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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3가지 근거, 알고 있습니까

2019년 01월 21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우리는 바울이 한 이 말을 볼 때마다, 고생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 나중에 꼭 주님께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과연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생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바울 자신의 관점일 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은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이적을 행하고 주님을 위해 고생하고 사역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던 많은 사람이, 그 행위로 인해 주님께 칭찬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어느 복음 사이트에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가 한 사역이나 그가 얼마만큼 바쳤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아는지, 진리를 실천했는지,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근거를 말씀하셨는데, 구원은 곧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바로 이 세 가지 방면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추구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에서 이 세 가지 근거에 대해 자세히 교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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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령의 역사를 알고 있는지에 근거

성령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면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곧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는 우리가 성령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바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권능이 있어 그 누구도 말해낼 수 없다고 느꼈으며 또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는데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기간에 주님을 알아가기 원하고 사모했으며, 또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그분의 속성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이 기초 위에 베드로를 깨우쳐 주셔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태복음 16:15~19) 예수님의 말씀에서 베드로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께서 특별히 베드로를 깨우쳐 주고, 그에게 예수님의 신분을 진정으로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보셨음과 동시에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기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했던 사람이었고, 또 성령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설령 고생을 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고 헌신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고, 심지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주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땅에서 사역하실 때,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했지만, 그들은 성령 역사의 흐름과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대해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찾고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했고, 또 당시의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해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성령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에 근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곧 길, 진리, 생명으로,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진리와 생명을 얻고 행할 길이 있게 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고 자신의 뜻과 관념에 따르지 않으며 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하면 하나님께서는 흡족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얼마만큼 말할 수 있는가를 보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실행해 낼 수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던 사람으로 하나님께 칭찬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백세 되던 해에 아들을 주셨고, 나중에 또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픔을 참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리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더더욱 아브라함을 열납하셨고 아브라함은 이로 인해 더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여기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절대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비로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에 근거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해 성품이 변화된다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네가 육적인 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관념 속에 있는 진리를 실행하며, 성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믿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관점에 근거해야 합니다. 추구 관점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정확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가는 길도 당연히 올바르고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이며 성공적으로 하나님을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이 조건 없이 거래나 요구가 없이 하나님을 칭송한 것처럼 말입니다. 욥은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지켰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욥의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는 예수님을 따랐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고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된 체험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고 이끌었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굳센 간증으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었습니다. 욥과 베드로의 추구 관점은 올바른 것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은 것으로 그들은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추구 관점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 정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모두가 복을 받고자 하는 속셈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고, 어떤 사람은 평안한 가정과 화를 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으며, 어떤 사람은 나중에 재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었건 그것을 자세히 해부해 보면 하나님을 흡족케 해 드리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육적인 이익을 위해서였고 이는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시종일관 되돌릴 수 없다면, 설령 가정과 사업을 포기하고 고생하며 사역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런 믿음에는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 그리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적은 대가를 지불하여 더 큰 축복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이 말에서 하나님을 믿는 바울의 관점은 결코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고, 나중에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바울의 말이 암시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가 한 것에 따라 면류관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증명할 수 있고.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면류관을 주시지 않는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한 이 말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하고 면류관을 주도록 하나님을 위협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에서 서로 다른 추구와 관점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결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추구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한다’라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세 가지 방면의 근거는 과거 우리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 잡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정확한 실행의 길을 찾도록 해 주었고, 어떻게 추구해야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도록 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이 교제가 주님께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크리스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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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돌아보면 예언이 경문의 글귀와 사람의 상상대로 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하루빨리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약 율법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정말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게다가 그분을 대적하고 저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 예언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분명히 쓰여져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볼 때 마리아는 분명히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이 어떻게 그녀의 몸에서 응할 수 있겠느냐고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확실히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당시에 이 사실을 믿은 사람이 또 몇이나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본 마리아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당시의 사람들이 본 것과 예언이 응한 실제 사실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또 한 곳의 예언을 봅시다. 이사야 9장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화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강생하시기 전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 근거하여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부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정권을 담당하는 메시아는 틀림없이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고, 틀림없이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떨치며 그들을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예언이 응할 때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시기는커녕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들 상상 속의 왕처럼 위풍당당하기는커녕 사람이 보기에 아주 평범한 목수였으며, 군사를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기는커녕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언의 응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상상과 예언의 실제적 응함은 정말로 천지차였으며, 예언의 응함은 완전히 사람의 상상에 부합되지 않았고 사람의 관념에도 부합되지 않았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또 메시야의 도래를 저버리고 대적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메시야의 예언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찼고 예언의 응함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응했을 때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극력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그들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실패한 원인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구약의 예언을 지키면서 메시야의 도래를 대적한 것은 설마 예언이 틀린 것이란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경문의 글귀만 너무 중요시하고 오히려 예언이 응하는 실질은 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언은 그들이 메시아를 알고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본이 되고 메시아를 저버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망국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이미 마지막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글자 뜻대로 “주님이 어떻게 가셨으면 그대로 오신다”고 이해하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바라고 상상한 것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직면해야 하겠습니까? 경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자신의 상상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겠습니까 아니면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전히 바리새인처럼 다시 오신 예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겠습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고 진리의 성령이 이미 인간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백만 자의 말씀을 발표하셨고 작은 책을 펼치셨으며 하나님의 6천년의 경영 계획의 모든 비밀을 전 인류에게 풀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가 중국에서 전개된 지 20여 년간 각종각파는 마치 깨끗이 정리된 것 같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다 각종 각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종교계에서 기세 드높이 확장될 때 이방인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이 도둑 같이 오신다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응했습니다. 이 단계를 은밀한 강림이라고 칭하는 까닭은 이 단계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다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몸에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은밀한 것입니다. 이것도 베드로전서 4장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를 응했고 열 처녀의 비유를 응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사람은 먼저 알게 되고(외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되고(열 처녀) 어떤 사람은 모릅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외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맹목적으로 정죄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이 오셔서 추수하고 키질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며 만교가 하나로 되는 등의 예언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끊임없는 확장에 따라 점차 응했습니다. 주님이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다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것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 수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구주 예수가 여전히 사람의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로 되어 사람에게 전혀 노하지 않고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 여전히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도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였고 그를 기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말씀이 ‘응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 지극히 높은 자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기대하던 인류 가운데 강림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서 양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생수를 부어주며, 은혜와 자애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는데 매우 생생하다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람이 어찌 거룩한 구주 예수가 비록 자애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를 알겠는가? 사람들이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그가 또 어찌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줄곧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는 자애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그가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 뿐 그가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한, 권세를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의 돌아옴을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케 하였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오히려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은밀히 역사하시는 기간에 무릇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의 사역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으로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정죄하고 모독한 탓에 하나님에 의해 악한 자의 행렬에 들게 되었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일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기호이다. 너희들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 오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네가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언어를 본 후에, 이런 말씀이 단지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에 부합되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여긴다면, 너는 이 만분의 일의 언어 가운데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너에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너무 자고(自高)하지 말라고 권한다. 너의 조금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장차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인데, 네가 자세히 고찰하고 반복적으로 상고하면, 너는 이 마디마디의 말씀이 도대체 진리인가 아닌가, 생명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몇 마디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정죄하여, “이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온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내가 권하는데 너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여라! 너희들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발표한 언어를 정죄하지 말고, 미혹받을까봐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렇다면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양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만 하나님이 이미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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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열 처녀의 비유"를 비롯해 진행된 토론

열 처녀의 비유를 보게 되면 누구나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가 슬기로운 처녀이고, 어떤 이가 미련한 처녀 인지 알고 계십니까? 또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을까요?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

성경에서 말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많은 주 안의 형제자매들은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역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럼 성경의 예언은 정말로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이루어지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