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참 진리를 찾고 구함에 있어 갖춰야 할 이성

2018년 12월 02일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사역은 가장 측량하기 어렵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헛수고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간파’했다는 사람들은 다 무능한 자, 교만하고 무지한 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이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니냐?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무슨 좋은 결실이 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너는 이 말을 못 받아들일 수도,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너의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지 말 것을 권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진정으로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언쟁을 벌인다고 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하고 구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오늘날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라고 한 이 말은 하나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너는 이 말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싫어할 수도 있고, 이 말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는 사람 모두가 이 사실을 마주하고, 신중하게 알아보기를 바란다. 가장 좋은 것은 경솔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 믿는 길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가며,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허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 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른 이를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보았을 때, 그 말씀이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보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주 작은 마음으로 인해 너는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마디마디 말씀이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혹자는 몇 마디 보지도 않고 “이것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라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정죄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적다. 나는 너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너희는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고, 미혹될까 봐 두려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여러 번 살펴본 후에도 이런 말씀이 진리도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발현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결국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도, 덤벙대지도 말라. 하나님 믿는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기지도 말라. 자신의 종착지와 앞날,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야지, 스스로를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런 말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라 생각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의 나타남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고, 사람의 바람에 따라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자신의 목표와 방식으로 사역을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사람들이 응당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자 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위 안으로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에서 발췌

찾고 구하고 두드리라,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수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이 아니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가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았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이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형제자매들이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현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지 정신 차리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이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책무다. 우리는 뜬구름 잡는 허황된 말에 빠지지 말고 영의 눈을 밝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을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일면을 봐야 한다. 늘 모든 것을 잊고 온종일 붕 떠서 하늘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예수가 갑자기 너희 가운데로 내려와 이제껏 그를 알지도 못하고 만나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준행할 줄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가 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그래도 좀 더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거라!

네가 이 책을 펼칠 때 연구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네가 어떤 태도를 가졌든 이 책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다 읽길 바란다. 이 말씀들을 다 읽고 나면 네 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이것은 네 마음가짐과 깨닫는 정도에 달렸다. 하지만 이 점은 알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의 말은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말씀들을 읽고 난 다음 이것을 사람이 얻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무 무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얻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간단한 실천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졌고,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이 직접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어찌 되었든 너는 높은 것을 낮다고, 깊은 것을 얕다고 말하며 옳고 그른 것을 뒤바꿔서는 안 된다. 진리임을 분명히 알면서 일부러 반박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각 사람은 모두 정확한 입장에서 문제를 살펴봐야 하고,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나타남이 특정 형식이나 국가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자신이 계획해 놓은 사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는 유대에서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주 예수의 형상으로 성육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들의 ‘불가능’은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근거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 역시 이 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나타남을 정죄했다. 그들의 ‘불가능’은 또다시 하나님의 나타남을 그들의 상상 속에 규정지어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는 미친 듯이 웃어 대는 것을 보았다. 그 ‘웃음’이 바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희들은 진리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며,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는다. 그저 덮어놓고 연구하고 무심하게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설마 하나님이 친히 인도해 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조차 분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에 진리가 선포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자격이 있다. 너의 관념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평온히 하고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깨우쳐 줄 것이다. 너희들의 ‘불가능’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욱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사유 관념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일수록 찾아야 할 진리가 있는 법이고, 사람의 관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일수록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며, 절대 하나님이 나타나는 지역이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의 성품은 바뀔 리 없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는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주 예수가 이스라엘인들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ㆍ유럽ㆍ미주 사람들의 하나님이듯, 우주 위아래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이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라!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그의 말씀과 나타남은 공존하며, 그의 성품과 발자취는 언제나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나는 너희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새 시대를 향해 걸음을 떼고, 하나님이 자신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에서 발췌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는가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마다 성경을 아주 중요하게 대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어느 누구도 성경의 말을 어겨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는 아주 높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하나님 나라 복음이 중화 대륙에서 확장된 이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인솔 하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과 자양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마시는 데에 대해 관념이 생겨 ‘성경을 보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찌 성경을 벗어날 수 있는가?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그럼 성경을 보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지? 성경을 떠나면 정말 주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겠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 확실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 한 바에는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이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및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를 포괄하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의 사역과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는 어떻게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안배하셨는지,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인지, 노아의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셨는지,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 등등도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제 상황입니다. 신약 성경은 4복음서,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을 포함합니다. 주로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처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또 어떻게 가는 곳마다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훼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만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였는지, 어떻게 성령의 인솔 하에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하였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든 아니면 신약 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은 모두 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사역과 전에 일어났던 일부 일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성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땅에서의 일부 역사와 사도들이 뭇 교회를 목양할 때 쓴 일부 서신 및 주후 90 몇 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에 관한 기록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들의 그런 서신은 다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바로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어떤 때는 그들이 직접 어느 교회에 갈 수 없어 서신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도들이 쓴 그런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중 많은 서신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분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즈음에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는 사람들이 읽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전해 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런 서신은 사람이 쓴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유익한 점이 있는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전해지고 또 ≪성경≫,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호감과 예수님에 대한 사람의 애대(愛戴)의 정 때문에 점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에 편성된 이런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신성한 언어’로 삼게 되어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당시의 사람은 이런 서신을 어떻게 대한 것인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조금만 미루어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이 각처에서 교회를 목양하였는데, 뭇 교회에서도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이 서신을 다 쓴 후에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교회에 가져가서 “이는 바울 또는 ○○ 형제가 우리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인데 바울 또는 ○○ 형제의 말입니다. 우리가 읽어보고 교통합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님, 빨리 와서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바울이나 베드로를 잘 아는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보았을 때면 “베드로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바울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이것은 그들이 쓴 편지가 맞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베드로의 이런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의 말이고 그들이 잘 아는 바울이나 베드로 형제가 그들의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는 사람이지 예수님이 아니고 하나님 도성육신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의 말을 사람의 말로 대하고 사람의 경력과 인식으로 삼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후세 사람들이 바울 그들을 숭배하고 또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람에게 덕이 된다고 이런 말을 성경에 편성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런 서신이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경력과 인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과 동시대 형제자매들은 모두 실정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도들의 서신을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그때의 배경을 좀 자세히 돌아보고 상고한다면, 그 사도의 서신은 다 하나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일부 경력과 인식이고 그들이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지 성령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고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만일 성경의 기타 편(篇)과 장(章)이 형성된 배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효유한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 및 예수님이 사람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외에 그 나머지는 다 사람의 경력과 인식, 일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성경을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생긴 배경에 대해 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장면이지만 필경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사역이니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신약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의 땅에서의 사역이며 신약에 바울의 사역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모두 역사(歷史) 기록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하고, 아무리 진실일지라도 역사(歷史)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부단히 아주 새롭고 아주 현실적인 사역을 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창세기≫에 근거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가 쓴 ≪출애굽기≫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4복음서’에 근거하여 십자가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까? 분명히 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이런 성경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는 구약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인류의 현 상태와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은 그때의 인류가 이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음란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인류를 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처음 난 인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여 율법으로 그들을 인솔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이미 구약 성경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어떤 것이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이름을 ‘예수’라 하였는데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하셨는데 구약 성경에 사람에게 이렇게 실행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을 교훈한 많은 말씀도 구약 성경에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반포한 율법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 하셨지만(출 21:24) 예수님은 사람에게 남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21-22).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 무슨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셨지만(출 31:12-15) 예수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마 12:12).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것도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시대 후기에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갈수록 많아져 사람은 이미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시대가 계속 지속된다면 사람은 다만 죄 속에서 살면서 더욱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죄의 자손이 되고 귀신의 후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인류는 모두 사탄에게 삼켜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사람을 구원하러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와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주시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사해주심으로써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여전히 여호와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만일 사람이 지킬 수 없어 사람을 저주하고 격살한다면, 사람은 다 하나님께 격살될 것인데, 누가 또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 앞에 올 기회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땅끝까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죄성이 아직도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아직도 죄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범죄하고 있고, 게다가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는 데에 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도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줄곧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면, 사람은 영원히 범죄하고는 죄를 자백하고 죄를 자백하고는 범죄하는 이런 반복적인 상황에서 살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사람이 어느 때에야 완전히 죄성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얻어지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역사한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기초에서 또 한 단계 더 새롭고 더 현실적인 사역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해 낸 인류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여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어 진정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는 시대가 변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였으므로, 형벌ㆍ심판에 의하여 사람의 패역을 벗겨버리고 사람 안의 불결한 것들을 벗겨버린다. 그 단계는 구속이므로, 그가 반드시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게 해야만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으며, 은혜에 의하여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도록 하였다. 이 단계는 형벌과 심판에 의하여, 말씀의 격타(擊打)에 의하여, 말씀의 징계와 폭로에 의하여, 사람 안의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후 구원받는 데에 달하게 하는 것인데,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의 이번 역사는 주로 말씀을 발표하는 것인데, 말씀의 형벌 심판에 의해 사람 안의 모든 불의한 것들을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정에 대하여 인식이 있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될 수 있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매임에서 철저히 벗어나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고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적이 없던 사역이니, 당연히 성경에 기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역사는 완전히 인류의 필요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에 근거한 것이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역사든, 예수의 역사든 아니면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든,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시대의 사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 및 사람에 대한 그분의 교훈이 설마 구약 성경에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기록되었습니까? 누가 이런 능력과 선견(先見)이 있어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사역을 다 성경에 앞당겨 기록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벗어난 새 사역을 하셨어도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시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요구합니까?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성경의 범위를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임을 부인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이 비록 성경을 벗어났지만, 그분의 역사는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할 수 있으며, 낡은 시대를 끝마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으며,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인류의 불의를 형벌하고 인류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분의 역사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극대한 사랑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에 의해 하나님이 곧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하실 수 있으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실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인류 생존의 기탁이시고 인류의 유일한 의뢰이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이 사랑하고 경배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진정 인식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증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 성경을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무 우매하고 너무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현재 각종 적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들이 사람을 미혹할 때 모두 성경 장절을 인용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실제 기록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이시고 지고지상한 분이시고 전능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며, 하나님의 행사는 한량없고 무진장하기 때문입니다. 시초부터 현재까지 하나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은 적이 없으며, 그분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고 그분의 경영 계획에 따라 역사하신 것입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하나님 역사가 모두 성경을 참고하지 않고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단지 본시대에 해야 할 사역만 하신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야 하지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하나님을 믿은 많은 사람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중에 진정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혀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그때는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성실한 마음으로써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동시에 여호와의 요구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로 세상을 멸할 때에 오직 노아의 일가 여덟 식구만이 은혜를 입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여호와의 지시와 요구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그들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시대에 예수님을 따른 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여 각처에서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부활의 도를 간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하였고,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주고 안수 기도해주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쓰고 발을 씻게 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모두 예수님의 새 시대에서의 역사이고 하나님이 새로운 시대에 사람에게 실행하고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비록 성경이 있었지만 그들이 전한 것은 구약 성경에 근거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받쳐들고 여호와의 도를 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적만 말하고 천국의 복음만 전하였으며 예수님이 개척하신 은혜시대의 도만 간증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와 하나님의 새로운 요구를 실행하고 순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보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떠났다 하여 주님을 배반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실히 성경만 붙잡고 성경만 말하면서 매사마다 성경과 대조하였지만 나중에 성경에 근거하여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관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지키는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황당하고 그릇된 것이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인솔하시는 것은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역시 부단히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는 하나님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역이 있고 새로운 말씀으로 사람의 생명을 공급합니다. 이와 동시에 성경도 곧 새 시대의 도래에 따라 낡고 때가 지난 역사(歷史)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시고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실 때, 성령께 택함받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가장 새롭고 현시적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생명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래를 간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역사를 개척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사를 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모두 더는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똑같이 성령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의 역사와 말씀을 간증하였는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성경의 내막을 이해하고 당시에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구약 성경대로 역사하지 않으셨는지,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와 말씀만 전하였는지를 알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신약 성경대로 역사하시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더는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만 간증하는가에 대해 관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한 단계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단계로 사람의 죄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반드시 제3단계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철저히 변화시키고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가 인류를 구원하는 완정(完整)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고 구해야 하며 성경을 정확히 대해야 하고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회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네가 성경만 알 뿐 하나님의 현재 하려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으면, 너는 무엇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라 하는지를 모른다. 네가 만약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를 알려고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너는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성령의 현시 역사를 인식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성경을 볼 줄만 알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현시 역사의 흐름에 도태될 것이고 심지어 성경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새 역사를 대적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역사 서적에 속한다. 네가 만약 성경 구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지고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가 너를 저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다. 네가 구약으로써 예수가 한 사역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네가 만약 현재 신약과 구약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실행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를 죄로 정할 것이며, 너는 오늘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 없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 흐름 이외의 사람에 속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성경을 지키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다 성령의 흐름 이외의 사람이고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마치 당시의 그 제사장, 서기관, 장로와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사역을 개척하시고 사람에게 새 시대의 실행의 길을 가져다주셨을 때, 그들은 여전히 한사코 구약 성경을 지키고 여호와의 요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써 예수님의 역사를 가늠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관념에서는 하나님이 성경 이외에서 역사하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최종에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고 메시아로 불리지 않은 것을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징벌받고 저주받은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비참한 결말을 얻었는데, 설마 우리가 경계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실패한 까닭은 무작정 성경을 지키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설마 그들이 모두 매 구절 경문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사실, 성경의 원래 가치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와 인식이 있게 할 뿐이고, 다만 하나님의 이전의 역사를 위해 증거할 뿐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현실의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 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도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하신 음성이자 역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성경을 고수하면서 언제나 성경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늠하고 단지 성경의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홀시하고 말세의 그리스도─전능하신 하나님(즉 재림하신 예수님)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것이고, 최종에 생명을 얻기는커녕 성경의 글귀에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성경을 숭배하던 바리새인의 잘못을 다시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며, ‘나’와 ‘경’을 동등하게 보고, ‘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나 나의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매 구절 경문에는 아주 특별히 관심을 둔다. 심지어 더욱 많은 사람들은 경문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경문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보는데, 그들이 글귀를 너무 중요하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성경의 장절로써 나의 매 마디 말을 가늠하고 성경의 장절로써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고 구하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될 수 있는 도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무릇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효자 효손들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통하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게 함으로써 성경을 미신하지 않고 성경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여 하나님을 성경 속에 제한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에 하나님은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성경의 글귀로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 구조와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타당한 논법을 설명하고 성경의 본체를 복원하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성경을 미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에 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 뜻에 맞고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江蘇省 謝恩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가

기도는 항상 많이 하지만 응답 받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라고는 하셨지만 분별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분별과 비판은 자신의 판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별과 비판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실행해야만이 진리에 부합되고 예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3가지 방법

지금 많은 성도들은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이 두려워 진짜 그리스도을 찾고 알아보기는커녕 회피와 거절을 선택하곤 합니다. 예수 재림의 중요한 이 시기에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찾고 알아볼 수 있도록,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고 진짜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3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율법시대는 바로 여호와를 대표한 하나님 이름의 사역이고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전부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며,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고 그가 한 사역에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다 신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 』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여러 해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매번 만족을 얻고 누림이 있었습니다.” 네가 그에게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기를, “가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형제자매들도 모두 입을 열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매우 원합니다. 그다음 노래하고 찬미하는데 노래하면 모두 감동되어 온 얼굴에 눈물범벅입니다! 어떤 때는 흥분되면 땀이 계속 나서 수건을 다 적십니다. 형제자매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교회 생활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습니다. 여럿이 교통하면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교회 생활을 해도 나중에는 어떠한가? 누구도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부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정형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실질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이 10여 년의 교회 생활을 이렇게 허송세월로 보냈고, 이렇게 춤을 추면서 사람의 감각 속에서 사람의 누림 속에서 보냈다. 사람의 그 누림과 그 쾌락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 몸에서의 변화를 보려 하고 사람 몸에 이미 하나님 말씀의 실제적 살아냄이 있는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려 하는 것이지 네가 집회할 때에 또는 매우 열성적일 때에 찬양책을 들고 노래하거나 하나님을 찬미하며 춤을 추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대단히 가슴 아파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하였지만 참으로 어떠한 사람 몸에서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하여 하나님이 매우 슬퍼하고 조급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걱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 생활이 좀 있으면 자만자족하며, 기쁨과 평안과 희락이 좀 있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마음이 즐겁고 위로되거나 정신적 풍부함이 있으면 이미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여긴다. 이런 가상(假相)을 줄곧 보존하고 이런 가상을 줄곧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최고로 얻어야 할 것과 자신이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것으로 성정 변화와 구원받는 길에 진입한 것을 대체하므로 사람은 추구하지도 않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경력을 함께 나누고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바로 네 개인의 마음속에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의 패괴 성정을 다 말해낸 다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교통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보임이 있다든가 네가 시가의 어느 절에서 어느 정도 보임이 있어 아무렇게나 교통하고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실제 생활과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다들 도리적 인식만 말하고 이론적 인식만 말하는데, 실제 경력의 인식은 조금도 없다. 누구나 다 빙빙 돌려 말하며, 개인의 생활을 피하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생활의 그 범위를 피하고 개인의 내적 세계를 피하는데, 이러면 사람 간에 어찌 진정한 소통과 진실한 신뢰가 있겠는가? 없다!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여태껏 마음속 말을 한 적이 없다면 그들 둘이 절친한 부부인가? 서로를 잘 알겠는가? 모른다. 가령 남편이 밤낮 아내에게 “자기야 사랑해!” 아내도 밤낮 남편에게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야.” 단지 이렇게 말할 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에 대해 어떤 요구가 있는지, 또는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남편에게 아예 말하지도 않고 흉금을 털어놓는 말이 없다면, 그들 둘이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가? 둘이 함께 있으면 전부 원칙적인 말만 하는데 이는 참된 부부인가? 틀림없이 아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허물없이 지내고 서로 도와주고 공급해주어야 한다. 반드시 사람마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해야 한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지 않고 원칙적인 말만 하고 글귀 도리와 글자 표면의 뜻만 말한다면 너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언어 소통이 없고 심령상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간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었는가?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말이나 다 너에게 말하고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든지, 어떤 기쁜 일이 있든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가 너에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은 너도 마음속 말을 그에게 하고 네가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리며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교회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이런 것이 없다면 영원히 형제자매들 간에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한 조목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니 이렇게 어렵구나,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다 남에게 말해야 합니까? 긍정적인 것만 교통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어두운 방면이나 패괴된 방면은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네가 말하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이 어떤 놈인지를 모르며 다른 사람도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네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를 신뢰하게 하려면 먼저 네가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먼저 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너의 마음을 보게 하고 너의 생각을 알게 하고 너의 진실한 면을 보게 해야 한다. 가장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라. 그래야 다른 사람이 너를 신뢰하게 되고 너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다. 이것이 전제이다. 네가 늘 가장하고, 늘 자신이 거룩한 척하고, 늘 자신이 고상한 척하고, 늘 자신이 위대한 척하고, 늘 자신의 인격이 높은 척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패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너의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상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네가 아주 정직하고 아주 위대하고 아주 자신을 희생하고 아주 공정하고 이기적이 아니라고 여기게 하는데, 자신을 가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네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나 하려고 한 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면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이는 성실한 것인가 아닌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하나님도 너를 보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도 다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나의 앞에서도 틀림없이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단지 다른 사람 모르게 하나님께만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하고 고상한 척하고 또는 대공무사한 척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겠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는 진짜 궤사한 사람이고 진짜 위선자이고 소인이지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사람 앞에서 한 것이든 다 마음을 털어놓고 드러내야 한다. 이것을 쉽게 해낼 수 있는가? 여기에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싸움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전혀 너 자신의 비밀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도 해부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사적인 일을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고, 남에게 털어놓고 교통하고 해부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네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네가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의 패괴 성정이 영원히 변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뜻이다. 네가 변할 수도 없는데 무슨 구원받는다고 말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이 단락 말씀의 뜻이다. 무엇 때문에 자꾸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직접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매 한 편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현시에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듬을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효과에 달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입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현시 역사의 동태와 성령 역사의 경향을 더듬을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마시고 나서도 실행할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가 여전히 먹고 마실 줄 모르고 먹고 마시는 방법과 원칙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몸과 마음을 하나님 말씀 안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기를 중요시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면에서 도리를 깨닫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을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데에 달한 것이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과 사람의 진정한 부족함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달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에서 이렇게 많은 정확한 실행이 있게 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데의 가장 좋은 협력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이 밖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그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달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한 점이 있다.』 ≪베드로의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말씀하는 것에 의하여 너에게 공급하는데,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꼭 네 몸에서 역사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성령이 어떻게 한다. 너희들이 내가 말한 것에 따라 행하면, 성령은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나는 새 빛을 내보내어 너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너희들을 모두 현시의 빛 속으로 이끌어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에 들어가면 성령이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여 “저는 절대로 당신의 것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현재에 길이 없을 것이고 메마를 것이고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말하니, 성정 변화를 경력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은 가장 관건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쓰는 일부 사람들 몸에서 역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의 몸에서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경력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얼른 뒤따르라. 현시의 빛을 뒤따를수록 생명이 더욱 자라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성령이 한 것이기만 하면 너는 뒤따르라. 너의 경력 중에서 그의 경력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된다.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자라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의해 너를 온전케 할 것인지를 모르며,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너로 하여금 얻게 하고 보임이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매우 희망이 있음을 설명한다. 네가 만약 이 길에 들어설 수 없다면, 너의 전망이 어둡고 암담하여 빛이 없음을 설명한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면, 모든 일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경력하면 너의 생명으로 될 것이다. 너는 이 경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말을 흉내내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은 경력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빛비춤과 깨우침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적으로 직접 경력한 것과 인식한 것을 말하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 너는 이렇게 경력하여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에 순복하며, 너의 생명이 자라나도록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무엇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는가?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으로 드러내면 시인하고 순복하며, 다른 말 없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얼마나 마음을 찌르게 말씀하든,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하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시인해야 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