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왜 우리는 평범이 아닌 뛰어남을 선택하려 하는가

2019년 02월 12일

한 철학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 여학생은 성적이 좋아 선생님의 애제자였고, 같은 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롤모델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이 여학생은 자신감을 얻었으며 자존감도 높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이 학생은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양 떼 속의 낙타에 익숙해져 있던 이 학생은 낙타 무리 속의 양이 되기 싫었던 것입니다. 처음의 자신감은 자괴감으로 바뀌었고 심지어는 하버드에 간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했던 나날을 그리워만 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더 외로웠고 매일 고독을 떨쳐낼 수 없어 할 수 없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학생이 박수갈채를 받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고 우울해하다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여학생의 상황에 탄식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부지런하고 공부도 곧잘 하며 인품과 성적 모두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사여구가 제 곁을 따라다녔고 선생님들은 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집중적으로 키워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며 공부의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칭찬과 박수 속에서 자라왔으니 그야말로 ‘꽃길’을 걸은 셈입니다.

졸업 후 저는 명성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지사로 발령이 났고, 지사에 있는 신입 사원 중 저는 가장 우수했습니다. 업무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업무 실적으로 직속 상사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은 제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고 매일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을 살며 저는 하루하루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아 가치를 높혔습니다. 그 후 본사에서는 지사별로 우수 사원 3명을 선발해 본사에서 6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으라는 지시을 내렸습니다. 시험에 통과하면 계속 본사에 남아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수 사원으로 선발된 사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본사로 향했습니다. 제 능력이라면 본사에서도 빠른 시간 내에 두각을 나타내 사람들이 저를 높이 평가하고 우러러보리라 생각했습니다. 도착해서야 저는 이곳에 인재가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수준, 스펙, 경험을 막론하고 두뇌와 학벌에서도 저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들 가운데 1등이 아니었으며 어딜 가나 더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남들이 우러러보는 것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에 저는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싫었지만 평범하게 사는 건 더더욱 싫었습니다. 저는 제 능력과 재능으로 언젠가 모든 이를 뛰어넘어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저기 자료를 찾고, 끊임없이 배우며 업무 능력을 길렀습니다. 또한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잊은 채 업무에만 매달렸고, 하루빨리 실적을 올려 회사 임원진과 모든 동료가 저를 우러러보고 또 제가 다크호스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저는 차가워졌고 심지어 동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그었으며 적의로 가득 차 모든 사람이 저의 라이벌이자 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지만 저의 노력은 제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전 여전히 팀 내에서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을 직면하자 전례 없던 좌절감에 휩싸이게 된 저는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때도 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쳤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동료들이 항상 저를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삼으며 쟤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나 본사를 뛰쳐나가 제가 밝게 빛났던 지사로 돌아 가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계속 모욕당하는 건 정말 견딜 수 없었지만 이렇게 밀려나듯이 떠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본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제겐 천근만근 같아 엄청난 고통에 숨조차 못 쉴 정도였으며, 그저 하루하루 아등바등 버텨나갔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드디어 고통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제가 고통받았던 원인이 바로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남에게 뒤처지기 싫어하고 사람들 속에서 최고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은 저희에게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등 말도 안 되는 가치관을 주입시켜 저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지 못하게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또 유명인의 명인 명작을 이용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남들보다 뛰어나라’,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 등의 사탄 독소를 우리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이같이 그릇된 가치관의 영향을 받다 보니 저는 점점 교만해졌고, 안하무인으로 변해갔으며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면서 항상 최고만을 고집하고 1등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명인이나 위대한 사람의 박수갈채 속에서 살아가며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때면 그런 삶을 더욱 갈망하고 그렇게 살아야만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고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생긴 후부터 저는 고군분투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선 공부에 매진해 1등이 되었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앞에 ‘꽃길’이 펼쳐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는 업무에 매진해 동료 중 저와 겨룰 수 있는 자가 없게 만들어야겠다고 헛된 생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야망과 욕심의 지배를 받아 저는 어디서나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했고, 저보다 강한 사람이 있는 것도 용납하지 못했을뿐더러 제가 남들보다 부족한 것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생각을 다 짜내고 주변 모든 사람을 멀리하며 혹시나 남들이 저를 뛰어넘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누군가 저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을 질투하고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들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고 그들을 넘어설 수 없을 때면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암담한 기분으로 지내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너무 교만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고,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기며 정상 인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사탄에게 갈수록 타락되어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도 잃고 점점 교만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심지어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을 수 있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입니다. 문득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뛰어남을 추구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모두 우러러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을 고통으로 밀어 넣고 심신이 지쳐 매일 고독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자 저는 얼른 하나님의 말씀에서 올바른 추구의 방향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모든 일에 능한 사람은 없다. ‘만물박사’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머리가 아무리 발달하고 식견이 아무리 넓다 해도 이해를 못하고 알지 못하는 구석이 있고, 모르는 분야나 기술이 있다.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나 다양한 업무 중에서 어딘가는 네가 모르는 사각지대가 있고, 한계를 느끼고 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 저는 제가 평범한 사람이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고 미처 모르거나 이르지 못할 부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장점과 자질,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드넓은 세상에서 사람마다 학력과 식견, 살아온 배경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내가 남보다 나은 점도, 남보다 못한 점도 당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하늘의 별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밝게 빛나는 것도 있고 은은하게 빛나는 것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땅에 핀 꽃도 오색찬란한 꽃이 있는 한편 단조롭고 무난한 색깔의 꽃도 있습니다. 저는 창조주의 말에 따라서 올바른 인생관, 가치관을 세우고 자신의 장단점을 직시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피조물일 뿐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스스로를 내려놓아야지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싸우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교만한 태도로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겼습니다. 동료의 실적이 저보다 좋을 때면 마음 한 켠이 쓰렸지만 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았고, 교만한 성품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동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자, 사람마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열심히 노력한 대가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과거 제가 교만 자대함에 빠져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했고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업무상에서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는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근차근 업무를 파고들며 동료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괴롭고 답답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동료들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업무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우리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최고’, ‘뛰어난 인재’라는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대하며 올바른 인생관을 세우고, 기꺼이 낙타 무리 속의 행복한 양이 되어야만, 우리가 내려놓은 욕심만큼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무 위에 앉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철학책을 내려놓은 제 얼굴에는 기쁨의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저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성령님의 빛비춤과 깨우침이 없었더라면, 저 역시 그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명예와 지위에 쫓겨 만족을 모르고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린 채 매일매일 고독과 고통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 주시어 저는 올바른 삶의 방향과 실천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고를 당한 후…

“누님, 누님한테 신고가 접수됐어요!" “왜요? 또 어디가 안 깨끗하대요?"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누님, 복도를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았어요? 물걸레로 바닥을 닦으셨나요?" “바닥은 진공청소기로 하고, 물걸레는 안 썼어요.” 나는 이렇게 해명했다. “직원이 물걸레가 마른 채 있는 것을 보고 누님이 물걸레 쓰는 것을 못 봤다고 신고했어요. 앞으로 바닥을 닦지 않아도 물걸레는 축여서 거기에 놔둬야 해요. 그러면 다시는 누님을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사장의 전화를 끊고,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이미 충분히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왜 또 신고가 접수된 것일까? 이 환경미화원이라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이미 두 번째로 신고가 접수된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처음 접수된 신고는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아서였고, 이번에는 물걸레로 바닥을 닦지 않아서였다. 이런 환경에 처하자 나는 얼른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고 구했다. 내가 막 이 청소 일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소개한 친구가 이곳은 위생에 대한 요구가 높지 않아서 40분이면 일을 끝낼 수 있고, 일당은 2500엔(약 2만5천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근했을 때, 3시간이 걸려서야 일이 전부 끝났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전부 대청소를 했는데, 주차하는 곳만 물을 뿌려 청소하는데도 40분이 걸렸다. 똑같은 돈으로 이렇게 오래 걸리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다음에 이곳을 청소하지 않으면 시간이 줄어들겠지. 만약 또 청소할 필요가 없는 곳을 줄이면 걸리는 시간은 더 줄어들 거야. 그러나 나중에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거의 2시간이 걸려야 일이 끝났다. 가장 빨랐을 때도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항상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40분에 마치자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나는 청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곳은 최대한 생략해버렸다. 일을 할 때마다 나는 시간을 보았고, 이번에는 얼마나 걸렸는지 계산했다. 항상 이득을 봤는지 아니면 손해를 받는지 따져야 하니까 정말 피곤했다. 기분이 좋고 나쁨도 이 일에 영향을 받았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구석에 더러운 곳을 봐도 청소하지 않았을 때, 나의 마음도 항상 죄 짓는 듯 불편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쓸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시간을 덜 쓸수록 이득이라며 온종일 시간을 덜 들이는 데 온 마음을 기울였다. 그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만일 여지를 두고 잔꾀를 부리고 뺀질댄다면 이 사역은 절대 잘할 수 없다. … “어떤 일이든 보고도 못 본 체하며, 하라고 시키면 좀 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으면 좀 잘하고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참답게 하지 않는다. 만일 책망을 받으면 마음을 좀 기울여 하고 책망을 받지 않으면 어쨌든 보는 사람이 없다고 꾸벅꾸벅 졸며 속일 수 있는 데까지 속이려고 든다.”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사람들은 발견한다. “이 사람은 믿고 신뢰할 수 없어. … ”사람은 그를 간파했다. 그는 자기의 존엄과 인격을 짓밟아 버렸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향해 하는 말 같았고, 구구절절 나의 마음을 찔렀다. 일을 할 때 잔꾀를 부리고, 교활한 짓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울을 닦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부분만 닦았다. 윗부분이 조금 더러워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은 닦지 않았다. 변기를 닦을 때는 겉에만 닦았다. 냄새가 나면 여러 번 물을 내렸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고 검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대충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발견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때문에 신고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사장이 처음으로 내가 신고 당한 것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벌금을 물거나 해고를 당하지 않을까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찾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신고를 당하자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하나님은 이번 일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인격도 존엄성도 없이 살면 안 된다고 알려준 것이다. 후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이방인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는 태도는 어떤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그것은 모든 면에서 다 거래하는 것이다. 나에게 시간당 얼마를 주면 그만한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인데, 심지어 돈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고, 더 나아가 노동력은 제공하지 않고 돈만 받고 공짜로 돈을 챙길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한다. 일이 없으면 차나 마시고, 신문이나 보다가 상사가 오기라도 하면 눈앞에서는 열심히 하면서 조금 신경을 쓰고 힘을 쓴다. 그것은 다 승진을 위한 것이고, 돈을 많이 받고 많이 벌기 위한 것이다. 그렇지? 다 교묘한 수법을 쓰는 것이고, 음험한 수법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자신의 사욕을 채우고,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다 궤계이고 전부 사탄의 철학, 사탄의 악독한 본성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일을 하게 되면, 일은 적게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궁리만 하고, 힘을 적게 들이고 교묘하게 돈을 벌 방법만 늘 생각한다. 그것은 사악한 길이고,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사탄에게 유혹당해 전혀 사람답지 않게 타락한 나를 보았다. 본성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서 적게 일하고 돈만 많이 벌 생각을 했다. 사장이 곁에서 지켜보면 열심히 일하고, 지켜보지 않으면 대충대충 일했다. 일을 하면서 항상 교묘하게 잔꾀를 부렸다.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며 양심과 인격은 내다 버리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살았다. 나는 항상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40분 안에 일을 끝내려고 구석의 더러운 곳을 보면 청소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허비할까 봐 다음 번으로 미뤘다. 다음 번에 시간이 길어지면 또 다음을 기약했다. 정말 온갖 궁리를 다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려고만 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고. 사실, 내가 이렇게 해서 몸은 좀 편해졌지만 양심의 가책을 받았고, 마음속으로는 항상 불안했다. 집에 있을 때도 고객에게 발각되어 신고당하지는 않을까, 해고 당하지는 않을까만 걱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조금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 정말 가치가 없고 너무 비천했다. 다른 사람이 두 번이나 나를 신고했다는 것은 나에게는 양심도, 인격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찌 크리스천의 모습이 있겠는가! 나는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더 이상 자신의 양심과 인격을 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요구대로 살아야 하고, 개인의 사욕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으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면 너는 중요한 일만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가 일을 처리할 때 너를 생각해 주고 마음이 착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처리해 주고, 심지어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신경 써서 해 주며, 매사에 너를 생각해 주고, 너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기 때문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은 인성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실행의 길을 찾았다. 기왕 이 일을 시작했고 월급을 받고 있으니 나는 이 일을 내 일처럼 여기고 해야 한다. 진솔하게 책임을 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어야 인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 후 내가 다시 출근했을 때, 나는 예전에 일 하던 태도를 버리고 마음을 다해 일하기 시작했다. 화분과 꽃잎에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물로 살짝 깨끗이 닦아냈고, 복도 전체를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렇게 하자 기분이 유달리 상쾌했고, 바빠서 시간을 보는 것도 잊어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몇 시간이나 일 했는지 따지지 않았고, 사서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의 마음은 아주 편안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마음이 편안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맛 본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실천하고 인간답게 살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할 것이다.

사람과 정상적으로 지내는 것을 배우다

저는 올해 22살입니다. “젊어서 경망스럽다”라는 것은 저의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맞는 말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는 제멋대로 떠벌이며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할 줄 몰랐고, 컴퓨터 기술을 좀 안다고 어머니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얕보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저에게 컴퓨터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자 저는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컴퓨터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소프트웨어도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배울 필요가 없어. 내가 잘하니까 어머니도 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시는 거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득의양양해졌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컴퓨터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매우 느렸습니다. 처음에 가르쳐 줄 때는 그래도 인내심이 있었는데, 몇 번 가르쳐 줘도 할 줄 모르니 조금 짜증이 나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여러 번 가르쳐 드렸는데, 왜 아직도 잘 모르세요?” 그러고는 속으로 '나이가 들면 정말 둔해,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똑똑하고 빨리 배워 … 어머니가 마우스를 클릭할 줄 모르니 답답한 저는 어머니 손에 쥔 마우스를 빼앗아 클릭했습니다. 어머니는 짜증내는 저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의 말을 차근차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도 어머니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정말 많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나이 드신 형제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나이와 생활 습관의 차이로, 저는 형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형제님이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어 못 먹었고, 예배할 때 형제님이 말을 횡설수설하게 해서 듣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형제님의 말을 가로채고는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젊고 소질도 있고 말도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궤사로 가득하고 사람을 경멸하는 눈길이 가득한 것은 연소한 사람에게 있어야 할 것이 아니며, 멸망의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도 젊은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 사람은 잘못된 것에도 굴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마음이 순결하고 정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용서해 주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밝혀 주신 말씀을 통해 저는 저의 타락 성정을 인식하였습니다.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다른 사람을 포용과 인내로 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지난날 행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도 할 만한 기능이 있기에 하나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에게는 취할 만한 부분도 있고, 취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처세 철학이 많고, 종교 관념이 많고, 일 처리 원칙이 많고, 언제나 규례에 맞추기를 좋아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고, 활기가 없고, 너무 융통성이 없는데, 이런 것은 취할 만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연로한 형제자매들은 일이 닥쳐도 침착하고 듬직하여 성정이 안정되고,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고 언제나 시종일관한데,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릴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결함이 아니다. … 젊은 형제자매든 연로한 형제자매든, 자신이 해야 할 기능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젊은 형제자매들은 연로한 형제자매들을 얕보지 말고, 연로한 형제자매들도 독선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조화로운 협력이 아니냐? 너희가 다 이런 심지(心志)가 있다면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너희 이 세대의 사람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나이 든 형제자매가 비록 이해하는 것이 좀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에게 없는 장점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의 길을 찾았고, 더는 이전처럼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고, 자고자대 하지 않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어느 하루, 어머니가 휴대폰 네트워크 연결이 잘 안 된다고 하면서 좀 봐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뭘 하나 배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짜증을 내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젊은이는 방종하지 말고, 연로한 자는 소극적이 되지 말고 후퇴하지 말라. 또한 서로 장점을 취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서로 돌보며 어떤 편견도 있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와 연로한 형제자매들 사이에 우정의 다리를 놓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너희들이 서로 더욱 이해하도록 하여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제서야 저는 저의 교만한 성정이 또 흘러나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머니에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고, 또 어머니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어머니가 컴퓨터나 휴대폰를 사용하면서 부딪힌 어려움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설명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게 되면서 마음도 점차 평온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서로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낼 때에도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차 형제자매들의 장점을 많이 발견하게 되면서 형제자매나 어르신들과 우정의 다리를 놓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젊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직장에서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면 종종 감추기를 선택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을까요? 아래 Mary의 체험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홀로 간 산에서 말벌에게 46방 쏘인 후 살아난 기적

그녀는 혼자 산 정상에 가서 약초를 캐다가, 갑자기 나타난 말벌 떼에 수십 군데 쏘였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 그녀는 어떻게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험에서 벗어났을까요?

믿음은 바로 힘이다

저는 당뇨에 걸린 지 16여 년이나 되는 환자입니다. 걸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많은 합병증까지 생겨 저는 또 백내장에 걸려 시력도 흐릿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을 금방 받아들였을 때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글도 쓸 수 있었지만 6개월도 안 되어 아무것도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저는 소극적이 되고 믿음도 없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집회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집회입니다. 다음 집회에는 저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저는 안 믿겠습니다. 저의 눈이 제 구실을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볼 수가 없고 복음을 전할 줄도 모르지, 하나님께서 저같은 소경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차라리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일찌감치 하나님을 떠나는 게 낫겠습니다……” 저는 속사포를 쏘듯이 단숨에 말해 버렸습니다. 다들 서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 했고, 열렬하던 집회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비록 실정을 말했지만 마음은 괴롭기 그지없었고 눈물범벅이 되어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한 자매님이 저의 손을 잡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우시지 말고 마음 진정시키고 우리 함께 노래를 부릅시다!”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시가 ≪실제 하나님은 묵묵히 사람을 구원한다≫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부르다가 다들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도 성령님이 저의 몸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망과 운명을 옮겨 갔지만 모두 사람을 위해서이다. 어느 단계나 사람의 생존을 위하고 전 인류에게 땅에서 아름다운 귀숙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크게 깨닫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치욕을 참으시고 또 친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 이렇게 큰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나는 어떠한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자그마한 병을 하나님께서도 꺼리시지 않는데, 내가 참을 수 없고 소극적이 되었으니 이것은 너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것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는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웠고 또한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굳게 세웠습니다. 비록 눈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귀가 밝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따라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죽지 않고 더 살게 된다면 전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케 할 것입니다. 2002년 8월의 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저에게 나가서 사역에 협력하라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병고에 시달린 저는 그날따라 머리가 어지러워 한밤중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저의 남편(형제님)이 제가 괴로워하고 말할 기력도 없고 진짜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저를 생각해서 말했습니다. “당신 몸이 이런데,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차라리 내가 가서 그들에게 다른 사람을 보내라고 말할까?” 이 말을 듣고 저는 엄격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세요? 정말 정신이 없네요, 당신 말처럼 일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는 것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죠…… 하나님께서 ‘한가지 일이 임하여 네가 고통받아야 할 때 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저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고, 하나님께서 저의 믿음을 검증하실 때이니 오늘 반드시 가야 해요.” 그리고 나서 저는 필요한 소지품과 약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만사만물이 다 당신의 수중에 있고, 저의 병도 당신의 수중에 있습니다. 어떠하든지 저는 당신의 지배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고 나서 잠시 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나가서 1주일 동안 협력하면서 한 알의 약도 먹지 않고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이전 같으면 적어도 이틀 동안 링거를 맞아야 했고 또 이틀 동안 쉬어야만 천천히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단지 믿음에 의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저는 비로소 『믿음은 바로 외나무다리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건너기 어렵고 목숨을 내걸면 편안히 건널 수 있다.』라는 진정한 함의를 깊이 체득하게 되었습니다. 河南省 喜芝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기묘한 방법

어렵게 얻은 아들, 그만큼 큰 기대 여자가 10개월간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에게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혈액형이 맞지 않아 수차례 유산을 하였고 제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제게 아이를 낳지 말고 입양을 하라 권고하셨지만 저는 위험하더라도 입양보다는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임신을 시도했습니다. 2000년 5월, 저는 드디어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 상황은 좋지 못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용혈 수치가 위험 수준이라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저는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매일 링거를 맞고 30~40분가량 고압산소를 흡입하였으며 한약도 먹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빠듯했던 우리 부부는 치료비 때문에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다른 임산부는 이것저것 많이 먹을 수 있었어도 저는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민감 체질인 데다 마취까지 잘 안 되어 통증을 참아가며 제왕절개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를 검사한 후 모두 정상이라고 하시자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더할 나위 없이 기뻤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이인 만큼, 저와 남편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아들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았고 병 치료를 위해 빚을 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가 부족함을 느낄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주려 애썼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죠. 아이는 어느새 유치원생이 되었습니다. 말도 잘 듣고 귀여워서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제 아들을 좋아했습니다. 이러한 아들 덕분에 저는 참 행복했고, 아이 교육에 더욱 힘을 기울여서 아들을 인재로 키워보자고 결심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6957"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아들의 나쁜 버릇, 타들어 가는 부모 마음 하지만 아이에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갖고 오는 버릇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되자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아들 가방에 장난감이 있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그 장난감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 잘못 넣은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기에 저는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가져와서는 안 되니 다음 날 장난감을 얼른 갖다 놓으라고만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아이의 가방에서 또 다른 사람의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에게 물으니 아들은 바로 “선생님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하기에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아들의 가방에 산사 열매 젤리가 가득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젤리를 어디서 어디서 났니?”하고 엄하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잘했다고 상으로 주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으로 젤리 몇 개를 줄 수는 있어도 어떻게 한 봉투를 주시겠습니까? 점심시간 전에 젤리를 먹기도 하고 가끔 젤리가 많이 남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이렇게 많이 줄 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들이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유치원에 되돌아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오후에 제 아들에게 상으로 젤리를 많이 주셨어요?” 선생님은 제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아니요, 안 그래도 남은 젤리가 다 어디 갔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저는 다른 선생님이 가져가신 줄 알았는데, 얘가 가져갔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 했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죠? 혼 좀 내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과 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 저는 뺨을 호되게 얻어맞은 것 같아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전에도 제가 몇 번이나 아들이 가져온 물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며댄 적이 있었습니다. 겨우 5살 된 아이가 거짓말을 배우다니, 게다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제가 완전히 믿도록 속이다니, 나중에는 거짓말이 얼마나 더 심해질까요! 저는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아들의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아들의 뺨은 금방 빨갛게 부어올랐고, 얼굴에 다섯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었던 아들은 놀라서 선생님 뒤로 숨었습니다. 선생님이 말려서야 저는 손을 멈추었고, 핸드백을 집어 들고는 돌아서 나왔습니다. 아들은 울면서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저녁에 곤히 잠든 아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칼로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팠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며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엄마도 널 때리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다 널 위해 그런 거야.”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저는 아들을 유치원에서 데려오면 가장 먼저 가방 검사를 했습니다. 몇 달 동안 아들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이가 한 번 맞았기 때문에 다시는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지 못할 거라고, 이번에는 제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아들에 대한 잔소리와 감시를 줄였고, 더는 가방을 뒤지지 않았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나쁜 버릇이 재발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들의 책가방에서 여러 차례 친구들의 책과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레 이 책과 노트가 다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매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친구가 깜빡 잊고 가져가지 않아서 자기가 대신 챙겨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 후, 저는 학교에 와달라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아들이 또 다시 친구의 물건을 훔쳤고, 이 사실을 친구가 선생님께 일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선생님 앞에서 아들을 크게 꾸짖었고 또 저에게 “어머니도 선생님이시면서 어떻게 이렇게 교육할 수 있는 거죠?”라며 힐책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더욱 화가 났고 또 아들이 착실하지 못하고 너무나도 못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선생님 앞에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반드시 버릇을 고치겠다고, 다시는 친구의 물건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후로 아들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다 결국 애 아빠의 돈을 훔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하루하루 커갔고 아무리 노력해도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버릇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저는 죽고 싶은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스스로 되뇌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니? 내가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을 테니 마음도 아프지 않겠지. 그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그만이야.’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아들이 아직 어리잖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만약 내가 이대로 죽어서 아들을 단속하지 못하면, 아들이 커서 범죄자의 길을 가지 않을까? 그러면 아들의 인생은 망치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을 때리고 혼내도 효과가 없기에 저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면 받게 되는 처벌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위층에 사는 이웃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가 체포된 사건도 말해주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어떤 나쁜 결과가 발생하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대답하고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도둑질하곤 했습니다. 저는 낙담했고 더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가슴 졸이게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기묘한 방법, 아들의 변화 2008년 5월, 저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 『인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위가 없는 그런 세상은 어둡고 소망이 없으며 공허한 것이다. …그리하여 부지중에 인류의 문명은 갈수록 사람의 소원대로 되지 못하였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은 사람들보다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과거 아주 문명화했던 나라의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원망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면 설사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모두 온갖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가 우리 안에 스며들었고,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독소에 의지해 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자신에 의지할 뿐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으면 내면은 공허한 것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제 상황에 비추어 보니, 저는 줄곧 저만의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려 했습니다. 특히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때리거나 혼내는 방법으로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아들이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될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의지하다 보니 어떤 일도 성사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들이 잘 되고 못 되고는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들을 참으로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아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아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이끌어 인생의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하면 아들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아들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받들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들이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겠다고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제가 신발 박스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들의 신발 박스 안에 2만원 가량되는 돈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아들이 다시 돈을 훔치기 시작한 걸까? 가족의 돈을 훔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친 것일까?’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저는 늘 아들을 때렸지만 그런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다시 예전처럼 포용력도 없고 참을성도 없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제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으니 저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들이 돌아오자 “아들, 오늘 엄마가 신발을 정리하다가 2만원을 주웠어.”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바로 해명을 했습니다. “그거 건드리지 마세요. 저희 반 친구 XX 거예요.” 저는 다시 “친구 돈이 어떻게 우리 집 신발 박스에 있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친구 아빠가 생일이라고 5만원을 주셨는데 친구가 그 돈을 다 못 써서 잃어버릴까 봐 저에게 대신 보관해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들이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니 또 화가 났습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지 화를 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안 돼. 내가 먼저 변해야 해. 아들은 자기도 모르게 실수한 걸 거야.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그러면 나도 아들처럼 거짓말하는 게 돼버리는데? 나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아들을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다시는 내 방식으로 가르치려 하면 안 돼. 내가 먼저 진솔한 사람이 되어야 해.’ 이에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널 믿어. 그럼 엄마 아빠랑 함께 그 친구 집에 가서 물어봐도 되겠니?” 그러자 아들은 저와 남편을 근처 새 건물로 데려가 어떤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그 이름을 몇 번 부르더니 저희에게 “친구가 집에 없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는 아들에게 “아들아, 엄마 아빠가 하나님을 믿는 걸 알지? 하나님은 타락된 사람을 구원하러 오셨어. 너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엄마 아빠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거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어. 잘못을 알고 고치면 되는 거야. 네가 솔직하게 말하면, 엄마 아빠는 너를 절대로 때리지 않을 거야. 예전에 너를 때린 건 엄마 아빠가 잘못 한거야. 하나님은 너를 때리는 걸 원치 않으시니 엄마 아빠도 변해야 하는 거야. 너도 하나님께 얘기 드릴 수 있어. 진솔한 사람이 되고 엄마 아빠를 속이지 않길 원하면 하나님도 널 용서하실 거야. 하나님은 『진솔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범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으며, 어떤 일이나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솔한 사람이 되라고 하셔. 우리가 말한거나 행한 것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하나님도 사람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과장하거나 속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본 후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해 주셔. 아들과 엄마 둘 다 진솔한 사람이 되어 너도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엄마도 하나님을 속이지 말자구나. 네가 엄마에게 직접 말하기 부끄러우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너의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 드리렴. 고치기만 하면 착한 아이인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엉엉”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면서 “제가 훔친 거예요. 아빠 몰래 5만원을 훔쳤어요. XX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가 안 사주실까 봐 훔쳤어요. 엄마한테 맞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 다시는 도둑질하지 않을게요. 정말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먼저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져온 변화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한편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너를 믿어. 엄마도 네가 반드시 고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거고, 넌 꼭 고칠 수 있을 거야. 너도 보았겠지만 엄마가 널 때리지 않겠다 말하고 그 말을 지켰잖니? 너도 힘내서 해내야 해.”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감격해서 눈이 빨개진 채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어주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아들은 더는 돈을 훔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난 7~8년동안 아들은 단 한 푼도 훔친 적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은 그런 버릇을 가진 같은 반 친구에게 반감과 혐오를 느꼈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 말씀이 가져온 결과로 저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금은 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 돈을 더 가져가라고 해도 아들은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요즘 완전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제 아들을 변화시켜 주셨고, 아들을 교육하는 저의 방식도 바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아들을 돕고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을 돌봐주고 계셔서 우리 일가족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서로 도우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우리 가족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전능으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니 이보다 좋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사람은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녀는 가정도 행복하고 사업도 성공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젊은 나이에 공장을 운영하고 차와 집 그리고 자녀도 있어 정말 출세한 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았고, 너무 과로해서 그런 거니 조금 쉬면 좋아질거라 생각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결국 몸이 더 심하게 아파오자 그때서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유방암 말기입니다. 조금 일찍 오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 상태로는 치료하기가 힘들고 위험한 상태입니다.” 이 갑작스러운 비보에 그녀는 고통 속에 빠져들었고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그때 느낌이 좋지 않을 때, 왜 일찍 검사 받지 않았을까’라며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뛰어다니고 사업도 성공했으며 가정도 아주 행복했지만,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그녀와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남편은 아직 젊어 다시 결혼할 수 있고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엄마”라 부를 것이며 집과 차의 주인도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곧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거라는 것을 생각하니 그녀는 상심의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록 남편과 자식이 그녀를 놓치기 아쉬워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죽음이 닥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저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녀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추구하는 명리와 지위는 모두 허망하고 아무런 가치와 의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가 이런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는가. 돈과 세력이 있고 집과 차도 있지만 마지막에 이런 것들이 사람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사람이 일생에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람이 일생동안 살면서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헛되이 살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이며 사람은 혈육간의 정, 돈과 명리를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 비록 사람들이 다 운명이 기구하다고 원망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사람은 왜 살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삶의 가치와 의미”, 사람이 가장 잘 알아야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이런 문제를 뒷전에 두고 일생이 몇 년이든 사람의 청춘이 다하기까지, 귀밑머리 백발이 되기까지, 얼굴이 노화되기까지, 명리가 사람이 노쇠해지는 걸음을 막지 못하고 돈이 사람의 심령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의식하기까지, 누구나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누구나 운명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로지 명리를 추구하기 위해 바삐 뛰어다닌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인생 중의 마지막 고비에 직면할 때에서야 사람이 설사 거액의 재산이 있고 고귀한 신분과 대단한 지위가 있다 하더라도 다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다 필연적으로 그의 원래 위치로 즉,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고독한 영혼으로 돌아갈 것임을 진정 깨닫게 된다…… 사람이 곧 죽게 될 때에야 사람은 평생을 쏟아부어 추구했던 것들이 본래 다 금방 사라져버리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하나도 붙잡을 수 없고 어느 하나도 가져갈 수 없고 어느 하나도 사람에게 죽음을 피하게 할 수 없으며 또한 어느 하나도 고독한 영혼의 귀로 가운데서의 위로나 동반자가 될 수 없고 더욱이 어느 하나도 사람을 죽음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한평생 다 돈과 명리를 추구하며 이 양자를 목숨을 건지는 지푸라기로 삼고 유일한 받침대로 삼는데, 마치 돈과 명리를 가지면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고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죽음이 다가올 때에야 사람은 돈과 명리가 사람에게 그렇게 요원하고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연약하고 힘없고 이처럼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며,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이처럼 고독하고 의지가지없고 이처럼 무력하며, 원래 사람의 생명은 돈과 명리로 바꿔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든지 얼마나 높은 지위가 있든지 죽음 앞에서는 다 마찬가지로 빈궁하고 미소하며, 돈으로 생명을 살 수 없고 명리가 사람의 죽음을 면케 할 수 없으며, 돈이든 아니면 명리든 다 사람의 수명을 일분일초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사람은 이런 느낌이 있을수록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무서워한다. 이때서야 사람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되고 또한 사람이 살든 죽든 다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사람이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진정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우리에게 세상의 돈·지위·명예를 추구하면 결국엔 모두다 헛된 것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이런 것들은 사람의 생명을 1분 1초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각 사람의 생사는 자신이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원래 위치인,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고독한 영혼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조물주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를 체험하고 조물주의 권세를 인식하는 기회로 삼고 하나의 피조된 인류의 본분을 다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얻기 어려운 한번의 기회로 삼는다면 사람은 틀림없이 정확한 인생관이 있을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축복과 인도 아래에서 살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빛 속에서 거닐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주재를 인식할 것이며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 아래에 귀복할 것이고 틀림없이 조물주의 기묘한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틀림없이 조물주의 권세를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말할 필요없이,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조물주가 사랑하고 열납하는 사람이며 이런 사람이라야 담담하게 죽음에 직면하는 태도가 있을 수 있고 인생의 마지막 한 고비를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저는 사람의 모든 것은 조물주께로부터 온 것이고 결국에는 다시 주물주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모두 조물주께서 배치해 놓으시고 정하신 것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각 사람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다 자신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배치하시는 것에 대해 진실로 인식하게 될 때, 조물주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할 것이며 진리에 대한 추구와 하나님을 알기 위한 추구를 자신의 사명으로 삼고,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주재와 권세를 체험하는 기회로 삼을 것입니다. 이러면 명리·지위·돈의 유혹을 담담하게 대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포함해 생활 가운데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또 마땅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의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창현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그때는 조물주의 축복 가운데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생활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추구해야 하며, 자신의 일생을 조물주의 손에 맡겨 조물주께서 주재하시고 배치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만 가치와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