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의 교회 생활 — 예배에서 굳게 닫혔던 입을 열다

예배를 드릴 때면 항상 적극적이었던 그가 무심하게 던진 자매님의 말 한마디에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재를 통해 소극적이 된 근원을 알고 실행의 길을 찾게 되자 마음의 자유도 얻게 되었습니다.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 (상)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맞아! 이게 바로 내가 찾으려던 죄를 벗고 정결함 받는 길이야(하)

많은 크리스천들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듯이,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했던 주인공. 그러던 그가 어떻게 죄짓는 본성을 알게 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을까요?

간증 나눔 :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14살 크리스천인, Mandy라고 합니다. 저는 항상 남들이 칭찬해주는 말만 듣길 바랐고 누가 제 단점을 얘기하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어떤 모습을 지적하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두 가지 일을 겪고 난 후 제 관점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청소년 예배조에 들어가 매일 온라인에서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서로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 생활을 좋았고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각자 묵상할 시간을 가진 후 서로 인식한 것을 나눴습니다. 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느라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공유할 내용의 생각을 마쳤을 때 다른 자매님이 나누고 있기에 제가 공유할 내용을 글로 적어 단체 채팅방에 올렸습니다. 올리자마자 실수로 제가 올린 메시지를 그만 삭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수로 공유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얼른 글을 썼습니다. 쓰면서 ‘형제자매들은 분명 괜찮다고 해줄 거야. 말로 하면 된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Lily자매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금 올린 글을 좀 봤는데 별 의미도 없고, 쓸데없는 내용만 가득하네요.’ 이 메시지를 보고 화가 난 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말을 이렇게 하지?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Lily자매가 자신의 인식을 채팅방에 공유하자 마음속으로 경시하며 ‘자기가 쓴 것도 별로 구만. 나보다 못 썼으면서 주제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자매님한테 메시지를 보내 따지고 싶었지만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자각하니,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써 마음속 화를 억제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는 바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좀 전에 Lily자매가 제게 뭐라고 하자 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화를 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화를 내는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주소서’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Lily자매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교제를 못 했나? 그 정도는 아닌데! 하긴 교제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긴 했지. 마음으로는 아는데 그걸 말로 표현 못 할 때도 있었고. 정말 자매가 말한 것처럼 내 교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휴, 이렇게 부족한 나라면 차라리 교제를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형제자매들도 내가 교제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기력함에 힘이 빠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고, 심지어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풀이 죽은 저는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저는 교회의 Vivian언니에게 메시지로 저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Vivian언니는 내게 인터넷으로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면, 다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 끝까지 고집부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된다. 너는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 “정말 그러네, 그럼 고쳐야지.” 하면서 고치니, 누군가 “이젠 좀 괜찮네요. 보니까 느낌도 좋고 큰 문제도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됩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되면 한 방면으로는 너희가 업무적인 면에서 점차적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숙련되고 능숙해질 수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 공과를 배우게 되는 것도 있다. 일에 부딪혔을 때 독선적이면 안 된다. ‘내 말대로 해야 돼, 다들 말할 자격이 없어. 난 원칙을 알고 있는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잖아. 난 잘 알아!’라고 생각한다면 독선적인 것이다. 독선적인 것은 사탄의 타락된 성품이고,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독선적이지 않겠느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고, 다 같이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봤을 때 다 찬성해서 통과시킨다면, 그것은 참 잘한 것이다.』 이어서 Vivian언니가 내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우릴 지적하고 훈계할 때 사탄의 교만한 성품 속에서 살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선 받아들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찾고 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어.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만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훈계와 책망 중에서 이익과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족했던 점을 바로잡아야 해.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만족해 하실 거야. 이번 일도 마찬가지야. 그 자매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든, 듣기 좋은 말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단번에 짚어주지 않았니?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만 맞다고 여기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이 있게 되었는데 이러는 건 결코 우리에게 유익한 점이 없어. 오히려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랄 기회만 잃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각별한 고심을 저버리게 되는 거야. 예전에 나도 너와 비슷한 체험이 있었어. 어느 날 형제자매와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가 나랑 예배를 드리면 누림이 없다고 하는 거야. 처음엔 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자매님과 예배에서 열심히 듣지 않아 초래된 문제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 후 그 자매가 한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예배 때 내가 보였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교제한 건 모두 이론과 도리이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전혀 없었어.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 그때 나는 자매의 의견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구하게 되었어. 다음 예배 때, 이런 방면에 대해 고치려고 노력하니 차츰 효과가 나타나더라고. 그러니까 우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우리가 모든 일에서 진보될 수 있거든.” Vivian자매의 말이 끝나자 그동안 제가 보였던 모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자매가 제가 공유하는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을 때 저는 속으로 교만하여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자매가 공유하는 내용이 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그 표현이 바로 고집스럽고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던가? 자매가 내게 제안한 것도 사실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고, 자매를 통해 나의 문제를 지적하여 내가 스스로 깨닫고 고치게 하시려는 거였어. 하지만 난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매가 지적한 문제로 소극적이 되어 대항하며 앞으로 예배에서 교제를 하기도 싫고, 예배도 드리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잖아. 내 못난 모습을 자세히 되돌아보니 나는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억지만 부렸었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책이 물밀 듯 밀려왔고 그 자매가 훈계한 말 때문에 더 이상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Vivian언니에게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과 언니와의 나눔을 통해 앞으로 남들이 어떤 제안을 하든 겸손한 자세로 우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함을 깨달았어요. 만약 정말 제 잘못이라면 다음엔 고치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야 제 생명에도 진보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하자, Vivian언니 역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Lily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제게 뭔가 잘못된 모습이 보이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제가 고치도록 노력할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보며 그때 자판을 두드리던 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쓸까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은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났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걸 중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걸 중시해야 하며 형제자매의 나눔에 귀를 기울여야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생명 자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서야 저는 자매가 내게 의견을 말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을 바로 자매와 나누었고, 의견을 제기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다음 예배 때, 저는 다른 사람의 나눔에 귀를 기울이니 형제자매의 나눔이 모두 좋았고 저도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저에게 또 새로운 공과를 배치해 주셨습니다. …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와 다른 한 친구가 한 팀으로 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기쁜 마음에 제가 쓴 프로젝트 방안을 그 학생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제가 낸 방안에 의견을 제기했으며 심지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말을 마치자, 저의 마음은 몹시 불쾌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쓴 게 뭐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자기는 뭐 얼마나 잘 쓴다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뭐라고 쏘아붙일까 하던 찰나 지난번에 체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사탄의 성품 속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교만하거나 자신을 고수해서는 안돼. 그건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안을 제대로 쓸 수도 없어’라고 자신한테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진짜 그렇게 하면 안 좋고, 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한두 번 봤을 때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도, 세 번, 네 번 보면 볼수록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그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가 있으니 우리는 이 일에서 바로잡고 개선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이러면 문제점을 고친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서 교통을 하니 성령이 또 깨우쳐 준다. 그리고 그대로 하였더니 다들 “맞아요, 원래보다 훨씬 좋네요!”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냐? 얼마나 좋은 일이냐! 네가 이렇게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행하며, 자세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독선적으로 하지 않으니 어떻게 되었느냐? 성령 역사의 기회를 얻어 성령의 깨우침을 받았다. 성령이 깨우쳐 주니 어떻게 되었느냐? 업무 방면에서 또 하나를 배웠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사탄의 성품 속에서 자신을 고수하지 말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한 후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셨어. 그렇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어 일도 더 순조롭게 잘 될 수 있다고 하셨지.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이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니 나는 또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려 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더 좋은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반항심이 없어졌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학생이 제안한 내용이 제가 했던 제안 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그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우리의 프로젝트안은 순조롭게 완성되었고, 선생님도 예전보다 훨씬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의 체험을 통해 저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지적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스스로도 더욱 진보할 수 있고 일도 더 잘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적하고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저를 부정하고, 난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며, 저의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왜 예배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예배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사실 예배는 크리스천에게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예배를 가기 싫어하던 글쓴이가 나중에는 예배를 즐기게 되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음은 자매님의 실제 체험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서 저는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예배의 의미를 잘 모르기도 했고, 집안에 일도 많았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만두 빚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고, 내일은 딸이 찐빵 찌는 걸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또 남편도 챙겨야 하고, 한국어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교회와 집이 먼데다 나이가 들어서 쉽게 피곤해져 틈만 나면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예배를 드리러 가기가 귀찮고, 심지어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좋은데, 왜 꼭 예배를 드려야 하지? 혼자 집에서 말씀을 읽으면서 예배는 가끔 한두 번씩 나가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이 교회에 나가자고 전화가 올 때마다 저는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댔습니다. 하루는 자매님이 집으로 찾아왔는데 마침 제가 집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싼푸텐(三伏天) 자매님은 아래층에서 저를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렸습니다. 자매님의 인내심과 열정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매님은 저를 만난 뒤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바쁘신 거 알아요. 다들 집안에 해야 할 일이 있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은 이상 시간을 내야 해요. 하나님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도 많이 읽고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예배 드리고, 교제도 해야 해요. 그러면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점차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생명도 자란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예배 나가는 게 싫었어요. 시간 낭비 같았죠. 나중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어요. 『성령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일부 사람들에게 역사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에게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게 역사하면 네가 체험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에게 역사하면 너는 빨리 따라야 한다. 현시의 빛을 따를수록 생명은 더욱 자라게 된다. 어떠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령의 역사이기만 하면, 너는 따라야 한다. 그리고 네가 체험하는 중에 그의 경험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진보하게 된다.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진보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할지 모르고,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을 통해 너로 얻게 하고 깨닫게 할지도 모른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크다는 것을 설명하고, 네가 이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너의 앞날은 어둡고 막막하고 빛이 없을 것임을 설명한다.』 『비록 내가 말을 다 하였을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완전하게 깨닫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람의 소질이 낮은 까닭이다. 이 문제는 교회생활이나 서로의 교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말씀을 보면서 성령 역사를 얻고 생명이 자라려면 교회생활 없이는 안 되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 말씀을 많이 교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야 교회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교제하며,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들에서 벗어나게 되고 성령 역사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어요. 예배를 안 나가고 집에서 혼자 말씀을 보면 표면적인 의미는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어떤 상황인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건지, 이러한 진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너무 제한적이에요. 또 머릿속에서 상상해 말씀을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표면적인 의미만 받아들여서 말씀에 대해 관념이 생기기도 하고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우리 자질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요. 예배 때, 형제자매들하고 같이 말씀을 교제하다 보면 간혹 말씀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교제하는 경우도 생겨요. 또 각자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하면서 서로 장단점을 보완하고 공급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생명이 더 빨리 자라고 우리에게 임한 문제점이나 힘든 점도 예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죠.” 하나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서야 저는 예배를 드리면 이로운 면이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생활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하나의 방식이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유지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기도도 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고, 말씀도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예배에 나가지 않으려고 핑계를 대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교회에 잘 다니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소홀해졌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예배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일을 보자니 예배가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 예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일을 겪고 나서야 크리스천은 예배를 떠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닫고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설 전날, 며느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데, 손주 녀석의 지난 번 시험 성적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된 일이냐?”라고 물었더니 그 말에 며느리는 제가 자기를 탓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아들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자기 누이 앞에서 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올케와 오빠가 합심해서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아서 같다며 오빠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그 후 아들은 씩씩대며 찾아와 저를 나무랐습니다. “어머니, 한 번이라도 아들이랑 며느리를 신경 쓰고 이해해 본 적 있으세요? 동생 말로는 어머니가 과로로 편찮으시다는데, 저 때문은 아니잖아요?” 아들의 비난을 들으니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기 어머니인데, 나를 그렇게 대하다니 정말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화를 내며 아들과 말다툼을 했고, 우리는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습니다. 아들이 가고 난 후,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마음속에는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고 이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무척 힘들고 괴로운 그때, 무슨 일이 생기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는 자매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해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분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소파에 멍하니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 챙겨주고, 한국에서 고생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집도 사주었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그 말 한 마디에 나를 이렇게나 몰아 부치다니 도대체 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괴로웠습니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교회에 가자는 자매님의 전화였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갈 길이 없어 혹시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면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갔더니 제 안색이 좋지 않을 것을 보고 자매님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자매님들에게 얘기하니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찾아 주었습니다. 『만약 부모가 자녀들을 대할 때 항상 높은 자리에 서서 “난 네 아빠(난 네 엄마)야! 넌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해.”라고 말한다면, 이 ‘반드시’에서 자녀들은 반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전혀 정상 인성의 표현이 아니다. 반대로 부모에 대한 자녀의 태도는 어떠냐? ‘흥, 나한테 잔소리하는 것밖에 더 있어? 듣기 싫어!’라고 하는 이런 태도는 어떠냐? ‘맨날 맨날 단속해, 내가 다 컸는데도 계속 단속하려고 하네.’ 이런 태도는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또 하나, 어떤 자녀들은 항상 어떻게 생각하느냐? ‘난 엄마(아빠) 자녀야. 그래서 나한테 뭘 해 주든 다 당연한 거야. 날 위해 돈 쓰는 것도 당연하고, 나한테 먹을 거 해 주는 것도 당연하고, 내가 아플 때 보살펴 주는 것도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정상 인성이 맞느냐? 항상 뭐든지 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면 부모가 괴로워한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뭘 해 줘도 너는 항상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항상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 보니까 아직 철이 없구나!’라며 부모는 괴로워한다. 부모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든, 자녀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쓰든, 자녀 쪽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없이, 항상 그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이고, 부모는 괴로움이나 아픔을 모르고 고통이나 슬픔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다 정상 인성이 아니다.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자매님은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로는 사탄의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게 되었어요.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해져서 다른 사람에게 관용이나 인내를 베풀 줄 모르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식과 며느리와 지낼 때도 타락된 성품대로 서로를 대하지요. 부모들은 항상 높은 위치에 서서 자식과 대화합니다. 때로는 자식들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한 채, 자식이 잘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자식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억압합니다. 이것은 모두 교만한 성품 때문이에요. 자식들도 마찬가지예요. 부모의 수고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부모가 당연히 이것저것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아주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아예 부모에게 관심이 없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아요. 부모 자식 간에 자주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것은 모두 타락된 성품 때문이죠.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아껴주고, 관용을 베풀고 인내하며, 더 많이 사랑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어요!”라고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니 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탄에게 너무 타락되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자신을 내려놓고 당신 말씀을 실행하기 원합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며느리가 혼자 중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며느리에게 신경도 안 쓰고, 며느리를 이해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저를 원망하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마음이 풀리고 아들에 대한 화도 풀렸습니다. 저 자신을 내려놓았고 아들과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았습니다. 이번 체험을 통해서 교회생활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교제하지 않았으면 저는 계속 타락된 성품에 묶여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원망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분명 화병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TV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만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정말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는 예배 시간에 자매님들이 제 상황에 맞는 말씀을 찾아 교제해 주고 가끔은 형제자매들도 본인들의 체험을 공유해 주십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도 진정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실행의 길을 찾게 되니 마음은 홀가분하고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시련이 닥치든, 어떤 환경이 임하든, 네 육체에 병이 생기든, 형제자매들이 너를 멀리하든, 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든, 너는 정상적으로 먹고 마실 수 있고, 정상적으로 기도할 수 있고, 정상적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네가 이 정도에 이르면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음을 설명한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의 체험을 통해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을 깨달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본인의 어려움을 교제하여 진리를 구하고, 모두가 실제 문제에 비춰 말씀을 교제하는 것이 저에게는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라는 가장 좋은 길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앞으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개인적인 일로 예배를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 후로 개인적인 일과 예배 시간이 겹칠 때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조정하여 예배를 우선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배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예배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츰차츰, 예배를 드릴수록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시험이 제게 임했습니다… 하루는 한국어가 서투른 아들이 저에게 다음날 휴대폰을 개통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예배가 있어 난처했습니다. 예배도 빠지기 싫고 그렇다고 아들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딜레마에 빠져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자매님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자매님이 저에게 예배에 나오지 말라고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난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고, 하나님을 크게 높여야 해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결정하거나 스스로 선택하지 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고, 하나님을 흡족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겪어내야 비로소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답니다. 오늘 생긴 일은 우선 하나님께 맡기세요. 만사와 만물은 모두 하나님 손에 있으니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셨어요.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잠언 21:2) 또한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서야 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길을 열어 주시고 제물을 예비하셨죠. 지금 우리에게 임한 일은 작은 일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검증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믿음이 있어야 해요.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고민과 생각을 하나님께 다 털어놓고 우리를 인도해 달라고 빌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어요.”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난 후 제게 실행의 길이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저에게 휴대폰을 개통하러 같이 가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예배를 드리러 가고 싶어서 입장이 난처합니다. 하나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우선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길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께 기도는 드렸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습니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아들한테 일찍 가서 하자고 하자. 그래도 안 되면 예배를 먼저 드리러 가야지.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야. 아들 일은 늦게 가서 처리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오빠 휴대폰은 제가 처리할게요. 제 차로 가는 게 빠르잖아요. 걱정 마세요.” 전화를 끊은 저는 뛸 듯이 기뻐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와 아들이 다툰 이후로 딸은 아들과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딸이 나서서 돕겠다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둘이 화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도 예배를 지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높지 않다.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님의 원뜻대로라면 사람이 다 즐겁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 모두 고생하기 싫어했을 뿐이다.』 예전에는 예배로 자신의 일에 지장을 받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을 내서 예배를 드리면 진리를 깨닫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저의 일에도 별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전에는 저에게 진리가 없어서 아무일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임하면 괴로운 나머지 원망만 늘어놓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이 생기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많은 일에서 길이 생기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하면서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 그리고 자신의 타락된 성품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교회생활이 저에게 정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행복한 생활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어느 날 알고 지낸 지 10년 지기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오후 티타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제일 고급스러운 화차와 케익, 디저트를 준비하여 저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명품 가방과 브랜드 옷을 사들이는 데 돈을 얼마 쓰게 되었다고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수두룩한 신용카드 고지서를 발견하게 되어 친구에게 고지서가 왜 이렇게 많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던 친구가 울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는 자기 주변 친구들이 명품을 좋아하고 서로 허세 부리며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중시하는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체면이 깎이지 않으려 계속 사들이고 카드로 긁다 보니 이제는 은행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명품을 좇다가 가계 경제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을 본 저는 깊은 공감을 느꼈는데, 마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체면을 중히 여기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7살 때부터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친구관계가 순수한 편이었고 물질적인 생활에도 요구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소박하게 입고 배부르면 그만이었기에 중압감이 없이 비교적 홀가분하게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주변에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화이트칼라들이었습니다. 명품 가방,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을 품평하고 비교하는 게 그들의 일상입니다. 그들은 늘 자신의 옷은 어떤 브랜드인데, 옷 하나에 몇만 위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렇게 자랑을 하다가도 저에게 옷은 어디서 사는지, 가격대는 얼마인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제가 가격을 말하면 그녀들은 바로 경멸하는 말투로 “뭐? 어떻게 그런 싸구려 옷을 입을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속으로 “쟤네들에게 무시당할 순 없어! 쟤들이 가진 건 나도 꼭 가지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저도 자신의 겉치레를 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카드를 긁어 G 브랜드의 가방을 사고 난 후, 동료들이 입을 모아 제 가방이 정말 이쁘고 저에게도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칭찬을 받게 되자 저는 속으로 너무 기뻤고 체면이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품 가방을 갖고 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저는 차츰 그녀들의 생활 라인에 녹아 들게 되었고 동료들과도 같이 나눌 화젯거리도 생겼습니다. 결국 자기도 모르게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동료가 3만 위안이 넘는 시계 하나를 구입했는데 매일같이 제 앞에서 자랑을 했습니다. 저는 약이 올라 며칠 뒤에 가격이 2만 위안이나 더 비싼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그 동료는 또 십만 위안 넘는 다이아 반지를 구입했는데 저는 더 이상 동료와 비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은 또 하나둘씩 집을 장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부족했지만 주변의 동료들에게 얕보이기 싫은 저는 긁어 모은 15만 위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집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겨우 집 대출 이자를 다 갚게 되자 그들은 또 자가용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뒤질세라 일제 신형 차 한대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저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로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친구와 몇년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그 후 몇년동안 저희는 함께 교회를 섬겼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심령에 위로도 얻어 믿기 전보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저의 생활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한 친구가 또 3만 8천 위안짜리 유명 브랜드 가방을 샀습니다. 그 친구는 매일 제 앞에서 가방이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친구와 함께 가서 똑같은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그러자 매장 직원은 곧바로 저에게 만 7천 5백 위안짜리 선글라스 하나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선글라스까지 구입하고 매장을 나오려고 할 때 친구는 또 만 3천 위안짜리 작은 가방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친구는 한꺼번에 가방을 두 개나 구매했는데 하나는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둘이 같은 백을 갖고 다녀야 남들 눈에 절친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서 저도 하나 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작은 가방은 별로 실용 가치가 없어. 게다가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싸. 이 가방까지 사게 되면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거의 7만 위안이 돼. 이 돈을 갚으려면 몇 개월이나 일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살 의향이 없는 것을 보자 가방이 정말 귀엽고 제게 참 잘 어울리는데 왜 사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순간 체면이 체면이 깎인 것 같아 속으로 ‘사지 않는다면 쟤는 꼭 내가 돈이 없어 사지 못한다고 생각할거야. 그럼 쟤 마음속에 여태 쌓아왔던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카드를 긁어 사고 말았습니다. 신용 카드의 최저 한도를 지불하기 위해 저는 반드시 투잡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일해야 했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제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기억력도 점점 감퇴되었습니다. 체중도 계속 줄었고, 장기간의 과로로 인해 제 피부도 누렇게 되었으며, 위장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늘 ‘왜 난 스트레스를 점점 쌓이기만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척, 친구, 동료도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다 허세를 부리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남들과 돈을 비교하고 집도 비교하고 자동차까지 비교하며 정말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번 주님께 기도 드렸고 성경에서도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하게 되니 참 막막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크리스천 형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형제와의 교제를 통해 예전에 몰랐던 성경 속의 비밀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형제가 아주 경건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얘기할 줄 아는 크리스천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좋은 영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는 저에게 주님이 벌써 돌아오셔서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심판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조류를 따르고 허영을 추구하며 죄 속에서 살면서 해방을 얻지 못한 것이죠. 성경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저희처럼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셔서는 주로 우리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저희의 본성 실질을 여실히 드러내셨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통해 저희는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진면모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사탄의 패괴 성정과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았고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시는 심판 사역이 확실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교통을 들은 저는 비록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님을 몇 년 동안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영화와 뮤직 비디오도 보았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수확이 있었고 성령이 역사하여 인도하심을 확실히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디마디 말씀마다 다 권세가 있고 다 하나님 성품의 발표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예전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몇개월 동안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정성껏 화장을 하고 멋지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뒤에 옷장에서 제일 값비싼 가방을 꺼내 들고 예배하러 갔습니다. 예배 장소에 도착하여 형제자매들의 차림새를 보니 모두 아주 소박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중에서 너무 튀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어울려 지내면서 저는 형제자매들이 아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사회 조류를 따라 명품을 좇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만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느라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고통을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성정은 나날이 악랄해져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거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아무도 없고, 더욱이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진흙탕에서 자신의 육체를 진탕 패괴시키고 있다.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통과 고민의 근원을 밝히셨어요. 사탄은 사회의 나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진리가 없으면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사탄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회 조류를 따르면서 점점 더 타락되죠. 예를 들어 사회에서 경쟁하는 풍조, 사치 풍조, 그리고 부를 자랑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풍조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어 사람마다 경쟁하고 있는데, 누구의 소유한 집이나 자가용차가 더 좋은지, 누가 돈이 더 많고 세력이 더 큰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브랜드 옷, 휴대폰, 3C제품(컴퓨터, 카메라, 게임기 등)이 더 좋은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경쟁심과 질투심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자신의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성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교통에 깊이 공감이 되었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1서 5: 19)”라고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먹고 입고 겉치레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명품을 좇다가 결국 자동차의 노예나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우리가 일시적인 물질적 누림을 얻고 허영심을 충족시킨 것 같지만 이런 고지서들을 마주할 때의 경제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쓰라린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근검절약하거나 소박한 것은 치욕으로 여기지만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비뚤어진 사상의 영향으로 저도 주제넘게 높은 것만 바라보고 허영을 탐내면서 분수에 맞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우러러 봐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랐던 저는 억지로 체면을 유지하면서 돈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했고, 늘 자신의 체면을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정말 위선적으로 살았는데, 그 고통은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저는 건강도 잃고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도 줄었던 것입니다. 이제 보니 자신이 다년간 추구해 온 것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서로 경쟁하면서 명품을 좇고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치중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우롱하는 사탄의 수단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저에게 명품을 사러 가자고 하면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찾고 구하던 중,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의 마음을 밖으로 끌어갈 수 있는 일은 접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지 말라. 어떤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면, 너는 그런 일을 내려놓고 하지 말거나 멀리하여라. 그러면 너의 생명에 더욱 유익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 길과 방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을 유혹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니, 더 이상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늘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또 백화점의 세일 시즌이 왔는데, 친구는 또 저에게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미친 듯이 옷을 열 몇 벌이나 고르고 난 후 저에게도 사라고 권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허영을 탐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비웃던 말든 저는 “난 더이상 함부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집에 옷이 너무 많아 다 입지도 못해. 난 안 살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은 너무 자유롭고 해방받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진리를 실행하게 된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또 몇 번이나 친구와 같이 백화점에 갔었지만 저는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더 이상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체면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억지로 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허영심과 체면의 묶임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명품이 없어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체면이 깎여도 속이 뒤집혀질 정도로 괴롭지 않으며, 또한 예전처럼 신용카드 고지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할 필요도 없게 되면서 점차 건강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하루하루가 매우 의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 깊은 곳이 밝아지고 편해지며 더없이 즐거울 것이고,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저를 구원해 주시고 저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인생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19살 소녀가 찾은 죄에서 벗어나는 길

저는 마루(Maru)라고 부르며 필리핀 사람입니다. 저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었고 매주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가 다녔던 교회에서 목사가 자주 야고보서 4장 4절에 대해 설교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비록 이 성경 구절을 자주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저의 생활은 방탕하여 이방인과 다름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온통 학교 과제와 여러가지 활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 따라 수업 빼먹고 번화가로 나가 활보하며 놀기 좋아했던 저는 세상 조류를 따르며 유행을 좇았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고 기도할 시간을 갖지 않았던 저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었습니다. 매번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땐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예배만 끝나면 생활은 예전과 마찬가지었습니다. 평소 저는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모와 웃어른을 아예 안중에 두지도 않았고 존중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았는데, 늘 그들의 단점과 흠을 집으며 무시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이 성경 구절을 생각하면 자신을 뉘우치긴 하였지만 타인의 흠과 단점은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매번 교회에 가서 청소하거나 주일 예배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해 주며 일손을 도울 때도 제가 한 일에 항상 관심을 갖고 칭찬해 주길 바랐습니다. 제가 한 이 모든 출발점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바란 것이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태복음6:1~4)이 말씀에서 저는 자책감을 받았고 자신이 아주 이기적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행한 모든 것은 사람의 높임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전도서 11장 9절의 말씀을 늘 상기하였습니다.“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저는 이런 가르침의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늘 가책을 받았고 자신의 죄로 인하여 괴로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님께 늘 자신의 죄를 사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저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는 늘 자신의 육체를 만족시키며 당신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렇게 기도는 했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저를 버리지 않을까 늘 걱정했습니다. 비록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지만 저는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없었고 죄속에 살면서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무슨 원인인지 몰랐지만 주님만은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냥 이렇게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저녁, 마닐라에서 돌아온 워시 아주머니가 감격에 겨워 저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고 지금 하나님 집에서 시작하는 심판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저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주님이예요. 하나님은 이미 땅에 오셨고 6000년 경영계획에서의 마지막 한단계 사역을 하고 있어요. 이 한단계 사역의 목적은 바로 인류를 정결케 하고 인류의 죄의 뿌리를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저희는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저는 조심스레 “저는 아직도 무의식중에 죄를 범하고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시면 저를 받아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천부의 뜻을 준행하지 못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으니 우리가 만약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낙담하고 소극적이 될 필요는 없어요. 주님은 은혜시대에 죄를 사하는 사역만 하셨지 죄의 뿌리를 없애는 사역은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계속 죄를 범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서 주님의 구속사역의 기초 위에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한 단계 사역을 하여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철저히 구원하는 거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 두단락을 우선 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죄를 범하지 않고 죄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지, 그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될 수 있는지 하는 이런 문제를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 성정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정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정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정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말세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에 대해 폭로한 말씀들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고,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심판 사역으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되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알게 되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고 알게 되고,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위의 말씀을 읽은 다음 워디 아주머니는 계속 교제하여 주었습니다. “은혜시대에서 주님은 한 단계 구속 사역을 하였지요. 비록 우리는 속죄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우리의 죄성은 해결되지 않았고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을 받아 늘 죄를 범하니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사탄 본성의 속박과 통제 속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면서 늘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늘 죄를 범하는데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을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자주 의심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의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한단계 심판의 사역 즉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은 진리를 발표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의 실질과 진상 그리고 인류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심판하고 폭로하셨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자신의 본성이 교만자대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진리를 싫어하는 등 사탄성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는 가운데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려고 추구하고 또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인식하려고 추구한다면 진실하게 회개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생명 성정은 변화가 있게 되는데, 점점 양심과 이지가 있게 되어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어 나중에 진정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낼 수 있게 되는 거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은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인류가 몇 천년간 죄를 범하고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끝내고 우리로 하여금 철저히 사탄의 흑암권세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께 구원받아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기 위한 거죠. 우리가 심판 사역에서 정결함을 얻어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사역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하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해 죄 사함만 받았지 죄성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완전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예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늘 실행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보니 제 안에 아직도 죄의 뿌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와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구나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결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경력(역주: 체험)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저는 입으로 하나님을 믿었고 생활은 이방인과 같았는데, 세상의 조류를 따르며 거의 기도하지 않거나 성경을 보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믿는데만 머물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고 전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자신을 변화시켜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는데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패괴성정이 조금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집에서 개인적인 일로 바빴는데 집안의 어른이 저더러 밖에 나가 뭘 좀 갖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화가나서 성질 부리려 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이렇게 일을 하면 정말 적합할까? 나는 정결케 되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저를 일깨워 주면서 혈기를 내지 않게 되었고, 저는 어떻게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을 영예롭게 할까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물론 지위가 없는 패괴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유로한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패괴와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한 가지 일이 닥치면, 우선 자신을 내려놓고 육체를 가장 비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구는 더욱 한도 끝도 없게 되어,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자신의 육체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육체는 늘 사치스러운 욕망이 있어 너에게 늘 그것을 만족시키게 하여 항상 누리려고 한다. 먹거나 입거나 성질부리거나 자신의 연약함을 헤아리고 나태하거나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은 더 커지고, 또한 점점 더 방탕하게 되어 어느 정도에 이르면, 사람의 육체는 더 깊은 관념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을 치켜세우게 되며, 게다가 하나님의 사역을 의심하게 된다.』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면 화를 내고 화를 낸 원인은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봤기 때문이고 또 자신의 교만한 본성이 나온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육체에 따라 일을 한 것이며 이렇게 할수록 저는 성질만 더욱 잘 부리고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저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순복하는 것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반성할 때 저의 정서는 통제되었고 성질부리지 않았습니다. 그후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체통에 관한 교통에서 예의를 차리고 범절을 알며, 연장자를 존중하고 아랫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연장자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차분해졌는데 진정한 포용과 인내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저에게 임한 것이며 여기에서 진리에 순복하는 것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이 조금씩 벗겨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표하신 《하나님의 심판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보았다》라는 말씀에서 이 단락을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흘러 너에게도 베풀어 주고 나에게도 베풀어 주고 그에게도 베풀어 주며, 진심으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다.』하나님은 확실히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말세의 구원을 얻을 기회가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한번도 저를 떠난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저의 생활은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주말이면 저는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본분은 열심히 하면서 예전처럼 세상의 것을 좇지 않습니다. 그외에도 저는 자신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 임하면 먼저 순복하는 것을 배우고 그 다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를 찾고 구합니다. 저는 자신이 끊임없이 진리를 찾고 구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기를 추구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저를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켜 나중에 철저히 사탄의 패괴를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리가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