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을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하는데,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

2019년 03월 26일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로마서 8:3)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하셨고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어린양으로 비유되었는데, 여기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속죄제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4장 27절에서 3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리고 레위기 16장 30절과 3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했고, 율법으로 그들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끄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야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점차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돌에 맞아 죽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속죄 제물을 바쳐야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사함받을 수 있었고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매년 7월 10일은 이스라엘의 속죄일로, 이 날이 되면 백성들은 처음 난 흠이 없는 소나 염소를 속죄 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침으로써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아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소나 염소의 피로 사람의 죄를 덮어 죄 사함의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은 소나 염소의 피를 사람의 죄를 정결케 하는 증거로 삼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바쳐진 속죄 제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축복과 돌보아 주심을 구할 자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수록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으며 죄짓는 횟수도 갈수록 빈번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효과에 달할 수 없게 되었고 성령께서도 그들을 증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타락하여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1절에서 15절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예수님 어린양,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인류가 어느 정도까지 타락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고 그들의 죄행을 책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 그렇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저주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미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로 가득찼고 죄 속에 살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한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역시 당시의 타락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경륜에 근거하여 인류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속죄제인 어린양이 되심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53:6~12)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사역을 행하실 때,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곧 속죄 제물인 어린양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서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셨으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 하셨으며, 결국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인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서 율법 아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구속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능히 사할 수 있는 속죄 제물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의 소망이 실현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더는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데에 장애물이 아니고, 더는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율법하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었으며 죄 사함을 얻고 은혜받을 자격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계속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속죄제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것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을 완수하고 인류를 고통의 세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는 사람에게 정죄를 당하고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했다. 그가 받은 그 모든 고난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받은 고난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을 의미한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의 죄를 속량하고 그 단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은 모든 굴욕과 대가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십자가에서 속량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피의 대가이고 생명의 대가이며, 그 어떠한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그는 자신이 육신에서 앞으로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그가 직면할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가운데서 무기력하고 율법 아래에서 불쌍히 살며 힘없이 발버둥 치는 인류를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아파 왔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더 절박해졌다. 자신이 어떤 곤경에 처하든, 자신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되든지 간에,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겠다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 담당할 사명이 무엇인지 갈수록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어서 빨리 담당하고자 하는 사역, 즉 사람의 모든 죄를 지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면 인류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더는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앞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쳐 희생하고 싶었으며, 또한 속죄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 를 진심으로 바랐다. 게다가 하루빨리 그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본 그는 1분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더 빨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생겼을 때, 그는 자신이 당할 극심한 고통과 수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자신을 바침으로 십자가에 달려 속죄제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며, 죄 속에 살던 인류의 삶과 처지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라는 신념뿐이었다. 그의 신념과 그가 하고자 한 일은 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업과 관련이 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이 다음 단계의 사역을 순조롭게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단락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지고지상하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재자로 자신을 낮추셔서 육신에 거하심으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심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식으로 직분을 담당하기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모진 굴욕과 고통을 당하셨고 타락한 인류에게 버림받고 정죄받는 치욕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지만, 오히려 더럽고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생활하셨는데 그 고통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고 영과 육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이 인류를 죄에서 구속한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고 또 말세에 다시 오셔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정결케 하는 심판 형벌 사역을 하여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철저히 벗어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말세에 더 큰 구원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심으로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탄에 의해 타락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여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깊다는 것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이번의 교제를 통해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의미를 잘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심으로,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시고 완전히 정결케 되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갈 날을 기대하리라 믿습니다.

우연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

말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것만 해도 200곳이 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죄 사함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말세에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는지 알아보고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욥은 왜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을까요

욥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욥이 가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는 시련을 겪고서도 여전히 굳센 간증을 섰는데 왜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됐을까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불만 이였을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고 모든 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걸까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면 주님의 공중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두 주님의 공중 재림을 바라고 있으며 또 자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

주님을 믿어서부터 저는 줄곧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각 사람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대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실 때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위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주님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틀림없이 먼저 알 것입니다. 그분들을 따라 믿으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저도 계속 이렇게 지켜왔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믿음이 식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돈벌이에 바빠 예배할 시간도 없고 설교자들의 매 설교가 다 늘 하던 말이라서 들어도 누림이 없으니 저의 예전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돌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야 오셔서 저희들을 데려가십니까? 지금 저는 당신의 함께하심도 느끼지 못하겠고 예배드리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신은 저의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시니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그 후 시간이 흘러 어떤 예배에서 저는 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주님이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라고 묻자 저는 “당연히 흰 구름을 타고 오시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만약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영체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또 17장 24~25절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만약 주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마다 볼 텐데, 그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겠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제가 “그럼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라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자! 누가복음 17장 24~25절에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고 하면 육신을 말하는 거야. 육신만이 인자로 불릴 수 있잖아. 그리고 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재림하시는 방식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거야. 왜냐하면 육신만이 고통을 받을 수 있고 영은 고통받을 수 없고 게다가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당하셨잖아. 여기에서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또 한번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성경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니 정말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왜 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친구는 또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까? 만약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생김새에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면에서 알아봐야 할까?” 제가 “주님이 오시면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보실 거야. 그분들은 다 주님을 다년간 섬기던 분들이라 주님께서 오시면 틀림없이 먼저 그분들에게 나타나실 거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미 답이 있어. 계시록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왜 이 한마디를 계시록에 여러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을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거야.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생김새나 명망(名望)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겨 대하면서 하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기 아주 쉽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더 잘 영접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각 사람이 신중히 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당시를 돌이켜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이름을 예수로 불렸고 게다가 또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잖아. 그러나 여호와를 다년간 섬기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본 것과 상상에만 근거해 메시아라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어. 나중에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는데, 이런 사실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하잖아! 근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예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이 다 하나님을 다년간 섬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주님의 돌아오심을 대하는 일에서 만약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아주 가련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이전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전철을 밟아선 안 돼!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다 그분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든지 아무에게도 알리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상상과 관념 속에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고 찾고 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임하는 인사물을 대해야 해.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무엇이 사람의 소리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신 많은 말씀이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성령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마찬가지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경문에 부합되어도 사람의 말이야.” 친구가 한 이런 말은 제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저는 속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느껴져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제가 “넌 어디에서 설교 들어? 나도 같이 가서 들어보면 안 될까?”라고 묻자 친구는 “되고 말고! 듣고 싶다면 정말 좋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생기발랄하고 얼굴의 웃음꽃은 제가 몇 년 이래 종교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특별히 배려해주고 또 매우 참을성있게 저에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느꼈고 성령 역사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린양이 펼친 책≫ 한 권을 주었고 저는 이 책에서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을 보고 나서 신기하게 느껴져 속으로 ‘그래? 가능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보기 위해 저는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씌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병과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말씀에 그토록 권병과 위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통해 저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이름, 도성육신의 의의, 인류의 귀숙과 결국 등등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더욱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빨리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그 어떤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분을 믿는 각 사람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하루빨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신자들은 세례를 받고 나면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