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2019년 01월 01일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오늘날 실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복받기만을 구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깨우침을 통해, 자신이 추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이 가장 진실한 것이어서 아무도 너의 그 사랑을 파괴할 수도 없고 가로막을 수도 없다면, 이때 바로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 궤도에 들어선 것인데, 이것은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너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 점유되어 더 이상 너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의 체험과 너의 대가로 말미암아, 또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연히 생길 수 있는데, 이때면 너는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빛 속에서 살게 되며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래야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이 목표를 향해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너희 각 사람의 직책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깨우쳐 준 것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이 너에게 훈계하고 심판한 것도 체험할 수 있다면, 너는 전면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심판 사역을 한 적이 있고, 형벌 사역도 한 적이 있으며, 하나님이 말씀으로 너를 훈계한 적도 있지만, 여전히 너에게 깨우쳐 주었고 빛 비춰 주었으며, 네가 도망가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의 손이 너를 끌어당겼다. 이 모든 역사를 통해 너에게 사람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지배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고난받는 것이거나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거나 육체가 평안한 것이거나 모든 것이 다 순조롭고 안일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이렇게 믿는다면, 너의 관점은 올바르지 않고 너는 전혀 온전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와 난측(難測),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네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요구, 자신의 소망, 자신의 관념을 제거하게 된다. 이런 것을 제거해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것을 통해야만 생명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정을 살아내기 위한 것이며, 자격이 없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그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정확한 관점이고, 또한 추구 목표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 얻기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진리를 살아낼 수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볼 수 있고, 전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실제적인 사역도 볼 수 있다. 사람은 실제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를 체험하게 되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는지를 체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기 위한 것이다. 네 안의 불결한 것과 불의한 것을 벗어 버리고 너의 틀린 속셈을 벗어 버리면,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런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기초에서라야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네가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열의가 일어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열의가 없어지는데,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에 대해 아직도 요구가 있고, 아직도 많은 종교 관념을 버릴 수 없고 자신의 이익을 버릴 수 없고, 아직도 육체가 복받기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으로 너의 육체와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면, 이것은 모두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의 표현이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비록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성정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의 육체적인 이익만 추구한다. 너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믿음법은 종교 신앙에 속하는데, 그것은 아예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을 마음과 자기를 버릴 심지를 갖추어야 한다. 이 2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정이 변화될 수도 없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오직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침묵을 지키고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무미건조한’ 문제는 안다고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없고,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령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말을 들었을지라도, 그것을 건성으로 대할 뿐 보배로 받아들이지 않고, 생명의 일부분으로는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한데, 그것은 단 하나의 목표, 즉 복을 받는 것이다. 그것 외에 그들은 자신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어 복을 받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가치라고 여긴다. 만약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과 속마음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다 헌신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또한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랜 세월 밖에서 동분서주하며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향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추구 방향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뛰어다닌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렇게 계속 바칠 수 있게 하였을까?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려고 하는 그들의 의지인가?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도 보수를 바라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그들의 충성심인가? 아니면 자신의 지나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잠시 논하지 말자. 하지만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우리가 해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그 속에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익을 제외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우리는 사람이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로,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로 대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일 뿐이다. 피고용인이 수고하는 것은 다만 고용인이 주는 삯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이익 관계에는 혈육 같은 친밀한 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주고 받는 사랑은 없고 베풀어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만 있으며,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사이는 없고 영원히 넘어갈 수 없는 깊은 골만 있을 뿐이다. 일이 이미 그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그런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는가? 또 그런 관계가 위급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확신하는데, 사람이 모두 복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민망하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을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가장 슬픈 일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신의 경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본체만체하는 것이며,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기를 추구하면서 그와 동시에 자신이 바라는 처소의 꿈을 만들어 가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처소를 얻을 수 있겠는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시련,믿음의 시련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금생에서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서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 평안하기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를 쏟았을 때,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고 천당의 복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었다. 사람이 나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혐오했더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더러운 사술을 행하는 술객의 술법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시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나의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나를 믿어서 얻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은 후 평안 얻기를 추구하는데,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가문에 시집가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일 년 내내 농사하기에 날씨가 좋은 이런 것만 바란다. 너는 사는 것이 편안하여 집에 일이 생기지 않고, 바람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고, 홍수가 나도 너의 집 곡식은 잠기지 않고, 재난은 다 너에게 미치지 않고,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추구한다. 너같이 못난 놈은 무턱대고 육체만 추구하는데, 네가 말해 보아라. 너에게 마음이 있는가, 영이 있는가? 너는 짐승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값없이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닌가?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모르고 날마다 실컷 배불리 먹고는 잠만 잔다. 참 도를 베풀어 주었어도 네가 얻지 못하고 두 손이 텅 비어 있는데, 너는 돼지와 같은 그런 삶이 계속되길 바라는가? 그런 사람이 살아 있어도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삶이 비열하고 저속하며, 더러움과 음란 속에서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조금도 없는데,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이 아닌가? 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는가? 그렇게 체험해 나가면 여전히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베풀어 주었는데, 최종에 네가 얻을 수 있는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렸다.』

<베드로의 체험―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은혜만 누리고 가정이 평안하거나 물질적 축복만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믿음에 성과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육신에 와서 은혜 사역도 하였는데, 사람에게 확실히 어느 정도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은혜만 있고 자비와 긍휼만 있어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도 어느 정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체험한 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 안의 패괴된 것들을 폭로할 수 없고, 패괴 성정도 벗어 버리게 할 수 없고, 사람의 사랑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믿음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의 사역이니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너는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인식하였는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너는 어느 정도로 변화되었는가? 지금 너희가 모두 알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영혼이 구원을 얻고 육체가 평안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신의 생활을 충실케 하는 것 등을 위한 것도 아니다. 현재를 놓고 보면, 만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평안을 얻기 위한 것이고 잠깐의 누림을 위한 것이라면, 설사 네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봉에 이르러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이 ‘사랑’은 여전히 불순물이 있는 사랑이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기의 따분한 생활을 충실케 하고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는데, 이러한 사람은 안일을 탐하고 누리는 사람이지 하나님 사랑하기를 진실로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사랑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고 정신적 누림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이 필요 없다. 그러면 너의 사랑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너는 어떤 원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현재 너에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성분은 얼마나 있는가? 너희 중의 대다수 사람들의 사랑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 상태만 유지할 수 있을 뿐, 영구불변함에 이를 수 없고 사람 안에 뿌리박을 수도 없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꽃에 속하므로, 꽃이 피었다가 시들고 나면 열매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네가 이렇게 한번 하나님을 사랑한 후에, 만일 아무도 더 이상 너의 앞길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넘어지게 될 것이다. 기껏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후에 너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없다면, 너는 여전히 흑암 권세의 뒤덮임 아래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여전히 사탄의 지배와 사탄의 우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완전하게 얻어질 수 없으며, 최후에는 영ㆍ혼ㆍ체가 여전히 사탄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완전하게 얻어질 수 없는 사람은 모두 그 원위치로 복귀되는데, 바로 사탄에게 돌아가고 유황불못에 던져져 하나님의 다음 단계 징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정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이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자민의 유래이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는가?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는가? 현재 너는 사탄에게 속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에 속하는가? 이런 일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니,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복받을 수 있기만 추구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순수하지 않다. 너는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행사를 볼 것인지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그를 만족게 할 것인지를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증거하고, 너에게 임한 하나님의 징계와 훈계를 어떻게 발표할 것인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지금 네가 상고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단지 하나님께 온전케 된 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고 아직 하나님의 요구에 이르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실제적으로 증거할 수 있고, 그의 요구를 실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며, 사람에게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고난을 받든, 눈물을 흘리든, 괴롭든, 실제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지금 도대체 무엇의 지배를 받아 고난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느냐?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냐? 육체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이후의 앞날을 위한 것이냐? 너는 속마음, 동기, 자신의 추구 목표를 바로잡아야 하고, 자기의 뜻에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해, 왕이 되어 권력을 잡기 위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온전케 되어 하나님을 만족게 함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실제적으로 증거하기를 추구한다면, 너는 이 2가지 추구법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네가 첫 번째 것을 택한다면 하나님의 기준과 아직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나는 나의 행사를 전 우주에 공개하고, 내가 전 우주에서 왕이 되어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너희에 대한 부탁은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지 왕이 되어 전 우주에 나타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우주 궁창에 가득 나타내어 각 사람에게 보게 하고 시인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놓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되느냐?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증거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그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겠느냐? 네가 온전케 되기를 원하고 또한 자신의 살아냄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기 원한다면, 너에게 이런 동력이 있다면 모든 어려움은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 지금은 사람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너에게 이런 동력이 있다면 그 무슨 소극적인 것, 피동적인 것, 육체적인 나태, 육체적인 관념, 처세 철학, 패역 성정, 감정 등등을 모두 쉽게 버릴 수 있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말세 역사에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심판, 형벌의 말씀을 발표하셔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죄 사함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한 옛 성품 안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야 한다. 죄성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 ...』

왜 하나님의 역사는 착한 사람만 구원하고 악인을 구원하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어릴 적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코끼리의 등에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소경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소경들에게 함께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소경이 손을 내미니 마침 코끼리의 코가 만져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아! 이제 보니 코끼리는 구불구불한 끌채(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처럼 생겼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단단한 상아를 만지고는 바로 “아니야! 코끼리는 쌀을 찧고 옷을 두드릴 때 쓰는 홍두깨(다듬잇방망이) 같아”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후 “아니야! 코끼리는 잡동사니를 담는 삼태기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고는 “틀렸어! 코끼리는 향을 피우는 세발 향로 같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등을 만지고는 “당신들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나서 “사실 코끼리는 뭐 별거 아니네, 두텁고 넓은 벽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만지고는 “아니야! 코끼리는 고목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어깨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기둥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발을 만지고 “아니야! 아니야! 코끼리는 움푹 파인 돌절구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당신들의 말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밧줄로 엮은 길다란 채찍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장님들은 자신이 만진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소경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국왕은 웃으면서 “여러분! 여러분은 크게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진 것은 코끼리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코끼리는 채찍도 돌절구도 아니고, 고목도 담장도 아니며, 작은 언덕도 향로도 아닙니다 ……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있는 여러 교단과 교파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교파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틀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한데,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신청의(以信稱義)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칭함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생명파는 성경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므로 자신들이 거듭남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파는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자신들이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미파는 성경에 다윗이 북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렇게 믿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파는 여호와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여 사람들에게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으므로,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각 교파 사람들이 다 자신들이 믿는 교파의 관점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이 믿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누가 알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들아 ……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크리스천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믿음의 파(派)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에 속하고, 아볼로가 전한 것은 아볼로에 속하고, 게바가 전한 것은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당시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분열되면 안되며,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인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 사람을 믿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인데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몸을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지금까지 전해져 와서, 처음에 바울에게 속하고, 아볼로에게 속하고, 게바에게 속하던 것이 이제는 이미 2,000개(중국 기준)가 넘는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은 뜻밖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관념 속에서 살면서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더군다나 저마다 이치를 말하면서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이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이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 연고이며, 모두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전설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으나 하나님 역사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매우 적게 들은 까닭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한해 믿은 사람도 관념에서 신앙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도 역시 관념에서 신앙 한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언제나 벗어 나지도 못한다. 사람은 또 자기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였다고 여기는데, 어찌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관념이고 소문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난 주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야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막연한 하나님만 믿을 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만물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등등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교리를 지키지만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 자대(自大)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하는 것으로 주님과 거래하여 맞바꾸려고 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거듭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사람들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주님께 가장 인정받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 아래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믿어도 그 믿음이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우러러보고 따랐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위의 사실 앞에서 우리는, 오늘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각자가 자기 것만 고집하고 게다가 또 서로 배척하고, 서로 논단하고, 서로 공격하고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지 않고 이렇게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칭찬하실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이사야서 2장 2절~5절에는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화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우리는 주님의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인 지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각 교파 사람들은 주님의 몸을 사분오열시켰습니다. 오직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ㆍ형벌 속에서 죄악과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모두가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살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민인 것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함으로 심판 사역을 하여 한 무리 이기는 자를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였는데, 이 한 무리 사람은 각 교파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이고, 더군다나 모두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야만 권병과 능력으로 만교(萬敎)가 하나 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주는 다만 어느 한 종파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분을 대표하지 못한다. 교주는 전체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는 있지만 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주는 다만 하나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조물주)과 동등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최종에는 또 조물주의 수중에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어서, 무슨 교파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중의 지고자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류를 적합한 귀숙에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전 우주 아래위에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고 다른 파별이란 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하는 이는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무릇 하지 못하는 자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이외의 원수이다. 사교이라면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원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주도 수많은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주는 그저 한 종교만 통솔할 수 있을 뿐, 모든 종교를 다 통솔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물주는 인류를 창조할 수 있고, 땅에서 인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이 전체 시대를 끝마칠 수 있고, 전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인데, 이미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이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전 인류에게 공개되어 각 교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의 교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다른 교파에서 왔는데, 모두가 방방곡곡에서 모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양과 양육을 받아들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해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은 오직 자신의 관념에서 나와야만 주님의 나타남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을 받아야만 사람은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비로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막연한 가운데서 살지 않게 됩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미국 사람이든 아니면 영국 사람이든 또는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이든지 간에, 너는 마땅히 자기의 국적 범위에서 벗어나 자아를 초월하여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해야 한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한 범위에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많은 사람들은 관념에서 하나님이 어느 한 국가나 어느 한 민족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 하는 의의가 그토록 심오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또한 그토록 중요한데, 어찌 사람의 관념과 사유로써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네가 너의 국적과 민족 관념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래야만 네가 관념의 속박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래야만 네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영접할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方音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가

기도는 항상 많이 하지만 응답 받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왜 하나님의 재림에는 은밀히 강림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

기도하는 방법 - 올바른 기도를 위해 꼭 알아야 할 4가지

기도가 중요한 만큼 기도하는 방법을 찾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더 깊이 있는 기도를 하기 위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기도를 하기 위해, 기도하는 방법에 있어서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4가지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십니까?

『망망한 우주 궁창에 많은 생령이 번식하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의 규율을 따르고 있고 하나의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가고 살아있는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누가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지? 또 누가 이 인류를 창조하였는지? 설마 정말로 대자연의 조화는 아니겠지? 인류가 정말로 자기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지? ……’』

매일 드리는 기도 - 오늘도 주님과 대화를 하셨나요

매일 드리는 기도는 크리스천으로서 꼭 해야 하는 영적 수련 방식이며,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일 기도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 것인데, 기도가 우리에게 별도의 부담되지 않기 위해, 먼저 기도에 대한 의의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