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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3가지 근거, 알고 있습니까

2019년 01월 21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우리는 바울이 한 이 말을 볼 때마다, 고생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 나중에 꼭 주님께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사실이 과연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서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생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바울 자신의 관점일 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은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이적을 행하고 주님을 위해 고생하고 사역하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던 많은 사람이, 그 행위로 인해 주님께 칭찬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저는 어느 복음 사이트에서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가 한 사역이나 그가 얼마만큼 바쳤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아는지, 진리를 실천했는지,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근거를 말씀하셨는데, 구원은 곧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핵심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는 바로 이 세 가지 방면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추구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에서 이 세 가지 근거에 대해 자세히 교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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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령의 역사를 알고 있는지에 근거

성령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면 곧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곧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곧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는 우리가 성령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바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첫 번째 근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베드로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권능이 있어 그 누구도 말해낼 수 없다고 느꼈으며 또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는데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던 기간에 주님을 알아가기 원하고 사모했으며, 또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통해 그분의 속성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이 기초 위에 베드로를 깨우쳐 주셔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바로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태복음 16:15~19) 예수님의 말씀에서 베드로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께서 특별히 베드로를 깨우쳐 주고, 그에게 예수님의 신분을 진정으로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보셨음과 동시에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기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베드로가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했던 사람이었고, 또 성령 역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설령 고생을 하면서 사역하고 모든 것을 기꺼이 버리고 헌신해도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고, 심지어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주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땅에서 사역하실 때,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방곡곡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많은 것을 버리고 헌신했지만, 그들은 성령 역사의 흐름과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대해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찾고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했고, 또 당시의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해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성령 역사를 아는 것은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에 근거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곧 길, 진리, 생명으로, 진리를 깨닫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해야 진리와 생명을 얻고 행할 길이 있게 되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하고 자신의 뜻과 관념에 따르지 않으며 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하면 하나님께서는 흡족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얼마만큼 말할 수 있는가를 보시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실행해 낼 수 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던 사람으로 하나님께 칭찬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백세 되던 해에 아들을 주셨고, 나중에 또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픔을 참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리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보시고 더더욱 아브라함을 열납하셨고 아브라함은 이로 인해 더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여기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절대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이 비로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준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사람이 추구하는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에 근거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해 성품이 변화된다면, 너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네가 육적인 복을 추구하고 자신의 관념 속에 있는 진리를 실행하며, 성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육신의 하나님께 전혀 순종하지 않은 채 여전히 막연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면, 지금 네가 추구하는 것은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것은 네가 실패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네가 온전케 될지, 도태될지는 너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믿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관점에 근거해야 합니다. 추구 관점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고 정확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가는 길도 당연히 올바르고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이며 성공적으로 하나님을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욥이 조건 없이 거래나 요구가 없이 하나님을 칭송한 것처럼 말입니다. 욥은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고하게 지켰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욥의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는 예수님을 따랐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고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실된 체험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고 이끌었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여 굳센 간증으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었습니다. 욥과 베드로의 추구 관점은 올바른 것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맞은 것으로 그들은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추구 관점이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 정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모두가 복을 받고자 하는 속셈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을 믿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고, 어떤 사람은 평안한 가정과 화를 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으며, 어떤 사람은 나중에 재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었건 그것을 자세히 해부해 보면 하나님을 흡족케 해 드리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육적인 이익을 위해서였고 이는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시종일관 되돌릴 수 없다면, 설령 가정과 사업을 포기하고 고생하며 사역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런 믿음에는 자신만의 속셈과 목적, 그리고 사리사욕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적은 대가를 지불하여 더 큰 축복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으로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7~8) 이 말에서 하나님을 믿는 바울의 관점은 결코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피조물로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한 것이 아니고, 나중에 의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서 왕 노릇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바울의 말이 암시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내가 한 것에 따라 면류관을 주신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증명할 수 있고. 만일 하나님이 나에게 면류관을 주시지 않는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한 이 말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부인하고 면류관을 주도록 하나님을 위협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이 말씀에서 서로 다른 추구와 관점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결말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추구 관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한다’라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근거 중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세 가지 방면의 근거는 과거 우리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바로 잡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정확한 실행의 길을 찾도록 해 주었고, 어떻게 추구해야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알도록 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이 교제가 주님께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크리스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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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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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은 무엇일까?

창밖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서찬이 전도하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 9시가 되었다. 아내가 바삐 음식을 데우며 식사 준비를 할 때, 딸아이 소원도 교회에서 돌아왔다. 서찬은 얼른 딸아이에게 밥을 주며 함께 먹으려 했다. 그런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앞에 둔 딸아이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서찬이 딸에게 물었다. "소원, 왜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니?" 딸아이가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아빠, 엄마, 제가 그동안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평상시에 목사님과 장로님이 설교하실 때, 항상 전도를 많이 해서 좋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어요.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며 헌신하고, 힘써 사역하는 사람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요. 우리도 확실히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많은 대가를 치렀어요. 하지만 주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주님은 왜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을까? 우리가 이렇게 고난 받고 헌신하며 힘써 사역하는데 마지막 날에 정말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소원의 말을 들은 서찬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소원, 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나! 주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야.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믿고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겠니?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 지금 우리는 바울의 말을 따라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양육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어. 그동안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위한 사역을 멈춘 적이 없었어. 우리가 한 모든 행동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주님이 오실 때 분명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실 거야!"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소원, 아버지 말씀이 맞단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건 틀림없이 맞아.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렴." 딸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바울의 말을 따라 행했어요. 힘써 사역하고 헌신해서 많은 대가를 치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여겼죠.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천지는 없어져도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아요. 힘써 사역한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주님은 어째서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불법을 행한 자라고 정죄하셨을까요?” 딸아이의 말에 서찬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래.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한 사람이 다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 주님의 말씀은 진리야. 이건 틀림없어.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어. 이렇게 하는 게 과연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일까?’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서찬의 생각이 끊겼다. 소원이 얼른 가서 문을 열어 보니 서찬의 조카 청현이었다.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오늘 동역자들과 함께하는 성경 읽기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마침 지나가는 길이라 오늘 모임에서 느낀 점들을 나누고 싶어서 들렸죠.”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청현, 방금 우리도 한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던 중이었단다. 때마침 잘 왔구나! 너도 생각을 말해 보렴!" 서찬이 이어서 말했다. "그래, 청현, 방금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어. 나는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라고 한 말대로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사역하고, 주의 이름을 지키고, 주의 말씀을 지켜서 주님이 오시길 깨어서 기다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9:2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야. 우리는 이렇게 하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믿어. 하지만 소원이 성경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라는 구절을 보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걱정된다고 하는구나. 힘써 사역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이야. 청현,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번 얘기해 보렴!"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오빠, 우리는 이 문제를 정말 모르겠어. 어서 오빠 생각을 말해 봐." 청현이 웃으며 말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도 성경 읽기 모임에서 이 문제를 토론하고 있어요! 우리는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하고, 바울을 본받으면 주님이 오실 때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사람의 관념에는 맞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행동의 원칙이고, 모든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죠. 깨어 기다리며,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 천국으로 들림받을 수 있을까요? 사실, 주님의 말씀이 벌써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려 주셨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주님의 말씀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지, 예수님의 이름을 지키고, 부지런히 사역하면 상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예수님은 천국의 왕이십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구원 받을 수 있는지는 주님만이 결정할 수 있어요." 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오빠 말이 맞는 거 같아.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해야만 주님의 뜻에 맞을 수 있어”. 서찬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청현, 너의 나눔은 성경에도 부합하고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했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해.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의 말을 따라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했어. 이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면 뭐겠니?” 아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청현, 설마 바울을 본받아 주님을 위해 힘써 사역하고 헌신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닐리가 있겠니? 청현이 말했다. "외삼촌, 외숙모, 우리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말해볼까요. 당시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은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전도 사역을 했어요. 사람이 보기에 좋은 행동을 많이 했고, 경건해 보였죠.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의 정죄와 저주를 받고, '일곱 가지의 화'가 임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힘써 사역했지만 종교 의식만 다루고, 성경의 지식과 이론만 이야기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았어요. 모든 행동이 복을 받고, 상을 받기 위해서였어요. 또 지위와 밥그릇 때문이었죠.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실 때, 바리새인들은 미친 듯이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하고 외식하는 본질을 완전히 드러냈어요. 이 사실을 보면, 힘써 사역하고 좋은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힘써 한 모든 사역은 사람의 좋은 행위에 속할 뿐,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볼 수 없어요. 소원이 찬성하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어. 예수님이 말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 하고 주님께 정죄 받은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같아. 힘써 사역하지만 모두 자기 뜻대로 하고, 자기가 복을 받고, 이득을 얻으려고 했던 거야.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야. 오히려 주님의 뜻은 따르지 않았어.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맞는 것 같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게 아니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는 관계없어!" 청현과 소원의 말을 듣고 난 서찬은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그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 네 생각이 맞구나. 바울의 말은 진리가 아니야.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이지. 만약 힘써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라면 그 바리새인들은 진작에 천국에 들어갔겠지, 어떻게 주님의 저주를 받았겠어! 바울의 말은 확실히 예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구나! 우리가 예전에 바울의 말을 따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던 건 정말 주님의 말씀과는 동떨어진 거였어! 우리가 계속 이렇게 추구한다면 틀림없이 주님께 버림 받을 거야!” 아내도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겉으로만 힘써 사역하고,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건, 다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구나! 청현,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니?” 청현이 계속해서 말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때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지키고, 완성할 수 있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예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처럼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한복음 14:23~24)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한복음 8: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7~39) 베드로는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바쳤어요. 주님의 마음과 요구대로 엄격히 교회를 양육했고, 자신의 득실을 위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한 적도 없었어요.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순종하며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고,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혔어요.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었어요. 또 욥도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어요. 하나님이 상을 내리든 거두어 가든, 하나님이 복을 내리든 화를 내리든 욥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어요. 그는 하나님의 눈에 온전한 사람이에요. … 등등 역대이래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어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쳤고,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았어요. 그래야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많은 고난을 받고 많은 대가를 치른 것을 봤어요. 심지어, 감옥에 가고, 순교하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았어요. 주님께 진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힘써 사역하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요.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도 지키지 않아요. 본인의 뜻에 따라 함부로 행동하고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항상 거짓말로 속여요. 모든 행동은 다 복받고, 상받기 위해서고 천국에 들어가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예요. 이런 걸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든,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닌데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아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이 때, 서찬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쑥스러운 듯 청현에게 말했다. "청현, 난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있었어! 이제야 알겠구나.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증거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거였어!” 아내도 몹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청현의 말이 맞아. 주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단순히 힘써 사역하며 헌신하는 것밖에 몰랐어. 바울의 말대로 힘써 사역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 정말 너무 어리석었어. 이제야 알겠어. 주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헌신하길 바란다는 걸. 욥과 베드로처럼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야! 가장 중요한 부분을 소홀히 하다니 정말 부끄럽구나!" 소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 밤 이렇게 나누지 않았다면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그동안 헌신했던 게 다 주님을 속이는 거고, 상을 위해 주님을 이용한 것인 줄도 모른 채 계속 잘못된 길로 갔을 거예요. 그러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그것을 밑천 삼아 주님과 거래했을 거고, 결국에는 주님께 정죄 받고, 벌을 받아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니 정말 무섭네요!" 청현이 기뻐하며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렇게 함께 나눌 수 있었던 건 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예요. 모든 영광 주님께 돌려 드립니다!" 아내, 딸, 서찬 세 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을 알고, 행할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만남의 장소인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아 지저귀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가족 교회의 집회장소에서 설교자 이선, 친구 양민(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역자)과 함께 사역자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중에 그들은 구원과 천국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이선이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주께선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린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룩하시다는 건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 동역자가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여기서 예수께서는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면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마건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멘! 서 동역자가 한 말이 맞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수금이 일어나 의문을 제기했다. “주 예수께서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하셨겠습니까?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의식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양민이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우리는 예수의 구원으로 더는 죄에 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죄가 없다거나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타락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했었죠.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18~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죠. 바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 무의식중에 죄를 범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없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라고 했죠. 바울의 고민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겐 오만함, 이기심, 간사함, 탐욕, 사악함 등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흐름을 좇고, 지위나 부, 명예를 추구하고 죄 속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천국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아직도 죄중에 살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말에 따르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죄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 양민이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던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 받을 대상이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몰래 제물을 훔쳐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겁 많고, 음탕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정죄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또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들은 형벌도 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에게 그 어떠한 편견도, 거역도, 대적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선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서 동역자가 반박했다. “예수의 속죄제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다고요! 양 자매님, 지금 예수의 구원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럼 자매님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신 겁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양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형제자매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주 예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여러분이 순수하게 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에요. 구원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걸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율법시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람들은 율법만 지키면 정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말기,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저는 소와 양, 비둘기를 여호와의 제단에 올리기도 했죠. 사람들의 죄는 점점 커졌고, 속죄제를 통해 속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었죠. 하나님께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율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인간의 죄는 사함 받아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구원의 정의에 대해 어느 한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 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의 구원을 얻으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로부터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는 본성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계속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곤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주께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으며 영원히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서서히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층 무거워진 어투로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양 자매님 말이 맞아요. 주께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죄악 속에 살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린 정말 하나님께 완전히 구원받지도 않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부족한 것 같군요!” 양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 34~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직 정결케 되진 않았습니다. 주님을 뵙거나 천국에 들어가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때 안수금이 일어나 말했다. “양 자매님, 방금 교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정결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정결함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결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의견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양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성경에서 보았듯이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사역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된 성품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예수는 구원의 사역만 행하셨을 뿐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시진 않았습니다. 오직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만이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주고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겨주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주실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깨끗이 씻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바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수금이 기뻐하며 일어나 말했다.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얻긴 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은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씻겨지지 않아 예수께서 재림을 통해 행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이선이 기뻐하여 일어나 말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토론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찾고 정결함을 받아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일 집회에서 계속 교통하도록 해요! 양 자매님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양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집회장소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계시록 20장에는 주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을 하신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지막 날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에 대한 상상과 추측을 갖게 되는데, 아래 형제자매님들의 교재를 통해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