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

2018년 12월 25일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마 사람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를 것이다. 단란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명예와 이익을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며, 재산이 행복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예전에 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 행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런 것들을 가지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동생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 생각했고, 돈을 평생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았다. 결혼 후, 동생은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며 돈을 벌었고, 아이 셋을 모두 대학교에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모두 좋은 직업을 얻었다. 두 딸은 교사가 되었고, 아들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들은 상하이(上海)에서 일하며 몇백 만 원의 월급을 받았고, 조건이 좋은 며느리도 데려왔다. 사돈은 부동산 회사 대표로 억대 자산가였다. 동생은 대도시에 집 두 채를 샀고, 비싼 차도 샀다. 집안에는 최신식 가전제품이 종류별로 자리 잡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만날 때면 우리 집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라고 자랑했으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하나님을 믿게 된 후 동생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 “아이들도 모두 독립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도 얻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있으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마. 돈은 벌어도 끝이 없는 거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어.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안정과 평온을 찾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동생은 거절하며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 벌 수 있을 때 벌어 둬야지. 언니는 돈도 없으면서 무슨 행복한 삶이야! 하나님 믿는 것도 물론 좋지. 늙어서 할 일 없으면 그때 가서 믿을게!”라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동생은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동생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동생은 직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동생은 어디 아픈 데도 없었고 파출부 일을 계속 해왔는데 어떻게 갑자기 그런 심각한 병에 걸리게 된 거지?’ 나는 남편, 그리고 다른 형제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동생은 황달에 피골이 상접했으며, 미간이 깊이 파여 고통스러운 모습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동생이 더 힘들어할까 마음을 다잡고, 동생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좀 어때, 괜찮아졌어?” 우리를 본 동생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얘기했다. “어떻긴 뭐가 어때. 이 큰 병원에 내 배에 있는 물을 빼내 줄 능력이 없대. 뱃속에 장이 너무 아파서 숨도 못 쉬겠어. 너무 힘들어….” 젊은 나이에 큰 병을 앓게 된 동생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동생을 달래 주었다. “별문제 없을 거야.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치료받으면 곧 괜찮아 질 거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조카들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큰돈 마다 않고 상하이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병과 죽음 앞에서 돈은 아무 힘이 없었고, 동생의 목숨을 구할 수도 없었다.

삶의 깨달음,

동생은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그렇게 동생의 삶은 부유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도 샀으며, 허영심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다가온 병마는 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만 아니라 동생의 ‘행복’한 삶마저 깨뜨렸다. 이 일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돈과 명예가 있으면 진정한 행복일 것일까?’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지 너의 원대로 되지 않는다! 근원은 무엇일까? 말하자면 바로 사람 마음에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적 지주는 어떤 것이냐? 사람은 정신적 지주를 어디에 두느냐? 가족의 화목, 결혼의 행복, 또 물질적 향락, 돈, 명리, 지위, 정(情), 사업, 그리고 다음 세대, 다음 세대의 행복 등, 다 그런 일들에 둔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정도로 두고 있는 정신적 지주는 사실, 다 그런 일들밖에 없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자녀, 즉 다음 세대에 걸고, 자녀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과 혼인, 사회에서 차지할 자신의 자리와 명리에 둔다. 그러므로 생겨나는 삶의 방식은 다 같은 것이다. 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고 사탄의 통제하에서 어쩔 수 없이 이름을 위해, 이익을 위해,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사업, 결혼, 가정 그리고 다음 세대와 육체의 향락 등,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분투하고 바쁘게 보내는 것이다. 그런 길이 바른길이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신나게 바쁘게 보내고, 사업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더없이 행복한 가정에, 대단한 가문에, 아무리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들 바른길에 들어설 수 있느냐? 명리를 좇고, 세상을 좇고, 업적을 추구한다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계신다.”라는 이 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렇지? 사람이 무엇을 추구하든, 어떤 길을 가든, 이런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길은 어떠냐? 그것은 바른길이 아니고, 정도(正道)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진실하고, 실질적이었으며, 우리 인간의 실태를 낱낱이 드러내셨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명예와 이익, 사업, 가족, 육체적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허무함과 고통뿐이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아쉬움만 가득 안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살아있을 때 뛰어난 명성을 누렸던 사람이 죽은 후 순식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소위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정당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멀리하는 길을 걷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인생의 바른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이 있겠는가!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탄의 손아귀에 있는 사악한 세계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라야만 진정한 인생의 바른길을 걸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동생과 내가 추구했던 관점도 같았었다. 돈과 명예, 이익, 물질적 즐거움을 누리며,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 수년간 필사적으로 일했지만, 부지중에 병에 걸린 것이다. 정말 생각하기 싫은 과거다. … 병마의 고통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내게 다가왔고, 나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며 인간을 타락시키는 사탄의 실체에 대해 알고,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탄은 ‘돈이 최고다’, ‘출세하여, 가문을 빛내다’라는 이러한 독소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갉아먹어 우리가 남들보다 뛰어난 삶을 살아야만 하고,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고 돌봐주지 않는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돈과 명예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자본을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는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되고, 돈에게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돈과 평생을 다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평생 돈과 명예를 위해 사탄의 계략에 빠졌음에도 계속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했고, 평생 일궈낸 부와 명예는 동생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누가복음 9:25)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일깨움이 무딘 내 영혼을 일깨워 주셨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알려주시어 그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삶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주 관건인데, 사람은 결론적으로 이런 도리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떤 길을 가느냐에 따라 그 일생이 행복할지 슬플지가 결정된다. 사람은 이런 말을 듣고 최종에 ‘인류는 다 이런 법칙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그런 방식을 바꾸지 못했어. 그러면 이 인류 가운데는 주재자, 즉 전설 속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 하나님, 곧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찾는다면 인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인류의 뿌리를 찾는 게 중요한데, 뿌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뿌리를 찾는다면 사람은 아마 새로운 세상을 살지도 몰라. 하지만 그 뿌리를 찾지 못한다면 인류는 변함없이 이런 삶의 방식을 지속하게 될 거야. 그러면 인류의 행복은 여전히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겠구나.’라는 느낌이 있게 될 것이다.』,『진정한 복은 마음이 행복한 것이다. 돈이나 물질, 지위, 명리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와 마음 세계가 행복하고 해방되어 자유로워야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진리, 길, 생명이시고, 모든 올바른 사물의 실제이시자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시고, 우리에게 인생의 바른길을 가르쳐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인생 격언이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사탄의 계략에 빠지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신다. 사탄의 실체는 사악하고,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논리는 진리가 아닌 궤변이다. 우리가 한평생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르며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좌우명으로 삼아 실행하고, 생명의 최고 격언으로 삼아 지킨다면 우린 진정한 삶을 살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평생 하나님을 알기 위해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했던 욥이 떠올랐다. 욥은 풍요로운 재산이 있었지만, 물질적 즐거움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재산을 가져가셨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아들이고 차분하게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는 사람이 가난하건 부유하건, 지위가 높건 낮건, 심지어 인간의 생로병사마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득실이나, 슬픔과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평생 자유롭고 평온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이끄심으로 사탄의 생존 법칙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더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타인의 선망을 받는 것은 모두 공허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이 올바른 인생의 방향인 것이다. 지금 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 말씀의 양육과 공급을 누리며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다하고 있다. 더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애쓰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축복 속에 살아가니 마음은 더없이 환하고 자유롭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었다.

유은지

‘소통하는'법을 배우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행복해진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해란은 집안일을 하면서 쉴 새 없이 ‘온종일 허무한 컴퓨터 게임에만 정신 팔려 집도 돌보지 않고 애도 챙기지 않다니… ’라며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해란이 계속 잔소리를 하자 남편은 자신의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끝없는 잔소리만 해서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해란을 원망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말이 조금씩 오고 가더니 30대의 이 젊은 부부는 점점 심하게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마음속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소리나게 ‘쾅쾅’ 치면서, 의자도 일부러 발로 걷어찼습니다. 곱게 자란 해란이 어찌 이런 울분을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는 분을 삭히지 못해 속으로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날 이딴 식으로 대하지? 내가 만일 반항하지 않고 참는다면 나중에 남편이 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갈 거야!’라고 생각을 하게 되자 더욱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그는 질세라 남편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부부가 심하게 다투고 있을 때 외출했던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둘은 어쩔 수 없이 다툼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다툼이 잠시 잠잠해 졌지만 마음속의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란도 의자에 앉아 울분을 삭히고 있었습니다. 지친 해란은 의자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고 고달플까?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란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괴로워 하나님 앞에 와 기도했는데, 자신이 진리를 깨달아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고 하나님께 찾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란은 아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대화하는 법, 말하는 법,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너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부모의 태도도 변하지 않다 보니 그런 상황을 돌려세울 방법이 없다. 너는 주동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고집 부리지 말고 부모에게 대항하지 말라.” “만약 양쪽이 정상 인성에 따라 살면서 거기에 진리가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가 다 정상 인성의 각도에 서서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의 어려움을 고려해 주며 다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함께 지내고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한다면, 그 둘 사이에는 장벽이 생기지 않겠지?” “훈계할 필요가 없고, 큰소리칠 필요도 없으며,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딱딱한 단어나 말투나 어조를 사용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정상적인 톤으로 정상 사람의 위치와 자리에 서서 얘기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온한 마음과 온화한 태도로 마음속 말을 하며, 네가 깨달은 것과 상대방이 깨달아야 할 것과 네가 마음속으로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놓으며 분명하게 말하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대화를 하는 목적은 작은 방면으로 말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상 인성의 소통이 있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말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방면이다. 큰 방면으로 말하면, 서로의 정형을 알아보면서 장점은 배우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잡아 주고 도와주는 효과를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런 효과가 있으면, 사람과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로 지내게 되지 않겠느냐?』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해란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 그들은 여가 시간이면 늘 함께 산책하면서 얘기 나누기를 좋아했는데, 서로 격려해주기도 하고 일하면서 부딪쳤던 어려움이나 재밌는 일들을 나누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서로 못할 말이 없었고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결혼하여 예쁜 아이까지 낳게 되었는데, 이런 결혼 생활이 당연히 행복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과 복잡한 현실 생활로 인해 연애 시절의 낭만과 열정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그들의 생활은 더 이상 연애 시절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자질구레한 일의 연속이었는데, 아이, 직장, 양가 부모…등,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해란과 남편은 소통이 점점 적어지게 되었고, 각자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풀고 고민을 해결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퇴근하고 나서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편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여러 가지 게임을 하였고 해란은 집안일을 마치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해방받는 이런 생활을 만끽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차츰차츰 소통이 적어지게 되었고 대화거리도 적어지게 되면서 서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심지어 서로가 방해되는 존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해란과 남편은 날이 갈수록 서로가 상대의 마음에 들기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게 되어 자신이 하던 일을 재쳐놓고 예전처럼 지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마주했을 때는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몰랐습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해란과 남편은 갈수록 서먹서먹해졌고 다툼도 날로 잦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늘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로 다투었는데, 매번 다투고 나면 그들도 매우 후회했지만 다시 같은 상황이 임하게 되면 또 어쩔 수 없이 다투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 사이가 너무 멀어져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들 사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부부는 이로 인해 파경을 맞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서로가 맞지 않아 이혼한 부부가 어디 한둘입니까? 사실 그렇게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 속의 이런 작은 갈등으로 인해 감정이 격화되어 서로가 자신을 내려 놓지 않으려 하고 상대방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려고 하지 않기에 결국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해란은 자신과 남편이 평소에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였기 때문에 작은 갈등이 생겼고, 또 이로 인해 서로 다투다 보니 나중엔 장기적인 냉전 상태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를 것을 강요하다 보니 예전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다툼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그들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고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이 가정을 위한다면 더 이상 남편과 다투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편과 대화하고 마음속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해란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란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신의 마음 상태를 조절하고 나서 방에 돌아와 남편과 속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엔 예전처럼 조급해 하지 않았고 마음은 차분했습니다. 얘기를 나눌 때에 그는 되도록 남편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속마음도 남편에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실행하니 의외로 남편도 예전처럼 발끈하지 않았고 자상하게 “당신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하는지 내가 왜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그들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해결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이해 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해와 믿음, 배려가 있었기에 서로 간의 갈등과 오해는 한순간에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효과를 보게 될 줄은 해란 자신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는 문제의 근원을 찾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인해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에는 남편과의 갈등도 해결하고 정상적인 관계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해란은 남편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게 되었는데, 늘 함께 얘기도 나누고 마음속 말도 하면서 일에 부딪쳐도 차분하게 상의했습니다. 게다가 해란은 실행 과정에서 자신의 패괘성정도 끊임없이 정결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실행하고 나면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더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도 끊임없이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발표하신 이런 말씀이 패괘된 인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의 패역과 부족함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 할 때, 점차 정상 인성과 이지도 회복되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평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바람피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는 한평생 부부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가정이 행복하다면 어떤 고생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하자 깨지는 가정을 차마 볼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되었습니다.

맘 편히 일하는 비결 — 다른 사람에게 틈을 남겨라

어떤 사람들은 맘 편히 일하고 싶으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맘이 안 놓이고, 걱정이 되어 혼자 감당하려 합니다. 그리하여 일에 쫓기며 스트레스까지 받게 되는데 과연 이렇게 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크리스천이 죽음의 문턱에서 치유받고 살아난 간증

더할 나위 없이 기쁜 하나님과의 재회 나는 올해 78살이다. 두통과 당뇨병을 달고 살았던 나는 2005년 병마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그 후 하나님의 보호로 병세가 다소 완화되었다. 2년 후, 한 친척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내게 전해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의 재림이시며 이번에 오셔서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하시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살아생전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니!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교회 생활과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병이 임하자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속셈이 드러났다 1월의 어느 날, 나는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 시가를 듣다가 갑자기 호흡이 멎는듯하고 가슴이 답답한 게 너무 아팠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내 모습을 본 남편이 서둘러 딸과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데려갔다. 병원에 가서 종합 검사를 받고 나오자 주치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병세가 심각하세요. 심장에 문제가 좀 있어요. 언제 쓰러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당장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셔야 해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내가 왜 이런 심각한 병을 앓게 된 거지? 게다가 목숨이 위험하다니? 예수님를 믿을 때와 마찬가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나는 충심을 다해 본분을 이행해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지켜주지 않으시는 거지? 곧 죽는다면 나의 신앙생활도 끝이 나고 전례 없던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미경도 볼 수 없고, 딸이나 남편과 같이 살 수도 없는게 아닌가? 생각할수록 슬픔이 차올라 쓸쓸한 마음이 들었고, 고통 속에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제가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분명 제가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요! 부디 저를 이끌어주소서.” 기도 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너희 모두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 때문도 아니다. 현재,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편안함이나 일시적인 향유를 위해서라면, 설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해 더 이상 무언가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그 ‘사랑’은 불순한 사랑이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상 유지나 가능할 뿐, 영원불변할 수 없고 내면에 깊이 뿌리내릴 수도 없다. 그러한 사랑은 피고 시든 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한 송이 꽃과 같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한 번 사랑한 후에는 누군가 너를 앞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내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자는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온 자이기에 정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유래이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믿었던 이유가 바로 평안과 축복을 얻기 위해서임을 보여주셨다. 생각해보면 나는 병을 고치려는 마음에 예수를 믿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 주신다는 말에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었다. 병마로 생사를 오가고, 내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 땐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이유를 따지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사역했으니 하나님은 내게 위험한 병이 아닌 축복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하나님을 믿으며 본분을 이행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도,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기 위한 것도 아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개인적인 속셈이었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것도 하나님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런 식의 믿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충성심이 가득해 보이지만 사실의 시험대에 오르면 무너지고, 비바람이 불어오면 넘어지고 만다. 잠깐 아름답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예쁜 꽃처럼 말이다. 예전에 형제자매가 교제해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은혜시대처럼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이 아니라 사람을 형벌하시고, 심판하시며 시련 연단으로 정결케 하시어 타락한 성품이 정결케 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마음이 탁 트인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에 여러 가지 불순물이 섞여 있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오늘날 나에게 병이 임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속셈 때문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시어 이런 시련을 통해 나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잘못된 믿음을 바로잡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과 순종도 없으며 나의 분량은 가여울 정도로 작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자책감과 하나님을 향한 죄책감으로 몸 둘 바를 몰랐다. 다가오는 죽음,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견고해지다 입원 후, 나는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도 떠올랐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병마와 싸우려니 겁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를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만이 제가 의지할 곳입니다. 부디 제게 믿음을 주시어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하소서.” 십여 일이 지난 후에도 나는 처음 병원에 왔을 때처럼 아팠고, 쇼크가 온 적도 있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걸 본 사위는 나를 큰 병원으로 옮겨갔다. 큰 병원에 있는 전문의는 그 전 병원에서 가져온 진료 의뢰서를 보더니 나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고, 산소호흡기까지 연결했다. 나는 누군가 “이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곧 저세상으로 갈 사람들이래. 그래서 여긴 ‘단명방’이라고도 불린데”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의사는 왜 나를 이 방에 입원시킨 거지? 내가 곧 죽을 때가 돼서 나를 여기에 입원시킨 건가? 이렇게 생각하자 죽음이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와 나를 옥죄는 듯했고,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날 오후 한 남자 환자가 병실에 실려 들어왔다가 한 시간 만에 사망해 다시 병실에서 실려 나갔다. 그 환자가 누워있던 침대를 밖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다음 순서는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너무 두려웠고... 나는 이런 내 마음을 다잡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드렸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욥이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 많은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게 된 것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가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스러운 간증이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게 된 것 또한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도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방의 백성들’이 내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나의 엄한 말로 두드려 맞기도 하고 안위를 얻기도 하며 구원받는 사람도 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던가?』『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을 얻었지만 얻은 것이 꼭 복만은 아니다. …마치 욥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복도 받고 재앙을 당한 것과도 같다.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복이 있는 일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을 주었다. 역대의 신자들이 하나님의 여러 시련 연단에 직면하고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의인으로 유명한 욥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에게 시험당할 때 죽을 만큼이나 고통스러웠지만 자신을 저주할지언정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욥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과 경외심을 보였고, 하나님께서 현현하시어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과 사랑이 한 단계 격상되었다. 나는 역대의 유명한 신자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오늘 내게 역사하시는 것이 바로 내게 믿음을 주시어 이 시련에서 역대의 유명한 신자들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권세를 느끼게 해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다. 성경에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시체에서 썩은 냄새가 났는데도 예수의 말씀 한 마디에 부활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시다. 내 목숨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목숨을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다 병원에 가만히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릴 수는 없다는 마음에 가족들은 병원에서 인턴을 하는 친척에게 부탁해서 그 병원 교수를 모셔왔고, 그 의사는 종합 검진을 시행했다. 회진 후 의사는 당뇨로 심부전증 증상이 있고, 혈관 세 개가 막혔으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뇨병 때문에 수술 후 상처가 잘 아물지는 모른다며 의사도 병세가 반드시 호전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나를 심장병 전문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곳의 의사는 전 병원 의사와 같은 진단을 내리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술 위험이 크고, 당뇨병으로 인한 심장병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수술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허벅지에서 경맥을 뽑아 심맥에 다리를 놔주는 건데 수술이 실패하면 전신 마비가 올 수 있고, 수술대에 올라서 살아 내려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해보고 어떻게 할지 알려달라고 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딸과 사위는 망설이며 돈은 돈대로 쓰고, 사람은 사람대로 잃을까 걱정했다. 나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남편은 우리의 목숨이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의사에게 말했다. “수술을 시작한 이상 목숨은 병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제가 책임지죠.” 남편은 ‘동의서’에 서명했고, 의사도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 시작 전 난 수술대에 누워 의사가 했던 말을 생각했고, 걱정과 두려움이 다시 스멀스멀 떠올랐다. 정말 식물인간이 되면 어떡하지? 그럼 산 송장이 아니던가? 남편은 내가 돌봐줘야 하는데 내가 남편의 짐이 되는 건 아닐까? 딸들이 있지만 다 가정을 이루었고 제각기 다른 가정이 있는데 누가 장기적으로 시중을 들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나는 죽을 생각만 해야 하는데... 그리고 수술대에서 쓸쓸하게 죽어갈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또 잃었음을 깨닫고 서둘러 내 마음을 다잡아주시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온 인류 중에, 전능자의 눈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은 자가 누구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누구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더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이더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외쳤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강자가 되고 싶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였지만, 죽음의 날이 살며시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였는지 모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넘어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험 속에서 사로잡혀 갔는지 모른다. 』 맞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을 모두 주관 하시는 분이다. 온 인류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내 운명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증거할 마음은 가졌지만, 실제 시험에 빠지자 나는 내 목숨과 앞날을 걱정했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식물인간이 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 내 목숨은 하나님께 달렸으므로 나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내 목숨과 앞날을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렇게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이제 곧 수술이 시작됩니다. 수술 결과가 하나님께 달렸음을 믿나이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뒤 나는 마취됐고, 기억나는 게 없다. 수술 후 나는 보호실로 옮겨졌다. 내가 깨어났을 땐 이미 이틀이 지난 오전이었다.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고 끙끙 앓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못했다. 상처에서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건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시고, 보호해주셔서임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오후가 되자 주치의가 내 병상 앞으로 와 물었다. “환자분, 상처가 아프진 않으세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내가 대답했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불편한 데는 없어요.” 3일 후, 회복세가 빠른 날 본 의사는 나를 일반 병실로 옮겨주었다. 당뇨병이 없는 환자도 수술하고 나면 4~5일은 지나야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는데 나는 3일 만에 옮겨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하나님의 위대함이며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이다! 일반 병실에 있을 때 남편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곤 했다. 나도 조용히 하나님께서 내 몸에서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실제 존재함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내가 생사를 오가긴 했지만, 하나님께선 항상 내 곁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내가 나약해지고 자신감을 잃을 때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이끌어주시고 내게 힘을 주시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내가 겁내지 않도록 해주셨다. 내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내 고통을 덜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내게 보여주셨다. 오늘날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시진 않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힘이 표적과 기사보다 위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한 진리이며 사람의 생명도 하나님에게 달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나와 같은 수술을 한 환자는 움직이지 못할 때 나는 남편이 부축해주면 밖에 나가서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모습을 본 의사는 깜짝 놀랐다. 나는 이런 기적을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보름 후 퇴원할 때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과 똑같은 병을 앓고 계신 분이 병원에 일곱 분 계세요. 그중에서 환자분만 당뇨병으로 인한 발병이어서 다른 분보다 더 심각했죠. 그런데 제일 먼저 회복되시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심장에 종양이 하나 있어서 굉장히 위험해요. 한 달 후 재진 오세요. 그때 봐서 종양이 계속 커지고 있으면 2차 수술을 해야 합니다.” 의사의 말을 들은 나는 이렇게 위험한 병마에 휩싸였는데도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 두지 않으셨고, 나도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도 더 커졌다고 생각했고, 내 병을 하나님께 맡기어 그분께서 결정하시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 의사는 내게 약을 처방해주었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병원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이제 더는 병마로 크게 고통받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자 나섰다. 매일 형제자매와 함께 하나님을 찬미했고 어느샌가 내가 환자라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한 달 후, 병원에 가서 재진을 받으니 내 모든 수치가 정상이었고, 심장에 있던 종양도 사라졌다. 생명의 세례를 받은 나, 더 굳건한 믿음의 길을 걷게 되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길 양옆에 줄지어 늘어선 백양나무를 보게 되었다. 저 백양나무들도 모두 하나님의 주재 속에서 봄이면 왔다가 겨울이면 가고 비바람과 눈을 맞으며 더 강인해지고 있었다. 내가 이번에 걸렸던 병도 생명의 세례를 받은 것과 같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순결하게 해주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더욱 커졌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능가할 수 없다. 그의 생명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으며, 눈부신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천지가 크게 변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만물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그대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 생존의 기원이고, 만물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기원했고, 하늘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으며, 땅의 생존 역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기원한 것이다. 생기를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주재를 넘어설 수 없고, 활력을 갖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권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의 권세와 위력에 나는 감탄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만물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규율에 따라 한 세대 한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내게 믿음과 담력을 주시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며 병마에 고통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내 병세는 기적처럼 호전되었다. 나는 앞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본분을 다해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보답할 것이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아멘!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진실합니다

2012년 7월 21일 밤, 우리가 사는 지역에 보기 드문 특대 수재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의 진실한 경력과 본 것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언니네 사료 공장을 지키게 되었는데 밤에 큰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우리 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 3시 45분에 형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저수지 물을 방류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는 몽땅 잠기게 되니 빨리 도망가요!” 그때 저는 멍해져서 마음속으로 ‘하나님! 하나님!’ 하고 부르기만 할 뿐 하나님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전동자전거, mp3와 메모리카드를 챙기기에 급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저는 사료실에 가서 전동자전거를 끌고 나왔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서 하나님 말씀 책을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아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고속도로 앞까지 타고 왔을 때 비가 하도 많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아 저는 큰물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조각에 부딪쳐 전동자전거와 함께 물속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물에 떠내려가도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만약 살아남게 하신다면 이후부터 본분을 잘 하겠습니다.’ 그때 저의 한쪽 신발은 이미 물에 떠내려갔고, 저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고속도로 근처에 이르러 보니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주변이 철망으로 둘러싸여있었던 것입니다. 지나갈 수가 없으니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른 한쪽 신발마저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물은 이미 저의 허벅지까지 차올랐습니다. 저는 되돌아 가려고 세 번째 시도를 했고 속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때 다른 돼지농장에서 한집 식구 세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그들과 같이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갈 준비를 했습니다. 이때 저의 남편도 거기에 도착하여 도구로 철망을 끊고 있었습니다. 저는 맨 먼저 맨발로 철망을 넘어 고속도로에 올라갔습니다. 당시에 고속도로 남쪽은 물굽이에 둘러싸인 지역인데 북쪽으로 물이 흘렀고 북쪽은 큰길인데 남쪽으로 물이 흐르면서 우리를 중간에 끼워넣었기 때문에,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바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오르고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저는 다리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거리에 강철공장이 있었는데 강철공장 담장 밖으로부터 2m 남짓한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우리가 살던 곳이었습니다. 담장 안의 물은 1m 정도로 깊어 공장의 채색 강철 기와집도 둥둥 떠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구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 제가 돈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제 고집대로 행한 탓입니다. 잘못했습니다.” 만약 물이 북쪽으로부터 덮쳐 왔다면 그날 새벽 2시쯤에 우리는 떠내려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은 남쪽 담벽 모퉁이를 뚫고 내려가 아래에 위치한 돼지농장이 물에 잠긴 것입니다. 이때 저는 진실로 하나님의 전능을 보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앞에서는 재난도 비켜 간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고속도로 터널에서 3시간 남짓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 봉투를 열어보았는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가 하나도 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에 전동자전거도 물에 넘어지고 전동자전거 충전기도 젖고 다른 물건도 다 젖었지만 저의 mp3와 메모리카드만은 전혀 손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료공장으로 돌아왔을 때 본 상황은 더욱더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료공장 마당에는 간밤에 내렸던 빗물만 고여있었을 뿐 물이 얼마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앞쪽 옥수수 밭도 잠기고 뒷쪽 옥수수 밭도 더 깊이 잠겼지만 사료공장에는 물이 얼마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이번 수재를 통해 저의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이 만능이라고 하지만 재난이 임할 때는 돈이 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진정한 주님이십니다. 저는 더 이상 돈을 추구하지 않고 사료공장을 그만두고 복음 사역에 뛰어들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올케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저의 경력을 듣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이전에 저의 어머니와 올케는 줄곧 제가 하나님 믿는 것을 핍박해 왔고 제가 4년 동안이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믿지도 않았었습니다. 이때 저는 더욱 하나님의 전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에는 저를 핍박했지만 지금은 핍박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복음을 전할 때 저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고 감히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경력을 통해 더 이상 움츠리지 않고 있는 힘껏 저의 경력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재난과 시련 속에서 제가 하나님의 구원과 가장 진실한 사랑을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하나님을 간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8월 11일 北京市 穩重

내 몸이 아픈 이유는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나는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나는 독창, 종양, 치질로 고통받았고 커서는 시도 때도 없이 두통에 시달렸다. 게다가 겨울엔 감기를, 여름엔 열사병에 시달렸다. 몸도 약해서 조금만 고된 일을 하면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저혈당으로 어지럼증과 두통은 달고 살았다. 여러 가지 병들이 끊이지 않았다. 몸이 허약하다 보니 부모님과 형제들은 혹여 내가 힘들거나 추울까 봐 노심초사했다. 결혼 후 남편 역시 나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폈다. 힘든 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가족들의 사랑에 눈물이 흐르곤 했다. 하지만 병마가 가져온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고, 가족들이 날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을 찾아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일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기는커녕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온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와 몸을 일으키기도,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목도 뻐근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은 의사를 불러왔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했고, 내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다. 결국, 의사는 “별다른 이상이 없습니다. 며칠 지나면 저절로 호전될 것입니다”라는 말만 남겼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난 계속 침대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병마에 시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난 계속해서 생각하고 스스로 물었다.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고통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통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통 속에 신음하고 괴로움이 날 감쌌을 때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다. “육체의 고통과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면서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되어 질병도, 고통도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과 비참함, 인간 세상에서의 생존이 불가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타락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이런 고통은 사탄이 더한 것이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려면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런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런 고통들을 다 체험하면 맨 마지막에 사람의 이런 고통들을 면해 준다. 사람을 대신해 모든 고통을 받은 후 하나님은 힘 있는 증거를 갖게 되어 마지막에 인류의 훗날의 아름다운 처소를 바꿔 오게 되는데, 바로 사람의 생로병사를 면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의의 있지 않느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날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죽어가던 내 영혼에 밝은 빛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셨을 땐 인간이 이렇게 고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켜 인간이 사탄의 어두운 권세와 타락한 육신에서 살게 되면서 인간 세상에 고통과 번뇌, 그리고 생로병사가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인간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위해 희생하시고 친히 인간을 구원하러 인간 세상에 오셨다. 2천년 전, 자비로우신 구세주 예수께서는 인간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시고자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오늘날 다시 성육신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병마와 고통을 없애주시려 기꺼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고 진리가 인간을 이끌고, 구원해주리라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직접 사탄과 싸우기까지 하셨다. 이 모든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을 다시 구원해 인간이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벗어나 더는 고통과 피해를 보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인간을 고통과 번뇌가 없는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인간의 병과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게 되었고, 어머니처럼 진실한 사랑과 연민을 베푸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께 구원받을 것이란 희망도 품게 되었다! 그 후 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으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키워갔다. 고통이 찾아올 때면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기도드리고 나의 고통과 나약함을 호소하며 병마를 이길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주실 것을 간절히 부탁드렸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다. “질병이 임함은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 속에 꼭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비록 육체가 고통을 좀 받을지라도 사탄의 생각을 갖지 말라. 질병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찬미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누리게 되니, 질병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누차 찾고 구하며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이 빛 비추어 깨우쳐 줄 것이다. 욥의 믿음이 어떠했는가?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 사람에게 두려워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바로 사탄의 우롱인데, 사탄은 우리가 믿음의 다리를 건너 하나님 안에 들어갈까 봐 두려워한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해 늘 생각을 주기에 늘 하나님의 빛 비춤과 깨우침을 구하고, 늘 하나님을 의지하여 우리 안의 사탄 독소를 정결케 하며, 영 안에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이 권세 잡게 하고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믿음과 힘을 다시금 불어넣어 주셨다.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내 병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숨이 붙어있는 한 하나님께선 날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자 진정제를 맞은 것처럼 평온해지며 더 이상 병으로 인해 일찍 죽게 될까 봐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께 자주 기도드리고, 말씀을 읽고,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욥의 믿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의지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이 인간의 육신을 통해 괴롭히니 육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게 되면 사탄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나는 병든 몸을 하나님께 맡겼다. 병든 육신에서 살지 않고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의사이다! 병 안에서 살면 병뿐이고 영 안에서 살면 병이 없다. 너에게 한 숨만 붙어 있어도 하나님은 너를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라는 말씀으로 살았다.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다 보니 병은 어느샌가 완치되어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했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난 하나님 말씀의 권병과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신 의사셨다! 이제 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앞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얻은 생명은 광명 속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건강하게 하나님의 앞에서 사는 것이다! 날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린다!

「남성 우월주의」와 작별하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따르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만한 저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저도 가족도 이건 기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기묘함과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증거하기에 제가 할수 있는 표현은 너무 부족하나 저의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11살 때, 어머니는 우리 4남매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은 마을에서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마누라도 먹여 살리지 못한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성실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밥을 먹다가 갑자기 원래 건강했던 이가 모두 빠져 버렸고 정신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 4남매는 이렇게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남몰래 절대 아버지처럼 약해지지 않을 거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꼭 아내 단속을 잘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를 꽉 잡아서 절대 저를 배신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이런 가정환경으로 인해 저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했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그후, 저는 현재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온화하고 현명하며 성실한 사람으로 저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잘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일 때문인지 저는 집에서 최대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고 항상 아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했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내는 상을 차려 제 앞으로 가져왔습니다. 아내는 제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만함은 더욱 커졌고 툭하면 아내에게 화를 냈습니다. 하루는, 제 아내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전화가 왔고, 제가 받자마자 전화는 또 끊겼습니다. 저는 문득 아내가 저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얼른 화를 억누르며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두 번 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도대체 누구야? 당신한테 왜 전화했어?”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당신, 왜 이렇게 속이 좁아요? 왜 근거도 없이 사람을 의심하고 그래요?” 이런 아내의 대답에 저는 화가 솟구쳤고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노가 거세진 저는 아내를 때리고야 말았고, 화나고 억울한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틀이 지난 후에야 이동 통신사에서 온 전화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후회가 됐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마침 제가 친구 집에 마작을 두러 갔을 때, 친척이 저희 집에 오자 아내는 저를 부르러 친구 집에 왔습니다.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했을 때, 저는 마작에 정신이 팔려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제 친구들에게 인사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체면을 살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화를 꾹 참으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친척이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아까 내 친구들 보고도 왜 인사 안 했어? 내 체면이 얼마나 깍인 지 알기나 해? 당신은 예의란 것도 몰라? …” 저는 친척이 보는 앞에서 아내에게 듣기 거북한 말을 퍼부어댔고, 친척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한마디도 반박 하지 않았습니다. 말을 끝내고 화가 좀 사그라지자 이성을 되찾은 저는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제게 모든 걸 맞춰줬는데, 저는 이렇게 사소한 일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니…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혹은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항상 술로 해소했고, 술에 취하면 아내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이런 행동이 아내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제 자신만 통쾌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도 자책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서 이런 행동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집에서 자신의 위신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저희는 부부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화합과 친근함이 조금씩 사라졌고, 관계도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는 저를 무서워했고, 제 앞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조심했으며, 제 눈치를 보며 행동했습니다. 혹시나 뭔가 제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해서 저한테 한바탕 욕을 먹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내는 답답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제게 몇 번 이혼을 요구했지만, 아이 때문에 번번이 그냥 참았습니다. 하지만 교만 자대한 저는 아내의 인내와 양보에도 제 행동을 자제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며, 어떤 일이든 여자에게 결정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남성 우월주의를 실천했고 ‘남자’의 권위를 실천했습니다. 우리 집은 저의 ‘독재 정치의 무대’로 변했고, 가족들은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은 수시로 제게 성격 좀 고치라고 권했지만, 저는 남자의 위엄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엄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은 이렇게 겨우 유지하면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살얼음판과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점이 괴로웠습니다. 마음속은 아내에게 진 빚으로 무거웠지만, 저의 이런 포악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때, 저도 가끔 교회에 갔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써 제 자신을 바꾸고 싶었지만, 여전히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2016년 10월 5일, 이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둘째 누나와 누나 친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저와 아내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제 상황을 형제자매님께 말했습니다. 형제 몇 분은 과거에 자신들의 비슷한 경험들을 얘기해주면서 그것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주면서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주었습니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자기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어떤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 뒤에서 내든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타락된 성품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본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과 형제자매님의 경험을 통해 제가 자주 화를 내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교만 자대한 사탄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다’,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다’라는 사탄의 사상과 생각에 영향을 받아 남자는 집안의 주인이기 때문에 반드시 집안의 권력을 쥐고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며, 아내를 잘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의 위엄을 잃게 되는데 그건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엄마가 다른 남자를 따라간 것을 보고 저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나약함이 초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아버지가 가던 길을 가서 다른 사람의 비웃음을 당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더욱 교만 자대하게 된 것입니다.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저의 이미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저는 아내의 모든 것을 통제했고 아내가 제 말을 듣도록 압박했습니다. 아내에 대하여 조금도 포용하지 않았고 인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어 저의 위엄을 드러냈습니다. 가족들과 생활한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니, 뭐든 저 혼자 결정하려고 했고 아내에게는 오직 명령하고 그걸 따르라고 강요하면서 항상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내를 이해하거나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스스로 남자의 ‘위엄’을 과시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내의 기분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저의 이런 통제와 관리로 아내가 받은 것은 오직 고통뿐입니다. 이 때문에 아내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우리 가정은 파멸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제야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이 사람 같지 않았고 전부 다 사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산속의 야수같이 야만적이며, 짐승의 왕같이 난폭한데, 어디 사람다운 모양이 있느냐?』 생각해보니 저는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아내에게 화내는 것으로 저의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야수와 똑같이 야만적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혀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저는 다시는 이래선 안 되고, 더는 교만한 사탄의 본성처럼 살아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앞으로 단호하게 육체를 배신하고 진리를 실천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타락된 저는 여전히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타락한 성품이 무심결에 드러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아내와 함께 예배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꽤 먼데, 아내가 시간이 촉박하니 아침을 대충 먹자고 말하고는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식탁 위에 차려진 것은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음식 뿐이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고 저는 그걸 참지 못하고 표출하고 말았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걸 먹으라고? 왜 밥을 새로 안 했어?” 아내는 저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습니다. 주방에 가 보니 양배추 반쪽이 있길래 혼자 그걸 볶아 먹었습니다. 당시 분위기가 매우 어색했고 제 마음도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왜 또 못 참은 거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로 불같이 화를 내다니 난 정말 심하게 타락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의 모든 결정권은 제게 있었고 지금껏 한 번도 고개를 숙여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사과하면 제 꼴이 우스워질 거 같아 진짜 사과하는 건 무리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제 마음속은 이렇게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또 저도 모르게 아내에게 화내고 말았습니다. 저도 제가 잘못했다는 거 압니다. 진리를 행하고 아내에게 사과하고 싶지만 차마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디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십시오.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올리자 하나님 말씀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일이 닥치면 똑같이 전쟁이 있다. 괴롭고, 고통스럽고, 연약해지고, 심지어 품위나 인격이 다 도전을 받는다. 사람의 허영심도 만족을 얻지 못한 데다가 책망과 훈계, 혹은 사람들의 무시, 체면이나 품위, 인격을 잃게 되는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속에서 싸우면서 기도한다. 일단 기도를 하면 마음이 강해지고 진리를 찾고 진리를 실행하려는 힘이 커지는데, 그 힘이 매우 커져서 그 일들을 다 간파하게 된다. ‘난 체면도, 지위도, 허영심도 다 갖지 않을 거야! 이번엔 반드시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할지라도, 오해받을지라도 이번 만큼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거야! 난 하나님을 흡족케 하고, 진리 실행하는 것을 선택할 거야! 이 일에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마음 아프지 않게 해 드릴 거야.’라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체면, 허영심, 사심, 자신의 속셈, 야심을 모두 포기한 다음, 하나님 편에, 진리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게 된다. 그렇게 다 실행하고 나면 마음이 매우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하나님의 축복을 느끼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진리를 실행하여 심령이 만족을 얻고 자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살았고 사람 모양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탄의 패괴 성정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탄의 패괴 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서고, 피조물로서 서야 할 간증을 서고, 서야 할 입장에 섰으니 마음은 든든하고 마음에 누림이 있고 행복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결과이다.』 이때,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영적 싸움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려면 반드시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을 버려야 하며, 그래야만 사탄에 의해 타락된 성품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사탄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용기와 힘을 얻었고 제 자존심을 버리고 진리를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예배에 가는 길에, 저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내 진심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참지 못하고 당신한테 화를 냈어. 전부 내 잘못이야. 예배 가는 게 진짜 본연의 일이니 예배 시간에 늦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밥을 대충 먹는 것도 맞는 거야. 지금까지 집에서 나 혼자 모든 걸 결정했고, 항상 당신한테 내 말만 듣게 하고 뭐든지 내 마음에 맞게 하길 요구했어.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신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고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아주지 못했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이 말을 하고 나니,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게 그다지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습니다. 제 말을 들은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를 쳐다보면서 잔뜩 흥분하며 말했습니다. “어머,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야겠네요. 당신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당신이 하나님을 안 믿었다면 이런 변화가 있을 리 없잖아요!” 아내의 말을 듣고 저도 감동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저를 바꾸었고 저의 사탄 성품을 알게 하였습니다.하나님 말씀이 제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제가 진리를 행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런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켜 살아가려면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 집에서 사람이 주인이었다면, 앞으로는 그걸 바꿔야 합니다. 반드시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부, 부자와 모녀간에도 모두 반드시 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교통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의견 차이가 있든 항상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교통하면서 해결해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리스도가 위대하다고 믿고 집에서 그리스도 말씀이, 하나님 말씀이 권세를 잡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당신 삶에 반영시키며 살아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 가정에서 대체 누가 권세를 잡는단 말입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 남편(아내)이 권세를 잡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의 자녀나 부모가 잡습니까? 당신은 감히 ‘그리스도는 우리 집의 주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당신 남편(아내), 자녀, 부모님에게 ‘우리 집은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집에서 권세를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든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해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감히 이걸 행할 수 있습니까? 만일 진짜 이렇게 행한다면 육체가 주인이 되고 권세를 잡는 생활은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이 교통을 본 후,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저는 제 자신을 한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해, 집안의 모든 결정을 저 혼자 하고, 가족들에게 제 말을 들으라고 강요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는 사탄의 타락 성품이 권세를 잡은 것입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둘 다 하나님을 믿고 있기에, 집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를 잡습니다. 진리에 맞는 말을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며, 무엇이든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생활합니다. 아내에게도 발언권을 주었습니다. 아내 말이 맞고 그것이 진리에 부합한다면 저도 그것을 따릅니다. 우리 집에 ‘독재 정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행할 때, 저의 가정은 훨씬 화목해졌고 부부 사이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비록 일이 생기면 아직도 화를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바로 자신의 교만한 성품이 발작하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제가 육체를 배신하고 마음대로 화를 내지 않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진리를 행하고 육체를 배반하면 마음속은 기쁘고 후련합니다. 가끔 저는 가장의 자리에서 가족을 통제하고 아내에게 제 말을 듣게 합니다. 아내도 예전처럼 저를 무서워하지 않고 제 통제에 따라줍니다. 또한 저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도 직접 지적하기도 하고 제가 교만 자대하게 가족에게 명령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바로 제 문제를 깨닫고 얼른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주방 일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예배 갔다가 늦게 오면 자주 주방에 가서 밥을 하기도 하고 집안일도 조금 도와줍니다. 아내는 저의 변화를 보고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변 친구들도 제게 예전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졌다며 다들 놀라면서 무슨 건강식품을 먹었냐고 묻기도 합니다. 저는 속으로 기뻐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아내는 교회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본분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면서도 어떤 일이든 의식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함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진심으로 교통합니다. 이렇게 우리 집은 갈수록 더 화목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사탄에게 깊이 타락한 저를 변하게 만들었고 제가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셨기에 이렇게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기독교인의 이야기 —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

게임은 보기에는 그저 시간을 보내는 심심풀이 오락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덫에 걸리면 점점 쇠퇴하고 타락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