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을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하는데,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

2019년 03월 26일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로마서 8:3)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속죄 제물이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구속 사역을 하셨고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어린양으로 비유되었는데, 여기에 어떤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속죄제가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 4장 27절에서 31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것 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그리고 레위기 16장 30절과 3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했고, 율법으로 그들이 땅에서 생활하도록 이끄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야만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점차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돌에 맞아 죽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속죄 제물을 바쳐야만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사함받을 수 있었고 율법에 의해 정죄되거나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매년 7월 10일은 이스라엘의 속죄일로, 이 날이 되면 백성들은 처음 난 흠이 없는 소나 염소를 속죄 제물로 삼아 제단에 바침으로써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지은 모든 죄를 사함받아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소나 염소의 피로 사람의 죄를 덮어 죄 사함의 증거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은 소나 염소의 피를 사람의 죄를 정결케 하는 증거로 삼으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바쳐진 속죄 제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축복과 돌보아 주심을 구할 자격이 있게 된 것입니다.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수록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으며 죄짓는 횟수도 갈수록 빈번해져서,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효과에 달할 수 없게 되었고 성령께서도 그들을 증오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타락하여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1절에서 15절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예수님 어린양,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인류가 어느 정도까지 타락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진노하고 그들의 죄행을 책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 그렇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의해 저주를 받아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미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로 가득찼고 죄 속에 살면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한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있도록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역시 당시의 타락한 인류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경륜에 근거하여 인류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도록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속죄제인 어린양이 되심으로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 53:6~12)

하나님께서 성육신으로 사역을 행하실 때,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곧 속죄 제물인 어린양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1장 29절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서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셨으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 하셨으며, 결국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인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서 율법 아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구속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를 능히 사할 수 있는 속죄 제물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의 소망이 실현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더는 속죄 제물을 바칠 필요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죄는 더 이상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데에 장애물이 아니고, 더는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약점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율법하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고, 예수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었으며 죄 사함을 얻고 은혜받을 자격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류는 계속 생존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속죄제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것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사역을 완수하고 인류를 고통의 세계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는 사람에게 정죄를 당하고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했다. 그가 받은 그 모든 고난은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가 받은 고난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을 의미한다. 또한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의 죄를 속량하고 그 단계의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받은 모든 굴욕과 대가를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십자가에서 속량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피의 대가이고 생명의 대가이며, 그 어떠한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그는 자신이 육신에서 앞으로 담당할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한지, 그가 직면할 고통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 가운데서 무기력하고 율법 아래에서 불쌍히 살며 힘없이 발버둥 치는 인류를 볼 때마다, 그의 마음은 점점 아파 왔고,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고 싶은 마음은 더 절박해졌다. 자신이 어떤 곤경에 처하든, 자신이 앞으로 어떠한 고통을 받게 되든지 간에,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겠다는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과정에서 예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 담당할 사명이 무엇인지 갈수록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어서 빨리 담당하고자 하는 사역, 즉 사람의 모든 죄를 지고 인류를 대신해 속죄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면 인류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않고 하나님도 속죄제로 말미암아 더는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앞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쳐 희생하고 싶었으며, 또한 속죄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기 를 진심으로 바랐다. 게다가 하루빨리 그 사역을 완성하고 싶었다. 인류 생활의 참상을 본 그는 1분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더 빨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생겼을 때, 그는 자신이 당할 극심한 고통과 수모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 ‘자신을 바침으로 십자가에 달려 속죄제가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새 사역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며, 죄 속에 살던 인류의 삶과 처지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라는 신념뿐이었다. 그의 신념과 그가 하고자 한 일은 다 인류를 구원하는 사업과 관련이 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이 다음 단계의 사역을 순조롭게 전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단락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지고지상하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재자로 자신을 낮추셔서 육신에 거하심으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는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을 하심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정식으로 직분을 담당하기 시작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모진 굴욕과 고통을 당하셨고 타락한 인류에게 버림받고 정죄받는 치욕을 참아 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지만, 오히려 더럽고 타락한 인류 가운데서 생활하셨는데 그 고통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고 영과 육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한 것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인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이 인류를 죄에서 구속한 것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고 또 말세에 다시 오셔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진리를 베풀어 주시며,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철저히 제거하고 정결케 하는 심판 형벌 사역을 하여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철저히 벗어나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말세에 더 큰 구원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심으로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탄에 의해 타락한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은 받았지만, 죄짓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여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크고 깊다는 것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이번의 교제를 통해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된 의미를 잘 이해했으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여러분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철저히 구원하심으로,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시고 완전히 정결케 되고 새롭게 되어 하나님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갈 날을 기대하리라 믿습니다.

우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당신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갖추었습니까

성경에서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이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든 예수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하였고 또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가나안 여자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아주 이지적임을 볼 수 있었고 결국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재림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실까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도 예수님이 벌써 2번째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간증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소문은 종교계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4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영체가 사람들 가운데서 40일 나타난 후 하늘로 돌아가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체로 돌아가셨기에 재림하실 때에도 당연히 영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는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재림하실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나타나 역사하실까요? 저도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이미 다 이루어졌고 말세가 도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와서 사역하는 지를 모른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그 답을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문하였습니다. 마침 주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Peter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저는 Peter형제가 식견도 넓고 빛비춤이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곤혹스러운 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다 들은 Peter 형제는 “지금 많은 형제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영체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있지만,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는 예언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17:24-25) 이 말씀에서도 모두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면 곧 사람에게 나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체라면 ‘인자’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정상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이 구절에서 그 점을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체로 온다면 영체는 특별히 비범하고 위대하여 사람이 영체에 대해 개념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데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되는데, 그의 외모가 평범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생기게 되니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은 성육신으로 온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Peter 형제가 성경과 결부하여 교통해 주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저는 성경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이때 Peter 형제가 “이 형제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는데 저는 “네,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 봅시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서 왜 성육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한 데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12:28-29) 이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감에 떨려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위엄이고 진노의 성품입니다. 율법시대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성정을 유로하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께 격살당하게 되므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반대로, 성육하신 하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성의 각도에서 진리를 발표하고 신성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여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패괴 성품이 유로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제때에 악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권유와 믿음의 힘을 더해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한 것은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Peter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주님께서 영체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줄곧 자신의 상상과 관념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그가 발표하신 말씀은 다 인류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인성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들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래에 재림하여 더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체의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영은 가장 위대하고 성결하신데 우리가 매일 범죄하고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살고 또한 죄의 속박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반드시 하나님께 격살당할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Peter 형제의 말에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Peter 형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진리를 발표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곧 말세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상선벌악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체로 역사하게 되면 사람마다 하나님께 공손하며 아무도 대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탄의 무리도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의 증거가 없게 되고 선과 악도 가를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부각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적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고 말씀했는데 이렇게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다 자신이 가장 충심이 있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의 재림이신 성육신이 평범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 패역과 대적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실 때 바리새인과 일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평범한 모습에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논단하고 대적하고 정죄하며, 또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전혀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양과 염소를 드러내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충분하게 나타냈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을 듣고 저의 마음은 많이 설렜습니다. 예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면 상선벌악하시고 양과 염소를 분류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주님은 인자인 사람의 모습으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여 매 사람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가늠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잠시후에 Peter 형제가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Peter 형제는 이 말씀으로 저와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성육신한 것은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정결게 하고 변화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다 얻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을 하시어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사람들을 아름다운 거처에 처소로 데려 갑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완성하였고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지 않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의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었도 또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이미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으며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성경을 풀어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한 후 제자들께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떡을 먹으며 성경도 풀어주셨는데, 이미 영체인 예수님은 왜 음식을 드셨고 심지어 예수님을 만져보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이런 행동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아름다운 뜻

매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만이 인류에게 이렇게 깊은 사랑이 있다고 느껴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온갓 치욕과 육신의 고통을 받으면서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야만 했을까요?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