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2019년 03월 23일

이기는 자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은 계시록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시록 14:1),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이 성경 구절에 ‘십 사만 사천’이라고 언급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을 겪고 굳게 선 자들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왔어. 온갖 고생을 다 해 사역을 했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았지. 또 사역하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훼방도 당했지. 가족조차도 이해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어. 이렇게 끝까지 따르면 곧 이기는 자가 되는 거야.’

사실, 이렇게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심지와 믿음은 확실히 사람들이 탄복하고 칭찬해 줄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깨달음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고생 하면서 사역하고, 주님의 이름을 굳게 지키면, 이기는 자가 된다는 관점은 정확한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늠해야만 정확합니다. 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4~5),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즉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재난 전에 온전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이며, 이긴 남자 아이이고,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이다.』 이 예언과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그 입에 거짓이 없고 마음에 간사함이 없으며,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정결케 된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이기는 자는 어린양을 바짝 따르는 자들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역을 하고 말씀을 하시든 따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죽기까지 충성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합니다.이런 기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이기는 자라고 할 수 있으며 고생을 하고 사역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할 뿐만 아니라, 핍박이나 환난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비록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지 못해 정결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생 하며 사역함과 동시에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자신의 뜻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역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이익, 지위를 탐내고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가 자신을 받들고 우러러보도록 하여 믿는 신자들을 자기 앞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면 거짓말로 속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명예와 이익, 지위에 관련되면 또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우리가 고생을 하고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상과 면류관을 받기 위한 것으로, 어느 정도 사역을 하거나 고생하고 나서는 고참 티를 내면서 아주 떳떳하게 하나님을 향해 천국의 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는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심지어 누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면 관념이 생기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늘 죄를 짓고 죄성의 지배와 통제를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정결케 되거나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아직 변화되어 정결함을 얻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이기는 자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우리의 이런 태도는 확실히 이기는 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도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방에서 얻는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은 대환난 속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 얻어진 이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온갖 연단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막연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나 기사도, 어떤 이적도 본 적이 없으며, 대단한 도리나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실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수백 번의 연단과 시련을 거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진실한 순종에 달한 것입니다. 또 어떤 환난이나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며, 최종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사탄의 시험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포위 공격을 이겨 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다시는 타락한 성품에 의해 살지 않고, 행동이나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는 사람들로써 진정으로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타락한 사탄 본성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만 자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사탄의 성품 등 자신이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실상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으며, 살아내는 것은 완전히 사탄의 모습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밖에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온갖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분별할 수 있으며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온갖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은 철저히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것이 이기는 자의 기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욥처럼 가득했던 소와 양, 거액의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그의 친구가 그를 조롱하고 아내가 그의 순결을 공격했습니다. 욥을 대하는 사탄의 수단이 얼마나 잔인하든 욥은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났기에 환난과 시련 속에서 나온 이긴 자입니다. 또 베드로를 보면, 그는 일평생 주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본보기로 삼았으며,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진정으로 환난 속에서 나온 이긴 자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첫 번째 익은 열매이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계시록에 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1~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7)

이처럼 이기는 자를 온전케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시려는 사역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두 번째 성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사역을 체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또 친히 음성을 발하여 말씀으로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어린양에게서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체험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타락한 성품도 서로 다른 정도의 인식이 있게 되어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큰 환난 속에서 나온 한 무리들, 진정한 의미에서 이긴 자들입니다.

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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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해외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저의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천국'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천국'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들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와 같은 말씀입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성경 구절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상상으로 가득했는데 천국은 반드시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잖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될 거야. 장래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늘로 영접할 것인데 그럼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런 성경 구절들을 볼 때마다 천국에 대해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처럼 바닥은 보석으로 깔려 있고, 성(城)은 황금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에 있는 사람은 다 영화에 나오는 신선들처럼 자유자재로 살면서 영생을 누릴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으로 가득 찼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배에서 예수님을 믿는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이 모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읽다 보니 성경 분문의 어떤 말씀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6장 10절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런 말씀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인가? 천국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또 땅에 있을 수가 있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이 요한에게 계시한 이상이므로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에 베드로 후서 1장 20~21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맞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기에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저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2년, 설이 막 지나자 저는 승선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오후, 저의 먼 친척인 고모 할머니(그분은 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저에게 전해주셨던 분입니다.)가 갑자기 엄청난 희소식을 알려 주겠다며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시에 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흥분하시며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단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거야. 성경에서 말한 천국이 이미 내려온 거라구!” 저는 놀라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구요? 천국이 내려왔다구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돌아오셨단다. 그분은 바로 말세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로는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자신의 추악하고 패괴(역주: 부패, 타락, 망가짐을 포함하여 더 깊은 뜻이 있음)된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인데 이 단계사역을 마치시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려 상선벌악 하신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훼멸될 것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 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 되고 땅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되는 것이란다. 그때 인류는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단다.” 고모 할머니가 전해준 희소식을 들으면서 저 역시 조금 격동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있다고 하시는 걸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지 아니면 땅에 있는지 하는 이 문제로 몇 년간 계속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그때 저는 한번 잘 찾고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방금 할머니께서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땅에서 생활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천국에 관한 기록이 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하늘로 영접한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관점은 다 똑같은데 모두가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지.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반드시 그들을 하늘 위로 이끌어 올려 거기에서 살게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자세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도 땅에서 하셨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이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니?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13절에서 말씀하셨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보듯이 인류는 오직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할머니의 교통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지으셨고, 당시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 역시 땅에 있었어.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서 살 거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왜 그들을 하늘에 두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사람이 정말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어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훼멸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고 사람도 더 이상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계속 전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지 않고, 사람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처소에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살 수 없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사람이 안식할 곳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안식처는 하늘에 있다. 사람은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를 이끄는데,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이고 사람은 여전히 육신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식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단다. 사람과 하나님은 같은 경지에서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고 땅은 사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단지 피조물로 오직 땅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지막 처소도 땅에 있는 것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온 땅의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인류는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데, 천국의 생활이란 바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란다.” 할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듣고 난 후, 저는 감탄조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셨어요.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생존 환경은 바로 땅에 있기 때문이네요. 그러므로 인류의 마지막 처소 역시 땅에 있어요.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요. 알고 보니 천국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후에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저의 관념과 상상을 깨뜨렸고 또 저에게 실제적인 희망을 가져다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참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의 아내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저에게 메모리 카드를 주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배에서 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묵상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인을 떼신 어린양이고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여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알려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마지막 처소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게 되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전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창조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그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땅에서였는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땅 위에 아주 적절하게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아주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말세에 그분은 다시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그분의 6천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며,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하늘의 생활같이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의 생활은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생활이고 다군다나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말세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우여곡절 끝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와 연락이 닿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양육을 누리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달콤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할 데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니느웨의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케 하고 돌이킴으로써 멸망의 벼랑 끝에 이르렀던 운명을 되돌렸습니다. 하지만 단지 니느웨의 회개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지극히 큰 긍휼을 입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니느웨의 회개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았던 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이 세 위격(성부,성자,성령)으로 존재 하신다는 것인데 과연 이런 표현이 맞을까요? 그럼 삼위일체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 되었는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존재하는지에 대해 함께 알아봅시다.

기도에 관한 중요한 성경 구절 10가지 모음

  예레미야 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마가복음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잠언 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잠언 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마태복음 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사무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히브리서 13:19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를 위하여 너희 기도함을 더욱 원하노라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과 가까워 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할 수 있는 과정이자 방법입니다.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은 느끼지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어떤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며 어떤 내용으로 해야 하는지, 진실한 기도를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이에 관한 질문에 대해 아직 정확한 길을 찾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더욱 기도에 마음을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기 위해, 올바른 기도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아래 내용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추천 내용: 크리스천이 진실한 기도를 하기 위해 알아야 할 4가지 크리스천이 꼭 해야 하는 3가지 기도 관련된 말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