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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사람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단란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와 이익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재산이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예전에 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런 것들을 가지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동생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고, 돈을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았다. 결혼 후, 동생은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돈을 벌었고, 아이 셋을 모두 대학교에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모두 좋은 직업을 얻었다. 두 딸은 교사가 되었고, 아들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들은 상하이(上海)에서 일하며 몇백 만 원의 월급을 받았고, 조건이 좋은 며느리도 데려왔다. 사돈은 부동산 회사 대표로 억대 자산가였다. 동생은 대도시에 집 두 채를 샀고, 비싼 차도 샀다. 집안에는 최신식 가전제품이 종류별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만날 때면 우리 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라고 자랑했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동생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아이들도 모두 독립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도 얻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으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 돈은 벌어도 끝이 없는 거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안정과 평온을 찾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동생은 거절하며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 벌 수 있을 때 벌어 둬야지. 언니는 돈도 없으면서 무슨 행복한 삶이야! 하나님 믿는 것도 물론 좋지. 늙어서 할 일 없으면 그때 가서 믿을게!”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동생은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동생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동생은 직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동생은 어디 아픈 데도 없었고 파출부 일을 계속 해왔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된 거지?’ 나는 남편, 그리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은 황달에 피골이 상접했으며, 미간이 깊이 파여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동생이 더 힘들어할까 마음을 다잡고, 동생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좀 어때, 괜찮아졌어?” 우리를 본 동생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얘기했다. “어떻긴 뭐가 어때. 이 큰 병원에 내 배에 있는 물을 빼내 줄 능력이 없대. 뱃속에 장이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쉬겠어. 너무 힘들어….” 젊은 나이에 큰 병을 앓게 된 동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동생을 달래 주었다. “별문제 없을 거야.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받으면 곧 괜찮아 질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조카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큰돈 마다 않고 상하이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병과 죽음 앞에서 돈은 아무 힘이 없었고, 동생의 목숨을 구할 수도 없었다.

삶의 깨달음,

동생은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그렇게 동생의 삶은 부유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도 샀으며, 허영심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병마는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동생의 ‘행복’한 삶마저 깨뜨렸다. 이 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돈과 명예가 있으면 진정한 행복일 것일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너의 원대로 되지 않는다! 근원은 무엇일까? 말하자면 바로 사람 마음에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어떤 것이냐? 사람은 정신적 지주를 어디에 두느냐? 가족의 화목, 결혼의 행복, 또 물질적 향락, 돈, 명리, 지위, 정(情), 사업, 그리고 다음 세대, 다음 세대의 행복 등, 다 그런 일들에 둔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정도로 두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사실, 다 그런 일들밖에 없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 즉 다음 세대에 걸고,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에서 차지할 자신의 자리와 명리에 둔다. 그러므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은 다 같은 것이다. 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고 사탄의 통제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위해,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사업, 결혼, 가정 그리고 다음 세대와 육체의 향락 등,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분투하고 바쁘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 길이 바른길이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신나게 바쁘게 보내고, 사업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더없이 행복한 가정에, 대단한 가문에, 아무리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들 바른길에 들어설 수 있느냐? 명리를 좇고, 세상을 좇고, 업적을 추구한다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라는 이 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렇지?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가든,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길은 어떠냐? 그것은 바른길이 아니고, 정도(正道)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진실하고, 실질적이었으며, 우리 인간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내셨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명예와 이익, 사업, 가족, 육체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무함과 고통뿐이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쉬움만 가득 안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살아있을 때 뛰어난 명성을 누렸던 사람이 죽은 후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소위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정당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길을 걷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이 있겠는가!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사악한 세계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만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을 걸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생과 내가 추구했던 관점도 같았었다. 돈과 명예, 이익, 물질적 즐거움을 누리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 수년간 필사적으로 일했지만, 부지중에 병에 걸린 것이다. 정말 생각하기 싫은 과거다. … 병마의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내게 다가왔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탄의 실체에 대해 알고,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돈이 최고다’,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다’라는 이러한 독소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갉아먹어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아야만 하고,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고 돌봐주지 않는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돈과 명예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본을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는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되고, 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돈과 평생을 다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사탄의 계략에 빠졌음에도 계속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했고, 평생 일궈낸 부와 명예는 동생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누가복음 9:25)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일깨움이 무딘 내 영혼을 일깨워 주셨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알려주시어 그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관건인데, 사람은 결론적으로 이런 도리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그 일생이 행복할지 슬플지가 결정된다.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 최종에 ‘인류는 다 이런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그런 방식을 바꾸지 못했어. 그러면 이 인류 가운데는 주재자, 즉 전설 속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 하나님, 곧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찾는다면 인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인류의 뿌리를 찾는 게 중요한데, 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뿌리를 찾는다면 사람은 아마 새로운 세상을 살지도 몰라. 하지만 그 뿌리를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변함없이 이런 삶의 방식을 지속하게 될 거야. 그러면 인류의 행복은 여전히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겠구나.’라는 느낌이 있게 될 것이다.』,『진정한 복은 마음이 행복한 것이다. 돈이나 물질, 지위, 명리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 마음 세계가 행복하고 해방되어 자유로워야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시고, 모든 올바른 사물의 실제이시자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시고,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인생 격언이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사탄의 계략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신다. 사탄의 실체는 사악하고,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논리는 진리가 아닌 궤변이다.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르며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아 실행하고, 생명의 최고 격언으로 삼아 지킨다면 우린 진정한 삶을 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평생 하나님을 알기 위해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했던 욥이 떠올랐다. 욥은 풍요로운 재산이 있었지만, 물질적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재산을 가져가셨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사람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지위가 높건 낮건, 심지어 인간의 생로병사마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득실이나, 슬픔과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평생 자유롭고 평온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으로 사탄의 생존 법칙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더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타인의 선망을 받는 것은 모두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방향인 것이다. 지금 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며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하고 있다. 더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축복 속에 살아가니 마음은 더없이 환하고 자유롭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었다.

유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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