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2019년 01월 16일

예전에 저는 니느웨 성읍에 관한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보았습니다.

니느웨 성읍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갈수록 타락하고 사악하여 그들의 악행이 마침내 하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되자 이에 하나님은 곧 니느웨를 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성읍을 멸하기 전 요나에게 명하여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라고 선포하게 하였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듣고, 왕은 물론 백성까지도 모두 베옷으로 갈아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여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킴으로써, 멸망의 벼랑 끝에 이르렀던 니느웨 사람들의 운명이 예전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 일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매우 간단하지만, 니느웨 성읍의 모든 운명에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사건이 매우 의미 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께 금식하고 회개하는 행위로 인하여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밖에 인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긍휼을 입을 수 있었던 것에는 혹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비밀이 있지는 않은 지 곰곰이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 후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거기서 기독교 관련 책 한 권을 읽고, 나는 비로소 하나님이 왜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셨는지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를 발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니느웨 성의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일거일동과 모든 표현, 그리고 그들 각자의 결정과 선택,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눈에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였다…. 하나님이 말씀한 재앙을 니느웨 사람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그렇게 신속하게 결단을 내린 원인은 하나님이 니느웨 각 사람의 마음속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본 것은 니느웨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참된 회개와 자백이었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참된 신복이었으며, 그들이 자기들의 악행이 하나님의 성품을 건드렸음을 마음 깊이 느껴 여호와 하나님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은 또 니느웨 사람들이 마음 깊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더 이상 그들에게 노하지 말고 그 재앙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간구도 들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사실을 살펴본 후, 노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전의 노가 얼마나 컸든지 사람 마음 깊은 곳의 참된 회개를 보았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의 참된 회개에 감동되었다. 하나님은 차마 그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못하였고, 더 이상 그 사람들에게 노하지도 않았으며, 계속해서 그들에게 긍휼과 관용을 베풀어 주었고, 그들을 인도하면서 공급해 주었다.』

니느웨 회개,니느웨 사람들,

이 말씀에 따르면,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였고,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도 있었습니다. 요나에게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요나 3:4)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이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큰 성읍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이러한 크나큰 권능과 능력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이미 여호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들을 징벌한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피하지도 대항하지도 않고, 순종하며 받아들이고, 니느웨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손으로 행한 강포를 버렸으며, 한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회개하고 죄를 시인하였습니다. 이때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입을 수 있었던 까닭은, 단지 니느웨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 행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회개가 표면적인 것도 아니고 일시적인 것도 아닌, 전혀 외식이 없는, 심지어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실한 회개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살피고, 그들의 진심 어린 회개를 보고, 이러한 진심에 감동하여 비로소 그들을 긍휼히 여긴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지 결코 외면의 행위가 아니며, 우리에 대한 긍휼은 더욱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겉으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하며 하나님께 뉘우치더라도, 만약 마음으로 진실한 회개를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늘 죄를 저지르고 죄를 시인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이로써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되찾고, 내가 이미 진실로 하나님께 참회하였다고 생각하였고, 때로는 자신의 악행을 위해 금식 기도하고서,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생각하였으며, 자신이 진리에 어긋난 일을 하면서도, 다음에 그렇게 하지 않고,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자제하기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실한 회개라고 생각했던 일 등등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원래 이러한 표면적인 행위는 결코 진실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 이 말씀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 책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악한 길’은 한두 가지 악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을 하는 근원이 사악하다는 것이다. ‘악한 길에서 떠났다’는 것은 더 이상 그렇게 일을 하지 않고, 더 이상 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으며, 일을 하는 방식, 근원, 출발점, 속셈, 원칙이 다 바뀌어 마음속에 더 이상 그런 방식과 원칙을 누림과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의 “떠날 것이라”라는 것은 내려놓고 버리고 과거와 철저히 결별하여 더 이상 지나온 길을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이 현상은 그들이 참되게 회개했음을 실제로 증명하고 나타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면도 보고 사람의 마음도 관찰한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참된 회개를 확실하게 살펴봄과 동시에, 또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난 것을 보았을 때에야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이다. 즉, 사람의 행위와 표현, 사람의 각종 행실과 마음속으로 참되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태도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고 뜻을 바꾸고 결정을 거두어 그들을 징벌하거나 멸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니느웨 사람의 결말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생명을 되찾은 동시에 다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얻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하나님도 노기를 거두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니느웨 사람들의 진심 어린 회개에 대하여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단지 우리 외면의 경건한 행위들이나 어떤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려고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해 반성하고 그 행위의 근원, 즉 일을 하는 속셈과 출발점, 행동의 원칙을 깨닫고, 이러한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이를 철저히 버릴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어떤 것들 때문에 자신이 악을 행하게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이것이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 행동의 원칙 때문이었음을 반성하고 깨달을 수 있을 때, 즉시 자신의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고, 다시는 이러한 행동방식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면, 이러한 회개야말로 진실한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감찰하실 것이며, 그러한 사람 또한 니느웨 사람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하나님의 열납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김명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성품에는 긍휼과 자비만 있는가

많은 분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에 예수님의 성품에는 긍휼과 자비만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정말 그런 것일까요?

기독교 신자의 일기 — 천국은 하늘에 있을까요

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뤄질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소망에 대한 구절 ― 고난 받을 때 믿음과 힘을 주소서

우리는 삶 속에서 가정, 결혼, 직장, 인간 관계 등 많은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고뇌에 빠지고, 삶에 대한 희망을 잃기까지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래의 소망에 대한 구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과 힘을 얻어 삶의 대한 소망을 가집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성경 구절 18가지

부활절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아래 부활절에 관한 16가지 성경 구절이 예수님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 드립니다.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만남의 장소인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아 지저귀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가족 교회의 집회장소에서 설교자 이선, 친구 양민(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역자)과 함께 사역자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중에 그들은 구원과 천국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이선이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주께선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린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룩하시다는 건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 동역자가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여기서 예수께서는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면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마건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멘! 서 동역자가 한 말이 맞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수금이 일어나 의문을 제기했다. “주 예수께서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하셨겠습니까?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의식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양민이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우리는 예수의 구원으로 더는 죄에 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죄가 없다거나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타락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했었죠.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18~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죠. 바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 무의식중에 죄를 범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없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라고 했죠. 바울의 고민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겐 오만함, 이기심, 간사함, 탐욕, 사악함 등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흐름을 좇고, 지위나 부, 명예를 추구하고 죄 속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천국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아직도 죄중에 살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말에 따르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죄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 양민이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던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 받을 대상이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몰래 제물을 훔쳐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겁 많고, 음탕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정죄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또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들은 형벌도 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에게 그 어떠한 편견도, 거역도, 대적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선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서 동역자가 반박했다. “예수의 속죄제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다고요! 양 자매님, 지금 예수의 구원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럼 자매님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신 겁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양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형제자매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주 예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여러분이 순수하게 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에요. 구원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걸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율법시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람들은 율법만 지키면 정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말기,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저는 소와 양, 비둘기를 여호와의 제단에 올리기도 했죠. 사람들의 죄는 점점 커졌고, 속죄제를 통해 속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었죠. 하나님께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율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인간의 죄는 사함 받아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구원의 정의에 대해 어느 한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 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의 구원을 얻으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로부터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는 본성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계속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곤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주께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으며 영원히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서서히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층 무거워진 어투로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양 자매님 말이 맞아요. 주께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죄악 속에 살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린 정말 하나님께 완전히 구원받지도 않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부족한 것 같군요!” 양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 34~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직 정결케 되진 않았습니다. 주님을 뵙거나 천국에 들어가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때 안수금이 일어나 말했다. “양 자매님, 방금 교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정결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정결함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결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의견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양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성경에서 보았듯이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사역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된 성품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예수는 구원의 사역만 행하셨을 뿐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시진 않았습니다. 오직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만이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주고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겨주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주실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깨끗이 씻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바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수금이 기뻐하며 일어나 말했다.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얻긴 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은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씻겨지지 않아 예수께서 재림을 통해 행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이선이 기뻐하여 일어나 말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토론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찾고 정결함을 받아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일 집회에서 계속 교통하도록 해요! 양 자매님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양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집회장소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 주님의 공중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주님의 공중 재림을 바라고 있으며 또 자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