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계시록 22장에 “이것들 외에 더하면” “제하여 버리면”은 무엇을 뜻하는가

2019년 08월 05일

좁은 골목길에 “뛰…뛰…뛰…”하고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자동차 경적 소리가 생각에 빠져 있던 수민을 깨웠습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아침에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느라 뒤에서 오는 차를 가로막고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사과하고 몸을 돌려 차가 지나가게 했습니다. 남겨진 것은 그녀의 왜소한 그림자 뿐이었고, 느린 발걸음은 마치 겨울날의 혹독한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는 점점 황량해지고, 형제자매들의 믿음과 사랑 또한 점차 식어갔습니다. 그녀 자신도 영 안이 점점 어두워지고 연약해지는 것을 느꼈고, 여러 번 예수님께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어도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 여러 교회를 돌아다녔지만 소용이 없었고, 여전히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친구가 그녀에게 책을 한 권 주며 주님께서 돌아오셨고, 새로운 말씀도 선포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녀는 뜻밖의 소식에 기뻐서 지체 없이 살펴보았고, 볼수록 이 책에 담긴 말이 몹시 실제적이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많은 치우친 부분을 바로잡기도 한 것을 느꼈습니다. 읽고 나서 마음이 밝아지고 영적인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이런 말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령의 계시를 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를 알고 거듭 그녀를 저지하며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시록 22:18~19) 계시록에서 성경의 내용은 더해서도 제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주님이 돌아오셔서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증거한다면 이것은 성경에 내용을 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주님께서 돌아오셔서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셨다고 증거하면 그것을 절대 살펴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건 주님을 배반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수민은 조금 두려웠습니다. 그 순간, 수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교제해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친구가 수민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둘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민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친구는 수민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더하지 말라’라고 한 것 때문에 감히 주님의 재림에 관한 어떠한 사역이나 말씀을 살피지 못하는데, 사실 이러한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건 계시록의 이 성경 구절을 순수하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성경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면 곤혹스러움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계시록에 담긴 이 말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계시록 이 책은 주님이 승천한 후 90년경 요한이 밧모섬에서 말세의 이상을 보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신약 성경이 없었고, 신구약 전서 역시 없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주님이 승천한 후 300년이 되어서야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2장 18절과 19절에 나오는 ‘이 책’은 성경 전체가 아니라 계시록의 예언서를 가리켜 한 말입니다. 더 살펴보면, 이 성경 구절에서 말하는 것은 누구든지 이 ‘예언’에 무엇을 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성경’에 더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는 ‘더하지 말라’라는 말은 성경 이외에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이나 말씀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계시록 예언에 함부로 무엇을 더하거나 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민은 이 말을 듣고 급히 성경 계시록을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계시록에는 분명히 예언에 무엇을 더하면 안 된다고 했을 뿐, 성경 전체에 무엇을 더하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이 구절을 근거로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확실히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 이렇게 명확한 문제를 전에는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친구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또한, 계시록에 담긴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이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는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사람은 마음대로 예언에 무언가를 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장차 하실 일이며, 예언이 결국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하나님께서 직접 사역하실 때라야 사람이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여기에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더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에 있는 이 말의 대상이 우리 사람을 두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예언 이외에도 자신의 사역을 하실 자격이 있으며,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도 막거나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12장 32절의 기록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찌니라’ 여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명하는 모든 말에 무엇을 가감하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은혜시대에 이르러서,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심지어 어떤 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바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율법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고 하셨으나,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는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태복음 5:38~4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시대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씀하셨으나,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44) 등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말씀 중 많은 부분이 율법을 어겼고, 율법 외에 다른 부분을 추가하여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구약 율법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성령을 모독하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것은, 사람의 크나큰 패역이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더해서도 제해서도 안 된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한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도리어 그분께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시니, 그분의 사역은 그분 계획에 따라 하시며, 사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성경 구절의 제약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친구는 태블릿 PC를 꺼내 능숙하게 웹페이지를 열며 말했습니다. “복음 사이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새 사역을 개척한 것이다. 예수는 구약시대의 사역대로 하지 않고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했던 말씀에 맞추지도 않고 자신의 사역을 했다. 그는 더 새롭고, 율법보다 더 높은 사역을 했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다. 이렇게 그가 이룬 것에 따라 수많은 규례가 깨졌다. 안식일에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까지 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법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였다. 하지만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예수가 한 사역은 여호와가 구약시대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이미 구약 율법을 뛰어넘었고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아졌다. 그는 구약 율법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규례를 지키지 않고, 매 시대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시고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시며 구시대의 율례와 법도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사역의 필요에 따라, 또한 우리 인류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여 최종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성경에 한정해서는 안 되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인 ‘더해서도 제해서도 안 된다’라는 말을 반대로 하나님께 요구할 수 없습니다. 또 성경 이외에는 새로운 말씀이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수민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밝아졌습니다. 계시록에서 말하는 ‘더해서도 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사람이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추가하거나 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나중에 오셔서 다시 말씀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일 사람이 이 성경 구절을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관점을 견지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 버린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한 수민은 자기가 너무나 위험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지난날 바리새인들이 기존의 율법을 고수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을 율법에 더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분이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오늘날 그녀도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를 뻔했던 것입니다!

이때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2절과 13절에서 뭐라고 했는지 기억합니까?”

수민은 즉시, “기억납니다. 우리가 자주 외웠던 게 이 구절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실 때, 또 많은 말씀을 선포하여 우리를 양육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진리에 진입하게 하려는 것임을 아주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의 예언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시록 5:1~5)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언급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감추었던 만나’, 그리고 곧 펼칠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 등이 모두 하나님께서 말세에 재림하시어 말씀과 새로운 사역을 하실 것이며 이전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비밀을 모두 공개하신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런데도 우리가 성경에 ‘더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인해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요한복음 21:25)라는 이 구절은 과거에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에 많은 말씀을 하고 많은 일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것은 사실 매우 한정적이어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을 다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가 성경 이외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행사와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민은 이를 듣고 흥분하며 일어섰습니다. “세상에, 매일 읽은 구절이었는데 왜 이 깊은 뜻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니 들을수록 더욱 밝아져서, 이제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역은 한정적으로, 그 분의 모든 사역과 말씀을 다 기록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신 기간이 삼 년이 넘었음을 생각하면,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보다 하루 동안 하신 말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말세에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또 새로운 사역을 하시고, 새로운 말씀을 선포하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예언에도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야 저도 알겠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성경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진리를 살펴볼 때에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하고, 겸허하게 알아보고 구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바리새인처럼 성경 구절을 고수하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땐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발걸음을 바짝 따라가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진리를 찾는 마음을 갖추어야지, 어떤 상상에도 관념에도 가로막혀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만 말세에 주님의 나타남을 맞이하고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3, 6, 8)”

수민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 아멘!” 그녀의 곤혹스러움은 완전히 해결되었고, 마음은 몹시 즐거워졌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교제했고, 집 안에서는 즐겁고도 경쾌한 웃음소리가 수시로 흘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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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고, 누가 한 말이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맞는지 고려해야 해. 주님의 말씀에 맞으면 듣고, 주님의 말씀에 맞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거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린 채 듣고 있었습니다. 이양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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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1: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복음 23:23)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볼 때는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허상일 뿐이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았어. 복음을 전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었지. 예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관념을 고수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신도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 막았지. 심지어 신도들을 데리고 로마 정권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한다는 것과 외식하는 그들의 본질을 명백히 보여 준 거야. 비록 그들이 고생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헌신했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어.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들과 똑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전도도 하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야.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은 거의 없어.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처리하고 항상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계획해. 특히 마음에 안 들고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일이 임하면 어떤 진리을 알아야 하는지, 자신을 내려놓고 어떻게 주님의 뜻에 맞게 행할 것인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만족게 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등등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할 진리에는 진입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거야. 더구나 지금 우리는 영이 메말라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느끼지 못해. 그럼에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찾아보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잖아. 그냥 단순히 사역만 하고 있지.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라고 하신 이 말씀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힘들게 사역하는 모습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지!” 예진은 이양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고, 그 말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말도 맞는 거 같아. 당시 바리새인들도 힘써 사역하고 고난 받으며 헌신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와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어. 여전히 고집스럽게 반항하고 정죄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 나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영적으로 어둡고 갈증을 느끼면서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보지 않았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나서 예진은 감개무량해서 말했습니다. "응, 네가 한 말도 일리가 있어. 이게 다 우리의 현실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어. 바로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거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로지 주님의 자리밖에 없어. 모든 일을 주님의 요구대로 하고 자신의 선택이 섞이지 않아.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쳤을 때 자신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말씀을 따라 순종했어.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어. 욥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 했어. 그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은 달아났고 자녀들은 죽었어. 몸에는 병도 생겼지.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어. 그래서 하나님은 욥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베드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였고 죽기까지 순종했어. 예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을 모두 그의 가슴에 새겼지. 그 말씀을 본인에게 비춰 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했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고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그의 추구로 인해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천국 열쇠를 주었지. 역대의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잖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야.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모습대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예진은 이양의 말이 진리에 맞다고 생각되어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따르면 안 돼.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해! 속담에도, "일을 주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헛수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꿈에 불과하고 일방적인 소원일 뿐이야!” 예진이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한 말들은 너무 옳아. 하나님이 깨우쳐 주신 거라 진리에도 부합되고 주님의 말씀과도 부합돼.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요구대로 따르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야! 하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겉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면 천국의 복을 받을 줄 알았거든. 이것은 내 관념이었고 상상이었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 이 우리한테 나타날지도 몰라. 그 결과는 정말 너무 엄중해. 주님 감사합니다! 이양아, 너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 이제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구나!" 이양은 예진을 보면서 이양과 예진은 마주보면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밖의 작은 새는 여전히 나무에서 재잘거리고, 태양이 비추고 있는 꽃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지혜에 관한 성경 구절 ― 지혜를 얻는 길에 대하여

지혜에 관한 구절을 통해 지혜의 시작을 알게 되며, 지혜를 얻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계시록 20장에는 주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을 하신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지막 날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에 대한 상상과 추측을 갖게 되는데, 아래 형제자매님들의 교재를 통해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길 바랍니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신 하나님의 뜻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다’라는 대표적인 이야기를 볼 때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분부하셨는지,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는지, 등의 이런 많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뜻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영적 서적에서 아브라함의 스토리에 대해 풀어놓은 것을 보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마음의 궁금증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에서 멈추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웅대하고 위대한 계획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 것은 단지 하나님의 전체 경영 계획의 서막을 열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시각, 또 누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그 일을 시작으로 조용히 상연될 줄을 알았겠는가!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한 많은 일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움직이려고 할 때, 그 ‘움직임’은 많은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또 사람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사람에 대한 검증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복을 나타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복할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택한 아브라함에 대해 진정으로 안심하게 되었고 인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그 인물이 자신의 약속을 담당할 수 있고 자신의 다음 경영 계획을 담당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선도자라는 것을 확정하였다. 비록 그 일은 단지 시련과 검증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기쁨과 위로를 느꼈고, 하나님에게 드린 사람의 사랑을 느꼈으며, 사람에게서 오는 전에 없던 위안을 느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멈추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의 목숨을 취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브라함에게 그 행위를 멈추게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순복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으며, 그가 한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려고 했던 일에서 이미 결과를 본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고 원했던 것이며, 하나님이 보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으냐?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시험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보았다. 곧, 아브라함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순복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 ‘무조건적’이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라엘 선민이 생기게 한 다음, 그 선민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뜻을 정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담당하게 하려고 했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발표한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계속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이 말씀에서 저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담당하는 선봉으로 뽑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삭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의 진심과 조건 없는 순종은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하게 되어 하나님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소망을 이루시려고 정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창조하신 다음 계속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가치와 의의가 있으며, 모두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은 단지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 소망을 실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하시면서 묵묵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책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보았고,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았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열납하였을지라도,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는 부족했으며,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는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울수록, 안타까울수록, 되도록 빨리 자신의 경영을 계속하고, 되도록 빨리 한 무리 사람들을 선정하고 얻어 자신의 경영 계획을 이루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야 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인류를 창조하면서부터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이해하고 알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뜻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든, 앞길이 얼마나 간고하든, 또한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가 얼마나 아득하든, 하나님은 인류에게 둔 기대를 지금까지 바꾼 적이 없고, 또 포기한 적도 없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일에서 순종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역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욥이나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이긴 자들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을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시록 2:7~11) 이삭을 바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저의 마음의 궁금증도 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샤오묘

매일 성경 _ 잠언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언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