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갈라디아서 1장의 ‘다른 복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2019년 06월 08일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라디아서 1:6~8)

주님을 믿는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은 목사나 장로들이 이 성경 구절을 자주 해석하면서 예수님의 이름과 말씀 외에 다른 복음을 듣거나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을 떠나고 배신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주님을 오랫동안 믿은 저 역시 줄곧 그 성경 구절을 지키면서 목사나 장로의 말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를 해도 저는 그 말씀을 듣거나 찾고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복음 좇는’것, 즉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갈수록 황량해지고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목사나 장로의 설교를 들어도 생명을 공급받을 수 없고, 점점 더 많은 형제자매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있습니다. 큰돈을 벌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 하며, 교회는 장사와 대인 관계를 맺는 장소로 변했습니다. 저도 영적으로 메말라 성경을 봐도 깨우침이 없고 예배에서도 영적 누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렇게 완고하게 예배당만 지키는 것이 정말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 번 주님 앞에 나와 저를 깨우쳐 주고 이끌어 주며,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시길 구했습니다.

하루는, 몇 년간 보지 못했던 옛 친구 창우가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고 설교하다가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 8절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목사나 장로는 우리에게 이 성경 구절을 자주 해석해 주곤 해. 지금은 말세이고 예수님이 곧 오셔서 우리를 데려갈 거라고 말하고 있지. 이 중요한 시기에 이단과 거짓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고 했어.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교회를 지키고 다른 말씀을 찾거나 알아보면 안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이며, 이는 곧 주님을 배신하는 거라고 했어. 최근 몇 년간 나 역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 왔지. 그래서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해도 그런 관점의 영향으로 찾거나 구하지 못했지. 그런데 왜 그렇게 행할수록 더 어두워지는 느낌일까? 난 이 문제로 아주 곤혹스럽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건지도 알지 못하겠어. 그렇지만 목사나 장로들이 인용한 것도 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잖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겠어. 네 생각은 어때?”

바울 이미지,사도 바울,

제 말을 들은 창우가 교제했습니다. “목사나 장로가 인용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울의 말이야. 은혜시대에 바울이 한 말은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만일 성경 구절의 일부만 가지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인용한다면 아주 쉽게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지! 사실, 바울이 그런 말을 할 때는 배경이 있었어. 당시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이미 힘 있게 끊임없이 이방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었고, 수많은 갈라디아 사람들도 주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임과 함께 교회를 세웠던 거야. 그때는 율법시대에서 은혜시대로 전환되는 시기였고 당시 유대인들 가운데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했어. 한 부류는 율법시대의 옛 사역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도록 한 거야. 즉,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성전에 들어가도록 했던 거야. 다른 한 부류(예수님의 12제자 위주)는 은혜시대의 새로운 사역을 전했지.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도록 했어. 즉,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라고 전했지. 구약 율법을 지켰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자신들이 전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고 했고, 또 예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새로운 사역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야. 게다가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교란했지. 그 당시 바울은 사역이 너무 바빠 이미 갈라디아 교회를 떠난 상황이었어. 구약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그 기회를 틈타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가서 그들을 교란했던 거야. 결과적으로, 당시의 갈라디아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어 예수님의 복음을 떠나 율법을 전하는 사람들을 따랐던 거지. 그래서 바울이 이 사실을 알고 편지를 써서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거였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라디아서 1:6~8) 이 말로 갈라디아 사람들을 권면하여 참 도의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거야.

바울은 또 말했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라디아서 3:1~2)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이란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야. 바울은 당시 사람들에게 은혜시대에는 오직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고, 지금 다른 말씀을 듣는지의 여부나 찾고 알아보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어. 다시 말하면, 바울은 단지 은혜시대에 복음을 전한 사도에 불과했을 뿐이야. 그는 선지자도 아니고 예언가도 아니었지. 바울이 쓴 편지는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두고 쓴 서신이며 갈라디아 사람들에 대한 권면이고 격려일 뿐이야.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그것을 말세에 적용해 지금 다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을 듣거나, 찾고 알아봐서는 안된다고 여기는 거야. 이것은 되는대로 규례만 지키는 것이 아닐까?”

창우의 말은 저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바울이 한 그 말은 배경이 있지. 그것은 단지 은혜시대 갈라디아 교회에 한 말일 뿐이야. 바울은 선지자가 아니고 미래의 일도 예측할 수 없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2천년 전 바울의 말을 지금에 적용시켜 지키고 있는 거지? 어쩜 이리도 어리석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저는 조금 겸연쩍어 “네 말이 맞아. 난 성경에서 바울이 어떤 배경하에 그 말을 했는지 구하고 알아보지 않았어. 그냥 목사나 장로들이 해석한 것을 맹신한 거지. 확실히 그릇된 깨달음이었어.”라고 말했습니다.

창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맹목적으로 믿는 건 잘못된 거야. 지금은 말세이고 주님이 재림하실 중요한 시기이지. 우리는 말씀에 근거해 주님의 재림을 대해야지 맹목적으로 사람의 말을 믿어선 안돼.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기회를 놓치게 될 거야. 그건 몇 년 동안 헛되이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겠어. 나는 최근 며칠 동안 계시록에 예언된 말씀을 생각해 봤어.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이 성경 구절에는 만국 만민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말세가 되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지.”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베드로전서 1장 5절의 말씀이 생각나.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다시 말해,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사역 하실 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신다고 했어.” 저는 갑자기 머리가 트이는 것 같았고 흥분되어 창우에게 말했습니다.

창우는 한참을 생각한 후 말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 게다가 그 구원은 또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전할 수도 있고.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한 것처럼 말이야.”

“네 말을 듣고 보니 줄곧 교회만 지키고 다른 복음은 한결같이 받아들이지 않은 내 실행 방법은 잘못된 거였어. 그렇게 하다간 주님의 말세 구원을 거절할 수도 있잖아! 그럼 우린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저는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세 현현 사역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 주님의 말세 구원을 증거하면 얼른 찾고 알아봐야 해. 주님을 영접하는 것에 관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확하게 알려 주셨잖아.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에 반드시 귀를 기울이는 것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누군가 신랑이 왔다고 전하면 얼른 나와서 영접해야 해.” 창우는 성경을 펼쳐 그 장절을 가리키며 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그 성경 구절을 보며 기뻐서 고개를 끄덕였고, 찬성하며 말했습니다. “확실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 능동적으로 찾고 알아봐야만 하나님의 뜻에 맞는 거야! 훗날 누군가가 주님의 재림을 또 내게 전하면, 바울의 말을 믿고 지키면서 더는 듣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이때 눈부신 햇살이 먹구름을 뚫고 방안을 비추었고, 제 마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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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경 재림에 관한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재림을 예언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은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오늘날 이스라엘도 회복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고, 서로 죽이고 음란이 본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타락됐었죠.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홍수로 멸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거짓 신과 악령을 경배하고 있으며 극도로 사악하고 타락됐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세상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명의상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교회도 장사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다 황폐해졌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은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고 세속에 빠져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고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노아 시대와 비해 보면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징조로 재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이미 임했다는 뜻이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해 믿어 오면서 여느 형제자매들과 다름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님은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지금 재림에 관한 징조가 이미 다 나타났는데 왜 주님은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주의 재림을 놓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맞이해 버림받지 않도록 그 길을 깨우쳐 주고 인도해 달라고 늘 주께 기도드렸습니다. 저한테는 여러 해 전도하면서 사역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근에 모처럼 만나게 돼서 저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그래서 우린 다 주님이 무조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는 게 정말 주님의 뜻에 맞는 걸까? 사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재림하는 방식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 24:5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어떤 말씀에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니 각인의 눈이 다 본다고 했고, 어떤 말씀에서는 또 도적같이 오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 여기서 주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는 방식, 또 하나는 도적같이 은밀히 오시는 방식이지. 우린 다 주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무조건 다 이루어질 거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재림 방식을 단정 지으면 안 돼.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만 고집하면서 은밀히 오신다는 건 부인한다면 우리는 은밀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놓쳐 버리게 될 수도 있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이 예언처럼 주님이 구름 타고 올 때면, 우리는 은밀히 강림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애곡하게 될 거야. 그게 다 자기 생각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빛 비춤이 있어. 재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성경에 재림에 관해서 예언한 게 이렇게 많은데 잘 읽어 보지도 않고 묵상도 안 하고 그저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렸어. 오늘 너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성경에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예언 말고도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아님 은밀히 오시는 주님을 놓칠 뻔했어.”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야. 같이 하나님 말씀 좀 볼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 깨닫는 게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이 있어야 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언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서 우리 생각과 상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바리새인은 이 예언을 보고는 자기 상상으로 메시아가 오실 때면 왕으로 왕궁에서 태어날 거고, 훤칠한 외모에 위풍당당하고 풍채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사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높은 신분과 지위도 없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어. 바리새인은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진리를 발표하고, 설교를 깊게 해도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예언한 메사아라는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고의 죄인이 됐어.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을 단정 지으면서 구름 타고 오지 않으면 주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주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야. 교만하고 독선적인 타락 성정으로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인 뜻으로만 주님의 뜻을 해석하면 너무 위험해. 이렇게 실패한 걸 교훈으로 삼아야 돼.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이후에 어떻게 사역하실지 사람은 측량할 수 없어. 어떻게 사역해야 한다고 규정할 자격도 없지. 안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봐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거야. 예수님 말씀이 딱 맞아.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런 사람은 미련한 처녀잖아.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워!” 저는 친구가 읽은 말씀과 교제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벌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발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자신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 하는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주님을 영접할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계시록에서 예언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많은 진리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으로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나님도 그분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어떻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분들은 모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전도하고 많은 열매를 맺으며 깨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