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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질문: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2019년 12월 19일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전능하신 분인데, 왜 우리에게 고난과 연단을 허락하시는 걸까? 혹시 우리를 버리신 걸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이런 문제로 고민을 했었는데요, 최근 기도하고 구하는 과정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얻으면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연단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해 섬세하게 준비하신 것이자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시련,믿음,하나님의 축복

고난과 연단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스가랴 13:9),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이사야 48:10)

그리고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과 연단을 허락하심에는 큰 뜻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함이며, 우리에게 주시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고난과 연단이 없다면 우리는 본인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버리고 열심히 사역을 했으며, 많은 고난과 노력을 기울였으니 자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져서 하나님을 배신해도 자기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업 문제에서 손실을 보거나 생활고를 겪게 되는 등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불평을 토로하고 믿음을 잃으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또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예상치 못한 화를 입으면, 자기 이익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께 이유를 따지고 대항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도를 행하라고 말씀하셨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면에서 자기 잇속을 먼저 생각하며 육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시면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허락하시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고 배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사탄에 의해 심히 패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복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기적이고 비열한 것으로서 이성이 없는 모습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됐을 때,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탄의 성품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잘못된 마음가짐과 관점을 조금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은 하나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이어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한층 더 알게 되고, 우리의 믿음 안에는 많은 불순물이 섞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아가 복만 바라는 마음이 섞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혐오하시고 미워하신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을 통해 우리는 자신에게 패괴 성품과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을 찾게 되며,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 뜻에 합당치 못한 것들을 성찰하게 됩니다. 또한 다시 시련과 연단이 닥쳤을 때, 굳게 서서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길을 찾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씩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진중해지고 성숙해질 수 있으며,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간사한 성품도 조금 변화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 고난과 연단을 받는 과정이 조금 고통스럽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구원받고 정결케 되는 과정이며, 고난과 연단이 우리 생명에 가장 이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증거는 역대의 많은 성도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시기 전에 모세를 광야에 두어 40년 동안 단련시키셨습니다. 모세는 40년간 풍찬노숙하며 대화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야생 동물과 열악한 기후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모세는 분명 많은 고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곧바로 쓰시면 되지 왜 40년이나 광야에 두셨을까?’라고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한 것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모세는 성격이 호방하고 정의감이 넘치는 사나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에 의리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힐 때, 돌로 쳐서 애굽 병사를 죽였던 것입니다. 사실, 천성적인 혈기와 영웅적 기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모세를 쓴다면, 모세는 불같은 성격과 영웅적 기개에 따라 일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쉽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부탁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더 합당하게 쓰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에 두어 단련시킨 것입니다. 모세는 힘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계속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게 됐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남았습니다. 한편으로, 혈기와 천연적인 것들이 많이 다듬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과 순종을 갖추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애굽에서 나오라고 분부하셨을 때, 모세는 아무런 반항도 없이 받아들이고 순종하였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에서 자신이 받은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재산을 전부 약탈 당하고 자녀들이 화를 당하며, 본인은 악창에 시달리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 경외심을 가지고 굳게 설 수 있었습니다. 욥이 큰 시련에서도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산은 물론, 자녀까지 모두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께는 다시 취하실 권리가 있다고 여겼고, 피조물은 마땅히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욥은 피조물의 위치에서 조건 없이 창조주께 순종하며 굳게 섰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고, 욥은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욥이 편하고 안일한 환경에 있었더라면 이런 것들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이 주신 시련과 연단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시련을 겪은 후 친구들에게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로써 고난과 연단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실하신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연단이 있어야 우리는 정결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질적 은혜가 우리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는가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고심을 모릅니다. 그래서 여의치 않은 상황이 닥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고난과 연단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평생 평안하게, 자신과 가족이 화를 입지 않고,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안에서 무탈하게 지내기만을 원합니다. 그런데, 안일한 환경에서 지낸다면 패괴 성품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하심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리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과 순종이 생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의 평안이나 물질적 축복만 누리게 된다면,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와서 은혜의 사역을 하며 사람에게 물질적 축복을 준 것은 맞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와 긍휼만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하고,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패괴된 것들을 들춰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도, 믿음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 사역일 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리는 것에만 치중한다면,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 생명도 자라날 수 없으며, 믿음도, 사랑도 순종도 온전함을 입을 수 없음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키려니와”(잠언 1:32)라고 말합니다. 만일 아무런 고난이나 연단이 없이 계속 안일한 상태로 산다면,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고 쉽게 육의 즐거움을 탐하며 타락할 수 있고 패괴 성품에 따라 살게 됩니다. 그렇게 산다면 결국은 배만 불리며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다가 어떤 일도 이루지 못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됩니다. 부모로서 자녀가 어떤 잘못을 하든 다 용서해 주고 감싸 주며 익애한다면, 그 자녀가 악습관을 고치고 장성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안일함은 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데 크게 유익함이 없습니다. 도리어 육적인 즐거움을 탐하게 만들고, 계속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만 요구하면서 갈수록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변할 것이며, 사악하고 간사한 마음만 늘어 가게 될 것입니다. 진정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편하게 사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많은 고난과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련,믿음,하나님의 축복

고난과 연단을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육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에게서 모습을 감추었을 때 너에게 하나님을 따를 믿음이 있고 예전의 사랑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고, 차라리 자기 육체를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시련이 닥쳤을 때 차라리 고통을 참으며 사랑하는 것을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지언정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을 비로소 참된 사랑과 참된 믿음이라고 한다. 너의 실제 분량이 어떻든, 너는 우선 고난받겠다는 각오와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육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하며, 자신이 고난받고 개인적인 이익이 손해를 볼지언정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하며 또 스스로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전에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했더라도 지금은 스스로 통회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통해 너를 온전케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너는 온전케 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나님은 실행의 길을 주셨습니다. 바로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는 자세는 우리가 굳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정결함을 받고 구원받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고난과 연단이 닥쳤을 때, 사탄의 패괴 성품에 따라 육적인 안일함을 찾으며,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사람은 쉽게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과 맞서고 대립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간증을 잃게 됩니다. 고난과 연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구하고,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며, 몸이 좀 고생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겠다는 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흡족게 해 드리겠다는 태도로 겪어 나간다면, 시련 속에서도 진리를 많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패괴된 성품도 하나님에 의해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도 집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닥쳤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은 공급원이 끊겨 힘들어하고, 자녀들은 직장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 상황에 괴롭고 힘들었던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 불평을 토했습니다. 제가 날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며 헌신하고 있는데, 저의 집에 왜 이런 일이 닥쳐야 하는지, 왜 하나님은 우리 가족을 돌봐 주지 않으시냐며 원망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말씀을 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예배에 참석도 하고 맡은 사역도 계속 해 나갔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마음은 번뇌로 가득했습니다.

나중에 기도하며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며 나를 믿고 있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있다.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고 있을 뿐이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그들을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내게 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고, 나를 믿으면 득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가슴이 찔리고 괴로웠으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저의 관점이 올바르지 못했습니다. 그저 복을 바라고 은혜만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사역하며 헌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니 부정적인 상태에 빠져 하나님께 왜 제 가족을 지켜 주지 않으시냐며 불평하면서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원망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제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사역을 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게 아니라 이걸 계기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내려고 했던 거였어. 이건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마음과 불순물이 섞인 믿음을 가졌는데, 어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어?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기로 숨을 쉬고, 하나님께서 주신 햇빛을 누리며,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보답할 생각은 없고, 계속 달라고 손만 내밀다니, 난 정말 이성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제야 저는 이러한 믿음이 참으로 추하고 비열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전혀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먼저 피조물의 위치에 잘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창조주께서 어떻게 하시든, 상을 주시든, 주신 것을 다시 거두어 가시든, 피조물은 모든 것에 순종하며 이유를 따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게 진정 피조물로서 갖춰야 할 이성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게 되니 저는 남편과 자녀의 문제가 어떻게 되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절대 원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부정적이었던 상태에서도 조금씩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맡은 사역을 흔들림 없어 계속 해 나갔습니다.

이번 일을 체험하면서 고난과 시련은 우리의 생명이 자라나는 데 너무 유익하다는 것을 크게 느꼈습니다. 연단 속에서 조금 고통을 받긴 했지만, 무엇보다 귀한 생명의 자산을 얻게 되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더 증가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목표를 가지신 분들도 하나님의 고심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더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으며, 이런 고난과 연단을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각종 시련이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칠 때,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진리를 구한다면,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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