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

2019년 02월 10일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태복음 13:24~26, 30) 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볼 때마다, 예수님께서 말세에 키질하고 거두어 들이는 사역을 하시는데 진심으로 믿는 사람과 거짓으로 믿는 사람을 나누시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천국으로 이끌어 들어가고 거짓으로 믿는 사람들은 도태되어 훼멸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저는 도리상으로는 알지만, 누가 알곡이고 가라지인지를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실생활에서 하나님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드러내시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이 그들을 분별해 낼 수 있습니까? 이 문제는 저를 줄곧 괴롭혔고 해답을 찾기 위해 늘 기도하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하루는 영적 생활을 하면서 그 말씀을 다시 되새겨 보고 실제적으로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땅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율법을 벗어나 은혜시대의 새로운 사역을 가져 오셨고 회개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규례를 깨트리셨고 안식일에 사람들이 우물에 빠진 송아지를 건져내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손이 마른 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예수님의 약점을 잡고 주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훼방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행사를 본 사람들은 주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종했으며, 그들은 주님 앞으로 돌아와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복음 3:36) 이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은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자, 즉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사역하심을 믿고 예수님이 곧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어,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저주받지 않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며, 어떤 시련과 고통이 임해도 주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알곡처럼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주님의 축복을 받고 주님의 은총을 입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대적했던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 및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이 곧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 예수님의 이름은 물론 말씀과 사역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구약 율법을 지키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는데, 결국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의해 드러나 도태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생명이 없는 가라지처럼 바람에 키질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진심으로 믿는 것이 아니고 떡으로 배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이 주님을 믿는 것은 그저 종교 의식이나 규례만을 중시하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들이 평소에 성경을 보는 이유는 그저 글귀만 깨닫는 것에 만족했었지, 말씀 속에서 주님의 뜻이 무엇이고, 또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진지하게 찾거나 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으며 건성으로 기도하고 마음속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정상적인 영적 생활도 하지 않으며, 또 세상의 풍조를 따라 죄악 속에 빠져 이방인들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거짓 신도이고 불신파로 주님께서 증오하시고 미워하십니다. 이렇게 대조하니 제 마음은 훨씬 밝아졌습니다. 알고 보니 원래 참된 믿음과 거짓 믿음 그리고 알곡과 가라지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새 시대에 그리스도의 새로운 사역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기간에, 그분의 사역과 말씀을 귀히 여기는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지, 일이 임하면 진리를 찾고 실행하는 것을 중시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지 등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의 여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참 신도인지 아니면 거짓 신도인지는 여기에서 분별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미 말세의 마지막 시기로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크리스천 중에 누가 알곡이고 가라지인지, 또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는 마찬가지로 주님의 재림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드러내십니까? 저는 구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또 예수님께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2),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한복음 5: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시는데 인자의 모습으로 심판을 진행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로지 성육신하신 하나님만이 인자로 칭함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역시 성육신으로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말세의 사람들이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정결케 되고 구원받을 기회와 생명을 얻게 됩니다. 마치 알찬 곡식처럼 곳간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말세 그리스도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거나 혹은 받아들인 후에도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사역에서 드러난 가라지로 반드시 바람에 키질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에 의해 드러나 도태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알곡을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우시는데, 다시 말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철저히 정결케 되어 구원받아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고, 그런 후에 대재난으로 모든 불신파와 많은 악을 행하고도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은 징벌하고 훼멸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은 철저히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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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신 일은 하나님이 땅에 머물 발원지를 인류 가운데에 세운 것이고, 또한 그가 거할 성지를 세운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그가 역사할 범위로 정하였다. 처음에 그는 이스라엘을 벗어나 사역하지 않았고, 사역 범위를 축소하기 위해 적합한 사람을 택하였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든 땅이다. 여호와는 그 땅의 흙을 취하여 사람을 만들었고, 그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노아의 후손이고 아담의 후손이기도 하며,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하는 데의 기반이기도 하다.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의의와 목적과 절차는 온 땅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기 위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이방 사역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전 우주에서 사역하는 원칙이다. 즉, 점을 면으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런 뒤에 전 우주 아래가 다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확장하는 것이다. 처음의 이스라엘 사람은 노아의 후손이었다. 그 사람들은 여호와의 생기만 있었고 의식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지 몰랐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사람이 조물주를 어떻게 경외해야 하는지는 더욱 몰랐다. 규례가 있는지, 율례가 있는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해야 할 일이 있는지 없는지, 아담의 후손은 그런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남편으로서 힘을 내고 땀 흘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여호와가 만든 인류를 위해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의 생기와 생명만 있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법도를 준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물주를 만족시켜야 하는지를 몰랐는데,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적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속에 비록 교활함과 간사함이 없고 질투와 분쟁도 매우 적었지만, 그들은 여호와, 즉 조물주에 대해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다. 바로 그런, 여호와의 것을 먹고 누릴 줄만 아는 사람의 조상은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몰랐고, 여호와가 그들이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임도 몰랐다. 그런데 어찌 피조물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는 조물주이다”, “그가 인류를 만든 것은 그를 창현(彰顯)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를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이 말씀은 수포가 되지 않겠는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증거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의 창현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했던, “나는 나의 형상대로 인류를 만들었다”는 이 말씀이 사탄, 그 악한 자에게 잡힐 꼬투리가 되지 않겠는가? 이 말씀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이 수치가 되는 기호가 되지 않겠는가?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만든 후 아담부터 노아까지는 지시하거나 인도하지 않았고,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부터 정식으로 이스라엘 사람, 바로 노아의 후손, 즉 아담의 후손을 인도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고 말씀하여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이스라엘 온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더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가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에게 그의 생명이 있게 할 수 있고, 또 사람을 흙에서 소생시켜 피조된 인류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또 인류를 불사르고 저주하고 형벌의 채찍으로 인류를 관리할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도하면서 밤과 낮의 시간에 따라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다는 것도 보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피조물에게 사람이 본래 여호와가 땅에서 취한 흙에서 왔고, 또한 여호와가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먼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더욱더 이스라엘 외의 각 나라, 각 족속들(사실 이스라엘 외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그 조상은 여전히 아담과 하와인 이방의 나라와 족속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여호와의 복음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전 우주 아래의 피조물이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고 크게 높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령 여호와가 처음에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지 않고 인류를 만든 후 땅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게만 하였다면, 사람 육체의 본성으로 볼 때(본성이란 바로 사람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들을 영원히 모르는 것, 즉 여호와가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여호와가 인류를 왜 만들었는지는 더욱 모르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것임을 영원히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만물의 주라는 것도 영원히 알지 못한다. 만일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 땅에 두고 누릴 물질이 있게 한 다음 관계하지 않고 떠나 사람들 가운데서 한동안 인도해 주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없어지게 될 것인데, 심지어 창조된 천지 만물과 창조된 전 인류까지도 없어지게 될 것이고, 또한 사탄에게 짓밟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바라던 ‘땅, 곧 그가 만든 것 가운데에 있을 그가 발 붙일 곳, 즉 성지’에 대한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인류를 만든 후에 인류 가운데서 사람을 인도하여 살아가게 하고 인류 가운데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은 모두 그의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그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은 단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 세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우선 먼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은 만물을 창조한 것과 결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모두 그의 경영과 그의 사역과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또한 그가 인류를 창조한 것에 더 깊은 의의가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노아 이후, 땅의 인류를 인도하여 2천 년 동안 살아가게 하면서 사람에게 어떻게 만물의 주이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였고, 또한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어떻게 여호와를 위해 증거하고 그에게 순복하고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윗과 그의 제사장들처럼 악기를 울리며 여호와를 찬미하는 정도까지 이르게 하였다. 여호와가 2천 년의 사역을 하기 전에는 사람이 아무것도 몰랐고 거의 다 타락되었다. 더 나아가 홍수로 세상을 멸하기 전에는 음란하고 패괴되었으며, 마음속에는 여호와가 아예 없었고 여호와의 말씀까지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여호와가 무슨 사역을 하려고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이지(理智)가 없었고 견식은 더욱 없었으며, 단지 숨만 쉬고 있는 기계와 같아 하나님, 사람, 만물, 생명 등등 이런 것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몰랐다. 그들은 땅에서 독사가 유혹하는 일을 많이 하였고 여호와를 범하는 말을 많이 하였지만, 그들이 알지 못했기에 여호와는 그들을 형벌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호와는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 즉 노아가 601세 되었을 때부터 정식으로 노아에게 나타나 노아와 그의 식구들을 인도하였을 뿐이다. 바로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노아와 그의 후손들을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인도하였는데, 그 기간은 모두 2천 5백 년이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역사한 것, 즉 그가 정식으로 역사한 것은 모두 2천 년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외에서 동시에 역사한 것은 모두 5백 년인데, 합하면 2천 5백 년이 된다. 그 기간에 여호와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를 섬김에 있어서 성전을 건축해야 하고, 제사장 옷을 입어야 하며, 새벽부터 맨발로 성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의 신발이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히면 불이 성전 위로부터 그들에게 내려 그들을 태워 버리기에 그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본분을 함으로 여호와의 안배에 순복하였고, 성전 안에서 여호와께 기도해 여호와의 계시를 받았는데, 즉 여호와가 말씀한 후 백성들을 인도하여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여호와는 또 그들에게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아야 한다고 알려 주었고, 여호와의 때, 즉 여호와의 유월절에 초태생의 송아지와 어린양을 미리 준비하였다가 제단에 바쳐 여호와를 섬기라고 알려 주었는데, 이는 그들을 단속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그 율법을 지키게 하여 여호와께 충성하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는 또 그들을 위하여 안식일을 정하였는데, 바로 그가 만물을 창조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한 것이다. 안식일 다음 날을 첫날로 정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여호와를 찬미하고, 여호와께 제물을 바치고, 여호와를 위해 비파를 울리고 수금을 타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면, 여호와는 제사장들을 모두 소집하여 제단 위의 제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먹게 하였는데, 이로써 그들이 여호와의 제단 위의 제물을 누리도록 하였다. 또한 여호와는 그들을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고, 그와 더불어 분깃이 있는 사람들이라 하였으며, 그의 선민이라고 하였다(이것도 여호와가 이스라엘 사람과 세운 언약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여호와는 그들만의 하나님이지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계명을 정하여 모세에게 그를 따라 애굽 땅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포하라고 하였다. 그 계명은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것이고 이스라엘 사람을 단속하기 위한 것이지, 애굽 사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여호와는 계명으로 그들에게 요구하였는데, 안식일을 지키는지, 부모를 공경하는지, 우상을 숭배하는지 등등 이런 것을 기준으로 삼아 죄로 정하거나 의롭다고 칭하였다.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불이 임하였고, 어떤 사람은 돌에 맞아 죽었고,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는데,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계명을 지키는지에 근거한 것이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고, 제사장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불이 그에게 임하였다.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것은 모두 여호와가 인정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가 계명과 율법을 정한 것은 그가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기간에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에 순복하고, 그를 거역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고, 갓 태어난 그 인류를 율법으로 제어한 것은 이후의 사역에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첫 시대를 율법시대라고 칭하였다. 비록 여호와가 많은 말씀과 많은 사역을 하였지만 그는 다만 긍정적으로 사람을 인도하였는데, 그 무지한 사람들을 인도하여 사람됨을 알게 하였고, 생활할 줄 알게 하였으며, 여호와의 도를 깨닫게 하였다. 그가 한 사역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의 도를 지킬 수 있게 한 것이고, 그의 율법을 준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매우 얕게 패괴된 사람에게 역사한 것이므로 성정 변화라고는 말할 수도 없고, 생명이 자라난다는 것도 말할 수 없다. 다만 율법을 지키게 하여 사람을 단속하고 제어하였을 뿐이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여호와가 오직 성전의 하나님이자 하늘의 하나님이었고, 구름기둥이자 불기둥이었다. 여호와가 그들에게 하라고 한 것은 다만 오늘날의 사람이 알고 있는 율법과 계명인데, 심지어 그것은 규례라고도 할 수 있다. 여호와가 한 것은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더 많은 것들을 베풀어 주고 친히 알려 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피조된 사람에게 갖춰져 있어야 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데에 있어야 할 것들을 그들에게 베풀어 주어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인류로 인류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를 넘어서게 하였다. 왜냐하면 여호와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것은 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베풀어 준 것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은 다만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어서 사람에게 조물주를 인정하게 하였을 뿐, 정복하지도 변화시키지도 않았고 인도만 하였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의 전부이고, 이스라엘 온 땅에서 하신 사역의 배경과 내막과 실질이며, 또한 6천년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다. 즉, 사람을 모두 여호와의 수중에 장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6천년 경영 계획의 더 많은 사역이 있게 되었다.』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발췌 『최초에 구약 율법시대에서 사람을 인도한 것은 마치 어린아이의 생활을 인도하는 것과 같았다. 최초의 인류는 여호와로부터 처음 난 인류이며, 역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지 이런 것마저도 알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고 바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였지만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여호와의 법도를 준행하는가를 알 수 있는 기관은 그들에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만일 여호와의 직접적인 인도가 없었다면 아무도 직접 알 수 없다. 그것은 사람에게 처음부터 이 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그를 경외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행해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인지, 여호와께 무엇을 바쳐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 하는지, 이런 것에 대해 사람은 전혀 몰랐다. 사람은 여호와가 창조한 만물 중의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릴 줄만 알고 있었을 뿐 사람이 도대체 땅에서 어떠한 생활이 있어야만 피조물이라고 칭함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도 사람은 전혀 몰랐다. 바로 이러한 인류를 인도하는 사람이 없고 그들을 친히 이끄는 사람이 없다면 인류의 정규적인 생활은 영원히 없게 되고 다만 사탄에게 몰래 노략될 수밖에 없다.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는데, 바로 인류의 조상인 하와ㆍ아담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더 많은 총명과 지혜를 베풀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땅에서 생활하였지만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는 인류를 창조하는 사역을 겨우 절반만 완성하였지 전부는 완성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빚어놓았고 또한 그의 생기도 있게 하였지만 사람에게 그를 경외하는 충분한 심지(心志)는 베풀어 주지 않았다. 처음에 사람에게는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그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었으며, 사람은 그의 말씀을 들을 줄만 알았지 사람이 땅에서 생활하는 상식과 사람이 생활하는 정상적인 법칙은 몰랐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호와가 비록 남자를 창조하고 여자를 창조하여 7일의 공사를 완성하였지만 그가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오직 외형만 있고 오히려 사람됨의 실제가 없으며, 사람은 여호와가 인류를 창조하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떻게 그의 말씀을 준수하고 그의 법도를 지켜야 하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있은 후에도 여호와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인류를 철저히 그의 앞으로 인도하여 모두 땅에서 군거할 줄 알게 하고 모두 그를 경외할 줄 알게 해야 하였으며, 인류로 하여금 땅에서 즉 그가 인도한 후에 정상적인 인류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하였다. 이리하여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하는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는데, 바로 여호와의 창세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인류를 창조한 이상, 인류를 인도하여 땅에서 몇천 년 동안 생활하게 하면서 모두 그의 율례와 법도를 준수할 줄 알게 해야 하였고 인류에게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모든 활동이 있게 해야 하였다. 이때에 여호와의 사역이 비로소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인류를 창조한 후 곧 이 사역에 착수하기 시작하여 야곱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야곱의 열두 아들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모든 사람은 그가 땅에서 정식으로 인도하는 인류로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가 땅에서 역사하는 특정된 지점으로 되었다. 이 사람들을 땅에서 정식으로 역사하는 그의 첫 패의 사람들로 하고 이스라엘 온 땅을 그의 사역의 발원지로 하는 것으로써, 그의 더 큰 사역을 전개하여 무릇 땅에서 그에게로부터 난 사람이 다 어떻게 그를 경외하고 어떻게 땅에서 생활하는가를 알 수 있는 데에 이르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의 모델로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말씀한 것이 이방 각 족속 사람들이 들어야 할 것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율법과 계명을 맨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역시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경외하는지를 맨 먼저 안 사람들이며,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 도를 안 인류의 조상이고 여호와가 선택한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너희는 율법시대의 이런 규례나 원칙을 모두 보았겠지? 이런 규례는 범위가 넓을까? 먼저 십계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그다음은 어떻게 제단을 쌓느냐 하는 등등의 규례이다. 이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3개 절기를 지키는 법들이고, 그다음은 제사를 드리는 규례이다. 너희들이 보아라, 제사를 드리는 데에 모두 몇 가지가 있느냐?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등등이 있고 그다음은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 규례인데, 제사장이 번제를 드리고, 제사장이 소제를 드리는 등등 여러 가지 제사를 드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여덟 번째는 제사장이 제물을 먹는 규례이고, 그다음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규례이다. 여기에, 사람의 생활과 관련되는 여러 방면에 모두 규정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관한 규례, 부녀의 산후 정결케 하는 규례, 문둥병 환자가 치유받는 규례이다. 이런 규례 중 질병에 관한 일까지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심지어 또 소나 양을 잡는 규례 등등도 있다. 소나 양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니 하나님이 어떻게 잡으라고 하면 그대로 잡아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일리가 있기에, 하나님의 규정에 따라 행하면 틀림없이 옳은 것이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그리고 일부 지켜야 할 절기와 규례도 있다. 예를 들면, 안식일과 유월절 등등도 하나님은 다 알려 주었다. 우리 마지막 한 가지 기타 규례를 보자. 등불 관리, 희년, 토지 무르기, 서원, 십일조 등등 이런 규례의 각 방면은 관련된 범위가 넓지 않은가? 우선은 사람이 제사를 드리는 문제에 관련되고, 그다음은 또 도둑질, 배상, 안식일 지키는 것……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관련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 계획을 시작하여 정식으로 사역을 하였을 때, 사람에게 많은 규례를 제정해 주어 지키게 하였다. 그런 규례들은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선 사람에게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만드는지, 하나님의 제단을 어떻게 쌓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다음 사람에게 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으며,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생활 속에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각 방면을 빈틈없이 규정하였는데, 그런 규례, 그런 규칙, 그런 원칙으로 사람의 행위를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율법 속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오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만든 만물 가운데서 질서 있게, 법칙 있게, 절제 있게 생활하도록 인도하였다. 하나님은 우선 그런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일정한 범위를 제정해 주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는 삶을 살게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6천년 경영 계획을 시작한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다. 그런 규례와 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아주 광범위하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율법시대에서 인류를 인도한 구체적인 항목이다. 그것은 이전의 율법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의 기록이자,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이끌고 전 인류를 인도한 실제 증거이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가장 최초의 인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하나님은 가장 간단명료하고 가장 기본적인 인류 생존의 원칙과 생활에 있어야 할 그런 규례에서부터 사람을 가르치고, 그런 것을 조금씩 사람 마음속에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의 규정들을 통해, 그런 규례들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점차 알게 하였고,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 점차적인 깨달음이나 이해가 있게 하였으며,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있게 하였다. 그런 효과에 도달한 후에야, 하나님은 조금씩 그 후에 해야 할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그런 규례와 하나님이 했던 사역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의 기초 중의 기초이고, 하나님 경영 계획의 시작 사역이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2>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이 이름으로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하였고, 땅에서 1단계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단계에 한 사역은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고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역사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것은 땅에서 그의 사역의 근거지를 전개한 것이다. 그 근거지로 이스라엘 이외의 사역을 확장하였는데, 바로 이스라엘에서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후의 사람은 모두 점차적으로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여호와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고,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사역을 밖으로 확장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땅은 여호와가 땅에서 역사한 첫 번째의 성지이다. 하나님이 맨 먼저 땅에서 역사한 것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한 것인데, 이것은 율법시대에 한 사역이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당신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이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그렇게 행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자신을 반성해 보시고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영원불변하신 분이라면 예수님이 어떻게 또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겠습니까?

『하나님이 땅에 한번 오면 이름을 한번 바꿔야 하고, 한번 오면 성별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형상을 한번 바꾸고, 한번 오면 한 단계 사역을 바꾸는데, 그는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다.』

만약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모두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니, 사람이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그분은 꼭 사람을 차별 대우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그가 매우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끝까지 따르는데, 그분이 그래 사람을 따돌릴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또한 공의로운 성품으로써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정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십니까?

『망망한 우주 궁창에 많은 생령이 번식하고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생명의 규율을 따르고 있고 하나의 불변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가져가고 살아있는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누가 이 세계를 주관하고 있는지? 또 누가 이 인류를 창조하였는지? 설마 정말로 대자연의 조화는 아니겠지? 인류가 정말로 자기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는지? ……’』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빠른 영적 성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진입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게 되고, 영적 생명도 자라날 수 있는데, 성도들이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4가지 실행 방법, 함께 알아 보실까요?

저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지금은 아직 젊고 할 일도 많습니다. 이후에 한가할 때 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사람의 생활 속에 다정함이 조금도 없고, 사람의 생활 속에 사람의 분위기가 조금도 풍기지 않고 광명이 조금도 없지만 사람은 줄곧 자기를 양보하며 자기의 일생을 평범하게, 가치 없게 내버려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의 날이 다가오는데, 사람은 이렇게 원한을 품은 채 죽어간다.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하지도 못하고 무엇을 얻지도 못하고 이렇게 급히 왔다가 급히 떠나간다. 나의 안중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무엇을 가지고 온 적이 없고 누구도 무엇을 가지고 간 적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인간 세상의 불공평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도 총총히 떠나기를 원하지 않고 단지 그가 헤매고 있을 때 다시 영생의 도를 보도록, 하늘에 있는 나의 약속이 갑자기 인간 세상에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제20편 말씀≫에서 발췌 『사람은 언제나 세상으로 달아나고, 소망ㆍ전망ㆍ사치한 요구가 너무 많으며, 언제나 육체를 위해 고려하고 육체를 위해 타산하며, 하나님을 믿는 도를 찾고 구할 마음이 전혀 없다. 사람은 또한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사탄에게 빼앗겨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일심으로 사탄을 위하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은 간증을 잃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광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광명 속에서 살면서 광명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네가 칠흑 같은 밤중에서 살 때면 광명의 귀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네가 후회할 것이다. 현재에는 네가 어떻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네가 후회할 그날이 있다. 그때에 가서 흑암이 닥치고 더는 광명이 없게 되면, 네가 후회해도 늦은 것이다. 현재에 네가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것은 네가 아직도 현재의 사역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우주의 사역이 전개되기만 하면, 즉 오늘 내가 한 이 말이 다 성취되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통곡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흑암 속에 떨어진 것이 아닌가?』 ≪정복 사역의 실정(1)≫에서 발췌 『네가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기회를 찾지 않고 앞다투어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가서 후회할 것이다. 현재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고 절호의 시기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힘껏 추구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 네가 기회를 놓친다면 늦을 것이다. 너의 심지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이 하지 않으면 네가 지쳐 죽어도 온전케 될 수 없다. 이 기회를 타서 성령이 크게 역사하는 것에 의하여 네가 협력하여라. 만일 네가 이 기회를 놓친다면, 이후에 네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한번 또 한번 인류를 일깨우고 권면하는 것은 바로 그의 손에 지금까지 없었던 재난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 재난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며, 사람의 육체만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겨냥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물거품으로 될 때, 하나님의 일깨움과 권면이 보답을 받지 못하였을 때, 그가 어떤 노기를 발할 것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한 피조물도 여태껏 체험한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재난이 전례 없는 것이고 이후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이번만 인류를 만드는 것이고, 또 이번만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첫 번이자 마지막 한번이다.』 ≪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에서 발췌 『깨어나라, 형제들! 깨어나라, 자매들! 나의 날은 지연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곧 생명이니, 시간을 잡는 것이 곧 생명을 급히 구하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길지 않을 것이다! 대학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면 한번 또는 두 번 보충 학습을 해도 되지만, 나의 날은 더 이상 지연되지 않는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이는 나의 충고이다. 세상의 결국이 이미 너희 눈앞에 펼쳐지고, 대재난이 곧 다가오는데, 너희의 생명이 중요한가 아니면 너희가 자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중요한가? 모두 숙고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 진담으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제30편 말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