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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과 율법의 의미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십니까

2019년 04월 09일

십계명과 율법은 주님을 믿는 모든 신자에게 낯선 단어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십계명과 율법이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심오한 뜻이 있는지 과연 알고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경륜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사람을 위해 많은 규례를 정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러한 규례들은 인류로 땅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 없다. 하나님은 먼저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제단을 쌓아야 하는지, 어떻게 제단을 세워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고, 그다음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또 사람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정해 주고, 생활 속에서 어떤 것들을 주의하고 지켜야 하는지, 어떤 것들을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매우 구체적으로 정해 주었으며, 이러한 조문과 규례, 원칙들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규범화하고,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며,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또한, 사람을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인도해 주었고,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질서 있고 규칙적이며 절제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하나님은 먼저 이러한 간단한 규례와 원칙으로 사람에게 일부 범위를 정해 주었다. 또한 이를 통해 사람들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하고,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의 시작 부분에 속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이러한 규례와 규정에 포함된 내용들은 아주 광범위하며, 하나님이 율법시대에 인류를 인도한 구체적인 내용들이다. 이것은 율법시대를 맞을 사람들이 반드시 받아들이고 준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는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자, 하나님이 전 인류를 이끌고 인도한 확실한 증거이다.』, 『하나님이 계명을 반포한 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이 율법을 반포함으로 그때의 인류를 가르치거나 타이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인류는 없었을 것이고, 또한 소위 말하는 문명사회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문명사회란 어떤 것을 말하느냐? 사람이 도덕규범을 좀 알고, 시비를 가릴 줄 알고, 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전체에 질서가 잡히고 어지럽지 않으며, 관리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사람마다 법의식이 있고, 공공질서와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법의 단속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다 하나님이 행한 것이 아니냐? 현재의 인류가 이렇게 될 수 있게 된 것도 최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반포해 주신 율법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계명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반포하였고, 그 당시에 계명을 들은 대상이 작은 무리일지라도, 그 계명의 영향력은 후대 인류에게 계속되어 왔다. 현재 인류 사회에 지금 같은 질서가 있게 되고, 지금 같은 완전한 법률 체계가 세워져 인류를 단속할 수 있게 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혹은 전체 사회가 안정적이고, 화목하고, 질서가 있게 된 것은 그때의 계명을 반포한 것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 기초를 정말 잘 닦은 것이다! 만일 인류에게 최초의 행위에 대한 규범화가 없었다면, 온 인류 사회는 오늘날까지 지금처럼 질서정연하게 발전되어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행사의 구현이고, 또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의 결과이며 성과라고도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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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에서 최초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릴 줄만 알았으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창조하신 사실이나 하나님을 경배하는 법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가장 기본적인 생활 상식조차 몰랐습니다. 막 세상에 나온 아이처럼 인간 세상의 일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 땅에서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도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필요에 따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를 통해 여러 방면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태초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상식과 규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끼리 어떻게 지내야 하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죄는 무엇이고 선과 악은 무엇이며 아름다움과 추악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방화, 살인, 강도, 약탈 등의 행위는 범죄이며 부정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고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께 제사를 올리고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고 긍정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율법과 계명이 이끌어 준 덕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동에는 단속이 생겼고 뚜렷한 기준과 규범이 생겨나 정상적이고 질서 있게 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이루어 낸 효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명과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셨지만, 그 영향은 우리와 같은 후대인에게도 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계명과 율법은 인류에게 어떻게 살아가고 인류의 행위를 어떻게 규범화 하는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또한, 계명과 율법은 인류의 행동을 유죄와 무죄로 가늠하는 근거와 준칙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십계명과 율법은 후대인이 헌법을 제정할 때 근거를 제공해 주었으며 훗날 법률 체계의 개선에 기반을 닦아 주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법률 조항과 사법의 개념은 모두 십계명과 율법을 기반으로 제정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인죄, 강간죄, 절도죄, 비방죄, 공금 횡령죄 등이 제정된 것은 모두 십계명의 “살인하지 말찌니라 간음하지 말찌니라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출애굽기 20:13~17)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이런 계명과 율법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태초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으며 언행과 일에서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온 세상이 매우 혼란스럽고 인류가 지금까지 이를 수 없을 것이며 오늘날 문명사회도 구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율법과 계명의 반포는 인류의 법률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의 도덕 문명과 민주제도의 구축 및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확실한 도덕 준칙을 갖고 공공질서를 지키며 법의 제약을 받아 이 세상에서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은 태초의 율법시대에 하나님께서 반포하신 계명으로 이루어 낸 성과이자 하나님께서 인류를 주재하시고 이끄신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인류를 책임지며 신경 써주시고 큰 노력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이후 계속 인류를 이끌고 인도해 주시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시어 우리의 행동에 규범을 만들어 주셨고 우리가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인류가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계명과 율법의 반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나타냅니다. 인류는 정말 하나님의 이끎을 평생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앞서 말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께서 십계명과 율법을 반포하신 중요성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기울이신 심혈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셨겠죠!

저희에게 깨우침을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지 알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성경에는 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태복음 24:24)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만남의 장소인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아 지저귀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가족 교회의 집회장소에서 설교자 이선, 친구 양민(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역자)과 함께 사역자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중에 그들은 구원과 천국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이선이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주께선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린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룩하시다는 건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 동역자가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여기서 예수께서는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면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마건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멘! 서 동역자가 한 말이 맞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수금이 일어나 의문을 제기했다. “주 예수께서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하셨겠습니까?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의식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양민이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우리는 예수의 구원으로 더는 죄에 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죄가 없다거나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타락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했었죠.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18~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죠. 바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 무의식중에 죄를 범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없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라고 했죠. 바울의 고민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겐 오만함, 이기심, 간사함, 탐욕, 사악함 등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흐름을 좇고, 지위나 부, 명예를 추구하고 죄 속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천국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아직도 죄중에 살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말에 따르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죄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 양민이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던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 받을 대상이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몰래 제물을 훔쳐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겁 많고, 음탕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정죄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또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들은 형벌도 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에게 그 어떠한 편견도, 거역도, 대적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선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서 동역자가 반박했다. “예수의 속죄제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다고요! 양 자매님, 지금 예수의 구원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럼 자매님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신 겁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양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형제자매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주 예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여러분이 순수하게 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에요. 구원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걸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율법시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람들은 율법만 지키면 정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말기,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저는 소와 양, 비둘기를 여호와의 제단에 올리기도 했죠. 사람들의 죄는 점점 커졌고, 속죄제를 통해 속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었죠. 하나님께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율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인간의 죄는 사함 받아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구원의 정의에 대해 어느 한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 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의 구원을 얻으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로부터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는 본성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계속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곤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주께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으며 영원히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서서히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층 무거워진 어투로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양 자매님 말이 맞아요. 주께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죄악 속에 살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린 정말 하나님께 완전히 구원받지도 않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부족한 것 같군요!” 양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 34~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직 정결케 되진 않았습니다. 주님을 뵙거나 천국에 들어가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때 안수금이 일어나 말했다. “양 자매님, 방금 교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정결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정결함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결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의견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양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성경에서 보았듯이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사역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된 성품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예수는 구원의 사역만 행하셨을 뿐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시진 않았습니다. 오직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만이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주고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겨주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주실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깨끗이 씻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바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수금이 기뻐하며 일어나 말했다.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얻긴 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은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씻겨지지 않아 예수께서 재림을 통해 행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이선이 기뻐하여 일어나 말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토론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찾고 정결함을 받아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일 집회에서 계속 교통하도록 해요! 양 자매님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양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집회장소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

회개 기도를 드릴 때 꼭 읽어야 하는 성경 구절 15가지

크리스천에게 회개의 기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아래 15가지 회개에 관한 성경 구절을 읽고 주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는 실행의 길을 찾아 보세요.

‘다른 복음 좇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8절에 예수님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으니 다른 복음을 좇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럼 바울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

매일 성경 _ 잠언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언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