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2019년 01월 16일

예전에 저는 니느웨 성읍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보았습니다.

니느웨 성읍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갈수록 타락하고 사악하여 그들의 악행이 마침내 하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되자 이에 하나님은 곧 니느웨를 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읍을 멸하기 전 요나에게 명하여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라고 선포하게 하였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듣고, 왕은 물론 백성까지도 모두 베옷으로 갈아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여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킴으로써, 멸망의 벼랑 끝에 이르렀던 니느웨 사람들의 운명이 예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 일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매우 간단하지만, 니느웨 성읍의 모든 운명에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사건이 매우 의미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금식하고 회개하는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밖에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긍휼을 입을 수 있었던 것에는 혹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있지는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 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기독교 관련 책 한 권을 읽고, 나는 비로소 하나님이 왜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셨는지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를 발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니느웨 성의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일거일동과 모든 표현, 그리고 그들 각자의 결정과 선택,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눈에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였다…. 하나님이 말씀한 재앙을 니느웨 사람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신속하게 결단을 내린 원인은 하나님이 니느웨 각 사람의 마음속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본 것은 니느웨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참된 회개와 자백이었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참된 신복이었으며, 그들이 자기들의 악행이 하나님의 성품을 건드렸음을 마음 깊이 느껴 여호와 하나님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은 또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 깊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더 이상 그들에게 노하지 말고 그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구도 들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사실을 살펴본 후, 노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전의 노가 얼마나 컸든지 사람 마음 깊은 곳의 참된 회개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의 참된 회개에 감동되었다. 하나님은 차마 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못하였고, 더 이상 그 사람들에게 노하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었고, 그들을 인도하면서 공급해 주었다.』

니느웨 회개,니느웨 사람들,

이 말씀에 따르면,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나에게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큰 성읍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이러한 크나큰 권능과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들을 징벌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피하지도 대항하지도 않고, 순종하며 받아들이고, 니느웨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손으로 행한 강포를 버렸으며, 한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시인하였습니다. 이때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입을 수 있었던 까닭은, 단지 니느웨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 행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회개가 표면적인 것도 아니고 일시적인 것도 아닌, 전혀 외식이 없는, 심지어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실한 회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살피고, 그들의 진심 어린 회개를 보고, 이러한 진심에 감동하여 비로소 그들을 긍휼히 여긴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결코 외면의 행위가 아니며, 우리에 대한 긍휼은 더욱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겉으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하며 하나님께 뉘우치더라도, 만약 마음으로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늘 죄를 저지르고 죄를 시인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이로써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되찾고, 내가 이미 진실로 하나님께 참회하였다고 생각하였고, 때로는 자신의 악행을 위해 금식 기도하고서,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진리에 어긋난 일을 하면서도,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고,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자제하기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회개라고 생각했던 일 등등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원래 이러한 표면적인 행위는 결코 진실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 책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악한 길’은 한두 가지 악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는 근원이 사악하다는 것이다. ‘악한 길에서 떠났다’는 것은 더 이상 그렇게 일을 하지 않고, 더 이상 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는 방식, 근원, 출발점, 속셈, 원칙이 다 바뀌어 마음속에 더 이상 그런 방식과 원칙을 누림과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의 “떠날 것이라”라는 것은 내려놓고 버리고 과거와 철저히 결별하여 더 이상 지나온 길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이 현상은 그들이 참되게 회개했음을 실제로 증명하고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면도 보고 사람의 마음도 관찰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참된 회개를 확실하게 살펴봄과 동시에, 또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것을 보았을 때에야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의 행위와 표현, 사람의 각종 행실과 마음속으로 참되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태도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고 뜻을 바꾸고 결정을 거두어 그들을 징벌하거나 멸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니느웨 사람의 결말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되찾은 동시에 다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하나님도 노기를 거두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니느웨 사람들의 진심 어린 회개에 대하여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 외면의 경건한 행위들이나 어떤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반성하고 그 행위의 근원, 즉 일을 하는 속셈과 출발점, 행동의 원칙을 깨닫고, 이러한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를 철저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어떤 것들 때문에 자신이 악을 행하게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이것이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 행동의 원칙 때문이었음을 반성하고 깨달을 수 있을 때, 즉시 자신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고, 다시는 이러한 행동방식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러한 회개야말로 진실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감찰하실 것이며, 그러한 사람 또한 니느웨 사람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열납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김명

매일 성경 _ 요한복음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요한복음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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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뤄질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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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