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크리스천으로서 예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19년 08월 09일

신앙 Q&A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예배드리는 게 좀 고민이 되는데요, 낮에는 회사 일로 바쁘고 밤에는 잠도 잘 못 자서 시간 맞춰 가는 게 좀 그렇고 구속받는 느낌도 들어서 좀 부담됩니다. 영적으로 필요할 때만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저의 영적 상태가 왜 이런 걸까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세현


세현 자매님:

안녕하세요! 시간 맞춰 예배드리기가 싫고 영적으로 필요할 때만 형제자매와 교제를 나누면 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요, 사실 이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배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시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와 관련된 진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부분의 진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제가 아는 만큼 나눠 보겠습니다. 자매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만드신 목적은 인류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주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예배와 기도, 또 진리 교제, 노래를 통한 하나님 찬양은 우리가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과정이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가장 단순한 개념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신앙에 불과하며,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의 함의는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들은 하나님을 취미로만 믿을 뿐이고, 하나님을 정신적 의지처로만 여길 뿐이다. …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볼까?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

이 말씀에서 마음속으로만 믿으며 진리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정신적인 의지처나 취미로 간주한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와 자주 기도하고, 말씀을 많이 보며, 예배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우리의 실제 삶 속에 가져와 실천으로 옮기고, 매일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특히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이 생겨 자신의 타락한 성품이 나왔을 때 하나님 앞으로 와 말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에서 우리가 어떤 과제를 배워야 하는지, 어떤 진리를 실행하고 진입해야 하는지를 구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천으로 옮기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알아 가고, 따르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겪어야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도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만약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와 정상 관계를 맺지 않고, 예배와 기도도 하지 않고, 진리도 나누지 않고 그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을뿐더러 그저 취미로 그를 믿는다면 몇 년을 믿는다고 해도 타락한 성품에는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 수도 없게 됩니다. 이렇게 믿는 방식은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예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더라도 칭찬을 받을 수 없고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예배,기도,

교회 생활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교회 생활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는 걸 말합니다. 사실 교회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진리에 진입하는 삶을 깨닫는 과정이자, 성령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성령 역사로 말미암아 맺게 되는 결실인 것입니다. 또 교회 생활 속에서 서로 공급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을 증거해야만 성령 역사를 얻고 하나님께 정결케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구원을 받으려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19~20) 여기서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질은 한계가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관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 속의 진리와 비밀을 깨닫기가 어렵고, 미약하게나마 깨우치더라도 대부분 글귀의 의미에 그치며,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깨닫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교회 생활을 함으로써 형제자매와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겪은 체험을 함께 나누다 보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더 많은 빛과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해서도 더 많이 깨닫고, 더 분명히 알게 되고, 실행의 길도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드리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해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를 깨달은 형제자매가 우리를 양육해 주고 이끌어 주게 되면 하나님 말씀속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또 문제나 어려운 점 역시 진리를 깨달으면서 풀리게 되죠.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수록 깨닫고 얻는 진리도 많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갖가지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 살지 않게 되고, 아주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일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따라 실행하게 되면 서서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일을 행하는 원칙과 방향이 됩니다. 또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올바른 길에 들어설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지 않고 혼자 가끔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걸로 족한다면 얻을 수 있는 성령 역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다면 진리를 이해하거나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없게 되고, 어려움이나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도 모르게 됩니다. 어떤 때는 자기의 관념과 상상대로 행동에 옮겼다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성령의 함께하심도 잃게 되죠.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생활이 비정상이면 지금 하나님이 하고 있는 사역을 분명하게 알 수 없고, 늘 너의 관념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르고 싶어도 마음속에서 힘이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지금 어떻게 하든 사람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고, 사람에게 협력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성령의 역사를 얻기가 어렵다. …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고 더 깊이 진입하기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것까지 모두 거두어 간다. 사람은 늘 안일을 탐하고 이미 있는 것을 누리려고만 하며, 대가도 치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얻으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사치스러운 생각이다. 작은 대가조차 치르지 않고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를 추구할 때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항상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규례적으로라도 지켜야 하며, 시련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잃지 말고, 기도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떠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줄 때도 진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영 생활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상적인 영 생활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예배하는 것은 모두 영 생활의 일부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해도 믿음마저 잃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바쁘고 육적으로 힘들더라도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최소한 정상적인 영 생활을 지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어떤 일에 직면하든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굳건해지고, 어떤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길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살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3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살길 바라시며, 세상에 얽매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길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항상 일이 힘들다고 느끼고 그것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이러한 생각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입니다. 사탄의 계략이 그 속에 숨어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려는 것이 바로 사탄이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탄이 파괴하려는 것은 사람을 통해 조금도 숨김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탄이 사람에게서 파괴하는 것 또한 눈에 띄는 표시가 있는데, 사람이 갈수록 타락하고 상태가 점점 나빠지며 심한 자는 사탄에게 사로잡혀 가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과 대적하며 우리의 약점이나 치명적인 부분을 잡아 공격합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그 후 우리 속에는 사탄의 독소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과 명예, 지위와 육적인 즐거움을 좋아하게 된 것입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든 그런 것들을 얻으려고 하죠. 사탄은 이런 우리의 패괴된 성품을 이용해 육적인 것들에 얽매이게 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도 방해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우리를 삼켜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육적인 욕망에 빠져 계속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사탄의 덫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사악한 흐름에 따라 아무런 제약 없이 방탕한 삶을 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좋은 기회를 줍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살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 보살핌과 보호를 얻게 되는 거죠.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 관계로 돌아오게 되면 영적으로도 민감해져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과 좋아하시는 일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고,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됩니다. 그렇게 육적인 쾌락을 좇아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축복을 받게 되는 거죠. 따라서 교회 생활은 우리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지고 내적으로 나빠질수록 하나님 앞으로 와 기도하고 의지하며 교회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확고한 다짐을 세워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동역할 때 사탄은 자신의 계략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도망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게 되면 예배가 구속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방식이라고 느끼게 될 겁니다.

세현 자매님, 오늘은 여기까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자매님에게 도움이 됐길 바라며,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다음에 또 다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신앙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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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하나님께서 이전에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하신 역사를 회상해보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면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였고 직접 조물주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너무나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예수님이 뜻밖에 우리 가운데 은밀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마치 당시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역사하신 것이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비록 그분의 사역이 완전히 저의 상상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와 위력을 지닌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력을 회상하면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에 직면하여 저는 진심으로 순복하고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대조하고 가늠하였으며 자기의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미 적그리스도로 되어 하나님께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념을 내려놓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실질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실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저는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초의 저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주님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주님의 도래를 저버리고 주님의 도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는 공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메시아를 아예 본 적도 없고 그저 구약 성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소식만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여태껏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역사하시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접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하신 3년 반 동안에 많은 사역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조금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0)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단지 신약 성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조금 알게 된 것이지 전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모두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며, 이 속에는 또 사람의 상상이 너무 많아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시에 성전 안의 사람들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규정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저버릴 수 있었는데, 설마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념과 상상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바리새인과 같은 선택에 직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님, 아래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더욱 분명히 보고 일찌감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영원한 징벌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표현과 오늘날 각 종파에서 말세의 도성육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을 대조해봅시다. 형제자매 모두가 자신의 귀숙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를 신중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1. 오늘의 신도와 바리새인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의 글귀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관념 속에서 오실 그분은 마땅히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며, 다윗처럼 싸움에 능하여 그들을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사 7:14,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상상한 것과 같지 않았고, 그들이 본 것은 성경의 예언(문자 표면상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본 예수님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요 7:52 참조) 성경 예언에는 오실 그분이 임마누엘로 불린다고 했지만 오신 분은 예수로 불렸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와서 정권을 담당하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정권을 담당하시기는커녕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절대 오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에 그들은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상상과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는 안 되고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유대인의 의복을 입고 유대인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날아오셔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은 마치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져 지워 버릴 수 없는 듯하고, 게다가 사람은 또 성경의 근거를(이런 근거는 다 글자 표면상의 뜻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 11)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니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이런 관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런 상상과 관념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상상과 참으로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차 육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굳어진 상상과 관념으로 대조해보는데, 맞추지 못하면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합니다. 거짓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2.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전하는 도가 아무리 높아도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5-49) 이 두 곳의 경문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자신이 율법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들을 미혹하여 “당신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생명도 작으니까 저의 말을 들으면 틀릴 리가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세요.” “그들이 아무리 잘 설교해도 듣지 마세요. 참 도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의 실질은 바리새인들의 표현과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오만 자대(自大)와 진리에 불복하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3.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각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모독하고 정죄합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마 22:15-16)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 그들의 오만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천고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재차 도성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많은 언어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찾고 구하고 고찰하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어떤 말씀이 성경의 글귀와 부합되지 않으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본받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여 정황을 알아보게 한 후 사실을 왜곡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훼방하며, 심지어 거짓 증거를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해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농락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대적하면서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관청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2) 오늘 각 종파의 인솔자들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를, “전능자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정부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청에 보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5. 오늘날의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의 또 한가지 최대 공통점은 바로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도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발표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이런 말씀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의 도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여 모든 은밀한 속사정을 살피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분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이렇다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소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걸을 수 있게 하시고 문둥병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을 미혹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두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새 시대를 개척하셨고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셨으며 모든 비밀을 풀어주셨고 참으로 사람에게 진리ㆍ길ㆍ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아주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번에 도성육신 되어 정복과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무릇 진심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극히 큰 구원을 받아 인성의 살아냄이 갈수록 정상적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알고 패괴 성정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사역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룬 효과입니다. 하지만 각종각파의 인솔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정도 버리고 믿는데 모두 미쳤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오늘의 정죄와 대적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것과 또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들의 끝장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위의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모두 바리새인들의 길을 다시 걷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왜 말세에 재림하신 구주 예수를 저버리고 이전 사람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왜 메시아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최종에는 또 메시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말해보아라, 그들이 이렇게 우매하고 완고하며 이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바로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없고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오만함과 완고함, 진리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대적하고 정죄했는데, 그럼 우리는 오늘 또 어떻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의 재림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처럼 혼미한데, 예수로부터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사역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린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송이송이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를 줄곧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형제자매님, 예수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주님께로 향한 사람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범치 않은 역사는 더욱더 포도원 안의 ‘악한 종’들을 드러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롬 11:33-34 참조) 하지만 사람은 오만 자시하여 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이 정말 이러할까요? 마치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 27:25)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판단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눅 23:44-48) 그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고 규정하며 말세에 도성육신 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든 지간에 우리는 모두 이런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인 이상,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사람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도성육신 되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적ㆍ훼방ㆍ거절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소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신 복음은 여전히 우주 땅끝까지 널리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각성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던 주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하나의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버리고 겸손하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계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님, 우리 함께 현실에 직면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매우 정확한 진리입니다! 미혹될까 두려워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악한 종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유언비어를 곧이듣지 마십시오. 형제자매님, 바리새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대조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리새인들의 몸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며 따라야 하겠습니까?

성경 여러 곳에 확실히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관한 예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언이 이미 응하였음을 어떤 하나님의 말씀들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말세에 내가 나의 책을 펼칠 때(책은 내 입의 모든 말을 가리키고 마지막 때에 하는 말을 가리키는데 다 내 책의 내용이다) 나는 이것을 너희들에게 알린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라면, 무엇 때문에 악인은 형통하여 윤택하게 살지만 착한 사람은 오히려 괴롭힘과 억압을 당하고 고난을 겪습니까?

『금생(今生)에서 복을 얻는 자는 영세(永世)에서 반드시 고통받을 것이고, 금생에서 고통받는 자는 영세에서 반드시 복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명정(命定)한 것이니, 누구도 바꿀 수 없고 아무도 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이루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근데 왜 하나님께서 또 사람을 심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구원하시는 사역을 하신다고 합니까?

『예수가 왔을 때에도 일부분 사역을 하였고 얼마간의 말씀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로 어느 사역을 완성하였는가? 그가 주로 완성한 것은 십자가의 사역이다. 하나의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되어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고 전 인류를 구속하였으며 전 인류의 죄를 위하여 속죄제로 되었는데, 그는 주로 이 사역을 완성하였다.』

진정으로 들림받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 참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계 19:9) 관련된 하나님 말씀: 『‘들림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들림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무릇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무릇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받는다.』 <제104편 말씀>에서 발췌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미 형성되었는데, 전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고 영정(靈程)에 오른다. 유일한 참 하나님이 이미 말씀이 육신 되고 우주의 통치자가 만유를 주관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입증이고 철 같은 증거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 오늘 당신께서 뭇 교회―빌라델비아 교회를 완성하셨고, 당신께서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이미 이루셨나이다. 뭇 성도는 당신 앞에 겸손히 순복할 수 있으며 영 안에서 서로 통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따르며 원천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는 쉼없이 솟아흘러 교회의 흙탕물을 깨끗이 제거하여 재차 당신의 성전을 정결케 하나이다. 실제의 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행하며 자기의 기능과 본분을 알고 최대한 모두 교회를 위해 화비하고 있나이다. 항상 당신 앞에 안정하고 성령 사역에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뜻이 우리 몸에서 가로막음을 받지 않게 하리이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이 있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나이다. 늘 영 안에서 행할 수 있고 성령이 빛 비춰 주고 깨우쳐 주어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행하고 새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나이다. …………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협력과 섬김이 하나로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하루속히 거룩한 영체로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마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앞에 들림받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나타난다.』 <제2편 말씀>에서 발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섬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주 연약해지기도 하고 또 자주 강건해지기도 하면서 모든 행위는 다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는 또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주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며, 주 예수의 영광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땅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이 <계시록>에 예언한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재난을 가져오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며, 그를 따르는, 그의 돌아옴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감개무량하였고, 자신이 말세에 태어나 운 좋게 주님의 강림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다행스러워하였다. 비록 박해는 당하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꿔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이 모든 간절한 바람과 주님이 베풀어 준 은혜는 우리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다그쳐 예배하게 하였다. 혹시 내년에, 혹시 내일에, 또 혹시 더욱 빠른, 사람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여 그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다투며 누구도 뒤떨어지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님의 나타남을 제일 먼저 보는 자가 되기 위해서였고, 주님께 들림받는 자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였다 …………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 ……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그에게 정복되어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와 말씀을 저촉하지 않았고, 온 몸과 마음이 그의 앞에 엎드러졌으며, 오로지 이 한평생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만을 원하였고, 그에 의해 온전케 되어 그의 은총에 보답하고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에 보답하며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역사에 협력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부탁을 완성하기만을 원하였다. ………… 우리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한 무리 평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은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거름 더미에서 끌어올린 궁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정죄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정복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도를 얻었다. 하늘 끝이든 바다 끝이든, 핍박이든 환난이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떠날 수 없다. 이는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고 우리의 유일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주님 위해 전도하고 사역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지 아십니까?

송려 지금은 이미 말세의 마지막 때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네 번의 피빛 달 예언도 완전히 이루어졌고, 각종 재난도 나날이 전 인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에나 주변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은“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태 24:23~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을 엄두도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대접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또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여 오히려 참 그리스도를 문밖에 거절한다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수년간의 추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도래를 영접하려면, 우리는 피동적으로 회피하고, 경계하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면의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영접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짓 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라고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세에 거짓 그리 스도는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타내는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고 재림 예수님으로 잘못 알도록 해서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일부 교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모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쫒아내는 등, 하찮은 이적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디모데후서 2장 9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 실질이 악령이 사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사역를 모방하여 보잘 것 없는 이적을 좀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풍랑과 바람을 잠잠케 하는 등의 표적과 기사를 거짓 그리스도는 아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말세에 만약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고, 또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거짓 그리스도이고 악령이 사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이고, 또한 우리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실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개척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사함 받게 하셔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셨는데, 그 모든 사역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시고 역사하시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속해내시기 위해 추호의 원망도 없이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고 더욱이 지위에 서지도 않으셨으며 독선적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표하신 긍휼과 사랑의 성품, 그리고 포용과 인내의 소유소시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에게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비록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이 평범한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완전히 정반대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표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면서 자신을 힘써 추켜세우고,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하는데, 그들이 유로해내는 것은 모두 교만하고 망령되며, 사악하고, 간사한 등의 사탄 성정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합니다. 세째,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진리, 길, 생명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발표하신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 실행의 방향을 가르켜 줄 수 있어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로 지키게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땅위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죄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하는 등을 다 알게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난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킴으로 질서정연한 삶이 있게 되었고 과거의 난잡하고 무질서하던 생활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또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사람을 용서하라는 등을 가르쳐 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인성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중복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행의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요한 등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발표하신 것이 다 진리임을 보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나 악령은 아무리 그리스도라고 자칭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실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에, 그들은 단지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할 줄만 알고 진리는 전혀 발표해 내지도 못하며, 단지 예수님 사역의 기초에서 모방하고, 뒤따르고, 이적을 행하여 사람을 미혹할 뿐, 사람들에게 실행의 길은 전혀 가져다 주지 못해 결국 스스르 무너지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따르던 사람들도 아무런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악령이 들려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의 일부 교파들에 다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위에서 어떻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가 하는 진리 원칙의 교통을 통해, 저는 세상 끝날에 주님이 오실 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을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 어디에나 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사람을 미혹할 때가 바로 참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나셔서 역사하실 때인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갖추어 그리스도의 실질에 대해,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에 대해 알고 분별할 줄을 알아야만 재림하신 예수님, 즉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분명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피동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경계하고 회피하고 듣지 않거나 무턱대고 대적하거나 거절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고 구하며 알아 보고 분별하면서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는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세에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또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시며 진리를 발표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예언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2:11)우리들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발하신 음성과 말씀을 듣고 갈망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꼭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밝히 분별할 수 있게 하시여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