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기독교는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입니까?

2019년 02월 05일

「하나님의 약속」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현재 기독교 내의 교파는 너무나 많습니다. 중국에서만 해도 인신칭의파(因信稱義), 성령 은사파(靈恩派), 호함파(呼喊派), 대찬미파(大讚美派), 삼반종파(三班僕人派), 참 예수파(真耶穌派) 등등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이미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있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같은 성경을 보는데, 왜 그렇게 많은 교파가 생겨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믿으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실까요?

이현

이현 자매님:

안녕하세요! 자매님이 제기한 것은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이것 역시 많은 형제자매들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로, 이 방면의 진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각 교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나누어야 합니다.

각 교파는 사람들이 성경을 편면적으로 깨닫고 사람의 교만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행하심에 따라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목양하셨기 때문에 당시에 따르는 사람들은 치우칠 수가 없었으므로 그때는 다른 교파가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도 다 죽고 나서, 각 교파가 점차적으로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교파는 무엇으로 인해 생겨난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다양하게 해석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견해도 천차만별이고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날에 2천 개가 넘는 교파가 형성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나게 된 주요 원인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편면적으로 깨달아 초래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구속 사역을 끝마치고 가셨으며, 나중에 주님을 따랐던 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주님을 따랐던 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깨닫지 못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성경을 편면적으로 이해했고, 교회의 교리로 삼아 지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라는 바울의 말을 지킴으로 ‘인신칭의파’가 생겨났고, 어떤 사람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켰는데, 오로지 ‘회개파’만이 주님의 뜻에 가장 부합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모든 교파는 성경을 편면적으로 깨닫고 있는 데다가 사람에게 교만하고 자고자대한 사탄 성품이 있으며, 그들에게 지식과 은사가 있어 자신만이 성경을 가장 순수하게 깨닫는다고 여겨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힘써 부인하고 판단하는데, 오로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강해하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며, 자신과 뜻이 맞는 한 무리 사람들을 끌어들여 그들만의 파벌을 만들었습니다. 각 교파는 이렇게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2천년 동안 기독교 각 교파는 교리가 서로 달라 논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교파를 만들고 서로 공격하고 헐뜯고 판단하고 배척하며 근본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최초에 하나의 교회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2천 개가 넘는 교파로 발전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파의 성립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만들라고 요구한 것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교파,

각 교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오직 사람에게 농락당하고 사람을 숭배하고 따를 뿐, 진리를 전혀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각 교파의 형성으로 보면 각 교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의 깨달음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이지, 주님의 가르침과 뜻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 사역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런 교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종교계의 목사나 지도자들이 은사와 직함으로 사역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그들을 따른 사람들은 그들의 은사에 전염되고 그들의 속성에 물든다. 그들은 사람의 은사와 재능, 그리고 지식을 중시하며, 초자연적인 것들과 심오하고 비현실적인 수많은 도리(물론 이 심오한 도리는 전부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것들임)를 중시한다. 그들은 사람의 성품 변화를 중시하지 않는 반면, 설교 능력과 사역 능력을 육성시키고 지식과 풍부한 종교적 도리 함양을 중시한다. 또한, 사람의 성품 변화가 어떠한지,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어떠한지는 중시하지 않으며, 사람의 본질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사람의 정상적인 상태와 비정상적인 상태는 더구나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의 관념을 일축하지도, 들추어내지도 않으며, 더욱이 사람의 부족한 점과 타락 성품을 고쳐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을 따르는 사람은 대부분이 천성적인 은사로 섬기며, 발표하는 것은 지식과 막연한 종교적 진리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이어서 사람이 전혀 생명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 속에서 각 교파의 목사나 지도자들은 신학 지식과 도리로 사역하고 설교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고 신자들에게 존재하는 온갖 그릇된 관점과 타락한 성품을 실제적으로 해결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파 간에 서로 공격하고, 판단하고, 목사는 자신만의 관점이 옳고 다른 사람의 관점은 옳지 않다는 그릇된 관점을 고집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그릇된 관점을 깨닫고 반성한 적이 없고, 또한 자신에게 드러나는 교만한 성품을 알지도 못하며, 더욱이 신도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런 실제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공허한 이론만을 설교합니다. 그들의 설교는 죄의 굴레를 벗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그저 한결같이 자신의 은사와 자질만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학 지식과 이론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신도들은 목사의 설교를 몇 년 들으면 영향을 받는데, 특히 목사의 은사와 자질을 숭배하고 설교 잘하는 목사의 말재주를 부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목사처럼 풍부한 성경 지식을 갖고, 설교를 유창하게 하고, 전도하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도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행하고 지키는 것은 다 종교 의식과 규례입니다. 신도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치 율법시대 후기 성전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은 것과 같은 것으로 성령의 이끄심과 깨우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몇 년 믿었든 진리를 깨닫지도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며 생명 성품도 변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계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본질상에서 사람을 믿고 따르는 것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교계에서 나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오다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이사야 2:2)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각 종교의 각계 인사가 다 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네가 어느 교파에 속하든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순종해야 한다. 이 사역은 그 어떤 교주도 행할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다. 세상이 몇 개의 큰 종교로 나뉠지라도 종교마다 교주와 통솔자가 있고, 따르는 사람 또한 지구상의 다른 국가와 다른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한 국가에도 여러 종교가 있다. 대국이든, 소국이든 나라마다 거의 그러하지만, 세계 각지의 종교 종류가 얼마나 많든, 결국 전 우주 아래의 사람은 모두 한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 만물은 다 창조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마지막에는 모두 창조주의 수중으로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어느 교파든지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말세의 끝날에 이르러 모든 종교가 하나로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만민은 다 하나님 집으로 돌아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고 각 교파에서 나와 하나님 앞으로 되돌아오게 하는데, 이 사역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자신만이 이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수 있고 또 사람을 이끄실 수 있으며, 더욱이 사람에게 아름다운 종착지를 주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권능의 상징이고 또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성품의 상징입니다. 그 어떤 종교 지도자나 종교 교주도 하나님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2천 개 이상의 교파가 있지만 모두 사람이 세운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속한 양은 결국 각 교파에서 나와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되는데, 곧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이루려는 사역입니다. 교계의 목사나 장로의 지위가 얼마나 높던 그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들로, 그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오로지 만물의 주재자이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셔서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미 말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벌써 돌아오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관념을 내려놓고 교계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말씀을 찾는 것이 우리의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이상은 단지 우리의 약간의 깨달음일 뿐으로,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또 모르는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와서 교제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

당신은 여러 교단과 교파가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어릴 적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에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많은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왕이 코끼리의 등에 타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길가에서 쉬고 있는 한 무리의 소경들을 보고는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코끼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소경들에게 함께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소경이 손을 내미니 마침 코끼리의 코가 만져졌습니다. 그러자 그 소경은 “아! 이제 보니 코끼리는 구불구불한 끌채(수레의 양쪽에 대는 긴 채)처럼 생겼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단단한 상아를 만지고는 바로 “아니야! 코끼리는 쌀을 찧고 옷을 두드릴 때 쓰는 홍두깨(다듬잇방망이) 같아”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만진 후 “아니야! 코끼리는 잡동사니를 담는 삼태기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머리를 만지고는 “틀렸어! 코끼리는 향을 피우는 세발 향로 같구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등을 만지고는 “당신들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배를 만지고 나서 “사실 코끼리는 뭐 별거 아니네, 두텁고 넓은 벽처럼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넓적다리를 만지고는 “아니야! 코끼리는 고목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여덟 번째 소경은 코끼리의 어깨를 만지고는 “코끼리는 기둥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아홉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발을 만지고 “아니야! 아니야! 코끼리는 움푹 파인 돌절구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당신들의 말은 다 틀렸어, 코끼리는 밧줄로 엮은 길다란 채찍 같아”라고 말했습니다. 장님들은 자신이 만진 것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틀렸다고 하면서 논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 소경들이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국왕은 웃으면서 “여러분! 여러분은 크게 틀렸습니다! 여러분이 만진 것은 코끼리 신체의 일부분입니다. 코끼리는 채찍도 돌절구도 아니고, 고목도 담장도 아니며, 작은 언덕도 향로도 아닙니다 …… 코끼리는 그저 코끼리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있는 여러 교단과 교파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교파의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믿는 것이 옳고 다른 사람이 믿는 것은 틀린 것이라며 의견이 분분한데,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신청의(以信稱義)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는 칭함을 받았으므로 자신들이 믿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생명파는 성경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으므로 자신들이 거듭남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파는 성경에 하나님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기록되었으므로 자신들이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찬미파는 성경에 다윗이 북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노래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중시하는데, 그렇게 믿어야만 하나님께 칭찬받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안식일파는 여호와 하나님이 십계명을 반포하여 사람들에게 반드시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으므로,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각 교파 사람들이 다 자신들이 믿는 교파의 관점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바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사람이 믿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이런 관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누가 알고 있을까요?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장 10절과 12절 말씀을 봅시다. “형제들아 ……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크리스천들 가운데 서로 다른 믿음의 파(派)가 생기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바울에 속하고, 아볼로가 전한 것은 아볼로에 속하고, 게바가 전한 것은 게바에게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의 사도들은 당시의 신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분열되면 안되며,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인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에서 사람을 믿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주님의 몸은 오직 하나인데 그렇게 한다면 주님의 몸을 갈라놓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주님의 뜻에 맞을까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예수님의 복음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지금까지 전해져 와서, 처음에 바울에게 속하고, 아볼로에게 속하고, 게바에게 속하던 것이 이제는 이미 2,000개(중국 기준)가 넘는 교파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몇천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과정은 뜻밖에도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관념 속에서 살면서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더군다나 저마다 이치를 말하면서 자신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은 완전치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수많은 교파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알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이고,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이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있는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역사를 보지 못한 연고이며, 모두 사람이 귀로 듣기만 하였지 눈으로 본 것이 아니고 사람이 전설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으나 하나님 역사의 사실에 대한 인식을 매우 적게 들은 까닭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한해 믿은 사람도 관념에서 신앙하고,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도 역시 관념에서 신앙 한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언제나 벗어 나지도 못한다. 사람은 또 자기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였다고 여기는데, 어찌 하나님의 진실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관념이고 소문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각 교파가 생겨난 주원인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야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막연한 하나님만 믿을 뿐,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실질,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만물을 관리하고 공급하는 등등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비록 서로 다른 교리를 지키지만 어떤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만 자대(自大)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더욱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복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화비하는 것으로 주님과 거래하여 맞바꾸려고 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날마다 죄짓고 회개하는 거듭되는 악순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오시면 들림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흐리멍덩하게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혐오하는지는 지금까지 모르고, 사람들 모두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파가 주님께 가장 인정받는 곳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로, 성경의 글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 아래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믿어도 그 믿음이 실제적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바닷물 한 방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맹목적으로 사람을 우러러보고 따랐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위의 사실 앞에서 우리는, 오늘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각자가 자기 것만 고집하고 게다가 또 서로 배척하고, 서로 논단하고, 서로 공격하고 정죄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묻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까? 지금의 국면을 전환하지 않고 이렇게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어한다면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칭찬하실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3~6) 이사야서 2장 2절~5절에는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화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우리는 주님의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가 될 수 있는데, 그래야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인 지금,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각 교파 사람들은 주님의 몸을 사분오열시켰습니다. 오직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셔야 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ㆍ형벌 속에서 죄악과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정결케 되어 모두가 하나님께 진실로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악을 멀리하고, 모두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사람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살며,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자민인 것입니다!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리를 발표함으로 심판 사역을 하여 한 무리 이기는 자를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였는데, 이 한 무리 사람은 각 교파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되돌아온 사람들이고, 더군다나 모두가 그리스도와 합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셔야만 권병과 능력으로 만교(萬敎)가 하나 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주는 다만 어느 한 종파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고, 천지 만물을 창조한 분을 대표하지 못한다. 교주는 전체 교파의 모든 인사를 통솔할 수는 있지만 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통솔할 수는 없다. 이것은 사람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교주는 다만 하나의 통솔자일 뿐, 하나님(조물주)과 동등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조물주의 수중에 있으므로, 최종에는 또 조물주의 수중에 돌아와야 한다. 인류는 본래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어서, 무슨 교파든지 다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만물 중의 지고자이므로, 피조물 중의 최고 통치자도 그의 권세 아래에 돌아와야 한다.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류를 적합한 귀숙에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누구도 만물을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할 수 없다. … …왜냐하면 전 우주 아래위에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고 다른 파별이란 논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이 사역을 하는 이는 오직 한 분밖에 없다. 무릇 하지 못하는 자라면 틀림없이 하나님 이외의 원수이다. 사교이라면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합하는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원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주도 수많은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주는 그저 한 종교만 통솔할 수 있을 뿐, 모든 종교를 다 통솔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물주는 인류를 창조할 수 있고, 땅에서 인류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이 전체 시대를 끝마칠 수 있고, 전 인류를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 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인데, 이미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이 사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미 인터넷상에서 전 인류에게 공개되어 각 교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일부 사람들이 이미 자신들의 교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다른 교파에서 왔는데, 모두가 방방곡곡에서 모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양과 양육을 받아들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해 하늘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말세에 사람은 오직 자신의 관념에서 나와야만 주님의 나타남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이끄심을 받아야만 사람은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 비로소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처럼 막연한 가운데서 살지 않게 됩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네가 미국 사람이든 아니면 영국 사람이든 또는 어떤 국적을 가진 사람이든지 간에, 너는 마땅히 자기의 국적 범위에서 벗어나 자아를 초월하여 하나의 피조물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해야 한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한 범위에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많은 사람들은 관념에서 하나님이 어느 한 국가나 어느 한 민족 가운데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 하는 의의가 그토록 심오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또한 그토록 중요한데, 어찌 사람의 관념과 사유로써 가늠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네가 너의 국적과 민족 관념을 타파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래야만 네가 관념의 속박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래야만 네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영접할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方音

하나님의 역사와 성경은 대체 어떤 관계입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 있었습니까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습니까?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사역의 증거일 뿐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취지를 알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두 단계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

너희는 일상생활 속에서 기도를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이전의 기도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대충대충 하여 속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마음을 완전히 하나님 앞에 바쳐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일이 있어야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너는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곡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인식할 때가 있었느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며 기도를 해 본 적이 있느냐? 기도는 천천히 훈련하는 것이다. 평소에 집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교회에서 기도할 수가 없고, 평소에 소예배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대예배에서도 기도할 수가 없다.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에 할 말도 없고, 설사 기도한다고 해도 입술뿐이지 진실한 기도가 아니다.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곧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신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너는 이러한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기도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네 속의 진실한 정형과 성령이 역사하는 데에 따라 한 걸음씩 기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기도를 훈련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 더듬기를 구하지 말고 마음속 말을 하나님께 고할 수 있기만을 구하여라. 너는 하나님 앞에 와서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전에 당신을 거역했습니다. 오늘에야 제가 정말 패괴되어 가증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시간을 헛되이 보냈지만, 지금부터는 당신을 위해 살고,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내어 당신의 마음을 만족게 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영이 늘 저에게 역사하시고, 늘 빛 비춰 주시고 깨우쳐 주셔서 당신 앞에서 굳세고 드높은 간증을 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서 당신의 영광을 보고, 당신의 간증을 보고, 당신이 이긴 증거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할 때면, 너의 마음이 완전히 해방받을 것이다. 네가 이런 기도를 하고 나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 네가 항상 이렇게 기도할 수 있으면, 성령은 반드시 너에게 역사할 것이다. 언제나 이렇게 부르짖고 하나님 앞에서 심지(心志)를 세우면, 언젠가 너의 심지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수 있고, 너의 마음과 전인(全人)까지도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으며, 나중에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기도는 너희에게 있어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네가 기도하여 성령 역사를 얻으면, 너의 마음은 하나님께 감동받을 것이고 네 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네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마음을 털어놓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만약 네가 기도로 마음속 말을 다 한 후에도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네가 속으로 격려받지 못하였다면, 너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고 너의 말이 진실하지 않으며 아직도 불순물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네가 기도한 후에 누림을 얻게 되었다면, 너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도 너에게 역사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느냐?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기도가 부족하면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결박 속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잠을 적게 자고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으냐?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이 우리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게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너에게 이런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런 기도는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냐? 이전에 너희는 기도할 줄 몰랐고, 게다가 기도하는 이 일을 소홀히 하였다. 지금은 기도하는 것을 잘 훈련해야 한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면, 너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는 마음으로 당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하지만 힘이 없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께서 저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고, 당신의 영이 제 마음을 감동시켜 당신 앞에서 모든 소극적인 정형에서 벗어나 어떤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의 통제도 받지 않게 해 주시고, 당신 앞에서 제 마음을 완전히 털어놓게 하셔서 저의 전인(全人)이 완전히 당신 앞에 봉헌되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시련하셔도 좋습니다. 지금 저는 앞날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죽음의 통제도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길을 찾기 원합니다.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운명도 당신의 수중에 있으며, 저의 일생은 더욱 당신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당신이 저로 사랑하게 하시든 아니하시든, 사탄이 어떻게 방해하든, 저는 꼭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이렇게 기도하여라. 네가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점차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진실한 기도에 진입하는가?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와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에게 배치해 준 환경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증오하고 배반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여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있게 하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도의 의의는 무엇인가?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여 도달하려는 효과는 무엇인가? 사람이 기도할 수 있고 기도의 의의를 깨달을 수도 있지만, 기도에 효과가 있게 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을 토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흐리멍덩하지 않고 인식이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런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1. 맹목적으로 마음대로 몇 마디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의 마음속에 부담이 있어야 한다. 즉, 반드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는 늘 하던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낡아빠진 것들을 언급해서는 안 된다. 전적으로 성령의 현실적인 말씀으로 말하기를 훈련해야만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다. 4. 단체 기도는 반드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야 하고, 반드시 성령의 현재 사역이어야 한다. 5. 모든 사람은 다 대표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서 대표 기도할 부분을 찾아야 하며, 또한 이 기초에서 부담을 가지고 항상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표현이다. 개인의 기도 생활은 기도의 의의와 기도의 상식을 깨달은 기초 위에 있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항상 자기의 결함 때문에 간구하며 기도하고,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한 기초에서 기도하여라. 사람마다 자기의 기도 생활을 확립해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할 수 있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를 찾고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기의 실제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내놓으며 실사구시하고, 방식을 중요시하지 말라. 가장 중요한 점은 진실한 인식이 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실제 체험이 있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 생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묵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등등, 목적 있는 이런 영적 교통의 사역은 모두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게 하고, 생명이 점점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쨌든,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든, 묵도하거나 큰 소리로 외치든,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이 네게 이루려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깨닫기 위한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 도달하여 너의 생명이 한층 더 자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기준은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진솔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제일 낮은 기준은 반드시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되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단계에서는 너에게 더 새롭고 더 높은 깨달음이 없을 수 있겠지만, 너는 반드시 기도로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이것은 최소한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이 한 가지 조목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이는 너의 영 생활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였음을 증명한다. 그로 인해, 너는 네게 원래 있던 이상(異象)을 지킬 수 없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며, 심지도 그에 따라 사라진다. 영 생활에 진입한 표징은 너의 기도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였는지의 여부로 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이 실제에 진입해야 하고, 다 의식적인 훈련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진실로 찾고 구하는 사람이다. 너는 처음 기도할 때에 엉뚱한 생각으로 첫술에 배불리려고 하지 말라. 너는 사치한 요구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입을 열자마자 성령께 감동받기를 바라고, 입을 열자마자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의 기도를 온전케 하는 것에는 모두 때가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너의 믿음을 시련하여 네가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지를 본다. 너는 기도할 때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력이 있어야 하고, 심지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훈련하기 시작할 때에 성령의 감동을 더듬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변함없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감동 더듬기를 중요시하고, 찾고 구하며 모색하기를 중요시해야 한다. 어떤 때에는 네가 실행하는 길이 틀리고, 어떤 때에는 자신의 속셈과 관념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영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으며,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이 네가 충성하는지를 본다. 어쨌든, 훈련할 때에 너는 대가를 많이 치르거라. 네가 자신이 실행하는 길에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다른 방식으로 바꾸어 기도해도 된다. 네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기만 하면, 성령은 꼭 너를 이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어떤 때에는 네가 진심으로 기도하는데도 별로 감동을 더듬지 못하게 될 텐데, 그때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며, 기도하는 데에 의지력이 있어야 한다. 진솔한 사람이 되려면 궤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너의 성정은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다. 진정한 영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고, 성령께 감동받는 생활이다. 성령께 감동받는 과정이 바로 사람의 성정이 변화되는 과정이다. 성령의 감동이 없는 생활은 영 생활이 아니라 여전히 종교 의식에 속한다. 자주 성령의 감동이 있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 생활에 진입한 사람이다. 사람의 성정은 기도에 따라 부단히 변화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될수록 적극적인 성분과 순복의 성분이 더 많아지고, 사람의 마음도 점차 정결함을 받게 되며, 성정도 그에 따라 점차 변화된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로 가져온 효과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음이란” 쉽게 말하자면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경 예언에는 마지막에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원한 복음을 위해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고, 성경을 떠나면 바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논법이 맞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유대의 그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써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가를 찾고 구하지 않고 매 구절의 율법을 진지하게 대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가 구약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명으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으로 본래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그들이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경문’의 한 글자 한 구절에만 유심하였을 뿐, 나의 뜻과 나의 역사 절차와 역사 방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사수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이다. 좀 더 투철하게 말하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노예들이다.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하여, 성경의 명망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결국 인자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다만 성경의 편을 들기 위한 것이었고, 다만 사람 마음속에 있는 성경의 한 글자 한 구절의 지위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의 앞길을 망칠지언정, 속죄제를 얻지 못할지언정, 경문의 규정에 맞지 않는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 오늘날의 사람은 또 어떠한가? 천당에 가기 위하여, 은혜를 받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이미 와서 진리를 내놓는 그리스도를 차라리 인간 세상에서 몰아내고자 하고, 성경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진리의 도래를 전부 말살해버리고자 하며, 성경의 영원한 존재를 수호하기 위하여 사람은 모두 차라리 두 번째로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재차 십자가에 못 박고자 한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악독하고 사람의 본성이 이렇게 나와 적대되는데, 또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어도 사람은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의 빛을 사람의 몸에 비출 때에도 사람은 여전히 나의 존재를 모르며, 나의 진노가 사람의 몸에 임할 때에 사람은 더욱더 나의 존재를 부인한다. 사람은 모두 글귀와 합하고 성경과 합하는 것을 찾고 구하지만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모두 하늘 위의 나를 앙망하고 하늘 위의 나의 존재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지만 아무도 육신 중에 살고 있는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야말로 너무나 미소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글귀와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찾고 구하는 그 사람들은 나의 눈에는 비천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숭배하는 것은 죽은 글귀이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거액의 재산을 베풀어줄 수 있는 하나님이며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지배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 나에게서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람의 비천함은 그야말로 차마 말할 수가 없다. 나와 적이 되는 이 사람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이 사람들,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이 사람들, 나를 거역하는 이 사람들이 어찌 나와 합할 수 있겠는가?』 ≪너는 그리스도와 합하는 도를 찾고 구해야 한다≫에서 발췌 『더 높은 도가 있는 이상, 하필 그 낮고 때가 지난 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더 새로운 말씀과 더 새로운 사역이 있는 이상, 하필 아직도 낡은 역사 기록 속에서 살 필요가 있는가? 새로운 말씀이 너를 공급할 수 있으면, 이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낡은 기록이 너를 배부르게 할 수 없고 너의 현시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없으면, 이것은 역사(歷史)이고 현시의 사역이 아님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가 바로 최신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니,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아도 다 사람이 회상하는 역사(歷史)로 되었고, 아무리 참고 가치가 있어도 옛 도이다. 비록 ‘성서’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옛 도는 역사(歷史)이며, 비록 ‘성서’에 한 페이지도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새 도는 현실이다. 이 도가 너를 구원할 수 있고, 이 도가 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령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예수 시대에, 예수는 그때 성령이 그의 몸에 하는 사역에 따라 그 유대인들을 인솔하였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솔하였다. 그가 한 것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고 그의 사역에 따라 말씀하였다. 그는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였든, 성경에서 길을 찾는 것으로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솔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하기 시작하자 회개의 도를 전하였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렇게 많은 예언에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그는 성경에 근거하여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다. 그는 여태껏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하지 않았다.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그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나타낼 수 없었고 그의 사역, 그의 교훈, 그의 권세도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그의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을 뿐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써 그를 정죄하고 심지어 구약 성경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성경 구약을 초과하였다. 만일 이렇지 않았다면 사람이 또 어찌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의 교훈과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가 한 사역은 모두 더 새로운 길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다만 그의 직분을 하여 그의 새로운 사역을 그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며, 그가 역사한 것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하는 데는 성경의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다만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의 예언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대로 사역하지도 않았다. 구약에 어떻게 말하였든, 그의 것과 맞든 그의 것과 맞지 않든,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써 그를 정죄하였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그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그의 사역을 어떻게 정죄하든, 그는 줄곧 그가 해야 할 사역만 하였을 뿐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가 역사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고 또한 성경의 기록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의 착오가 아닌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이 역사하는 데에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하는가? 도대체 성경이 큰가 아니면 하나님이 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함에 있어서 반드시 성경에 근거해야 하는가? 설마 하나님 자신은 성경을 벗어날 어떠한 권리도 없단 말인가? 하나님이 성경을 떠나서 따로 역사할 수 없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는가? 만일 그가 안식일에 따라, 구약의 그런 계명에 따라 실행한다고 하면, 그는 무엇 때문에 와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고 머리에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는가? 이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닌가? 그가 구약대로 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규례들을 타파하였는가? 하나님이 먼저 있었는지 아니면 성경이 먼저 있었는지를 너는 알아야 한다! 그가 안식일의 주인일 수 있으면 성경의 주인일 수는 없는가?』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여호와의 도를 준행하였는가를 보려면, 너는 구약 성경을 보아야 한다. 네가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해하려면, 신약 성경을 보아라. 그러면 말세에 하는 사역에 대해서는 네가 어떻게 보는가? 반드시 오늘의 하나님의 인솔을 받아들여야 하고 오늘의 역사에 진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고 성경에 또한 아무도 앞당겨 ‘기록’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 되어 따로 중국에서 또 얼마간의 선민을 택하였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 몸에 역사하여, 그의 땅에서의 사역을 이어서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잇는다. 오늘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걸은 적이 없던 길이고, 역시 아무도 보지 못하였던 도이며, 여태껏 하지 않았던 사역이다. 즉 하나님의 땅에서의 최신 사역이다. 그러므로 하지 않았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현재는 현재이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이외에서 또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하였는데,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를 벗어났고 선지자의 예언도 초과하였음을 모르며, 예언 이외의 신기(新奇)한 사역이고 역시 이스라엘 이외에서의 더욱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보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사역임을 모른다. 이러한 사역이 성경에 어찌 명확한 기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오늘의 사역을 앞당겨 조금도 빠짐없이 다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누가 관례를 타파한 이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사역을 오래되어 곰팡이 핀 그 책에 기록해놓을 수 있겠는가? 현시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의 새 길을 걸으려면, 너는 성경에서 나와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초월해야 한다. 이래야만 새로운 길을 잘 걸을 수 있고 새로운 경지에, 새로운 역사에 진입할 수 있다. 현재 무엇 때문에 너더러 성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 이외에 또 다른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성경에서 더 새롭고 더 세밀한 실행을 찾지 않고 성경 이외에 또 더 큰 사역이 있게 되었는지를 너는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너희들이 깨달아야 할 바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1)≫에서 발췌

진정한 크리스천이란 어떤 것인가

당신은 진정한 크리스천 입니까? 수많은 사람들 중 크리스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택하심과 은혜이고 영광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어떻게 해야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고 주님의 칭찬을 받으며, 주님의 뜻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저는 어떤 교나 다 좋은 것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교를 믿든 진심으로 믿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세계를 창조할 수 없으면 세계를 끝마칠 수 없고, 세계를 창조한 분이면 틀림없이 세계를 끝마칠 수 있다. 그러므로 말하니,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수양하게 할 수밖에 없는 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아니고 틀림없이 인류의 주가 아니며, 그는 이렇게 큰 사역을 하지 못한다. 』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임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성경 참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관련된 하나님 말씀: 『진리는 인간 세상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의 진리는 그리스도가 전한 것이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즉, 결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나님 그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해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所是)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나의 말은 영원불변의 진리이고, 나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인류를 인도하는 유일한 선도자이며, 내 말의 가치와 의의는 인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의 실질에 근거해 확정하는 것이다. 설령 이 세계에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내 말의 가치와 인류에 대한 나의 도움은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말을 반박하는 많은 사람들, 또는 나의 말에 대해 아예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는 오직 하나이다. 즉, 시간과 사실이 나의 증거가 되게 하여 나의 말이 곧 진리, 길, 생명임을 실증하고,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다 옳은 것이고 다 사람이 갖추어야 할 것이고 더욱이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즉, 나의 말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에서 목표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 나의 말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나의 말에 정죄되는 사람이고, 더욱이 나의 구원의 은혜를 잃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내 형벌의 채찍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모든 행위를 숙고해야 한다>에서 발췌 『‘말씀’이 이미 ‘육신’ 되었고 ‘진리의 성령’이 ‘육신’ 중에 실제화되었고 즉 모든 진리와 모든 생명과 길도 육신에 왔으며 확실히 영이 땅 위에 왔고 영이 육신에 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 비록 성령으로 잉태된 것과 겉으로 보기에 결코 같지 않지만, 역사 중에서 더욱더 영이 이미 육신에 실제화되었음을 볼 수 있고, 더욱더 ‘도’가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났음을 더욱 볼 수 있으며, 너로 하여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참뜻을 깨닫게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너는 더욱더 오늘의 말씀이 하나님이고 도가 하나님임을 깨달아야 하고, 또한 너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 되었음을 보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다. 이러면 네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있고 네가 그를 알고 그를 깊이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네가 오늘 걷는 길이 생명의 도이고 ‘진리의 도’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예수가 한 사역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실질을 응했는데,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기에,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에 내포된 뜻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또한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이 말까지도 너로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하면, 창세부터 하나님은 말씀하였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한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네가 육신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육신과 말씀, 육신과 도(道)에 대해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해야 할 간증이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이고, 즉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곧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확실하게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친다.』 <실행 (4)>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