은 만물의 권병이고, 하나님의 실질이 있는 육신도 권병을 지니고 있지만, 육신에 있는 하나님은 또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모든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고, 또한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권병이지만 그의 육신은 또 자신의 권병에 순복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한다”는 데에 내포된 뜻이다. 하나님은 영이어도 구원 사역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구원 사역을 할 수 있다. 어떻게 말씀하든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하는데, 그는 방해하거나 가로막지도 않고, 더욱이 서로 모순되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과 육신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같은 것이며, 영이든 육신이든 모두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하나의 사역을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영과 육신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두 가지 속성이 있지만 그 실질은 모두 같은 것으로, 다 하나님 자신의 실질과 신분이 있다.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고, 하나님의 실질은 선한 것이다. 그는 모든 미와 선의 발표이고, 또한 모든 사랑의 발표이다. 설령 육신에 있는 하나님이라고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자신을 희생한다고 해도 기꺼이 원하며 아무런 선택도 없다. 하나님에게는 독선적이거나 자고(自高)한 성분이 없고, 교만하고 자대(自大)하거나 간사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런 것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있게 된 까닭은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고 사탄의 속성은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거할 때, 사역이 얼마나 힘들고 육신이 얼마나 연약하든지 그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방해되는 일을 할 리가 없고, 더욱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거역할 리도 없으며, 차라리 육신이 고통을 받을지언정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는다. 마치 예수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오히려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지만 여전히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육신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부탁을 완성한다.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탄에게서 온 것이면 하나님의 실질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실질만 있기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복하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복하지도 못한다. 그리스도 외의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아무도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직접 담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경영을 자기가 해야 할 본분으로 삼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실질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사탄의 속성이다. 이 두 가지 속성은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무릇 사탄의 속성이 있는 자라면 그리스도라고 칭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는 까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실질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이후의 앞날을 위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가 역사하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그가 비록 육신으로 있지만, 그의 인성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에게는 특정된 성격이 있는데, 이 성격 또한 신성의 제약을 받는다. 신성은 연약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연약이란 그의 인성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연약은 어떤 상황에서는 신성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범위가 있고 기한이 있는 것이지 끝없이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사역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인성이 어떠한지를 상관치 않는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완전히 신성의 지배를 받는다. 인성에서의 정상 생활을 제외하고 인성에서의 모든 활동은 신성의 영향을 받고 있고, 또한 신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다고 해도 신성의 사역과 서로 방해되지 않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이 인성은 비록 처세에 미숙한 인성이지만, 신성의 정상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의 인성이 패괴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은 직접 신성의 지배를 받고, 또한 그에게 일반 사람보다 높은 이지(理智)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인성은 신성이 지배하여 역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성이고, 신성의 사역을 가장 잘 발표할 수 있는 인성이며, 신성의 사역에 가장 잘 순복할 수 있는 인성이다. 하나님은 육신에서 역사해도 여전히 육신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잃지 않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으며,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다. 단지 그가 땅에 와서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외형을 갖게 되었고 원래보다 인성이 더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가 하늘의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로서 사람이 모방할 수 없다. 그의 신분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육신의 각도에 서서 경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한다”라는 이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그렇게 행하였다. 그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만 요구하고 자신은 오히려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다 그의 소시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가 있을 수 없고, 사람에 대한 그의 요구가 어떠하든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다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모든 사람보다 높으므로 그는 피조물 중에서 최고의 권병인데, 그 권병은 바로 신성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소시이다. 이 성품과 소시로 그의 신분이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인성이 얼마나 정상이든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신분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그가 어느 각도에 서서 말씀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우매무지한 사람은 흔히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그리스도의 결점으로 본다. 그가 어떻게 신성의 소시를 표현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든지 사람은 그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또한 그리스도가 순복과 낮춤을 표현할수록 우매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더욱 경시하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척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위대한 형상이 있는 ‘위인’들을 책상 위에 놓고 공양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이 성육신 된 실질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데에 있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근원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인성으로 가려지지 않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도 않으며, 비범한 인성을 갖고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좋아하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에게는 인성이 없고 피조물의 속성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항상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다. 그리스도가 땅에 와서 비록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역사할 수 있지만 그가 땅에 온 목적은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형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식견을 넓히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사람이 그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의 기능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그의 육신의 실질을 완전하게 알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떻게 역사하든 육신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모두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에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전부 나타내어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육신이 하는 사역은 지금까지 사람이 상상한 대로 그렇게 초자연적이거나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비록 그리스도가 육신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친히 하고 있지만, 그는 하늘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지도 않고 육신에서 비미은장한다. 그리스도가 아닌, 그리스도라고 사칭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그리스도의 속성이 없다. 거짓 그리스도의 교만방자하고 스스로를 높이는 성정으로부터 도대체 어떠한 육신이라야 그리스도인지를 대조해 낼 수 있다. 거짓 그리스도일수록 더욱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고, 더욱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사람을 미혹한다. 거짓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의 속성이 없고, 그리스도라면 거짓 그리스도의 성분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이 성육신 된 것은 단지 육신에서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사람에게 자신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사역으로 자신의 신분을 실증하고, 자신의 유로로 자신의 실질을 실증한다. 그의 실질은 근거 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분은 자신이 빼앗아 온 것이 아니라 그가 행한 사역과 그의 실질로 결정되는 것이다. 비록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실질이 있고, 게다가 그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는 영과 다른 육신이고, 영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육신의 외형을 지니고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그가 어떻게 정상적이든, 어떻게 연약하든, 또한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든, 그의 신성을 부인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께는 정상 인성과 정상 인성의 연약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신성의 기묘와 난측(難測) 그리고 육신의 모든 행사도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는 인성과 신성이 다 아주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조금도 공허하지 않고,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다. 그가 땅에 온 주요 목적은 역사하는 것이다. 땅에서 역사하려면 반드시 정상 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성의 위력이 얼마나 크든지 그의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인성이 비록 매우 중요하지만 인성은 결코 그의 실질이 아니다. 그의 실질은 신성이다. 그러므로 그는 땅에서 직분을 시작할 때 자신의 신성의 소시를 발표하기 시작한다. 그의 인성은 다만 육신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여 신성이 육신에서 정상적으로 역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역의 전부를 지배하는 것은 신성이다. 그가 사역을 완성하면 그는 자신의 직분을 다한 것이며,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그의 모든 역사인데, 역사하는 것으로 사람에게 그를 알게 한다. 역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신성의 소시를 아주 완전하게 발표하는데, 인성이 섞여 있는 성품이 아니고 사유와 인위적인 것이 섞여 있는 소시도 아니다. 그의 모든 직분이 다 끝날 때에 그는 이미 자신이 발표해야 할 성품을 완전무결하게 다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역사는 어떠한 사람의 지시도 받지 않고, 그의 성품의 발표 역시 상당히 자유로운데, 두뇌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사유로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유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해내지 못한다. 설사 환경이 열악하거나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는 적당한 시간에 자신의 성품을 발표한다. 그리스도이면 그리스도의 소시를 발표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모두 그를 대적하거나 그에 대해 관념이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도 사람의 관념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발표한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못한다. 무릇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신성의 발표로 인하여 그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할 것이고, 절대로 어느 한 방면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매우 미련할지라도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사람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지를 알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셈으로 인하여 고의로 그리스도를 대적할 뿐이다. 만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인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발표한 신성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가 한 사역은 사람의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의 발표가 그의 실질을 결정한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부탁을 완성할 수 있고,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자연적인 유로도 그의 실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적인 유로라고 하는 까닭은 그가 발표한 것이 모방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교육하거나 수년간 양성한 결과가 아니며, 그 자신이 배운 것이나 꾸며 낸 것도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의 사역과 그의 발표를 부인하고, 그의 인성을 부인하며, 정상 인성의 모든 생활을 부인하지만, 누구도 그가 진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고, 천부의 뜻을 완성하러 온 것을 부인하지 못하며, 누구도 그가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비록 그의 형상이 그다지 사람의 이목을 끌지는 못했고, 비록 그가 말을 함에 있어 비범한 기개를 갖추지 못했으며, 비록 그의 역사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천지개벽하게 하거나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했지만, 그는 정말 진심으로 천부의 뜻을 이루고, 천부에게 완전히 순복하며, 죽기까지 순복하는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그의 실질은 바로 그리스도의 실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모두 믿기 어려우나 또 확실히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직분을 모두 다 마치고 나면 사람은 그의 역사에서 그의 성품을 볼 수 있고, 그의 소시가 모두 하늘의 하나님의 성품과 소시를 대표한다는 것도 볼 수 있다. 그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을 종합해 보면 그는 바로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 혈기에 속한 사람과 같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실질은 천부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구비하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 성육신하든,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원칙은 변할 수 없다. 그는 말씀으로 된 육신이지만 또 육신을 벗어나서 역사할 수 없고, 더욱이 말씀이 육신 되었으나 또 육신의 정상 인성에서 역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성육신은 의의가 없게 되고, 더욱이 ‘말씀’이 육신 된 의의가 조금도 없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성육신 된 것은 오직 하늘의 아버지(즉, 영)만 알고, 그 외는 육신 자신마저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도 모른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더욱 정상적이 되었고, 또한 확실히 ‘도’가 육신 된 것이고 ‘말씀’이 육신 된 것임을 더욱 나타낼 수 있으며, 그의 육신은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이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더라도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성육신한 하나님 자신이고, 영이자 육신이다. 어떻게 칭하든, 결국은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갈라놓을 수 없고, 사역은 육신이 하는 것이자 하나님의 영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영의 발표에는 몇 방면이 포함되는가? 어떤 때는 인성에서 역사하고 어떤 때는 신성에서 역사하는데, 어쨌든 다 영의 지배를 받는다. ……오늘 말하는 실제의 하나님 자신은 인성에서도 역사하고 신성에서도 역사한다. 실제의 하나님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 정상 인성의 역사도 있고 정상 인성의 생활도 있고 완전한 신성의 역사도 있게 되어 인성과 신성이 일체로 연결되었다. 또한 이것은 다 말씀으로 이룬 것인데, 인성에서든 신성에서든 모두 말씀하고 음성을 발한다. 인성에서의 역사는 인성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촉하기 쉽고 깨닫기 쉬우며 통속적이고 알기 쉬워 모든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으므로, 지식이 있는 자든 학력이 낮은 자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신성에서의 역사도 여전히 말씀으로 하는데, 공급이 가득하고 생명이 가득하며,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고 인성의 취향과 연관되지 않으며, 인성의 제한이 없고 어떠한 정상 인성의 구속도 받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육신 중에서 역사하지만 영의 직접적인 발표이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영의 모든 역사와 말씀을 정상 인성에 의해 하는 것이고, 성육신에 의해 하는 것인데, 바로 하나님의 영이 인성 역사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육신 중에서 신성의 사역도 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하나님에게서 너는 하나님의 인성에서의 역사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 역사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더 실제적인, 하나님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 의의이다. 네가 만약 이것을 꿰뚫어 보았다면 너는 하나님의 각 부분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으며, 신성 역사를 너무 지나치게 중요시하지도 않고 인성에서의 역사를 너무 가볍게 보지도 않으며, 극단으로 가지도 않고 굽은 길을 걷지도 않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실제 하나님이란 함의는 영의 지배를 받는 인성 역사와 신성 역사를 육신 중에서 발표하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생생하고 생동하게 형상적으로 창현(彰顯)하고 유로(역주: 흘러나옴)하는 것을 보게 하고 진실하다는 것을 보게 한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믿으면 최소한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을 통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의심하지 않고 부인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속마음이 바르고 자신을 위해 타산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을 할 때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고, 설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있는 힘껏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에 따라 실행해도 늦지 않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며,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교회를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유익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으며,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지 않고, 하는 일마다 광명정대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록 때로는 육체의 연약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공의를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할 수 있으면,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된 것이다. 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도 사람의 속마음과 분량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속마음을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훈계, 책망, 징계, 연단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효과를 너에게서 볼 수 있게 된다.』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서 발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영적 노정에 들어서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어서 개인이 바꿀 수 없을지라도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는지는 모두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인지의 여부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너에게 연약한 점과 패역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너의 관점이 바르고 속마음이 올바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정상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자격이 있게 될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고 그 관계가 육체를 위하거나 가정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이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진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너의 관점이 바른지만 본다.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도대체 누구를 믿는지, 누구를 위해 믿는지, 왜 믿는지 하는 이런 것을 꿰뚫어 보고 관점을 바로잡아 실행할 수 있다면, 너의 생명이 자랄 수 있고 틀림없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치우쳐 있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고 어떤 식으로 믿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어야만, 육체를 배반하고 기도하고 고통받고 인내하고 순복하고 형제자매들을 도와주거나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하는 등등의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에야 점차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고 종교 인사의 소행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체험 중에서 보다시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의 영 생활과 사람의 생명이 자라는 문제에 관련된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다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가 있게 될 것이다. 네가 부담을 갖고 하나님 앞에 왔기에 늘 자신에게 부족함이 너무 많고, 아직도 알아야 할 진리가 많고 체험해야 할 실제가 많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일들이 늘 마음에 걸려 그것이 너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내리누르는 듯한데, 너는 이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다(그러나 소극적인 ①정형은 아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부담과 무거운 마음으로 인해, 다시 말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치른 대가와 받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바꿔 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마음대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도 않고, 조건 없이 사람에게 더해 주지도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방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 삶 속에서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고, 최소한 마음조차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별로 큰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살면서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기준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부담이 있으며,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진리를 찾고 구하려는 심지(心志)가 있는 이런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시간을 정해 마음을 전념하여 기도하고, 시간이 아무리 촉박하더라도,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날마다 정상적으로 기도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도록 하여라.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영 안에 특별히 누림이 있고, 또한 주위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방해받지 않으며, 평소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할 때 겉면의 일에 지장받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량이 있는 것이다.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기도하면 가장 큰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묵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터득하는 것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평소에 마음으로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으면, 바깥 사물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네가 마음을 일정한 정도까지 안정시킬 때면 조용히 생각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가까이할 수 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게 되어 마음속에서 찬미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심지어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좋다. 그것은 일정한 분량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그런 정형에 도달할 수 있으면, 너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정되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첫 단계의 기본기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된 후에야 성령의 감동,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과 진실한 교통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더듬을 수 있다. 그러면 영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먹고 마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첫걸음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다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너를 따르게 될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에 관하여>에서 발췌 [recommendpost id="19571"]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깝다. 네가 평소에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깝게 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기도한 다음 다시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이다. 네가 한동안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면 깨닫지 못할 것이고, 다 읽고 나서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사람이 기도를 하는 목적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네가 늘 기도하고 늘 하나님 앞에 온다면, 늘 하나님과 관계가 있게 되고, 내면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이 있고 언제나 하나님의 공급을 받게 된다. 계속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이 변화되고 정형도 점점 좋아지고 가라앉지 않게 된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도하면, 기도가 끝난 후에 아주 힘이 나고, 얼굴 가득 땀이 맺히며,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교통한 것은 별로 없지만, 기도로 사람의 힘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가정이든 세상이든, 단번에 다 포기하고 싶어지고,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하나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힘이 얼마나 큰지 보아라!』 <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다.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이 현재 하려는 것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밝히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 길이 있게 되어 옛것을 지키지 않게 된다. 실행하는 것은 모두 생명이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운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찾고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이끌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 되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날마다 새로운 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인식이 있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밝히 깨달을 수 있기를 추구하고 모든 일에서 실행의 길이 있기를 추구해야 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는 새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여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고,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움직여 늘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뒤떨어질까 몹시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이 이런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과 찾고 구하는 마음이 있고 또한 끊임없이 진입하기를 원한다면 영 생활의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향상심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깊은 인식이 있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실제적으로 진입하여 자신의 체험을 더 참되게 하고 더 실제적이 되게 하며, 텅 빈 글귀 도리를 추구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느낌 더듬기를 추구하지도 않고 어떤 큰 인물도 숭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한 것이다. 그가 한 것은 모두 생명에 더욱 진보가 있고, 영 안이 생기 있고 침울하지 않으며, 언제나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네가 그때그때의 빛 비춤을 따르지 못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소원(疏遠)해지는데, 심지어 단절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럼 너에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는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너에게는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있느냐? 너는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냐? 성령의 그때그때의 빛 비춤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할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성령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며 생명 진입을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항상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규례로 지키더라도 꼭 해야 한다. 시련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잃지 않고, 기도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를 시련할 때에도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영 생활의 최저선이다. 늘 찾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전력을 다해 협력하고 전신의 힘을 다 써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겠느냐? 이 기초에서 다시 분별에 대해 말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사람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정형이 정상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느끼며, 하나님이 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네가 상태가 좋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한 사역이 아무리 좋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듣기 좋게 말해도 상대하기 싫어진다. 사람의 상태가 비정상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그러면 사람의 성정도 변화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성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없다면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수호하든,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그것은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한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의 너의 지위를 수호하여 사람들이 너를 칭찬하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다른 사람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수호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면 너는 자연히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와 다른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기초에서 맺어진 것이다. 육체적인 왕래는 거의 없지만 영적으로는 교통이 있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공급한다. 행하는 그 모든 것은 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에서 하는 것이고,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담으로 자연히 형성되는 것이다. 너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대로 실행하면 된다. …사람과 사람의 정상 관계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한 기초에서 맺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과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만 있게 되는데, 그것은 다 비정상이고, 모두 정욕을 방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너의 영 안에 감동이 있다고 말하지만 늘 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좋아하고 늘 네가 중요시하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이 찾고 구하는데도 너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사적인 감정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전혀 없음을 더욱 증명한다. 너는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덮어 감추는 것이다. 설사 네가 인식을 좀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의 속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네가 하는 것은 모두 인위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어서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육체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부담으로 인해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 정상적으로 왕래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네가 사람과 어떻게 접촉하든 그것은 처세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담을 헤아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recommendpost id="18783"]

진정으로 들림받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 참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계 19:9) 관련된 하나님 말씀: 『‘들림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들림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무릇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무릇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받는다.』 <제104편 말씀>에서 발췌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미 형성되었는데, 전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고 영정(靈程)에 오른다. 유일한 참 하나님이 이미 말씀이 육신 되고 우주의 통치자가 만유를 주관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입증이고 철 같은 증거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 오늘 당신께서 뭇 교회―빌라델비아 교회를 완성하셨고, 당신께서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이미 이루셨나이다. 뭇 성도는 당신 앞에 겸손히 순복할 수 있으며 영 안에서 서로 통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따르며 원천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는 쉼없이 솟아흘러 교회의 흙탕물을 깨끗이 제거하여 재차 당신의 성전을 정결케 하나이다. 실제의 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행하며 자기의 기능과 본분을 알고 최대한 모두 교회를 위해 화비하고 있나이다. 항상 당신 앞에 안정하고 성령 사역에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뜻이 우리 몸에서 가로막음을 받지 않게 하리이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이 있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나이다. 늘 영 안에서 행할 수 있고 성령이 빛 비춰 주고 깨우쳐 주어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행하고 새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나이다. …………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협력과 섬김이 하나로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하루속히 거룩한 영체로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마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앞에 들림받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나타난다.』 <제2편 말씀>에서 발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섬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주 연약해지기도 하고 또 자주 강건해지기도 하면서 모든 행위는 다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는 또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주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며, 주 예수의 영광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땅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이 <계시록>에 예언한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재난을 가져오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며, 그를 따르는, 그의 돌아옴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감개무량하였고, 자신이 말세에 태어나 운 좋게 주님의 강림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다행스러워하였다. 비록 박해는 당하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꿔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이 모든 간절한 바람과 주님이 베풀어 준 은혜는 우리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다그쳐 예배하게 하였다. 혹시 내년에, 혹시 내일에, 또 혹시 더욱 빠른, 사람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여 그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다투며 누구도 뒤떨어지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님의 나타남을 제일 먼저 보는 자가 되기 위해서였고, 주님께 들림받는 자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였다 …………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 ……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그에게 정복되어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와 말씀을 저촉하지 않았고, 온 몸과 마음이 그의 앞에 엎드러졌으며, 오로지 이 한평생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만을 원하였고, 그에 의해 온전케 되어 그의 은총에 보답하고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에 보답하며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역사에 협력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부탁을 완성하기만을 원하였다. ………… 우리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한 무리 평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은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거름 더미에서 끌어올린 궁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정죄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정복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도를 얻었다. 하늘 끝이든 바다 끝이든, 핍박이든 환난이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떠날 수 없다. 이는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고 우리의 유일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와 영의 역사는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성경 참고: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18~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출 19:20~21)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8~19)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되려는 육신에 가져와야만 이 ‘도’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친히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얻어서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 되지 않았다면, 무릇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은 성육신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볼 수도,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고, 사람은 다 육체에 속한 피조물인 데다가 사람과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있고, 또한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조금도 맞지 않아 전혀 ‘수교’할 수 없다. 거기에다 사람이 영으로 될 수도 없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피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영으로 될 수 없고, 더욱이 지극히 낮은 곳에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을 예로 들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구속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제를 가져올 수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늘과 땅 사이를 몇 번 더 왕복해야지’, 그렇다고 사람에게 하늘에 올라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가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되었고, 또한 하늘에 전혀 올라갈 수 없으며, 더욱이 속죄제를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친히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이 전혀 완성할 수 없는 그런 사역을 해야 하였다. 매번 말씀으로 된 육신은 모두 너무나 필요하다. 만일 한 단계라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억울함을 참고 모욕을 당하면서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그럼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 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육신에서 역사하면 비록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곤란이 있지만, 육신이 역사하여 최종에 도달하는 효과는 그래도 영이 직접 역사하는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육신이 역사하면 비록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고, 결코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도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영과 같은 권병(역주: 권세)도 있을 수 없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 육신이 역사하는 실질은 영이 직접 역사하는 실질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이 육신 자체는 모든 사람의 필요이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사용가치는 육신의 사용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체가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더욱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어지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묘막측 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기는 더욱 어려워 다만 근거 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는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이 깨우쳐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가 있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영의 이런 역사는 결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뿐이지 결코 말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상상할 필요도,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합할 뿐, 결코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정확한 목표를 요구하고 또 사람이 인식을 얻는 그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패괴된 사람에게는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적인 역사와 시기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취향에 맞고, 오직 실제적인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이런 것은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도달할 수 있고,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옛 성정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영은 비록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지만, 이런 사역은 오직 육신으로만 할 수 있다. 영만 단독으로 역사한다면 역사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감동이나 묵시만 줄 뿐이고, 기묘막측(奇妙莫測) 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느낌만 줄 뿐이며, 위대하고 비범하고 사람이 모두 앙모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느낌만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마치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영원히 서로 같을 수 없는 듯하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은 영이 사람에게 주는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은 다만 영과 사람이 동류가 아니고, 영과 사람이 영원히 한 세계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영은 사람이 갖추고 있는 어떤 것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은 사람의 필요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영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역사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를 주고, 명확한 말씀을 주며,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느낌을 주고, ‘보잘것없고’ ‘평범한’ 느낌을 준다. 사람이 비록 두렵다고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접촉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육신은 사람에게 아득히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은 하나님이 했던 많은 말씀들을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은 완전한 신성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했던 각도와 배경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영계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것이며, 그 영계 또한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가로지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 인성의 각도에 서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기에 영계의 범위를 벗어났고 초월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 속에서 상상한 것이나 사람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일들이나 혹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말이나 인류가 장악하고 있는 지식으로 신성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성품과 뜻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여,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정도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이해하고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성에서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이다. 비록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은 인성에 의하거나 인성을 통해(원문: 透過) 더욱 많이 도달하지만, 오히려 신성이 직접 역사하여 도달할 수 없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우세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과 인성의 언어를 이용해 사람에게 말씀하여 자신의 바람을 표현할 수 있었고,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와 방식으로 사람에게 해석해 주거나 ‘통역’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해 주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데에 유리하다. 그 밖에, 하나님은 또 사람의 각도에서 사람의 언어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언어, 지식으로 말씀하고 역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친절하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영이 하는 사역은 묵시(원문: 隱含)적이고 난측(難測)하며, 또한 사람에게 간담이 서늘케 하여 접근하기 쉽지 않게 하므로 직접 구원 사역을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이하는 다른 한 가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하나님이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영의 사역을 대신해야 한다. 이 역사 방식은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더없이 적합한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직접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음성’ 앞에 순복하게 되고, 말씀으로 드러낼 필요 없이 사람은 모두 엎드러지게 된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 가운데 엎드러진 것과 같다. 하나님이 또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여 구원받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말씀을 각 사람에게 직접 전해 줄 수 있기에, 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말씀으로 도달한 효과이다. 영이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으로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옛 성정들을 완전히 들춰내어 인식하게 하고 변화되게 한다. 이런 것은 다 성육신이 하는 실제적인 사역인데, 아주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아주 실제적으로 심판한다. 따라서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효과에 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의 권병이고 성육신 된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육신도 권병을 지닐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도록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는 모든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역사 효과도 뚜렷하다. 그것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병을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실질은 권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그의 권병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역사할 때에도 그의 권병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역사는 모두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데, 비록 사람은 다 그가 권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가 거스를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진노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권병, 은밀한 진노, 공개한 말씀을 통해 그가 말씀을 하는 효과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모든 지혜로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권병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순복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말씀이 육신 된 또 다른 의의이다. 즉,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말씀의 실제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보게 하고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혀 효과를 볼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심판하는 것은 패괴된 사람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 사역을 영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패괴된 것을 심판하는 사역을 하기에는 오직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적합하고,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자격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주도면밀하게 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것은 영은 사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분명히 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육신의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사탄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부터 범속한 인간보다 위대하다. 하나님의 영은 본래부터 거룩한 존재이고, 본래부터 육체를 능가하는 존재이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람은 영에 대해 본래부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확실하게 들춰낼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하는 것을 통해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들춰냈는데,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도달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의 하나님에 대해 대적에서 순복으로, 핍박에서 수용으로, 관념에서 인식으로, 저버림에서 사랑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 효과이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고,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통해 그를 점차 알게 되며, 모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모두 그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육신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지 결코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그러나 너는 이러한 사실, 즉 사람의 패괴 성정과 거역과 대적은 모두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나는데, 그때의 거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완전하고 철저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그리스도가 인자이기 때문에, 곧 정상 인성이 있는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를 무례하게 대하고, 또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은 남김없이 생생하게 폭로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인류의 패역을 다 끄집어냈고, 인류의 본성을 다 안받침해 냈다고 한다. 이것을 ‘호랑이를 유도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고, 늑대를 유도하여 굴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실제와 사람의 상상 속에 있는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정식으로 역사할 때는 사람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의 안받침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즉, 실제적인 안받침이 없으면 막연한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사역은 아무도 말로 대체할 수 없고, 역시 아무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원문: 說透)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지 사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풍부하든지 하나님의 실제와 정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형상과 소시를 전부 공포해야만 사람이 그를 더 실제적으로 알 수 있고,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 효과는 육체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사 효과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은 결코 하나님의 영이 직접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육신에서 역사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과 정확한 부탁을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비로소 그가 육신에서 한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이 도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육신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어서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을 참으로 실현하게 되었고,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듣는 이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성육신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마지막 한 차례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는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갔다. 율법과 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심오한 비밀과 귀숙을 펼쳐 보이는 하나님,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 몇천 년이나 숨겨 왔던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이 다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것들을 찾거나 모색하지 않게 되고,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한 사역을 확장할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가 육신에서 하였던 사역을 다 각종각파(各宗各派)에 전할 것이고, 그의 모든 말씀을 전 인류의 귀에 전할 것이다. 무릇 그의 복음을 받는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은 모두 그가 역사한 사실일 것이며, 사람이 직접 보고 직접 들은 것이고 또한 사실이지 뜬소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모두 그가 사역을 확장하는 증거(證據)이자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만일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복음은 각 지역, 각국에 널리 전파될 수 없다. 사실이 없이 사람의 상상만 있다면 영원히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역사한 사실을 남겨 놓을 수 없으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고,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신앙할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한 것은 어쨌든 텅 빈 것이어서 결코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역사는 사람이 연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해야만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땅에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인데,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은혜시대를 가져오고 율법시대를 끝마쳤다. 말세에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되었는데, 이번의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나라시대를 가져왔다. 무릇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시대로 이끌려 들어가고,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단지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결코 사람의 패괴된 성정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을 이끌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였고 형벌,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들어갔다. 무릇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는 사람은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며, 진정으로 빛 가운데서 살게 되고 진리, 길, 생명을 얻게 된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은 이미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상,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과 형벌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기 위해, 모두 그를 증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를 증거하기 위해,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의 모든 것을 공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성정이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게 한다. 사람의 성정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역사 중에서 변화된다. 사람이 만일 성정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다. 사람의 성정 변화는 바로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과 표본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고, 참으로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고 있는데,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고 그에게 순복하게 하며 그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역사를 알게 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역사에 순복하게 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역사와 사람을 정복하는 그의 모든 행사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증거라야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이러한 증거라야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경력하여 그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며, 성정이 변화되어 그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원하지 않고, 또한 그의 구원을 거치지 않은 사탄의 종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할 리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성육신 하나님은 말씀을 하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위한 것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단지 말씀만 하는데, 사실로 임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질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 즉 ‘말씀’이 ‘육신’에 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전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역사 효과에 도달한다. 하나님은 표적을 나타내지 않고 이적도 나타내지 않으며, 오직 말씀으로 역사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所是)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제압하여 신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도,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을 양육하고 목양한다. 그 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순순히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고 말씀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고, 말씀과 여러 가지 역사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훈계하든, 책망하든, 공급하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각도의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은 말씀으로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많은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고, 역대 이래 하나님이 한 사역을 깨닫게 된다. 또한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받게 되고, 역대 이래 사람이 열지 못한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며, 역대 이래 선지자와 사도가 한 일과 사역한 원칙을 알게 된다. 사람은 말씀에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도 깨닫게 되었고, 사람이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와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고, 성육신이 한 사역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의 모든 성품도 인식하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을 인식한 것 역시 말씀에서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에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더냐?』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 예수가 한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 놓고 인류의 귀숙과 결말까지 드러내어 인류 가운데서의 구원 사역을 모두 끝마친다. 말세 이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므로, 반드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사람에게 이런 심오한 비밀을 명확히 알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래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할 수 있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씀 사역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성정 변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하는 역사 방식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할 수 있고, 오직 말씀만이 진리를 천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한 가지 방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명확하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후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진리와 모든 심오한 비밀을 사람과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열어놓아 하나님에게서 참 도와 생명을 얻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 기간에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할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 사람은 연단과 환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환난 속에서 이기는 자, 간증을 서는 자는 최종에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곧 이기는 자들이다. 환난 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바로 이번의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단은 최후의 한 차례 사역인데, 전체 경영 사역이 끝나기 전에 있게 되는 최후 한 차례 연단이다. 무릇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최종의 검증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최후의 한 차례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이 단계 사역에서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할 것이다. 그가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한 후, 그들이 그의 행사를 증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실제적으로 그를 만족케 하면서 그에게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것이다.』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에서 발췌 『정복 사역 후에는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 가운데 두며,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가운데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으며,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말이 다 가까웠고, 사람의 결말도 다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은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라고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말세가 이미 되어 만물이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모두 서로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유별로 구분된다. 그때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숙을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에 의해야만 만물의 결말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만이 원형이 드러나게 되어 악은 악에 속하고 선은 선에 속하여 다 각기 부류대로 된다. 형벌과 심판으로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데에 이르고, 만인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으로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고 사람의 패역이 너무 심하기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낸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다. 그에 따라 모든 불의한 사람을 호되게 징벌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품은 다 시대적 의의가 있는 것이고,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각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결코 의의 없이 마음대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말세는 정복하는 것으로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한다. 정복하는 것은 말세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말세 사역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의 발단이 된다. 그 이후에는 각 지역, 각 족속의 사람들도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즉, 무릇 피조된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고, 다 심판대 앞에 귀복하여 심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고, 각기 부류대로 되지 않을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는데, 사람은 모두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그 원인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웠고 온 천지도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인간의 생존이 끝나는 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 받아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효력할 자격마저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전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 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열국과 만민이 다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때, 나는 곧바로 하늘에 있는 모든 풍부함을 인간 세상에 베풀어 주어 인간 세상이 나로 인해 비할 바 없이 풍부하게 할 것이다. 옛 세계가 존재할 때, 나는 열국을 향해 크게 진노하고 전 우주에 공개할 행정을 반포할 것이다. 만일 누가 거스른다면,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전 우주를 향해 말할 때,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즉, 전 우주 아래에 있는 나의 모든 행사를 보게 된다. 나의 뜻을 어기는 자, 다시 말해, 사람의 행위로 나와 맞서는 자는 나의 형벌 속에서 넘어질 것이다. 나는 하늘의 뭇별을 모두 새로이 바꿀 것이고, 해와 달도 나로 인해 바뀌어 더는 이전의 하늘이 아니며, 땅의 만물도 새로이 바꿀 것인데, 나의 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전 우주 아래의 열국을 모두 새로이 나누어 내 나라로 바꿀 것이고, 땅에 있는 나라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여 나를 경배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데, 무릇 땅에 속한 나라는 다 훼멸되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다 멸망되어 사라질 것이다. 무릇 사탄을 경배하는 사람은 다 나의 불사름 속에서 넘어질 것인데, 즉 지금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외에는 전부 잿더미가 될 것이다. 교계는 내가 만민을 형벌할 때, 각기 다른 정도로 내 나라에 돌아오고 나의 행사로 말미암아 정복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흰 구름을 탄 거룩한 자’가 이미 오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되고, 행위의 차이로 인해 각종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라면 다 멸망되지만 땅에서의 모든 행위가 나와 관련되지 않는 자는 그 태도로 인해 땅에 존재할 것인데, 뭇 아들과 자민(子民)의 관할 아래에 있을 것이다. 나는 만국 만민을 향해 나타나고, 땅에서 나의 음성을 친히 발표하고, 나의 큰 공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여 모든 사람에게 눈으로 직접 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6편 말씀>에서 발췌 『최종의 상선벌악 사역은 전적으로 전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온전히 성결해진 인류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전체 경영 사역 중에서 마지막 한 단계이다. 만일 악한 자를 멸하지 않고 남겨 둔다면, 전 인류는 여전히 안식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도 전 인류를 더 아름다운 경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게 되는데, 그런 사역은 완전히 끝난 사역이 아니다. 사역이 끝날 때, 전 인류는 온전히 성결하게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매우 평온하게 안식 중에 거할(원문: 生活)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고, 그가 원하는 인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완전히 순복하는 인류이고, 그의 영광이 있는 인류이다. 만일 패괴된 인류를 구원해 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만든 의의는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권병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또한 땅에 그의 나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만일 그를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받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인류의 그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을 다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그의 사역이 완성된 상징이고, 그의 큰 공이 이루어진 표징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나의 말이 마무리(원문: 完善)되어 감에 따라 나의 나라는 땅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내 마음속의 나라를 세운다. 나의 나라에서 모든 자민(子民)은 다 정상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데, 다시는 차디찬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날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싸늘함을 겪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고, 나라도 서로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광경과 그로 인해 흘리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으로 들끓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뜻함이 넘쳐흐른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성경 참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요 3:17)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은혜시대의 모든 사역을 대표하였는데, 그는 성육신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또한 은혜시대를 시작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완성하러 온 분이자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시작한 분이다. 그래서 그를 ‘대원수’, ‘속죄제’, ‘구속주’라고 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과 여호와가 한 사역은 내용은 같지 않지만 원칙은 같은 것이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시작하여 땅에서 역사할 근거지, 즉 발원지를 세웠고, 계명도 반포하였다. 이것은 그가 했던 두 가지 사역인데 율법시대를 대표한다. 예수가 은혜시대에 한 사역은 계명을 반포한 것이 아니라 계명을 온전케 한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은혜시대를 가져왔고, 2천년이나 지속된 율법시대를 끝마쳤다. 그는 은혜시대를 시작하고 개척한 선봉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그래도 구속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사역도 역시 두 가지로 나뉜다. 다시 말해, 새 시대를 개척하는 것과 십자가에 못 박혀 속죄 사역을 완성한 후 사람을 떠나가는 것이다. 그때부터 인류에게는 율법시대가 끝났고 은혜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예수가 한 사역은 그때 그 시대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그의 사역에 따라 그는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져온 모든 성품은 겸손, 인내, 사랑, 경건, 포용, 긍휼, 자비였고, 사람에게 가져온 것은 풍부한 은혜와 축복이었으며, 또한 사람이 누릴 온갖 물질이었다. 사람이 누리게 된 것은 다 평안과 희락이었고, 예수의 관용과 사랑이었으며, 또한 그의 긍휼과 자비였다. 당시에 사람은 구주 예수를 의지했기 때문에 대량의 누릴 물질을 접할 수 있었고, 마음이 평안하고 영적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들이 그런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들이 처한 시대와 관계가 있다. 은혜시대에 사람은 이미 사탄의 패괴를 겪었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하려면 그 사역 효과를 위해 반드시 풍부한 은혜가 있어야 하였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포용과 인내가 있어야 하였으며, 더욱이 사람의 죄를 충분히 사할 수 있는 속죄제도 있어야 하였다. 은혜시대의 사람은 내가 사람의 죄를 사하는 속죄제, 즉 예수라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포용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예수의 긍휼과 자비만 보았는데, 그런 것은 모두 그들이 은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속되기 전에 반드시 예수가 베풀어 준 많고 많은 은혜를 누려야 하였다. 그렇게 해야 그들에게 비로소 유익이 있게 된다. 그들이 은혜를 누림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었고, 또한 그들에게 베풀어 준 예수의 포용과 인내를 누림으로 속죄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예수의 포용과 인내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예수가 베풀어 준 풍부한 은혜를 누릴 자격이 있게 되었다. 마치 예수가 “내가 온 것은 의인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속하여 죄 사함을 받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한 것과 같다. 만약 예수가 성육신 되어 가져온 성품이 심판과 저주이고 사람이 범하는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구속될 기회가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은 영원히 죄에 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은 율법시대에 정지되어 그 시대가 6천년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사람의 죄는 점점 많아지고 깊어질 수밖에 없어 인류를 만든 의의가 전부 없어지게 되므로 사람은 율법 아래에서 여호와를 섬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류의 죄업은 오히려 처음에 만든 인류의 죄업을 넘어섰다. 예수가 인류를 사랑할수록, 사람의 죄를 사해 줄수록,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충분히 가져다줄수록, 사람은 예수께 구원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고, 예수가 비싼 값으로 사온 길 잃은 어린양이라 칭함받을 자격이 더 있게 되며, 사탄도 그 사역에 틈탈 곳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품속의 갓난아기를 대하듯 하였고, 그들에게 노하지도, 그들을 혐오하지도 않고 오히려 위로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으며, 또한 예수가 그들 가운데서 진노를 발한 적이 전혀 없었고, 그들의 죄업을 포용해 주고 그들의 우매함과 무지함을 보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도 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감화되는 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포용으로 인해 비로소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말씀이 육신 된 예수는 비록 사사로운 감정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늘 제자들을 위로해 주고 공급해 주었으며, 도와주고 부축해 주었다. 그는 많은 사역을 하였고 많은 고통을 당했어도 사람에게 지나치게 요구하지 않았고, 계속 사람의 죄를 인내하고 포용하였기 때문에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친근하게 그를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라고 불렀다. 당시에 사람이 보게 된, 즉 모든 사람이 본 예수의 소유소시는 긍휼과 자비였다. 예수는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았고, 사람의 과오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았다. 시대가 같지 않았기에, 그는 사람이 배부르도록 늘 풍부한 양식을 베풀어 주었다. 예수가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고 병을 고쳐 주며, 귀신을 쫓아내 주고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 것은 사람에게 그를 믿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가 한 모든 것은 다 진실함과 진지함에서 나온 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썩은 시체를 살려 사람에게 죽은 사람이라도 그의 손에서는 부활될 수 있음을 보게 하였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계속 그렇게 묵묵히 인내하면서 그의 구속사역을 하였다. 사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사람의 죄를 담당하였고, 이미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던 것이다.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십자가의 길을 개척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십자가의 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긍휼과 자비와 거룩을 인류에게 베풀어 주었다. 그는 사람에게 한결같이 관용하면서 보복한 적이 전혀 없었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었고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며, 인내하고 포용하고 사랑해야 하고, 그가 걸은 길을 걷고 십자가의 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한 것은 마리아를 사랑한 것을 넘어섰다. 그가 한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는데, 이런 사역은 모두 그의 구속을 위한 것이었다. 어디를 가든, 그는 무릇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는데, 가난한 사람은 부유하게, 앉은뱅이는 걷게, 소경은 보게, 귀머거리는 듣게 해 주었다. 심지어 그는 가장 비천했던 궁핍한 그 사람들, 즉 죄인들을 불러 모아 그와 자리를 함께 하게 하였고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계속 인내하면서 “목자가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나중에 찾으면 대단히 기뻐하리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어미 양이 새끼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을 사랑하였다. 그 사람들이 비록 무지몽매하였고, 그의 안중에는 모두 죄인이었으며, 또한 사회 최하층의 비천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는 오히려 그 죄인들, 즉 남이 업신여기는 그 사람들을 눈동자처럼 여겼고 그들을 마음에 두었기에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또한 예수는 제단 위의 어린양과 같았는데, 그는 그들 가운데서 마치 그들의 종인양 그들에게 마음대로 부림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도 무조건 순복하였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였지만, 높은 강단에 서서 사람을 훈계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아니라 혐오와 반감이었다. 그가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한 사역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다만 가끔 책망하고 질책하였을 뿐 구속 사역을 하지 않았고, 표적과 기사도 행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긍휼과 자비를 모두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다.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끝까지 인내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든 모욕을 참아내심으로 비로소 전 인류를 완전히 구속하였다. 이것이 그가 한 모든 사역이다. 예수의 구속이 없었으면 사람은 계속 죄에서 살면서 죄의 자손이 되었을 것이고, 귀신의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온 땅은 사탄이 기거하는 땅이 되었을 것이고, 또 사탄이 살아가는 땅이 되었을 것이다. 구속 사역은 반드시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어야만 사람이 사함받을 수 있고, 최종에 비로소 온전케 될 자격이 있게 되며,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질 자격이 있게 된다. 만일 이 단계 사역이 없다면, 6천년 경영 계획은 전개될 수 없다. 만약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데에만 그친다면 사람은 여전히 완전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그는 땅에 와서 3년 반 동안 사역하여 구속 사역의 절반만 완성하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고 그 악한 자에게 넘겨져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고 인류의 운명을 장악하였다. 그를 사탄의 손에 넘겨준 후에야 비로소 인류를 속량할 수 있었다. 예수는 세상에서 33년 반 동안 고통과 조소를 받았고, 훼방과 저버림을 당했는데, 심지어 머리 둘 곳이 없었고 안식할 곳도 없었다. 그 후에 또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자신(원문: 全人), 즉 거룩하고 무고한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모든 고난을 다 받았다. 집권자들이 그를 희롱하고, 채찍질하고, 심지어 병사들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어도 그는 여전히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였고, 죽기까지 무조건 순복하여 모든 인류를 구속하였다. 그때에야 그는 비로소 안식하게 되었다. 그가 한 사역은 은혜시대만 대표할 뿐 율법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말세 사역도 대체할 수 없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의 실질이며, 인류가 겪게 된 두 번째 시대, 곧 구속시대이다.』 <구속시대의 사역 내막>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와서는 (단지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닌) 타락된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본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가 충만하였고 항상 사람을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와서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었는데, 십자가에 올라 인류를 죄에서 철저히 구속하기까지였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었다. 즉,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준 것이다. 그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있었고, 또한 인내와 사랑도 있었다. 무릇 예수를 따랐던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매사에서 인내하고 사랑이 있었고, 그저 고난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에서 발췌 『예수가 왔을 때에도 일부분 사역을 하였고, 얼마의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완성한 것은 주로 어떤 사역인가? 그가 주로 완성한 것은 십자가의 사역이다.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여 전 인류를 구속하였는데,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가 된 것이다. 그는 주로 그 사역을 완성하였다. 결과적으로, 십자가의 길을 그 후의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가리켜 주었다. 예수가 온 것은 주로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전 인류를 구속하여 천국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천국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예수 그 뒤로, 사람들은 모두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고 십자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처음에 다른 사역도 조금 하고 말씀도 좀 하여 사람에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게 하였지만, 그의 직분은 그래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었다. 그가 3년 반 전도한 것 또한 이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예비한 것이었다. 그가 몇 차례 기도한 것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이었고, 그가 정상 사람의 생활을 하고 33년 반 동안 땅에서 생활한 것도 주로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사역을 담당할 수 있는 힘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은혜시대에 한 사역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다. 그의 소유소시는 은혜, 자비, 긍휼, 포용, 인내, 겸손, 사랑, 관용인데, 그가 와서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한 것은 바로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성품에 대해 말하자면, 그의 성품은 긍휼과 자비이다. 그의 긍휼과 자비에 의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그가 자신을 전부 바치기까지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사탄은 “네가 사람을 사랑하는 이상, 끝까지 사랑해야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십자가에서, 곧 죄에서 구해내야 하고 너 자신을 바쳐서 전 인류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탄이 “네가 긍휼 자비의 하나님인 이상,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면 너 자신을 십자가에 바쳐야 한다”고 이렇게 내기를 걸자, 예수는 “인류를 위한 것이기만 하면 나는 나의 전부를 내놓기 원한다”고 한 후 조금도 서슴없이 십자가에 올라 전 인류를 구속하였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고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고, 그의 사랑, 그의 긍휼, 그의 구원으로 각 사람을 동반하고 있다. 사람은 오직 예수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의 임재를 받아들여야만, 평안과 희락을 얻을 수 있고, 그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그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그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통해 무릇 그를 따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였는데, 은혜시대의 사역은 예수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는 하나님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는 구약 성경을 벗어나 한 단계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그의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으로 끝났다. 이것이 그가 한 사역의 전부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가 당시에 말씀하고 역사할 때, 그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고, 성경 구약 율법시대의 사역에 따라 하지도 않았으며,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하였다. 그는 그가 가지고 온 사역에 따라 한 것이고, 그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직분에 따라 역사한 것이지 구약 율법에 따라 역사한 것은 아니다. 그는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구약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것은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계마다 사역할 때,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오는 것이 아니지만, 그가 하는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고, 이전에 한 사역에 방해되지도 않는다. 그가 하는 사역의 가장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새 사역을 전개한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오직 예수는 와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시대를 전개하고 또한 이전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타파하며 이스라엘에서 여호와가 한 사역에 따라 하지 않고 그의 낡은 규례대로 하지 않으며 어떤 규례에도 맞추지 않고 그가 해야 할 새로운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는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시대를 개척하고 또한 하나님이 스스로 시대를 끝마친다. 사람은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을 할 수 없고,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도 할 수 없다.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치지 않았다면, 그는 사람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가 와서 여호와의 사역을 끝마쳤고, 또한 여호와의 사역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사역을 전개하였고,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이것은 새로운 시대임을 증명하고, 예수는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하나님 성육신의 사역을 끝마치고 전 인류를 다 구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음부의 열쇠도 잡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철저히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보기엔 그의 사역을 단지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만 하였을 뿐 정복하지 않았고, 더욱이 사람의 사탄의 추한 몰골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비록 사망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내가 말씀이 육신 된 모든 목적이 아니다. 예수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그는 나의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지 않고 일부분만 하였다.”라고 말씀하였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또 성육신의 사역을 잇는 두 번째 계획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최종 뜻은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해 낸 사람을 다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신 일은 하나님이 땅에 머물 발원지를 인류 가운데에 세운 것이고, 또한 그가 거할 성지를 세운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그가 역사할 범위로 정하였다. 처음에 그는 이스라엘을 벗어나 사역하지 않았고, 사역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적합한 사람을 택하였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든 땅이다. 여호와는 그 땅의 흙을 취하여 사람을 만들었고, 그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아의 후손이고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며,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데의 기반이기도 하다.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의의와 목적과 절차는 온 땅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 사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 우주에서 사역하는 원칙이다. 즉, 점을 면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런 뒤에 전 우주 아래가 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처음의 이스라엘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었다. 그 사람들은 여호와의 생기만 있었고 의식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 몰랐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사람이 조물주를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는 더욱 몰랐다. 규례가 있는지, 율례가 있는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아담의 후손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남편으로서 힘을 내고 땀 흘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여호와가 만든 인류를 위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생기와 생명만 있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지를 몰랐는데,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속에 비록 교활함과 간사함이 없고 질투와 분쟁도 매우 적었지만, 그들은 여호와, 즉 조물주에 대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바로 그런, 여호와의 것을 먹고 누릴 줄만 아는 사람의 조상은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몰랐고, 여호와가 그들이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임도 몰랐다. 그런데 어찌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는 조물주이다”, “그가 인류를 만든 것은 그를 창현(彰顯)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수포가 되지 않겠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증거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창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했던, “나는 나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 말씀이 사탄, 그 악한 자에게 잡힐 꼬투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말씀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이 수치가 되는 기호가 되지 않겠는가?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만든 후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지시하거나 인도하지 않았고,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정식으로 이스라엘 사람, 바로 노아의 후손, 즉 아담의 후손을 인도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고 말씀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이스라엘 온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가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에게 그의 생명이 있게 할 수 있고, 또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피조된 인류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인류를 불사르고 저주하고 형벌의 채찍으로 인류를 관리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면서 밤과 낮의 시간에 따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피조물에게 사람이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왔고, 또한 여호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더욱더 이스라엘 외의 각 나라, 각 족속들(사실 이스라엘 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그 조상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인 이방의 나라와 족속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전 우주 아래의 피조물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고 크게 높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령 여호와가 처음에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지 않고 인류를 만든 후 땅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게만 하였다면, 사람 육체의 본성으로 볼 때(본성이란 바로 사람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영원히 모르는 것, 즉 여호와가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여호와가 인류를 왜 만들었는지는 더욱 모르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임을 영원히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만물의 주라는 것도 영원히 알지 못한다. 만일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 땅에 두고 누릴 물질이 있게 한 다음 관계하지 않고 떠나 사람들 가운데서 한동안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없어지게 될 것인데, 심지어 창조된 천지 만물과 창조된 전 인류까지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사탄에게 짓밟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바라던 ‘땅, 곧 그가 만든 것 가운데에 있을 그가 발 붙일 곳, 즉 성지’에 대한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에 인류 가운데서 사람을 인도하여 살아가게 하고 인류 가운데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은 모두 그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단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세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우선 먼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은 만물을 창조한 것과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모두 그의 경영과 그의 사역과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또한 그가 인류를 창조한 것에 더 깊은 의의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노아 이후, 땅의 인류를 인도하여 2천 년 동안 살아가게 하면서 사람에게 어떻게 만물의 주이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고, 또한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어떻게 여호와를 위해 증거하고 그에게 순복하고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윗과 그의 제사장들처럼 악기를 울리며 여호와를 찬미하는 정도까지 이르게 하였다. 여호와가 2천 년의 사역을 하기 전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몰랐고 거의 다 타락되었다. 더 나아가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 전에는 음란하고 패괴되었으며, 마음속에는 여호와가 아예 없었고 여호와의 말씀까지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여호와가 무슨 사역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이지(理智)가 없었고 견식은 더욱 없었으며, 단지 숨만 쉬고 있는 기계와 같아 하나님, 사람, 만물, 생명 등등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몰랐다. 그들은 땅에서 독사가 유혹하는 일을 많이 하였고 여호와를 범하는 말을 많이 하였지만, 그들이 알지 못했기에 여호와는 그들을 형벌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호와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즉 노아가 601세 되었을 때부터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도하였을 뿐이다. 바로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도하였는데, 그 기간은 모두 2천 5백 년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 즉 그가 정식으로 역사한 것은 모두 2천 년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외에서 동시에 역사한 것은 모두 5백 년인데, 합하면 2천 5백 년이 된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를 섬김에 있어서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의 신발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면 불이 성전 위로부터 그들에게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리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분을 함으로 여호와의 안배에 순복하였고, 성전 안에서 여호와께 기도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는데, 즉 여호와가 말씀한 후 백성들을 인도하여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여호와는 또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기라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을 단속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게 하여 여호와께 충성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는 또 그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정하였는데, 바로 그가 만물을 창조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첫날로 정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찬미하고,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고, 여호와를 위해 비파를 울리고 수금을 타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여호와는 제사장들을 모두 소집하여 제단 위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하였는데, 이로써 그들이 여호와의 제단 위의 제물을 누리도록 하였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을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고, 그와 더불어 분깃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으며, 그의 선민이라고 하였다(이것도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과 세운 언약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여호와는 그들만의 하나님이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계명을 정하여 모세에게 그를 따라 애굽 땅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포하라고 하였다. 그 계명은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지, 애굽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여호와는 계명으로 그들에게 요구하였는데,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등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아 죄로 정하거나 의롭다고 칭하였다.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고, 어떤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계명을 지키는지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그에게 임하였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그가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기간에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갓 태어난 그 인류를 율법으로 제어한 것은 이후의 사역에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고 칭하였다. 비록 여호와가 많은 말씀과 많은 사역을 하였지만 그는 다만 긍정적으로 사람을 인도하였는데, 그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하여 사람됨을 알게 하였고, 생활할 줄 알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도를 깨닫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의 도를 지킬 수 있게 한 것이고, 그의 율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매우 얕게 패괴된 사람에게 역사한 것이므로 성정 변화라고는 말할 수도 없고, 생명이 자라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율법을 지키게 하여 사람을 단속하고 제어하였을 뿐이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여호와가 오직 성전의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고, 구름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다만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인데, 심지어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한 것은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더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피조된 사람에게 갖춰져 있어야 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데에 있어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로 인류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를 넘어서게 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은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은 다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어서 사람에게 조물주를 인정하게 하였을 뿐, 정복하지도 변화시키지도 않았고 인도만 하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의 전부이고, 이스라엘 온 땅에서 하신 사역의 배경과 내막과 실질이며, 또한 6천년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다. 즉, 사람을 모두 여호와의 수중에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6천년 경영 계획의 더 많은 사역이 있게 되었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최초에 구약 율법시대에서 사람을 인도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생활을 인도하는 것과 같았다. 최초의 인류는 여호와로부터 처음 난 인류이며,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지 이런 것마저도 알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고 바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였지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여호와의 법도를 준행하는가를 알 수 있는 기관은 그들에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만일 여호와의 직접적인 인도가 없었다면 아무도 직접 알 수 없다. 그것은 사람에게 처음부터 이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행해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인지, 여호와께 무엇을 바쳐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이런 것에 대해 사람은 전혀 몰랐다. 사람은 여호와가 창조한 만물 중의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릴 줄만 알고 있었을 뿐 사람이 도대체 땅에서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만 피조물이라고 칭함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도 사람은 전혀 몰랐다. 바로 이러한 인류를 인도하는 사람이 없고 그들을 친히 이끄는 사람이 없다면 인류의 정규적인 생활은 영원히 없게 되고 다만 사탄에게 몰래 노략될 수밖에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는데, 바로 인류의 조상인 하와ㆍ아담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더 많은 총명과 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땅에서 생활하였지만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창조하는 사역을 겨우 절반만 완성하였지 전부는 완성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어놓았고 또한 그의 생기도 있게 하였지만 사람에게 그를 경외하는 충분한 심지(心志)는 베풀어 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에게는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사람은 그의 말씀을 들을 줄만 알았지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상식과 사람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법칙은 몰랐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비록 남자를 창조하고 여자를 창조하여 7일의 공사를 완성하였지만 그가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오직 외형만 있고 오히려 사람됨의 실제가 없으며,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그의 말씀을 준수하고 그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있은 후에도 여호와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인류를 철저히 그의 앞으로 인도하여 모두 땅에서 군거할 줄 알게 하고 모두 그를 경외할 줄 알게 해야 하였으며, 인류로 하여금 땅에서 즉 그가 인도한 후에 정상적인 인류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는데, 바로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인류를 창조한 이상, 인류를 인도하여 땅에서 몇천 년 동안 생활하게 하면서 모두 그의 율례와 법도를 준수할 줄 알게 해야 하였고 인류에게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모든 활동이 있게 해야 하였다. 이때에 여호와의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인류를 창조한 후 곧 이 사역에 착수하기 시작하여 야곱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야곱의 열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그가 땅에서 정식으로 인도하는 인류로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가 땅에서 역사하는 특정된 지점으로 되었다. 이 사람들을 땅에서 정식으로 역사하는 그의 첫 패의 사람들로 하고 이스라엘 온 땅을 그의 사역의 발원지로 하는 것으로써, 그의 더 큰 사역을 전개하여 무릇 땅에서 그에게로부터 난 사람이 다 어떻게 그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가를 알 수 있는 데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의 모델로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을 맨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역시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경외하는지를 맨 먼저 안 사람들이며,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 도를 안 인류의 조상이고 여호와가 선택한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너희는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나 원칙을 모두 보았겠지? 이런 규례는 범위가 넓을까? 먼저 십계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제단을 쌓느냐 하는 등등의 규례이다.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3개 절기를 지키는 법들이고, 그다음은 제사를 드리는 규례이다. 너희들이 보아라, 제사를 드리는 데에 모두 몇 가지가 있느냐?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등등이 있고 그다음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규례인데,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소제를 드리는 등등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여덟 번째는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규례이고, 그다음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례이다. 여기에, 사람의 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방면에 모두 규정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규례, 부녀의 산후 정결케 하는 규례, 문둥병 환자가 치유받는 규례이다. 이런 규례 중 질병에 관한 일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심지어 또 소나 양을 잡는 규례 등등도 있다. 소나 양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니 하나님이 어떻게 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잡아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일리가 있기에,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행하면 틀림없이 옳은 것이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리고 일부 지켜야 할 절기와 규례도 있다. 예를 들면, 안식일과 유월절 등등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우리 마지막 한 가지 기타 규례를 보자. 등불 관리, 희년, 토지 무르기, 서원, 십일조 등등 이런 규례의 각 방면은 관련된 범위가 넓지 않은가? 우선은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문제에 관련되고, 그다음은 또 도둑질, 배상, 안식일 지키는 것……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 계획을 시작하여 정식으로 사역을 하였을 때, 사람에게 많은 규례를 제정해 주어 지키게 하였다. 그런 규례들은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선 사람에게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쌓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다음 사람에게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으며,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각 방면을 빈틈없이 규정하였는데, 그런 규례, 그런 규칙, 그런 원칙으로 사람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율법 속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오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든 만물 가운데서 질서 있게, 법칙 있게, 절제 있게 생활하도록 인도하였다. 하나님은 우선 그런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일정한 범위를 제정해 주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게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6천년 경영 계획을 시작한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 규례와 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아주 광범위하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서 인류를 인도한 구체적인 항목이다. 그것은 이전의 율법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의 기록이자,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이끌고 전 인류를 인도한 실제 증거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가장 최초의 인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하나님은 가장 간단명료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류 생존의 원칙과 생활에 있어야 할 그런 규례에서부터 사람을 가르치고, 그런 것을 조금씩 사람 마음속에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의 규정들을 통해, 그런 규례들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점차 알게 하였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점차적인 깨달음이나 이해가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있게 하였다. 그런 효과에 도달한 후에야, 하나님은 조금씩 그 후에 해야 할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그런 규례와 하나님이 했던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의 기초 중의 기초이고, 하나님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이 이름으로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1단계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에 한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것은 땅에서 그의 사역의 근거지를 전개한 것이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바로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사역을 밖으로 확장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의 성지이다. 하나님이 맨 먼저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이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님은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오셔서 역사하신다고 친히 예언하셨습니다

성경 참고: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2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계 1:12~1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그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온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의 이 말씀의 참뜻을 아는가? 설마 그가 너희에게만 알려 주었단 말인가? 너는 그가 흰 구름을 타고 어떻게 갔으면 또 어떻게 온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아는가? 만약 정말로 너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있다면 예수가 한 그 마디 말씀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그가 “말세에 인자가 다시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고 모든 사람이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곧 영만 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네가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면 이 말씀은 허사로 되는 것이 아닌가? 인자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겠는가? 네가 만일 직접 보게 된다면 이 마디 말씀은 허사로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하였는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날이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른다. 인자라 하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가리키는데, 정상적이고 보통인 사람이다. 이 사람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예수는 그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올 것이고 그가 오면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는데, 그가 너로 하여금 앞당겨 알게 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의 돌아옴을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틀림없지만,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심오한 비밀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준 것이라고 100% 자신 있게 보증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네가 너의 관념으로 여긴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그가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100% 자신 있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의 말을 감히 해석할 수 있는가? 네가 이사야의 말을 감히 해석하지 못하면서 왜 예수의 말씀을 감히 해석하는가? 예수가 높은가 아니면 이사야가 높은가? 예수가 높다면, 왜 너는 예수가 한 그런 말씀을 해석하는가? 하나님이 그의 사역을 미리 너에게 다 알려 주겠는가? 피조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많은 그릇된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사람에게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과 직접 말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 이 시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역사하려면 말씀이 육신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몇천 년 동안, 사람은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구주 예수가 몇천 년 동안 그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 사람들과 재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사람과 몇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과오를 담당하여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구주 예수가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가 되어 전혀 노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담당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심지어 여전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에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 다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고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있는,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함으로써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하신 “내가 어떻게 가면 또 그렇게 오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몇천 년 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후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를 부어 주며,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매우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여기는 등등 이런 관념이 있는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무작정 그를 기다리고만 있을 뿐,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은 모른다! 거룩한 구주 예수는 비록 자비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사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 사람이 이를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은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어찌 또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불의한 자의 옷을 입으며,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계속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滿載)한,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라도, 오히려 구주 예수는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도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눈에는 다만 작디작은 신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 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에 와서 오랫동안 역사하고 생활하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즉, 오늘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아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하나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영이 역사하는 기세가 얼마나 엄청나게 크든지 하나님은 시종 아무 내색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내막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단계 역사가 천계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누구나 다 볼 수는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인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는 사람은 모두 긴 꿈속에서 깨어나 평상시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만인이 다 새벽을 깨닫지 못하고 날이 금방 밝아 올 때, 하나님이 땅에 와서 그의 육신의 생애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각의 도래를 사람은 전혀 모른다. 혹시 사람들이 다 깊이 잠들어 있겠고, 혹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고, 혹시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있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이미 땅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역을 더 순조롭게 전개하기 위해서이고, 더 좋은 사역 효과를 위해서이며, 또 더 많은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잠에 동이 틀 때는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끝난 것이다. 그는 땅을 떠나 땅에서 유랑하며 기거하던 그의 생애를 끝마칠 것이다.』 <역사와 진입 (4)>에서 발췌 『‘하나님의 나타남’은 뭇 교회 가운데서 이미 출현하였으며 그 영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한다. 그는 진노이며 그는 위엄을 지니고 있고 그는 심판하고 있다. 그는 인자이며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힌 양털 같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 <제15편 말씀>에서 발췌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뭉게뭉게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계속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너희는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을 생각만 하고, 천당의 복락을 누릴 생각만 하면서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전혀 순종하지 않았고,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발표한 진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희는 무엇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과 바꾸겠는가? 너희가 거듭 범죄하고는 입으로 죄를 자백하는 그 성실한 마음인가?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드리겠는가?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여러 해 동안 사역한 자본인가? 너희는 무엇으로써 다시 온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는가? 어떤 진리에도 순복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인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틀림없이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틀림없는 지옥의 자손이고 천사장의 후예이며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혹시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않겠지만 나는 그래도 예수를 따르는 소위 각 성도에게 알리겠다. 너희가 육안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직접 볼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가 되면 혹시 너의 마음은 몹시 격동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때는 네가 지옥으로 내려가 징벌을 받는 때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끝났음을 선고하는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는 때라는 것을. 왜냐하면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에 오직 진리만 발표되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조물주의 품속에 안기게 되었다.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만 고집하는 그 사람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예수만 믿으면서 엄한 심판을 발표하고 생명의 참 도를 베푸는 예수는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올 때에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 완고하고 너무 교만하며 지나치게 자신을 믿는데, 그런 쓰레기 같은 자들이 어찌 예수에게서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된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형제자매마다 역사(歷史)의 비극을 재연하지 말고, 당대의 바리새인이 되어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기를 바란다. 너희는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지를 세심히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에 자기의 머리를 명석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는 예수를 기다리는 각 사람의 직책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영의 눈을 밝게 뜨고 그런 허황된 글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현실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언제나 마음이 들떠서 모든 것을 잊은 채, 온종일 황홀경에 빠져 있지 말고, 주 예수가 하늘의 어느 한 송이 흰 구름을 타고 홀연히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지금까지 그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어떻게 준행하는지도 모르는 너희를 데려가기를 바라지 말라. 그래도 현실적인 것을 좀 생각해 보아라!』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주님 위해 전도하고 사역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하나님은 은혜시대에 인류를 구속하셨는데 왜 말세에 또 심판 사역을 해야 합니까?

성경 참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요 12:47~48)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상 (2)>에서 발췌 『예수가 역사할 때에는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에 대해 막연하고 모호하게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겼으며, 대선지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죽은 자도 살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발견할 수 없었고,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 예를 들면 육체의 평안과 희락을 누리고,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으며, 병이 낫게 되는 등등 이런 것이다. 그 외에 사람이 선행을 좀 하고 겉으로 보기에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합격된 신도였고, 이런 신도라야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생전에 생명의 도를 전혀 깨닫지 못하였고, 죄짓고 자백하는 것만 반복할 뿐, 성정 변화의 길은 없었다. 은혜시대 사람은 바로 이런 정형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받았겠느냐? 받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는 또 한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이 있는 것이다. 이 단계는 말씀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여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 사역은 효과도, 의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성을 벗어 버릴 수 없고, 죄 사함을 받은 기초에만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속죄제로 사람은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그것은 십자가의 사역이 이미 끝났고, 하나님이 이미 사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아직 패괴 성정이 존재하여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인류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는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 성정을 드러내어 사람으로 적합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한다. 이 단계에서 하는 사역은 앞 단계보다 더욱 의의가 있고, 앞 단계에서 한 사역보다 효과가 더욱 크다. 왜냐하면 지금은 말씀으로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여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더 철저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성육신은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철저히 완성하였다고 한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결코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서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사람이 모두 구속되어 죄는 다 사함받았지만,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사람의 허물을 기억치 않고, 사람의 잘못에 따라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체 가운데 살면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탄의 패괴 성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짓고 끊임없이 사함받는 사람의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자백한다. 이리하여 설사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효험이 있다 할지라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는데, 이것은 구원 사역의 절반만 완성하였을 뿐이다. 그 까닭은 사람에게 아직도 패괴 성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이미 하나님 성육신의 사역을 끝마치고 전 인류를 다 구속해 왔을 뿐만 아니라 음부의 열쇠도 잡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철저히 이루어졌다고 여기지만, 사실, 하나님이 보기엔 그의 사역을 단지 일부분만 완성한 것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만 하였을 뿐 정복하지 않았고, 더욱이 사람의 사탄의 추한 몰골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비록 사망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내가 말씀이 육신 된 모든 목적이 아니다. 예수가 나의 사랑하는 아들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그는 나의 사역을 철저히 끝마치지 않고 일부분만 하였다.”라고 말씀하였다.』 <역사와 진입 (6)>에서 발췌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단지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결코 사람의 패괴된 성정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로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뒤에, 하나님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을 이끌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였고 형벌,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들어갔다. 무릇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는 사람은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며, 진정으로 빛 가운데서 살게 되고 진리, 길, 생명을 얻게 된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마지막 때의 사역은 말씀만 한다. 말씀으로 사람은 매우 큰 변화가 있게 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인 후에 얻은 변화는 은혜시대 사람이 표적과 기사를 받아들인 후에 얻은 변화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은혜시대에 안수 기도하면 귀신이 사람 몸에서 나갔으나 사람 내면의 그런 패괴 성정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또한 병이 낫고 죄 사함을 받기는 하였으나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면에 존재하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릴 수 있는지, 이런 사역은 사람에게 하지 않았으며, 사람은 다만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죄 사함을 받았으나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성육신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것이지 결코 사람 내면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그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되게 할 수 있는지,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도록, 그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이 점차 변화되어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가운데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것으로 사람을 죄 가운데서 완전히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병 고치고 귀신 쫓는 권병은 사람에게 은혜만 줄 뿐, 사람의 육체는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고, 사람의 내면에는 아직도 사탄의 패괴 성정이 있다. 즉, 정결케 되지 못한 사람은 아직도 죄에 속하고 더러움에 속한다. 오직 말씀으로 정결케 된 후에야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께 얻어지고,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고, 사람을 구속하였으며,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게 하였을 뿐, 사람은 아직 정결케 되고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 여전히 패괴된 사람이다. 사람의 내면은 여전히 더럽고, 여전히 대적하며 거역하고 있다. 단지 하나님의 구속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사람이 구속받기 전에, 사탄의 많은 독소가 이미 사람 안에 심어져 있었다. 사람은 몇천 년 동안 사탄에게 패괴되어 그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속받았어도 속량받은 것에 불과한데, 바로 사람을 값비싸게 사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 안에 있는 독성은 결코 제거되지 않았다. 이렇게 더러운 사람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있게 된다.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6천년의 경영 사역은 3단계로 나누는데, 그 3단계 사역은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단계 사역은 모두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탄에게 심하게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와 동시에 사탄과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구원 사역을 3단계로 나누고, 사탄과의 싸움도 3단계로 나누는데, 이 두 방면의 사역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다. 사실, 사탄과 싸우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한 단계 사역으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탄과의 싸움도 단계를 나누고 시기를 나누며, 인류의 필요와 사탄이 패괴시킨 정도에 따라 사탄과 싸움을 전개하는 것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3단계로 하는데, 즉 사탄과의 싸움을 모두 세 개 절차로 나누어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탄과 싸우는 모든 사역의 내막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고, 사람의 속죄제가 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이 몇 단계 사역을 통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사탄과의 싸움은 결코 사탄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생명을 만들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게 하여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킴으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사탄을 패배시킨 후, 즉 사람이 철저히 구원받은 후에 수치를 당한 사탄을 철저히 결박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철저히 구원받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실질은 사탄과 싸우는 것인데, 사탄과 싸우는 것은 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마지막 단계에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최후의 한 단계 사역이다. 곧,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에 내포된 뜻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한 후에 조물주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탄을 배반하고 완전히 하나님에게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 즉 사탄과 싸우는 마무리 단계 사역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마지막 한 단계의 경영이다. 만일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마지막에 가서도 사람을 완전히 구원해 낼 수 없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귀숙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경영 사역의 핵심이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모두가 사탄에게 결박되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사탄은 경영 사역에서 패배당할 대상이 되었다. 그것이 사람을 점유하였고 또한 사람도 전체 경영의 밑천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와야 한다. 즉, 사탄에게 사로잡혀 간 사람을 또다시 빼앗아 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람의 옛 성정을 변화시켜 원래 이지(理智)로 회복되게 하여 사탄을 패배시켜야 한다. 그러면 사로잡혀 간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올 수 있다. 사람이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벗어난다면 사탄은 수치를 당할 것이고, 마지막에 사람을 빼앗아 오면 사탄도 패배당한다. 사람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인해 사람은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었고, 사탄은 오히려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받는 대상이 된다. 이러면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친 것이다.』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6천년 경영 계획은 3단계 사역으로 나눈다. 어느 단계 사역도 세 개의 시대를 대표할 수 없고 일부만 대표한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없다. 그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단지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여호와는 사람에게 율법을 정해 주었고 계명을 반포하였으며,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율법시대만 대표한다. 그가 그런 사역을 했다 해서 하나님은 단지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하나님, 성전 안의 하나님, 제단 앞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율법 아래의 사역은 한 시대만 대표할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사역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은 단지 성전 안의 하나님이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에봇을 입어야 하고 반드시 성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규정할 것이다. 가령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율법시대가 지금까지 지속된다면, 사람은 또 하나님에게 긍휼과 자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율법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고 은혜시대의 사역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해 주고 죄를 사해 주며, 그분은 거룩하고 무고한 분이며,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다는 것만 알 것이다. 사람은 이런 것만 알 수 있을 뿐,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한 시대는 하나님의 일부 성품을 대표하므로, 율법시대, 은혜시대, 이 단계에 각각 어떤 방면의 성품을 대표하였는지 3단계 사역을 종합해야만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수 있다. 사람이 3단계 역사를 알아야만 전면적으로 터득하게 되기에, 3단계 역사 중에서 어느 한 단계도 빠져서는 안 된다. 네가 3단계 사역을 알아야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사역을 끝마쳤다고 해서 하나님을 곧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고, 구속 사역을 끝마쳤다고 해서 영원까지 인류를 구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다 사람이 규정하는 것이다. 은혜시대가 끝났다고 해서 너는 하나님이 십자가에만 속하고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없다. 네가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주로 말씀의 사역을 하는데, 너는 하나님이 여태껏 사람을 긍휼히 여긴 적이 없고 형벌 심판만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말세의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 예수가 한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 놓고 인류의 귀숙과 결말까지 드러내어 인류 가운데서의 구원 사역을 모두 끝마친다. 말세 이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므로, 반드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사람에게 이런 심오한 비밀을 명확히 알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래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할 수 있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다 마친 후에야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알게 되는데, 이는 그의 경영이 끝났기 때문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실질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영구불변하다고 하는데, 이것도 맞기는 하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성품과 실질이 영구불변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이름이 바뀌고 사역이 바뀌었다고 하여 그의 실질이 바뀌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다. 이것은 영구불변한 것이다. ...』

도대체 무엇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

예수님은 왜 성경에는 영생이 없다고 말씀하셨는가

성경의 가치와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그 누구도 감히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으로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가?

성경 참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7~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2~1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며, 사람의 말과 행위를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드러낸 그런 말씀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 진노, 위엄, 심판, 저주인데 그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여 말한다. “왜 심판ㆍ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면 사람이 죽지 않겠는가? 사람을 심판하면 사람이 정죄받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또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낼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 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시련은 사람 안의 어떤 정형을 겨냥한 것인가? 사람 안의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는 패역 성정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뒤섞임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네가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있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온전케 하는 것이 된다. 만약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없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시험이 되어, 너는 부지중에 넘어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데,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오지 못해 실제 분량이 없기 때문이다. ……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시련 가운데서 반드시 넘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련이 너에게 닥칠 때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너는 서지 못한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경력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최후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현재 너희 이 사람들은 바울의 이지마저도 갖추지 못하고 바울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없으며 바울의 양심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너희를 언제나 좀 짓누르고 언제나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너의 영을 일깨울 수 있다. 너의 생명에 가장 유익한 것은 그래도 형벌과 심판이다. 필요할 때는 또 사실이 임하는 형벌을 좀 해야 너희가 철저히 탄복하게 된다. 너희의 본성은 형벌과 저주가 없으면 굴복하려고 하지 않고, 탄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없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고 무가치하다!』 <실행 (6)>에서 발췌 『나는 큰 붉은 용 국가에 강림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 우주를 향하였는데, 온 궁창까지 다 진동한다. 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쏟은 재난 속에서 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각종 ‘재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것은 내가 역사하는 방식이고, 사람에게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구원이고, 또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여전히 자비이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0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께 정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차례의 승자전과 같다. 하나님 말씀은 마디마다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드러냈고 우리의 패괴 성정을 드러냈다. 일언일행, 일거일동에서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본성 실질을 그의 말씀 가운데서 드러나게 하여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하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였다.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속셈과 목적,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정까지도 그는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 주어 우리를 만신창이가 되게 하였고, 게다가 심복구복하게 하였다. 그는 그에 대한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모독과 정죄를 형벌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에서는 우리가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우리가 바로 숨 쉬고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무리한 요구나 의도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일순간 우리의 마음은 평형점을 잃어 앞길을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 몰랐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몰랐다. 마치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였고, 또 마치 우리는 주 예수와 ‘만난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는 듯하였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였고, 우리를 방황하게 하였다. 우리는 낙심하였고 실망하였으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생겼다. 우리는 쏟아 내려고 시도했고, 다른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며, 더욱이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렸다가 그에게 속사정을 하소연하려고도 시도했다.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대범하였지만 마음은 전례 없이 낙담되었고,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마음은 바다가 뒤집어지듯이 갑절로 괴로움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우리는 모든 꿈과 희망이 빼앗겨 더는 지나친 욕망을 갖지 못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그와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는데, 심지어 아무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큰 좌절을 겪고 이렇게 큰 굴욕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거스를 수 없고 존귀한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얼마나 더러운지를 느끼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우리의 오만과 자대(自大)를 알게 하였고, 또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같이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더는 이러한 패괴 성정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루속히 이러한 본성 실질에서 벗어나 더는 그에게 미움받지 않고 혐오 받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를 거역하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달갑게 그를 받아들여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걸어 나왔고, 지옥에서 걸어 나왔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걸어 나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셨고 모든 원수들을 패배시켰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어떤 것인가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 입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택하심과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고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주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하고 사용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성경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도 진입할 수 있다. 』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 』

당신은 영생을 얻으셨습니까?

예수님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라고 하셨기에, 많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지켜 영생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지켜도 끊임없이 죄짓고 회개하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복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음이란” 쉽게 말하자면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경 예언에는 마지막에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원한 복음을 위해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성육신 하여 인류를 구원해야만 했던 이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속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을까요?

참 진리를 찾고 구함에 있어 갖춰야 할 이성

『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 』

구원이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해 주신 구원

말세에 이르러 우리는 더욱 주님의 구원을 받기 원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싶다면 반드시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사람에게 필요한 구원을 예비해 주셨는데 말세에는 어떤 구원을 예비해 주셨는지 알고 있습니까?

은혜시대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시대의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경 참고: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막 16:1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8)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무릇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이상 (2)>에서 발췌 『인류는 주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게 되었다. 명의상으로 말하면,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오는 데에 있어 장벽이 되지 않고, 더 이상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실제적인 사역을 하면서 미리 겪었고, 하나님 자신이 바로 속죄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노략당한 후에, 한 걸음 더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마지막 단계에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최후의 한 단계 사역이다. 곧,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 내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에 내포된 뜻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한 후에 조물주에게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사탄을 배반하고 완전히 하나님에게 돌아오면 철저히 구원받은 것이다.』 <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여 패역 성정으로 가득 찼고 더럽기 그지없는데, 정결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탐내는 것이 너무 많고 육체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에 대해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증오한다. 사람은 사탄의 더러움과 패괴된 것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여전히 더러움과 패괴를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속한다. 사람의 아귀다툼, 간사함, 교활함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의 것에 속한다. 너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틀릴 리가 없는데, 다 사람을 구원하여 흑암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믿으면 육체의 이런 패괴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육체 패괴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닌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 너는 하나님을 창현(彰顯)할 수 없고, 더러운 것에 속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없다. 네가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고 나면 거룩한 사람이고 정상 사람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을 얻게 된다.』 <실행 (2)>에서 발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이 요구한 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으로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케 된 사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가 그 사람에게 완전히 효과에 도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었고, 그가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육체의 본성, 즉 그의 원래의 생존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한 후에야 새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생명이 되고 하나님 역사의 이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드러냄,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달하라고 요구한 참된 인생의 표준이 사람의 생명이 되어 그가 이런 말씀대로 살고 이런 진리로 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서 거듭나고 하나님 말씀에서 새사람이 된 것이다.』 <어떻게 베드로의 길을 갈 것인가>에서 발췌 『오늘의 진리는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고, 이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 구원의 은혜는 너희가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너희가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게 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얻는 것은 하나님께 얻어지기 위한 것이다. 오늘 내가 한 말을 너희가 다 들었으니 너희는 이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맨 마지막에 너희가 이 말씀을 실행해 내면, 즉 내가 이 말로 너희를 얻고, 동시에 너희도 이 말씀을 얻으면 바로 이 크나큰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너희가 정결케 되면 진정한 사람에 속한다.』 <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어느 날까지 경력(역주: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근본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는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의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에 대해 그것이 있으나 없으나 다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일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의 모양이 있는 사람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계시록에 예언된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이다

성경 참고: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벧전 4:17)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관련된 하나님 말씀: 『심판은 먼저 하나님 집에서 시작된다고 이전에 언급한 그 말씀 중의 ‘심판’은 바로 오늘 하나님이 말세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온 사람들에게 하는 심판이다. 혹 어떤 사람은 말세가 오면 하나님은 하늘에 큰 탁자를 하나 설치하고 그 위에 흰 탁자보를 펴놓고 큰 보좌 위에 앉아 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하나님은 각 사람의 죄상을 드러내어 그것으로써 사람이 천당에 갈지 유황불 못으로 내려갈지를 확정할 것이라는 등등의 이런 초자연적인 상상을 할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상상하든지 하나님 역사의 실질을 바꾸지 못한다. 사람의 상상은 다만 사람의 사유에서 온 구상에 불과한 것인데, 사람의 머리에서 온 것이고, 사람이 듣고 보고 총결하여 끼워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상상이 얼마나 다채롭든, 그것은 다만 만화 그림일 뿐, 결코 하나님 역사의 계획을 대체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인데, 어찌 하나님의 생각을 완전하게 측량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아주 기이하게 상상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심판의 사역을 하시는 이상, 반드시 규모가 가장 방대할 것이고,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틀림없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대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이 하시는 심판 사역일 수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사람은 ‘심판 사역인 이상,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는 틀림없이 아주 위엄 있고 기운이 넘치며,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대성통곡하며 땅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이다. 그때의 장면은 틀림없이 매우 장관일 것이고, 사람을 매우 격동시킬 것이다……’라고 여긴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절묘하게 상상한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이미 심판 사역을 시작했을 때에도 네가 여전히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네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고 여길 때는 벌써 하나님이 하늘땅을 바꾼 때라는 것을. 그때에는 아마 네가 인생의 의의를 막 깨달았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무정한 징벌 사역은 깊이 잠들고 있는 너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때에 너는 문득 크게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 이미 끝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며, 사람의 말과 행위를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드러낸 그런 말씀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도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눈에는 다만 작디작은 신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그의 눈앞에 있었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모두 그의 앞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언제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통과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런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성육신의 사역에 대해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하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통과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전혀 심판 사역이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의 패괴는 다 같지 않은가? 사람의 실질은 다 같지 않은가? 심판하는 것은 인류의 패괴된 실질, 바로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실질이고, 사람의 모든 죄악을 심판하는 것이지 결코 사람의 사소한 결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심판 사역은 대표성이 있다. 전적으로 어떤 한 사람을 위해 하는 사역이 아니라 일부분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으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일부분의 사람들에게 친히 역사하여 그것으로 전 인류의 사역을 대표하고, 그런 다음 또 차츰차츰 확장한다. 심판 사역도 역시 그러하다. 어느 한 부류의 사람 또는 어느 한 부분의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불의를 심판한다. 예를 들면,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등등이다.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의 실질인데, 이 심판 사역이 바로 말세의 정복 사역이다. 사람이 보게 된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이 바로 이전에 사람의 관념 속에 있었던 말세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 사역이고, 지금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곧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다. 오늘날의 성육신 하나님이 바로 말세에 전 인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이 육신과 육신의 역사, 말씀, 모든 성품은 그의 전부이다. 비록 육신이 하는 사역의 범위는 유한한 것이고 직접 전 우주에 미치는 것이 아니지만, 심판 사역의 실질은 모두 직접 전 인류를 심판하는 것이다. 중국만 심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몇 사람만을 위해 심판 사역을 전개하는 것도 아니다.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간에는 비록 역사 범위가 전 우주에 미칠 수 없지만, 그가 하는 것은 전 우주의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육신의 역사 범위 내에서 하는 사역을 끝마친 후 즉시 이 사역을 전 우주 각지로 확장하는데, 마치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 복음을 전 우주 각지로 확장한 것과 같다. 영의 역사든 아니면 육신의 역사든 다 유한한 범위에서 역사하지만 전 우주를 대표하는 것이다. 말세의 사역은 성육신의 신분으로 나타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 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희고 큰 보좌 앞에서 사람을 심판하는 그 하나님이다. 그가 영이든 아니면 육신이든, 어쨌든 심판 사역을 하는 이는 말세에 인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그의 역사에 근거하여 정한 것이지 결코 외모나 기타 여러 방면에 근거하여 확정한 것이 아니다. 비록 사람이 이 논법에 대해 관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성육신 하나님이 전 인류를 심판하고 정복하는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평가하든, 사실은 어쨌든 사실이다. 누구도 “사역은 하나님이 한 것이지만 육신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릇된 논법이다. 왜냐하면 이 사역은 육신의 하나님 외의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역을 이미 다 끝낸 이상, 이 사역 후에 하나님이 두 번째로 사람을 심판하는 사역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이미 전체 경영 사역을 전부 마무리하였으니 제4단계 역사가 있을 리가 없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오늘날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왜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끝날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는가? 이것을 너는 아직도 통찰하지 못하는가? 왜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이 정복의 사역인가,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바로 사람을 형벌과 심판의 정복 사역 가운데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나게 한 다음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의 결말을 드러낸다고 하는 편이 낫다. 사람의 죄를 심판한 후에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어 이로써 악한 자인지 의로운 자인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는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 가운데 두며,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가운데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으며,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진리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 전능자의 이름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솔을 받게 되고, 더 많고 더 높은 진리와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며, 이전 사람이 보지 못한 이상(異象)을 보게 된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계시록 1:12~16) 이 이상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의 발표인데, 이 모든 성품의 발표가 곧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의 발표이다. 계속되는 형벌과 심판 가운데서 인자는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는 방식으로 그의 고유한 성품을 발표하여 그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인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하였다. 이 모습이 바로 요한이 본 인자의 모습에 대한 진실한 묘사이다(물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이런 것을 전혀 볼 수 없다).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은 사람이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성품을 발표하는 방식으로써 그의 본래 모습을 사람들 앞에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무릇 인자의 고유한 성품을 깨달은 사람은 인자의 본래 모습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여 사람이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 매 한 단계 역사를 경력하고 나면, 요한이 말한 촛대 사이에 거니는 인자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는 진정한 함의를 알게 된다. 그때에 너는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한 이 평범한 육신이 확실히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임을 완전히 확신하게 될 것이고, 또한 네 자신이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았고 자신이 가장 운이 좋은 사람임을 진정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너는 이 축복을 받고 싶지 않은가?』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심판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심판은 진리로 인류를 정복하기 때문에,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성육신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 이 사역을 한다. 다시 말해, 말세의 그리스도는 진리로 각 지역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모든 진리를 각 지역의 사람들에게 효유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에 대해 매우 언짢아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을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너에게 알리겠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모두 흔히 사람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며, 모두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땅의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며, 사람의 머리는 마치 한 웅덩이의 썩은 물과 같아 생겨나는 것은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한 각 단계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각자에게 자기 자신을 금보다 더 중하게 여기지 말 것을 권한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너는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너는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 다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하는가? 하나님의 사역은 대세의 흐름이다. 하나님은 너의 ‘공로’로 인해 심판 사역을 반복하여 두 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면, 너는 후회막심해할 것이다. 만일 내가 한 말을 네가 믿지 않는다면, 너는 하늘의 그 희고 큰 보좌가 너를 ‘심판’하기를 기다려라! 너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예수를 저버렸고 다 예수를 부인했어도,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실은 우주와 땅끝까지 널리 전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룬 사실이 아닌가? 만일 네가 아직도 예수가 와서 너를 천당에 데려가기를 기다린다면, 나는 너를 매우 완고한 썩은 나무라고 한다. 예수는 너같이 진리에 충성하지 않고 복만 받으려고 하는 거짓 신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조금도 가차 없이 불못에 던져 만년 동안 불사를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2)

관련된 하나님 말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많이 실행할수록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더 빨리 들어설 수 있다. 너는 기도하는 것을 통해 기도에서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어 내어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면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더욱이 자신의 치명점과 연약한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차츰차츰 온전케 된다. 온전케 되는 경로는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어 내며,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데에 진입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며, 너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고 육체를 배반하며, 또 형제자매들과 늘 교통하는 것을 통해 너의 체험이 더 풍부해지게 하는 것이다. 너는 단체 생활에서든 개인 생활에서든, 대예배에서든 소예배에서든, 다 체험할 수 있고, 훈련을 받아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온전케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란 네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고, 너에게 하나님에 대해 더욱 믿음과 사랑이 있게 되는 것이며, 이런 경로를 통해 점차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너의 바르지 못한 속셈을 벗어 버리고, 정상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이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사탄이 패괴시킨 요소는 갈수록 적어진다. 너의 실제 체험을 통해 차츰차츰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므로 온전케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려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온전케 되다>에서 발췌 『사람이 산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아래에 달갑게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를 달갑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정으로 산 사람이 될 수 있다.』 <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사람의 순종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으로, 삶의 고난과 연단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고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추구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 내가 오늘날 온전케 하려는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자신의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증거하기 원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가령 네가 상 받기만을 위하고 자신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가 될 것이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 성정 변화란 무엇을 말할까? 너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각종 고난과 연단을 겪어 사람 안에 있는 사탄 독소가 정결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성정 변화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여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음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고,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음을 인식하며, 사람의 그릇됨과 궤사함, 사람의 빈궁함과 가련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인데, 결국에는 사람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여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범사에 진리를 실행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성정 변화란 주로 너의 본성 방면의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의 것들은 겉면의 행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성의 것들은 사람 삶의 가치, 삶의 의의, 인생의 가치관에 직접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과 관련되며, 사람의 실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의 이런 방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완전히 진리에 진입하여 사람의 가치관, 생존관, 인생관에 다 변화가 일어나고,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만 성정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어느 날까지 체험하여 한 사람의 인생관, 삶의 의의, 삶의 토대가 모두 바뀌게 된다면, 즉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 지위, 돈, 누림, 부귀영화는 있으나 없으나 괜찮다고 여기면서 그런 것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람다운 모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최종에 온전케 된 사람들은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로운 일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의 본성에는 공통성도 있고 차이점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1)

관련된 하나님 말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와 매우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을 믿는 일을 매우 간단하고 가볍게 보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게 되고, 끝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글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과 공허한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질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여전히 하느님에게 자신들을 보우하사 평안과 충족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안정시키고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란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가 단지 은혜를 많이 받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이다. 특히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이 시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더욱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시작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텅 빈 도리 가운데서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령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있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흐름 가운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든지 모두 아주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하지 못하면 새 사역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없고, 새 사역에 순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또한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고, 사람의 관념이 아물기 어려운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으며, 계속 역사하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한 무리 또 한 무리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계속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으며,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씩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왜 늘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했으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인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표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모두 사람에게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베드로의 그 풍격이 있게 되면, 그때는 너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떡으로만 배불리는 것’이다. 사소한 간증, 쓸데없는 것, 겉면의 것들만 말하고 실제는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바른길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먹고 마시지 않고 천국에 가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최소한 겉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각 나라, 각 교파, 각 종교, 각 분야를 모두 말씀으로 정복한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온전케 한다.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어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바로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너희가 모두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할 수 있다. 네가 체험한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만약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없다면, 성령이 너에게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찾게 됨으로써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으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것은 바로 실제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이고, 실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며, 그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어 넣어 사람에게 그의 소시(인성 소시(所是)든지 아니면 신성 소시든지)와 그의 말씀의 실질이 가득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사람에게서 살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는 것은 주로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발하는 음성으로 사람의 결점을 대처하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폭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 하고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각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여 더러운 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 얻어지는 가장 깊은 의의는 바로 실제 하나님을 푯대와 본보기로 하여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거리도 없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면 네가 그대로 실행하고 그가 요구한 것에 모두 도달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시련ㆍ연단 사역을 하시는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시련은 사람의 어떤 영적 상태를 겨냥한 것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는 사람의 패역 성품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불순물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체험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상태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인식과 순복이 있게 하고, 사랑과 간증도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려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 있어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 있어야만 사람의 사랑이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든 소극적인 방면에서든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상태도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는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찬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사람의 타락 성품을 다루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폭로하는데,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헤치고 다 폭로한다. 많은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와 훈계와 연단을 통해, 또 형벌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난측(難測)하게 하며, 너의 관념에 너무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의의 있음을 설명한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면 의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기묘함을 느낀다. 기묘할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이 난측하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나 위대함을 보게 된다. 만일 그가 건성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정복하고는 그만둘 뿐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지금 연단을 좀 받지만 그것은 너의 생명이 자라는 데 아주 유익하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받는 것은 너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연단을 좀 받지만 후에는 너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너는 나중에 “하나님의 행사는 참 너무나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인데, 그것은 네 마음속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의 연단(힘쓰는 자, 형벌시대)을 겪고는 후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말하였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가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아주 의의 있고, 아주 가치 있으며, 아주 소중히 여길 만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어도 네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내가 한 사역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에게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묘하구나,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정말 사랑스럽구나!”라는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한동안 체험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너에게 한 사역을 네가 이미 얻었음을 증명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작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아지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작아진다. 받는 연단이 클수록, 받는 고통이 클수록, 받는 시달림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생기는 참된 사랑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더 있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너는 체험하는 가운데서 연단과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들, 훈계와 징계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투철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훈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인식하는 것은 아주 얕다. 그는 “하나님은 참 좋아요. 그분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을 누리게 하시지요.”라고 말할 줄밖에 모른다. 훈계와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의의가 있으며, 너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할수록,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너를 얻을 수 있으며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역사는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의의도 없을 것이다. 말세에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함의는 바로 이 때문이다.하나님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여 얻는다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너희에게 한 사역이 클수록 너희의 사랑을 더 깊게 하고 더 순결하게 하며, 하나님이 한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그의 지혜를 더욱 깨달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없기에 사람이 성경을 지키고 숭배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생명의 도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지니고 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의 인도와 부축 그리고 공급이 없다면, 네가 얻는 것은 단지 글귀이고, 도리이며, 더욱이 사망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동시에 공존한다. 네가 만약 진리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네가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고 너의 육체뿐인데, 비린내로 가득 찬 너의 그 육체이다.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이 3단계 구원 사역 중에서 제1단계 율법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차이가 많은데, 구원 사역의 겉면만 조금 있을 뿐 결코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는 사역에 착수한 것이 아니다. 제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까닭은 율법 아래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 뿐 더 많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고, 율법시대의 사역이 사람의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고 더욱이 어떻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야 하는가 하는 사역에도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정에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한 것이다. 그 단계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고, 정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에 관해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예수는 서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맞는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각 시대에 사역을 하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 시대의 사역만 할 뿐, 결코 다음 단계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그의 각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예수는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사역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어떤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교훈할 때는 모두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설사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가 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 아니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속죄제로만 되었을 뿐 인류의 말씀 원천이 되지는 않았다.』 <역사 이상 (1)>에서 발췌 『예수가 와서 그 단계 사역을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그는 표적과 기사를 조금 행하였고 말씀도 어느 정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는 하나님의 일부분을 대표한 것이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을 대표하여 한 부분의 사역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묘하고 너무나 위대하여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밖에,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부분의 사역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면 참 도를 찾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성경의 실제 내막이 어떤지를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일을 기록한 역사(歷史)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증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로,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에 대해 기록되었다. 신약에는 예수가 땅에서 했던 사역을 기록한 4복음서도 있고, 바울이 한 사역도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역사(歷史)를 기록한 것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에 속하게 되고,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歷史)일 뿐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지금 하고자 하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좋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성경에는 비록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과 같은 생명에 관한 말씀 책이 일부분 모아져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책 속에서 공급을 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또한 구시대의 책이다. 그런 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 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될 뿐, 마지막 때의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자들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하나님나라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여호와의 창세 사역처럼, 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처럼, 그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고 흘러갈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십자가의 사역에 어떤 설득력이 있거나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든, 사역은 어디까지나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디까지나 시대이다. 사역은 계속 어느 한 기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 ‘4복음서’를 오늘에 가져왔을 때는 모두 역사책이 되고 모두 노황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노황력이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런 노황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할지라도 모두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닌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더 이상 그 노황력을 미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 노황력은 너무 ‘낡아서’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짐만 될 뿐이며, 너를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를 낡은 종교적인 회당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뒷걸음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너는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내가 너에게 유익한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줄 수 없고,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도와줄 수도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찾지 않는가?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몇천 년이나 되었어도 변화가 전혀 없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오늘날 성령의 말씀을 들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였는데, 너희가 들었는가? 하나님이 말세에 말씀 사역을 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이고,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말한 성령의 말씀은 바로 오늘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많은 그릇된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사람에게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과 직접 말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 이 시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역사하려면 말씀이 육신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현재는 성령의 시대라고 여기면서도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막연한 신앙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성령이 직접 말씀하고 역사하기만 바라고 오히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새 시대에 진입할 수 없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철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네 스스로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네가 스스로 천당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릴 수 있겠느냐?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권하겠다. 너의 그 꿈은 이제 그칠 때가 되었다. 너는 지금 누가 역사하고 있고, 누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생명도 얻지 못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해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所是)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나의 말은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나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인류를 인도하는 유일한 선도자이며,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의 실질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다. 설령 이 세계에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나의 도움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말을 반박하는 많은 사람들, 또는 나의 말에 대해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이다. 즉, 시간과 사실이 나의 증거가 되게 하여 나의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실증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고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나의 말에 정죄되는 사람이고, 더욱이 나의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 형벌의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말씀’이 이미 ‘육신’ 되었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 중에 실제화되었고 즉 모든 진리와 모든 생명과 길도 육신에 왔으며 확실히 영이 땅 위에 왔고 영이 육신에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비록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겉으로 보기에 결코 같지 않지만, 역사 중에서 더욱더 영이 이미 육신에 실제화되었음을 볼 수 있고, 더욱더 ‘도’가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더욱 볼 수 있으며, 너로 하여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참뜻을 깨닫게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너는 더욱더 오늘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임을 깨달아야 하고, 또한 너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 되었음을 보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이러면 네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있고 네가 그를 알고 그를 깊이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오늘 걷는 길이 생명의 도이고 ‘진리의 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사역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실질을 응했는데,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기에,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에 내포된 뜻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또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이 말까지도 너로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부터 하나님은 말씀하였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한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육신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道)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해야 할 간증이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이고, 즉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곧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확실하게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친다.』 <실행 (4)>에서 발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노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원칙

1.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진실한 의의는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절대 종교 의식을 해서는 안 된다. 2. 반드시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에 결부시켜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지 실제를 벗어나 빈말과 글귀 도리를 말해서는 안 된다. 3. 반드시 본분을 하는 것과 생명 진입의 모든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며, 진리를 찾고 구하고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4. 간구하고 기도함에 있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또한 이지가 있어야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거래해서도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기도는 형식만 따르고 과정만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좀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도여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은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흐리멍덩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만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진입한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적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흡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행실을 중요시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이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편차적인 면이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표준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참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사람은 모두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면 매우 괴로워하는데, 괴로울 때 누구와 말이라도 하면 조금 후에는 괴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괴롭지 않아도 자신의 정형은 해결되지 않았다. 때로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훈계와 책망이 임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한 적이 있느냐? 모두 스스로 조절하여 흐리멍덩하게 지나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아무렇게나 하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마치 거지가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가득 주워 담아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모두 제멋대로 한다. 보라, 사람은 항상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가다가 빗나가게 된다. 여기서도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배반이다. 사역을 하다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게 되면, 사람은 또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지?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역을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이 일은 가장 깊은 것이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섬겨도 기도마저 없다면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너의 정형이 비정상일수록 더욱 효과가 없게 된다. 기도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너무 형편없어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사역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도 해내지 못하면 너 같은 사람은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이지적으로 기도했는지 분별해야 하니, 그러면 기도도 할 수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한동안 훈련하면 되기에 괜찮다.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평소에 네가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때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너는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일 기도가 부족하면 너는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매임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잠을 좀 적게 자고 좀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된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훈련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당신께서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저는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케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여 너에게 이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너에게 어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로 사역을 가져오고 기도로 섬김을 가져오는 것이다. 네가 인솔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기도에 공을 들이지 않고 기도를 참답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저렇게 섬기다가 넘어질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늘 혼자 하고 늘 기도가 없이 하나님을 등지고 이것저것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영을 하면 정죄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네가 방해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모독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엇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비록 네가 엇나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성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본분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너는 언제나 ‘이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진리를 찾고 구하며,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은 그런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런 참된 정형과 이런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이 실행 방면에서 범하는 가장 큰 착오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또 어디에서 실현되겠느냐? …… ……네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든 아니면 너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지, 네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이런 것은 네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는 바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일과 모든 진리를 참답게 대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으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에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지, 어떤 것을 사모하든지,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지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지,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지,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지, 이런 말의 표현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저로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얼 무얼 주십시오. 저를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결정한 것이다. 비록 네가 이렇게 기도할지라도 이런 기도에 대해 성령은 ‘네가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이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기도에는 마땅히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고, 당신 앞에서 찾기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며,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하기만을 원합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저에게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주셔서 저로 사역을 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한다면, 이렇게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께 너의 뜻대로 일을 해 달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기도할 때 한 말에 이지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네가 우매하든지, 일부러 그렇게 했든지 너의 기도에 이지가 없으면 성령이 네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기도할 때, 이지 있게 말해야 하고 어조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의 패역을 아십니다. 저에게 힘을 더해 주셔서 이런 환경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시오. 저는 그저 이렇게 구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설사 저로 효력을 하게 하시고 안받침물이 되게 하실지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구하기만 한다면 구한 후에도 역시 빈말 무더기뿐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람의 정형을 아십니다. 이 일에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저의 마음이 당신께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킨다. 만약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면 무미건조하고,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네가 중얼중얼하기만 하고 묵도하거나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것은 순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다. 네가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데 성령이 역사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면 공손하고 정직해야 하며,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율법시대를 보면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칠 때,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또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기도에 이지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은데, 모두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인솔자가 되게 하신 이상, 제가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하고 당신의 사역에 엇나가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꼭 제가 이렇게 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말투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런 기도에는 이지가 없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이지가 없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겠느냐? 네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내게 말할 때 이지가 없는데, 내가 들어줄 수 있겠느냐? 너를 단번에 차버리겠다! 네가 영 앞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앞에 온 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해야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해야 정형을 경건한 위치에까지 조절하여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기도하면 좋아질 것이고, 기름을 바른 것 같을 것이다.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예수의 기도를 언급하는 것은 사람이 꼭 그의 그 각도에, 그 위치에 서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라고 기도하였는데, 즉 만약 할 수 있으면이라는 이런 뜻으로 상의한 것이지 “해 주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순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순복하는 상황에서 기도하였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두 번째도 같은 말로 기도하였고, 세 번째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듬어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완전히 순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조금도 없었다. 그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피 흘릴 것을 생각하니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에 관련되는 일이고 또한 그가 아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더듬지는 못한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것을 생각했음에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아주 순복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정상인데, 조건을 따지며 말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것이다. 첫 번째로 기도할 때는 깨닫지 못하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순복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두 번째도 역시 그렇게 기도했는데, 모두 세 번 기도하였다(물론 세 번 기도한 시간은 3일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 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처음 두 번 기도할 때는 모두 찾고 구하였는데, 역시 순복하는 상황에서 찾고 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어떻게 어떻게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마 너에게 적합한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고 너로 그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사람이 기도할 때 늘 “하나님, 저에게 마련해 주시고,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런 기도는 얼마나 이지가 없느냐! 너는 기도할 때 이지가 있어야 하고, 순복하는 전제하에서 기도해야 하며,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어떻게 어떻게 해 달라고 구해야지.’라고 정해 놓는데, 이런 기도는 너무나 이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그 영이 사람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기도해도 무미건조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왜 하나님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나님 이름의 의의는 무엇인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은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사역을 해야 하고 인류를 경영해야 했기에, 하나의 이름이나 두 개의 이름 또는 더 많은 이름을 취했을 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어느 이름으로 불리든 다 그 자신이 자유로 선택한 것이 아닌가? 또 너, 피조물이 규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데에 따라, 인류의 언어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사람이 개괄할 수 없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그러므로 각 시대에 하나님 자신이 친히 역사하려고 할 때, 그는 시대에 부합되는 이름으로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갖춘 특정된 그 이름으로 그 시대의 하나님 성품을 대표하는데, 하나님이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예수, 이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해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바꿀 리가 없기에 하나님은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다른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말이야말로 모독인 것이다! 네가 말해 봐라, 단지 ‘예수’라는 이름,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많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지만, 그 많은 이름 중에서 어느 이름도 하나님의 전부를 다 개괄할 수는 없고, 어느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그 많은 이름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전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성품은 너무나 풍부해서 그야말로 다 인식할 수가 없다. 사람은 인류의 언어로 하나님을 전부 다 개괄할 수가 없다. 인류는 다만 얼마간의 유한한 어휘로써 사람이 인식한 하나님의 성품, 즉 위대, 존귀, 기묘, 난측(難測), 지고지상, 거룩, 공의, 지혜 등등을 개괄할 뿐이다. 너무나도 많다! 이 몇 개의 유한한 단어만으로는 사람이 본 유한한 하나님의 성품을 다 묘사해 낼 수도 없다. 후에 또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격정을 한층 더 표현할 수 있는 얼마간의 말을 더하였는데, 즉 “하나님은 너무나 위대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다!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다!”라는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이러한 것과 유사한 인류의 언어가 절정에 이르렀어도 사람은 여전히 분명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엔 하나님에게 많은 이름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는 또 이름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시가 매우 많지만 사람의 언어가 또한 너무 결핍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특정된 단어와 특정된 이름만으로는 전혀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할 수 없다. 그러면 네가 말해 봐라, 하나님의 이름이 고정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처럼 위대하고 거룩한데, 너는 그가 시대마다 그의 이름을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는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여호와의 이름이 또 예수가 되었는가? 메시아가 오리라고 하였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 바뀔 수 있었는가? 그런 것은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닌가? 설마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어제의 사역도 바뀔 수 있었고, ‘여호와’의 역사도 ‘예수’가 이을 수 있었는데, ‘예수’의 사역을 또 다른 사역으로 바꾸어 이어 갈 수 없겠는가?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었는데,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초래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그의 역사가 어떻게 변하든, 또한 그의 이름이 어떻게 변하든, 그의 성품과 지혜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면 너의 식견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영원히 하나님의 이름이니 하나님은 영원히 예수라고 해야 하고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너는 ‘예수’, 이 이름이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마지막 시대도 끝마치는 이름이라고 자신 있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누가 ‘예수’의 은혜가 시대를 끝마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가령 하나님이 각 시대에서 하는 사역이 다 같고 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면, 사람은 어떻게 인식하겠는가? 하나님이 여호와라고만 불려야 하고, 여호와라고 하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인식할 것이다. 혹은 하나님이 예수일 수밖에 없고, 예수란 이름 외에는 하나님이 더 이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없고, 예수 외에는 여호와도 하나님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도 하나님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고 여긴다. 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는 하나님이기에 그를 예수라고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면 너는 규례를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한 범위 내에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시대에서 하나님이 하는 사역, 불리는 이름, 지니는 형상, 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지금까지 조금도 규례를 지키지 않고 조금도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여호와이지만 또한 예수이고 또한 메시아이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그의 사역이 차츰차츰 바뀌고 그의 이름도 상응하게 바뀌므로, 어느 한 이름도 그를 완전하게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릇 그가 불리는 이름은 다 그를 대표할 수 있으며, 각 시대에 그가 하는 사역은 다 그의 성품을 대표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하나님은 각 시대에 새로운 사역을 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가 어찌 다른 시대에 같은 사역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옛것을 지키겠는가? ‘예수’, 이 이름은 구속 사역으로 인해 불린 이름인데, 말세에 예수가 재림하여 또 그 이름으로 불리겠는가? 또 구속 사역을 하겠는가? 왜 여호와와 예수는 하나인데 오히려 다른 시대에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가? 모두 사역하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단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전부를 다 대표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고 이름으로 시대를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한 이름도 하나님 자신을 완전히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하나님의 시대성을 갖춘 성품만 대표할 뿐이고, 사역을 대표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성품에 적합한 하나의 이름을 택하여 전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그러므로 한 번 오면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고, 하나의 시대를 대표하며, 하나의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한 단계의 새로운 출로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고,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한다. 6천년 경영 계획을 끝마치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해야 한다.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하며,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고 신기원을 개척하고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을 가져오고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너희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이전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대충대충 하여 속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너는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식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 기도는 천천히 훈련하는 것이다. 평소에 집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기도할 수가 없고, 평소에 소예배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대예배에서도 기도할 수가 없다.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할 말도 없고, 설사 기도한다고 해도 입술뿐이지 진실한 기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너는 이러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네 속의 진실한 정형과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도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더듬기를 구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고할 수 있기만을 구하여라.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전에 당신을 거역했습니다. 오늘에야 제가 정말 패괴되어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을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이 늘 저에게 역사하시고, 늘 빛 비춰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당신 앞에서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당신의 간증을 보고, 당신이 이긴 증거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면,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받을 것이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우면, 언젠가 너의 심지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고, 너의 마음과 전인(全人)까지도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며, 나중에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는 너희에게 있어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네가 기도하여 성령 역사를 얻으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동받을 것이고 네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네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을 털어놓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기도로 마음속 말을 다 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네가 속으로 격려받지 못하였다면, 너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너의 말이 진실하지 않으며 아직도 불순물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네가 기도한 후에 누림을 얻게 되었다면, 너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도 너에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가 부족하면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잠을 적게 자고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으냐?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냐? 이전에 너희는 기도할 줄 몰랐고, 게다가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지금은 기도하는 것을 잘 훈련해야 한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마음으로 당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저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고, 당신의 영이 제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 앞에서 모든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나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당신 앞에서 제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게 하셔서 저의 전인(全人)이 완전히 당신 앞에 봉헌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시련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저는 앞날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죽음의 통제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찾기 원합니다.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운명도 당신의 수중에 있으며, 저의 일생은 더욱 당신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당신이 저로 사랑하게 하시든 아니하시든, 사탄이 어떻게 방해하든, 저는 꼭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이렇게 기도하여라. 네가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점차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진실한 기도에 진입하는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여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의 의의를 깨달을 수도 있지만, 기도에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개인의 기도 생활은 기도의 의의와 기도의 상식을 깨달은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자기의 결함 때문에 간구하며 기도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기초에서 기도하여라.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 생활을 확립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찾고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실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실사구시하고, 방식을 중요시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 체험이 있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 생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묵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등등, 목적 있는 이런 영적 교통의 사역은 모두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게 하고,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든, 묵도하거나 큰 소리로 외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이 네게 이루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기 위한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도달하여 너의 생명이 한층 더 자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제일 낮은 기준은 반드시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너에게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없을 수 있겠지만, 너는 반드시 기도로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조목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너의 영 생활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로 인해, 너는 네게 원래 있던 이상(異象)을 지킬 수 없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며, 심지도 그에 따라 사라진다. 영 생활에 진입한 표징은 너의 기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는지의 여부로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이 실제에 진입해야 하고, 다 의식적인 훈련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실로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너는 처음 기도할 때에 엉뚱한 생각으로 첫술에 배불리려고 하지 말라. 너는 사치한 요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입을 열자마자 성령께 감동받기를 바라고, 입을 열자마자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의 기도를 온전케 하는 것에는 모두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의 믿음을 시련하여 네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지를 본다. 너는 기도할 때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심지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훈련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더듬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감동 더듬기를 중요시하고, 찾고 구하며 모색하기를 중요시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네가 실행하는 길이 틀리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속셈과 관념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으며,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네가 충성하는지를 본다. 어쨌든, 훈련할 때에 너는 대가를 많이 치르거라. 네가 자신이 실행하는 길에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기도해도 된다. 네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기만 하면, 성령은 꼭 너를 이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어떤 때에는 네가 진심으로 기도하는데도 별로 감동을 더듬지 못하게 될 텐데, 그때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기도하는 데에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궤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너의 성정은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다. 진정한 영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성령께 감동받는 생활이다. 성령께 감동받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생활은 영 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종교 의식에 속한다. 자주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 생활에 진입한 사람이다. 사람의 성정은 기도에 따라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될수록 적극적인 성분과 순복의 성분이 더 많아지고, 사람의 마음도 점차 정결함을 받게 되며, 성정도 그에 따라 점차 변화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로 가져온 효과이다.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가

기도는 항상 많이 하지만 응답 받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매일 드리는 기도 - 오늘도 주님과 대화를 하셨나요

매일 드리는 기도는 크리스천으로서 꼭 해야 하는 영적 수련 방식이며,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일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인데, 기도가 우리에게 별도의 부담되지 않기 위해, 먼저 기도에 대한 의의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말씀을 줄 수 있다

『 생명의 말씀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생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생명의 본질을 지니고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자 끝없이 솟아나는 생명수의 원천이다. ...』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이루었다”라고 하실 때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가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역사를 하시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하면 주님을 따르는 형제자매들은 다 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고 나서 평안과 기쁨이 생겼다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정과 생활과 사업에서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주님께 기도하여 해결받으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 치유되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값없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와 축복뿐일까요? 요즘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숨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랑이 우리의 영적 생명에는 유익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널리 알려진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 아들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볼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풀어 주신 아이이고 또한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이니 아브라함이 그 무엇보다 이삭을 사랑한 것은 틀림없었을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선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어. 하나님께선 이삭이 자란 후 번제로 바치게 하시면서 왜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뜻은 뭘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 나중에 저는 영적 서적을 보고서야 곤혹이 풀렸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이런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한 일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 경영 계획의 선도자로 택하셨기 때문에,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과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시련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즉, 아브라함이 진실로 순종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이 참되고 정직하다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흡족해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정말로 이삭의 목숨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소중히 여기셨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얻으셨을 때 시련은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 마음을 놓고 인정하신 후에야 그에게 더 큰 부탁을 맡겨 줄 수 있었고, 또 아브라함이 구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크나큰 축복을 베풀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 책에는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일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유 하나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처럼 큰 복을 내렸다.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를 귀히 여기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보기에 이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 드린 가장 진귀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그토록 힘들게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처음 피조물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선물로 간주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을 보셨을 때, 마음이 기뻤고 감동받았으며 또한 매우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현재 아브라함의 후손은 온 땅에 가득합니다. 이스라엘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 몇 십 개 나라들도 모두 그의 후손인데, 여기에는 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마다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계획과 고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하신 이 일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바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시면 그 사람에게 부탁이 있으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하실 때 시련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심과 순복을 검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우리에게는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난처하게 하고 고생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역사를 잘 받아들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에 대해 진심과 순복이 있어야 시련을 거쳐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또 모세가 광야에서40년 양을 방목한 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광야는 기후도 아주 나쁜 데다가 야수까지 출몰하고 게다가 광야에는 사람도 없는데 모세 혼자 동반자도 없이 40년 동안 양을 방목했으니, 매일 양 말고도 별과 달과 마주한 그 날들은 틀림없이 아주 고생스러웠을 거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왜 모세를 광야에 있게 하셨을까? 그것도 40년이나 말이야.’ 그 책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혼자 어떻게 광야에서 40년을 생존하였을까? 참된 믿음이 없다면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 하나님에 대한 이런 참된 인식이 있으면 그 믿음은 어떠냐? 크지 않으냐? (큽니다.) 하늘을 찌를 만큼 크다, 그렇지? 그러므로 모세가 광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였느냐?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를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 위해 먼저 그의 믿음을 연단하였다. 보아라, 하나님은 말씀을 하지 않았고, 사역을 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공급하지 않았고, 설교도 하지 않았다. 또한 모세에게는 책과 서류들도 없었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그저 혼자 광야에서 지내왔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은 모세의 참된 믿음을 이루었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 일을 했을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을 맡기려고 하였고, 그를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크게 쓰려고 했고,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를 단련시켰다. 무엇을 단련시켰느냐? (믿음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단련시킨 것이 아니다. 무엇을 단련시켰느냐? (모세의 의지와 의지력을 단련시켰습니다.) 그렇다, 의지력이다.』 이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양을 방목한 거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열악한 환경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연단하고 또 그의 내면에 있는 열심과 좋은 마음과 혈기에 속하는 것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래야 그를 크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의 그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고통스러운 환난을 겪어야 생기게 됩니다. 안일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는 게 쉽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다 압니다. 반대로 열악한 상황에 있을수록, 마음의 고통이 클수록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고통스러울수록 힘껏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며, 또 그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진실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있게 하신 것이 사람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모세를 단련시켜 그에게 참된 믿음과 의지력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하여 그러한 조건을 갖추게 한 뒤에야 하나님은 모세를 크게 써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중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면서 부딪힌 여러 가지 고난과 시험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의지력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도 증명되다시피, 오직 모세만이 그 중임을 감당할 수 있었고, 그 부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모세가 비록 연단의 고통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또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고, 또한 그를 120 살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매사마다 겉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때로는 우리로 고통받게 할 때도 있지만 그 뒤에는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저는 우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깊고 크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해도 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사랑이기에 우리를 괴롭히거나 혹은 일부러 우리를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매사마다 다 하나님의 계획과 고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런 깨달음이 있었을 때, 저의 마음은 감동으로 차 넘쳤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진심과 순복이 너무 적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저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짐을 느꼈고,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사람의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더욱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멘! 이묘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것이란?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님 한 분이 꿈에 교회에 갔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 자매를 보았는데,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찬양대와 신도들이 함께 찬양을 하는데도 소리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기도하는 것마저도 입술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형제님은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꿈속의 천사가 말해 주기를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이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의 진실한 모습이다.’라는 것이 저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진실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자신의 병이 치료받기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가정의 평안과 육체의 누림을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신의 사업이 번창하기 위해서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 믿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습니다. 우리는 병이 치유됐을 때, 돈과 지위와 권세를 갖게 됐을 때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해 시간과 힘을 다해 헌신하려고 합니다. 또한 가정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거두어가셨을 때, 재앙이 우리에게 닥칠 때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서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금생에서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서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 평안하기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를 쏟았을 때,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고 천당의 복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었다. 사람이 나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혐오했더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더러운 사술을 행하는 술객의 술법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시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나의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나를 믿어서 얻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득을 보려 하고 축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가정이고 또 돈과 지위와 권세 등등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앞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지만 행하지 않았습니다. 말에는 거인이지만 행동에는 난쟁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가 그저 형식적인 경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진실한 믿음이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흡족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하루 밤사이에 모든 재산과 아들딸을 잃었고, 그 뒤에는 또 그의 온 몸에까지 악창이 났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칭송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든 재앙을 받든 진정으로 하나님의 배치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어야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진실한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비록 당신을 믿고 있지만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고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타락된 성정에 묶여 세상의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늘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셔서 우리가 진심을 내놓을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든 베풀어주시든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경배하게 하소서. 당신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장로는 정말 주님이 세웠을까요?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 20장 28절에 기록된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라는 내용을 보고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모두 성령이 세웠다고 여기는데, 성령이 그들로 하여금 무리의 감독자로 두어 그들로 교회를 목양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 받은 사람들이기에 신도들은 마땅히 그들의 말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는데, 만약 그들에게 순복하지 않는다면 바로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은 과연 진리에 부합될까요? 이 성경 구절은 사도 바울이 한 말일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일까요? 주님 말씀의 근거가 있습니까? 주님은 정말 인정하는 것일까요? 만약 우리가 주님 말씀의 근거도 없고 성령의 실증도 없이 단지 바울이 한 말에 근거하여 목사나 장로는 바로 주님이 세웠다고 여긴다면, 이런 관점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주님의 뜻에 부합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매 시대의 역사 가운데 모두 일부 사람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게 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세우고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직접 안배하며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거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 말씀의 증거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9~10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세울때 직접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불렀으며,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사역과 뜻을 모세에게 밝히셨고 동시에 그의 취지도 모세에게 알려주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출애굽 하라고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분부하여 사역하게 할 때에 꿈이나 계시를 통해 한 것이 아니고 천사나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모세 앞에 나타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의 은혜 시대에서 하나님이 세운 베드로는 하나님이 직접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넘겨주고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목양하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태복음 16:18~19), 예수께서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의 양을 치라”(요한복음 21:15~16) 예수님과 베드로가 주고 받은 대화의 내용을 볼 때, 베드로는 주 예수께서 직접 세우고 직접 실증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넘겨주었고 베드로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 권병을 갖게 되었으며 주 예수께서는 그의 뜻도 베드로에게 알려 주었고 해야할 사역을 직접 베드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잘 보살피고 교회를 잘 지키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가 직접 부른 사도일지라도 말입니다. 베드로는 은혜시대에 주 예수의 직접적인 부르심과 세움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베드로의 일에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고 정하신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직접 부르고 증거하고 안배하고, 그런 사람은 직접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사역하는 배경이 모세나 베드로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대부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졸업장에 의해 목사나 장로가 된 것인데 하나님의 증거와 성령의 실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니며 성령도 그들을 무리의 감독관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쓰임받을 사람을 세운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세우는 뜻과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른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 다함께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한 것인데,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하나님의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한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이 일으킨 인성 협력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인성 협력 사역을 할 수 있는 이런 한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과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이 사람을 통해 더 많이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에 더 많이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받는 한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솔하는 데에 있어서의 매개자이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소통시키는 ‘번역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일꾼이나 사도가 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똑같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다른 일꾼이나 사도와는 사역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사역의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사람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의 역사에 반드시 협력해야 할 인성의 사역이다. 그러나 다른 일꾼이나 사도가 하는 사역은 다만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여러 방면의 안배를 전달하고 시행하는 것이며, 또는 교회 생활을 수호하는 일부분의 간단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꾼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사람으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계속 남겨서 쓰고, 쓰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며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켜 사람 가운데서 인성 협력의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이런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수월해 졌으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터득하지 못하는 많은 것에 대해 하나님은 그가 세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지시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하고 더욱 나아갈 길이 있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의 “번역관”인데,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고 또한 성령의 실증이 있으며 사역할 때에 성령의 수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해야만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심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를 대적한 250명의 족장과 같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인솔에 순복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러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혀 훼멸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으로 지키게 하였고 전체 구약 시대의 사역을 인솔하게 하였기에 모세는 그 어느 사역자와도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250명의 족장은 사람이 선택한 것이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심하게 하나님을 거스른다면 하나님께 훼멸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시대에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사역할 때에 능력이 충만하고 성령 역사의 인솔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간단하게 섬기거나 공급하는 사역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는 사역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일부 은사가 있고 영적인 도리를 좀 말 할수 있어 형제 자매들 가운데서 설교나 교회를 목양하는 사역을 합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행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솔한 것이라면, 그들에게도 성령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도 계속하여 그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설교 사역을 할 때에 단지 성경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것만 중요시 하고 사람에게 일부 규례와 의식만 지키게 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하도록 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도 지키게 하지 않는다면, 사역 중에 글귀 도리만 말하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간증해 사람들로 자신을 우러러 보게 하여 신도들이 그들의 인솔하에 생명이 전혀 진보가 없고 영적인 공급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전혀 성령 역사의 실증이 없고 성령 역사의 인솔과 인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절대로 성령이 직접 세운 것이 아니며 그들이 한 사역은 결코 하나님이 직접 부탁한 것이 아니며 성령도 그들을 온 무리의 감독자로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모두 주님이 세운 것으로 그들에게 순복하지 않는 것은 바로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이런 논법은 단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일 뿐 하나님 말씀의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러한 사상 관점의 지배와 속박을 받게 된다면, 우리가 설령 이끄는 자들이 교회에서 마음대로 행패를 부리고 그들이 행한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따르고 순종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2천년 전에 유대 백성이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예수님을 대적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을 높이고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만 합니다. 이래야만 참으로 주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나 장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의 문제에서 우리는 마땅히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인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목사나 장로라면 우리는 따르고 순복해도 됩니다. 반대로 그들이 만약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게 인솔한 적이 없고, 사역하면서 자신만 높이고, 자신만 증거하고, 자신의 형상만 세우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따르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들이며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 주님이 오신다는 이런 큰 일에 있어 목사나 장로는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진리의 도를 찾고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을 뿐더러 미친듯이 훼방하고 정죄하고, 심지어 신도들이 참도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통제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맹목적으로 그들의 말을 믿고 순복하고 따른다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쎄언(谢 恩) 추천 문장: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

기도에 비결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실행함에 있어 기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임하든, 생활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혹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든,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하나라도 기도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은 비록 자신이 늘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깨우침을 거의 얻지 못해 영 안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 교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의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효과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설마 기도에 또 어떤 비결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합니다. 이전에 저에게도 이런 의문이 있었고, 나중에 영적 서적을 보고 기도에 정말로 비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를 포함하여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어떤 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움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반드시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가 마음을 나누지 않고 속심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교제했다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되고 더욱이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없으며 상대방의 진심어린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매일 기도를 얼마나 드리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 드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식적인 기도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기도할 때,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실행하지 않습니다. 마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사거리이나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여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경건하고 충성심이 많아 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그들은 찾고 구하며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독하고 정죄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드린 기도가 다 가식적인 것이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기도는 주님께서 혐오하실 뿐만 아니라 또 그것으로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정죄까지 했습니다! 그럼 어떤 기도가 진실한 기도일까요?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인식이 있어 흐리멍덩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체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이 말씀에서 무엇이 진실한 기도인지, 그리고 진실한 기도의 효과는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와서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서 좋은 효과를 얻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관건적인 것은 기도가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우선 기도할 때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라야 영안에 감동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더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면 우리 안에 심지가 있게 되고 믿음이 생기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게 됩니다. 이런 기도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기도할 때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 현실의 뜻을 더듬어 기도하고 이전의 규례와 종교적 방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상의 효과에 도달하는 기도가 바로 진실한 기도이고 하나님도 열납하시는 기도입니다. 이런 것에 결부시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실한 기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가정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다는 기도, 형제자매들의 부족한 면과 애로사항을 하나님께 맡기며 말씀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라는 기도, 복음 전도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으로 인해 그리고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하는지를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실행하는지를 위한 기도, 또 우리가 박해받고 고난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설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라는 기도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열납해 주십니다. 이제 기도의 비결을 알았으니 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와서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훈련을 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가 점점 더 진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우리의 영 안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비결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 다 함께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하는 훈련해 봅시다! *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크리스천은 어떻게 사탄의 시험을 멀리 할 것인가?

욥은 사탄의 시험 앞에서도 간증을 섰을 뿐만 아니라 생활 속 사소한 일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유혹이 너무 많아 크리스천들이 마주하게 될 사탄의 시험은 갈수록 커져만 갑니다. 그럼 크리스천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어릴 적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코끼리의 등에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소경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소경들에게 함께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소경이 손을 내미니 마침 코끼리의 코가 만져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아! 이제 보니 코끼리는 구불구불한 끌채(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처럼 생겼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단단한 상아를 만지고는 바로 “아니야! 코끼리는 쌀을 찧고 옷을 두드릴 때 쓰는 홍두깨(다듬잇방망이) 같아”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후 “아니야! 코끼리는 잡동사니를 담는 삼태기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고는 “틀렸어! 코끼리는 향을 피우는 세발 향로 같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등을 만지고는 “당신들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나서 “사실 코끼리는 뭐 별거 아니네, 두텁고 넓은 벽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만지고는 “아니야! 코끼리는 고목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어깨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기둥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발을 만지고 “아니야! 아니야! 코끼리는 움푹 파인 돌절구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당신들의 말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밧줄로 엮은 길다란 채찍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장님들은 자신이 만진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소경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국왕은 웃으면서 “여러분! 여러분은 크게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진 것은 코끼리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코끼리는 채찍도 돌절구도 아니고, 고목도 담장도 아니며, 작은 언덕도 향로도 아닙니다 ……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있는 여러 교단과 교파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교파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틀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한데,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신청의(以信稱義)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칭함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생명파는 성경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므로 자신들이 거듭남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파는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자신들이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미파는 성경에 다윗이 북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렇게 믿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파는 여호와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여 사람들에게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으므로,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각 교파 사람들이 다 자신들이 믿는 교파의 관점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이 믿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누가 알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들아 ……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크리스천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믿음의 파(派)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에 속하고, 아볼로가 전한 것은 아볼로에 속하고, 게바가 전한 것은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당시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분열되면 안되며,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인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 사람을 믿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인데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몸을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지금까지 전해져 와서, 처음에 바울에게 속하고, 아볼로에게 속하고, 게바에게 속하던 것이 이제는 이미 2,000개(중국 기준)가 넘는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은 뜻밖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관념 속에서 살면서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더군다나 저마다 이치를 말하면서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이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이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 연고이며, 모두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전설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으나 하나님 역사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매우 적게 들은 까닭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한해 믿은 사람도 관념에서 신앙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도 역시 관념에서 신앙 한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언제나 벗어 나지도 못한다. 사람은 또 자기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였다고 여기는데, 어찌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관념이고 소문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난 주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야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막연한 하나님만 믿을 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만물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등등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교리를 지키지만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 자대(自大)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하는 것으로 주님과 거래하여 맞바꾸려고 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거듭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사람들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주님께 가장 인정받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 아래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믿어도 그 믿음이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우러러보고 따랐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위의 사실 앞에서 우리는, 오늘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각자가 자기 것만 고집하고 게다가 또 서로 배척하고, 서로 논단하고, 서로 공격하고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지 않고 이렇게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칭찬하실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이사야서 2장 2절~5절에는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화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우리는 주님의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인 지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각 교파 사람들은 주님의 몸을 사분오열시켰습니다. 오직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ㆍ형벌 속에서 죄악과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모두가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살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민인 것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함으로 심판 사역을 하여 한 무리 이기는 자를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였는데, 이 한 무리 사람은 각 교파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이고, 더군다나 모두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야만 권병과 능력으로 만교(萬敎)가 하나 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주는 다만 어느 한 종파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분을 대표하지 못한다. 교주는 전체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는 있지만 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주는 다만 하나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조물주)과 동등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최종에는 또 조물주의 수중에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어서, 무슨 교파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중의 지고자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류를 적합한 귀숙에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전 우주 아래위에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고 다른 파별이란 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하는 이는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무릇 하지 못하는 자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이외의 원수이다. 사교이라면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원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주도 수많은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주는 그저 한 종교만 통솔할 수 있을 뿐, 모든 종교를 다 통솔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물주는 인류를 창조할 수 있고, 땅에서 인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이 전체 시대를 끝마칠 수 있고, 전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인데, 이미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이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전 인류에게 공개되어 각 교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의 교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다른 교파에서 왔는데, 모두가 방방곡곡에서 모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양과 양육을 받아들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해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은 오직 자신의 관념에서 나와야만 주님의 나타남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을 받아야만 사람은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비로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막연한 가운데서 살지 않게 됩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미국 사람이든 아니면 영국 사람이든 또는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이든지 간에, 너는 마땅히 자기의 국적 범위에서 벗어나 자아를 초월하여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해야 한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한 범위에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많은 사람들은 관념에서 하나님이 어느 한 국가나 어느 한 민족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 하는 의의가 그토록 심오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또한 그토록 중요한데, 어찌 사람의 관념과 사유로써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네가 너의 국적과 민족 관념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래야만 네가 관념의 속박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래야만 네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영접할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方音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권위와 명성을 가진 대표적인 책으로 인류에 의해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문명의 역사에 발을 내디디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걸출한 인재들은 다 성경에서 유익한 점을 얻었고 아울러 성경은 인류의 과학, 교육, 문학, 법률, 경제, 민족 등의 영역에서도 깊고 넓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경 안의 많은 인생 철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속에서 의의있는 인생을 찾게 하였고 사람에게 인생의 방향을 가리켜주었습니다. 성경에는 상제―하나님이 전에 하셨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 책에 신비한 베일을 씌워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 이 신비한 대문을 열기 위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구름 사이에 은밀히 계시는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알기를 바랐고 나아가 이 책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도대체 어떤 힘이 그것으로 하여금 정세 변화가 다단한 유구한 역사에서 이토록 오래 쇠퇴되지 않게 하였을까요? 어떤 힘이 그것으로 하여금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이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을까요?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그것은 신비한 색채로 가득하고 또 논쟁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성경 속에 이렇게 많은 비밀이 묻혀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전부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게시를 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그중에는 허다한 옛 선지자의 예언이 기록되었고 여호와가 당시에 역사한 얼마간의 말씀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이 책을 ‘거룩하다’고 본다(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이 책을 이렇게 칭한 것은 단지 피조물이 조물주에 대하여 경모하는 마음이 충만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천서’라고 칭하였다. 사실, 이 책은 다만 사람의 기록일 뿐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친히 지도하여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다. ‘성’경이라 칭한 것은 다만 이 책에 대한 사람의 존칭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연구 토론한 후 또 함께 결정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사람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ㆍ사도ㆍ예언자들이 기록하고 후세 사람이 수집하여 종합 편찬한, 사람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이며, 또한 사람이 보기에 이 가운데는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비밀이 있고 후세 사람이 풀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더욱더 이 책을 ‘천서’라고 여기게 되었다. 성경 신약 중의 4복음서 및 ≪계시록≫을 더하니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떠한 책보다도 더욱 같지 않았다. 이리하여 한 사람도 이 ‘천서’를 감히 분석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모두 이 책이 너무 ‘신성’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비록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이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긴 원칙과 근대의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경력이 많이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진실한 보임과 인식도 기록되었다. 이런 것은 모두 본시대에서 참 도를 추구하는 사람의 참고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경을 보아도 사람이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허다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도는 모두 역대의 선지자 사도가 경력한 성령 역사의 생명의 도이고, 또한 허다한 언어는 상당히 진귀하여 사람의 필요한 바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람은 다 성경을 보기 좋아한다. 또 성경에 은밀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책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저작에 대한 견해와도 같지 않았다. 성경에는 신ㆍ구 시대에 여호와ㆍ예수를 섬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고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이 책에서 많은 깨우침ㆍ빛비춤과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바로 영적 위인의 어떠한 저작도 다 성경에서 취재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이 다 성경에서 온 것이고 또한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이 부류의 책과 같은 일부분 생명의 말씀의 책들이 수집되었고 또한 사람이 이런 책에서 공급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여전히 옛 시대의 책이다. 그들의 이런 책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시기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영원토록 남아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ㆍ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응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에는 적응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도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에게는 공급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창세의 사역처럼, 또 여호와의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처럼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나갈 때가 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의 사역이 어떻게 설득력이 있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달할 수 있든지, 사역은 어쨌든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쨌든 시대이다. 사역은 언제나 한 기초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 ‘4복음서’를 오늘에 가져오니 모두 역사(歷史) 서적으로 되었고 모두 노황력(老黃歷)으로 되었다. 이러한 노황력이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러한 노황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다시는 그 노황력을 미신하지 말라고 한다. 이 노황력은 너무 ‘낡아서’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고 너의 짐으로만 될 뿐이며,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고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를 낡은 종교당으로 이끌어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뒷걸음치는 것이 아닌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우리는 성경이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까닭은 이 ‘성경’ 책이 너무나 ‘신비’해서가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것이 다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하셨던 사역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가 이 역사 서적에 신비로운 색채로 가득하게 하였고 신비한 힘이 있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 고서를 더없이 숭배하고 오직 이 책에서만 지극히 거룩한 자를 알 수 있고 오직 이 책에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맹목적으로 성경을 숭배할 뿐 실질적인 문제는 소홀히 하였습니다. ‘성경’이 아무리 ‘신비’한들 그것이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성경만 잡고 놓지 않는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이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사람의 ‘믿음’이 이토록 무력해보이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 여겨진 성경도 무능해보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생명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기에 어떠한 인사물도 하나님의 고유한 지위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마치 해와 달이 바뀌는 것처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행사를 이 성경 책 속에 규정한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성경을 대할 것인가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모두가 성경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게다가 성경은 아주 권위있는 서적이기에 사람 마음속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을 봐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 어떤 사람도 성경의 말씀을 어겨서는 안 되고 모두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면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잘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요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로 되어 있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 사역과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가 어떻게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인솔하셨고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는지, 노아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고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해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또 일부 선지자들의 예언 등등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상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이 있습니다. 주로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지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또 어떻게 각지에서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 부활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했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했는지, 나중에 또 어떻게 성령의 인도 하에 그때의 교회들을 목양했는지……등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이 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셨던 사역과 일부 발생된 일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결코 성경이 없었고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또 예를 들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예수님이 땅에서 하신 역사를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교회들을 목양할 때 사도들이 쓴 서신 그리고 주후 90여 년 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을 사람들이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의 서신은 모두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교회들을 목양했습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어떤 때에 직접 교회에 갈 수 없어서 서신의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 그 사도들이 쓴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 내용만이 아니라 그중 많은 서신이 수백 년 동안 전해내려오면서 유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후에 당시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 대해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전해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산생된 배경을 논했는데, 그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정경이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미 하셨던 사역이기에 결코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성경에는 신ㆍ구 시대에 여호와ㆍ예수를 섬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고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이 책에서 많은 깨우침ㆍ빛비춤과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바로 영적 위인의 어떠한 저작도 다 성경에서 취재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이 다 성경에서 온 것이고 또한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이 부류의 책과 같은 일부분 생명의 말씀의 책들이 수집되었고 또한 사람이 이런 책에서 공급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여전히 옛 시대의 책이다. 그들의 이런 책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시기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영원토록 남아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ㆍ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응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에는 적응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도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에게는 공급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창세의 사역처럼, 또 여호와의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처럼,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나갈 때가 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의 사역이 어떻게 설득력이 있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달할 수 있든지 사역은 어쨌든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쨌든 시대이다. 사역은 언제나 한 기초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가장 새롭고 가장 현실적인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는데,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사역에 대해 증언한 것일 뿐이지 결코 사람에게 현실적인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39, 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이고 즉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념 속에서 나오고 성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인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을 수 있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는가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마다 성경을 아주 중요하게 대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어느 누구도 성경의 말을 어겨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는 아주 높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하나님 나라 복음이 중화 대륙에서 확장된 이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인솔 하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과 자양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마시는 데에 대해 관념이 생겨 ‘성경을 보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찌 성경을 벗어날 수 있는가?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그럼 성경을 보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지? 성경을 떠나면 정말 주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겠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 확실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 한 바에는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이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및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를 포괄하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의 사역과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는 어떻게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안배하셨는지,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인지, 노아의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셨는지,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 등등도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제 상황입니다. 신약 성경은 4복음서,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을 포함합니다. 주로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처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또 어떻게 가는 곳마다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훼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만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였는지, 어떻게 성령의 인솔 하에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하였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든 아니면 신약 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은 모두 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사역과 전에 일어났던 일부 일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성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땅에서의 일부 역사와 사도들이 뭇 교회를 목양할 때 쓴 일부 서신 및 주후 90 몇 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에 관한 기록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들의 그런 서신은 다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바로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어떤 때는 그들이 직접 어느 교회에 갈 수 없어 서신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도들이 쓴 그런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중 많은 서신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분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즈음에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는 사람들이 읽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전해 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런 서신은 사람이 쓴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유익한 점이 있는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전해지고 또 ≪성경≫,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호감과 예수님에 대한 사람의 애대(愛戴)의 정 때문에 점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에 편성된 이런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신성한 언어’로 삼게 되어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당시의 사람은 이런 서신을 어떻게 대한 것인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조금만 미루어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이 각처에서 교회를 목양하였는데, 뭇 교회에서도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이 서신을 다 쓴 후에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교회에 가져가서 “이는 바울 또는 ○○ 형제가 우리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인데 바울 또는 ○○ 형제의 말입니다. 우리가 읽어보고 교통합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님, 빨리 와서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바울이나 베드로를 잘 아는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보았을 때면 “베드로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바울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이것은 그들이 쓴 편지가 맞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베드로의 이런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의 말이고 그들이 잘 아는 바울이나 베드로 형제가 그들의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는 사람이지 예수님이 아니고 하나님 도성육신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의 말을 사람의 말로 대하고 사람의 경력과 인식으로 삼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후세 사람들이 바울 그들을 숭배하고 또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람에게 덕이 된다고 이런 말을 성경에 편성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런 서신이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경력과 인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과 동시대 형제자매들은 모두 실정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도들의 서신을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그때의 배경을 좀 자세히 돌아보고 상고한다면, 그 사도의 서신은 다 하나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일부 경력과 인식이고 그들이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지 성령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고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만일 성경의 기타 편(篇)과 장(章)이 형성된 배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효유한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 및 예수님이 사람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외에 그 나머지는 다 사람의 경력과 인식, 일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성경을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생긴 배경에 대해 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장면이지만 필경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사역이니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신약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의 땅에서의 사역이며 신약에 바울의 사역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모두 역사(歷史) 기록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하고, 아무리 진실일지라도 역사(歷史)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부단히 아주 새롭고 아주 현실적인 사역을 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창세기≫에 근거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가 쓴 ≪출애굽기≫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4복음서’에 근거하여 십자가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까? 분명히 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이런 성경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는 구약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인류의 현 상태와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은 그때의 인류가 이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음란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인류를 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처음 난 인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여 율법으로 그들을 인솔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이미 구약 성경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어떤 것이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이름을 ‘예수’라 하였는데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하셨는데 구약 성경에 사람에게 이렇게 실행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을 교훈한 많은 말씀도 구약 성경에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반포한 율법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 하셨지만(출 21:24) 예수님은 사람에게 남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21-22).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 무슨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셨지만(출 31:12-15) 예수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마 12:12).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것도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시대 후기에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갈수록 많아져 사람은 이미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시대가 계속 지속된다면 사람은 다만 죄 속에서 살면서 더욱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죄의 자손이 되고 귀신의 후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인류는 모두 사탄에게 삼켜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사람을 구원하러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와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주시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사해주심으로써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여전히 여호와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만일 사람이 지킬 수 없어 사람을 저주하고 격살한다면, 사람은 다 하나님께 격살될 것인데, 누가 또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 앞에 올 기회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땅끝까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죄성이 아직도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아직도 죄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범죄하고 있고, 게다가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는 데에 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도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줄곧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면, 사람은 영원히 범죄하고는 죄를 자백하고 죄를 자백하고는 범죄하는 이런 반복적인 상황에서 살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사람이 어느 때에야 완전히 죄성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얻어지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역사한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기초에서 또 한 단계 더 새롭고 더 현실적인 사역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해 낸 인류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여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어 진정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는 시대가 변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였으므로, 형벌ㆍ심판에 의하여 사람의 패역을 벗겨버리고 사람 안의 불결한 것들을 벗겨버린다. 그 단계는 구속이므로, 그가 반드시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게 해야만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으며, 은혜에 의하여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도록 하였다. 이 단계는 형벌과 심판에 의하여, 말씀의 격타(擊打)에 의하여, 말씀의 징계와 폭로에 의하여, 사람 안의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후 구원받는 데에 달하게 하는 것인데,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의 이번 역사는 주로 말씀을 발표하는 것인데, 말씀의 형벌 심판에 의해 사람 안의 모든 불의한 것들을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정에 대하여 인식이 있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될 수 있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매임에서 철저히 벗어나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고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적이 없던 사역이니, 당연히 성경에 기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역사는 완전히 인류의 필요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에 근거한 것이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역사든, 예수의 역사든 아니면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든,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시대의 사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 및 사람에 대한 그분의 교훈이 설마 구약 성경에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기록되었습니까? 누가 이런 능력과 선견(先見)이 있어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사역을 다 성경에 앞당겨 기록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벗어난 새 사역을 하셨어도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시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요구합니까?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성경의 범위를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임을 부인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이 비록 성경을 벗어났지만, 그분의 역사는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할 수 있으며, 낡은 시대를 끝마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으며,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인류의 불의를 형벌하고 인류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분의 역사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극대한 사랑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에 의해 하나님이 곧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하실 수 있으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실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인류 생존의 기탁이시고 인류의 유일한 의뢰이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이 사랑하고 경배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진정 인식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증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 성경을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무 우매하고 너무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현재 각종 적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들이 사람을 미혹할 때 모두 성경 장절을 인용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실제 기록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이시고 지고지상한 분이시고 전능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며, 하나님의 행사는 한량없고 무진장하기 때문입니다. 시초부터 현재까지 하나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은 적이 없으며, 그분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고 그분의 경영 계획에 따라 역사하신 것입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하나님 역사가 모두 성경을 참고하지 않고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단지 본시대에 해야 할 사역만 하신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야 하지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하나님을 믿은 많은 사람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중에 진정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혀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그때는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성실한 마음으로써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동시에 여호와의 요구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로 세상을 멸할 때에 오직 노아의 일가 여덟 식구만이 은혜를 입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여호와의 지시와 요구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그들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시대에 예수님을 따른 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여 각처에서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부활의 도를 간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하였고,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주고 안수 기도해주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쓰고 발을 씻게 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모두 예수님의 새 시대에서의 역사이고 하나님이 새로운 시대에 사람에게 실행하고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비록 성경이 있었지만 그들이 전한 것은 구약 성경에 근거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받쳐들고 여호와의 도를 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적만 말하고 천국의 복음만 전하였으며 예수님이 개척하신 은혜시대의 도만 간증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와 하나님의 새로운 요구를 실행하고 순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보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떠났다 하여 주님을 배반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실히 성경만 붙잡고 성경만 말하면서 매사마다 성경과 대조하였지만 나중에 성경에 근거하여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관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지키는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황당하고 그릇된 것이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인솔하시는 것은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역시 부단히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는 하나님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역이 있고 새로운 말씀으로 사람의 생명을 공급합니다. 이와 동시에 성경도 곧 새 시대의 도래에 따라 낡고 때가 지난 역사(歷史)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시고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실 때, 성령께 택함받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가장 새롭고 현시적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생명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래를 간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역사를 개척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사를 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모두 더는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똑같이 성령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의 역사와 말씀을 간증하였는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성경의 내막을 이해하고 당시에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구약 성경대로 역사하지 않으셨는지,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와 말씀만 전하였는지를 알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신약 성경대로 역사하시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더는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만 간증하는가에 대해 관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한 단계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단계로 사람의 죄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반드시 제3단계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철저히 변화시키고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가 인류를 구원하는 완정(完整)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고 구해야 하며 성경을 정확히 대해야 하고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회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네가 성경만 알 뿐 하나님의 현재 하려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으면, 너는 무엇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라 하는지를 모른다. 네가 만약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를 알려고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너는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성령의 현시 역사를 인식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성경을 볼 줄만 알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현시 역사의 흐름에 도태될 것이고 심지어 성경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새 역사를 대적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역사 서적에 속한다. 네가 만약 성경 구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지고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가 너를 저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다. 네가 구약으로써 예수가 한 사역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네가 만약 현재 신약과 구약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실행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를 죄로 정할 것이며, 너는 오늘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 없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 흐름 이외의 사람에 속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성경을 지키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다 성령의 흐름 이외의 사람이고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마치 당시의 그 제사장, 서기관, 장로와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사역을 개척하시고 사람에게 새 시대의 실행의 길을 가져다주셨을 때, 그들은 여전히 한사코 구약 성경을 지키고 여호와의 요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써 예수님의 역사를 가늠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관념에서는 하나님이 성경 이외에서 역사하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최종에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고 메시아로 불리지 않은 것을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징벌받고 저주받은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비참한 결말을 얻었는데, 설마 우리가 경계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실패한 까닭은 무작정 성경을 지키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설마 그들이 모두 매 구절 경문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사실, 성경의 원래 가치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와 인식이 있게 할 뿐이고, 다만 하나님의 이전의 역사를 위해 증거할 뿐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현실의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 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도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하신 음성이자 역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성경을 고수하면서 언제나 성경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늠하고 단지 성경의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홀시하고 말세의 그리스도─전능하신 하나님(즉 재림하신 예수님)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것이고, 최종에 생명을 얻기는커녕 성경의 글귀에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성경을 숭배하던 바리새인의 잘못을 다시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며, ‘나’와 ‘경’을 동등하게 보고, ‘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나 나의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매 구절 경문에는 아주 특별히 관심을 둔다. 심지어 더욱 많은 사람들은 경문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경문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보는데, 그들이 글귀를 너무 중요하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성경의 장절로써 나의 매 마디 말을 가늠하고 성경의 장절로써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고 구하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될 수 있는 도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무릇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효자 효손들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통하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게 함으로써 성경을 미신하지 않고 성경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여 하나님을 성경 속에 제한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에 하나님은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성경의 글귀로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 구조와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타당한 논법을 설명하고 성경의 본체를 복원하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성경을 미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에 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 뜻에 맞고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江蘇省 謝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