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2019년 01월 30일

질문:

성경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고, 아울러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여겨 주님께서 오시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이런 깨달음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답:

지금 대부분의 신도들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를 막론하고 주님의 이름을 지키고 어떤 환난이 닥쳐와도 끝까지 인내하기만 하면 반드시 구원받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은 도대체 성립됩니까? 진리에 부합되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교제해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이 성경 구절은 사도 바울이 한 말임을 우리는 알고 있고, 주님의 말씀과 전혀 부합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말씀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천국 문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정확하며, 사람의 말은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언급되었는데 “구원받는다”는 것은 단지 죄 사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죽지 않는다는 말이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함으로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고 변화되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며, 더욱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본성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닥치고 인재를 당하며 질병을 얻어 고통스럽고 핍박이나 환난이 닥치는 등,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지만, 또 세상의 조류를 좇으며 죄악의 쾌락을 누리고 늘 죄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기에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 이처럼 우리가 죄성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말씀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표현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게다가 여기에서 실제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까? 우리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을 때는 그들이 죄를 범하기 전이므로 사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구원”이라는 표현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에 사망이 곧바로 인류에게 임했고, 이때부터 구원이라는 말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고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여 그들이 바로의 노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노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시고 사람을 이끌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을 때, 그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키면서 혹시라도 죄를 범하면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 사함을 받았는데, 이것이 곧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시대의 구원은 사람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가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것이며, 사람으로 죄를 알게 하는 효과에 도달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사람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사람은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번제를 드려도 다리 절고 눈멀고 흠이 있는 소와 양을 제물로 바쳤는데, 율법에 따라 정죄되면 그런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들이 율법 아래에서 죽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당시의 배경에 따라 첫 번째로 성육신하셔서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친히 사람의 속죄제가 된 것입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회개하고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고,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지 않게 되었는데,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대와 단계를 나누는 것으로,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 바짝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살면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32)라는 성경 글귀만 지켰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 예수님의 새로운 사역에 대해서는 알아보지도 않았고 오히려 거절하고 대적하여 결국 하나님께 징벌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았다”고 여겼는데, 정말로 구원받은 것입니까? 바리새인들의 결말을 심사숙고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사실 성경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라고 말한 구원은 은혜시대 죄사함 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도달한 효과는 단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와서 기도할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누리지만, 사람의 죄성은 결코 해결되지 않아 사람은 끊임없이 죄를 범할 수 있는데, 진정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각 교계 각파의 형제자매들 중에 죄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교만함과 탐욕, 악독함과 이기심, 간사함 등, 이런 사탄 성품은 우리 안의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이미 습관이 되어 예사로운 일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오랫동안 믿은 사람들이 몸소 체험한 한 가지 사실이 있는데, 바로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고 명리나 지위를 위해 늘 거짓말을 할 수 있으며, 교만하여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반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늘 하나님의 존귀와 위대함을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때로는 지위를 위해 스스로 추켜세우고 자신을 증거하며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사람으로 숭배하고 우러러보도록 합니다. 심지어 패거리를 짓고 자신의 파벌을 만들고 독립왕국을 세웁니다. 사람에게는 사탄 본성이 있어 죄사함을 만 번 받아도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여전히 사탄에 속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 주고, 아직 진정으로 구원받지 못해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반드시 하나님께 정죄 받아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과 공의입니다. 그분은 사람에게 죄성을 벗고 정결케 되고 변화되라고 요구하시는데,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이 성경 구절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죄가 없고 순결하며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타락되고 더러운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구속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를 믿으면 죄 사함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는 자는 구속받았고, 죄에 속하지 않고 벗어났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모두 조금씩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 함은 예수에게 온전히 얻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속하지 않고 죄 사함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지만, 죄의 뿌리는 아직도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마치 아무리 잘라내도 또 자라나는 부추처럼 우리가 죄짓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주관적으로는 그 누구도 죄를 범해 주님께 미움을 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타락 성품이 있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치 성경에서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에베소서 2:8) 이 성경 구절에서 ‘구원을 얻다’는 한 방면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사람에게 임한 것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람의 믿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우리에게 임하면 반드시 믿고 따라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여 패역 성품으로 가득 찼고 더럽기 그지없는데, 이는 정결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 누림을 너무 많이 탐하고, 육체를 너무 많이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육체를 극히 증오한다. 사람은 사탄의 더러움과 타락된 것에서 벗어나면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계속 더러움과 타락함을 벗어 버리지 못한다면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아귀다툼, 궤사, 교활,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의 것에 속한다. 너를 구원하는 것은 너로 하여금 이런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틀릴 리가 없는데, 사람을 흑암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어느 정도까지 믿으면 육체의 이런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고 육체 타락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는데, 그것이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낼 수 없고, 더러운 것에 속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없다. 네가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되고 나면, 성결한 사람이고 정상적인 사람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형벌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정결케 되고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에만 만족한다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이 단계 사역은 시대를 끝마치고 사람을 종류별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이자 또한 마무리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합하지 않는 사람과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은 다 멸망되는데 이것은 그 어떤 사람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역이 끝난 뒤에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멸망하는 것도 있고 살아남는 것도 있다. 이것은 경영 사역의 필연적인 추세이며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살아남을 수 없고, 끝까지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은 틀림없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인류를 경영하는 사역인 만큼, 어떤 자는 남겨지고 어떤 자는 내쳐진다. 이것은 각 부류의 사람이 맞이하는 서로 다른 결말로서 피조물에 대한 가장 적합한 배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멸망되는 피조물이 있고 살아남는 피조물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미 전 우주의 사역을 전부 거둬들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한 무리의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며, 타락 성품을 벗고 정결케 되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 되어 더는 하나님께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은 무엇 때문에 여성입니까?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이 하는 매 단계 사역은 다 실제적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가 올 때는 남성이었고, 이번에 올 때는 여성이다. 여기로부터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영이 와서 마음대로 하나의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이 육신은 그를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와서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시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여자 아기이고 남자 아기가 아니라 해도, 그 단계의 사역을 여전히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현재 이 단계의 사역을 남성으로 바꾸어서 해야 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한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 않지만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 하였는데, ‘자’라 하면 남성이다. 이 단계에는 무엇 때문에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그가 사역을 하는 데는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지 다 실제 의의가 있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것은 두 차례인데, 말할 것 없이 말세에는 최후 한차례이다. 그는 와서 그의 모든 행사를 나타낸다. 가령 이 단계에서 도성육신으로 친히 역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목도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 관념에서 사람은 하나님이 다만 남성이지 여성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긴다. 이 이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남성일 수밖에 없고 여성을 하나님이라고 칭할 수 없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남자를 여자의 권세로 삼았고, 여자가 권세를 담당해서는 안 되고 남자만이 담당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또한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 하였고, 여자는 남자에게 순복해야 하고 남자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한 것은 뱀의 유혹을 거친 아담과 하와를 놓고 말한 것이지, 여호와가 시초에 만든 남자와 여자를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로서는 반드시 자기의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고 자기의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으로서는 반드시 식구를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때 준수해야 할 여호와가 정한 율례와 규례이다. 여호와가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을 한 것은 다만 인류(바로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다만 인류가 순서있게 생활할 수 있고 관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호와는 모두 적합한 규정을 하였다. 이것은 다만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말한 것일 뿐,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과는 결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말씀한 것은 단지 피조된 인류에게 말씀한 것인데, 피조된 인류의 정상 생활을 위해 남자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모두 규정이 있게 된 것이다. 여호와가 시초에 인류를 만들 때 남성과 여성 두 유별의 사람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가 말씀으로 된 육신도 곧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는 그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을 정한 것은 아니다. 그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완전히 시초에 그가 인류를 만들 때의 생각에 근거하여 정한 것이다. 바로 패괴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근거하여 그의 두 차례 도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여호와가 당시에 ‘뱀의 유혹을 거친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대로 하나님 도성육신의 사역에 맞춘다면, 예수도 ‘사모해야 할 아내를 사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이 그래 하나님인가? 이와 같다면 그가 그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도 크나큰 착오가 아닌가? 만일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인 것이 착오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아내를 얻지도 않았고 자기 아내를 사모하는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러면 예수는 오늘의 도성육신과 사람이 말한 대로 똑같이 착오가 아닌가? 네가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써 오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한 이상, 너는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써 은혜시대에 말씀이 육신 된 주 예수를 가늠해야 하는데, 이것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닌가? 네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으로써 주 예수를 가늠한 이상, 너는 뱀의 유혹을 거친 여성으로써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네가 만일 이렇게 가늠한다면 너에게 이지(理智)가 없음을 증명한다. 여호와가 말씀으로 된 두 차례 육신의 성별은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과 연결되는 것이고, 뱀의 유혹을 거치지 않은 남성ㆍ여성에 따라서 두 차례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너는 예수의 남성을 뱀의 유혹을 거친 후의 아담의 남성으로 여기지 말라. ‘그’와 ‘그’는 조금도 관련이 없으며, 다른 성질의 두 남성이다. 설마 예수가 남성이라 하여 그를 모든 여자의 머리이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모든 유대 사람(남자와 여자를 포괄함)의 왕이 아닌가? 그는 하나님의 자신이고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그는 모든 피조물의 주이자 모든 피조물의 머리이다. 네가 어찌 예수의 남성을 여자의 머리의 상징이라고 정하겠는가? 이것은 모독이 아닌가?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성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주인데, 그가 어찌 패괴된 후의 아담의 남성일 수 있겠는가?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을 구비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다 틀리지 않겠는가? 여호와가 그래 유혹을 거친 아담의 남성을 예수 안에 더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도성육신은 예수와 다른 성별이면서도 성질이 같은 도성육신의 다른 한차례 역사가 아닌가? 네가 또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기에 하나님 도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여자는 가장 더럽고 인류의 패괴된 기원이어서 하나님 도성육신이 여성으로 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감히 “여자는 영원히 남자에게 순복하고 여자는 영원히 하나님의 창현(彰顯)이 될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라는 이 말을 할 수 있겠는가? …… 만약 예수 그 단계 사역만 하고 말세에 이 단계를 보충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에서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즉 하나님은 아들 하나뿐이고 이후에 또 하나의 이름으로 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영원히 여길 것이다. 사람은 관념에서 무릇 속죄제로 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무릇 하나님을 위하여 정권을 담당하는 자, 온 인류를 구속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무릇 남성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수 있고 즉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이라 하고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크나큰 관념이 아닌가? 만일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 사역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하나님에 대하여 음영을 덮어씌우게 된다. 이러면, 남자는 스스로 여자보다 높다고 여기게 되고, 여자는 영원히 머리도 들지 못하게 된다. 그때에, 무릇 여성은 누구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남자라고 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언제나 여자를 혐오하고 하나님이 여자를 구원 얻게 할 리도 없다고 여긴다. 이렇다면, 여호와가 만든 또 마찬가지로 패괴된 모든 여자는 구원받을 기회가 영원히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여자를 만든 것, 바로 하와를 만든 것도 역시 의의 없는 일로 되지 않겠는가? 여자는 또한 영원히 멸망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자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전 인류를 위한 사역이지 여자만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여긴다면, 사람은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예수와 나는 한 분의 영으로부터 왔다. 비록 육신은 관계가 없지만 영은 한 분이다. 역사한 내용이 같지 않고 담당한 사역이 같지 않지만 실질은 같은 것이다. 육신이 취한 형상이 같지 않은 그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역의 필요로 인하여 같지 않은 것이다. 직분이 같지 않으므로 가져온 사역도 같지 않고 사람에게 나타낸 성품도 같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 본 것과 터득한 것은 이전과 같지 않은데, 이것은 모두 시대의 같지 않음으로 인하여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의 성별은 다르고 형상도 다르며 한 가족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한 분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어떠한 혈통 관계도 없고 어떠한 육체 관계도 없지만 이런 것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서로 다른 두 시기에서의 말씀으로 된 육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 이것은 미룰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혈연이 아니고 공통의 인류의 언어도 없다(한 분은 유태어를 할 줄 아는 남성이고 한 분은 중국 한어만 말하는 여성이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어 또한 서로 다른 시기에서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한 분의 영이고 즉 같은 실질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의 육신의 외각은 아예 완전히 비슷한 데가 없으며, 다만 같은 인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육신의 모습ㆍ출생은 서로 다르다. 이런 것은 각자의 역사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한 분의 영이기에 누구도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으며, 비록 그들이 혈연 관계는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이 그들의 전인(全人)을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또한 그들의 육신은 한 혈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듯이, 또한 예수의 영이 전혀 여호와의 영의 아들이 아니듯이, 그들은 한 분의 영이다. 마치 오늘의 도성육신인 하나님과 예수처럼, 혈통은 서로 연결이 없으나 그들은 본래 하나이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원래 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 자애의 사역을 할 수 있고,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도 할 수 있고, 사람을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최종에는 또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이 아닌가?』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케 되었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기묘,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위엄, 이것은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 이것은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자면,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분이기 때문이다. 각 시대마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기 마련이고,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기 마련이며, 각 시대마다 하나님은 피조물로 하여금 그의 새로운 뜻과 새로운 성품을 보게 하기 마련이다. 만약 새로운 시대에 사람이 새로운 성품의 발표를 보지 못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가? 가령 하나님 도성육신이 다만 남성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남성으로 정하고 남자의 하나님으로 정할 것이며, 언제나 여자의 하나님이라고는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때에, 남자는 하나님을 남자와 같은 성별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로 남자의 머리일 것인데, 여자는 또 어떠할 것인가? 이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차별 대우 하는 것이 아닌가? 이리하여, 하나님이 구원하는 자가 모두 그와 같은 남자라면 여자는 구원을 얻을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할 때는 아담을 창조하고 하와도 창조하였다. 그는 아담만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은 남자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역시 여자의 하나님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한 단계 새로운 사역을 하여 그의 더 많은 성품을 나타내려 하는데, 예수 그때의 긍휼ㆍ자애가 아니다. 또 새로운 사역이 있게 된 이상, 이 새로운 사역이 새로운 성품을 가져온 것이다. 그럼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동시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남자의 하나님이자 여자의 하나님이다”라는 이 사역도 완성하게 되고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는 전부의 사역도 완성하게 된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우리는 주님의 보혈이 이미 우리를 깨끗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미 거룩히 구별되어 죄에 속하지 않으므로 더는 정결케 하는 사역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논법이 왜 틀렸습니까?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하리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율법시대는 바로 여호와를 대표한 하나님 이름의 사역이고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전부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며,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고 그가 한 사역에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다 신약에 기록되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1)

관련된 하나님 말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은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라는 글자도 알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이런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사람에게 너무나 낯설고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요구와 매우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단순한 신앙으로서,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흔히 하나님을 믿는 일을 매우 간단하고 가볍게 보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게 되고, 끝까지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가는 길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글귀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과 공허한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질이 전혀 없고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도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여전히 하느님에게 자신들을 보우하사 평안과 충족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안정시키고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란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가 단지 은혜를 많이 받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단 말이냐?』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천경지의이다. 특히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이 시대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더욱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데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시작하여 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막연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고, 텅 빈 도리 가운데서 믿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설령 따르려는 심지(心志)가 있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흐름 가운데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밥만 축내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체험하든지 모두 아주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도달하지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하지 못하면 새 사역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없고, 새 사역에 순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또한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히 행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바이고,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각 사람이 반드시 체험해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성육신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所是)를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고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이르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순결해질 수 없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점차적으로 알아간다면, 사람의 성정은 점차적으로 변화되고, 사람의 믿음 또한 갈수록 ‘참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성과’에 도달할 때에는 완전하게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고 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도달하게 될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 증거를 위해, 또한 인류가 최후에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해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으려고 추구하든 모두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경외 그리고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려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관념에 너무나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에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은 실로 사람으로 너무나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르고, 사람의 관념이 아물기 어려운 말씀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사람에게 어려운 점이 매우 많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으며, 계속 역사하고 말씀하고 있다. 비록 한 무리 또 한 무리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계속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으며,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귀히 여긴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씩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왜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왜 늘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는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했으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분이고 경외할 만한 분임을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하는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그 후에야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데,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인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표적과 기사를 보고 싶어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관점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실행하고 모두 사람에게 구체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룬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순순히 따라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하고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베드로의 그 풍격이 있게 되면, 그때는 너의 믿음이 제대로 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이것은 ‘떡으로만 배불리는 것’이다. 사소한 간증, 쓸데없는 것, 겉면의 것들만 말하고 실제는 조금도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바른길을 전혀 찾지 못한 것이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먹고 마시지 않고 천국에 가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것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자민(子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갖춰야 할 것은 최소한 겉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각 나라, 각 교파, 각 종교, 각 분야를 모두 말씀으로 정복한다.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그것을 통해 온전케 한다.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어 있게 된다. 그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바로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앞으로는 너희가 모두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역주: 흘러나옴)할 수 있다. 네가 체험한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만약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없다면, 성령이 너에게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찾게 됨으로써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사람으로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것은 바로 실제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이고, 실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며, 그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어 넣어 사람에게 그의 소시(인성 소시(所是)든지 아니면 신성 소시든지)와 그의 말씀의 실질이 가득하게 한다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사람에게서 살아내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는 것은 주로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발하는 음성으로 사람의 결점을 대처하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폭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얻게 하고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하나님이 하려는 가장 주요한 사역은 각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하여 더러운 땅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 얻어지는 가장 깊은 의의는 바로 실제 하나님을 푯대와 본보기로 하여 정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거리도 없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면 네가 그대로 실행하고 그가 요구한 것에 모두 도달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예수님이 성육신 하여 인류를 구원해야만 했던 이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속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을까요?

지금 저는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당신들은 왜 제가 이렇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까?

성경 참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나 의인으로 온전케 되려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세상에는 의인이 없고 의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나니”란 이것은 참말이다. 너희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너희들이 입은 옷을 좀 보고 너희들의 일언일행, 일거일동, 매 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좀 살펴 보아라. 너희들이 날마다 꾸는 꿈마저도 자기를 위한 것인데, 이것이 실정이 아닌가? ‘의’란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말다툼하지 않고 빼앗지도 않고 훔치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부탁을 자신의 임무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함을 천직(天職)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마치 주 예수가 한 모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의이다. 롯이 의인으로 칭함받을 수 있었던 것은 롯이 자기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를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에 한 일을 의롭다고 칭할 수 있을 뿐, 그를 의인이라고는 칭할 수 없다. 롯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두 딸을 두 천사와 바꾸려 하였지만, 그가 이전에 행한 것이 다는 의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의인이 없다”고 한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는다≫에서 발췌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되기만 하고 거룩함에 달할 수 없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에서,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관건적인 한 단계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산업을 직접 이어받을 수 없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야 인류의 불의를 다 정결케 하며, 형벌ㆍ심판의 사역이라야 인류 중의 그 패역한 것들을 다 드러내어 구원할 만한 사람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내고 존류할 만한 사람과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낸다. 사역이 끝날 때, 존류할 만한 사람은 다 정결함을 받고 인류의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 인류의 땅에서의 더 아름다운 두 번째 생활을 누릴 것이며, 머지않아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은 형벌ㆍ심판을 거친 후 원형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후에 다 훼멸되어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는 땅에서 생존할 수 없다. 이후의 인류 가운데 더는 이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최후의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징벌받을 대상이고 악한 자이지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최종에 “제가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공로는 없다 하더라도 고생은 했으니 하다못해 천당에 들어가 생명 과실을 먹게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국도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네가 비록 다년간 사역하였지만 결국은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나의 국도에 들어가려 하는데, 그것은 이치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떠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이전에 사람 몸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며,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무엇 때문에 정결한 처녀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찾고 구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낡은 관념을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는 이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만세전의 예정이고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성경에 말한 “마지막 날의 심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리킵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어느 때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