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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는데, 당신들은 왜 성경이 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까?

『성경의 기록이 모두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은 아니다. 그것은 이전에 한 하나님의 두 단계 사역을 실제적으로 기록한 것일 뿐이다. 그 가운데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기록한 것도 있고, 역대로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들이 쓴 체험과 인식도 있다. 사람의 체험에는 자신의 견해와 인식이 섞여 있기 마련인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책에서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이나 편견, 그릇된 이해 방식이다. 물론 대부분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지만, 진리를 완전히 정확하게 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개인적으로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나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에 이사야가 했던 예언이나 다니엘, 에스라, 예레미야, 에스겔이 했던 예언은 성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예언자에 속하는 그들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로,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묵시를 받은 그들은 많은 예언을 했는데, 그것은 여호와가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

…지금의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그만큼만 말씀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은 모두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신구약 66권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이해 방식으로, 사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하면, 대부분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에는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한 일이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며, 그가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주는 권면과 격려이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선지자도 아니고, 요한이 본 환상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들은 당시의 에베소, 빌라델비아, 갈라디아 등의 여러 교회에 써 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의 바울 서신은 바울이 교회들에 써 보낸 편지이지, 성령이 묵시한 것도, 성령이 직접 한 말씀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서신은 다만 바울이 사역하는 기간에 여러 교회에 권면과 위로와 격려를 해 주기 위한 것이고, 당시에 그가 했던 많은 사역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써 준 것이고, 또한 당시 모든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의 권유를 듣고 예수의 모든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기도 했다. 바울은 당시의 교회든, 그 이후의 교회든 모두 그가 써 준 것을 먹고 마셔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했던 말들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당시 교회의 상황에 대해 형제자매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권면하며, 믿음을 분발시켰을 뿐이다. 바울은 단지 설교하거나 일깨워 주고 권면하는 것을 자신의 책임감과 연관시키며 말했고, 그런 말로 그들을 붙들어 주었던 것이다. 당시 교회들의 사도로 사역한 바울은 예수가 쓴 일꾼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에 대해 책임지고, 교회의 사역을 담당하며, 형제자매들의 상태를 파악해야 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안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긍정적인 말을 한 것은 모두 옳았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성령의 말씀도, 하나님도 대변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만일 사람의 서신과 체험에 대한 기록을 성령이 여러 교회들에 한 말씀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법이고, 크나큰 모독이다! 특히 바울이 교회들에 보낸 서신이 그렇다. 바울은 그 당시 교회들의 상황에 근거해, 주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예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권유하고, 그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바울 본인이 져야 할 책임감이자 성령이 그에게 더해 준 책임감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바울은 당시에 여러 교회들을 이끄는 사도였으므로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 권면하는 것은 그의 책임이었다. 바울의 신분은 사역하는 사도이고 보냄을 받은 사도일 뿐 선지자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사역과 형제자매들의 생명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령을 대표해 말할 수 없다. 바울이 했던 말은 성령의 말씀도 아니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바울은 피조물일 뿐,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예수의 신분과 같지 않다. 예수의 신분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의 말씀은 성령의 말씀이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바울을 어떻게 예수와 동등하게 볼 수 있겠느냐?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간주하고 또한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력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이 완전히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의 서신 기록을 ‘성서’와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단 말이냐? 이러한데 바울이 교회에 써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이 섞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또한 바울 자신의 뜻이 섞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바울은 자신의 체험과 생명 정도에 따라 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었다. 예를 들면,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와 베드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쓴 편지의 견해는 서로 같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견해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냐? 그 누구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교회에 대해 책임감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편지는 그들의 분량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에 대한 그들의 공급과 붙들어 줌을 의미하고, 교회에 대한 그들의 책임감도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사역하는 면만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네가 바울의 서신을 성령의 말씀에 속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그릇된 것이고 모독하는 것이다! 바울의 서신과 신약의 다른 서신은 근대 영적 인물의 전기에 해당된다. 이 서신들은 워치만 니의 책이나 로렌스의 체험 등 그들이 쓴 영적 전기와 동일시할 수 있다. 근대 인물들이 쓴 책은 단지 신약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질은 같다. 모두 성령에게 한동안 사용되었던 인물들로,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의 첫머리에서는 예수를 아브라함의 후손이자 다윗의 자손, 그리고 요셉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뒤에 가서는 또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낳았다고 했다. 그것은 예수가 요셉의 아들도, 아브라함의 후손도, 다윗의 자손도 아니라는 말이지만, 족보의 기록은 예수와 요셉을 억지로 엮어 놓았다. 족보의 뒷부분에는 예수가 강생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동정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족보에는 예수가 요셉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족보는 예수를 위해 쓴 것으로, 요셉 세대까지 42대 인물을 기록한 후에 바로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예수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데, 그러면 앞뒤가 모순되지 않느냐?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은 분명 요셉 가문의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요셉의 족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의 족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그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마태가 쓴 족보 같은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냐? 그것은 아주 황당한 말이다! 이러면 너는 그 책이 온전히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땅에 계실 경우 족보가 필요하므로 예수를 아브라함 가문의 제42대 인물 자리에 놓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 황당한 생각이다! 하나님이 땅에 왔다고 해서 어찌 족보가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께 족보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피조물 가운데에 나열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땅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육신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본질과는 다르다. 그런데 네가 어찌 하나님을 피조물과 같은 부류로 취급할 수 있느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당시 여호와의 사역 대상이었던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여호와에게 인정받은 충성스러운 종일 뿐이었는데 그가 어찌 예수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느냐?

예수의 족보는 누가 써 준 것이냐? 예수 자신이 쓴 것이냐? 예수가 친히 그들에게 “나를 위해 족보를 만들라”라고 했느냐?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뒤에 마태가 기록해 놓은 것이다. 당시에 예수는 수많은 사역을 했었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고, 예수 또한 해석해 주지 않았다. 제자들은 예수가 떠난 뒤에 곳곳에서 전도하며 사역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시 그 단계의 사역을 위해 서신과 복음서를 쓰기 시작했다.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20~30년이 지난 뒤에 기록한 것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 성경이었다. 신약 성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생긴 것으로, 예수가 사역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기록하고 나서야 4복음서가 생겼다. 그리고 거기에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까지 추가되었다.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이 다시 그 자료들을 편집하여 하나로 묶으면서 비로소 신약책이 생겨났다. 신약은 당시 사역이 끝난 후에야 생겨난 것이지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사도 바울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그리고 후에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까지 함께 모았다. 거기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아주 큰 환상(원문: 異象)을 기록한 내용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다. 그것은 말세에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배열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사역하는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이다. 또한 사람이 손댈 필요 없이 영에서 비롯된 말씀을 직접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으며, 이는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지식 수준과 자질에 근거해 기록한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나 인식이 다르므로 기록한 내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처럼 숭배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성경에 관하여 3≫에서 발췌

『오늘날, 너희 중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어째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서적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너희는 어째서 감히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냐? 너에게 성령의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느냐? 이 밖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많은 이야기를 없애 버렸다. 네가 만약 과거에 기록된 그 책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일부 책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부 남겨 교회들에게 보내어 형제자매들이 보게 해야지, 사람의 생각을 더해 마음대로 취사선택해선 안 된다. 그래야 옳다. 바울, 요한 등 그들의 체험에 개인의 견해가 섞여 있다고 해서 그들의 체험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본 것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그들은 당시 현실적으로 체험한 것을 기초로 인식했다. 그것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4복음서가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어째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사람이 당시 예수의 사역에 대해 한 말이 다 다른 것이냐? 못 믿겠다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아라. 기록마다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사실이 다 다르고, 각각 ‘특색’이 있다.』

≪호칭과 신분에 관하여≫에서 발췌

『내가 오늘날 성경을 이렇게 분석하는 이유는 성경을 혐오하거나 참고할 만한 가치를 부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경의 원래 가치와 기원을 너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어 네가 캄캄절벽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에 대한 사람의 견해가 너무 많은 데다 대부분은 정확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보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내가 행하려는 사역까지 가로막아 앞으로의 사역에 크나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이익은 없이 폐단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어디까지나 성경의 본질과 실상을 알라고 하는 것이지, 그것을 보지 말거나 가치 없는 책이라고 소문내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과 견해를 가지라는 것이고, 너무 단편적이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을 사람이 기록한 역사서라고 하지만, 그 책에는 옛 선지자가 하나님을 섬겼던 원칙과 근대 사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체험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사람의 참된 깨달음과 인식도 기록되어 있다. 그런 것은 모두 그 시대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었다.』

≪성경에 관하여 4≫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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