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왜 우리는 평범이 아닌 뛰어남을 선택하려 하는가

2019년 02월 12일

한 철학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한 여학생은 성적이 좋아 선생님의 애제자였고, 같은 반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롤모델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이 여학생은 자신감을 얻었으며 자존감도 높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이 학생은 자신이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양 떼 속의 낙타에 익숙해져 있던 이 학생은 낙타 무리 속의 양이 되기 싫었던 것입니다. 처음의 자신감은 자괴감으로 바뀌었고 심지어는 하버드에 간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했던 나날을 그리워만 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더 외로웠고 매일 고독을 떨쳐낼 수 없어 할 수 없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학생이 박수갈채를 받지 못해 자괴감을 느끼고 우울해하다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여학생의 상황에 탄식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부지런하고 공부도 곧잘 하며 인품과 성적 모두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사여구가 제 곁을 따라다녔고 선생님들은 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집중적으로 키워줘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저를 부러워하며 공부의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칭찬과 박수 속에서 자라왔으니 그야말로 ‘꽃길’을 걸은 셈입니다.

졸업 후 저는 명성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지사로 발령이 났고, 지사에 있는 신입 사원 중 저는 가장 우수했습니다. 업무에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뛰어난 업무 실적으로 직속 상사의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은 제게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고 매일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을 살며 저는 하루하루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자아 가치를 높혔습니다. 그 후 본사에서는 지사별로 우수 사원 3명을 선발해 본사에서 6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으라는 지시을 내렸습니다. 시험에 통과하면 계속 본사에 남아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수 사원으로 선발된 사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넘치는 자신감을 갖고 본사로 향했습니다. 제 능력이라면 본사에서도 빠른 시간 내에 두각을 나타내 사람들이 저를 높이 평가하고 우러러보리라 생각했습니다. 도착해서야 저는 이곳에 인재가 넘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식수준, 스펙, 경험을 막론하고 두뇌와 학벌에서도 저는 평범한 수준이었고,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들 가운데 1등이 아니었으며 어딜 가나 더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도, 남들이 우러러보는 것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에 저는 평정심을 잃었습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 싫었지만 평범하게 사는 건 더더욱 싫었습니다. 저는 제 능력과 재능으로 언젠가 모든 이를 뛰어넘어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자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저기 자료를 찾고, 끊임없이 배우며 업무 능력을 길렀습니다. 또한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잊은 채 업무에만 매달렸고, 하루빨리 실적을 올려 회사 임원진과 모든 동료가 저를 우러러보고 또 제가 다크호스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니 저는 차가워졌고 심지어 동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선을 그었으며 적의로 가득 차 모든 사람이 저의 라이벌이자 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지만 저의 노력은 제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전 여전히 팀 내에서 가장 평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을 직면하자 전례 없던 좌절감에 휩싸이게 된 저는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때도 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에게 방어막을 쳤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존심이 다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동료들이 항상 저를 무시하고, 웃음거리로 삼으며 쟤는 어떻게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가 먼지와도 같은 존재라 그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이나 본사를 뛰쳐나가 제가 밝게 빛났던 지사로 돌아 가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계속 모욕당하는 건 정말 견딜 수 없었지만 이렇게 밀려나듯이 떠나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본사에서의 하루하루가 제겐 천근만근 같아 엄청난 고통에 숨조차 못 쉴 정도였으며, 그저 하루하루 아등바등 버텨나갔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드디어 고통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야심을 가지고 늘 자신이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며 남다르고 특이해지려고 한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너의 이 생각의 근원이 틀렸다. “평범하지 않고 출중하다”는 것은 무슨 사상인가? 금계독립인가? 군계일학인가? 비할 바 없는 것인가? 이런 말들을 정상 인성의 추구 목표에 사용하면 좋은가? 완전무결ㆍ천하일색ㆍ자수성가, 이런 단어는 좋은가? 걸출하고, 훌륭하고, 특별한 인재, 이런 단어는 좋은가? 카리스마, 인격적인 매력, 스타, 명인, 위인, 마음의 우상, 이런 것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사람됨의 목표인가? 모든 진리 가운데 너에게 이런 사람이 되라고 한 말씀이 한 마디라도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제가 고통받았던 원인이 바로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아 남에게 뒤처지기 싫어하고 사람들 속에서 최고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습니다.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선생님은 저희에게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등 말도 안 되는 가치관을 주입시켜 저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지 못하게 했으며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또 유명인의 명인 명작을 이용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남들보다 뛰어나라’, ‘살아서 위인이 되어야 죽어서도 위인이다’ 등의 사탄 독소를 우리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이같이 그릇된 가치관의 영향을 받다 보니 저는 점점 교만해졌고, 안하무인으로 변해갔으며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면서 항상 최고만을 고집하고 1등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명인이나 위대한 사람의 박수갈채 속에서 살아가며 다른 이들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볼 때면 그런 삶을 더욱 갈망하고 그렇게 살아야만 자신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고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생긴 후부터 저는 고군분투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선 공부에 매진해 1등이 되었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 앞에 ‘꽃길’이 펼쳐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는 업무에 매진해 동료 중 저와 겨룰 수 있는 자가 없게 만들어야겠다고 헛된 생각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야망과 욕심의 지배를 받아 저는 어디서나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했고, 저보다 강한 사람이 있는 것도 용납하지 못했을뿐더러 제가 남들보다 부족한 것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생각을 다 짜내고 주변 모든 사람을 멀리하며 혹시나 남들이 저를 뛰어넘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누군가 저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을 질투하고 남들에게 뒤처지기 싫어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들을 넘어섰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고 그들을 넘어설 수 없을 때면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암담한 기분으로 지내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너무 교만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과 다투고, 모든 사람을 적으로 여기며 정상 인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사탄에게 갈수록 타락되어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도 잃고 점점 교만해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심지어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을 수 있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입니다. 문득 사탄의 타락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뛰어남을 추구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 모두 우러러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을 고통으로 밀어 넣고 심신이 지쳐 매일 고독 속에서 우울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자 저는 얼른 하나님의 말씀에서 올바른 추구의 방향을 찾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모든 일에 능한 사람은 없다. ‘만물박사’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머리가 아무리 발달하고 식견이 아무리 넓다 해도 이해를 못하고 알지 못하는 구석이 있고, 모르는 분야나 기술이 있다.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나 다양한 업무 중에서 어딘가는 네가 모르는 사각지대가 있고, 한계를 느끼고 하지 못하는 곳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너는 마땅히 땅에서 걷는 것을 배워야 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에 한 발자국씩 제대로 걸어야 한다. 네가 걸을 수 있으면 걸어야지 뛰는 것을 배우려 하지 말고 한 걸음씩 걸어야지 두 걸음을 한 걸음에 가려고 하지 말라. 네가 착실한 사람이 되어야지 뛰어난 사람, 위대한 사람, 높고 큰 사람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난 후 저는 제가 평범한 사람이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고 미처 모르거나 이르지 못할 부분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주신 장점과 자질, 은사가 다르기 때문에 드넓은 세상에서 사람마다 학력과 식견, 살아온 배경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에 내가 남보다 나은 점도, 남보다 못한 점도 당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하늘의 별이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밝게 빛나는 것도 있고 은은하게 빛나는 것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땅에 핀 꽃도 오색찬란한 꽃이 있는 한편 단조롭고 무난한 색깔의 꽃도 있습니다. 저는 창조주의 말에 따라서 올바른 인생관, 가치관을 세우고 자신의 장단점을 직시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저 평범한 피조물일 뿐입니다.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스스로를 내려놓아야지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싸우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교만한 태도로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를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에 옮겼습니다. 동료의 실적이 저보다 좋을 때면 마음 한 켠이 쓰렸지만 바로 하나님께 기도드려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았고, 교만한 성품을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동료의 장점을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자, 사람마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좋은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열심히 노력한 대가였던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과거 제가 교만 자대함에 빠져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했고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업무상에서도 그만한 대가를 치르지는 못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근차근 업무를 파고들며 동료의 장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괴롭고 답답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동료들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업무 능력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우리가 그동안 품고 있었던 ‘최고’, ‘뛰어난 인재’라는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을 대하며 올바른 인생관을 세우고, 기꺼이 낙타 무리 속의 행복한 양이 되어야만, 우리가 내려놓은 욕심만큼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무 위에 앉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철학책을 내려놓은 제 얼굴에는 기쁨의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저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성령님의 빛비춤과 깨우침이 없었더라면, 저 역시 그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명예와 지위에 쫓겨 만족을 모르고 삶의 원동력을 잃어버린 채 매일매일 고독과 고통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 주시어 저는 올바른 삶의 방향과 실천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직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직장에서 실수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 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면 종종 감추기를 선택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을까요? 아래 Mary의 체험을 통해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절망에 빠진 결혼 생활, 누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상)

누구나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조양의 이야기가 그 비밀을 알려 드립니다.

'말씀'으로 원망을 해결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아빠가 맏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첫 자녀로 아들을 낳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딸이었고,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내가 두 세 살쯤, 아빠는 출근을 하셔야 했고, 엄마는 농사를 지으시느라 바빠서 나를 돌봐주실 시간이 없으셨기에,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셨다. 매번 엄마가 일을 끝내고 나를 데리러 오셨을 때, 내 바지는 항상 오줌으로 젖어 있었고, 작은 엉덩이는 빨개져 있었지만, 할머니는 바지를 갈아 입혀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이런 내가 너무 안쓰러워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셨다고 한다. 결국, 나를 혼자 집에 두실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난 겨우 다섯 살이었다. 엄마가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면, 나는 의자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돌보아 주셨지만, 나를 점점 차갑게 대하셨다. 그래서 내 마음 속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으며, 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게 너무 불공평하게 대한다고 느꼈다. 내가 9살 때,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갔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고, 나는 혼자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남동생이 왔다. 우리 둘은 같이 주방으로 들어 갔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급하게 “찬장에 월병 뒀어요, 얼른 꺼내서 손자 먹여요!” 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난 온 지 한참 됐는데 나한테는 안 주고, 남동생이 오자마자 바로 월병을 꺼내 주다니.’라고 생각 했다. 나는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고, 울면서 집으로 뛰어 갔다. 평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말을 하실 때도 좋게 말하시지 않고 항상 소리를 지르거나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셨다. 설날이 되어 온 가족이 할머니 댁에 모여 같이 밥을 먹을 때, 할머니께서는 아주 친절한 말투로 “내 새끼~ 얼른 와서 밥 먹어라!”라고 남동생을 부르셨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얼굴로 “얼른 와서 밥 안 먹고 뭐해!”라고 소리치셨다. 때때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남동생을 품에 안고 놀아 주셨는데, 이러한 자상함은 나에게 결코 보여주지 않으신 것이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 적이 없었으며, 항상 매우 차갑고 낯선 모습만 보여 주셨다. 내 어린 마음에는 조금씩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그 당시, 아빠는 일을 하다가 사고로 반신 불수가 되셨고, 가족의 모든 일은 엄마가 짊어지게 되셨다. 아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저금해 놓은 모든 돈을 다 써버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소를 한 마리 키우셨지만 우리가 밭을 갈 때도 도와주지 않으셔서 엄마는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밭일을 맡기셔야 했다. 나와 남동생이 학비 낼 돈 마저 어렵게 되자, 할 수 없이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좀 달라고 부탁하셨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나와 남동생의 학비를 대 주시고, 생활비만 엄마가 대는 것으로 약속 하셨다. 그러나 뜻밖에 날아든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여름방학 때,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연이어 발생한 일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나의 원망을 더 깊게 만들었다. 개학을 앞두고 학교에 등록을 해야 해서 엄마는 나에게 할아버지에게 가서 학비를 받아오라고 했다. 내가 할아버지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할아버지가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 저 학교에 등록을 해야 돼서 학비 받으러 왔어요!”라고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담뱃대를 빠시면서 무표정하게 밖을 쳐다보시며 나에게 “아들을 잃은 마당에 손자가 다 무슨 소용이야!”라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그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마음을 찔렀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밖에 서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학비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억울함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생각했다. ‘할아버지, 정말 너무 모질군요! 아빠도 없는데 우리마저 버리시다니요!’ 나는 오기를 부리며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흥! 오늘부터 나도 할아버지는 없어, 당신들이 죽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인정하지 않았고, 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일들을 물어보면, 나는 매우 차갑게 “저한텐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취직 후, 휴가 때 집에 돌아 가서 친구네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이쪽으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할아버지를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랑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새로 이사한 집에 가보지 않았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나중에 엄마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딸, 예전에 내가 네 앞에서 항상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해서 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아선호사상이 있고, 우리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돼.” 엄마의 이 말은 나를 매우 놀라게 했다. 엄마는 지금껏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싫어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한거지?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 편을 들어주다니? 나는 의아하게 엄마를 쳐다 보았고, 엄마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거 아니? 사람이 모두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되어 어쩔 수 없이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분쟁과 미움, 그리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 거야. 이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엄마는 하나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어. 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이렇게 대하는 건, 사탄이 그분들을 타락시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탄의 성품대로 살아가기 때문이야. 우리가 그분들을 미워 할 수 있는 것도, 타락한 성품 때문이란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일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고, 그분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로 했단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못되게 대한 건 사실이잖아. 만약 우리한테 잘 대해 주셨어도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싫어했을까? 어쨌든,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하나님을 믿고 나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대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에 날 정말 놀라게 했고, 하나님에 대한 호감이 생겼다.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말세에 하시는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셨고, ≪하나님 3 단계 역사의 실제 기록 정선≫이라는 책을 주셨다. 나는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구원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인간을 향한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나는 최초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환경과 각종 식물을 예비해 주셨으며, 우리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는 원래 에덴 동산에서 즐겁게 살고 있었지만, 뱀의 유혹을 받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아름다운 생활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를 구원하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인류가 누렸던 본래의 아름다운 생활로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행운이였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이때부터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자매님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자매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찾아 주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사탄의 본성이 사람 안에서 주인이 되어 사람을 지배하였다. 그 본성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예를 들자면, 너는 왜 이기적이 될까? 너는 왜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고 할까? 너는 왜 정이 그렇게 많은 걸까? 너는 왜 불의한 것을 좋아하고 악을 좋아할까? 이런 것들의 뿌리(원문: 根據)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는 왜 이런 것을 받아들이기 좋아하는 걸까? 이제는 너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로 사탄의 독소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사탄의 독소란 무엇일까? 완전히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네가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로 문제의 근본 원인을 말하였다. 사탄의 논리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된 것이다. 사람이 이것을 위하든 저것을 위하든,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사탄의 독소는 우리의 생존의 근본이 되었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되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게 되었으며, 아주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때, 이 사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근거로 그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자매님에게 못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탄 독소의 지배를 받아‘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람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탄의 독소가 우리의 심령을 왜곡하여 양심과 이성을 잃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올바른 사람인지 알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내 마음은 확 밝아졌다. 우리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포용이 없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사람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모두 타락된 성품으로 살아가면서 점점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이익에만 급급한 삶을 살게 된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실, 할아버지 할머니도 피해자였군요. 그분들은 사탄에 의해 타락되서 그렇게 변한 거네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제야 알았어요. 제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미워하는 건 사탄의 독소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망시킨다’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한 거예요. 이제는 더 이상 사탄에게 눈이 멀어 속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분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어요.” 그 후,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고 어두운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영원히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영원히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를 위해 봉헌하고 지불하고 있지만, 사람은 모두 영원히 자신을 위해 토색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류의 생존을 위해 수고하지만, 사람은 영원히 정의와 광명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노력은 영원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사실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심 없이 희생하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취향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번째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위해 사심 없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구원을 멈추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풍부한 물질을 베풀어 주셨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셨다. 동시에, 진리를 선포하여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하고 계시며, 우리의 생명이 목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도록 하신다. 그러나 사탄으로 인해 타락된 후 우리 인간은 모두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몇천 년을 거친 고대 문화의 역사적 지식은 사람의 사상 관념과 정신 풍모를 물샐틈없이 봉했는데, 좀 먹지 않는 문돌쩌귀와 같다. 사람은 십팔 층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마치 하나님에 의해 지하 감옥에 떨어진 것처럼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이미 봉건사상에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억압당하였고, 다 질식하여 반항할 힘이 전혀 없으며, 그저 말없이 참고 참을 뿐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감히 정의와 공평을 위해 분투하거나 일어선 적이 없고, 그저 봉건 교육의 가혹한 속박 속에서 개돼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찾아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생각지 못하였다. 사람은 격타(擊打)당하여 늦가을의 낙엽처럼 시들고 누렇고 삐쩍 말랐다. 사람은 일찍이 기억을 상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불리는 지옥에서 속절없이 살며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왜 남자 아이만 좋아하고 여자 아이는 좋아하지 않는지를 깨달았다. 이는 사탄이 주는 봉건 사상에 오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가한 딸이요, 쏟아진 물이다.”라는 말이나, “가문을 빛내고 혈통을 이어 나가는데 아들이 없다면, 대가 끊긴 것이다.”라는 생각은 모두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과 관념으로 변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이러한 독소에 근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남존여비 사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탄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를 볼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진리가 없다면 사탄의 궤계를 간파할 수 없기 때문에, 봉건 사상의 굴레에 묶여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거기에 짓밟히고 우롱당할 수 밖에 없다. 이때부터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르게 대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사탄이 계속 우리를 타락시키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생활이 화목함을 잃어버리도록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피해자다. 언제 고향에 가게 되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간증할 것이며, 그들도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이다. 그후에,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아빠는 삼촌만큼 능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그녀의 식구만 차별했는데, 간식이 있으면 그녀는 주지 않고 숨겨 두었다가 사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그녀도 할머니에 대한 미움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 속에 쌓였던 미움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할머니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그녀의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때 그 둘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가정이 따뜻하고 화목하게 변했다. 나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렸는데, 자매님이 겪은 일들이 바로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를 드렸다. 나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알게 하시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이고, 우리 인생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에야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사탄의 타락과 괴롭힘에서 완전히 벗어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것이다!

게임 중독 해결 방법, 여기서 찾았습니다

중국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의 실태 조사:‘방콕녀’ 스묘 인터뷰 진행자: 신량 인터뷰 대상자: 스묘 인터뷰시간: 2016년 10월 10일 인터뷰 대상자 이력: 스묘, 여자, 37세, 평범한 도시민의 가정에서 태어나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였는데, 바로 인터넷 게임에 중독되어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했고 가족들과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신량(이하 ‘량’이라 약칭함): 2008년부터 인터넷 게임을 시작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인터넷 게임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스묘(이하 ‘묘’라고 약칭함): 처음에는 게임 속의 캐릭터들이 너무 예쁘고 화면 배경도 너무 아름다웠어요. 제가 PC방에 가면 PC방 주인이 저한테 게임을 하면 이런 저런 혜택을 준다고 끊임없이 설명하더라고요. 인터넷 게임 홍보 모델을 하는 인기 스타들도 저의 눈길을 끌었어요.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과 재미 삼아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거죠. 량: 그럼 왜 8년 동안이나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었던 겁니까? 묘: 제가 현실 생활에서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을 인터넷 게임에서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현실의 저는 예쁘지도 않고 몸매도 별로여서 주변 남자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늘 열등감에 빠져 있었어요. 그러나 게임에서는 저를 이상적인 캐릭터로 꾸밀 수 있었어요. 게다가 게임에는 yy채팅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남성 게이머들이 저의 목소리만 듣고도 제게 잘 보이려고 앞다퉈 아이템이나 게임 코인을 주면서 접근해 왔고 남녀 관계를 맺었죠. 이런 관계를 속칭 ‘게임애인’이라고 해요. 돈깨나 있는 남자 게이머들은 여러명의 게임애인이 있는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죠. 남자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게임애인이 없으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죠." 량: 그것 때문에 게임에 중독되었다구요? 묘: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죠. 게임은 사람들의 여러 욕망을 충족시켜 줘요. 게임으로 돈을 벌게 해 주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금전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에서 협회 같은 것을 설립하여 회장의 신분으로 다른 사람을 지휘해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고, 게임을 통하여 현실에서 불가능하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사귀게 되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던 꿈 같은 일들이 사이버 세상에서는 모두 가능하게 되죠. 량: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인터넷 게임은 사람을 끌긴 하네요. 그럼 당신은 게임을 가장 길게 한 게 몇 시간이나 되나요? 그리고 게임을 하면 돈도 번다는데 당신은 게임을 해서 얼마나 벌었나요? 묘: 평소에 남편이 집에 있을 때면 게임을 너무 늦게까지 안 해요.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밤 늦게까지 합니다. 한번 인터넷에 접속하여 게임을 시작하면 20시간 정도 하는데 보통 아침 6시부터 이튿날 새벽 2~3시까지 하죠. 제가 게임을 하면서 사귄 친구들 중, 어떤 사람들은 PC방에서 며칠씩 게임을 해요. 거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요. 제가 평소에 게임으로 버는 돈은 게임에 접속하는 비용 정도나 충당되고요, 어쩌다 이벤트가 있으면 1~2백 위안 벌지요. 저는 많이 못 벌어요. 인터넷 게임으로 먹고 사는 프로급 게이머들은 한 달에 수천 위안씩 벌어요. 운이 좋은 때는 한 달에 만 위안도 벌죠. 량: 그렇다면 인터넷 게임은 당신의 생활에 어떤 피해를 줬나요? 묘: 피해요? 저한테 준 가장 큰 피해는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첫째는 사회와 동떨어지게 한 것이죠. 제가 게임에 중독되었을 적에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방콕녀’가 되어 버렸죠. 게임을 하면서 한 달 동안 문밖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어느 날 밤, 은행에 가서 돈을 입금하고 돌아오다가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하여 헤맨 적도 있어요. 반 시간이면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저는 한 시간 반이나 헤매다가 겨우 집을 찾았어요. 집을 나설 때마다 저는 주변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져요. 어디가 어딘지 모를 때가 많아요. 둘째는 가족들과 멀어지게 하고, 가정에 대한 애착도 점점 식어지게 하는 것이죠.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다 보니 날마다 부모와 남편과 소통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거실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면 남편은 안방에서 게임을 하고 서로 대화조차 없었어요. 하루에 기껏 한 두 마디씩 하는데 밥은 먹었냐? 이제 자자! 이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부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며칠씩 한 마디도 없었어요. 하루는 엄마가 몸에 열이 나서 안방에 누워 계셨는데 저는 게임에 쏙 빠져 그것도 몰랐으니까요. 엄마가 참다 못해 노하셨어요. “내가 병원에 갈 지경이 돼도 너는 게임을 마쳐야 일어나겠지?”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결혼하여 5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던 것이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의사의 말이 남편이 온종일 게임을 너무 해서 정자의 생존율이 아주 낮은 데다가 저 또한 게임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임신하기 어렵대요. 의사의 경고를 저희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아 귀가해서도 여전히 게임에 빠졌죠. 그 뒤로 저와 남편은 각자 인터넷 게임에 빠져 소통이 더욱 줄었고, 관계도 더욱 소원해졌어요. 결국 결혼이 깨지게 되었죠. 량: 당신의 말을 들어 보니 인터넷 게임이 당신의 가정과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줬군요.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까? 묘: 저절로는 아마 평생 인터넷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후에 어떤 사람이 제게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전해 주셨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제야 저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주는 피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게임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하고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가져다주는지를 알게 된 거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게임에는 폭력적인 것들이 매우 많은데, 그것은 마귀의 세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자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 학교에 가기도 싫어하고 공부하는 것도 싫어하며 앞날도 생각하지 않고 인생의 일은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대다수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영혼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느냐? 먹고 마시고 그다음 게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런 말과 일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모두 비인류의 일이다. 생각하는 것을 ‘추함’, ‘사악함’이라는 이 두 단어로는 이미 형용할 수조차 없게 되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비인류의 것이다. …그들의 화제는 다 어떤 것이냐? (게임 하고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다. 늘 그런 이야기들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앞날은 어떻겠느냐? 전망이 있겠느냐? 그들의 미래는 어떻겠느냐? (그런 사람들은 쓸모없습니다!) ‘쓸모없다’라는 말은 아주 적합하다. …사람이 게임을 오래 하면 사람의 의지(意志)가 사라진다.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뭐라고 하느냐? ‘퇴폐적이다’이다. 늘 게임 하고 컴퓨터에 빠져 있으면 사람은 퇴폐적이 된다. ‘퇴폐적이다’라는 것은 이방인의 단어인데, 우리의 말로 하면 그 사람에게 정상 인성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싸우고 죽이는 것 그리고 가상 세계의 그런 것들로 가득 채워져 정상 인성에 속하는 것들은 다 빼앗기고, 대신 그런 것들로 채워지고 강점되었다. 생각하는 공간이 강점되면 사람은 곧 퇴폐적이 된다. 이방인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지금 이방 세계에서 그런 젊은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학부모들도 속수무책이고, 학교 교사들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고, 그 어떤 국가의 교육 제도도 이 풍조를 어쩔 수 없어 순응할 수밖에 없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게임을 하며 거기에 빠질 때 뇌에서 한 가지 물질이 분비되는데, 그 물질이 사람에게 약간의 환각이 생기게 하여 게임을 하기만 하면 중독되어 항상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한가하거나 멍하게 가만히 있을 때, 혹은 본연의 일을 할 때, 즉 공부나 일을 해야 할 때 그것 대신 게임을 하고 싶어져 게임 하는 것이 차츰차츰 생활의 전부가 된다. 게임을 하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사람이 일단 하기 시작해 빠져들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끊기 어렵고,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있는 사람이든 일단 이 나쁜 습관에 물들게 되면 고치기가 어렵다. …만약 게임이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왜 그것을 끊어 버리지 못하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미혹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바른길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훑어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바른길이 아니다. 그런 게임은 어디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어떤 그릇된 자들은 뭐라고 말하느냐? “게임은 현대 과학이 발달된 상징의 하나로, 과학의 성과입니다.” 이런 해석은 어떠하냐? 이런 해석은 듣기만 해도 역겹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저를 깨우쳐 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 동안 저는 매일 먹고 자고 게임을 하며 게임이 저의 전부였어요. 심지어 꿈속에서도 게임 속의 동료들과 함께 베팅을 하였어요. 실생활과 사이버 세상을 구분 못할 정도였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방식이고 수단인 것이죠. 저는 그때에야 제가 사탄이 쳐 놓은 그물에 걸렸음을 지각했어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런 가상 세계에서 살면 정상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갈 생각만 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알게 되었어요. 게임은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처음에 게임은 유명 스타들로 사람을 끌어당기고 여러 가지 혜택으로 사람을 유인하죠. 그다음에는 실생활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게임 속에서 충족받게 되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 중독되어 마약중독자가 마약 없이 살 수 없듯이 한시도 게임을 떠날 수 없게 돼요. 하나님의 말씀은 게임이 사람에게 주는 피해를 아주 분명히 설명해 주셨어요. 제가 계속 게임에 빠져 있었다면 아마 목숨까지 잃었겠죠.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폐물'인 거죠. 량: 당신이 게임 중독을 치료한 과정을 말해 줄 수 있나요? 묘: 저는 폐인이 되기 싫었어요. 사탄에게 통째로 잡아 먹히기도 싫었어요. 그러나 저는 게임에 너무 깊이 중독되어 있었어요. 혼자 죄에서 빠져나올 능력이 없었죠. 하나님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힘이 없는지를 잘 알고 계셨어요. 하나님은 게임이 인간에게 주는 해악을 일깨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길도 가르쳐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사람은 시험에 빠지거나 사탄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한다. 이 사악한 시대, 더러운 귀신과 마귀가 무리 지어 사는 시대에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가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도록 간구하여 하나님이 너를 보살피고 보호해 너의 마음이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심령과 성실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게임을 하고 싶을 때면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요.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저는 점차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게 되어 사탄의 유혹과 인터넷 게임의 포박에서 해방되었어요. 량: 그럼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후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말씀 좀 해 주시죠? 묘: 하나님을 믿은 후에 있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정상적인 생활 상태를 회복한 것입니다. 『너희의 인성은 너무나 결핍하고 생활은 너무나 천하며, 인성이 없고 식견이 부족하다. 이러면 인성 방면의 것을 장비(裝備)해야 한다. 양심적이고 이지적이며 식견이 있고 말솜씨가 좋고 일을 잘 판단하며 위생을 지키고 정상 사람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다 정상 인성 방면의 지식이다. 너희가 이 방면에서 적합하게 행하면 너희의 인성은 합격된 셈이다. 다른 한 방면은 영 생활을 장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한 모든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가 한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고 그대로 실천했기 때문에 정신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부모와 지금의 남편과도 매일 대화로 낮에 일어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 하며 함께 TV도 보고, 서로 의견도 교환하고 그럽니다. 소통이 많아지다 보니 지금의 시부모님과의 정도 깊어졌어요. 집을 나서도 생소한 느낌이 없고, 사회와 격리된 느낌도 없어요. 이웃들도 제가 활발해지고 수다도 잘 떨어서 그 전보다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그래요. 이제 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이 제 주변에 펼쳐 놓은 간계들을 분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어요. 이제 더는 사탄의 유혹에 안 넘어가요. 인간답게 살아야죠. 저는 마음속으로 저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사탄의 손아귀에서 망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저를 사탄의 그물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립니다.

거짓말 속에 숨겨져 있었던 비밀

거짓말로 스스로를 위장하다 “왕제 씨, 저는 아직 이 설계 초안을 분석해보지는 않았는데요, 혹시 설계 초안에 무슨 문제점은 없었습니까?” 교육훈련실 강사의 질문이 한참 생각의 나래를 펴고있던 나를 깨웠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강사 왕주임이 회의실의 단상 위에서 우리의 설계 초안을 분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회사 직원들의 인사이동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녀의 돌발 질문에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사장님, 부서장님, 동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주목하자, 겉으로는 태연한척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왕주임이 지난번 교육 시간에 질문했을 때, 내가 답변을 못했던 건 건축설계도면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회사의 유능한 디자이너인데, 만약 이번에도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직장생활을 하겠어? 하물며 이번에는 회사 사장님도 자리에 계시는데,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겠어?’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무턱대고 바로 말했습니다. “네, 약간요.” 부서장님은 만족스럽게 나를 쳐다보았고, 강사도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계속 그녀의 분석을 이어갔고, 나는 한 숨을 돌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동료 장판이 미심쩍은 말투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네, 우리는 아무 문제도 못 찾겠던데, 너는 그게 눈에 보였어?”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일부러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오히려 살짝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위장 뒤의 실제 모습을 찾아내다 저녁에 침대에 누웠지만 아무리 해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낮에 일어났던 그 일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너희는 하나님이 정직한 사람을 기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신실한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이 행한 일은 사람이 트집 잡을 것도, 의심할 것도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히 정직한 사람을 좋아한다. 정직하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거짓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사실을 숨기지 않고 다 털어놓으며,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고,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정직하다는 것은 일을 하거나 말을 함에 있어 무엇을 보태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한 것이며, 하나님은 또한 우리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하시고,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을 요구하시며, 거짓말하지 말 것, 사람을 속이지 말 것, 일 처리와 사람됨에 있어 거짓이 섞여서는 안된다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았고, 디자인 원고의 문제점을 분명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왕주임과 사장님, 동료들을 기만하였고, 그 후 동료가 질문하였을 때,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면서도 교활하게 변명을 하며, 자신을 계속 덮어 감추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는데, 나는 간교하게 사람을 기만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반감과 미움을 사게 될 것입니다. 순간, 나는 후회스러웠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로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저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기만하였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회개하길 원합니다...” 기도 후, 나는 내가 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람에게 간사함과 속셈이 있고 늘 유동적인 생각과 사심이 있으며 늘 자신의 체면과 허영심 그리고 이익을 고려한다. 정직한 말을 함에 있어 어떤 때는 두 글자도 그렇게 힘들고 한참 입에 맴돌다가도 말을 꺼내지 못한다. 사람은 이런 것들에 통제받고 패괴 가운데서 사는데 확실히 하나님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능히 사람을 속이고 기만할 수 있었던 것은 간사한 본성 때문이고, 자신의 헛된 체면을 지키기 위하여, 사장님과 동료들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번에도 내가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사장님과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며, 또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닐 것인가! 타락한 성품의 통제를 받은 나는 왕주임의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간단한 “모르겠습니다.”라는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으니, 내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전혀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간사한 사람이 되어선 안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누구에게 어떤 일로 그 사람을 기만하였거나 네가 한 말에 불순물이 있었거나 자신의 속셈이 있었다면, 그에게 찾아가 해부하며 말하여라. “제가 그때 당신에게 한 말에는 제 자신의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사과를 받아 주실 수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부하고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나니, 나의 마음속이 환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길을 명확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만약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하고 기만하였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자신이 그때 거짓말을 하였던 본심을 해부해서 보여주라고 말입니다. 나는 너무나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는 남에게 거짓말하고 기만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데 방해를 받다 이튿날 오전, 우리의 교육과 디자인 원고 분석은 계속되었습니다. 강사가 강단 위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에게 사죄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는 생각했습니다. “사과한다는 말을 어떻게 꺼내지? 사장님과 동료들, 그리고 왕주임이 나를 얕보지는 않을까? 나중에 회사에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치지?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굳게 결심했고 정직한 사람이 되리라 기도하였는데,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고 또다시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어!” 이때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며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막 강의가 끝나려고 할 때, 왕주임이 우리에게 다른 문제는 또 없는지 물었습니다. 나는 사과하고 싶었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또다시 연속으로 세 번을 물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탄의 타락한 성품의 통제와 우롱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강사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입을 뗄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핸드폰의 앱으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말씀에는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행하여야 하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야하며 자신의 이익이나 계획을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옳지 않은 속마음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것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해야 하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원칙이였습니다. 자신을 대조해보니,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진실된 말을 털어놓지 못하고, 잘못을 시인할 용기도 없고, 유난히 자신의 체면만 고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비웃지 않을까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기 원했다면, 동료들이 바라보는 시선따윈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선 저의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면을 내려놓고 정직한 사람이 되다 일주일 간의 교육 학습도 이제 마지막 하루가 남았습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회의실에 앉아서 강사가 지도해주는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이 무척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속으로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동료들 면전에서 강사에게 사과를 하려고 하니 마음이 긴장되어 손바닥에 계속 땀이 났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묵묵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간사한 사람이 되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적합한 시간을 예비해주시고 믿음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이때 뜻밖에 강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를 실행할 기회를 예비해 주신 것이라고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일어서서 그녀가 질문한 문제에 대답을 끝내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왕주임님, 죄송합니다.” 그 순간,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회의실 안에는 적막이 흘렀습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이 무엇일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습니다. “지난번 주임님이 저에게 질문하셨을 때, 사실은 정신이 딴 곳에 팔려 있어서 아무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제 체면 때문에 주임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주임님을 속였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 드립니다.” 나는 단숨에 말을 모두 끝내고 나니,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홀가분해졌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제가 하나님을 흡족하게 해드리고, 양심에 거리낌없는 정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뜻밖에도 사장님은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동료들 앞에서 나를 격려해 주시며 말했습니다. “일을 하는데 실수를 하거나 말을 실수했다고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사람을 얻기란 참 힘들죠. 잘못이 있으면 고쳐야죠, 당신은 정말 정직한 직원이군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앞날이 밝을 겁니다!” 강사와 동료들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동료 장판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며 “네가 이렇게 용기가 있을 줄은 몰랐네, 대단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쓸데없는 체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첫걸음을 내딛게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이제까지 없었던 든든함과 평안과 기쁨이 넘쳤고, 진실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런 누림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어떤 물질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니 정말 좋습니다.

기쁨의 비결, 단점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단점이 비웃음거리가 된다면 아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래 주인공의 이야기로 그 원인을 찾고, 기쁨과 자유로움을 얻어보세요.

재난 속에서 하나님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2015년 8월 12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 제 5길 서해 국제 물류 컨테이너 부두에 있는 위험물 보관 창고에서 강렬한 대폭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피해 지역이 광범위했으며 사상자도 막대했습니다. 저는 이번 재난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머리털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생생하게 나타났음을 체험했습니다. 8월 3일 그날, 제가 예전에 알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부탁 드렸더니 제 4길 아니면 제 6길에 있는 회사에 야간 경비 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밤에 일을 하면 돈도 더 벌 수 있고 낮에 교회의 본분에도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 사장님이 출장을 가서 차일피일 미뤄져 저는 조바심이 나서 전화를 걸어 재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를 몰라서 형제자매들과 얘기를 하니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서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 생각에는 이 야간 일이 괜찮은 것 같은데, 하나님 보시기에도 합당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그렇지 않다면 저를 제지시켜 주십시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믿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겠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저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나니,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 있으며, 사람의 모든 생활도 다 하나님의 눈앞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아니면 죽은 것이든 어떠한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며 새롭게 되고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저에게 행할 길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그 직장에 갈 수 있을지, 언제 일하게 될지는 내가 주관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 빨리 일하고 싶지만 사장님이 하필이면 이때 출장가고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전화를 걸어 독촉하려고 했고 현실을 내가 지배하려 하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잊고 있었구나, 사장님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순리에 따르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사장님께 전화하지 않기로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 후 며칠 안 되어 “8.12 대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폭발 지점이 저의 집과 수 km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저의 집 안방 창문과 베란다 유리가 진동 여파에 금이 갔습니다. 당시, 저는 이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라디오를 통해 폭발 지점이 빈하이신구 제4길과 5길 사이이고 부상자는 부근의 타이다(泰達)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장님이 저에게 소개 시켜 주겠다고 하던 직장이 바로 4길과 6길 사이에 있어서 그곳이 제일 심각한 피해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 생각대로 일찍 일을 했더라면 저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저는 크나큰 보호를 받고 재난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즉시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저를 재난 가운데서 보호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행사는 너무나도 기묘합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나중에야 저는 폭발할 때 발생한 음파로 인해 저희 주택 단지에 있는 마트의 유리가 전부 깨졌으나 저의 집 유리는 살짝 금만 간 것을 발견하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임을 더욱더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안방의 유리가 깨져서 떨어졌더라면 제 머리와 몸에 박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날 창가쪽으로 머리를 두고 깊이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에 감사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너무 큰 행운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비록 저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천박하고 본분을 하는 중에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잘 알고 계시고 긍휼히 여시기고 사랑하고 계시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배치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십니다. 이 일을 체험한 후 저는 사람의 생사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장악 가운데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온 인류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보살핌 속에 있지 않는가? 어느 누가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가?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것인가?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장악하는 것인가?”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될 수밖에 없고 재해의 침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누구도 더는 아름다운 나날을 볼 수 없고 누구도 더는 녹색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다만 음랭한 흑야와 항거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고,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생존의 의탁이다.…… 재난은 나에게서 시작되고, 물론 여전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만일 내 앞에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모두 재난의 고통을 벗어나기 어렵다.” 재난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하나님이 배치하시지만 하나님은 인류가 재난 가운데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람이 모두 하나님만이 사람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근본이고 인류의 유일한 구속이므로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좋은 운명과 좋은 결국이 있음을 알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번 재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기묘한 보호를 체험하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확고히 하였으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저는 변화했고 아이는 철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아이를 돌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매일 아이를 먹이고 대소변을 처리하며 아이의 응석과 말썽, 나쁜 행동들을 대했습니다. 아이를 길러본 적이 없던 저에게 이 모든 것은 골칫덩이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말을 잘 듣고 철이 들게 할지 몰랐습니다. 제 딸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야 저는 딸과 함께 지냈고, 응석받이로 자란 딸에게 나쁜 버릇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편식하고,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면서 무슨 일이든 늑장을 부렸습니다. 딸의 그런 보습을 보고 저는 마음이 속이 탔습니다. ‘이래서 앞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내가 돌보게 됐으니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줘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딸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딸아, 그렇게 멋대로 굴면 안 되지. 엄마 말을 잘 들어야 한단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잖니. 지금은 집에서는 식구들이 다 네게 양보해 주지만 학교에서는 아무도 양보를 안 해 준단다. 그러면 너만 너만 손해라고!” 제가 몇 번이나 타일렀지만 딸은 나쁜 버릇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제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제 말은 하나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말대꾸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딸과 저녁에 공원 산책하러 나갔다가 유치원 친구를 마주쳤고, 딸 아이는 친구와 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밤 9시가 넘었고, 날씨도 쌀쌀해 저는 “오늘은 너무 늦었어.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다음에 놀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친구와 놀려고 했습니다. 저는 ‘멋대로 굴게 둬서는 안 되겠어. 맘대로 하는 나쁜 습관을 반드시 고쳐놓고 말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기 오토바이에 딸을 억지로 태워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딸은 저를 원망하며 화를 냈습니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딸은 여전히 저를 원망했고, 저는 딸의 두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친구랑 못 놀게 하는 게 아니잖아.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나중에 일찍 만나서 놀자.” 아이는 제 말을 듣고는 갑자기 “으앙” 하며 큰 소리로 울면서 말했습니다. “오늘 놀고 싶단 말이에요. 싫어요… 엄마 미워!” 아이는 집을 올라가면서도-층계를 오르면서 울음을 그치지 않고 제가 밉다고 소리쳤습니다… 아이가 이렇게 울자 제 마음도 무척이나 심란했습니다. ‘도저히 말도 안 통하고 너무 제멋대로야.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어른 말은 듣지도 않네.’ 집에 들어선 딸은 아빠를 보자 더 세게 울며 아빠에게 “친구랑 놀고 싶었는데 엄마가 못 놀게 했어요.”라고 일러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애가 왜 이렇게 제멋대로지? 좋게 말해도 안 듣네. 이대로 가다간 안 되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울고 있는 딸을 보니 저는 마음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저는 딸의 나쁜 버릇을 고쳐 주기 위해 혼내고 벌을 주는 교육 방식을 택했습니다. ‘옥도 다듬어야 그릇이 되고, 아이도 맞아야 철이 든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저는 딸을 끌어당겨 두 다리를 때렸습니다-발로 걷어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훌쩍거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가… 나 때려서 너무 아파요…” 저한테 맞아서 아프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니 제 마음은 쥐어뜯긴 듯 아팠습니다. 아이를 껴안고 다치진 않았는지 살펴보고 울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습니다. ‘안 돼. 안아주지도 달래주지도 말자. 안 그러면 더욱 버릇이 없어져서 나중에는 어떻게든 제멋대로 굴려고 할 거야.’ 남편은 아이를 안고 달래며 제게 화를 냈습니다. “얼마나 세게 찼길래 애가 이렇게 아프다는 거야?” 시어머니도 곁에서 말했습니다. “애가 말을 안 들으면 잘 달래야지. 그렇게 애를 때리면 어떡하니?” 남편과 시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저는 “제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줄 아세요? 오는 내내 계속 달랬다고요. 애가 말을 듣는 줄 아세요? 너무 제멋대로예요. 지금 안 고치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거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조급해졌습니다. 딸이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자 저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애한테 나쁜 버릇이 너무 많아요. 온통 제멋대로라고요.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을까요? 때리지도 혼내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애를 가르치라는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은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딸에게 숙제를 시켰는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반나절이 지나도 한 문제도 풀지 않자 저는 속이 상해 딸에게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딸이 갑자기 ‘얌전’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딸이 아주 ‘말을 잘 듣고 철이 든 듯이’ 숙제도 잘 마치자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방법이 통하는구나. 이렇게 하면 버릇을 고칠 수 있겠어.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화를 낼 때는 내야겠어. 애를 좀 겁주면 나쁜 습관도 조금씩 고칠 수 있을 거야…’ 그날 이후로 저는 딸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화를 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쳤습니다. 몇 번 화를 내보니 이 방법이 꽤 효과가 있었고, 아이는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자주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참지 못하고 제게 말했습니다. “애한테 항상 화를 내면 어떡해. 그럼 애한테 안 좋다고.” 하지만 저는 남편의 말에 신경 쓰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화를 안 내면 나쁜 습관들을 어떻게 고쳐? 나한테 화 못 내게 할 거면 당신이 돌봐! 난 신경 안 쓸 테니까.” 매번 이렇게 말하니 남편도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머뭇댔습니다. 저는 예전에 여동생이 자주 쓰던 방법이 생각났습니다. 숫자를 거꾸로 세는 것이었습니다. 딸에게 무언가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는 저도 모르게 숫자를 거꾸로 셌습니다. “5, 4, 3, 2, 1…” 딸 아이는 항상 제가 “1”을 말하기 전에 제 말대로 행동했습니다. 이 다섯 숫자가 끝날 때까지 제 말대로 하지 않으면 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의 “포악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다섯 개 수를 세는 순간이 오면 딸은 곧바로 제 말대로 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매일 ‘말도 잘 듣고’ 나쁜 버릇도 ‘고쳐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던 옛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무래도 이 방식이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저는 집에서 수없이 “5, 4, 3, 2, 1…”을 외쳤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딸의 성격이 사납게 변해 버렸습니다.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잘못 쓴 글자를 제가 지우자 아이는 갑자기 불같이 큰 소리로 화를 냈습니다. “반밖에 안 틀렸는데 그걸 왜 다 지워요?” 제가 말했습니다. “다 안 지우면 어떻게 쓰려고?” “반만 지워도 되잖아요.” 짜증을 내는 아이의 말을 듣자 저도 화가 나 지우개를 던지며 말했습니다. “네가 직접 지우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이렇게 말한 뒤 저는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소파에 채 앉기도 전에 아이는 저는 때리며 말했습니다. “나쁜 엄마, 나쁜 엄마. 맨날 나한테 화만 내. 저한테 말 좀 잘해 주면 안 돼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내가 잘 얘기하면 네가 듣니?” 이때부터 아이의 성격은 무척 사나워졌습니다. 항상 사소한 일로 제게 짜증을 내고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점점 저와 어울리기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항상 할머니 댁에 갔고, 집에 있을 때도 아빠와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저는 너무 속상했습니다. ‘내가 이러는 건 다 딸을 위한 건데 어째서 나랑 잘 지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나쁜 버릇을 고쳐 주려고 했을 뿐인데 버릇을 고치긴커녕 성격만 더 나빠지고 있어.’ 할 수 없이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고 철을 들게 하려고 좋은 말도 해보고 화도 내보았습니다. 하지만 버릇을 고치지도 못하고 갈수록 성격만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제가 틀렸단 말입니까? 이렇게 아이를 대하는 게 잘못됐을까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사람 앞에서 화를 내든지 뒤에서 내든지 모두 서로 다른 속셈과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위신을 세우거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이미지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에 기준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함부로 화내고 기준도 없다. 화내고 싶으면 화를 내는데, 아주 제멋대로이고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 어쨌든 사람이 내는 화는 다 사람의 패괴 성정에서 온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든 화는 다 혈기와 천연적인 것에 속하므로 정의와 비정의를 논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본성 실질에는 진리와 합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화를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행동하는 출발점은 패괴를 수호하지 않기 위한 것이 하나도 없고, 패괴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이 이론상으로 얼마나 정당하든지 그것을 하나님의 진노와 함께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이 노를 발할 때, 사악한 세력은 제지당하고 사악한 것은 훼멸되지만 정의롭고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 지속된다.』 저는 드디어 아이가 사납게 변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시는 화만이 정의로우며, 긍정적인 것을 지키고 이어나갈 수 있으며, 부정적인 것을 막고 없앨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는 화는 겉으로 아무리 많은 이유가 있더라도 모두 불순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육체와 본성에 속하고 타락한 성품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라는 이미지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제가 택했던 거친 교육 방식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스트레스를 주고 사나운 성격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 방식대로만 아이를 가르치고 버릇을 고치려고 했는데, 아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모두 제가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나쁜 버릇은 어떻게 고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게 살포시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滋養)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생존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장악 중에 있고,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의 안중에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는지의 여부를 떠나 생명이 있는 것이든 혹은 죽은 것이든 그 어떤 것도 다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되고 새롭게 되며,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고 나서야 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 역시 하나님께서 장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를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 앞에 인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건 어떨까?’ 아이에게 어떤 나쁜 버릇이 있든 다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모든 걸 이루고 바꿀 수 있는데, 제 방식대로 아이를 가르치고 나쁜 버릇을 고치려 들었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대하고 자기 가족을 대하는 것도 일반 형제자매를 대하는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비록 책임이 있고 혈육 관계가 있지만, 서는 위치와 입장이 친구나 일반 형제자매와 같으면 된다. 그들과 같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박을 주면 안 되고 단속하면 안 되며, 늘 자녀의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자녀가 실수하는 것, 말을 잘못하는 것, 유치하고 미숙한 일을 하거나 우매한 일을 하는 것은 용납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 혼내고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쳤던 방식을 생각해 보니 모두 가장의 입장에서 강제로 아이를 가르치려 한 것이었습니다. 나쁜 버릇을 고치고 말을 듣게 만들기 위해 저는 지금껏 아이와 좋게 대화하거나 아이의 속마음을 이해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제 방식을 따르기만을 바랐고, 아직 어리고 철이 없으니 제 말을 들어야만 바뀌고 좋은 습관을 갖게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파괴된 인류의 한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했고, 진리에 맞는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정말 잘못했고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제 방법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손에 있으므로 하나님께 아이를 전해 맡기겠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어머니의 책임을 다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딸을 인도하겠습니다. 그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이것들을 깨닫자 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제멋대로 굴고 말을 듣지 않아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이에게 마음을 터놓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며 저도 모르게 “5, 4, 3…” 하고 숫자를 세게 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도중에 멈추었습니다… 한 번은 밥을 먹으려고 딸을 불렀는데 딸이 가지볶음을 보고 불만스럽게 말했습니다. “엄마,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가지인 거 몰라요? 안 먹을래요.” 이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딸을 보니 저도 화가 났습니다. ‘편식하는 습관은 왜 아직도 여전한 거야?’ 하는 생각이 들자 딸에게 신경질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차분하게 앉아서 대화하고 이야기하고 교통하며 찾고 구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자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내 딸, 왜 가지를 먹기 싫어하지?” 딸이 말했습니다. “그냥 싫어요. 가지는 맛이 없어요!” 저는 이어서 말했습니다. “편식하면 안 되는 거야. 맛없다고 안 먹으면 안 되지. 모든 음식은 건강에 좋은 거란다. 맛없다고 안 먹어 버리면 나중에 몸에 영양이 부족해진단다.” 딸은 작은 고개를 들고 말했습니다. “진짜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딸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그럼 먹을래요. 먹고 튼튼해져야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했더니 아이는 점점 철이 들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제게 말대꾸를 하지 않았고 더는 꾸물대지도 않았습니다. 학교에 갈 때는 오히려 빨리 가자고 저를 재촉했고, 집에서는 조금씩 웃음소리가 퍼졌습니다. 한 번은 딸이 앳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가족이 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너무 좋아요. 엄마도 화를 안 내잖아요. 우리는 진짜 사랑하는 가족인 것 같아요!” 딸의 이 말을 들으니 저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저도 진심으로 딸에게 말했습니다. “맞아. 앞으로 우리 집은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자꾸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