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기도하는 방법 – 올바른 기도를 위해 꼭 알아야 할 4가지

2018년 11월 25일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항상 기도를 소홀히 하곤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를 대충 때우거나, 얼렁뚱땅 형식적으로만 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맡긴 적이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종종 무슨 일이 생겨서야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향해 구하고 바라본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를 함께 나눠보자.

1. 진실한 기도란

어느 날, 친구가 내가 하는 모임에 와서 이 화제를 이야기하다가 책 한 권을 꺼내서 읽어주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 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진실한 기도란 하나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겪은 일 및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와 어려움을 모두 마음을 활짝 열어 하나님과 나누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며 실행할 길을 찾는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마음이 맑고 환해지며 문제를 점점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심적으로 하나님과 각별히 친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항상 이런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되고, 분명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이다.

2.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를 드릴 때 무미건조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자신의 생활과 직장에서 부닥치는 어려움과 근심을 몽땅 하나님께 고백한다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 하나님이 들어주실지 아닐지 간에, 마치 염불하는 듯 마음대로 중얼거리고만 있다. 결국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니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사실 예수님은 벌써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통해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하나님이 벌써 우리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셨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철없는 아이처럼 매일 부모님한테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물어야 하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부모는 이미 아이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적절하게 준비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때가 많다. “주님. 저에게는 좋은 직장이 없습니다. 저에게 직장을 내려 주십시오.” “주님, 저의 생활이 궁핍합니다. 저에게 돈을 벌 기회를 내려 주십시오.” 이와 같은 기도 내용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네 속의 진실한 상태와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너에게 이런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가장 진실하다.』

당신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만약 우리가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육체,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의 기도를 기뻐 받지 않으신다!

크리스천의 진실한 기도,기도하는 방법,

3.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함께 나누고 깨달아야 하는 것은 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만 우리가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렇게 하는 의의를 알아야만 많은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4. 어떻게 진실한 기도로 진입하는가

우리는 어떤 기도가 진실한 기도인지 알았다. 그렇다면 진실한 기도에는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 역시 책 속에 답이 있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상태와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진실한 기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과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절대로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거짓말도 하지 말고, 빈말로 하나님을 기만하지도 않는 것이다. 둘째, 현실에 닥친 일과 하나님이 주신 환경을 가지고 기도한다. 예를 들면, 어떻게 실행해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를 때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를 갖췄다는 것이다. 셋째, 기도는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이 방면의 진리를 구하고 실행할 길을 구하는 것이다. 이로써 성령의 역사를 얻고, 자신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 이 세 가지를 실행하면 진실한 기도로 진입할 수 있다.

친구와 모임을 가지면서 나는 이상의 기도에 관한 네 가지 실행 방법을 알게 되었고, 당신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나눠보자.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 기도 응답을 받고 싶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

▷ 3가지만 기억하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는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그렇게 많은 교파가 생겨났고, 왜 끊이지 않는 논쟁과 공격이 있게 되었을까요?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은혜시대를 가져오고 율법시대를 끝마쳤다. 말세에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되었는데, 이번의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나라시대를 가져왔다. 무릇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시대로 이끌려 들어가고,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단지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결코 사람의 패괴된 성정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을 이끌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였고 형벌,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들어갔다. 무릇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는 사람은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며, 진정으로 빛 가운데서 살게 되고 진리, 길, 생명을 얻게 된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은 이미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상,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과 형벌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기 위해, 모두 그를 증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를 증거하기 위해,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의 모든 것을 공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성정이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게 한다. 사람의 성정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역사 중에서 변화된다. 사람이 만일 성정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다. 사람의 성정 변화는 바로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과 표본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고, 참으로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고 있는데,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고 그에게 순복하게 하며 그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역사를 알게 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역사에 순복하게 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역사와 사람을 정복하는 그의 모든 행사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증거라야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이러한 증거라야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경력하여 그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며, 성정이 변화되어 그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원하지 않고, 또한 그의 구원을 거치지 않은 사탄의 종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할 리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성육신 하나님은 말씀을 하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위한 것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단지 말씀만 하는데, 사실로 임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질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 즉 ‘말씀’이 ‘육신’에 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전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역사 효과에 도달한다. 하나님은 표적을 나타내지 않고 이적도 나타내지 않으며, 오직 말씀으로 역사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所是)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제압하여 신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도,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을 양육하고 목양한다. 그 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순순히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고 말씀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고, 말씀과 여러 가지 역사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훈계하든, 책망하든, 공급하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각도의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은 말씀으로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많은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고, 역대 이래 하나님이 한 사역을 깨닫게 된다. 또한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받게 되고, 역대 이래 사람이 열지 못한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며, 역대 이래 선지자와 사도가 한 일과 사역한 원칙을 알게 된다. 사람은 말씀에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도 깨닫게 되었고, 사람이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와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고, 성육신이 한 사역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의 모든 성품도 인식하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을 인식한 것 역시 말씀에서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에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더냐?』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 예수가 한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 놓고 인류의 귀숙과 결말까지 드러내어 인류 가운데서의 구원 사역을 모두 끝마친다. 말세 이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므로, 반드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사람에게 이런 심오한 비밀을 명확히 알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래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할 수 있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씀 사역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성정 변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하는 역사 방식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할 수 있고, 오직 말씀만이 진리를 천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한 가지 방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명확하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후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진리와 모든 심오한 비밀을 사람과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열어놓아 하나님에게서 참 도와 생명을 얻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 기간에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할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 사람은 연단과 환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환난 속에서 이기는 자, 간증을 서는 자는 최종에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곧 이기는 자들이다. 환난 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바로 이번의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단은 최후의 한 차례 사역인데, 전체 경영 사역이 끝나기 전에 있게 되는 최후 한 차례 연단이다. 무릇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최종의 검증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최후의 한 차례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이 단계 사역에서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할 것이다. 그가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한 후, 그들이 그의 행사를 증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실제적으로 그를 만족케 하면서 그에게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것이다.』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에서 발췌 『정복 사역 후에는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 가운데 두며,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가운데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으며,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말이 다 가까웠고, 사람의 결말도 다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은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라고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말세가 이미 되어 만물이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모두 서로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유별로 구분된다. 그때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숙을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에 의해야만 만물의 결말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만이 원형이 드러나게 되어 악은 악에 속하고 선은 선에 속하여 다 각기 부류대로 된다. 형벌과 심판으로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데에 이르고, 만인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으로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고 사람의 패역이 너무 심하기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낸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다. 그에 따라 모든 불의한 사람을 호되게 징벌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품은 다 시대적 의의가 있는 것이고,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각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결코 의의 없이 마음대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말세는 정복하는 것으로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한다. 정복하는 것은 말세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말세 사역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의 발단이 된다. 그 이후에는 각 지역, 각 족속의 사람들도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즉, 무릇 피조된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고, 다 심판대 앞에 귀복하여 심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고, 각기 부류대로 되지 않을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는데, 사람은 모두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그 원인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웠고 온 천지도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인간의 생존이 끝나는 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 받아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효력할 자격마저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전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 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열국과 만민이 다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때, 나는 곧바로 하늘에 있는 모든 풍부함을 인간 세상에 베풀어 주어 인간 세상이 나로 인해 비할 바 없이 풍부하게 할 것이다. 옛 세계가 존재할 때, 나는 열국을 향해 크게 진노하고 전 우주에 공개할 행정을 반포할 것이다. 만일 누가 거스른다면,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전 우주를 향해 말할 때,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즉, 전 우주 아래에 있는 나의 모든 행사를 보게 된다. 나의 뜻을 어기는 자, 다시 말해, 사람의 행위로 나와 맞서는 자는 나의 형벌 속에서 넘어질 것이다. 나는 하늘의 뭇별을 모두 새로이 바꿀 것이고, 해와 달도 나로 인해 바뀌어 더는 이전의 하늘이 아니며, 땅의 만물도 새로이 바꿀 것인데, 나의 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전 우주 아래의 열국을 모두 새로이 나누어 내 나라로 바꿀 것이고, 땅에 있는 나라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여 나를 경배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데, 무릇 땅에 속한 나라는 다 훼멸되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다 멸망되어 사라질 것이다. 무릇 사탄을 경배하는 사람은 다 나의 불사름 속에서 넘어질 것인데, 즉 지금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외에는 전부 잿더미가 될 것이다. 교계는 내가 만민을 형벌할 때, 각기 다른 정도로 내 나라에 돌아오고 나의 행사로 말미암아 정복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흰 구름을 탄 거룩한 자’가 이미 오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되고, 행위의 차이로 인해 각종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라면 다 멸망되지만 땅에서의 모든 행위가 나와 관련되지 않는 자는 그 태도로 인해 땅에 존재할 것인데, 뭇 아들과 자민(子民)의 관할 아래에 있을 것이다. 나는 만국 만민을 향해 나타나고, 땅에서 나의 음성을 친히 발표하고, 나의 큰 공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여 모든 사람에게 눈으로 직접 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6편 말씀>에서 발췌 『최종의 상선벌악 사역은 전적으로 전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온전히 성결해진 인류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전체 경영 사역 중에서 마지막 한 단계이다. 만일 악한 자를 멸하지 않고 남겨 둔다면, 전 인류는 여전히 안식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도 전 인류를 더 아름다운 경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게 되는데, 그런 사역은 완전히 끝난 사역이 아니다. 사역이 끝날 때, 전 인류는 온전히 성결하게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매우 평온하게 안식 중에 거할(원문: 生活)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고, 그가 원하는 인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완전히 순복하는 인류이고, 그의 영광이 있는 인류이다. 만일 패괴된 인류를 구원해 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만든 의의는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권병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또한 땅에 그의 나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만일 그를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받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인류의 그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을 다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그의 사역이 완성된 상징이고, 그의 큰 공이 이루어진 표징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나의 말이 마무리(원문: 完善)되어 감에 따라 나의 나라는 땅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내 마음속의 나라를 세운다. 나의 나라에서 모든 자민(子民)은 다 정상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데, 다시는 차디찬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날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싸늘함을 겪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고, 나라도 서로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광경과 그로 인해 흘리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으로 들끓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뜻함이 넘쳐흐른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없기에 사람이 성경을 지키고 숭배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생명의 도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지니고 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의 인도와 부축 그리고 공급이 없다면, 네가 얻는 것은 단지 글귀이고, 도리이며, 더욱이 사망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동시에 공존한다. 네가 만약 진리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네가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고 너의 육체뿐인데, 비린내로 가득 찬 너의 그 육체이다.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이 3단계 구원 사역 중에서 제1단계 율법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차이가 많은데, 구원 사역의 겉면만 조금 있을 뿐 결코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는 사역에 착수한 것이 아니다. 제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까닭은 율법 아래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 뿐 더 많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고, 율법시대의 사역이 사람의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고 더욱이 어떻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야 하는가 하는 사역에도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정에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한 것이다. 그 단계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고, 정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에 관해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예수는 서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맞는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각 시대에 사역을 하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 시대의 사역만 할 뿐, 결코 다음 단계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그의 각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예수는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사역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어떤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교훈할 때는 모두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설사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가 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 아니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속죄제로만 되었을 뿐 인류의 말씀 원천이 되지는 않았다.』 <역사 이상 (1)>에서 발췌 『예수가 와서 그 단계 사역을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그는 표적과 기사를 조금 행하였고 말씀도 어느 정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는 하나님의 일부분을 대표한 것이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을 대표하여 한 부분의 사역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묘하고 너무나 위대하여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밖에,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부분의 사역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면 참 도를 찾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성경의 실제 내막이 어떤지를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일을 기록한 역사(歷史)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증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로,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에 대해 기록되었다. 신약에는 예수가 땅에서 했던 사역을 기록한 4복음서도 있고, 바울이 한 사역도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역사(歷史)를 기록한 것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에 속하게 되고,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歷史)일 뿐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지금 하고자 하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좋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성경에는 비록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과 같은 생명에 관한 말씀 책이 일부분 모아져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책 속에서 공급을 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또한 구시대의 책이다. 그런 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 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될 뿐, 마지막 때의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자들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하나님나라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여호와의 창세 사역처럼, 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처럼, 그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고 흘러갈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십자가의 사역에 어떤 설득력이 있거나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든, 사역은 어디까지나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디까지나 시대이다. 사역은 계속 어느 한 기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 ‘4복음서’를 오늘에 가져왔을 때는 모두 역사책이 되고 모두 노황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노황력이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런 노황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할지라도 모두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닌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더 이상 그 노황력을 미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 노황력은 너무 ‘낡아서’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짐만 될 뿐이며, 너를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를 낡은 종교적인 회당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뒷걸음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너는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내가 너에게 유익한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줄 수 없고,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도와줄 수도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찾지 않는가?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몇천 년이나 되었어도 변화가 전혀 없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오늘날 성령의 말씀을 들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였는데, 너희가 들었는가? 하나님이 말세에 말씀 사역을 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이고,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말한 성령의 말씀은 바로 오늘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많은 그릇된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사람에게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과 직접 말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 이 시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역사하려면 말씀이 육신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현재는 성령의 시대라고 여기면서도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막연한 신앙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성령이 직접 말씀하고 역사하기만 바라고 오히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새 시대에 진입할 수 없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철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네 스스로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네가 스스로 천당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릴 수 있겠느냐?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권하겠다. 너의 그 꿈은 이제 그칠 때가 되었다. 너는 지금 누가 역사하고 있고, 누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생명도 얻지 못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목사나 장로는 정말 주님이 세웠을까요?

주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사도행전 20장 28절에 기록된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라는 내용을 보고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모두 성령이 세웠다고 여기는데, 성령이 그들로 하여금 무리의 감독자로 두어 그들로 교회를 목양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 받은 사람들이기에 신도들은 마땅히 그들의 말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는데, 만약 그들에게 순복하지 않는다면 바로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관점은 과연 진리에 부합될까요? 이 성경 구절은 사도 바울이 한 말일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일까요? 주님 말씀의 근거가 있습니까? 주님은 정말 인정하는 것일까요? 만약 우리가 주님 말씀의 근거도 없고 성령의 실증도 없이 단지 바울이 한 말에 근거하여 목사나 장로는 바로 주님이 세웠다고 여긴다면, 이런 관점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주님의 뜻에 부합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매 시대의 역사 가운데 모두 일부 사람들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협력하게 합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직접 세우고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직접 안배하며 직접 그들에게 나타나거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 율법시대에 하나님이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출애굽했을 때, 하나님 말씀의 증거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9~10절에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세울때 직접 모세에게 나타나 모세를 불렀으며,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사역과 뜻을 모세에게 밝히셨고 동시에 그의 취지도 모세에게 알려주어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출애굽 하라고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분부하여 사역하게 할 때에 꿈이나 계시를 통해 한 것이 아니고 천사나 다른 방식으로 전달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모세 앞에 나타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의 은혜 시대에서 하나님이 세운 베드로는 하나님이 직접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넘겨주고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목양하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태복음 16:18~19), 예수께서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나의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의 양을 치라”(요한복음 21:15~16) 예수님과 베드로가 주고 받은 대화의 내용을 볼 때, 베드로는 주 예수께서 직접 세우고 직접 실증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넘겨주었고 베드로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 권병을 갖게 되었으며 주 예수께서는 그의 뜻도 베드로에게 알려 주었고 해야할 사역을 직접 베드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잘 보살피고 교회를 잘 지키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부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가 직접 부른 사도일지라도 말입니다. 베드로는 은혜시대에 주 예수의 직접적인 부르심과 세움을 받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세와 베드로의 일에서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고 정하신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직접 부르고 증거하고 안배하고, 그런 사람은 직접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사역하는 배경이 모세나 베드로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대부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졸업장에 의해 목사나 장로가 된 것인데 하나님의 증거와 성령의 실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니며 성령도 그들을 무리의 감독관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기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때마다 먼저 하나님께 쓰임받을 사람을 세운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세우는 뜻과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른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우리 다함께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한 것인데,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하나님의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한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이 일으킨 인성 협력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인성 협력 사역을 할 수 있는 이런 한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과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이 사람을 통해 더 많이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에 더 많이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받는 한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솔하는 데에 있어서의 매개자이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소통시키는 ‘번역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일꾼이나 사도가 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똑같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다른 일꾼이나 사도와는 사역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사역의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사람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의 역사에 반드시 협력해야 할 인성의 사역이다. 그러나 다른 일꾼이나 사도가 하는 사역은 다만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여러 방면의 안배를 전달하고 시행하는 것이며, 또는 교회 생활을 수호하는 일부분의 간단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꾼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사람으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계속 남겨서 쓰고, 쓰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며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켜 사람 가운데서 인성 협력의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이런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수월해 졌으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터득하지 못하는 많은 것에 대해 하나님은 그가 세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지시하도록 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하고 더욱 나아갈 길이 있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의 “번역관”인데,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고 또한 성령의 실증이 있으며 사역할 때에 성령의 수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의 인솔과 목양에 순복해야만 참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솔과 목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심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모세를 대적한 250명의 족장과 같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인솔에 순복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러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혀 훼멸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으로 지키게 하였고 전체 구약 시대의 사역을 인솔하게 하였기에 모세는 그 어느 사역자와도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250명의 족장은 사람이 선택한 것이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심하게 하나님을 거스른다면 하나님께 훼멸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시대에서 하나님은 베드로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목양하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권세를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사역할 때에 능력이 충만하고 성령 역사의 인솔이 있었는데, 이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간단하게 섬기거나 공급하는 사역은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는 사역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일부 은사가 있고 영적인 도리를 좀 말 할수 있어 형제 자매들 가운데서 설교나 교회를 목양하는 사역을 합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행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솔한 것이라면, 그들에게도 성령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도 계속하여 그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설교 사역을 할 때에 단지 성경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것만 중요시 하고 사람에게 일부 규례와 의식만 지키게 하며 주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하도록 하지 않고 주님의 계명도 지키게 하지 않는다면, 사역 중에 글귀 도리만 말하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간증해 사람들로 자신을 우러러 보게 하여 신도들이 그들의 인솔하에 생명이 전혀 진보가 없고 영적인 공급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전혀 성령 역사의 실증이 없고 성령 역사의 인솔과 인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절대로 성령이 직접 세운 것이 아니며 그들이 한 사역은 결코 하나님이 직접 부탁한 것이 아니며 성령도 그들을 온 무리의 감독자로 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계의 목사나 장로는 모두 주님이 세운 것으로 그들에게 순복하지 않는 것은 바로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이런 논법은 단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일 뿐 하나님 말씀의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러한 사상 관점의 지배와 속박을 받게 된다면, 우리가 설령 이끄는 자들이 교회에서 마음대로 행패를 부리고 그들이 행한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따르고 순종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안된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2천년 전에 유대 백성이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의 말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예수님을 대적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을 높이고 모든 일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만 합니다. 이래야만 참으로 주님께 순복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나 장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의 문제에서 우리는 마땅히 진리를 찾고 구해야 합니다. 만약 목사나 장로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를 인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목사나 장로라면 우리는 따르고 순복해도 됩니다. 반대로 그들이 만약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며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게 인솔한 적이 없고, 사역하면서 자신만 높이고, 자신만 증거하고, 자신의 형상만 세우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말을 따르게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들이며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 주님이 오신다는 이런 큰 일에 있어 목사나 장로는 자신의 지위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진리의 도를 찾고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을 뿐더러 미친듯이 훼방하고 정죄하고, 심지어 신도들이 참도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통제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맹목적으로 그들의 말을 믿고 순복하고 따른다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쎄언(谢 恩) 추천 문장: 행복한 인생을 얻는 비결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금식 기도를 드렸으나 해결되지 않는 이유

정신 최근, 림하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형제자매가 강건해지고, 자신의 신앙이 굳건해지도록 얼마나 많이 금식 기도를 드렸는지 자신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는 언제나 주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자신의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 걸까요? 림하는 금식 기도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며 호숫가에 있는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동역자 효진이 그를 몇 번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효진이 관심을 보이자, 림하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 몇 년 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저 역시 연약해요. 이번에는 4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는데 모든 상황이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요. 저도 주님의 뜻을 모르겠어요. 제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지 고민도 했어요. 아니면 주님이 저의 믿음을 시련하고 계신 걸까요? 지금 저는 마음이 연약하고 주님께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림하 자매님, 왜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며 주님께 교회가 부흥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데도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기만 하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전제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고생스럽게 금식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을 거예요. 지금 교회의 황량함은 한두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계 전반에 퍼져 있는 문제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에요.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황량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인지 구하고, 아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금식 기도를 드려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굶어서 병이 날 거예요!” 림하가 곤혹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그럼 교회의 황량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죠?” 효진이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봤어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복음 24: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아모스 4:6~7) 바로 이러한 구절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불법적인 일이 점점 많아져서, 도둑질하는 사람과 강간하는 사람이 나오고, 목사와 장로, 유명한 설교자조차도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성경의 지식만 설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증거해서 형제자매에게 숭배를 받으려고 해요. 하나님은 전혀 높이지 않고, 증거하려고 하지 않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형제자매를 자신의 권위 아래 두었고, 하나님 말씀은 진작에 벗어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교회가 어떻게 황량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고, 주님이 돌아오시는 결정적인 시기에요.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고, 성령의 역사도 옮겨갈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아서 어둠 속에 떨어졌어요. 마치 율법시대 말기에 유대교 지도자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오직 사람의 유산만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으며, 소, 양, 비둘기를 매매하고 돈을 바꾸는 곳이 되어버린 성전은 점점 황량해졌죠. 이것이 성전이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린 주요 원인이에요. 또,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때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시 성령의 역사를 얻고 평안과 기쁨과 희락을 누릴 수 있었어요.” 림하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뜻은 지금 교회의 황량함이 율법시대의 말기와 똑같이 목사와 장로가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께 버림받고 진작에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주님은 이미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네, 그래요,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교회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요. 형제자매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같이요. 강단 위에서 하는 설교는 항상 똑같고, 강단 아래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자꾸 손목시계를 보고, 노인들은 쿨쿨 잠을 자죠. 7시에 예배를 시작하면 8시에 도착하거나, 9시에 와서 듣는 사람도 있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도망쳐요. 만약 성령이 아직도 교회에서 역사한다면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목사와 장로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고, 형제자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끌어들여서 마지막에는 주님에게 버려지고 도태될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금식 기도를 드려도 다 소용없어요!” 말하면서, 효진은 태블릿 PC를 켜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루고자 한다. 즉, 전 우주의 사람들이 다 와서 하나님을 알현하게 하고, 다 와서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될 것이다. 요셉에게 먹을 양식이 있었기에 사람마다 먹을 것을 얻으려고 그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된다. 온 종교계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명수의 원천이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어요. 현재 교계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생명수가 흐르는 원천을 찾는 거예요.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가 있어요. 우리는 지금 예언에서 말씀하신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지금 당장 할 일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계속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는 정말 바싹 말라죽을 거예요!” 림하는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 자매님의 나눔은 성경과도 일치해요. 계시록에 기록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교회의 황량함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불안한 외부 상황과 점점 커지는 재난 등 여러 가지 조짐으로 볼 때,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은 모두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능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어린양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까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계시록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시록 2:7) 또, 요한복음에도 있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여러 교회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고, 타락에서 벗어날 모든 진리를 알려주시고, 모든 비밀, 예언, 인류의 결말, 종착지를 다 드러내신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성령이 가장 최근에 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시는 진리의 공급을 누려야 해요. 이렇게 해야 교회의 황량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림하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반평생 성경을 읽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비밀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주님은 벌써 우리에게 알려주셨네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고요. 이것은 계시록의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6~17)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 아닌가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물을 얻기만 하면 교회의 황량함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의 문제는 금식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림하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힘들게 금식 기도를 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던 날은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석양의 어스름이 그들을 비추었고,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2)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체험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는가

예수님을 믿는 형제자매마다 성경을 아주 중요하게 대하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어느 누구도 성경의 말을 어겨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총괄적으로 말해서,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는 아주 높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하나님 나라 복음이 중화 대륙에서 확장된 이후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인솔 하에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공급과 자양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성경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마시는 데에 대해 관념이 생겨 ‘성경을 보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으면 어찌 성경을 벗어날 수 있는가?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을 받아들이기 싫어합니다. 그럼 성경을 보지 않으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지? 성경을 떠나면 정말 주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은 성경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겠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깨달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자신이 행하는 것이 확실히 하나님의 뜻에 부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 한 바에는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이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눕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및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를 포괄하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의 사역과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는 어떻게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안배하셨는지,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인지, 노아의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셨는지,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 등등도 기록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제 상황입니다. 신약 성경은 4복음서,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을 포함합니다. 주로 기록된 것은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처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또 어떻게 가는 곳마다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훼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만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하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하였는지, 어떻게 성령의 인솔 하에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하였는지……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든 아니면 신약 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은 모두 전에 하나님이 하셨던 사역과 전에 일어났던 일부 일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성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면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사람들이 사도들이 기록한 예수님의 땅에서의 일부 역사와 사도들이 뭇 교회를 목양할 때 쓴 일부 서신 및 주후 90 몇 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에 관한 기록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들의 그런 서신은 다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바로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뭇 교회를 목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어떤 때는 그들이 직접 어느 교회에 갈 수 없어 서신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도들이 쓴 그런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중 많은 서신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면서 분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즈음에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된다고 여기고는 사람들이 읽기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전해 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이런 서신은 사람이 쓴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유익한 점이 있는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모두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천년 동안 전해지고 또 ≪성경≫, 이 책에 대한 사람의 호감과 예수님에 대한 사람의 애대(愛戴)의 정 때문에 점차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에 편성된 이런 서신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신성한 언어’로 삼게 되어 어느 누구도 어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당시의 사람은 이런 서신을 어떻게 대한 것인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조금만 미루어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이 각처에서 교회를 목양하였는데, 뭇 교회에서도 바울, 베드로 등 사도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이 서신을 다 쓴 후에는 어떤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교회에 가져가서 “이는 바울 또는 ○○ 형제가 우리 교회에 써 보낸 편지인데 바울 또는 ○○ 형제의 말입니다. 우리가 읽어보고 교통합시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는 절대로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님, 빨리 와서 읽어보십시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만일 바울이나 베드로를 잘 아는 사람이 그들의 서신을 보았을 때면 “베드로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바울 형제를 제가 잘 압니다. 이것은 그들이 쓴 편지가 맞습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베드로의 이런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했을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도의 말이고 그들이 잘 아는 바울이나 베드로 형제가 그들의 교회에 써 보낸 편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는 사람이지 예수님이 아니고 하나님 도성육신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바울이나 베드로의 말을 사람의 말로 대하고 사람의 경력과 인식으로 삼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후세 사람들이 바울 그들을 숭배하고 또 그들의 경력과 인식이 사람에게 덕이 된다고 이런 말을 성경에 편성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당시에 이런 서신이 성경에 편성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모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경력과 인식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울이나 베드로 그들과 동시대 형제자매들은 모두 실정을 알고 있었고, 그들은 모두 사도들의 서신을 정확히 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일 그때의 배경을 좀 자세히 돌아보고 상고한다면, 그 사도의 서신은 다 하나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일부 경력과 인식이고 그들이 사역하는 기간에 뭇 교회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위로와 격려이지 성령의 직접적인 말씀이 아니고 즉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만일 성경의 기타 편(篇)과 장(章)이 형성된 배경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있다면,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효유한 말씀과 선지자의 예언 및 예수님이 사람에게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외에 그 나머지는 다 사람의 경력과 인식, 일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면 우리가 성경을 정확히 대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생긴 배경에 대해 논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장면이지만 필경 하나님께서 이미 하신 사역이니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신약 4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예수의 땅에서의 사역이며 신약에 바울의 사역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모두 역사(歷史) 기록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하고, 아무리 진실일지라도 역사(歷史)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사역은 부단히 앞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부단히 아주 새롭고 아주 현실적인 사역을 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시에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창세기≫에 근거하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가 쓴 ≪출애굽기≫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여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4복음서’에 근거하여 십자가의 사역을 하신 것입니까? 분명히 다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이런 성경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역사하실 때는 구약 성경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전적으로 인류의 현 상태와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하여 역사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하신 것은 그때의 인류가 이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고 음란하여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그 시대의 인류를 멸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율법을 반포하신 것은 처음 난 인류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사람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여 율법으로 그들을 인솔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이미 구약 성경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어떤 것이 성경에 근거하여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이름을 ‘예수’라 하였는데 구약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하셨는데 구약 성경에 사람에게 이렇게 실행하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을 교훈한 많은 말씀도 구약 성경에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반포한 율법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으라 하셨지만(출 21:24) 예수님은 사람에게 남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18:21-22).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일에 무슨 일이든 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하셨지만(출 31:12-15) 예수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해도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마 12:12).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야 하는 것도 그때 사람의 필요에 근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시대 후기에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갈수록 많아져 사람은 이미 율법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율법시대가 계속 지속된다면 사람은 다만 죄 속에서 살면서 더욱 깊이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죄의 자손이 되고 귀신의 후대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인류는 모두 사탄에게 삼켜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사람을 구원하러 오셔서 사람에게 풍부한 은혜와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주시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고 사해주심으로써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은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오셔서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여전히 여호와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다면, 만일 사람이 지킬 수 없어 사람을 저주하고 격살한다면, 사람은 다 하나님께 격살될 것인데, 누가 또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또 하나님 앞에 올 기회가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미 땅끝까지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부터 풍부한 은혜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비록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죄성이 아직도 사람 안에 깊이 뿌리박혀 죄의 매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고 아직도 죄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범죄하고 있고, 게다가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는 데에 달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도 여전히 성경에 따라 역사하시고 줄곧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람의 죄를 사하신다면, 사람은 영원히 범죄하고는 죄를 자백하고 죄를 자백하고는 범죄하는 이런 반복적인 상황에서 살지 않겠습니까? 이러면 사람이 어느 때에야 완전히 죄성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하나님께 얻어지는 데에 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렇게 역사한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기초에서 또 한 단계 더 새롭고 더 현실적인 사역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속해 낸 인류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여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사람이 되어 진정 하나님께 얻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는 시대가 변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또 앞으로 발전하였으므로, 형벌ㆍ심판에 의하여 사람의 패역을 벗겨버리고 사람 안의 불결한 것들을 벗겨버린다. 그 단계는 구속이므로, 그가 반드시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게 해야만 사람을 죄에서 구속해 낼 수 있었으며, 은혜에 의하여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도록 하였다. 이 단계는 형벌과 심판에 의하여, 말씀의 격타(擊打)에 의하여, 말씀의 징계와 폭로에 의하여, 사람 안의 불의한 것들을 드러낸 후 구원받는 데에 달하게 하는 것인데,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의 이번 역사는 주로 말씀을 발표하는 것인데, 말씀의 형벌 심판에 의해 사람 안의 모든 불의한 것들을 드러내어 사람에게 자기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정에 대하여 인식이 있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될 수 있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매임에서 철저히 벗어나 진정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구속보다 더 심화된 사역이고 하나님이 이전에 하신 적이 없던 사역이니, 당연히 성경에 기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역사는 완전히 인류의 필요에 근거한 것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에 근거한 것이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역사든, 예수의 역사든 아니면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든, 성경의 기초 위에 세워진 시대의 사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 및 사람에 대한 그분의 교훈이 설마 구약 성경에 조금도 차이가 없이 다 기록되었습니까? 누가 이런 능력과 선견(先見)이 있어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사역을 다 성경에 앞당겨 기록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벗어난 새 사역을 하셨어도 우리는 예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할 수 있었지만,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시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요구합니까?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성경의 범위를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임을 부인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사역이 비록 성경을 벗어났지만, 그분의 역사는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할 수 있으며, 낡은 시대를 끝마치고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으며,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인류의 불의를 형벌하고 인류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분의 역사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과 극대한 사랑을 인식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한 것에 의해 하나님이 곧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만이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정결케 하시고 온전케 하실 수 있으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실 수 있으며, 하나님만이 인류 생존의 기탁이시고 인류의 유일한 의뢰이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이 사랑하고 경배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진정 인식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이런 효과에 달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증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이 성경을 벗어났다 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무 우매하고 너무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현재 각종 적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들이 사람을 미혹할 때 모두 성경 장절을 인용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실제 기록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대표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이시고 지고지상한 분이시고 전능하고 지혜로운 분이시며, 하나님의 행사는 한량없고 무진장하기 때문입니다. 시초부터 현재까지 하나님 역사는 성경의 제한을 받은 적이 없으며, 그분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고 그분의 경영 계획에 따라 역사하신 것입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하나님 역사가 모두 성경을 참고하지 않고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단지 본시대에 해야 할 사역만 하신 이상,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역사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야 하지 성경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하나님을 믿은 많은 사람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안중에 진정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노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혀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그때는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성실한 마음으로써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동시에 여호와의 요구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로 세상을 멸할 때에 오직 노아의 일가 여덟 식구만이 은혜를 입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들도 성경을 보지 않았는데, 물론 볼 성경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한 것은 여호와의 지시와 요구에 근거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면 그들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시대에 예수님을 따른 그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하여 각처에서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전하기 시작하였는데,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부활의 도를 간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게 하였고,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주고 안수 기도해주었으며, 사람으로 하여금 금식하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머리에 쓰고 발을 씻게 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모두 예수님의 새 시대에서의 역사이고 하나님이 새로운 시대에 사람에게 실행하고 지키라고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시기에 비록 성경이 있었지만 그들이 전한 것은 구약 성경에 근거한 것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받쳐들고 여호와의 도를 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적만 말하고 천국의 복음만 전하였으며 예수님이 개척하신 은혜시대의 도만 간증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모두 성경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와 하나님의 새로운 요구를 실행하고 순복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보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성경을 떠났다 하여 주님을 배반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확실히 성경만 붙잡고 성경만 말하면서 매사마다 성경과 대조하였지만 나중에 성경에 근거하여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런 관점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지키는 “하나님을 믿으면 성경을 보아야 하고 성경을 보아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성경을 떠나면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황당하고 그릇된 것이지 진리에 부합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인솔하시는 것은 부단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역시 부단히 발전하고 부단히 심화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는 하나님께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역이 있고 새로운 말씀으로 사람의 생명을 공급합니다. 이와 동시에 성경도 곧 새 시대의 도래에 따라 낡고 때가 지난 역사(歷史)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시고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실 때, 성령께 택함받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가장 새롭고 현시적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생명 말씀의 공급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각처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래를 간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합니다. 이것은 당시에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역사를 개척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사를 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모두 더는 성경을 보지 않았지만 똑같이 성령의 서로 다른 시대에서의 역사와 말씀을 간증하였는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성경의 내막을 이해하고 당시에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구약 성경대로 역사하지 않으셨는지,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예수님의 역사와 말씀만 전하였는지를 알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신약 성경대로 역사하시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더는 성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만 간증하는가에 대해 관념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한 단계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단계로 사람의 죄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반드시 제3단계 사역을 통해야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철저히 변화시키고 정결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역사가 인류를 구원하는 완정(完整)한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고 구해야 하며 성경을 정확히 대해야 하고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라가야 합니다. 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회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네가 성경만 알 뿐 하나님의 현재 하려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으면, 너는 무엇을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라 하는지를 모른다. 네가 만약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를 알려고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너는 하나님의 현시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하고 성령의 현시 역사를 인식하기를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성경을 볼 줄만 알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현시 역사의 흐름에 도태될 것이고 심지어 성경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새 역사를 대적한 탓에 하나님께 정죄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역사 서적에 속한다. 네가 만약 성경 구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 먹고 마시며 구약시대에 요구한 것을 가지고 은혜시대에서 실행한다면, 예수가 너를 저버릴 것이고 너를 정죄할 것이다. 네가 구약으로써 예수가 한 사역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네가 만약 현재 신약과 구약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실행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를 죄로 정할 것이며, 너는 오늘의 성령의 역사를 따라갈 수 없다! 네가 구약도 먹고 신약도 먹는다면, 너는 성령 흐름 이외의 사람에 속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보다시피, 성경을 지키고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다 성령의 흐름 이외의 사람이고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모두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마치 당시의 그 제사장, 서기관, 장로와 바리새인들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시대의 사역을 개척하시고 사람에게 새 시대의 실행의 길을 가져다주셨을 때, 그들은 여전히 한사코 구약 성경을 지키고 여호와의 요구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써 예수님의 역사를 가늠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관념에서는 하나님이 성경 이외에서 역사하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최종에 예수님이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고 메시아로 불리지 않은 것을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 징벌받고 저주받은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비참한 결말을 얻었는데, 설마 우리가 경계할 만한 가치가 없단 말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실패한 까닭은 무작정 성경을 지키면서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에 순복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설마 그들이 모두 매 구절 경문의 앞잡이가 아니란 말인가?』 사실, 성경의 원래 가치는 다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와 인식이 있게 할 뿐이고, 다만 하나님의 이전의 역사를 위해 증거할 뿐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현실의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 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도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발하신 음성이자 역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께로부터 진리와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 구원받는 데에 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성경을 고수하면서 언제나 성경으로써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가늠하고 단지 성경의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새 시대의 역사를 홀시하고 말세의 그리스도─전능하신 하나님(즉 재림하신 예수님)을 저버린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를 놓칠 것이고, 최종에 생명을 얻기는커녕 성경의 글귀에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성경을 숭배하던 바리새인의 잘못을 다시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에서 나의 존재를 신앙하며, ‘나’와 ‘경’을 동등하게 보고, ‘경’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경’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존재나 나의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매 구절 경문에는 아주 특별히 관심을 둔다. 심지어 더욱 많은 사람들은 경문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들은 경문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보는데, 그들이 글귀를 너무 중요하게 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성경의 장절로써 나의 매 마디 말을 가늠하고 성경의 장절로써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고 구하는 것은 나와 합하는 도가 아니고 진리와 합하는 도가 아니라, 성경의 글귀와 서로 부합될 수 있는 도를 찾고 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무릇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여기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바리새인의 효자 효손들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통하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있게 함으로써 성경을 미신하지 않고 성경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여 하나님을 성경 속에 제한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사람을 동반한 지 몇천 년 역사(歷史)가 되었고 또한 사람은 모두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아 대하였으며, 심지어 말세에 이르러 사람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매우 싫어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가한 시간에 하나님은 성경의 내막과 그 기원을 하나하나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마음 속에 있는 성경의 지위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체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모두 성경의 글귀로써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정죄하고 가늠한다. 하나님이 성경의 실질, 구조와 그 속의 허점을 해석하는 것은 결코 성경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을 정죄하는 것도 아니라 거기에 적합하고 타당한 논법을 설명하고 성경의 본체를 복원하고 성경에 대한 사람의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해 정확한 견해가 있게 하는 것이며, 더는 성경을 숭배하지 말고 더는 방향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성경을 미신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잘못 여기는 것, 심지어 성경의 실제 배경과 그 속의 허점에 감히 직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두 성경에 대해 순수하고 올바른 인식이 있은 후에야 조금도 꺼림없이 그것을 방치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주려는 진리는 바로 어떠한 이론이나 사실도 하나님의 현실의 역사와 말씀을 대체할 수 없고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위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올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이러면 하나님의 만족에 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관념에서 나와 성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에 순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해야 하나님 뜻에 맞고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습니다. 江蘇省 謝恩

왜 제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집에서 항상 사소한 일로 까닭없이 화를 냅니다. 남편과 아이한테서도 단점이 많이 보여 주님께 저의 마음을 고요히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남편과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한효   한효 자매님: 우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기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이야기 해놓고 주님께 기도드렸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기도를 좋아하실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와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말하고 싶으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질지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표 없이 말을 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진실한 기도는 주요하게 세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부분에 힘쓰고, 세 가지 부분을 따라 연습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분명 주님의 응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 없이 말하거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도는 주님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지 계속 우리의 생각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처해진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 33) 2.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드리기 전에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과정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현실적 뜻에 따라 기도드린다면 우리는 쉽게 주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인성있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구해야 합니다. 빈말을 하거나, 큰소리를 치거나, 하나님에게 함부로 약속의 말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채권자 취급하며 요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런 정직한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이 항상 우리의 상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기도드린 후 주님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현실의 어려움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리고 나서도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주님께 기도드리며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한효 자매님, 며칠 전 제가 겪었던 체험을 나눠드릴게요. 얼마 전, 저도 집에서 괜히 화가 났고, 항상 가족들의 단점에 눈이 갔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쁜데 남편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가사일을 도와주지도 않아 화가 났죠. 나중에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런 환경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진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남편의 단점만 보이고 항상 남편을 변화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14)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항상 남편의 단점만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바라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만 쳐다보며 항상 남편이 잘못했고, 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원망했지만, 사실 남편도 요즘 야근이 많아 피곤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질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제 남편이 나쁜게 아니라 제가 나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볼 줄 모르고 항상 남편만 탓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신기하게도 제가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 남편을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원망과 불만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정확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