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참 진리를 찾고 구함에 있어 갖춰야 할 이성

2018년 12월 02일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과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사역은 가장 측량하기 어렵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헛수고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간파’했다는 사람들은 다 무능한 자, 교만하고 무지한 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이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렇다, 저렇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니냐?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은 다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기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타락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싶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길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무슨 좋은 결실이 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너는 이 말을 못 받아들일 수도,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너의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지 말 것을 권한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진정으로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언쟁을 벌인다고 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하고 구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오늘날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라고 한 이 말은 하나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너는 이 말에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싫어할 수도 있고, 이 말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는 사람 모두가 이 사실을 마주하고, 신중하게 알아보기를 바란다. 가장 좋은 것은 경솔하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 믿는 길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가며,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는 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허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 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른 이를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보았을 때, 그 말씀이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보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주 작은 마음으로 인해 너는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마디마디 말씀이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혹자는 몇 마디 보지도 않고 “이것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라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정죄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적다. 나는 너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너희는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고, 미혹될까 봐 두려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여러 번 살펴본 후에도 이런 말씀이 진리도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발현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결국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도, 덤벙대지도 말라. 하나님 믿는 일을 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기지도 말라. 자신의 종착지와 앞날,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야지, 스스로를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런 말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라 생각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의 나타남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고, 사람의 바람에 따라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자신의 목표와 방식으로 사역을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사람들이 응당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자 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의 범위 안으로 한정하거나 너의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에서 발췌

찾고 구하고 두드리라,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수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이 아니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가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았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이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형제자매들이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현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지 정신 차리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이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책무다. 우리는 뜬구름 잡는 허황된 말에 빠지지 말고 영의 눈을 밝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을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일면을 봐야 한다. 늘 모든 것을 잊고 온종일 붕 떠서 하늘의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예수가 갑자기 너희 가운데로 내려와 이제껏 그를 알지도 못하고 만나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준행할 줄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가 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그래도 좀 더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거라!

네가 이 책을 펼칠 때 연구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수도 있다. 네가 어떤 태도를 가졌든 이 책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다 읽길 바란다. 이 말씀들을 다 읽고 나면 네 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이것은 네 마음가짐과 깨닫는 정도에 달렸다. 하지만 이 점은 알아야 한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말이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의 말은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말씀들을 읽고 난 다음 이것을 사람이 얻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할 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무 무지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얻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간단한 실천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졌고,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가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성령의 깨우침으로 보고 사도와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이 직접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사람의 잘못이다. 어찌 되었든 너는 높은 것을 낮다고, 깊은 것을 얕다고 말하며 옳고 그른 것을 뒤바꿔서는 안 된다. 진리임을 분명히 알면서 일부러 반박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각 사람은 모두 정확한 입장에서 문제를 살펴봐야 하고,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나타남이 특정 형식이나 국가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자신이 계획해 놓은 사역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는 유대에서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함이었던 것과 같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주 예수의 형상으로 성육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들의 ‘불가능’은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근거가 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 역시 이 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곧 나타날 것이라고 제멋대로 떠들어 대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나타남을 정죄했다. 그들의 ‘불가능’은 또다시 하나님의 나타남을 그들의 상상 속에 규정지어 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는 미친 듯이 웃어 대는 것을 보았다. 그 ‘웃음’이 바로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너희들은 진리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며,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는다. 그저 덮어놓고 연구하고 무심하게 기다리기만 한다. 그러한 연구와 기다림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설마 하나님이 친히 인도해 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조차 분별하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타나는 곳에 진리가 선포되고,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자격이 있다. 너의 관념을 내려놓아라! 마음을 평온히 하고 이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네가 그의 뜻을 깨닫고 그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깨우쳐 줄 것이다. 너희들의 ‘불가능’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라!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더욱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가 하늘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며,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사유 관념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일수록 찾아야 할 진리가 있는 법이고, 사람의 관념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일수록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디에 나타나든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며, 절대 하나님이 나타나는 지역이나 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의 성품은 바뀔 리 없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어디에 있든 그는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주 예수가 이스라엘인들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ㆍ유럽ㆍ미주 사람들의 하나님이듯, 우주 위아래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이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라!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그의 말씀과 나타남은 공존하며, 그의 성품과 발자취는 언제나 인류에게 공개되어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나는 너희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새 시대를 향해 걸음을 떼고, 하나님이 자신의 나타남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해 놓은 아름다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타남으로 새 시대가 열렸다>에서 발췌

왜 제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집에서 항상 사소한 일로 까닭없이 화를 냅니다. 남편과 아이한테서도 단점이 많이 보여 주님께 저의 마음을 고요히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남편과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한효   한효 자매님: 우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기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이야기 해놓고 주님께 기도드렸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기도를 좋아하실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와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말하고 싶으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질지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표 없이 말을 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진실한 기도는 주요하게 세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부분에 힘쓰고, 세 가지 부분을 따라 연습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분명 주님의 응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 없이 말하거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도는 주님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지 계속 우리의 생각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처해진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 33) 2.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드리기 전에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과정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현실적 뜻에 따라 기도드린다면 우리는 쉽게 주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인성있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구해야 합니다. 빈말을 하거나, 큰소리를 치거나, 하나님에게 함부로 약속의 말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채권자 취급하며 요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런 정직한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이 항상 우리의 상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기도드린 후 주님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현실의 어려움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리고 나서도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주님께 기도드리며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한효 자매님, 며칠 전 제가 겪었던 체험을 나눠드릴게요. 얼마 전, 저도 집에서 괜히 화가 났고, 항상 가족들의 단점에 눈이 갔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쁜데 남편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가사일을 도와주지도 않아 화가 났죠. 나중에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런 환경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진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남편의 단점만 보이고 항상 남편을 변화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14)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항상 남편의 단점만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바라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만 쳐다보며 항상 남편이 잘못했고, 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원망했지만, 사실 남편도 요즘 야근이 많아 피곤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질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제 남편이 나쁜게 아니라 제가 나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볼 줄 모르고 항상 남편만 탓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신기하게도 제가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 남편을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원망과 불만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정확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면 형상을 바꾸실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님의 형상은 당시 유대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거라고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유대인의 형상이라고 예언하지 않았기에, 만약 예수님의 형상이 바뀐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알아보고 제때 영접할 수 있을까요?

말세에 하나님이 하신 새 사역에 직면하여 어떻게 찾고 구해야 참 도(道)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난측(難測)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이해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지 않고 말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

하나님이 시련ㆍ연단 사역을 하시는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시련은 사람의 어떤 영적 상태를 겨냥한 것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는 사람의 패역 성품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불순물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체험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상태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인식과 순복이 있게 하고, 사랑과 간증도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려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 있어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 있어야만 사람의 사랑이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든 소극적인 방면에서든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상태도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는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찬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사람의 타락 성품을 다루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폭로하는데,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헤치고 다 폭로한다. 많은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와 훈계와 연단을 통해, 또 형벌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난측(難測)하게 하며, 너의 관념에 너무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의의 있음을 설명한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면 의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기묘함을 느낀다. 기묘할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이 난측하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나 위대함을 보게 된다. 만일 그가 건성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정복하고는 그만둘 뿐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지금 연단을 좀 받지만 그것은 너의 생명이 자라는 데 아주 유익하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받는 것은 너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연단을 좀 받지만 후에는 너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너는 나중에 “하나님의 행사는 참 너무나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인데, 그것은 네 마음속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의 연단(힘쓰는 자, 형벌시대)을 겪고는 후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말하였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가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아주 의의 있고, 아주 가치 있으며, 아주 소중히 여길 만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어도 네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내가 한 사역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에게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묘하구나,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정말 사랑스럽구나!”라는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한동안 체험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너에게 한 사역을 네가 이미 얻었음을 증명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작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아지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작아진다. 받는 연단이 클수록, 받는 고통이 클수록, 받는 시달림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생기는 참된 사랑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더 있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너는 체험하는 가운데서 연단과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들, 훈계와 징계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투철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훈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인식하는 것은 아주 얕다. 그는 “하나님은 참 좋아요. 그분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을 누리게 하시지요.”라고 말할 줄밖에 모른다. 훈계와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의의가 있으며, 너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할수록,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너를 얻을 수 있으며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역사는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의의도 없을 것이다. 말세에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함의는 바로 이 때문이다.하나님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여 얻는다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너희에게 한 사역이 클수록 너희의 사랑을 더 깊게 하고 더 순결하게 하며, 하나님이 한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그의 지혜를 더욱 깨달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가

기도는 항상 많이 하지만 응답 받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여러 해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매번 만족을 얻고 누림이 있었습니다.” 네가 그에게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기를, “가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형제자매들도 모두 입을 열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매우 원합니다. 그다음 노래하고 찬미하는데 노래하면 모두 감동되어 온 얼굴에 눈물범벅입니다! 어떤 때는 흥분되면 땀이 계속 나서 수건을 다 적십니다. 형제자매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교회 생활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습니다. 여럿이 교통하면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교회 생활을 해도 나중에는 어떠한가? 누구도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부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정형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실질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이 10여 년의 교회 생활을 이렇게 허송세월로 보냈고, 이렇게 춤을 추면서 사람의 감각 속에서 사람의 누림 속에서 보냈다. 사람의 그 누림과 그 쾌락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 몸에서의 변화를 보려 하고 사람 몸에 이미 하나님 말씀의 실제적 살아냄이 있는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려 하는 것이지 네가 집회할 때에 또는 매우 열성적일 때에 찬양책을 들고 노래하거나 하나님을 찬미하며 춤을 추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대단히 가슴 아파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하였지만 참으로 어떠한 사람 몸에서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하여 하나님이 매우 슬퍼하고 조급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걱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 생활이 좀 있으면 자만자족하며, 기쁨과 평안과 희락이 좀 있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마음이 즐겁고 위로되거나 정신적 풍부함이 있으면 이미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여긴다. 이런 가상(假相)을 줄곧 보존하고 이런 가상을 줄곧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최고로 얻어야 할 것과 자신이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것으로 성정 변화와 구원받는 길에 진입한 것을 대체하므로 사람은 추구하지도 않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경력을 함께 나누고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바로 네 개인의 마음속에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의 패괴 성정을 다 말해낸 다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교통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보임이 있다든가 네가 시가의 어느 절에서 어느 정도 보임이 있어 아무렇게나 교통하고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실제 생활과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다들 도리적 인식만 말하고 이론적 인식만 말하는데, 실제 경력의 인식은 조금도 없다. 누구나 다 빙빙 돌려 말하며, 개인의 생활을 피하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생활의 그 범위를 피하고 개인의 내적 세계를 피하는데, 이러면 사람 간에 어찌 진정한 소통과 진실한 신뢰가 있겠는가? 없다!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여태껏 마음속 말을 한 적이 없다면 그들 둘이 절친한 부부인가? 서로를 잘 알겠는가? 모른다. 가령 남편이 밤낮 아내에게 “자기야 사랑해!” 아내도 밤낮 남편에게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야.” 단지 이렇게 말할 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에 대해 어떤 요구가 있는지, 또는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남편에게 아예 말하지도 않고 흉금을 털어놓는 말이 없다면, 그들 둘이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가? 둘이 함께 있으면 전부 원칙적인 말만 하는데 이는 참된 부부인가? 틀림없이 아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허물없이 지내고 서로 도와주고 공급해주어야 한다. 반드시 사람마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해야 한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지 않고 원칙적인 말만 하고 글귀 도리와 글자 표면의 뜻만 말한다면 너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언어 소통이 없고 심령상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간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었는가?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말이나 다 너에게 말하고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든지, 어떤 기쁜 일이 있든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가 너에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은 너도 마음속 말을 그에게 하고 네가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리며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교회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이런 것이 없다면 영원히 형제자매들 간에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한 조목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니 이렇게 어렵구나,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다 남에게 말해야 합니까? 긍정적인 것만 교통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어두운 방면이나 패괴된 방면은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네가 말하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이 어떤 놈인지를 모르며 다른 사람도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네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를 신뢰하게 하려면 먼저 네가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먼저 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너의 마음을 보게 하고 너의 생각을 알게 하고 너의 진실한 면을 보게 해야 한다. 가장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라. 그래야 다른 사람이 너를 신뢰하게 되고 너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다. 이것이 전제이다. 네가 늘 가장하고, 늘 자신이 거룩한 척하고, 늘 자신이 고상한 척하고, 늘 자신이 위대한 척하고, 늘 자신의 인격이 높은 척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패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너의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상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네가 아주 정직하고 아주 위대하고 아주 자신을 희생하고 아주 공정하고 이기적이 아니라고 여기게 하는데, 자신을 가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네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나 하려고 한 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면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이는 성실한 것인가 아닌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하나님도 너를 보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도 다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나의 앞에서도 틀림없이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단지 다른 사람 모르게 하나님께만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하고 고상한 척하고 또는 대공무사한 척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겠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는 진짜 궤사한 사람이고 진짜 위선자이고 소인이지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사람 앞에서 한 것이든 다 마음을 털어놓고 드러내야 한다. 이것을 쉽게 해낼 수 있는가? 여기에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싸움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전혀 너 자신의 비밀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도 해부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사적인 일을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고, 남에게 털어놓고 교통하고 해부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네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네가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의 패괴 성정이 영원히 변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뜻이다. 네가 변할 수도 없는데 무슨 구원받는다고 말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이 단락 말씀의 뜻이다. 무엇 때문에 자꾸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직접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매 한 편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현시에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듬을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효과에 달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입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현시 역사의 동태와 성령 역사의 경향을 더듬을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마시고 나서도 실행할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가 여전히 먹고 마실 줄 모르고 먹고 마시는 방법과 원칙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몸과 마음을 하나님 말씀 안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기를 중요시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면에서 도리를 깨닫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을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데에 달한 것이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과 사람의 진정한 부족함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달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에서 이렇게 많은 정확한 실행이 있게 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데의 가장 좋은 협력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이 밖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그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달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한 점이 있다.』 ≪베드로의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말씀하는 것에 의하여 너에게 공급하는데,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꼭 네 몸에서 역사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성령이 어떻게 한다. 너희들이 내가 말한 것에 따라 행하면, 성령은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나는 새 빛을 내보내어 너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너희들을 모두 현시의 빛 속으로 이끌어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에 들어가면 성령이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여 “저는 절대로 당신의 것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현재에 길이 없을 것이고 메마를 것이고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말하니, 성정 변화를 경력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은 가장 관건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쓰는 일부 사람들 몸에서 역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의 몸에서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경력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얼른 뒤따르라. 현시의 빛을 뒤따를수록 생명이 더욱 자라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성령이 한 것이기만 하면 너는 뒤따르라. 너의 경력 중에서 그의 경력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된다.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자라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의해 너를 온전케 할 것인지를 모르며,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너로 하여금 얻게 하고 보임이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매우 희망이 있음을 설명한다. 네가 만약 이 길에 들어설 수 없다면, 너의 전망이 어둡고 암담하여 빛이 없음을 설명한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면, 모든 일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경력하면 너의 생명으로 될 것이다. 너는 이 경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말을 흉내내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은 경력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빛비춤과 깨우침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적으로 직접 경력한 것과 인식한 것을 말하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 너는 이렇게 경력하여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에 순복하며, 너의 생명이 자라나도록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무엇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는가?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으로 드러내면 시인하고 순복하며, 다른 말 없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얼마나 마음을 찌르게 말씀하든,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하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시인해야 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어떻게 만교를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하십니까?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