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2018년 12월 25일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사람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단란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와 이익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재산이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예전에 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런 것들을 가지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동생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고, 돈을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았다. 결혼 후, 동생은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돈을 벌었고, 아이 셋을 모두 대학교에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모두 좋은 직업을 얻었다. 두 딸은 교사가 되었고, 아들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들은 상하이(上海)에서 일하며 몇백 만 원의 월급을 받았고, 조건이 좋은 며느리도 데려왔다. 사돈은 부동산 회사 대표로 억대 자산가였다. 동생은 대도시에 집 두 채를 샀고, 비싼 차도 샀다. 집안에는 최신식 가전제품이 종류별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만날 때면 우리 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라고 자랑했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동생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아이들도 모두 독립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도 얻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으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 돈은 벌어도 끝이 없는 거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안정과 평온을 찾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동생은 거절하며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 벌 수 있을 때 벌어 둬야지. 언니는 돈도 없으면서 무슨 행복한 삶이야! 하나님 믿는 것도 물론 좋지. 늙어서 할 일 없으면 그때 가서 믿을게!”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동생은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동생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동생은 직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동생은 어디 아픈 데도 없었고 파출부 일을 계속 해왔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된 거지?’ 나는 남편, 그리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은 황달에 피골이 상접했으며, 미간이 깊이 파여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동생이 더 힘들어할까 마음을 다잡고, 동생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좀 어때, 괜찮아졌어?” 우리를 본 동생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얘기했다. “어떻긴 뭐가 어때. 이 큰 병원에 내 배에 있는 물을 빼내 줄 능력이 없대. 뱃속에 장이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쉬겠어. 너무 힘들어….” 젊은 나이에 큰 병을 앓게 된 동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동생을 달래 주었다. “별문제 없을 거야.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받으면 곧 괜찮아 질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조카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큰돈 마다 않고 상하이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병과 죽음 앞에서 돈은 아무 힘이 없었고, 동생의 목숨을 구할 수도 없었다.

삶의 깨달음,

동생은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그렇게 동생의 삶은 부유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도 샀으며, 허영심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병마는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동생의 ‘행복’한 삶마저 깨뜨렸다. 이 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돈과 명예가 있으면 진정한 행복일 것일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너의 원대로 되지 않는다! 근원은 무엇일까? 말하자면 바로 사람 마음에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어떤 것이냐? 사람은 정신적 지주를 어디에 두느냐? 가족의 화목, 결혼의 행복, 또 물질적 향락, 돈, 명리, 지위, 정(情), 사업, 그리고 다음 세대, 다음 세대의 행복 등, 다 그런 일들에 둔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정도로 두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사실, 다 그런 일들밖에 없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 즉 다음 세대에 걸고,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에서 차지할 자신의 자리와 명리에 둔다. 그러므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은 다 같은 것이다. 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고 사탄의 통제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위해,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사업, 결혼, 가정 그리고 다음 세대와 육체의 향락 등,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분투하고 바쁘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 길이 바른길이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신나게 바쁘게 보내고, 사업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더없이 행복한 가정에, 대단한 가문에, 아무리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들 바른길에 들어설 수 있느냐? 명리를 좇고, 세상을 좇고, 업적을 추구한다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라는 이 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렇지?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가든,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길은 어떠냐? 그것은 바른길이 아니고, 정도(正道)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진실하고, 실질적이었으며, 우리 인간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내셨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명예와 이익, 사업, 가족, 육체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무함과 고통뿐이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쉬움만 가득 안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살아있을 때 뛰어난 명성을 누렸던 사람이 죽은 후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소위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정당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길을 걷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이 있겠는가!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사악한 세계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만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을 걸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생과 내가 추구했던 관점도 같았었다. 돈과 명예, 이익, 물질적 즐거움을 누리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 수년간 필사적으로 일했지만, 부지중에 병에 걸린 것이다. 정말 생각하기 싫은 과거다. … 병마의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내게 다가왔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탄의 실체에 대해 알고,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돈이 최고다’,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다’라는 이러한 독소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갉아먹어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아야만 하고,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고 돌봐주지 않는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돈과 명예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본을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는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되고, 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돈과 평생을 다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사탄의 계략에 빠졌음에도 계속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했고, 평생 일궈낸 부와 명예는 동생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누가복음 9:25)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일깨움이 무딘 내 영혼을 일깨워 주셨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알려주시어 그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관건인데, 사람은 결론적으로 이런 도리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그 일생이 행복할지 슬플지가 결정된다.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 최종에 ‘인류는 다 이런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그런 방식을 바꾸지 못했어. 그러면 이 인류 가운데는 주재자, 즉 전설 속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 하나님, 곧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찾는다면 인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인류의 뿌리를 찾는 게 중요한데, 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뿌리를 찾는다면 사람은 아마 새로운 세상을 살지도 몰라. 하지만 그 뿌리를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변함없이 이런 삶의 방식을 지속하게 될 거야. 그러면 인류의 행복은 여전히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겠구나.’라는 느낌이 있게 될 것이다.』,『진정한 복은 마음이 행복한 것이다. 돈이나 물질, 지위, 명리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 마음 세계가 행복하고 해방되어 자유로워야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시고, 모든 올바른 사물의 실제이시자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시고,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인생 격언이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사탄의 계략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신다. 사탄의 실체는 사악하고,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논리는 진리가 아닌 궤변이다.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르며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아 실행하고, 생명의 최고 격언으로 삼아 지킨다면 우린 진정한 삶을 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평생 하나님을 알기 위해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했던 욥이 떠올랐다. 욥은 풍요로운 재산이 있었지만, 물질적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재산을 가져가셨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사람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지위가 높건 낮건, 심지어 인간의 생로병사마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득실이나, 슬픔과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평생 자유롭고 평온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으로 사탄의 생존 법칙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더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타인의 선망을 받는 것은 모두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방향인 것이다. 지금 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며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하고 있다. 더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축복 속에 살아가니 마음은 더없이 환하고 자유롭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었다.

유은지

돈과 명예가 행복한 삶을 이뤄줄 수 있는가?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바쁘게 살던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합니다

2012년 7월 21일 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보기 드문 특대 수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의 진실한 경력과 본 것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언니네 사료 공장을 지키게 되었는데 밤에 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리 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45분에 형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는 몽땅 잠기게 되니 빨리 도망가요!” 그때 저는 멍해져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기만 할 뿐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전동자전거, mp3와 메모리카드를 챙기기에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사료실에 가서 전동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 책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까지 타고 왔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아 저는 큰물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조각에 부딪쳐 전동자전거와 함께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물에 떠내려가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만약 살아남게 하신다면 이후부터 본분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저의 한쪽 신발은 이미 물에 떠내려갔고, 저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에 이르러 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변이 철망으로 둘러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갈 수가 없으니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른 한쪽 신발마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물은 이미 저의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저는 되돌아 가려고 세 번째 시도를 했고 속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른 돼지농장에서 한집 식구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저의 남편도 거기에 도착하여 도구로 철망을 끊고 있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맨발로 철망을 넘어 고속도로에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고속도로 남쪽은 물굽이에 둘러싸인 지역인데 북쪽으로 물이 흘렀고 북쪽은 큰길인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우리를 중간에 끼워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강철공장이 있었는데 강철공장 담장 밖으로부터 2m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물은 1m 정도로 깊어 공장의 채색 강철 기와집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한 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만약 물이 북쪽으로부터 덮쳐 왔다면 그날 새벽 2시쯤에 우리는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남쪽 담벽 모퉁이를 뚫고 내려가 아래에 위치한 돼지농장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이때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재난도 비켜 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에서 3시간 남짓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가 하나도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전동자전거도 물에 넘어지고 전동자전거 충전기도 젖고 다른 물건도 다 젖었지만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만은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료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본 상황은 더욱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료공장 마당에는 간밤에 내렸던 빗물만 고여있었을 뿐 물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쪽 옥수수 밭도 잠기고 뒷쪽 옥수수 밭도 더 깊이 잠겼지만 사료공장에는 물이 얼마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번 수재를 통해 저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이 만능이라고 하지만 재난이 임할 때는 돈이 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사료공장을 그만두고 복음 사역에 뛰어들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올케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저의 경력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저의 어머니와 올케는 줄곧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핍박해 왔고 제가 4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도 않았었습니다. 이때 저는 더욱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에는 저를 핍박했지만 지금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경력을 통해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있는 힘껏 저의 경력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재난과 시련 속에서 제가 하나님의 구원과 가장 진실한 사랑을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8월 11일 北京市 穩重

우리 가족의 갈등, 이렇게 해결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크리스천이 되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가족들이 다 나를 편애했다. 나는 여동생보다 세 살 많았지만 한 번도 동생에게 양보해 본 적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먼저 차지했다. 결혼한 후, 종종 사소한 일로 남편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곤 했다. 남편을 못 이기면 며칠이고 그와 대화도 하지 않았고, 남편도 나를 외면하며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런 집안 분위기가 나는 너무 괴로웠다. 혼자서 이런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하러 오신 것은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타락한 우리를 정결케 하고, 우리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인생의 후반부에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잘 따르겠다고 남몰래 결심했다. 타락한 성품이 변화될 수만 있다면 가정도 화목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 집에서 남편과 의견이 다르면 나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그에게 양보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은 줄어들었고, 나는 스스로 변화한 것을 느꼈다. 바로 내가 스스로 자만자족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계속 여러 가지 환경을 만드시며 나를 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사돈 간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5년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연애 끝에 결혼 적령기가 되어 가족끼리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혼사 이야기를 나눴다. 여자 쪽 어머니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신혼집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딸이 거기에 살면 직장과 가까워 출근하기 편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몇십 리 밖에 있는 집으로 이사해서 살라는 말을 듣고 내심 불쾌했다. 첫째,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단층집이라 출입이 편하고, 둘째, 우리 부모님과 시댁과의 거리가 가까워 양쪽 부모님을 보살피기에도 비교적 편했기 때문에 나는 절대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멀리 떨어진 그 집에 대해 좋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집이 비록 멀기는 해도 안의 가구가 다 새것이고, 인테리어도 젊은이들의 취향대로 디자인해서 젊은이들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편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내주고 아들의 신혼집으로 새로 인테리어 해주겠다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묵묵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나는 남편과 싸우며 사돈에 대한 불만을 전부 남편에게 쏟아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 척하며 정작 나의 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원망했고, 사돈의 처사가 너무 지나치고 너무 강하게 나온다며 원망했다. 이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남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집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고 남이 끼어들어 이래라저래라 하니 내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서 무척 억울하고 괴로웠다. 아무런 방법도 없을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 일 때문에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원래 멀리 있는 그 집을 아들이 결혼하면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돈이 그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집은 우리가 샀는데 사돈이 무슨 자격으로 결정하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돈과 싸운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으려니 제 마음이 또 내키지 않습니다. 남편도 제 편이 아니라 더욱 괴롭고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나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다.『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속에 파고들었다. 이 말씀이 바로 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그 불신자들과 똑같이 명리를 다투고, 내 이익을 위해 시시콜콜 따지며,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도 않았다. 난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하나도 실천하지 못했으니 정말 하나님을 슬프게 한 것이다! 집 문제에서 사돈의 처사가 내 이익을 해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내 편에 서지 않고 날 무시하며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아서 내 이익과 체면을 되찾으려고 남편과 싸웠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후회가 되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집 문제에서 저는 제 이익과 체면을 지키려고 사돈과 다투고 남편과 싸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저의 이익을 내려놓고 그들과 다투지 않고 하루 빨리 사탄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기도 후, 나는 정상적인 인성으로 살면서 남을 포용하고, 양보하며, 이해한다면 내 마음이 해방되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발적으로 남편에게 이사 문제를 상의했다. 이 일이 끝난 후, 나와 남편, 사돈 간의 관계가 다시 좋아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며느리의 갈등을 해결했다. 2016년 가을, 아들이 결혼하고, 온 가족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들 부부의 신혼 3일째 밤 9시가 넘어, 남편은 며느리가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알고 보니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고 가 보았다. 집에 들어가 이유를 물어보고 나서야 집문서 때문인 것을 알았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본인의 이름도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아들이 동의하지 않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갈등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말했다.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 되지 않아 우리 모두 피곤하니 이 일은 며칠 후에 다시 상의하자꾸나.” 이렇게 말하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며느리의 이런 요구는 말도 안돼. 며느리의 부모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더니 며느리 역시 부모랑 똑같은 거 아닌가? 우리 집은 정말 재수가 없네. 어떻게 그런 집이랑 엮여서...’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자. 아들네가 안 싸우고 잘 살면 됐지...” 나는 듣자마자 분통이 터져 남편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신 어쩜 그렇게 생각이 단순해요. 며느리가 해 달라 한다고 다 해주면 나중엔 끝도 없이 욕심을 부릴 거라고요. 우리가 집도 사고 인테리어까지 했는데, 며느리는 돈 한 푼 안 내고 명의를 올려 달라는 게 말이 돼요? 남들이 알면 우리를 어떻게 보겠어요. 사람들이 다 우리를 깔보지 않겠냐고요? 앞으로 제가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만나겠어요? 게다가 며느리가 하는 짓을 보니 아들과 잘 살 것 같지도 않아요. 만약 정말 이혼이라도 해서 재산의 절반을 차지한다면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게 된다고요...” 남편은 내가 화내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보고 난 더욱 화가 났다. 더 이상 마음속의 화를 억제하지 못하고 모든 불평을 남편에게 퍼부었다. 나는 울면서 이 집을 살 때 돈을 모으느라 얼마나 힘들었냐고 말했고, 말할수록 며느리의 요구는 더욱 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일로 괴로워할 때 갑자기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게 생각났다.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며느리가 집문서에 자기 이름을 올려 달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너무 한 것 같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사이의 갈등이 더욱 격화될 것입니다. 들어주자니 또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이때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보았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는데,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만 생각하게 하고, 명리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게 하며, 명리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게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게 하며, 명리를 지키거나 얻기 위해 어떤 판단이나 결단도 내릴 수 있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무형의 굴레를 씌워 놓았다. 그 굴레가 씌워지면 사람은 벗어날 능력도, 벗어날 용기도 없는데, 그 굴레를 쓴 채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였으며, 한 세대 또 한 세대 생존해 오면서 갈수록 사악해지고 흑암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들이 사탄이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 속에서 자신을 망치게 되었다. 그럼 이제 사탄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의 음험한 속셈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이제는 분명히 알았겠지! 사탄이 가증스럽지 않으냐? (가증스럽습니다!) 아마 너희가 지금은 아직 사탄의 음험한 속셈을 꿰뚫어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희는 사람이 명예와 이익을 떠나면 인생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를 볼 수 없고, 앞날이 캄캄하고 막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서히, 어느 날엔가 사탄이 사람에게 씌워 놓은 명예와 이익이라는 굴레가 얼마나 큰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인식하는 그날이 되면, 너는 사탄의 통제와 사탄이 너에게 씌워 놓은 굴레에 철저하게 저항할 것이다. 네가 사탄이 주입시킨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때면, 너는 사탄과 철저히 결별하게 될 것이며, 또한 사탄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진정으로 증오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흠모하게 되며, 진리를 추구하는 올바른 인생길을 가게 된다.』 이 구절의 말씀을 보고 나자 나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이 말씀이 나에게 하는 말씀이 아닐까? 이 말씀은 너무 현실적이야. 난 명리에 얽매여 살고 있지 않았나? 원래 명예와 이익은 사탄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이고,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어쩐지 내가 그 안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괴로운 것이었다. 사탄은 명리를 가지고 우리를 조롱하고 괴롭힌다. 집문서 문제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이루며, 화가 나고 괴로워서 하늘과 사람을 원망했다. 집문서에 며느리의 이름을 올리면 친척과 지인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까 두려웠고, 또한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하게 된다면 며느리가 재산의 절반을 가져갈 수 있어서 손해라고 생각했다. 이게 바로 명리가 나에게 가져온 고통이 아닌가? 하마터면 나는 명리의 노예가 될 뻔했다. 이런 것들이 나를 옭아매어 정상적인 인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가족의 정은 더욱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속의 원한이 훨씬 덜해졌다.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이 너무나 위력적이라 나는 마음속에서 환히 이해가 되었다. 이 말씀을 헤아릴수록 나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점차 나는 화가 나지 않았고, 이런 명리의 족쇄에서 빠져나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기를 바랬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마음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고 한없이 편해졌다. 남편은 홀가분해 하는 나를 보며 의아해서 나에게 물었다. “당신 2시간 전이랑 완전 딴 사람 같은데?” 나는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주었어요. 전 며느리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남편도 듣고 기뻐했고, 이렇게 우리 둘은 자발적으로 집문서를 며느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며느리는 집문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감격해서 말했다. “어머니, 큰 도량으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나에게는 이런 도량이 없어. 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한 거란다.” 지금까지도 며느리는 집문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았고, 아들과도 더 이상 싸우지 않았으며, 우리 가족은 아주 화목하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말씀이 인도해 주신 덕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의 갈등을 해결했다. 이제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 수 없다. 나는 하나님 말씀 안에 많은 비밀을 발견했다. 그런 많은 말씀이 우리 삶의 토대가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서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가정들을 보라. 그들은 가정의 시시비비 속에서 살면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모두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내 동창의 상황이 그렇다. 어느 날 친구가 울먹이며 나에게 전화해 집안의 갈등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매들이 서로 집을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고 했다. 핸드폰를 내려놓고, 나는 하나님의 크나큰 구원을 받아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명리의 얽매임에서 벗어났고, 사탄의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면 나도 그 불신자들처럼 여전히 명리를 다투며 살았을 것이다. 한 가족이 명리 때문에 원수가 되고, 고통 속에 발버둥치며 평안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 온 가족이 모두 온정이 넘치고 즐겁게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인도하심에 감사드렸다.

신고를 당한 후…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직장 동료간의 갈등을 해결한 그녀의 비결

오늘날 시장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끼리 서로 손님을 뺏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특히 판매업에선 실적 때문에 동료들끼리 고객을 두고 싸우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료의 고객을 빼앗아서라도 실적을 올리려고 온갖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마트에서 근무했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는데 처음에는 울분을 억누르며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러다가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동료와 얼굴을 붉히며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척 괴로웠습니다. 나중에 손님을 차지하기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고도 실적을 유지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 마음은 무척 편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십니까? 2010년, 저는 어떤 마트에서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이 업계는 기본급 없이 판매가에서 일부 금액을 받는 인센티브제로, 상품을 파는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특히 경쟁이 심합니다. 제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오래 일한 동료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빈 씨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곳 상황을 잘 모를 거예요. 예전에 어떤 직원 두 명이 서로 경쟁하면서 상품을 팔다가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어요. 결국 두 사람 모두 해고됐어요.” 동료의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그 사람들 참 너무하네. 돈 더 많이 벌려고 같은 동료끼리 싸움까지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동료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우린 그 사람들처럼 상품을 팔려고 다퉈선 안 돼요. 그래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고 다른 직원의 손님은 절대 뺏지 않기로 해요.” 동료의 말을 듣고 나니 걱정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거 좋네. 그럼 공평하잖아. 그럼 예전 그 직원들처럼 자기 상품을 팔려고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딱 제가 팔 수 있는 만큼만 팔고 여기 규칙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그럴게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근무 시간에 동료들이 먼저 손님을 받고 상품을 소개하면 저는 한쪽에서 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먼저 손님을 받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재빨리 자기 상품을 소개했고 아예 제 손님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처음 이런 일을 당했을 때는 화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연이겠거니 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인데 빼앗아 가면 안 되죠. 먼저 손님 받는 사람이 상품을 소개하기로 했잖아요.” 당시 동료는 제 말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후에도 동료는 또다시 제 손님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예전에 그 동료가 먼저 ‘손님을 먼저 받은 사람이 계속 응대한다’라고 해놓고선 이제 와서 왜 그러는지, 그 동료는 규칙을 너무 안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제 손님을 가로채는 횟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손님을 딴 사람한테 빼앗기면 지금까지 일한 게 전부 헛수고고 돈도 하나도 못 번다며 뒤에서 저를 바보 같다며 수군거렸습니다. 동료가 번번이 제 손님을 가로채는 것도, 다른 동료들이 뒤에서 저를 가지고 수군거리는 것도, 전부 화나고 억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먼저 손님을 받는 사람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로 하지 않았나? 당신이 먼저 규칙을 안 지키고 내 손님을 가로챘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가 겁낼 줄 알고? 나도 바보는 아니야. 다음에 네가 먼저 손님 받으면 나도 빼앗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동료가 먼저 손님을 받는 것을 보고 얼른 가서 잽싸게 제 상품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결국 동료가 소개한 상품을 샀습니다. 손님이 떠난 후, 그 동료는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손님을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저는 결국 동료와 말다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저와 동료 사이는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같이 근무하면서도 말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는 계속 제가 먼저 받은 손님을 가로챘고, 그때마다 저는 엄청 화가 났습니다. 동료가 가로챈 손님에게 상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빼앗아 버릴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하고 똑같이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실적이 없고, 그럼 계속 여기에서 일할 수도 없을 텐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홀로 진열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 지금 너무나도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런 환경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동료의 손님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빼앗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팔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든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런 환경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드리자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혹한 인류여!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서로 암투를 벌이고 명리를 다투며 싸울 것인가? 하나님이 많고 많은 말씀을 하였지만 누구 하나 깨닫지 못한 채 모두 가족과 자녀, 직업과 앞날, 지위와 재산, 허영, 먹고 입는 것, 육체를 위하느라 급급했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진정 하나님을 생각했는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남을 억압하고 배척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나님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전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사람이 착하면 남에게 속고, 말이 온순하면 사람이 타게 마련이다’, ‘한치의 땅이라도 반드시 싸워 쟁취하고, 아주 작은 이득이라도 반드시 얻어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은 특히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음흉하고 악랄하게 변하게 되었으며, 동료끼리든 친척끼리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치고받고 싸우면서 서로 빼앗을 뿐만 아니라, 이익을 노리고 서로 죽이고, 추호의 양심이나 이성은 전혀 없고 진정한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는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제 손님을 가로챘고, 그걸 본 저는 네가 빼앗았으니 나도 빼앗을 거야.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라는 생각에 손님을 빼앗기 위해, 사람됨의 마지노선을 포기하고 동료와 다투며 매일 질투와 싸움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저의 마음은 아주 괴로웠고 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뿐, 여전히 사탄의 의도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제야 제 모든 고통의 근원은 세상의 흐름을 따랐기 때문이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거역으로 저를 대한 것이 아니라 제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저를 인도하시어, 사탄이 저를 어떻게 타락시키는지를 꿰뚫어 보게 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사탄의 독소에 따라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부디 저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어서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 이익은 생명인 것이기에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기하는 법, 배반하는 법, 고난받는 법, 아파도 버릴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가 괴로워도 참으며 조금 포기하게 된다면, 너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느껴질 것이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이긴 것이다.』『정상 인성은 모두 어떤 몇 가지 방면을 포함하고 있는가? 즉, 견식ㆍ이지ㆍ양심ㆍ인격이다. 이 몇 가지 방면이 모두 정상이 되면 너의 인성은 합격된 것이다. 정상 사람의 모양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다우면 된다. 얼마큼 높은 데에 도달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외교(外交)를 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으며, 정상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정상 사람의 이지가 있어야 하며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람이 보았을 때 최소한 네가 정상 사람이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실생활에서 육체를 배반하고 양심에 따라 살아야 하며 다시는 이익을 위해 동료와 싸우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격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이끄신 길입니다. 하나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실생활에서도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20대 여자 손님 네 분이 마트에 왔고, 제가 먼저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는 얼른 끼어들어 자기 상품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동료의 모습에 저는 화가 많이 났습니다. 속으로 ‘또 나를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동료가 또 제 손님을 가로채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그럼 저는 돈도 못 벌고 다른 동료들한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때, 저는 저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얼른 묵묵히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방금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는 것을 보고 동료와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는 이득을 위해 다투는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정상 인성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후, 며칠 전에 본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이 주관하며, 인간의 모든 생활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그렇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바뀌고,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료가 제 손님을 빼앗아 가도록 허락하셨다면 동료가 손님을 빼앗아 갈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손님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안배하든 그것은 전부 합당한 것이고, 피조물인 저는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순종할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동료와 싸우고 싶지도, 자신의 이득 때문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인격과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동료가 경쟁하듯 화장품을 소개해도 더는 동료가 밉지 않았으며, 동료와 똑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료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상품을 소개했지만, 결국 여자 손님 네 분은 동료가 소개한 것이 아닌 제가 소개한 상품을 산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좋은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손님이 결국 누구의 상품을 구매하는지는 전부 하나님 주관에 따른 것이지, 상품 소개할 기회를 많이 얻는 것에 좌우하지 않으며, 손님에게 상품 소개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손님이 반드시 그걸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동료와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저한테 물건을 사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고, 가끔 제가 너무 바쁠 때는 다른 동료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점장님 친척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도 특별히 제게 상품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동료들이 물건을 살 때도 제게 골라 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을 통해 저는 직장 생활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고, 양심 있고 이성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으며, 동료와 손님을 빼앗으려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좋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홍수에 휩쓸릴 뻔한 위험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게 되다

저는 다리가 불편한, 나이 많은 자매입니다. 좋은 날씨에도 걸어 다니기가 좀 불편합니다. 하지만 홍수가 곧 저를 삼키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를 기적 같이 그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 고비를 넘게 해주셨습니다.

10m 깊이의 제언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60대 할머니 이야기

2015년 8월의 어느 날,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 난 여느 때처럼 제언으로 가 오리를 집에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쫓아갈 때마다 오리가 도망가서 제언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오리는 주변을 맴돌지 않고 갑자기 제언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기에 이르렀다 난 화도 나고 급한 마음에 막대기를 들고 제언 언저리에서 오리를 쫓았다. 오리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나는 내가 10m가 넘는 제언 옆에 있었단 사실을 망각했고 발을 헛디뎌 ‘풍덩’ 소리와 함께 제언에 빠지고 말았다.생존본능에 막대기를 꽉 잡고 발버둥 쳤다. 물을 얼마나 마셨던지. 문득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당황한 나는 더욱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하지만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제언 바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순간 느껴지는 무력함에 나는 ‘끝났구나,이 제언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두려웠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발은 땅에 닿지 않았고, 손은 의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 제언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또 미친 듯이 벽을 향해 헤엄쳤다. 순간 머리가 물 밖으로 잠깐 나왔고, 어둑해진 하늘과 아무도 없는 주변, 무서울 만큼 가득한 적막함이 나를 에워쌌다. 물속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희망의 끈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내게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무서웠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이젠 정말 끝이구나. 이대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긴박한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깜빡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 좀 구해주세요! 당신만이 저를 구원해주실 수 있나이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너는 이것저것 두려워하지 말라. 온갖 고난을 막론하고 너는 내 앞에 안정할 수 있어야 한다.…너의 두려움을 제거하라. 내가 너의 뒷받침이 되는데 누가 길을 가로막으랴?』 그렇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를 주재하고 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시는데 두려울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무한한 믿음과 힘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오늘 제 목숨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산다면 그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큰 손이 나를 물속에서 꺼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나는 물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때 잔잔하던 수면에 크게 울렁이는 물결이 ‘철퍼덕’소리를 내고 있었다. 긴장되고 무서웠다. 이때 큰 물결이 나를 제언 벽으로 떠밀었고, 나는 그대로 벽을 잡고 올라가 쓰러졌다.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위대한 힘으로 저를 물에서 구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군요!” 물 밖으로 나온 나는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고, 심지어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그제야 내가 물속에 1시간 넘게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겹게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달라 울부짖었고,온 힘을 다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7살짜리 손자가 나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진흙과 잡초투성이에 얼굴에는 구정물이 묻어있으며 알 수 없는 것들이 온몸에 붙어있고 계속 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난 대답할 힘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제언에 빠졌었단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너를 다신 못 봤을 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단다.” 침대에 막 몸을 기대어 누웠을 때 코피가 흘렀고 많은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손자를 불러 옆집(먼 친척 손자가 살고 있다)에 가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시켰다. 잠시 후, 손자 부부가 우리 집으로 와 깜짝 놀라 물었다. “할머니! 어쩌다 제안에 빠지셨어요? 거긴 10m도 넘는 덴데! 어떻게 빠져나오신 거예요?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대체 누가 구해준 거예요!…” 나는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신 거야”. 잠시 후, 의사가 와서 링거를 놓고 약을 줬다. 그제야 나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제언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금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기묘하시고, 당신은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주재이자 당신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763"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이튿날,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모여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보곤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어제 겪은 하나님의 기묘함을 간증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입을 모아 하나님께 찬미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곁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나이다.” 주 자매가 격동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권능을 갖고 있다. 그의 권능은 사람이나 사물, 공간,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세를 행사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만물에게 제공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며 태고부터 변함없는 진리이다! 』 주 자매가 말했다. “하나님께선 유일무이한 권세를 갖고 계시며 세상 만물과 만사를 주재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경험하니 다니엘이 사자 우리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사자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자매의 교제를 듣자 우리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한 여인이 선물을 들고 친정에 오다가 실수로 강에 빠졌는데, 마침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 바로 여인을 구하러 강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인은 보이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60살 먹은 할머니인 내가 겪은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난 수영도 못하고, 제언에 1시간도 넘게 빠져있었으며, 누구 하나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고통스러움에 무기력해지고, 거의 죽어가던 그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나를 바깥으로 밀어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살아 계시는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깨달아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충심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것이다.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을 배우다

저는 올해 22살입니다. “젊어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은 저의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는 제멋대로 떠벌이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몰랐고, 컴퓨터 기술을 좀 안다고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얕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에게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저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도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필요가 없어. 내가 잘하니까 어머니도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졌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었는데, 몇 번 가르쳐 줘도 할 줄 모르니 조금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세요?” 그러고는 속으로 '나이가 들면 정말 둔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빨리 배워 … 어머니가 마우스를 클릭할 줄 모르니 답답한 저는 어머니 손에 쥔 마우스를 빼앗아 클릭했습니다. 어머니는 짜증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나이 드신 형제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저는 형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이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어 못 먹었고, 예배할 때 형제님이 말을 횡설수설하게 해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제님의 말을 가로채고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고 소질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궤사로 가득하고 사람을 경멸하는 눈길이 가득한 것은 연소한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도 젊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은 잘못된 것에도 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순결하고 정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해 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타락 성정을 인식하였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과 인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지난날 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도 할 만한 기능이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는 취할 만한 부분도 있고, 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이 많고,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 원칙이 많고, 언제나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활기가 없고, 너무 융통성이 없는데, 이런 것은 취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듬직하여 성정이 안정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언제나 시종일관한데,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결함이 아니다. … 젊은 형제자매든 연로한 형제자매든, 자신이 해야 할 기능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젊은 형제자매들은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얕보지 말고, 연로한 형제자매들도 독선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냐? 너희가 다 이런 심지(心志)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너희 이 세대의 사람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나이 든 형제자매가 비록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더는 이전처럼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자고자대 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하루, 어머니가 휴대폰 네트워크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뭘 하나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짜증을 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제서야 저는 저의 교만한 성정이 또 흘러나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머니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가 컴퓨터나 휴대폰를 사용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면서 마음도 점차 평온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형제자매나 어르신들과 우정의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