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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섬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계산서 이야기에서 깨우침을 얻다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는데, 그 계산서에는 아이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을 돌봐 준 내용과 함께 자신에게 총 50불을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아이에게 50불을 주면서 계산서 한 장을 같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팠을 때 같이 있어 주었던 일,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던 일, 아이를 위해 기도했던 일 등 아이가 지불해야 할 내역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 항목의 청구 금액은 모두 0불이었습니다. 계산서를 본 아이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받은 50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저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나이 어린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를 용서 안 할 수 없지.’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물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은 가격이 매겨지고 우리도 당연하게 자신이 치른 대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어떤 때는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임에도 우리의 교환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정한 거래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다가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교회의 일이 많아 저는 매일 바쁘게 보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15km 떨어져 있는 다른 자매님의 집에 6시까지 도착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한 겨울은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특히 동이 틀 무렵엔 밤 사이 추위가 삼켜 버린 땅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두꺼운 털옷과 코트를 입었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맞는 매서운 바람은 몸속 깊이 들어와 살을 에는 듯 얼음 동굴에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에 감각을 잃어 몇 번이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몸을 녹인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추운 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설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도 다 보고 계시겠지?’ 그러다가 하나님을 믿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헌신을 했으니 마지막에 큰 축복과 상을 받을 거고, 주님이 오셨을 때 분명 빛나는 면류관을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니, 이런 날씨도 별로 춥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에게 준 계산서’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이야기 속의 아이가 다른 게 뭐가 있지? 나도 겉으로 고생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축복과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건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 문득 예배 드릴 때 린 형제님이 읽어 주었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말 마음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가 조금 고생하고 헌신했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바랐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가정과 제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청춘을 바치고 고통과 환난을 겪어 왔던 것이 제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순종해서가 아닌, 이를 토대로 하나님께 축복과 상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 고생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면 제 공로로 기록해 두고, 항상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복과 상을 받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사역의 길에는 불순물과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이익만을 좇는 비겁한 소인배였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겁했죠.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을 섬기고, 본성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이익만 좇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보답을 받으려고 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바친 마음에도 개인적인 욕심과 불순물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 상과 축복을 받을 생각만 했습니다. 이는 기꺼이 봉헌한 것이 아니며 이런 행동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보답이 없고, 그저 냉혹한 거래만 있을 뿐이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다 보답한단 말인가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그는 인류를 자신의 둘도 없는 가까운 존재로 삼았다. 즉, 인류가 말하는 가장 친한 존재로 여겼지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창조주이고 인류를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듣기에 조금 등급의 차이를 띠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이런 관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또한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 대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바라는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나 다른 서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행했는지,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고 있는지를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표명해 사람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그를 찬미하게 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심하거나 극심한 아픔을 느낄 때에도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염려를 잊지 않고 그런 ‘상심’과 ‘아픔’을 홀로 묵묵히 감내한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게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 설령 인류가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 준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은혜에 대한 감사나 보답을 받으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망망대해에 놓여 있던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돼야 하는지 알게 해 주셔서 사탄의 고통 속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된 길에 들어서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조금 고생하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이 다시 드러났고, 이를 조건으로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가정이 화목하고 가족이 편안하기만을 구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수많은 계산서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음에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공기와 햇빛, 비와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분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인류를 수천 년 동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후 인류는 계속 죄를 짓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정죄당하고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죄 없는 육신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묵묵히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고, 말씀과 역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많은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순종하기만을 바라셨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앞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역을 위해 고생했다며 하나님께 바라고 은혜를 달라고 할 수 있지? 이건 정말 이성이 없는 생각이 아닌가?’

우리가 가져야 할 이성과 추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 너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당할까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과 흥정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고, 우리가 상과 축복으로 바꾸는 방법도 아니라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본분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고, 또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올바른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기꺼이 그를 위해 바치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뜻을 헤아려야 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인성과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 그의 마음에 위안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추구이며, 그렇게 살아야만 사심 없는 하나님의 공급과 베풀어 주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헌신을 다하며 사역했고, 교회들을 목양하며 자신의 평생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에게 핍박도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했죠. 베드로가 한 모든 행동은 주님과 거래를 하거나 천국의 복이나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의 뜻을 따르고 그가 맡기신 일을 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고, 주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추구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렸고 마침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정말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려면 우선 방향과 목표를 올바르게 잡고,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길을 추구해 기꺼이 그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되이 본분을 이행하며 그가 맡기신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대와 어긋나기 때문에 끝까지 믿고 나서도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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