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은 반복해서 짓는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2018년 10월 09일

청화 자매님:

안녕하세요! 몇 번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예전에 성경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정말 기쁘고, 주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요즘 제 마음이 답답해서 메일로 자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저는 주님을 믿고 나서 주님이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마태복음 5:39~40)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로웠어요. 전 주님이 우리에게 포용하고 인내하며, 남을 나처럼 사랑하며 살라고 하신 것을 알고 있어요. 평소 실생활에서 저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싶었지만 가족이 제 뜻과 다르게 일을 할 때면 저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못하고 화내고, 불평하며, 가족들에게 화풀이도 했어요. 늘 어쩔 수 없이 죄 속에서 살았죠. 겉으로는 애써 자제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미움으로 가득 차서 항상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어요. 성경에서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라고 말씀하셨어요.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저의 삶이 변하지 않는데, 주님이 어찌 항상 죄 속에서 사는 저 같은 사람을 기뻐하실 수 있겠어요? 이 때문에 저는 몹시 괴로워요.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혹시라도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함께 나누며 찾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리무

 

리무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의 메일을 받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지금 자매님의 관심사는 어떻게 죄를 벗고 정결케 되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사실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도 모두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답니다. 본인이 항상 죄를 지어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며 늘 걱정해요.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성경 구절과 진리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았고, 인터넷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토론하기도 했어요.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우리가 항상 죄짓는 근원을 알게 하여 주시고, 죄에서 벗어나 정결함을 얻어 들림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실행의 길을 알게 해 주셨어요. 저는 이런 빛 비춤을 자매님과 함께 교재하려고 해요. 주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1. 범죄의 근원을 찾아내다

우리가 죄짓는 근원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람의 본성은 나의 실질과 확연히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의 타락 본성은 다 사탄에게서 왔고, 사람의 본성은 사탄의 가공을 거친 것이고 사탄에 의해 타락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함의 온상에서(직역: 추한 것에 물들며)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갖춰져 있을 리가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실질을 가지고 태어날 리도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본성이 갖춰져 있는데…』, 『사람은 사탄에게 너무 깊이 타락되어 사람마다 핏속에는 사탄의 독소가 흐르고 있다. 보다시피, 사람의 본성은 다 타락되어 사악하고 반동적이며, 다 사탄의 철학으로 가득 차 있고 푹 젖어 있어 완전히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된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류가 항상 죄짓는 근원이 사탄에 의해 타락되었기 때문이고, 사탄은 원래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에 사탄이 모든 사악한 사물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후 사람은 사탄의 후예가 되었고, 사탄의 본성이 생겨 자연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최초에 사탄은 거짓말로 하와를 미혹해서 죄를 짓게 했고, 그 후에는 과학, 지식, 전통문화, 미신, 사회 조류 등을 통해 사탄의 철학, 사탄의 독소를 사람 안에 주입시켰어요. 인류는 진리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부지중에 사탄의 철학, 사탄의 독소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데의 기준이 되었죠. 예를 들면, ‘원하는 걸 얻으려면 자신부터 사랑하라’,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창성할 것이고, 거역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등등 이런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명이 되어 우리가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교활하고, 악독하게 변했어요. 항상 자신의 지위, 이익을 위해 사람들과 아귀다툼하며 서로 뺏고 빼앗았어요. 가끔씩 포용하고 인내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억제에 불과했고 겉모습의 변화일뿐 오래가지 못했죠. 우리 안의 사탄 본성이 해결되지 않아 우리는 적절한 환경이 오면 천연적인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죠. 마치 땅속의 부추 뿌리를 뽑지 않으면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는 것과 같은 거예요 . 그래서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힌 사탄의 타락한 성품과 사탄의 독소를 완전히 제거해야만 진정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2.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는 방법

어떤 신도들은 육체적으로 고난을 받고, 자신을 극복하고, 금식 기도를 하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어떤 신도들은 주님께 죄를 깊이 뉘우치고, 통곡하면 이것으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그러나 사실, 우리 각 사람 모두가 자신이 맞다고 여기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을 오랫동안 실행해봤지만 여전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결케 되지 못했어요. 우리의 사탄 본성이 깊이 뿌리 박혀 있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않고는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죠.

은혜시대에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하셨을 뿐, 인류의 죄성을 완전히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지 않았어요. 때문에 인류의 죄성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정결케 될 수 없었죠. 그럼 어떻게 해야 죄를 벗고 정결케 되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복음 17:17),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2) 성경에는 또 이런 말씀도 있어요.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이 성경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인자로 땅에 와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사람 안의 사탄 본성을 철저히 심판하여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죄짓는 본성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죠. 성경에서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저의 마음은 아주 환해졌어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인도와 깨우침임을 알고, 무릎 꿇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어요.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셔서 하시는 심판 사역을 찾으려고 저는 시험 삼아 인터넷에 ‘심판’, ‘인자’ 등 키워드를 검색했어요. 무심코 한 사이트를 열어봤더니, 거기엔 예수님은 이미 돌아오셔서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말세의 심판 사역을 하셨다고 증거하는 것이었어요. 그 정보를 본 저는 너무 흥분되었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누군가 공개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하는 것을 보고 얼른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온라인 상담’에 질문을 남겼더니, ‘장화’라는 자매님이 바로 저에게 연락을 주었어요. 그리고 제 질문의 답으로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나눴어요. 『말세의 그리스도는 다방면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본질을 폭로하며 사람의 언행을 분석하는데, 이런 말씀에는 다방면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의 본분,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해야 하는지,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 등이다. 이런 말씀은 다 사람의 본질과 타락된 성품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버렸는지를 폭로하는 말씀들은 더더욱 사람이 원래 사탄의 화신이고 하나님의 적대 세력이라는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는 심판 사역은 두세 마디 말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폭로하고 책망하며 훈계하는 것이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폭로와 책망 그리고 훈계는 결코 일반적인 언어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는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라야 심판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으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진심으로 승복하고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할 수 있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타락함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 사역이자 제2단계 구원 사역이기도 하다.』

자매님이 말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정결케 되고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반드시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하시는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 말씀의 심판에서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한 사실의 진상과 사탄의 타락한 본성을 알게 되었어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우리 안의 각종 사탄의 독소를 제거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긍정적으로 살 수 있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예전에 우리는 사탄의 각종 타락한 성품과 철학 법칙에 따라 살았고, 이런 것들을 자기 삶의 추구 목표와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했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읽은 후, 하나님 말씀의 심판을 통해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궤사함 등 타락한 본성에 의해 사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얼마나 인간답지 않은지를 보여 주셨어요. 또 사탄에 속한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민과 고통만 가져다 줄 뿐이고, 우리에게 백해무익한 것을 보면 마음속에서부터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한 본성을 증오하게 되고, 완전히 그것을 버리고 배반하기를 바라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이 모두 진리이고, 인류가 마땅히 추구하고 얻어야 할 생명 실제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으로부터 진리를 사모하고, 진리를 지향하려는 각오가 생겨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죠.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각오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인류가 사탄에게 6천년 동안 타락되었기 때문에 사탄의 각종 본성,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어 단번에 변화될 수 없어요. 오랫동안 하나님의 시련과 연단을 겪고, 부딪히고 깨져야만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완전히 정결케 될 수 있고,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될 수 있어요. 성경에서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다니엘 12:9~10)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어야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과 장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저의 마음이 유난히 밝아졌어요. 드디어 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죄짓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세 심판, 형벌 사역을 받아들이는 거였어요!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세 심판, 형벌 사역에 대해 제가 더 잘 알 수 있도록 직접 겪었던 체험을 얘기해 주었어요. 제가 듣고 특별히 도움을 받아 자매님과 공유하고 싶은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래요.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다,

3. 형벌 심판을 체험한 후 얻은 변화에 대한 간증

자매님은 본인이 예전에 성품이 교만하여 자신이 사역자라는 이유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말을 듣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형제자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사역자인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었고, 사람들과 말을 할 때도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심지어는 지위로 사람을 억누르려고 했답니다. 나중에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몹시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화를 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죠.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게 되었어요.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타락과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하나님 말씀의 심판에서 장 자매님은 자신이 항상 남들보다 위에 있으려 하고, 사역자의 위치에서 형제자매가 모두 자기 말을 듣도록 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형제자매가 자신의 말을 안 들으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이미지가 도전 받고 있다는 생각에 화를 내어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려고 했죠. 존귀하신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려고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시고, 또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세리의 죄를 사해 주셨던 것으로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 성품을 보여주셨고, 사람에게 용서와 관용이 가득하셨죠. 하나님의 속성과 비교하니 자신이 유로한 것은 완전히 천사장의 교만하고, 유아독존의 성품이었고, 지위가 조금만 있어도 종잡을 수 없고, 심지어 지위로 사람을 억누르려 했어요. 자신의 추악한 모습과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을 보니 조금도 인간다운 면이 없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자매님의 패역에 따라 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고, 그도 형제자매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피조물로 타락한 인류에 속하며 자신의 지위가 형제자매보다 높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깨우쳐 주셨어요. 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게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수단과 방법이기에, 사람은 양심과 이성을 잃어 정상적인 인성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어요. 그 후 자매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역자의 본분을 하게 된 것은 부탁이고, 임무이고, 사명이지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매님은 더 이상 사탄의 타락한 성품대로 살고 싶지 않았고, 사탄을 철저히 배반하겠다는 다짐을 하였어요. 그 뒤로 육체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서 조금씩 지위의 마음을 내려놓고, 형제자매와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형제자매들이 다른 의견이 있을 때에도 올바르게 대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지위로 남을 억느루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또 형제자매의 제안에도 귀를 귀울이며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로 인해 자매님에게 이런 변화가 있게 된 것입니다.

리무 자매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장화 자매님의 나눔을 통해 우리가 지금 부지중에 죄를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체험하고,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알게 되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신이 실행해야 할 길을 찾아 타락한 성품을 배반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어요. 그래야 우리 안의 사탄 성품도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고, 최종에는 하나님께 정결함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요.

성경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성경 예언이 하나씩 성취되면서, 성도들은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데 많은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경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누구도 그 참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는가?

'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무더운 오후, 매미는 나무에 붙어 맴맴맴맴 끊임없이 울고, 길가의 화초와 나무는 혹서에 시달려서 모두 힘 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 주택가에서 한나가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지금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의 모습과 세상의 정세로 봤을 때 말세는 이미 왔어요!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역자들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딴 생각을 하며 성경을 뒤적이고, 어떤 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고, 어떤 이는 귓속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속삭이기도 했다. 이 자매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형제자매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꾸 늦어지다 보니 다들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어요! 각처에서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네 번의 핏빛달도 이미 나타났어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아직 들림 받지 못했는데, 누가 연약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장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아이 참! 누가 아니래요! 대재난이 곧 닥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들림 받지 못했으니 대체 뭐가 문제죠? 참, 송 자매님, 자매님은 계속 외지에 있느라 우리 동역자 모임에 어렵게 참석하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송가인은 모두를 보더니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기본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어요.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들림 받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을 가진 전 애가 타서 사방으로 구하러 다녔고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됐어요. 원래, '들림 받다'는 우리가 상상한 그런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송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래 무거웠던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져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송가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정중하게 말했다. “송가인 자매님,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매사에 성경을 따라야 해요.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어요. 자매님이 '들림 받다'가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송가인을 향했다…. 송가인은 미소를 띤 채 모두를 보며 말했다. "'들림 받다'가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려진다라는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 먼저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찾아봐요. 계시록 21장 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셨구요. 이 예언들 중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땅에 있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에요. 예언에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하셨어요. 이런 예언은 우리가 결국에는 땅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만약 우리가 '들림 받다'를 하늘로 끌어올려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어요? 계시록의 이 예언들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겠어요?" 장 형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는 뜻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할 줄이야! 전에 우리는 왜 그 뜻을 읽어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우리는 하늘로 들림 받아 가려고만 했어요. 이건 주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거예요!" 송가인이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땅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가 땅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를 하늘로 보내 살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어요. 그때부터 인류의 조상은 땅에서 그들의 범죄 후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범죄 후의 사람이 땅에서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도 당연히 땅에서 이루어지죠. 율법 시대에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서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이끄셨어요. 은혜 시대,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셨죠. 이런 사역은 다 땅에서 하신 거예요. 또 계시록에 앞으로 하나님이 남아있는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귀착지는 여전히 땅에 있다고 예언했어요." 임 자매가 손에 든 물컵을 얼른 내려놓으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예전에 저는 우리의 육체적인 몸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무거운 몸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보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어요!” 형제자매님들의 한바탕 말에 한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송가인의 나눔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송가인 자매님, 자매님이 하신 말은 일리가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 에녹과 엘리아가 들림 받아 승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하죠?” 송가인은 한나를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 39~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빌립이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려 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빌립은 분명 주님에게 들림 받아 하늘로 갔어요. 하지만 사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에서 주님의 뜻을 행했다고 했어요. 거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고, 사실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예수님만이 천국의 대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만약 우리의 생각으로 에녹과 엘리아가 하늘로 들림 받았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우리의 상상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할까요?" 한나는 그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했다.설마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들림 받다'가 정말 틀린 것일까?’ 마음속에서 한바탕 격렬한 전쟁이 일어난 후, 그는 송가인에게 질문했다. "송가인 자매님,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음'이 틀렸다면 무엇이 진정한 '들림 받음'인지 한번 얘기해 보세요." 송가인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나눌 수 있는 한 단락을 적어 왔으니까 여러분에게 읽어 드릴게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들림 받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율법 시대 말기,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들림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말세의 오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들림 받음이에요.” 이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진정한 '들림 받음'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장 형제가 감격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라면 몇 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고 '신랑의 음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게 들림 받는 길이 생겼어요!” 송가인과 동역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

기독교 신자의 일기 — 천국은 하늘에 있을까요

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뤄질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지 알고 있습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지, 성경에는 또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천국'은 정말 하늘에 있을까요?

저는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해외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저의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천국'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천국'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들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와 같은 말씀입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성경 구절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상상으로 가득했는데 천국은 반드시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잖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될 거야. 장래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늘로 영접할 것인데 그럼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런 성경 구절들을 볼 때마다 천국에 대해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처럼 바닥은 보석으로 깔려 있고, 성(城)은 황금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에 있는 사람은 다 영화에 나오는 신선들처럼 자유자재로 살면서 영생을 누릴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으로 가득 찼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배에서 예수님을 믿는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이 모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읽다 보니 성경 분문의 어떤 말씀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6장 10절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런 말씀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인가? 천국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또 땅에 있을 수가 있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이 요한에게 계시한 이상이므로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에 베드로 후서 1장 20~21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맞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기에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저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2년, 설이 막 지나자 저는 승선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오후, 저의 먼 친척인 고모 할머니(그분은 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저에게 전해주셨던 분입니다.)가 갑자기 엄청난 희소식을 알려 주겠다며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시에 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흥분하시며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단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거야. 성경에서 말한 천국이 이미 내려온 거라구!” 저는 놀라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구요? 천국이 내려왔다구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돌아오셨단다. 그분은 바로 말세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로는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자신의 추악하고 패괴(역주: 부패, 타락, 망가짐을 포함하여 더 깊은 뜻이 있음)된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인데 이 단계사역을 마치시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려 상선벌악 하신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훼멸될 것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 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 되고 땅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되는 것이란다. 그때 인류는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단다.” 고모 할머니가 전해준 희소식을 들으면서 저 역시 조금 격동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있다고 하시는 걸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지 아니면 땅에 있는지 하는 이 문제로 몇 년간 계속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그때 저는 한번 잘 찾고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방금 할머니께서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땅에서 생활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천국에 관한 기록이 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하늘로 영접한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관점은 다 똑같은데 모두가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지.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반드시 그들을 하늘 위로 이끌어 올려 거기에서 살게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자세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도 땅에서 하셨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이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니?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13절에서 말씀하셨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보듯이 인류는 오직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할머니의 교통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지으셨고, 당시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 역시 땅에 있었어.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서 살 거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왜 그들을 하늘에 두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사람이 정말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어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훼멸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고 사람도 더 이상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계속 전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지 않고, 사람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처소에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살 수 없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사람이 안식할 곳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안식처는 하늘에 있다. 사람은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를 이끄는데,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이고 사람은 여전히 육신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식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단다. 사람과 하나님은 같은 경지에서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고 땅은 사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단지 피조물로 오직 땅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지막 처소도 땅에 있는 것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온 땅의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인류는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데, 천국의 생활이란 바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란다.” 할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듣고 난 후, 저는 감탄조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셨어요.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생존 환경은 바로 땅에 있기 때문이네요. 그러므로 인류의 마지막 처소 역시 땅에 있어요.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요. 알고 보니 천국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후에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저의 관념과 상상을 깨뜨렸고 또 저에게 실제적인 희망을 가져다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참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의 아내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저에게 메모리 카드를 주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배에서 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묵상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인을 떼신 어린양이고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여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알려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마지막 처소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게 되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전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창조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그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땅에서였는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땅 위에 아주 적절하게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아주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말세에 그분은 다시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그분의 6천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며,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하늘의 생활같이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의 생활은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생활이고 다군다나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말세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우여곡절 끝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와 연락이 닿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양육을 누리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달콤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할 데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

계시록 5장 1절에 기록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에 대한 답을 찾다

많은 성도들은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에 대한 견해가 많습니다. 계시록은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예언서이기에, 일곱 인으로 봉인된 '책'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야 펼칠 수 있는데, 그러면 “인봉된 책” 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recommendpost id="20993"] [recommendpost id="20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