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2018년 11월 04일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해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所是)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나의 말은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나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인류를 인도하는 유일한 선도자이며,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의 실질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다. 설령 이 세계에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나의 도움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말을 반박하는 많은 사람들, 또는 나의 말에 대해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이다. 즉, 시간과 사실이 나의 증거가 되게 하여 나의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실증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고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나의 말에 정죄되는 사람이고, 더욱이 나의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 형벌의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말씀’이 이미 ‘육신’ 되었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 중에 실제화되었고 즉 모든 진리와 모든 생명과 길도 육신에 왔으며 확실히 영이 땅 위에 왔고 영이 육신에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비록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겉으로 보기에 결코 같지 않지만, 역사 중에서 더욱더 영이 이미 육신에 실제화되었음을 볼 수 있고, 더욱더 ‘도’가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더욱 볼 수 있으며, 너로 하여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참뜻을 깨닫게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너는 더욱더 오늘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임을 깨달아야 하고, 또한 너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 되었음을 보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이러면 네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있고 네가 그를 알고 그를 깊이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오늘 걷는 길이 생명의 도이고 ‘진리의 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사역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실질을 응했는데,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기에,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에 내포된 뜻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또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이 말까지도 너로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부터 하나님은 말씀하였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한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육신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道)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해야 할 간증이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이고, 즉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곧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확실하게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친다.』

<실행 (4)>에서 발췌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까? 왜 아무도 성경을 풀 수 없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우리가 먼저 맞추지 말고 성령이 어떻게 하는가를 좀 봅시다. 진리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성령의 사역인가를 대조해보고, 성령 사역으로써 우리가 걷는 길이 옳은가를 검증해 봅시다.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지 않았고 어느 마디 말씀이 응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사람은 참견하지 말고, 우리가 가장 좋기는 그래도 성령이 하는 사역을 말해보고 하나님의 현재의 최신 사역을 말해 봅시다. 성경은 당시에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이 쓴 말이니,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오직 성령만이 그런 말씀의 뜻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지요. 당신도 당신을 하나님이 아니라 하고 저도 하나님이 아닌데, 누가 감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감히 그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까? 설사 선지자 예레미야가 오고, 요한이 오고, 엘리야가 오더라도 그들은 감히 그런 말씀을 해석할 수 없지요. 그것은 그들이 다 어린양이 아니며, 오직 어린양 자신만이 그 일곱 인을 뗄 수 있고 그 책을 펼칠 수 있으며, 그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분의 말씀을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말세는 다만 말세이고 하나님나라시대일 뿐, 은혜시대를 대표하지 않고 율법시대도 대표하지 않는다. 단지 말세에서만 6천년 경영 계획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나타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비밀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런 비밀은 어떤 사람도 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아무리 이해한다 해도 글귀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성경의 실질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경을 보고는 혹시 얼마간의 진리를 터득하거나 얼마간의 글귀를 해석할 수 있고 유명한 장절을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글귀에 포함된 뜻은 사람이 영원히 풀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죽은 글귀이지 여호와가 역사한 장면과 예수가 역사한 장면이 아니며, 사람은 또 이런 사역의 비밀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6천년 경영 계획의 비밀은 최대의 비밀이고 가장 은밀한 것이어서, 사람은 아예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직접 깨달을 수 없다. 반드시 그가 친히 사람에게 해석해야 하고 사람에게 풀어놓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이 사람에게는 영원히 ‘수수께끼’이고 영원히 폐쇄되어 있는 비밀이다. 종교계의 인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오늘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들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 6천년의 사역은 모든 선지자의 그런 예언보다 더 심오하고, 창세부터 현재까지의 최대의 비밀이며, 역대의 선지자도 완전히 측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비밀은 오직 마지막 시대에서만 풀어놓았고 이 이전에는 풀어놓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만일 이 비밀을 깨닫고 전부 터득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 인사들도 이 비밀에 의해 정복될 것이다. 오직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이상이고, 사람이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면서도 사람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당시에 유대인들은 다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예언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예수를 핍박하였는가? 이것은 모두 그들의 패역한 본성과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연고가 아닌가? 당초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한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의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다. 오늘의 사람도 성육신인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역사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는데,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실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닌가? 무릇 성령 사역이라면 너는 일률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성령 사역이라면 ‘흐름’이 옳은 것인즉, 너는 조금도 고려없이 받아들여야 하지 골라가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몸에서 네가 더 많은 견식을 넓히고 딴 속셈을 갖는데, 이것은 부질없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더 많은 성경의 근거를 찾지 말아야 하고, 성령의 사역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기에, 너는 하나님을 고찰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나에 대하여 더 많은 근거를 찾아서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지 말아야 한다. 너는 내가 너에게 유익한 점이 있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더 많은 확실한 증거를 찾아냈다 하더라도 너를 완전히 내 앞에 이끌어올 수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 비록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리라고 예언하였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그 예언이 누구의 몸에 응할 것인가를 꿰뚫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들이 모두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것이 사람에게 모두 유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나와 예수는 서로 다른 일이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어떻게 집회해야 하는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그는 다만 당시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를 논하였다. 그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사역만 하였지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가 구약 율법을 제정하였는데,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하지 않았는가? 그는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이러면 사람이 받아들이는 데에 유익하지 않겠는가? 그는 다만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담당하리라고 예언하였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매 시대의 사역을 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 사역을 앞당겨 하지 않는다. 이래야만 그의 매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무슨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당시에 어떻게 인내하는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통받아야 하는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가는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데, 네가 만일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를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네가 성경만을 받쳐들고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성경 해석가든지, 설교자든지 누가 미리 오늘의 사역을 꿰뚫어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하나님은 매 단계 사역에서, 전적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러 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한 것은 또 옛 선지자의 예언에 엇나가지 않았고 그의 이전의 사역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가 역사한 뚜렷한 점은 바로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 것이다. 그는 선지자가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라 ‘실천가’이다. 그는 아주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였고, 그의 새로운 기원을 개척하여 그의 새 사역을 전개하였다. 물론, 예수가 와서 사역한 것도 적지 않은 구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에 하는 사역도 구약의 옛 선지자의 예언을 응하는 것이다. 다만 오늘 너와 그 ‘노황력(老黃歷)’을 펼치지 않을 따름이다. 내가 더 많은 사역을 해야 하고 더 많은 말씀을 너희에게 해야 하기에, 이런 사역과 이런 말씀은 그 성경 장절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 사역은 너희들에 대하여 말하면 별로 큰 의의와 별로 큰 가치가 없기에 너희들을 도울 수 없고 너희들을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새로운 사역을 하려는 것은 성경의 어느 장절을 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령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는 것이 단지 성경의 옛 선지자의 말을 응하기 위한 것뿐이라면 네가 말해봐라, 도대체 성육신인 하나님이 큰가 아니면 옛 선지자가 큰가? 도대체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를 지배하는가?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겠는가?』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노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에게 죄가 있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속죄제는 영원히 효능이 있어 주께 자백만 하면 다 사해 주십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죄가 없죠. 따라서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답: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사람이 죄가 없어지고 죄의 결박과 통제에서 벗어나 거룩해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사해 주셨는데, 그럼 그 ‘죄’는 도대체 뭘 말할까요? 음행하고 도둑질하는 등등 율법과 계명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건 다 죄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고 논단하는 행위도 다 죄이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는 더욱더 죄이고 사함 받지 못할 죄입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제가 되셨기에 사람은 주께 기도하며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정죄받지 않고 처형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더는 사람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인류는 죄를 사함 받음으로 직접 주께 기도해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는데, 이것이 ‘죄를 사함 받는다’는 참뜻입니다. 사람의 죄가 비록 예수님의 속죄제로 사함 받았지만 사람이 더는 죄짓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어요. 사람의 죄짓는 본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며 하나님과 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처럼 이제 막 구속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구속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으로 사람의 죄만 사해 주었지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해결해 주시지 않았어요. 사람 안의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교활하고 간사한 등등의 사탄 성품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런 타락한 성품은 죄보다 더 깊고 완고한 것이고, 또한 사람이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본 원인입니다. 이런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늘 죄지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상상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핍박과 환난이 임하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유다가 돼 하나님을 배반하며, 지위가 있으면 독립 왕국을 세워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물을 훔쳐 먹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께 정죄받아 멸망에 이릅니다. 지금 교계의 대부분 목사와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성경을 곡해하고 성경 안의 사람 말을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고 사람 말을 높이면서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지 않아 신도들에게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게 하고, 마음속에 주님의 위치가 조금도 없게 하고, 자기들의 권력에 꼼짝 못 하고 통제받게 하고 있어요. 특히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고 계시는데, 목사와 지도자들은 전혀 찾지도 알아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모독하죠. 또 유언비어를 날조해 신도들을 기만하고 교회를 차단시키면서 공공연히 하나님과 적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는데 이건 가장 심각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그들의 악행은 당시에 예수님을 대적한 바리새인보다 더 심각합니다. 보다시피,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해결하지 않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은 가리지 않고 다 저지르게 되는데, 이런 사람이 또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 계획에 근거해, 타락한 인류의 실제 필요에 근거해 말세에 여러 방면의 진리를 선포하셔서 성경에 예언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전개하심으로써 타락한 인류가 사탄 본성의 통제를 받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그래야 사람이 점차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고, 더는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정결케 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recommendpost id="18669"]

대다수 유대인들이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정죄한 2가지 이유

며칠 전 저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마태복음 27:24~26)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여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을 받은 이스라엘은 2천년 동안 나라를 잃었습니다. 저는 이점이 한탄스러우면서 또 ‘대체 왜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구하다 보니, 저는 한 책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관념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규정하면서 그를 영원히 변치 않는 조각상인 양 완전히 성경 안에 국한시키고 유한한 사역에 정해 놓는다면, 이는 너희가 하나님을 정죄한 것임을 증명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정해진 우상으로 여겼다. 하나님은 메시아라고 불려야만 하고, 또 그렇게 불려야만 하나님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하나님을 생명이 없는 조각상처럼 여기면서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리하여 죄 없는 예수가 사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뿐더러 기어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너는 높디높은 지위를 가진 저 거짓 목자들을 숭상하지, 그리스도의 낮춤을 앙모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너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그들의 명예, 그리고 사탄의 마음속에 있는 그들의 모든 지위를 바라보고 있다. 또한 그들의 세력과 권세를 바라보면서도 그리스도의 역사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받아들이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고 있다. …너의 마음속에는 높디높고 크디큰 형상이 우뚝 솟아 있다. 너는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잊지 못하고, 권세를 지닌 그들의 말과 두 손도 잊지 못한다. 너희 마음속의 그들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원한 영웅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너희 마음속의 그는 영원히 초라하고, 영원히 경외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권세라 할 만한 것도 거의 없으며, 흠모할 만한 곳이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이 두 단락을 본 저는 대다수 유대 백성들이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째, 그들이 교만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규정하고, 자신의 고정 관념과 상상에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7) 당시 바리새인 및 유대 백성들은 오실 구세주 메시아가 동정녀에게서 나시고 유대인의 왕이 되어서 그들을 고난에서 건지고, 로마인의 통치에서 벗어나게 해줄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부모님도 계시고, 가난한 목수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고귀한 신분과 위대한 지위가 없었고, 그들을 이끌고 로마인의 통치를 전복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도 메시아가 아니라 예수였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역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도처를 다니며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도록 했습니다. … 예수님의 사역은 곳곳에서 그들의 관념과 달랐고, 성경 글귀의 의미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상상과도 맞지 않자 그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정죄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대제사장, 바리새인의 지위와 권세를 숭상하며, 마음속에 오직 사람의 지위만 보았습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은 모두 종교계의 지도자로 성경을 숙독하고, 율법에 정통하며, 겉보기에 경건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적으로 항상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지위와 위엄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 백성들은 그들을 숭배하고 올려다보며, 그들의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고, 심지어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기도 하며, 어디서나 그들을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신은 고귀하지도 않고, 아무 배경과 권세도 없었습니다. 겉보기는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대다수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일반인처럼 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았고, 행하시는 사역은 누구도 이룰 수 없는 것이었으며, 예수님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누렸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바리새인의 지위만 보여서, 맹목적으로 바리새인의 말을 믿고 분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이 미친 듯이 예수님의 사역을 비방하고 정죄할 때, 그들은 바리새인을 따라 차라리 바나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결과를 따지지 않은 그 말이 하나님의 성품을 심히 거슬렀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망국을 초래하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세아 4:6)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태복음 15:9)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일이 닥칠 때마다 분별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뒤따라 결국에는 하나님께 칭찬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고,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습니다. 대다수 유대인의 실패한 예는 바로 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특히 지금은 주님의 재림의 예언이 이미 거의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3:6) 성경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하셔서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비밀을 전부 열어서 알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사역이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에 부합하든 아니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고정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규정해서는 안 되며, 맹목적으로 사람을 따라 대적하고, 정죄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주님의 제자 베드로, 야곱, 요한 등은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일에서 지위와 권세의 구속을 받지 않았고, 고정 관념과 상상에 의지해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동적으로 주님의 사역과 말씀을 구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랐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으면 우리도 베드로, 요한처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주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가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1)

관련된 하나님 말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와 매우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을 믿는 일을 매우 간단하고 가볍게 보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게 되고, 끝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글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과 공허한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질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여전히 하느님에게 자신들을 보우하사 평안과 충족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안정시키고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란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가 단지 은혜를 많이 받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이다. 특히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이 시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더욱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시작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텅 빈 도리 가운데서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령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있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흐름 가운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든지 모두 아주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하지 못하면 새 사역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없고, 새 사역에 순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또한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고, 사람의 관념이 아물기 어려운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으며, 계속 역사하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한 무리 또 한 무리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계속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으며,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씩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왜 늘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했으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인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표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모두 사람에게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베드로의 그 풍격이 있게 되면, 그때는 너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떡으로만 배불리는 것’이다. 사소한 간증, 쓸데없는 것, 겉면의 것들만 말하고 실제는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바른길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먹고 마시지 않고 천국에 가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최소한 겉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각 나라, 각 교파, 각 종교, 각 분야를 모두 말씀으로 정복한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온전케 한다.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어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바로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너희가 모두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할 수 있다. 네가 체험한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만약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없다면, 성령이 너에게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찾게 됨으로써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으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것은 바로 실제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이고, 실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며, 그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어 넣어 사람에게 그의 소시(인성 소시(所是)든지 아니면 신성 소시든지)와 그의 말씀의 실질이 가득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사람에게서 살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는 것은 주로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발하는 음성으로 사람의 결점을 대처하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폭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 하고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각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여 더러운 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 얻어지는 가장 깊은 의의는 바로 실제 하나님을 푯대와 본보기로 하여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거리도 없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면 네가 그대로 실행하고 그가 요구한 것에 모두 도달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왜 하나님의 재림에는 은밀히 강림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으로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가?

성경 참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7~4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2~13)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교훈하고,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며, 사람의 말과 행위를 해부한다. 이런 말씀에는 아주 많은 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복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성품 등등이 있다. 이런 말씀은 모두 사람의 본질과 패괴 성정에 초점을 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드러낸 그런 말씀은 더욱 사람이 본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가? 그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공의, 진노, 위엄, 심판, 저주인데 그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주로 심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여 말한다. “왜 심판ㆍ저주를 통해야만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면 사람이 죽지 않겠는가? 사람을 심판하면 사람이 정죄받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찌 또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것은 사람의 패역이고 심판하는 것은 사람의 죄이다. 비록 말씀이 엄하여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사람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낼 뿐만 아니라 일부 엄한 말씀으로 사람 안의 본질적인 것들을 폭로해 내지만 이러한 심판 방식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의 본질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순복하게 한다. 사람의 육체는 죄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며, 육체는 패역한 것에 속하고 하나님이 형벌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 하려면 하나님의 심판 말씀이 임하고 또 온갖 연단을 통해야만 하나님의 역사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각종 상황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루고, 또 각종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파헤쳐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내고 다 폭로한다. 많은 정형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드러내는 것을 통해, 또 훈계하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 또 형벌하는 것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고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임을 인식하게 한다.』 <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시련은 사람 안의 어떤 정형을 겨냥한 것인가? 사람 안의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없는 패역 성정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뒤섞임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하지만 네가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있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온전케 하는 것이 된다. 만약 지금 그를 만족케 할 수 없다면, 이후의 시련은 너에게 있어서 시험이 되어, 너는 부지중에 넘어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데, 그것은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따라오지 못해 실제 분량이 없기 때문이다. ……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한다면 시련 가운데서 반드시 넘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련이 너에게 닥칠 때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으면, 너는 서지 못한다.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경력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최후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현재 너희 이 사람들은 바울의 이지마저도 갖추지 못하고 바울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능력도 없으며 바울의 양심도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너희를 언제나 좀 짓누르고 언제나 형벌하고 심판해야만 너의 영을 일깨울 수 있다. 너의 생명에 가장 유익한 것은 그래도 형벌과 심판이다. 필요할 때는 또 사실이 임하는 형벌을 좀 해야 너희가 철저히 탄복하게 된다. 너희의 본성은 형벌과 저주가 없으면 굴복하려고 하지 않고, 탄복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없으면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너희의 인격은 너무나 비천하고 무가치하다!』 <실행 (6)>에서 발췌 『나는 큰 붉은 용 국가에 강림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 우주를 향하였는데, 온 궁창까지 다 진동한다. 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쏟은 재난 속에서 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발길이 닿는 곳마다 각종 ‘재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것은 내가 역사하는 방식이고, 사람에게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구원이고, 또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여전히 자비이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10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께 정복되는 과정은 마치 한차례의 승자전과 같다. 하나님 말씀은 마디마다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를 슬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드러냈고 우리의 패괴 성정을 드러냈다. 일언일행, 일거일동에서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본성 실질을 그의 말씀 가운데서 드러나게 하여 우리를 두려워 떨게 하였고 몸 둘 바를 모르게 하였다.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속셈과 목적, 심지어 우리 스스로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정까지도 그는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 주어 우리를 만신창이가 되게 하였고, 게다가 심복구복하게 하였다. 그는 그에 대한 우리의 대적을 심판하고 그에 대한 우리의 모독과 정죄를 형벌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의 눈에서는 우리가 옳은 게 하나도 없고 우리가 바로 숨 쉬고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깨지고 말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 대해 감히 그 어떤 무리한 요구나 의도를 갖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다. 일순간 우리의 마음은 평형점을 잃어 앞길을 어떻게 걸어 나가야 할지 몰랐고,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이어 가야 할지 몰랐다. 마치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 듯하였고, 또 마치 우리는 주 예수와 ‘만난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는 듯하였다. 눈앞의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하였고, 우리를 방황하게 하였다. 우리는 낙심하였고 실망하였으며,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와 굴욕이 생겼다. 우리는 쏟아 내려고 시도했고, 다른길을 찾으려고 시도했으며, 더욱이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렸다가 그에게 속사정을 하소연하려고도 시도했다.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대범하였지만 마음은 전례 없이 낙담되었고, 때로는 우리의 겉모습은 아주 침착해 보였지만 마음은 바다가 뒤집어지듯이 갑절로 괴로움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우리는 모든 꿈과 희망이 빼앗겨 더는 지나친 욕망을 갖지 못하였고,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이고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그와 우리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는데, 심지어 아무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이렇게 큰 좌절을 겪고 이렇게 큰 굴욕을 받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거스를 수 없고 존귀한데, 이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얼마나 더러운지를 느끼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에게 처음으로 우리의 오만과 자대(自大)를 알게 하였고, 또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등할 수 없고 같이 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더는 이러한 패괴 성정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루속히 이러한 본성 실질에서 벗어나 더는 그에게 미움받지 않고 혐오 받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구하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의 말씀을 듣게 하였으며,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를 거역하지 않게 하였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로 하여금 달갑게 그를 받아들여 우리의 구주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걸어 나왔고, 지옥에서 걸어 나왔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걸어 나왔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이 무리의 사람들을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셨고 모든 원수들을 패배시켰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빠른 영적 성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진입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게 되고, 영적 생명도 자라날 수 있는데, 성도들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4가지 실행 방법, 함께 알아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