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2018년 09월 20일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행복한 웃음,회사에 취직하다,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 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좋은 몸매와 완벽한 사랑

제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때, 늘 어른들에게서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아서 제대로 환생하면 일생동안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일생동안 불행해진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책에서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窈窕淑女, 君子好逑)’란 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런 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면서 자신이 커서 요조숙녀가 되어 훗날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기만을 기대했습니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저는 끊임없이 공을 들였습니다. 아침이면 꾸준히 안면체조를 했는데 이는 턱과 얼굴을 작게해 나중에 더 예뻐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늘 주변의 동창들에게 “수수를 적게 넣고 빚은 소주가 향이 담백하고 모이를 적게 먹은 닭이 살이 없다.(秫瘦酒味薄, 食少鷄不肥)” ‘사람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자신의 입 단속을 잘해야 한다. 평소에 밥을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저녁에는 되도록 소식하고 배고 고프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으면 물을 마시면 된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늘 이런 말을 듣게 되자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다 너무 힘들다면서 다이어트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견뎌냈습니다. 얼마 후 저는 취직하게 되었는데 TV에서 다이어트 광고를 볼 때마다 그 제품들이 다 그렇게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뚱뚱하던 배가 날씬한 허리로 변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마술처럼 느껴졌고 이로 인해 감탄을 금치 못했으며, 언젠가 자신도 소원 성취하여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배필이 될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리하여 다이어트 광고를 통해 제 나이에 가장 적합하고 요요현상이나 부작용도 없는 제품인 다이어트 벨트를 사기로 했습니다. 급여를 받고 가장 먼저 300위안을 투자하여 다이어트 벨트를 샀습니다. 저는 제품을 받아들고 너무나 흥분되었는데 보름이 지나면 저의 다이어트 꿈이 실현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들떠 잠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 벨트는 전용 건전지를 사용해야 했기에 전기가 많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래서 건전지 하나면 두번밖에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날씬한 몸매를 위해 저는 모질게 마음먹고 보름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한달이 지나가도 뚜렷한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TV에 나온 사람들은 분명히 사용하고 나서 날씬한 몸매를 갖게 되었는데 난 왜 안될까? 다이어트 벨트가 효과가 없다면 또 그렇게 많은 제품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어느 하나는 나에게 적합한 것이 있겠지!’ 그리하여 저는 또 다시 다른 다이어트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또 700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다이어트 의자를 구매했습니다. 그 의자는 근육을 당겨주는 역할을 하여 몸에 쌓여 있는 군살을 제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에는 의자로 꾸준히 운동할거야. 또 식이요법으로 고열량의 음식을 금하고 끼니마다 소식할거야. 이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다이어트에 성공할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초조해서 날마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체중을 체크했습니다. 저는 희망을 품고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가운데서 실망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상심했고 괴로웠습니다. ‘내 다이어트 계획이 이렇게 수포로 돌아간단 말일까? 안 돼. 난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 미래를 위해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바꾸었는데 인터넷에서 건강하면서도 실용적인 다이어트 비법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는 말처럼 저는 마침내 꿀식초 다이어트법을 찾아냈습니다. 잇따라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다이어트 식품을 정성껏 만들어 본격적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효과는 여전히 별로였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겪었지만 저는 계속 날씬한 몸매를 가꾸는 것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또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쌀을 가마솥에 볶아 다시 밥을 지어 먹었는데 이러면 열량이 적어 살이 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과 점심은 과식하지 않고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오후에는 밥을 먹지 않고 요구르트 하나로 떼웠습니다. 식후에는 벽 모서리에 5분간 서있기 운동을 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가급적이면 서있고 앉거나 눕는 것을 피했습니다. 저는 꾸준히 노력하여 50kg만 되면 다이어트 계획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의 미래는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집 열쇠를 잊고 집에 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직장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열쇠를 가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 노발대발하며 “더이상 다이어트는 하지 마라. 직장 동료들이 전에는 이쁘고 생기있던 네가 지금은 까맣고 말랐다고 하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저도 순간 멍해졌다가 재빨리 거울앞에 가서 제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제 얼굴은 말랐고 윤곽이 선명했습니다. 어둡고 피부가 윤기가 없이 초췌해 보여 청춘의 활력마저 잃었습니다. 나중에 제 생리 주기마저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으로 인해 제 건강에 적색신호가 울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미모와 몸매, 저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고통속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어머니는 온갖 방법을 다해 맛있는 것을 하여 제 건강에 신경써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보면서 저는 정말로 실컷 맛있게 먹고 싶었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에 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몸매를 유지하여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자신의 소망을 생각해 저는 여전히 소식하는 것을 이어나갔습니다. 2012년 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접하는 과정에서 저는 형제자매들의 옷차림이 모두 아주 단정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형제들이 참석하는 예배라면 자매들은 치마를 입어 자신의 몸매를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고 다 진리를 추구하는데에 신경을 썼습니다. 이때에야 저는 비로소 마음속으로 묵묵히 자신도 예전에 추구했던 관점을 바꾸어 형제 자매들을 따라 배우며 진리를 추구하는데 공을 들이겠노라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적부터 소망하고 추구하던 것이 제 마음속에 너무 깊이 뿌리박혀 있어 저는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여전히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위쳇 채팅방에서 ○○브랜드 제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설명서에는 이 제품이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고, 게다가 체질을 조절할 수 있어 꾸준히 3개월만 섭취한다면 쉽게 살찌는 체질을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으며, 또한 건강기능까지 있어 몸의 여러 곳의 영양을 전면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고 소개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저는 또 한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자나 깨나 찾고 있던, 미모도 몸매도 다 챙길 수 있는 제품이었으니까요! 살빼는 벨트나 의자처럼 외부 운동으로 지방을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밖으로 체질을 조절하는 것으로 3개월만 섭취하면 체질이 바뀔 수 있어 영원히 날씬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에 있었던 참담한 실패로 저는 자신의 몸이 또 한번 상처를 받아 건강이 망가질까봐 두려웠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자신의 완벽한 몸매와 청춘을 위해 저는 다시 한번 밑천을 아끼지 않고 6,000위안이 넘는 돈을 투자하여 3개월의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날마다 영양사가 지시한대로 했는데 밥을 먹을 때마다 몹시 고통스러웠습니다. 저는 한끼라도 잘 먹고 싶었으나 그 한끼로 다이어트가 수포로 돌아갈까봐 걱정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끝까지 견지할거야. 3개월만 버텨서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질로 바뀌면 그때에 산해진미를 실컷 먹을 거야. 내 자신에게 잘 보답할거야!’라고 속삭였습니다. 3개월 후, 결국 저는 3kg밖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생리 주기는 더욱 불규칙적이 되었습니다. 영양사는 제게 또 다른 제품을 추천했습니다. …… 그제야 저는 갑자기 속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 저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고 반대로 몸은 중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같은 또래의 형제자매들을 보니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것에 중시하지 않았어도 누구나 다 얼굴에 청춘의 활력으로 넘쳤는데 저는 어떤가요?…… 후에 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교통하였습니다. 저는 차츰차츰 진리를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패괴시키는데, 사람이 막을래야 막을 수 없고, 또한 자신도 어찌 할 수 없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너는 사탄의 사상과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탄에게서 오는 사악한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받아들이고 나서도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여전히 그것을 끌어안고 보배처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의 지배에 맡기고 그것이 제멋대로 우롱하게 내버려 둔다. 사람은 이렇게 사탄에게 점점 더 깊게 패괴되어 간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에게 먼저 사탄의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나서 사람이 그것에게 통제를 받게하여 패괴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 자신이 줄곧 사탄에게 우롱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여자의 결혼은 두번째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제대로 환생하면 평생 행복할 것이고 잘못 환생하면 평생 불행해진다.”, “요조숙녀는 군자의 좋은 배필이다.”라는 이런 그릇된 논리로 저를 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려서부터 요조숙녀가 되어 완벽한 사랑을 하려는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직장에 다닐 때까지 저는 온갖 방법을 다 쓰면서 이 목표에 도달하려 했고 온종일 마음을 다이어트에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또 한번 기만당했고 저는 많은 시간과 돈을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저의 건강에도 적색 신호가 울렸던 것입니다. 사탄은 정말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와 미용을 위해 자신의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가져다 주었고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통속에 살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만약 하나님 말씀의 밝히심이 없었다면 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체 계속 사탄에게 우롱당해 아름다운 몸매를 갖추기 위해 제 자신을 괴롭힐 것입니다. 저는 비록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지만 추구하는 관점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기에 저는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에게 깊이 빠져 짓밟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무도 도대체 누가 자기의 배우자가 될지는 모른다. 비록 사람이 모두 결혼, 이 일에서 자기의 주장과 생각이 있을지라도, 최종에 정말 자기의 짝이 될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지 사람은 예견할 수 없고,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그가 너의 구애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그가 너에게 관심이 있는지, 그가 너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이것은 모두 너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꼭 너와 함께 한평생을 보낼 수 있는 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 삶 속으로 들어와 네 삶의 동반자가 되고 네 운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네 운명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너의 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혼인이란 사람 자신이 결정할 수 없고 개변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 같이 아무도 자신의 결혼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한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그녀는 7년동안 연애하였고 서로가 한평생 의지하고 살자고 철석같이 약속하였지만 양가 부모님이 동의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고 지낸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에게 시집갔습니다. 또 어떤 동창생은 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어 홧김에 생활이 아주 가난한 사람에게 시집갔는데 생각외로 결혼한 후 서로 이해하고 아끼면서 잘 살고 있고, 게다가 가게를 열어 장사해서 지금은 집 몇 채에 고급 자가용까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동창생은 서로 눈이 맞아 연애하다가 결혼했는데 오히려 결혼 후 툭하면 말다툼을 하면서 서로 원망하고 심지어 주먹질까지 한답니다. 생활 속에 이러한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혼인을 장악할 수 없고 아무도 자신의 결혼 상대가 누구일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탄의 그릇된 논리에 미혹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하려고 망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예뻐져 더 훌륭한 군자를 만나려 하였고 이것으로 제 자신의 결혼 행복지수를 높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자신의 추구를 생각하니 너무나 터무니 없었습니다! 사람의 운명과 결혼은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날씬한 몸매를 갖춘다고 해서 좋은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제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한다해서 완벽한 사랑과 혼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그릇된 관점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이상 이렇게 하나님께 대항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나 한 동료가 체중이 늘어나서 저와 함께 다이어트를 하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지난날 제 자신이 고통스럽게 다이어트하던 나날을 생각하면서 에돌려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성정, 소질, 생김새, 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미 저에게 사람의 생김새, 몸매, 키, 그리고 혼인 등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 있고 모두 하나님의 명정속에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배한 일체는 다 좋은 것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뭘 더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권병에 기꺼이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하나님에 대한 대적이고 자신에 대한 괴롭힘이니까요. 오늘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하에 저는 끝내 마음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저는 더 이상 요조숙녀가 되어 군자의 좋은 배필이 되기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재와 명정에 순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형제 자매들처럼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포기했을 때, 차츰차츰 저의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얼굴색도 좋아졌고 피부도 부드럽고 매끄러워졌으며 청춘의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저를 사탄의 짓밟힘과 우롱속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고 진정한 자유 석방을 얻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오아이(郝愛)

크리스천이 좋은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찾다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나는 조금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화를 냈다. 집에서 나는 항상 사소한 일로 부모님을 언짢게 하고, 갈등을 일으켰다. 부모님의 말씀이 맞든 틀리든 나는 다 상관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달래줄 때까지 부모님과 말을하지 않았다. 화를 내면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나는 이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포용과 인내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자주 화를 내면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화를 내고 싶으면 참으려고 노력하거나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이렇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 나쁜 습관이 도져서 나와 동료의 관계가 아주 난처해졌다. 심지어 처음 친했던 관계로 돌아가고 싶어도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화를 내는 문제가 나와 친구, 동료 간의 정상적인 사귐에서 가장 큰 난제가 되었다. 나는 정말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리며 구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이야기는 내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하루는, 내가 소재 소스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동료 효진이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나와 함께 정리를 해주었다. 정리를 다한 후, 나는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바로 책임자 린에게 넘겼다. 잠시 후, 린은 서식을 나에게 전달하면서 거기에 있는 문제를 지적했고, 이런 문제는 있어서는 안 된다며 더 열심히 일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니 문제는 효진이 정리한 부분에서 나온 것이라 마음속으로 효진을 원망했다. '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하면서 이렇게 수준 낮은 실수를 한 적이 없어. 다 당신 때문에 내가 책임자 앞에서 망신당하고, 동료들 앞에서 창피당했다고. 오히려 방해가 될 줄 알았다면 나 혼자 하는 거였는데...’ 린이 보내온 서식을 보며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서식 실수의 화살은 완전히 효진을 향했다. 그래서 나는 잔뜩 화가 나서 서식을 들고 효진에게 걸어가 곧장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여기 좀 보세요. 왜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어요? 붙여넣기하지 않은 거 맞죠? 또 여기는 그렇게 쓰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쓰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이고! 관둬요, 관둬, 내가 혼자 하고 말지!..." 말을 끝낸 후, 나는 효진을 상대하지 않고 서식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효진은 내가 화내는 것을 보고, 말도 없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수정을 도와주었다. ... 서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 수정되었다. 내가 멈췄을 때서야 주위가 아주 조용해진 것을 알게 되었다. 몇몇 동료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전체 사무실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남아 분위기가 대단히 어색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효진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거기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내가 방금 또 화를 냈구나. 사실 서식의 문제도 크지 않고, 고치면 되는 거였는데, 이렇게 크게 화 낼 필요가 있었나! 서식 정리는 원래 내 일이야. 효진은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건데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고 되려 한바탕 욕만 먹었으니 내가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방금 검사도 하지 않고 린에게 보낸 것은 나잖아. 문제가 나온 것은 내 책임이지 효진을 탓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효진에게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또 이 서식의 문제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내 사과를 듣고, 효진은 이해한다며 나에게 이 일을 신경 쓰지 말고, 다음번에 이런 일이 생기면 냉정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효진의 일깨움으로 매번 일이 터진 후에 사과를 하면 다들 '괜찮다, 마음에 두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사과 한마디로 어떻게 다친 그들의 마음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항상 화를 내는 원인에 대해서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았다. 『사람이 타인의 앞이나 뒤에서 화를 낼 때는 다 속셈과 목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의 이익이나 이미지, 체면 등을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어떤 이는 화를 내는 데 기준이 있지만 어떤 이는 기준도 없이 화를 내고 싶으면 마음대로 내며 아무 제약도 받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화는 사람의 타락 성품에서 온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다 혈기와 천성적인 것에 속하며 정의로움과 정의롭지 않음을 논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는 진리와 부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천기를 밝혀서 내가 화를 내는 근원을 알게 되었다. 내가 화를 잘 냈던 것은 다 내 안의 교만한 본성에서 나온 것이고 체면과 지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세히 생각하니 내가 자주 화를 내는 것은 자신의 체면과 이익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체면을 살리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나는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나에게 잘못이 있든 없든, 화를 냄으로 자초하게 될 결과는 더욱 고려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에게 화를 냈다. 이번에 서식을 정리한 일처럼, 효진은 원래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서식이 잘못돼서 내가 상사와 동료 앞에서 체면을 잃자 효진을 향해 화를 내며 불만을 발산한 것이다. 결국 주위의 동료들과 효진이 다 영향을 받아 사무실 안에 위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정말 너무 교만하고, 난폭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다간 동료들에게 밉보일 것이고 함께 지낼 수 없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이런 행위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반드시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 … 뒤이어,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천연적인 혈기가 폭발하려고 할 때는 빨리 하나님 앞에 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화가 풀리고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당시의 분노가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머리에서 쏟아져 나오던 그 이상하고 해괴한 말들이 어떻게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탄이 행한 것과 사람이 생각했던 그런 이유와 혈기들을 네게서 옮겨 간 것이다. 다음 하나님은 네게 평안과 기쁨을 주어 너의 마음을 조금씩 가라앉혀 줄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방금 어쩜 그렇게 충동적이었지? 왜 그렇게 멍청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바보 같았지? 별것 아닌데 그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방패가 되셔서 나를 지켜 주셨어.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아 수치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않았으니, 정말 하나님의 은총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에게 있어 하나님의 관용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긍휼은 한량없는 것이니,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구하고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에게 믿음이 있고 진심이 있다면, 하나님은 베풀어 줄 것이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도와줄 것이다.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혈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물을 만나서 화를 내고 싶을 때, 빨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히 하신다. 그리고 자신이 왜 화를 내려고 했는지 반성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구하게 된다면, 서서히 우리의 혈기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진다. 이때 나의 마음이 훨씬 밝아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다른 서식을 정리해야 했다. 수량이 많은 편이라 효진은 또 자발적으로 나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나는 지난번의 교훈을 받아들여,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방법을 미리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 후에 지난번 문제가 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효진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마음속의 '도화선'이 '치지지직'하며 타올랐고,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나의 마음을 고요히 해달라고 구했다. 이때 나는 내가 왜 화를 내려는 것인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실은 내 체면을 살리려고 그런 것이었다. 효진이 고의로 실수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를 도와주려고 했으니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안의 화기가 차츰 꺼져갔다. 이어서 나는 서식의 문제를 고친 후 린에게 전달했고, 마음속에 뜻밖의 평안함과 안정감을 느꼈다.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진리를 행하는 기쁨을 느꼈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기묘하심도 보았다. 동시에 나는 사람의 타락한 성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고, 제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끄심을 받아 사람이 보기에 아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 나는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항상 마구 화를 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고 무력해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실행할 방법을 알려주셨고,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번 실행은 비록 작은 성공에 불과하지만 나는 화를 내는 문제를 해결할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화를 내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 친구여, 당신은 항상 자신의 기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의 체험을 듣고 나서,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실행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말씀'으로 원망을 해결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맏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첫 자녀로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딸이었고,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두 세 살쯤, 아빠는 출근을 하셔야 했고, 엄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빠서 나를 돌봐주실 시간이 없으셨기에,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매번 엄마가 일을 끝내고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내 바지는 항상 오줌으로 젖어 있었고, 작은 엉덩이는 빨개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바지를 갈아 입혀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를 혼자 집에 두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엄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나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돌보아 주셨지만, 나를 점점 차갑게 대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으며, 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내가 9살 때,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남동생이 왔다. 우리 둘은 같이 주방으로 들어 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급하게 “찬장에 월병 뒀어요, 얼른 꺼내서 손자 먹여요!”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난 온 지 한참 됐는데 나한테는 안 주고, 남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월병을 꺼내 주다니.’라고 생각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갔다. 평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말을 하실 때도 좋게 말하시지 않고 항상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여 같이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주 친절한 말투로 “내 새끼~ 얼른 와서 밥 먹어라!”라고 남동생을 부르셨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얼굴로 “얼른 와서 밥 안 먹고 뭐해!”라고 소리치셨다. 때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을 품에 안고 놀아 주셨는데, 이러한 자상함은 나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으신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차갑고 낯선 모습만 보여 주셨다. 내 어린 마음에는 조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 당시, 아빠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반신 불수가 되셨고, 가족의 모든 일은 엄마가 짊어지게 되셨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금해 놓은 모든 돈을 다 써버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소를 한 마리 키우셨지만 우리가 밭을 갈 때도 도와주지 않으셔서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밭일을 맡기셔야 했다. 나와 남동생이 학비 낼 돈 마저 어렵게 되자, 할 수 없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 주시고, 생활비만 엄마가 대는 것으로 약속 하셨다. 그러나 뜻밖에 날아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연이어 발생한 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해서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학비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저 학교에 등록을 해야 돼서 학비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빠시면서 무표정하게 밖을 쳐다보시며 나에게 “아들을 잃은 마당에 손자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밖에 서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학비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모질군요! 아빠도 없는데 우리마저 버리시다니요!’ 나는 오기를 부리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흥! 오늘부터 나도 할아버지는 없어, 당신들이 죽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들을 물어보면, 나는 매우 차갑게 “저한텐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직 후, 휴가 때 집에 돌아 가서 친구네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랑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딸, 예전에 내가 네 앞에서 항상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해서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아선호사상이 있고, 우리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엄마의 이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엄마는 지금껏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한거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을 들어주다니? 나는 의아하게 엄마를 쳐다 보았고,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아니? 사람이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어 어쩔 수 없이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분쟁과 미움,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엄마는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건, 사탄이 그분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성품대로 살아가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분들을 미워 할 수 있는 것도, 타락한 성품 때문이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분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로 했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못되게 대한 건 사실이잖아. 만약 우리한테 잘 대해 주셨어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했을까? 어쨌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에 날 정말 놀라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셨고, ≪하나님 3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 정선≫이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구원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환경과 각종 식물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 동산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아름다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인류가 누렸던 본래의 아름다운 생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이때부터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매님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자매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 너는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까? 너는 왜 정이 그렇게 많은 걸까? 너는 왜 불의한 것을 좋아하고 악을 좋아할까? 이런 것들의 뿌리(원문: 根據)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는 왜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사탄의 독소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독소란 무엇일까?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존의 근본이 되었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되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게 되었으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때, 이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매님에게 못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심령을 왜곡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람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은 확 밝아졌다. 우리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모두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에만 급급한 삶을 살게 된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해자였군요. 그분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서 그렇게 변한 거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건 사탄의 독소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한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사탄에게 눈이 멀어 속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요.” 그 후,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사심 없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멈추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풍부한 물질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동시에,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이 목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도록 하신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해 타락된 후 우리 인간은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의 역사적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했는데, 좀 먹지 않는 문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이미 봉건사상에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억압당하였고, 다 질식하여 반항할 힘이 전혀 없으며,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며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남자 아이만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사탄이 주는 봉건 사상에 오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가한 딸이요, 쏟아진 물이다.”라는 말이나, “가문을 빛내고 혈통을 이어 나가는데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긴 것이다.”라는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변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러한 독소에 근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봉건 사상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짓밟히고 우롱당할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르게 대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탄이 계속 우리를 타락시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생활이 화목함을 잃어버리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피해자다. 언제 고향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간증할 것이며, 그들도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후에,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삼촌만큼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녀의 식구만 차별했는데, 간식이 있으면 그녀는 주지 않고 숨겨 두었다가 사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쌓였던 미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할머니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때 그 둘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가정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변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데, 자매님이 겪은 일들이 바로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고,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완전히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왜 크리스천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삶은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해야 한다고 늘 말합니다. 그러면 왜 지금의 삶이 번뇌로 가득합니까? 예를 들면, 직장 일로 인한 스트레스, 자녀에 대한 걱정, 가족들과의 불화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중년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앞날이 막막해지는 등등 …… 주 예수께서 말씀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 28~30) 주님은 신실하시므로 말씀하신 대로 되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난날 우리도 영이 안정되고 평안한 것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령이 갑절로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는 주의 말씀을 갈급해하고 사모하였으며, 또한 있는 힘껏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주셨으며, 우리들로 영 안에서 안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마음은 세속에 얽매여 있는데, 설령 육체는 만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심령의 갈급함은 오히려 해결받지 못하였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안식을 누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깨달아야 합니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안식을 누릴 수 있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이 말씀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비물질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비록 하나님이 너에게 모든 물질적 필요를 공급해 줄 수도 있지만 너의 물질적 필요가 만족을 얻었을 때 이런 물질이 너에게 가져다준 만족은 진리에 대한 너의 추구를 대체할 수 있는가? 아주 뚜렸한바, 대체할 수 없다!……내가 예를 하나 들겠다. 네가 배가 고플 때 음식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이 음식은 좀 좋아도 괜찮고 좀 별로 여도 괜찮다. 네가 배불리만 먹으면 배고픈 그 느낌은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며, 네가 거기에 앉아 있어도 잠잠해질 수 있고 너의 육체가 편히 쉴 수도 있다. 사람의 배고픔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제로라고 느낄 때 너의 심령의 공허한 느낌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음식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또는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할 때 너의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께 구원 받는 것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성정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했다면 너는 아주 조급함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이런 느낌은 너의 심령에 안식을 얻지 못하게 하지 않겠는가? 이런 심령의 허기는 무엇으로 보충할 수 있겠는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일부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고, 일부 사람들은 몇몇 괜찮은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하고, 일부 사람들은 한숨 푹 자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어보거나 본분을 하는 방면에 공을 많이 들이고 힘을 많이 쓰는데, 이런 것이 너의 실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행실에 대해 너희는 모두 깊은 체험이 있다. 네가 힘에 부침을 느낄 때, 너로 하여금 진리의 실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나님의 깨우침 얻기를 매우 사모하고 있음을 느낄 때 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고 몇 마디 마음에 딱 맞는 말도 아니며 더욱이 육체가 잠시적인 안일과 만족을 얻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하라는지,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너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알려주고 너에게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에는 설령 소소한 것일지라도 너의 심령이 한 끼 배불리 먹는 것보다 더 만족을 느끼지 않겠는가? 너의 심령이 만족을 얻었을 때는 너의 심령이나 너의 온 몸과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일을 이렇게 비유하고 이렇게 분석하니, 너희는 지금 왜 내가 너희에게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이니라'는 이 말씀을 보라고 하는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의 뜻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온 것, 하나님의 소유소시, 하나님의 전부는 네가 전에 가장 소중하다고 여겼던 물건이나 사람을 포함한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만약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얻지 못한다면, 사람이 만약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안식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이 진정으로 심령의 안식을 얻고 싶어한다면,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따르고, 하나님이 현실에서 하시는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은혜시대, 주 예수께서 사람이 회개하도록 하는 도(道)를 발표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여 포용하고, 인내하고, 주님께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바로 죄사함을 받고 영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께서는 당시에 구속 사역만 하였을 뿐, 죄를 제거하는 사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혜시대 후기가 되어 사람은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사람이 죄를 범하는 본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의 죄짓는 본성을 철저히 해결해야만이, 사람이 더 이상 사탄에게 훼방받지 않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은혜시대 구속 사역의 기초 위에서 또 말세에 사람의 패괴 성정을 철저히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였고, 가장 새로운 말씀을 발표하셔서 사람에게 정결케 되고 구원받는 추구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주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 시리라” (요한복음 16:13) 지금 예수님의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는데, 예수님은 일찍이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일곱 인을 떼고 책을 펼쳐 말세에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전개하였고, 인류에게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뭇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발표하신 말씀에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하며, 어떻게 성정 변화에 도달하고, 어떻게 인류의 패괴 실질을 인식해야 하는가 등의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진리는 전부 사람의 생명에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에게 순복하는 형제자매들은 성령의 역사를 얻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 직장, 가정, 인간관계를 대하는 진리 원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정 변화의 길을 찾았고, 성령 역사의 인도하에 점점 더 홀가분하고 유쾌하게 되었으며,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며,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의 양육을 받아야만 생명이 자랄 수 있고, 사탄의 흑암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벗어날 수 있으며, 모든 고통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심령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장의 신임을 받고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수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기존 직원의 괴롭힘을 당하게 되어 속의 화를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인 그는 본인의 생각대로 할 수 없었고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와 간구로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며, 하나님의 인도로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사장님의 신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닌 지난 날

항상 삶 속에서 강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온 그는 갑자기 신장염이 도져 죽고 싶을 정도로 슬퍼했습니다. 절망 중, 그에게 복음이 임하여 희망의 불을 지피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그의 심령이 소생케 되었습니다.

행복한 생활의 시작, 굿바이 신용카드

어느 날 알고 지낸 지 10년 지기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오후 티타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날 친구는 제일 고급스러운 화차와 케익, 디저트를 준비하여 저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최근에 명품 가방과 브랜드 옷을 사들이는 데 돈을 얼마 쓰게 되었다고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수두룩한 신용카드 고지서를 발견하게 되어 친구에게 고지서가 왜 이렇게 많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던 친구가 울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의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는 자기 주변 친구들이 명품을 좋아하고 서로 허세 부리며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중시하는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체면이 깎이지 않으려 계속 사들이고 카드로 긁다 보니 이제는 은행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명품을 좇다가 가계 경제에 위기를 맞게 된 것을 본 저는 깊은 공감을 느꼈는데, 마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체면을 중히 여기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늘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17살 때부터 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친구관계가 순수한 편이었고 물질적인 생활에도 요구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소박하게 입고 배부르면 그만이었기에 중압감이 없이 비교적 홀가분하게 생활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되었는데, 주변에 접촉하는 사람들은 모두 화이트칼라들이었습니다. 명품 가방,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들을 품평하고 비교하는 게 그들의 일상입니다. 그들은 늘 자신의 옷은 어떤 브랜드인데, 옷 하나에 몇만 위안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렇게 자랑을 하다가도 저에게 옷은 어디서 사는지, 가격대는 얼마인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제가 가격을 말하면 그녀들은 바로 경멸하는 말투로 “뭐? 어떻게 그런 싸구려 옷을 입을 수 있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속으로 “쟤네들에게 무시당할 순 없어! 쟤들이 가진 건 나도 꼭 가지고야 말겠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저도 자신의 겉치레를 중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카드를 긁어 G 브랜드의 가방을 사고 난 후, 동료들이 입을 모아 제 가방이 정말 이쁘고 저에게도 참 잘 어울린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칭찬을 받게 되자 저는 속으로 너무 기뻤고 체면이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명품 가방을 갖고 있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이렇게 저는 차츰 그녀들의 생활 라인에 녹아 들게 되었고 동료들과도 같이 나눌 화젯거리도 생겼습니다. 결국 자기도 모르게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동료가 3만 위안이 넘는 시계 하나를 구입했는데 매일같이 제 앞에서 자랑을 했습니다. 저는 약이 올라 며칠 뒤에 가격이 2만 위안이나 더 비싼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구입했습니다. 나중에 그 동료는 또 십만 위안 넘는 다이아 반지를 구입했는데 저는 더 이상 동료와 비교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자 그들은 또 하나둘씩 집을 장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부족했지만 주변의 동료들에게 얕보이기 싫은 저는 긁어 모은 15만 위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 집 하나를 장만했습니다. 겨우 집 대출 이자를 다 갚게 되자 그들은 또 자가용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뒤질세라 일제 신형 차 한대를 뽑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저는 늘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로는 수면제를 먹어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친구와 몇년만에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에게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는데, 그 후 몇년동안 저희는 함께 교회를 섬겼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지내면서 저는 주님의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었고 심령에 위로도 얻어 믿기 전보다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졌습니다. 하지만 유독 저의 생활 방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친한 친구가 또 3만 8천 위안짜리 유명 브랜드 가방을 샀습니다. 그 친구는 매일 제 앞에서 가방이 좋다고 자랑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가 살 수 없는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저는 그 친구와 함께 가서 똑같은 가방을 구매했습니다. 그러자 매장 직원은 곧바로 저에게 만 7천 5백 위안짜리 선글라스 하나를 추천해 주었습니다. 선글라스까지 구입하고 매장을 나오려고 할 때 친구는 또 만 3천 위안짜리 작은 가방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친구는 한꺼번에 가방을 두 개나 구매했는데 하나는 여동생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둘이 같은 백을 갖고 다녀야 남들 눈에 절친으로 보여질 수 있다면서 저도 하나 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작은 가방은 별로 실용 가치가 없어. 게다가 비싸긴 또 얼마나 비싸. 이 가방까지 사게 되면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거의 7만 위안이 돼. 이 돈을 갚으려면 몇 개월이나 일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제가 살 의향이 없는 것을 보자 가방이 정말 귀엽고 제게 참 잘 어울리는데 왜 사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순간 체면이 체면이 깎인 것 같아 속으로 ‘사지 않는다면 쟤는 꼭 내가 돈이 없어 사지 못한다고 생각할거야. 그럼 쟤 마음속에 여태 쌓아왔던 내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많이 고민했지만 결국 카드를 긁어 사고 말았습니다. 신용 카드의 최저 한도를 지불하기 위해 저는 반드시 투잡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일해야 했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제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기억력도 점점 감퇴되었습니다. 체중도 계속 줄었고, 장기간의 과로로 인해 제 피부도 누렇게 되었으며, 위장도 이상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늘 ‘왜 난 스트레스를 점점 쌓이기만 할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척, 친구, 동료도 의식적이든 비의식적이든 다 허세를 부리며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남들과 돈을 비교하고 집도 비교하고 자동차까지 비교하며 정말 힘들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번 주님께 기도 드렸고 성경에서도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하게 되니 참 막막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크리스천 형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 형제와의 교제를 통해 예전에 몰랐던 성경 속의 비밀을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형제가 아주 경건하고 정직하며 지혜롭게 얘기할 줄 아는 크리스천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좋은 영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형제는 저에게 주님이 벌써 돌아오셔서 수백만 자에 달하는 말씀을 발표하셨고 심판이 하나님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전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비록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묶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조류를 따르고 허영을 추구하며 죄 속에서 살면서 해방을 얻지 못한 것이죠. 성경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저희처럼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번에 성육신하셔서는 주로 우리의 죄짓는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심판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저희의 본성 실질을 여실히 드러내셨습니다. 말씀의 심판을 통해 저희는 자신이 사탄에게 패괴된 진면모를 보게 되었고, 자신을 증오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사탄의 패괴 성정과 사탄의 독소로 살고 싶지 않았고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싶지 않았으며,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시는 심판 사역이 확실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교통을 들은 저는 비록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많이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님을 몇 년 동안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영화와 뮤직 비디오도 보았습니다. 매번 예배 때마다 수확이 있었고 성령이 역사하여 인도하심을 확실히느끼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디마디 말씀마다 다 권세가 있고 다 하나님 성품의 발표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예전에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돌려세우게 되었습니다. 몇개월 동안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육신으로 다시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정성껏 화장을 하고 멋지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뒤에 옷장에서 제일 값비싼 가방을 꺼내 들고 예배하러 갔습니다. 예배 장소에 도착하여 형제자매들의 차림새를 보니 모두 아주 소박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중에서 너무 튀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한동안 어울려 지내면서 저는 형제자매들이 아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도 않고 사회 조류를 따라 명품을 좇지도 않았습니다. 반대로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고 정상 인성을 살아내는 것만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이 자신을 포장하느라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의 고통을 형제자매들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이토록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과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고 ‘고등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패괴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추호의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사람의 마음을 침해하고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며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사람의 성정은 나날이 악랄해져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버릴 수 있거나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예 아무도 없고, 더욱이 기꺼이 하나님의 나타남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마음껏 향락을 즐기고 진흙탕에서 자신의 육체를 진탕 패괴시키고 있다. 』형제자매들은 저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고통과 고민의 근원을 밝히셨어요. 사탄은 사회의 나쁜 조류를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진리가 없으면 어떤 것이 긍정적인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것인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사탄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회 조류를 따르면서 점점 더 타락되죠. 예를 들어 사회에서 경쟁하는 풍조, 사치 풍조, 그리고 부를 자랑하는 풍조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풍조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어 사람마다 경쟁하고 있는데, 누구의 소유한 집이나 자가용차가 더 좋은지, 누가 돈이 더 많고 세력이 더 큰지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구의 브랜드 옷, 휴대폰, 3C제품(컴퓨터, 카메라, 게임기 등)이 더 좋은지를 서로 비교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우리들의 경쟁심과 질투심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것을 얻기 위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자신의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성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죠.”라고 말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교통에 깊이 공감이 되었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한1서 5: 19)”라고 한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다들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먹고 입고 겉치레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명품을 좇다가 결국 자동차의 노예나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우리가 일시적인 물질적 누림을 얻고 허영심을 충족시킨 것 같지만 이런 고지서들을 마주할 때의 경제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쓰라린 고통은 오직 자신만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즘 사람들은 근검절약하거나 소박한 것은 치욕으로 여기지만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것은 영광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여러 가지 비뚤어진 사상의 영향으로 저도 주제넘게 높은 것만 바라보고 허영을 탐내면서 분수에 맞게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우러러 봐주고 칭찬해주기를 바랐던 저는 억지로 체면을 유지하면서 돈 있는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했고, 늘 자신의 체면을 위해 전전긍긍하면서 정말 위선적으로 살았는데, 그 고통은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저는 건강도 잃고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도 줄었던 것입니다. 이제 보니 자신이 다년간 추구해 온 것이 모두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저는 서로 경쟁하면서 명품을 좇고 고품질, 고소비의 생활을 치중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우롱하는 사탄의 수단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저에게 명품을 사러 가자고 하면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찾고 구하던 중,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하여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진솔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의 마음을 밖으로 끌어갈 수 있는 일은 접하지 말고, 너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을 접하지 말라. 어떤 일이든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면, 너는 그런 일을 내려놓고 하지 말거나 멀리하여라. 그러면 너의 생명에 더욱 유익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 길과 방향이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분량이 작아 사탄의 궤계를 분별할 줄 모르고, 자발적으로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자신을 유혹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피해야 하고, 육체를 배반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보는 것을 중요시하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실행하니, 더 이상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늘 환한 웃음을 짓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또 백화점의 세일 시즌이 왔는데, 친구는 또 저에게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미친 듯이 옷을 열 몇 벌이나 고르고 난 후 저에게도 사라고 권했지만, 저는 하나님이 허영을 탐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저를 비웃던 말든 저는 “난 더이상 함부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집에 옷이 너무 많아 다 입지도 못해. 난 안 살래.”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은 너무 자유롭고 해방받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진리를 실행하게 된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또 몇 번이나 친구와 같이 백화점에 갔었지만 저는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더 이상 브랜드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체면을 위해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억지로 사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저는 허영심과 체면의 묶임과 속박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기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명품이 없어도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체면이 깎여도 속이 뒤집혀질 정도로 괴롭지 않으며, 또한 예전처럼 신용카드 고지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할 필요도 없게 되면서 점차 건강도 되찾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저는 하루하루가 매우 의의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또 진리가 있어야 광명 속에서 사는 것이고,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근본적으로 변화된 것이다. 또한 사람은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로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서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감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흑암이 전혀 없고 완전히 해방받아 자유롭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네게 있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인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즉 네가 진정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면,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주관하고 모든 것을 주재하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면 너는 심령 깊은 곳이 밝아지고 편해지며 더없이 즐거울 것이고, 참으로 인생을 얻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저를 구원해 주시고 저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야 저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저의 인생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간증 나눔 :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14살 크리스천인, Mandy라고 합니다. 저는 항상 남들이 칭찬해주는 말만 듣길 바랐고 누가 제 단점을 얘기하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누군가 저의 어떤 모습을 지적하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두 가지 일을 겪고 난 후 제 관점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의 청소년 예배조에 들어가 매일 온라인에서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서로의 체험과 깨달음을 공유했습니다. 저는 이런 교회 생활을 좋았고 우리 교회의 형제자매들도 정말 좋았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모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각자 묵상할 시간을 가진 후 서로 인식한 것을 나눴습니다. 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느라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공유할 내용의 생각을 마쳤을 때 다른 자매님이 나누고 있기에 제가 공유할 내용을 글로 적어 단체 채팅방에 올렸습니다. 올리자마자 실수로 제가 올린 메시지를 그만 삭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수로 공유한 내용을 삭제했다고 얼른 글을 썼습니다. 쓰면서 ‘형제자매들은 분명 괜찮다고 해줄 거야. 말로 하면 된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Lily자매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방금 올린 글을 좀 봤는데 별 의미도 없고, 쓸데없는 내용만 가득하네요.’ 이 메시지를 보고 화가 난 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말을 이렇게 하지?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이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 Lily자매가 자신의 인식을 채팅방에 공유하자 마음속으로 경시하며 ‘자기가 쓴 것도 별로 구만. 나보다 못 썼으면서 주제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뭐라고 하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자매님한테 메시지를 보내 따지고 싶었지만 스스로 크리스천임을 자각하니, 함부로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애써 마음속 화를 억제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는 바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하나님, 좀 전에 Lily자매가 제게 뭐라고 하자 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화를 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화를 내는 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다스려주소서’ 기도를 마치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습니다. Lily자매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그렇게 교제를 못 했나? 그 정도는 아닌데! 하긴 교제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긴 했지. 마음으로는 아는데 그걸 말로 표현 못 할 때도 있었고. 정말 자매가 말한 것처럼 내 교제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가! 휴, 이렇게 부족한 나라면 차라리 교제를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형제자매들도 내가 교제를 잘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기력함에 힘이 빠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로웠고, 심지어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 후로도 풀이 죽은 저는 그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저녁이 되어 저는 교회의 Vivian언니에게 메시지로 저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Vivian언니는 내게 인터넷으로 전화를 걸어,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렇게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면, 다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 끝까지 고집부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된다. 너는 들어야 한다. 듣고 나서 “정말 그러네, 그럼 고쳐야지.” 하면서 고치니, 누군가 “이젠 좀 괜찮네요. 보니까 느낌도 좋고 큰 문제도 없어요. 이렇게 해도 됩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으냐! 이렇게 되면 한 방면으로는 너희가 업무적인 면에서 점차적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숙련되고 능숙해질 수 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 공과를 배우게 되는 것도 있다. 일에 부딪혔을 때 독선적이면 안 된다. ‘내 말대로 해야 돼, 다들 말할 자격이 없어. 난 원칙을 알고 있는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잖아. 난 잘 알아!’라고 생각한다면 독선적인 것이다. 독선적인 것은 사탄의 타락된 성품이고,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독선적이지 않겠느냐?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보고, 다 같이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봤을 때 다 찬성해서 통과시킨다면, 그것은 참 잘한 것이다.』 이어서 Vivian언니가 내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우릴 지적하고 훈계할 때 사탄의 교만한 성품 속에서 살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우선 받아들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찾고 구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어. 우리가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만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거야. 우리는 다른 사람의 훈계와 책망 중에서 이익과 도움을 받아, 자신의 부족했던 점을 바로잡아야 해.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만족해 하실 거야. 이번 일도 마찬가지야. 그 자매가 우리에게 뭐라고 하든, 듣기 좋은 말이 아닐지라도 우리의 부족한 점을 단번에 짚어주지 않았니?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것만 맞다고 여기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이 있게 되었는데 이러는 건 결코 우리에게 유익한 점이 없어. 오히려 진리를 얻고, 생명이 자랄 기회만 잃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각별한 고심을 저버리게 되는 거야. 예전에 나도 너와 비슷한 체험이 있었어. 어느 날 형제자매와 예배를 드리는데 한 자매가 나랑 예배를 드리면 누림이 없다고 하는 거야. 처음엔 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 자매님과 예배에서 열심히 듣지 않아 초래된 문제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 후 그 자매가 한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예배 때 내가 보였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교제한 건 모두 이론과 도리이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전혀 없었어.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 그때 나는 자매의 의견을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구하게 되었어. 다음 예배 때, 이런 방면에 대해 고치려고 노력하니 차츰 효과가 나타나더라고. 그러니까 우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우리가 모든 일에서 진보될 수 있거든.” Vivian자매의 말이 끝나자 그동안 제가 보였던 모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그 자매가 제가 공유하는 내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했을 때 저는 속으로 교만하여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자매가 공유하는 내용이 제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그 표현이 바로 고집스럽고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던가? 자매가 내게 제안한 것도 사실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것이고, 자매를 통해 나의 문제를 지적하여 내가 스스로 깨닫고 고치게 하시려는 거였어. 하지만 난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교만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매가 지적한 문제로 소극적이 되어 대항하며 앞으로 예배에서 교제를 하기도 싫고, 예배도 드리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잖아. 내 못난 모습을 자세히 되돌아보니 나는 인정하려 하지도 않고 억지만 부렸었네.’ 여기까지 생각하자 자책이 물밀 듯 밀려왔고 그 자매가 훈계한 말 때문에 더 이상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Vivian언니에게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의 말씀과 언니와의 나눔을 통해 앞으로 남들이 어떤 제안을 하든 겸손한 자세로 우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 함을 깨달았어요. 만약 정말 제 잘못이라면 다음엔 고치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래야 제 생명에도 진보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하자, Vivian언니 역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쁘게 말했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저는 Lily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제게 뭔가 잘못된 모습이 보이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제가 고치도록 노력할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매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을 보며 그때 자판을 두드리던 저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쓸까에만 정신이 팔려 다른 형제자매의 나눔은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났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들었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걸 중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걸 중시해야 하며 형제자매의 나눔에 귀를 기울여야만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고, 자신의 생명 자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서야 저는 자매가 내게 의견을 말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것을 바로 자매와 나누었고, 의견을 제기해주어 고맙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다음 예배 때, 저는 다른 사람의 나눔에 귀를 기울이니 형제자매의 나눔이 모두 좋았고 저도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저에게 또 새로운 공과를 배치해 주셨습니다. …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와 다른 한 친구가 한 팀으로 하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기쁜 마음에 제가 쓴 프로젝트 방안을 그 학생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제가 낸 방안에 의견을 제기했으며 심지어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말을 마치자, 저의 마음은 몹시 불쾌했습니다. 속으로 ‘내가 쓴 게 뭐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자기는 뭐 얼마나 잘 쓴다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학생에게 뭐라고 쏘아붙일까 하던 찰나 지난번에 체험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사탄의 성품 속에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교만하거나 자신을 고수해서는 안돼. 그건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안을 제대로 쓸 수도 없어’라고 자신한테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여러 사람들이 보기에 진짜 그렇게 하면 안 좋고, 그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한두 번 봤을 때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도, 세 번, 네 번 보면 볼수록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그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가 있으니 우리는 이 일에서 바로잡고 개선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일이냐 아니면 나쁜 일이냐? (좋은 일입니다.) 이러면 문제점을 고친 것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서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면서 교통을 하니 성령이 또 깨우쳐 준다. 그리고 그대로 하였더니 다들 “맞아요, 원래보다 훨씬 좋네요!”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냐? 얼마나 좋은 일이냐! 네가 이렇게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내려놓고 진리를 실행하며, 자세를 낮추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독선적으로 하지 않으니 어떻게 되었느냐? 성령 역사의 기회를 얻어 성령의 깨우침을 받았다. 성령이 깨우쳐 주니 어떻게 되었느냐? 업무 방면에서 또 하나를 배웠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른 사람과 협력하면서 의견 차이가 있을 때 사탄의 성품 속에서 자신을 고수하지 말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한 후 문제를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셨어. 그렇게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어 일도 더 순조롭게 잘 될 수 있다고 하셨지. 그런데 이번에 다른 사람이 나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니 나는 또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려 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더 좋은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겠어.’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반항심이 없어졌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학생이 제안한 내용이 제가 했던 제안 보다 더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그 학생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이끌어 주신 덕분에 우리의 프로젝트안은 순조롭게 완성되었고, 선생님도 예전보다 훨씬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의 체험을 통해 저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지적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자신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스스로도 더욱 진보할 수 있고 일도 더 잘 마무리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적하고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저를 부정하고, 난감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선물이며, 저의 타락한 성품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