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이기는 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2019년 03월 23일

이기는 자를 언급하면, 다음과 같은 계시록의 예언이 생각납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시록 14:1),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이 성경 구절에 ‘십 사만 사천’이라고 언급한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을 겪고 굳게 선 자들로 하나님께 인정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은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많은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주님을 따라왔어. 온갖 고생을 다 해 사역을 했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돌보았지. 또 사역하는 동안에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훼방도 당했지. 가족조차도 이해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어. 이렇게 끝까지 따르면 곧 이기는 자가 되는 거야.’

사실, 이렇게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심지와 믿음은 확실히 사람들이 탄복하고 칭찬해 줄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깨달음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고생 하면서 사역하고, 주님의 이름을 굳게 지키면, 이기는 자가 된다는 관점은 정확한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늠해야만 정확합니다. 계시록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4~5),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록 7:14)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탄의 포위 공격 아래에서, 즉 흑암 세력 속에서도 굳게 설 수 있고 원래의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지킬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을 지킬 수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 굳게 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이기는 자다.』, 『재난 전에 온전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에 의해 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이며, 이긴 남자 아이이고, 그리스도의 정병(精兵)이다.』 이 예언과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그 입에 거짓이 없고 마음에 간사함이 없으며,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정결케 된 사람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이기는 자는 어린양을 바짝 따르는 자들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역을 하고 말씀을 하시든 따르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죽기까지 충성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합니다.이런 기준에 도달해야만 진정한 이기는 자라고 할 수 있으며 고생을 하고 사역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할 뿐만 아니라, 핍박이나 환난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이기는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비록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아직도 타락한 성품을 벗어버리지 못해 정결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생 하며 사역함과 동시에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며, 자신의 뜻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사역을 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이익, 지위를 탐내고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형제자매가 자신을 받들고 우러러보도록 하여 믿는 신자들을 자기 앞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면 거짓말로 속이는 것도 서슴지 않고, 명예와 이익, 지위에 관련되면 또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며 서로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우리가 고생을 하고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상과 면류관을 받기 위한 것으로, 어느 정도 사역을 하거나 고생하고 나서는 고참 티를 내면서 아주 떳떳하게 하나님을 향해 천국의 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련이 임할 때는 오해하고 원망하며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심지어 누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하면 관념이 생기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늘 죄를 짓고 죄성의 지배와 통제를 받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정결케 되거나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아직 변화되어 정결함을 얻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이기는 자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우리의 이런 태도는 확실히 이기는 자의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스가랴 13:9) 베드로전서 4장 17절에도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방에서 얻는 한 무리의 이긴 자들은 대환난 속에서 나온 자들이라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 얻어진 이 사람들은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 온갖 연단을 겪고 나서야 진정으로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사람들의 믿음은 막연하지 않고 실제적이다. 그들은 어떤 기적이나 기사도, 어떤 이적도 본 적이 없으며, 대단한 도리나 이치를 말할 수도 없고, 고매한 깨달음을 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실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에 대한 참된 인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정으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그리고 수백 번의 연단과 시련을 거쳐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자신의 타락한 본성에 대해 알고 있으며 진실한 순종에 달한 것입니다. 또 어떤 환난이나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며, 최종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사탄의 시험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포위 공격을 이겨 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다시는 타락한 성품에 의해 살지 않고, 행동이나 사람 됨됨이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며,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는 사람들로써 진정으로 이기는 자입니다. 이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타락한 사탄 본성에 대해 인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만 자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거짓말하며 속이는 사탄의 성품 등 자신이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실상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수시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할 수 있으며, 살아내는 것은 완전히 사탄의 모습이고 하나님 앞에서 살 자격이 없습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의 범함을 용납치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여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밖에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온갖 부정적인 사물에 대해서도 분별할 수 있으며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온갖 시험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은 철저히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완전히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이것이 이기는 자의 기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욥처럼 가득했던 소와 양, 거액의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으며 그의 친구가 그를 조롱하고 아내가 그의 순결을 공격했습니다. 욥을 대하는 사탄의 수단이 얼마나 잔인하든 욥은 사탄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기 2:10)라고 말했습니다. 욥은 시련이 닥쳐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났기에 환난과 시련 속에서 나온 이긴 자입니다. 또 베드로를 보면, 그는 일평생 주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본보기로 삼았으며, 하나님을 끝까지 사랑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역시 진정으로 환난 속에서 나온 이긴 자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첫 번째 익은 열매이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계시록에 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1~1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7)

이처럼 이기는 자를 온전케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시려는 사역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두 번째 성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사역을 체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또 친히 음성을 발하여 말씀으로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슬기로운 처녀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여 어린양에게서 진리와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체험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각종 타락한 성품도 서로 다른 정도의 인식이 있게 되어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큰 환난 속에서 나온 한 무리들, 진정한 의미에서 이긴 자들입니다.

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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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예수님은 온 인류의 속죄 제물인 어린양으로 비유 되었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하셨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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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하나님의 눈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은 왜 사탄이 욥을 잔인하게 공격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사흘째 되던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죄를 사해 주셨고,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셨으며, 천국의 복음을 가져왔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우정에 관한 성경 구절 ― 친구와 화목하게 지내는 법을 배우다

친구와 어떻게 지내야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까요? 아래 우정에 관한 성경 13구절과 글을 통해 친구와 화목하게 지내는 정확한 길을 찾아보세요.

부활절에 숨겨진 의미, 알고 있었습니까?

크리스천이라면 부활절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여 왜 40일 동안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지, 예수님의 뜻은 무엇인지, 여기에 숨겨진 참된 의미를 함께 알아봅시다.

매일 성경 _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난 의미는 무엇인가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제자들과 떡을 나누어 드셨으며, 심지어 도마더러 자신의 몸을 만지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뜻이 있는데, 당신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나타나신 여러 방면의 의미를 알고 있나요?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