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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부활의 의미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24:7)

여기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부활의 의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예수님 부활의 의의를 언급하면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을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왜 제삼일에 부활해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야 했을까?” 오늘 우리 같이 이 문제를 토론해봅시다.

예수님이 육신에서 역사하시는 기간에 늘 사람과 함께 드시고 함께 거하시고 함께 생활하셨으며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중 어떤 사람은 그분을 뵌 적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분을 뵌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왜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중 일부분 사람들만이 진실로 그분을 믿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단지 소수일 뿐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은 바로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이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것을 본 사람들은 큰 영향을 받았고 이런 사역은 확실히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지 못한 사람들도 들은 후에는 예수님의 크신 능력을 믿고 그분을 따르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그들의 뒤섞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가히 말해서, 예수님을 따른 대부분 사람들이 그분의 신분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완전히 믿거나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은 구경하면서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 죽으시지 않을까, 죽지 않으신다면 참 하나님이라고 믿겠어.’ 이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부터 무덤에 들려 들어가시기까지 그분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의심이었습니다. ‘인자라고, 메시아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수 있을까?!’ 이때, 그분을 따르던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던 데서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시기에 사람 마음속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역사는 절차가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일이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사실로 될 때에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의 일에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고심을 더욱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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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4 :30~32)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 :36~43)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성경의 이 두 구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신 2가지 일을 말합니다. 그럼 또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왜 이런 2가지 일을 하셨을까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이렇게 묻는 이상, 답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그때 말씀이 육신 되신 목적과 의의를 알고 있습니다. 율법시대에 하나님은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셔서 사람을 인솔하셨고 영은 사람이 보지도 못하고 더듬지도 못하기에 비록 하나님이 사람의 생활을 인솔하고 계셨지만 사람과 하나님과의 거리는 요원했고 낯설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 마음속의 태도는 두려워하고 겁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것이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본의이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고 짐작하기 아주 어렵다고 여기는 것을 바라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이 최초에 인류를 만드신 의의가 이렇다면 은혜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셔서 사람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이 2가지 일을 하신 의의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만약 예수가 너희 앞에 서서 떡을 먹는다면, 너희는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혹은, 예수가 너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식사하면서 생선도 먹고 떡도 먹는다면, 그때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한번 상상해 보아라! 만약 네가 주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껴지고, 주님은 사람을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느껴진다면, 그런 느낌은 정확하다. 그것이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들 앞에서 떡을 먹고 생선을 먹는 일로 도달하려는 효과이다. 만약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과 대화만 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뼈와 살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혼이라고 느껴지게 한다면,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실망하지 않겠느냐? 실망하게 될 때는 버림받은 느낌이 들지 않겠느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 거리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역효과를 가져오겠느냐? 사람들은 틀림없이 두려워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경원시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끊고 은혜시대 이전의 사람과 하늘의 하나님과의 관계로 되돌아갈 것이다. 사람이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영체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친근감을 잃게 하고, 동시에 또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에 있을 때 사람과 거리감 없도록 맺어 놓은 친밀한 관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만든다. 영체에 대한 사람의 느낌은 단지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말없이 응시하는 것일 뿐, 감히 가까이하지 못하고 교류하거나 대화하지 못하며, 따르고 의뢰하고 앙망하는 것은 더욱 말할 나위도 못 된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피하고 멀리하는 것을 보기 원치 않으며, 오로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게 다가가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하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면, 너의 가족, 너의 자녀가 너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가까이하지 못하며, 늘 너를 피할 때, 네가 그들을 위해 했던 모든 것이 다 그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게 될 때, 너의 심정은 어떠하겠느냐? 너는 마음이 아프지 않겠느냐? 마음이 찢어지지 않겠느냐? 이런 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피할 때, 하나님에게 생기는 심정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부활한 후, 예전 그대로 뼈와 살이 있는 형상으로 사람에게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고, 또한 사람에게 하나님을 지친(至親)으로 여기게 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하나님은 사람을 진정으로 얻을 수 있고, 사람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경배할 수 있다. 이제 너희는 내가 왜 예수가 부활한 후 떡을 먹으며 사람들에게 성경을 풀어 준 것과 제자들이 예수에게 생선을 드린 것에 관한 이 두 성경 구절을 발췌했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하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거리를 멀게 하고 싶지 않으셨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후의 예수님이 전에 사람과 함께 드시고 함께 거하시고 함께 생활하시던 주님이 아님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고 더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과 사람 사이에 지위상의 구별이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육신 중에서 자주 하시던 일련의 일들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사람과 함께 떡을 떼시고 구운 생선을 드시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셨는데, 예수님이 하신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을 본 각 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이 변하지 않으셨고 여전히 원래의 예수님이시고 비록 죽음을 겪으셨지만 또 부활하셨고 결코 사람을 떠나지 않으셨으며 여전히 사람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시고 사람을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던 주님이라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잃었던 것을 다시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했으며 아울러 앞으로 따르는 과정에서 예수님에 대해 믿음이 충만해지고 죄가 사함받을 수 있게 하시는 이 한 분의 인자를 의지하고 앙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기 시작하게 했으며 그분에게서 은혜와 축복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게 했습니다.

오늘 예수님 부활의 의의에 관해서 여기까지 교제하겠습니다. 다음번에 새로운 문제가 있으면 다시 함께 토론합시다.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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