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2018년 09월 20일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행복한 웃음,회사에 취직하다,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다

2015년 8월, 저는 사람을 몹시 놀라게 했던 초강력 태풍 “사우델로르”의 엄습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체험에서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권세는 측량할 수 없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던 그날 저녁,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하던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큰 바람이 거칠게 불기 시작했고 빗줄기가 바람에 휘어 창문을 때려 타닥타닥 소리가 났으며 뒤이어 문틈으로 빗물이 스며 들어와 집안으로 흘러내렸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컴퓨터의 플러그를 뽑았는데 몇 분 후에는 정전이 되고 물도 끊겼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이번 태풍이 엄청 크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이전에도 태풍을 겪었지만 다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밖의 바람은 더 거세졌고 한 자매님이 “빨리 와서 문을 받칩시다. 문이 바람에 넘어져 유리가 깨질 것 같아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문을 받쳤습니다. 바람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저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리문이 깨지면 머리, 얼굴, 몸 전체가 긁혀서 상처투성이가 될 텐데 어떡하지?’ 저는 두렵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와중에 홍수와 지진을 당한 형제자매들이 오직 전심으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체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그때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우리 하나님께 기도 드립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지,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는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어.’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재난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고 하나님이 지배하시니 오늘 우리가 태풍의 엄습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고 하나님의 시련이 우리에게 임한 것입니다. 태풍이 당신의 주관 하에 있고 당신의 권세가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겠습니다.” 기도한 후, 비록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었지만 저의 마음은 평온해지고 다른 사람들도 다 평온했습니다. 이때 한 자매님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라고 묻길래 저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고 진리를 얻어야 진정한 행복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방금 전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강력한 태풍 앞에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을 때는 그렇게 무기력하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드린 후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있을 때는 태풍이 아무리 거세어도 우리의 마음은 아주 평온하고 든든했습니다. 이런 현저한 대조는 저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은 정말 행복하구나!’라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일을 나누어 맡았는데, 어떤 자매는 컴퓨터를 안전한 곳에 옮겼고 어떤 자매는 유리 창문을 받치고 있었고 저와 다른 한 자매는 방안의 빗물을 쓸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이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의지해 하나님의 행사를 본 체험담을 교제하였고 또 하나님의 최신 말씀도 교제하였습니다. “미시적 각도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산천, 호수, 바다, 육지 그리고 사람이 겪는 사계절과 각종 식물, 동물, 미생물과 인류를 포함해 땅 위에서 생존하는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 아래에 있다.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가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나타나거나 소실되게 하고 또한 만물의 생존에 법칙이 생기게 하여 만물이 이런 법칙 속에서 번식하게 되었는데, 이 법칙은 어떠한 사람과 사물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초월할 수 없는가? 유일한 답은 바로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은 것이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권세로 말미암아 생기고 또한 하나님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동시에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의 움직임과 변화는 다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생기거나 소실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하나님 권세의 명정을 초월할 수 없는데 태풍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바람의 강약도 하나님의 주관 하에 있어 하나님이 크게 하시면 커지고 하나님이 약하게 하시면 약해질 것이기에 우리는 태풍이 커질까봐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재와 주관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중에 우리는 태풍이 더 이상 우리 집을 직접 공격하지 않고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홍수의 엄습을 체험했던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물길이 바뀌는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았었고 오늘 우리는 태풍 가운데서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태풍의 방향이 바뀌는 하나님의 권세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참으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체험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 뒷집 지붕의 철판이 벗겨 날려가고 공중에서 커다란 흰 물체가 날아와서 그 집 앞마당에 떨어짐과 동시에 이웃집 창문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 창문은 아무 탈 없이 무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권세와 크나큰 능력이 태풍의 방향을 바꿔 주었기에 우리 모두가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음을 감탄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음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였다.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한 후 또 만유를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은 만유를 주재하는 동시에 또 만유를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것은 하나의 어떤 개념인가?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떻게 현실과 맞추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는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권세를 인식할 것인가?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이 주관하는 것은 일부분 행성이 아니고 일부분 피조물이 아니고 더욱이 일부분 인류도 아니라 거시적에서 미시적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에서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주 천체의 각 행성에서 지구상의 각 종류의 생물에 이르기까지 및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생물이나 기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존재하는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유를 주관한다’ 중의 ‘만유’의 정확한 정의이다. 이것도 바로 하나님 권세의 시행과 하나님이 주재하고 관리하는 범위이다. ” 이튿날 아침, 도로 옆에 전봇대가 쓰러져 있었고 아름드리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져 있었고 많은 집의 지붕이 벗겨져 있었으며 도시 전체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도시의 모습은 다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재난 가운데는 하나님의 노기가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더 잘 생존하기를 바라시기에 직접 인류를 멸하시지 않고 재난으로써 인류를 권면하시고 일깨우시며 경고하십니다. 처참한 광경들을 보는 순간 저는 자신도 모르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증오하는 것은 인류가 하나님과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인류에 대한 돌봄과 걱정과 긍휼은 시종 변하지 않았다. 설사 그가 인류를 멸했다 해도 그의 이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다. 인류가 패괴(역주: 부패, 타락)로 가득차고 어느 지경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거역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성품, 그의 실질로 인해 그의 원칙에 따라 이 인류를 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실질로 인해 그는 여전히 인류를 불쌍히 여겼고 심지어 각종 방식으로 인류를 만회하여 계속 생존하게 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과 대립하고 계속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즉 하나님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부르든지 어떻게 깨우쳐 주든지, 하나님이 어떻게 공급하고 도와주든지, 어떻게 관용하든지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고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상대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상심한 끝에도 여전히 사람에게 최대한도의 관용을 베풀어 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람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마지막 한계까지 기다린 후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한다. 즉 하나님이 인류를 멸하려고 계획해서부터 인류를 멸하는 사역을 정식으로 시작하기까지는 한동안의 기한이 있고 하나의 과정이 있는 것인데, 이 과정은 인류의 되돌아옴을 위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남겨준 마지막 기회이다. ” 이번에 체험을 통해 저는 하나님의 권세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을 보았고 사람이 재난 앞에서 너무나 보잘것없고 정말 개미보다도 못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얻고 선행을 많이 예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으며 재난 앞에서 명리, 지위, 금전, 혈육의 정, 이 모든 것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진리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매일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매일 배설하시는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 가운데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며, 본분을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요구하신 각 방면의 진리를 실행하고 합격된 피조물이 되기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세상에서 방황하고 죄악에서 몸부림치며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마귀에게 짓밟혀 죄의 낙을 누리면서 인생길 어디 있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복을 얻지 못하고 더욱이 생존의 가치와 삶의 의의가 뭔지 모르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여전히 막연 중에서 신앙하고 여전히 공허함 속에서 지내며 뉘게 충성할지 모르네 난 끝내 알았네 하나님 사랑의 손이 날 이끌어서야 길 잃지 않고 광명 역정에 들어섬을 난 끝내 알았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고심을 다년간의 오해 풀려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치리 매번 찬송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을 부를 때마다 저의 가슴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로 벅찼습니다. 저의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3년 전, 저의 가정에 적색 신호등이 켜져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당시, 남편이 사업이 순조롭지 않아 괜히 저에게 자주 화를 내다 보니 저는 마음이 답답하여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남자가 저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열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거절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의 싸움이 끝나자마자 남자 동료로부터 식사나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홧김에 저는 약속 장소에 나갔습니다. 그날 뒤로 저희들은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된 자신을 보며 마음속에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영원히 함께 하진 못해도 사랑을 해본 것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저의 이런 행동이 불장난이어서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더구나 딸도 있고 남편도 있어서 감당하지 못할 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동상이몽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하게 되었고 마음은 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하루하루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보냈는데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 남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제가 이렇게 후회막급한 짓을 저질러 가정을 파괴하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의 죄책감을 달래기 위해 관음당에 보살을 자주 찾아갔습니다.(다른 사람한테서 그 보살이 아주 용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살에게 저를 이런 악연에서 벗어나 원래의 조용한 삶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빌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제 뜻을 따르지 않았고 헤어 나올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고통스러워 그를 만나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마음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르고 추하여 더 이상 이전에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선생님에게는 훌륭한 학생, 부모님에게는 착한 딸, 남편에게는 현모양처가 아니었습니다. 마침 그때, 어머니에게서 동생의 결혼식을 월말에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내심 ‘잘됐어! 고향에 가서 마음을 정리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내려가서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고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저에게 임하여 이번 귀향길이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토록 절묘한 타이밍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저를 죄악의 벼랑 끝에서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빛 가운데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서 저는 제가 그렇게 죄책감에 몸부림치며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던 원인이 바로 자신이 사탄 본성에 결박되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성육신에 의하여 사함받은 것이지 사람 안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범죄하면 속죄제로 말미암아 사함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능히 사람이 범죄치 않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하고 사람의 죄성이 어느 정도 변화가 있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해 사람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의 죄가 사함을 받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역으로 인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탄의 옛 패괴(역주: 부패, 타락) 성품에서 살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을 사탄의 패괴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하여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발전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사람의 성품이 변화에 이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렇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도를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여 사람의 성품이 점차 변화되는 데에 이르게 하고 빛의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며, 사람이 하는 범사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버리게 해야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완전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데에 이르게 해야 한다. 이래야 사람이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알고 보니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것은 모두 죄를 범하는 본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조물주만이 이러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변화시켜 빛 속에서 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찬송 부르고 진리를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지켜주고 안정시켜 주어 사악한 정욕을 끊어 버리고 원래의 조용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나쁜 생각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네가 육체를 만족시킬수록, 그것은 더욱더 욕심이 그지없다. 이번에 그것을 만족시키면 다음번에 그것이 또 요구한다. 늘 이렇게 하면 사람은 더욱더 자기의 육체를 사랑할 것이다. … 네가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그것의 욕망이 더 커지고 … 사람의 육체는 뱀과 같은데, 본질이 바로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다. 너의 육체가 완전히 목적을 달성할 때는 곧 네가 목숨을 상실할 때이다. 육체는 사탄에게 속하는 것이다. 그것 안에 언제나 사치한 욕망이 있어 늘 자기를 위하려 하며 … 네가 육체를 만족시키는 것이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면 최후에 그것이 너를 삼켜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점차 육체의 본질을 알게 되었고 육체의 사악한 정욕을 만족시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는 그것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믿음과 힘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제가 사탄의 괴롭힘과 우롱을 이겨 내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로 살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찬송을 더 자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부지중에 저의 마음에 그 사람의 모습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평안과 기쁨, 자유와 해방이 가득하여 예전보다 더 충실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세 식구는 아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딸도 사랑스럽고 남편도 저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길이 없었고, 명확한 방향성도 없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족, 자녀, 사업, 결혼, 지위등을 정신적 지주와 평생 추구해야 하는 목표로 삼았고, 살아가는 희망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눈의 피로를 풀어주는 간단한 방법을 찾다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컴퓨터, 휴대전화는 사람들의 훌륭한 도우미가 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자기기 없인 살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인 나 역시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엄청나게 집착하곤 한다. 매일 컴퓨터 앞에서 공부하며 자료를 찾고, 친구와 연락하고, 계획표를 작성하는 등 컴퓨터가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는 정말 편리하고 유익하다! 하지만 전자기기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는 동시에 조금의 고민도 따랐다. 컴퓨터 앞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 때문에 눈이 뻑뻑하고 아프며, 심지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업무상의 필요로 컴퓨터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매일 컴퓨터와 동고동락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뒤, 주변 동료들도 장시간 컴퓨터와 휴대전화 사용으로 눈이 많이 나빠진 걸 보게 되었다. 전자파 차단 안경을 쓴 사람도 있고, 수술 받은 사람도 있으며, 오랫동안 안경을 써서 안구가 튀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빛나고 생기 넘치던 눈이 침침해져 생기가 없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처럼 될까 두려운 마음에 안구 피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선 컴퓨터를 1시간 하면 10분간 먼 곳에 있는 초록색 식물을 바라보며 정기적으로 눈의 피로를 풀어보았다. 이렇게 지속하니 눈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지만 그때뿐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눈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컴퓨터 대신 손으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업무 효율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펜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그 후, 옆에 앉은 동료가 TV 광고에 나오는 안약을 쓰는 걸 보고 나도 그중에 제일 좋다는 안약을 골라 사용했다. 하지만 약물로 순간의 고통만 덜어줄 뿐, 눈의 피로는 여전했고, 오히려 눈이 점점 아팠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으나 끝내 고통을 덜어줄 방법은 찾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가 내게 놀러 왔다. 같이 얘기하는 도중에 친구에게 말했다. “눈이 너무 아프니까 컴퓨터 보기도 싫어. 그런데 또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친구가 말했다. “내가 좋은 방법 알려 줄게. 녹차를 우려서 차갑게 식힌 다음 눈에 넣고 10분 동안 휴식해 봐, 눈이 굉장히 편해질 거야. 녹차는 식물이라서 부작용도 없어. 나도 해봤는데 효과가 좋더라고.” 드디어 좋은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무척 기뻤다. 그래서 친구가 말한 대로 해보니 정말 눈이 편안해졌다. 2주 동안 계속했더니 뻑뻑함도 많이 가셨다. 그 후로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보니 뻑뻑하고 아팠던 증상들이 모두 사라졌고, 마음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작은 식물이 신통하기도 하지! 전자파 차단 안경에 안약까지 써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녹차에 이렇게 신기한 효능도 있고, 부작용마저 없다니! 몇 년간의 고통을 드디어 해결했구나!’ 나중에 인터넷에서 녹차의 효능을 찾아본 후에야 녹차에 전자파 차단 효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효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열, 해서, 청심, 양음, 분비물 촉진, 해갈, 이질 멈춤, 상처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여름철 짜증과 뒤척임 등 에도 효과적이었다. 게다가 여름철 무더위, 더위로 인한 설사, 이질과 부스럼이나 종기, 붓기 등에도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녹차는 여름에 마시기에 제일 좋고, 효능 또한 뛰어나다!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만물 중 동식물이든 풀이든 상관없이 사람이 몸에 상처를 입거나 병에 걸렸을 때 필요한 식물도 만들어 놓았다. 예를 들어, 화상을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으면 되느냐? 아무 천으로나 감싸면 되느냐? 그러면 곪거나 감염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칫 잘못하여 불이나 뜨거운 물에 데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로 씻어 내면 되느냐? 예를 들어, 열이 나고 감기에 걸리거나, 일하다 타박상을 입거나, 무엇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나거나, 혈관 질환처럼 생활 습관이나 감정에 의해 발생된 병이나, 정서적인 병이나, 오장육부에 생긴 질병 등은 그에 맞는 식물로 치료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에는 어혈을 풀거나, 통증을 없애거나, 지혈이 가능한 것도 있고, 마취를 하거나, 피부의 정상적인 회복을 돕는 것도 있으며, 체내의 어혈과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도 있다. 이러한 식물 모두는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쓸모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위해 예비한, 비상시에 필요한 것들이다. 이들 중에는 사람이 무심코 발견하게 된 것도 있고 또 어떤 기이한 현상이나 사람들을 통해 발견하게 된 것도 있다. 발견한 후 인류에게 전해 내려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만든 식물 또한 가치와 의미가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 모두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의 생존 환경을 창조할 때 사람을 위해 만들고 재배한 것으로 모두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릴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도 따뜻해졌다. 하나님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세심하게 돌봐주듯 우리를 만드시기 전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셨고, 다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할 수 있는 약초도 마련해 주셨다. 우리가 오랫동안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 전자파로 인해 눈이 뻑뻑하고 아플 때, 하나님께서 만드신 녹차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녹차는 천연 안약으로 사용할 수 있고 해열, 해서, 청심 등 다양한 효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없고 효과도 뛰어나다. 찻잎 외에도 우리가 평상시에 접하게 되는 다른 한방 약초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각종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삶의 곳곳까지 세심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비미은장을 실제적으로 볼 수 있었고, 묵묵히 우리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 다닐 때 ‘본초강목’의 저자를 존경하며 그가 모든 약초를 발견해 인류를 위해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세심한 준비가 있었음을 이제 깨달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것을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고 공로를 칭찬해 주길 바라지도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직접 누릴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것으로, 우리 인류를 향한 창조주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활함에 있어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돈과 명예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닌 지난 날

항상 삶 속에서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그는 갑자기 신장염이 도져 죽고 싶을 정도로 슬퍼했습니다. 절망 중, 그에게 복음이 임하여 희망의 불을 지피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그의 심령이 소생케 되었습니다.

별 하늘을 바라보며 알게 된 비밀

끝없는 별하늘은 늘 사람에게 끝없는 상상과 동경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별하늘은 마찬가지로 저를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별하늘을 좋아하는데 어려서부터 좋아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어린 시절을 지내면서 여름 저녁만 되면 늘 시골의 빈터에 누워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전설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견우직녀, 북극성, 북두칠성, 간혹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천진하게 소원을 빌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유성이 어디서 왔을까, 하늘에 정말 신선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좀 커서 별하늘에 관한 그런 아름다운 전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성좌와 유성우와 극광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것들은 저로 하여금 별하늘에 대해 더욱 반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별들의 모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고 또한 별하늘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좀 더 커서 저는 여기에 관한 지식을 배우게 되었고 직접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책에서 우주는 대폭발로 생겨난 것이고 게다가 부단히 확장되고 있으며 이런 성체들은 다 규칙적으로 하나하나의 성계를 이루고 이런 성계는 다 동일한 평면에 있으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저의 지식욕을 만족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별들과 이런 신기한 현상들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늘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 우주의 대폭발로 생긴 것인지, 별하늘은 극한이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이렇게 규칙적으로 운행되는지, 이런 것은 제가 줄곧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있으라고 명령하니 이 광명체가 하늘에서 빛을 내어 땅을 비췄을 뿐만 아니라 낮과 밤, 계절, 날, 해를 위해 징조로 되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한 동시에 하나님이 이루려는 매사는 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식에 따라 응하고 있었다. ‘하늘 궁창의 광명체’가 바로 상공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물체인데, 그것은 하늘을 비출 수도 있고 땅과 바다를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부한 절주와 빈도수에 따라 회전하며 땅의 서로 다른 시간에 따라 비추고 있다. 이리하여 땅 위의 것의 낮과 밤은 이 광명체의 회전 주기로 말미암아 산생된다.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표기로 될 뿐만 아니라 그것의 서로 다른 회전 주기로써 인류의 절기와 각종 날을 위한 징조로도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포한 사계절━춘하추동과 상부상조하고 서로 상응하며 조화롭게 인류의 계절, 날, 해를 위해 규칙적이고 정확한 징조를 보인다.』 저는 이 말씀을 보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별하늘이 근거없이 생길 리가 없어. 어떻게 그것들을 통제하는 힘이 없을 수 있겠어? 조물주의 위대함과 비범함이 이 별하늘을 만들었고 아울러 조물주께서 이런 천체의 운행 궤도를 정해 그것들이 서로 방해하지 않게 하신 거야. 그래서 인류를 위해 규칙적인 계절을 정해 인류가 더 좋게 땅에서 생존할 수 있게 하셨어. 이 신비한 별하늘은 다만 조물주의 비범함과 위대함의 약간의 유로일 뿐이야!’

크리스천이 자녀와 화목하게 잘 지내는 방법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모들이 자식과의 관계가 틀어져 있는데, 심지어 어떤 갈등은 제때에 해결되지 못해, 부모 자식 간에 깊은 갈등의 골이 생겨 서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제가 깊은 갈등의 골에서 헤어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와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정확한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부모 자식 간의 새로운 관계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 아들은 올해 26세입니다. 비록 사내 대장부라고는 하지만, 저는 아들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귀가해서 저에게 “제가 친구들과 같이 창업을 할려고 해요. 근데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니 집 문서를 담보로 대출 좀 받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대출 받아서 창업 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장사가 그리 만만한 줄 알아. 잘못하면 큰 손해를 보게 되. 더구나 창업은 큰 모험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런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 사장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줄 알아? 다니던 직장에서 착실하게 일하면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자유로운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조급해 하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엄마는 한번도 지지해 주지 않았어. 또 늘 엄마 뜻에만 따르라고 하잖아. 다시는 엄마도 아빠도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는 화가 난 채 나가버렸습니다. 멀어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아들아, 난 네 엄마야,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살면서 경험한 게 많아. 이렇게 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너도 언젠가는 이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후에도 아들은 저에게 창업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그때마다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아들은 저와 말이 통하지 않자, 홧김에 아예 직장에도 나가지 않고 밖에서 지내며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창업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아직도 창업에 미련을 못 버린 거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귀찮다는 듯이 말하고 나서 또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머리를 휙 돌리더니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꾸짖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식사 시간에 아직 밥도 채 먹지 못했는데, 아들이 또 대출 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부드러운 어조로 “아들, 엄마 말을 잘 들어 봐, 그 일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제가 또다시 거절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저를 향해 “엄마는 항상 이것도 쉽지 않고 저것도 쉽지 않다고 말 하잖아. 그럼 어떤 것이 쉬운 일인데?”라고 소리 지르더니 먹다 남은 밥그릇을 내동이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거야. 하지만 아들은 왜 늘 억지를 부리면서 날 조금도 이해해 주지 않지?’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워 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모 노릇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요? 이런 일이 닥쳤는데, 저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아들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나요? …”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겉보기에는 아주 영적인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일이나 자녀가 부모를 대하는 일의 관점이나 태도에서 어떻게 진리를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적용하여 그 일을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왜 그럴까? 부모는 영원히 부모이고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영원히 자녀라는 이런 관계 때문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지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항상 부모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고, 항상 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에서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와 틀어지는 것이다. 많은 일에서 그것은 사실, 부모가 늘 부모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항상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부모나 웃어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 너는 엄마(아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야 해. 언제나 너는 내 자식이고 내 아이야. 이 사실은 어디까지나 변하지 않아.’라는 이 관점으로 부모들은 아주 고생을 하고 아주 비참하게 되며, 자녀까지도 아주 고생시키고 아주 힘들게 만든다. 그런 것이 아니냐? 그것은 사람이 진리를 모르는 표현이 아니냐? (맞습니다.) 이런 일에서는 진리를 어떻게 실행해야 하느냐? …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감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는 자식에 대한 그 모든 책임, 즉 스스로 당연하게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임,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고 일반 형제자매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 부모의 자세와 지위, 신분을 내려놓으면 된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와 아들이 화목하게 지낼 수 없었던 근원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늘 부모의 위치에 서서 아들을 나이 어린 애로만 보고, 제가 간섭하는 것은 다 아들을 위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과 관점으로 인해 제가 강압적이고 명령하는 어조로 아들과 대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화를 내고 심지어 저를 피하기까지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으로 저는 자신이 본성이 너무나 교만하고 이지가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실행의 길을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지낼 때는 부모의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고 평등한 위치에 서서 서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일을 잘못할 때 정확하게 대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 자녀가 정확하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녀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데,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여 어른이라는 지위을 내려놓고 자식들과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다음 날,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들을 보자마자 잔소리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귀찮아하면서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다투다가 아들은 홧김에 테이블을 발로 차서 엎어버렸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저는 속으로 ‘큰일이야, 말해도 안 듣고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남편 편을 들어 버릇없이 아빠 앞에서 테이블을 발로 찼다고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순간 아들은 화가 나서 얼굴빛이 창백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바로잡히지 않느냐? 여기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지위와 신분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바로 부모의 그 지위를 내려놓고 부모의 자세를 내려놓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들 곁에 있던 남편은 계속 잔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이 하는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들은 완전히 높은 위치에 서서 하는 책망이나 욕설이었습니다. 제가 들어봐도 화가나서 참을 수가 없는데, 하물며 아들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얼른 남편을 끌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 후에 속으로 계속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다시 거실로 들어와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 아들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신분을 내려놓고 아들 곁에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 지금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출을 내줄 수 없는 부모의 애로사항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출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고 계속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실행했을 때, 아들이 얼굴빛도 밝아지고 화도 누그러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여러 측면에서 판단하고 나서 창업하는 것을 포기했고 이틑날부터 직장에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한시름 놓았고 드디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들은 직장을 오후에 가겠다며 출근을 또 미뤘습니다. 저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속으로 ‘어제 서로 이야기가 좋게 잘 됐잖아? 왜 또 저러지, 정말로 말을 안 들을 작정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애가 타서 아들을 다그치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괜히 아들의 심기만 건드릴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때 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일을 비위가 상하게 비틀어 말할 필요가 있느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강제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일들은 진리가 맞고, 사실도 그렇다. 그렇다고 네가 말하면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상대방이 받아들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변화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과정이 필요합니다.) 과정이 필요하다. 너는 상대방에게 변화될 과정을 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 마음은 밝아졌고 사람의 변화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제 서로 이야기가 잘됐지만 아들은 아직 출근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존중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을 배워야 했는데, 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저의 생각에 따라 그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니 저는 더 이상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들은 일찌감치 저에게 직장에 간다고 말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조금 실행하여 자신을 내려놓고 아들과 대화하고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며, 아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효과가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했을 때의 기쁨을 맛보았고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바래다주고 나서 저에게 “보아하니, 우리 고집쟁이는 당신 말만 듣는 것 같구려. 아들이 당신하고만 대화하잖아.”라고 탄복하듯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아들이 내 말을 듣는 것 같나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모 자식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알려 주셨기 때문이예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어렸을 적의 ‘꿈’ 예림은 어렸을 때 과학자 마리 퀴리를 존경했습니다. 퀴리 부인은 보기 드문 여성 과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림은 어렸을 때부터 남몰래 꿈을 세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되는 거야.’라고요. 당시만 해도 과학자들이 흰색 실험복에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유리 기구를 다루거나, 기구 안의 시제를 바꿔가며 신형 물질의 연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예림은 그런 모습을 선망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학업에 매진했고, 시간이 남을 때면 늘 과학자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습니다. 스스로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을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인류를 위해 혁혁한 공헌을 세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얼마나 눈부신 영광을 안을까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예림은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원하던 대로 화학 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실험실의 온갖 실험기구들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지요. 그녀는 자신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선 듯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때로는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취급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지도 선생님도 멀리 할 정도의 독극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림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더욱 적극적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과학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를 갖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신은 걸출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소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변화 대학을 졸업한 뒤 예림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생활에는 매일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실험을 설계하는 것 이외에도 새로운 일과가 하나 더해졌습니다. 바로 가까운 친지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접해 기독교 초신자가 된 것입니다. 처음에 예림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을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의식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한 번은 예림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만물을 관리하고 만물의 주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사람은 잘하였느냐? (잘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못했느냐? 인류는 파괴하기만 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만들어 준 만물의 원래 모습을 잘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다 파괴하였다.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고 평원도 사막이 되게 하였다. 사막에는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데도 거기에 공업을 발전시키고 핵기지도 만들면서 여기저기 파괴하였다. 지금은 강도 강이 아니고 바다도 바다가 아니다. 다 오염되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재난이 닥칠 때, 너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창조한 이 모든 것의 소중함과 이 모든 것이 인류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인데, 인류는 이제야 겨우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기후가 좋은, 무릉도원과 같은 이런 환경 속에서 태어나 살면서도 복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이 모든 것을 잃게 될 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예림은 문득 예전에 수업에서 배웠던 내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은 대자연의 균형과 공급에 의존해 농작물을 심었는데 근 백 년 동안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화학제품이 여러 업종에 활용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의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 역주) 등장이 그것입니다. DDT가 등장하면서 농민들은 해충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각지의 농업 분야에 DDT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DDT를 개발한 화학자 역시 이러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살충제가 등장하고 5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살충제로 50년의 경제적 효과를 얻었지만, 동시에 메울 수 없는 재난이 ‘되돌아’ 온 것을 목도하게 된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농약을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매일 농약이 묻은 음식과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섭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유해한 화학성분이 인체에 잔류하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했고 심지어는 사망에도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화학성분과 독성의 위험성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자연환경 파괴를 일으켰습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DDT나 린덴(Lindane, 살충제의 일종 - 역주)과 같은 화학 농약을 사용하면 도중에 사용을 중단했다 하더라도, 그 후 20여 년이 지날 때까지 농약 성분이 그대로 토양과 지하수에 잔류하고 분해되지 않습니다. ... 이런 현상이 지금도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힘든 엄청난 위험이자 재난일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명시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인류가 일단 이 균형과 이 법칙을 파괴하면, 인류에게는 재난과 멸망의 날이 멀지 않은데, 이것은 필연적이다.』 더 이상 과학에 깊이 빠지지 않고 반성을 시작하다 예림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과학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과 평가를 알게 된 뒤 다시 한 번 실험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실험기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녀가 실험실로 들어가자 선배가 예림에게 함께 실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이 끝나자 폐액(廢液, 일정한 목적이나 용도에 쓰고 나서 버리는 액체 - 역주)이 담긴 병 여러 개를 개수대에 비웠습니다. 이때의 장면이 예림에게는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개수대 안에 버려진 폐액을 본 예림은 마치 이 폐액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개수대 안으로 쏟아 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예림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 실험실에 오수 처리 시스템이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매일 거기에 폐액을 붓고 시약을 버리면 어떤 식으로든 안 좋은 영향이 있겠지? 또 이후에 그 물질들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모두 독성이 함유돼 있는 데다 금세 분해되거나 중화되지도 않아. 결국에는 토양과 물을 따라 주변 각지로 퍼지게 될 거야. 그러면 농작물이나 식물들과 사람의 건강에도 해를 미치게 될 텐데…’ 물론 예림은 예전에도 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주신 경고를 통해 예림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미래에 종사하려는 분야와 과학자가 되려던 꿈은 과연 인류에게 장기적으로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일까, 아니면 사람에게 잠깐의 이익만 주고, 그 후로 오래도록 해를 끼치는 일일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생각해 보노라면 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만물을 이미 수천 년 동안 누리면서 어떠한 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최대한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각종 화학 제제를 뒤섞어 스스로를 위한 순간의 이익을 창조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리는 한 순간이면 지나가버릴 봄날의 아름다운 경치와 같을 뿐, 그 뒤에 남는 것은 오래도록 걷히지 않는 독가스일 뿐이었습니다. 짙은 안개를 걷어내고 진상을 보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과학 발전의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예림은 잘 이해되지 않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어째서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지금 같은 행보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예림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한 단락 읽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과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과학의 각종 정설과 결론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 외에 또 과학적 수단으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생존 환경을 함부로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다. 사탄이 사용하는 구실은 바로 사람이 과학을 연구한다면 사람의 생존 환경이 갈수록 좋아지고, 생활 수준도 끊임없이 높아지며, 또한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날로 늘어나는 사람의 물질적 욕구와 끊임없이 높아지는 생활의 질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이 아니라면 왜 과학을 발전시키겠느냐고 사탄은 말한다. 이것이 사탄이 과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 근거이다. …인류는 탐욕스럽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또 끊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깊이 연구한다. 그런 다음 물질에 대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다. 그럼 사람에게 초래된 결과는 무엇이냐? 우선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오장육부도 이런 환경으로 더러워지고 해를 입게 되었으며, 각종 전염병과 온역, 스모그도 도처에 만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지금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지금 이런 일을 분명히 보았으니, 인류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사탄을 따르면서 지식으로 계속 자신을 충족시키고, 과학으로 계속 인생의 미래를 탐색하는 이런 방식으로 생존해 나간다면 인류가 자연스레 맞이하게 될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결말은 무엇이겠느냐? (멸망입니다.) 바로 멸망이다. 즉,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멸망으로 가는 것이다. 지금 보면, 과학은 바로 사탄이 사람을 위해 잘 배합해 놓은 일종의 혼미탕이고, 잘 섞어 놓은 만성 자살 독약이어서 너희로 하여금 흐릿한 가운데서 사물(事物)을 분별하게 하여 아무리 보아도 또렷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사탄은 또 과학이란 명의로 너의 구미를 당겨 놓고 너의 코를 꿰어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수렁 속으로 끌어 들어가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림은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예림은 내내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습니다. 예림에게 있어서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곧 인류를 위해 위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과학은 애당초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해를 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사람이 과학을 발전시키도록 조장해 각종 유독한 화학 제제를 연구하고 제작해 생활 각 분야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성 제품이 자연 환경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체 내부까지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사탄은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를 해치고 생태환경 전체를 파괴해 한 발 한 발 자멸의 길로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예림은 자신의 진로 선택에 대해 더욱 회의가 들었습니다. … 그 뒤로 예림은 다시 실험기구를 들어도 예전과 같은 기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손에 든 실험기구가 무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실험기구의 중량과 앞날의 이익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인류의 건강과 생사에 관련돼 있었던 것입니다! ‘꿈’을 깨부수다 어느 날 주말, 예림은 집으로 돌아왔다가 탁자 위에 부인병 치료약 몇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약 케이스에는 ‘자궁 종양 제거 캡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서를 읽어보다가 이 약을 복용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증상이 이미 아주 심각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림이 이런 추측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그러고는 낙담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네 엄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예림은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습니다… 침통한 심정으로 예림은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림은 인터넷으로 자궁 근종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사람들이 종양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고 있는데, 병의 원인은 거의 음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장기간 농약과 화학비료 잔류물, 호르몬 촉매제와 첨가제가 함유된 식품을 섭취하다 보면 이 독소가 체내에 잔류하고 배출되지 않아 인체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림은 최근 몇 년 동안 어머니가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닭고기와 돼지고기 도매업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다 팔지 못한 고기들은 어머니가 직접 먹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혼자 집에 있을 때 하루 세 끼 모두 고기를 섭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육류 제품은 모두 화학 호르몬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섭취하면 필연적으로 인체에 질병을 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예림은 단순히 이런 유독한 육류가 어머니 한 사람에게 해를 미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인류에 전반적인 해를 미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저 수많은 피해자 중 한 명일 뿐이었습니다. 예림은 만일 자신이 정말로 향후에 과학 연구 업종에 종사하게 된다면 간접적인 살인자가 되고 사탄과 공모하여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공범자가 되고 말 것이며, 자신의 가정과 같은 비극을 양성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예림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다가 결국 하나님 앞으로 와서 출구를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럼 인류가 이런 파괴를 멈춘다면, 이 생존 환경이 점차적으로 좋아지지 않겠느냐? …인류가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파괴를 멈추고, 즉 하나님이 창조한 만유를 약탈하거나 해치는 것을 멈춘다면, 인류의 생존 환경은 점차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생존 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런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파괴 행위를 먼저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림은 자신이 모든 사람의 파괴 행위를 중단하게 할 수는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최소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마침내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일반 업종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영향 받지 않는 일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여러 해 동안 노력했던 성과를 포기했습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요구와 양심의 외침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예림은 자신이 악행에 한 몫을 더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더 이상 인류가 생존하는 아름다운 삶의 터전에 독극물을 들이붓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류 후대에까지 재앙을 미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믿음과 용기를 달라고 갈구했습니다. 결국 마음을 완전히 굳히고 실험실과는 철저히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한 지금도 예림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노라면 여전히 만감이 교차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이 없었다면, 어쩌면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에게 공히 해를 끼치는 일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과학자가 아닌 크리스천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나름 뜻깊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생활하면서 심리적인 평안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림은 이전에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것은 곧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한때 그녀도 사탄에 의해 타락되어 하마터면 잘못된 길로 빠질 뻔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사탄이 과학을 이용해 지금도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인류를 통째로 집어삼키려 한다는 사실과 그 비열한 목적을 간파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려 한다는 절박한 마음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예림은 자신의 인생 목표를 변화시켰습니다. 진정으로 타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과업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사탄의 권세 아래 고통과 피해를 받는 많은 사람들을 그분 앞에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빛비춤 속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를 통해 생명을 갖게 하며,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