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2018년 10월 22일

너희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이전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대충대충 하여 속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너는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식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 기도는 천천히 훈련하는 것이다. 평소에 집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기도할 수가 없고, 평소에 소예배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대예배에서도 기도할 수가 없다.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할 말도 없고, 설사 기도한다고 해도 입술뿐이지 진실한 기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너는 이러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네 속의 진실한 정형과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도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더듬기를 구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고할 수 있기만을 구하여라.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전에 당신을 거역했습니다. 오늘에야 제가 정말 패괴되어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을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이 늘 저에게 역사하시고, 늘 빛 비춰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당신 앞에서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당신의 간증을 보고, 당신이 이긴 증거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면,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받을 것이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우면, 언젠가 너의 심지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고, 너의 마음과 전인(全人)까지도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며, 나중에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는 너희에게 있어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네가 기도하여 성령 역사를 얻으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동받을 것이고 네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네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을 털어놓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기도로 마음속 말을 다 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네가 속으로 격려받지 못하였다면, 너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너의 말이 진실하지 않으며 아직도 불순물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네가 기도한 후에 누림을 얻게 되었다면, 너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도 너에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가 부족하면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잠을 적게 자고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으냐?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냐?

이전에 너희는 기도할 줄 몰랐고, 게다가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지금은 기도하는 것을 잘 훈련해야 한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마음으로 당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저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고, 당신의 영이 제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 앞에서 모든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나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당신 앞에서 제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게 하셔서 저의 전인(全人)이 완전히 당신 앞에 봉헌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시련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저는 앞날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죽음의 통제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찾기 원합니다.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운명도 당신의 수중에 있으며, 저의 일생은 더욱 당신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당신이 저로 사랑하게 하시든 아니하시든, 사탄이 어떻게 방해하든, 저는 꼭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이렇게 기도하여라. 네가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점차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도 잘하는 법,크리스천의 응답받는 기도,

어떻게 진실한 기도에 진입하는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여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의 의의를 깨달을 수도 있지만, 기도에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개인의 기도 생활은 기도의 의의와 기도의 상식을 깨달은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자기의 결함 때문에 간구하며 기도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기초에서 기도하여라.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 생활을 확립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찾고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실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실사구시하고, 방식을 중요시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 체험이 있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 생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묵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등등, 목적 있는 이런 영적 교통의 사역은 모두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게 하고,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든, 묵도하거나 큰 소리로 외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이 네게 이루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기 위한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도달하여 너의 생명이 한층 더 자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제일 낮은 기준은 반드시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너에게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없을 수 있겠지만, 너는 반드시 기도로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조목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너의 영 생활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로 인해, 너는 네게 원래 있던 이상(異象)을 지킬 수 없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며, 심지도 그에 따라 사라진다. 영 생활에 진입한 표징은 너의 기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는지의 여부로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이 실제에 진입해야 하고, 다 의식적인 훈련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실로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너는 처음 기도할 때에 엉뚱한 생각으로 첫술에 배불리려고 하지 말라. 너는 사치한 요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입을 열자마자 성령께 감동받기를 바라고, 입을 열자마자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의 기도를 온전케 하는 것에는 모두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의 믿음을 시련하여 네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지를 본다. 너는 기도할 때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심지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훈련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더듬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감동 더듬기를 중요시하고, 찾고 구하며 모색하기를 중요시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네가 실행하는 길이 틀리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속셈과 관념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으며,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네가 충성하는지를 본다. 어쨌든, 훈련할 때에 너는 대가를 많이 치르거라. 네가 자신이 실행하는 길에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기도해도 된다. 네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기만 하면, 성령은 꼭 너를 이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어떤 때에는 네가 진심으로 기도하는데도 별로 감동을 더듬지 못하게 될 텐데, 그때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기도하는 데에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궤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너의 성정은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다. 진정한 영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성령께 감동받는 생활이다. 성령께 감동받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생활은 영 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종교 의식에 속한다. 자주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 생활에 진입한 사람이다. 사람의 성정은 기도에 따라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될수록 적극적인 성분과 순복의 성분이 더 많아지고, 사람의 마음도 점차 정결함을 받게 되며, 성정도 그에 따라 점차 변화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로 가져온 효과이다.

하나님이 시련ㆍ연단 사역을 하시는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시련은 사람의 어떤 영적 상태를 겨냥한 것인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는 사람의 패역 성품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사람 안에는 불순물이 많고 외식하는 요소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시련하여 그 시련으로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한다. … …하나님의 참된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성품이다. 하나님이 모든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너의 육체에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사람에게 나타내면, 사람의 육체는 반드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고통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을 바칠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일 너를 온전케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성품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말세에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고 선택한 이 무리 사람들에게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할 때를 빌어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데, 이를 통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체험함에 있어서 사람은 큰 고통을 겪고 높은 대가를 치러야만,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고, 최종에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도 만족을 얻게 된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고 진실한 사랑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려고 한다면, 반드시 많은 고통과 환경의 시달림을 겪어야 한다. 너를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해야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참된 마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릴 수 있다. 한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이 있는지는 바로 고난과 연단 가운데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사랑을 순결하게 하는 것도 고난과 연단을 통해야 비로소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상태에 비추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비추어,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여 사람에게 그에 대한 인식과 순복이 있게 하고, 사랑과 간증도 있게 하려고 한다. 그렇게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연단을 겪어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훈계, 책망을 겪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영원히 알지 못하고, 영원히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간증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을 연단하는 것은 한 방면의 효과만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의 효과를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심지와 사랑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단 사역을 하게 되었다. 이런 연단은 진리를 찾고 구하려 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의의 있는 일이 되었고,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이 그리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므로 어쨌든 사람과 같은 성품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진리는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이 쉽사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갖춰져 있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심지도 갖춰져 있지 않다. 사람이 고난과 연단을 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다면, 사람의 심지는 영원히 온전케 될 수 없다. 연단은 각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고통스러운 것이고,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이 깨우쳐 주고, 더 많이 실제적으로 책망하고 훈계하며, 사실과 진리의 대조를 통해 사람에게 더욱 자신을 알게 하고, 진리를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을 통해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참되고 더 순수한 사랑이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연단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의가 있다. 그는 의의 없는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없애 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지옥에 멸하려는 것도 아니라,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연단은 사람에게 있어 실제적인 검증이고, 실제적인 훈련이다. 연단 속에 있어야만 사람의 사랑이 그 원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연단을 겪어야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적극적인 방면에서든 소극적인 방면에서든 다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것은 네가 체험할 줄 아는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달렸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진정으로 추구한다면, 소극적인 방면에서 손해를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실제적인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더욱이 자신의 부족함도 인식할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상태도 파악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일무소유이고 아무것도 아님을 볼 수 있다. 시련을 겪지 않으면 모르고, 시련을 겪지 않으면 늘 자신이 남보다 대단하고 누구보다도 좋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 너는 이전에는 다 하나님이 하였고, 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랑도 없어지고 믿음도 없어지며, 기도도 부족하고 찬양도 할 수 없게 되는데, 부지중에 너는 그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사람의 타락 성품을 다루고, 또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책망하고,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드러내며,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폭로하는데, 사람 마음 깊은 곳의 ‘비밀’을 다 파헤치고 다 폭로한다. 많은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사람에게 사람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와 훈계와 연단을 통해, 또 형벌을 통해 온전케 하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이런 것들로 사람에게 하나님이 실제적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실행을 중요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난측(難測)하게 하며, 너의 관념에 너무나도 부합되지 않는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더욱 의의 있음을 설명한다. 너의 관념에 부합되면 의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나 기묘함을 느낀다. 기묘할수록 너는 더욱 하나님이 난측하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나 위대함을 보게 된다. 만일 그가 건성으로 사역하여 사람을 정복하고는 그만둘 뿐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비록 지금 연단을 좀 받지만 그것은 너의 생명이 자라는 데 아주 유익하다. 그러므로 이 고난을 받는 것은 너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연단을 좀 받지만 후에는 너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행사를 볼 수 있게 한다. 너는 나중에 “하나님의 행사는 참 너무나 기묘하구나!”라고 말할 것인데, 그것은 네 마음속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의 연단(힘쓰는 자, 형벌시대)을 겪고는 후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말하였다.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의 행사가 측량하기 어렵다는 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하는 일은 아주 의의 있고, 아주 가치 있으며, 아주 소중히 여길 만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했어도 네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내가 한 사역이 가치가 있겠느냐? 너에게 반드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쉽지 않구나, 하나님의 행사는 너무나 기묘하구나, 하나님은 정말 지혜롭고 정말 사랑스럽구나!”라는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한동안 체험하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너에게 한 사역을 네가 이미 얻었음을 증명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연단하면 사람은 고통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사람이 받는 연단이 작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작아지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도 작아진다. 받는 연단이 클수록, 받는 고통이 클수록, 받는 시달림이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해 생기는 참된 사랑이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이 더 있게 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너는 체험하는 가운데서 연단과 고통을 크게 받는 사람들, 훈계와 징계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깊어지고 점점 더 투철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훈계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가 인식하는 것은 아주 얕다. 그는 “하나님은 참 좋아요. 그분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분을 누리게 하시지요.”라고 말할 줄밖에 모른다. 훈계와 징계를 받고 나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기묘할수록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의의가 있으며, 너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할수록,너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수록, 더욱 너를 정복할 수 있고 너를 얻을 수 있으며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 사람을 이렇게 연단하지 않고 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역사는 효과가 없을 것이고 의의도 없을 것이다. 말세에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는 것이 평범하지 않다는 함의는 바로 이 때문이다.하나님이 이 한 무리 사람들을 택하여 얻는다고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너희에게 한 사역이 클수록 너희의 사랑을 더 깊게 하고 더 순결하게 하며, 하나님이 한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그의 지혜를 더욱 깨달을 수 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더 깊어진다. 』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예수님은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오셔서 역사하신다고 친히 예언하셨습니다

성경 참고: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눅 17:24~2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6:15)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계 1:12~1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그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온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의 이 말씀의 참뜻을 아는가? 설마 그가 너희에게만 알려 주었단 말인가? 너는 그가 흰 구름을 타고 어떻게 갔으면 또 어떻게 온다는 것만 안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아는가? 만약 정말로 너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있다면 예수가 한 그 마디 말씀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그가 “말세에 인자가 다시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르고 하늘의 사자들도 모르고 모든 사람이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시고 곧 영만 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네가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면 이 말씀은 허사로 되는 것이 아닌가? 인자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겠는가? 네가 만일 직접 보게 된다면 이 마디 말씀은 허사로 되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당시에 어떻게 말하였는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날이 올 때는 인자 자신도 모른다. 인자라 하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을 가리키는데, 정상적이고 보통인 사람이다. 이 사람 자신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예수는 그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올 것이고 그가 오면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는데, 그가 너로 하여금 앞당겨 알게 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의 돌아옴을 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틀림없지만,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심오한 비밀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명확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 비춰 준 것이라고 100% 자신 있게 보증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네가 너의 관념으로 여긴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그가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100% 자신 있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의 말을 감히 해석할 수 있는가? 네가 이사야의 말을 감히 해석하지 못하면서 왜 예수의 말씀을 감히 해석하는가? 예수가 높은가 아니면 이사야가 높은가? 예수가 높다면, 왜 너는 예수가 한 그런 말씀을 해석하는가? 하나님이 그의 사역을 미리 너에게 다 알려 주겠는가? 피조물은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는가?』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많은 그릇된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사람에게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과 직접 말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 이 시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역사하려면 말씀이 육신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몇천 년 동안, 사람은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구주 예수가 몇천 년 동안 그를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 사람들과 재회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즉, 사람과 몇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해 주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과오를 담당하여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구주 예수가 변함없이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가 되어 전혀 노하지도 않고,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담당하기를 바라고 있는데, 심지어 여전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에 그를 따르던 제자들과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 다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고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다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있는,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함으로써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하신 “내가 어떻게 가면 또 그렇게 오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 계시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몇천 년 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인류 가운데 강림할 것이라고 여긴다. 또 그들에게 나타난 후 양식을 베풀어 주고 생수를 부어 주며, 은혜와 자비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며 매우 생생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여기는 등등 이런 관념이 있는데, 사람들은 다 이렇게 여기고 있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완전히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무작정 그를 기다리고만 있을 뿐,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은 모른다! 거룩한 구주 예수는 비록 자비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사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 사람이 이를 어찌 알겠는가? 사람들은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가 어찌 또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불의한 자의 옷을 입으며,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계속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滿載)한,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을지라도, 오히려 구주 예수는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돌아왔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도 전혀 구애받지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 눈에는 다만 작디작은 신자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 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에 와서 오랫동안 역사하고 생활하였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즉, 오늘에 이르렀어도 여전히 아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히 하나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에 온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영이 역사하는 기세가 얼마나 엄청나게 크든지 하나님은 시종 아무 내색도 보이지 않고 아무런 내막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단계 역사가 천계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누구나 다 볼 수는 있지만 사람은 오히려 인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는 사람은 모두 긴 꿈속에서 깨어나 평상시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만인이 다 새벽을 깨닫지 못하고 날이 금방 밝아 올 때, 하나님이 땅에 와서 그의 육신의 생애를 시작하였는데, 이 시각의 도래를 사람은 전혀 모른다. 혹시 사람들이 다 깊이 잠들어 있겠고, 혹시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고, 혹시 많은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있겠지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이미 땅에 온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역을 더 순조롭게 전개하기 위해서이고, 더 좋은 사역 효과를 위해서이며, 또 더 많은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잠에 동이 틀 때는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끝난 것이다. 그는 땅을 떠나 땅에서 유랑하며 기거하던 그의 생애를 끝마칠 것이다.』 <역사와 진입 (4)>에서 발췌 『‘하나님의 나타남’은 뭇 교회 가운데서 이미 출현하였으며 그 영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한다. 그는 진노이며 그는 위엄을 지니고 있고 그는 심판하고 있다. 그는 인자이며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힌 양털 같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다!』 <제15편 말씀>에서 발췌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뭉게뭉게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계속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너희는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을 생각만 하고, 천당의 복락을 누릴 생각만 하면서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전혀 순종하지 않았고,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발표한 진리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너희는 무엇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과 바꾸겠는가? 너희가 거듭 범죄하고는 입으로 죄를 자백하는 그 성실한 마음인가?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드리겠는가?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여러 해 동안 사역한 자본인가? 너희는 무엇으로써 다시 온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는가? 어떤 진리에도 순복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인가?』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틀림없이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틀림없는 지옥의 자손이고 천사장의 후예이며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혹시 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두지 않겠지만 나는 그래도 예수를 따르는 소위 각 성도에게 알리겠다. 너희가 육안으로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직접 볼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가 되면 혹시 너의 마음은 몹시 격동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는가,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볼 때는 네가 지옥으로 내려가 징벌을 받는 때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끝났음을 선고하는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 하는 때라는 것을. 왜냐하면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에 오직 진리만 발표되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조물주의 품속에 안기게 되었다.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만 고집하는 그 사람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예수만 믿으면서 엄한 심판을 발표하고 생명의 참 도를 베푸는 예수는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올 때에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 완고하고 너무 교만하며 지나치게 자신을 믿는데, 그런 쓰레기 같은 자들이 어찌 예수에게서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된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에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꾸었을 때이다>에서 발췌 『나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는 형제자매마다 역사(歷史)의 비극을 재연하지 말고, 당대의 바리새인이 되어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말기를 바란다. 너희는 하나님의 다시 오심을 어떻게 영접할 것인지를 세심히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진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에 자기의 머리를 명석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는 예수를 기다리는 각 사람의 직책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기의 영의 눈을 밝게 뜨고 그런 허황된 글귀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현실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을 보아야 한다. 언제나 마음이 들떠서 모든 것을 잊은 채, 온종일 황홀경에 빠져 있지 말고, 주 예수가 하늘의 어느 한 송이 흰 구름을 타고 홀연히 너희들 가운데 강림하여, 지금까지 그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그의 뜻을 어떻게 준행하는지도 모르는 너희를 데려가기를 바라지 말라. 그래도 현실적인 것을 좀 생각해 보아라!』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어떤 것인가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 입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택하심과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고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주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왜 하나님의 재림에는 은밀히 강림하는 것과 공개적으로 나타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ㆍ타이완 동포들이 말하는 내륙에서 말씀이 육신 되었다.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에 올 때는 하늘 위ㆍ하늘 아래에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다는 참뜻이기 때문이다. 』

주님과 가까워지는 성경 읽기 방법 3가지

큐티를 할때, 효과적인 성경 읽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영적으로 특별히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성경 읽는 방법을 모른다면 영적으로 무미건조하고 누림이 없을 겁니다. 그럼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세상은 왜 어둡고 사악합니까?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면 훼멸되어야 합니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로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배치되면서 사탄을 경배하였으니,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었고 즉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잃었다……』

미혹될까 찾고 구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세에 여러 이단과 거짓 진리가 나타나면서 많은 분들이 능동적으로 찾고 구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미혹의 두려움을 버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3가지 방법 -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