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2019년 03월 29일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누가복음 4장 22절에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었고, 요한복음 3장 2절에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16장 13절과 14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 당시 유대 백성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 어떤 사람은 선생이라고 했으며, 또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짐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성경에 성령께서 증거하신 기록이 있습니까?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누구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는 성령의 계시를 받아 “주는 그리스도시요…”(마태복음 16:16)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베드로의 답변을 인정해 주셨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7)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도 선생도 아니며, 더욱이 선지자도 아니고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다,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 먼저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보겠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정상 인성을 가진 그리스도란 정상 인성과 정상 이성, 정상적인 사유를 가진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이 실체화한 것이다. ‘실체화’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고, 영이 육신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에 거하면서 그 육신을 통해 신성 사역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바로 ‘실체화’이자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으로써 겉보기에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상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육신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고, 진리를 선포하시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으며, 보통 사람들과 같은 성장 과정이 있으며 정상인의 의식주 그리고 희로애락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그분의 정상 인성의 일면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29세가 되었을 때 직분을 시작하셨고,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또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으며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온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서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신성 안에서 행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권능과 위력이 있으며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줄 수 있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으며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입으신 육신은 그 어떤 육에 속한 사람과도 다르며, 그분은 완전히 하나님 자신을 대표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속성(원문: 所是)을 나타낼 것이다.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혹은 참 말씀인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이 육신이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겉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행하신 사역과 선포하신 말씀 그리고 드러내신 성품에서 보는 것입니다. 아래 글에서 이 방면에 관해 자세하게 교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으로 볼 때

율법시대 말기에 이르러 율법 아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죄를 범하고 죄 가운데 살면서 스스로 헤쳐 나오지 못하고 못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음을 당할 위험에 직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인자가 되어 인간 세상에 오셔서 사역하셨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수 있었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사함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더 이상 율법에 의해 정죄되어 죽음을 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서 보면 그분의 사역은 선지자를 포함해 그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오로지 성육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능과 위력이 있어 예수님이 바다와 바람을 꾸짖자 풍랑이 바로 잠잠해졌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창조주의 권능과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 한마디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물질세계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또 음부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능의 상징입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 후에 부활한다고 알려 주셨고 나중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후에 반드시 이루어지며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이러한 권능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여기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다 진리이므로 사람에게 실행의 길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전에 말씀한 것과 같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 즉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 자들이 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귀하게 여기며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결국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알려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천국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유로하신 성품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은혜시대에 행하신 구속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드러내셨습니다. 비록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오천 명이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호기심과 이적 및 기사를 보고 싶어서 따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셨지만, 그래도 그들을 만족시켜 주었고 잘 대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믿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훼방을 놓으며 모독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주님의 태도는 책망과 저주였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2:32),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범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공의와 위엄, 진노의 성품을 드러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태도를 드러내신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은 생생한 것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을 드러내실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여기까지 말했으니 우리는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초에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성육신과 그리스도에 관해 믿지 못하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혀 구하고 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예수님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줄곧 자신들 관념 속의 메시야가 그들 가운데 강림하기만을 기다렸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도 메시야의 오심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오셨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신다고 하신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예언한 말씀과 같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24) 이 예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역시 인자의 모습, 즉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강림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당초에 예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판단했던 바리새인들 혹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여겼던 신도들처럼, 말세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는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겉모습은 본질을 결정할 수 없다. 더구나 하나님이 한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할 리 없다. 예수의 겉모습이 바로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모습이 아니었더냐? 예수의 용모와 차림새가 예수의 진짜 신분을 설명할 수 없지 않았더냐?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것도 예수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의 겉모습만 봤기 때문이 아니더냐? 나는 하나님의 현현을 찾는 형제자매들이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현대의 바리새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의 재림을 어떻게 맞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어떻게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될지 정신 차리고 고민해 보길 바란다. 이는 예수가 구름을 타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모든 사람의 책무다.』 이 단락의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데 실행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사모하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신분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왜 어둡고 사악합니까?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면 훼멸되어야 합니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로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배치되면서 사탄을 경배하였으니,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었고 즉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잃었다……』

3가지만 알고 기도하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바라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얻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래 3가지 원칙만 알게 된다면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말세 역사를 이스라엘에서 하시지 않고 중국에서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말세의 사역을 중국, 이 가장 어둡고 가장 낙후한 곳에서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어두운 곳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

왜 제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집에서 항상 사소한 일로 까닭없이 화를 냅니다. 남편과 아이한테서도 단점이 많이 보여 주님께 저의 마음을 고요히 해 달라고 기도드리고, 남편과 아이의 나쁜 습관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왜 주님의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한효   한효 자매님: 우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기도의 원칙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이야기 해놓고 주님께 기도드렸다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기도를 좋아하실지는 우리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와 똑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말하고 싶으면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람과 어떻게 이야기해야 정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질지 알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아무 목표 없이 말을 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사실 진실한 기도는 주요하게 세 가지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부분에 힘쓰고, 세 가지 부분을 따라 연습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분명 주님의 응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실행하고, 기도를 드릴 수 있고, 이러한 기도는 주님이 분명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 없이 말하거나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기도는 주님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와 같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지 계속 우리의 생각대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처해진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시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 33) 2.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려면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드리기 전에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과정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로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현실적 뜻에 따라 기도드린다면 우리는 쉽게 주님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도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인성있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 구해야 합니다. 빈말을 하거나, 큰소리를 치거나, 하나님에게 함부로 약속의 말을 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채권자 취급하며 요구하는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려면 하나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해야 하고,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을 바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응답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이런 정직한 마음을 보시고 우리를 깨우치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은 때가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응답이 항상 우리의 상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주님께 기도드린 후 주님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현실의 어려움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리고 나서도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아니면 더 긴 시간이 지나서야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계속 주님께 기도드리며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한효 자매님, 며칠 전 제가 겪었던 체험을 나눠드릴게요. 얼마 전, 저도 집에서 괜히 화가 났고, 항상 가족들의 단점에 눈이 갔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바쁜데 남편은 나에게 관심도 없고, 가사일을 도와주지도 않아 화가 났죠. 나중에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런 환경에서 제가 무엇을 배워야 하고 어떤 진리의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화가 납니다. 남편의 단점만 보이고 항상 남편을 변화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주님! 저를 깨우쳐 주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 후에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태복음 6:14)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항상 남편의 단점만 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제가 이러한 환경에서 자신의 단점을 알기를 바라고, 사람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남편만 쳐다보며 항상 남편이 잘못했고, 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의 우롱 속에서 살았습니다. 항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원망했지만, 사실 남편도 요즘 야근이 많아 피곤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편에게 어떻게 관심을 가질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고 오직 남편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탄의 이기적인 본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은 저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지금 제 남편이 나쁜게 아니라 제가 나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볼 줄 모르고 항상 남편만 탓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말씀대로 남편의 결점을 보지 않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진리를 행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신기하게도 제가 이렇게 기도를 드린 후 남편을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의 원망과 불만도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제야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정확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금식 기도를 드렸으나 해결되지 않는 이유

정신 최근, 림하는 교회를 부흥시키고, 형제자매가 강건해지고, 자신의 신앙이 굳건해지도록 얼마나 많이 금식 기도를 드렸는지 자신도 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그는 언제나 주님의 동행과 인도하심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설마 자신의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 걸까요? 림하는 금식 기도 문제로 당혹스러워하며 호숫가에 있는 정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동역자 효진이 그를 몇 번 불러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효진이 관심을 보이자, 림하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 몇 년 교회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요. 저 역시 연약해요. 이번에는 4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는데 모든 상황이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요. 저도 주님의 뜻을 모르겠어요. 제 금식에 경건함이 부족한지 고민도 했어요. 아니면 주님이 저의 믿음을 시련하고 계신 걸까요? 지금 저는 마음이 연약하고 주님께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림하 자매님, 왜 우리가 금식 기도를 하며 주님께 교회가 부흥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리는데도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대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고,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기만 하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러나 전제는 우리의 기도가 주님의 뜻에 합당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고생스럽게 금식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을 거예요. 지금 교회의 황량함은 한두 교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교계 전반에 퍼져 있는 문제예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에요. 현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회의 황량함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은 또 무엇인지 구하고, 아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금식 기도를 드려도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굶어서 병이 날 거예요!” 림하가 곤혹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그럼 교회의 황량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죠?” 효진이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저는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봤어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태복음 24:12),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 추수하기 석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어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아모스 4:6~7) 바로 이러한 구절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불법적인 일이 점점 많아져서, 도둑질하는 사람과 강간하는 사람이 나오고, 목사와 장로, 유명한 설교자조차도 계명을 지키지 않고, 성경의 지식만 설교하며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증거해서 형제자매에게 숭배를 받으려고 해요. 하나님은 전혀 높이지 않고, 증거하려고 하지 않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형제자매를 자신의 권위 아래 두었고, 하나님 말씀은 진작에 벗어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교회가 어떻게 황량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고, 주님이 돌아오시는 결정적인 시기에요.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고, 성령의 역사도 옮겨갈 수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아서 어둠 속에 떨어졌어요. 마치 율법시대 말기에 유대교 지도자가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은 오직 사람의 유산만 지키고 하나님의 계명은 버렸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으며, 소, 양, 비둘기를 매매하고 돈을 바꾸는 곳이 되어버린 성전은 점점 황량해졌죠. 이것이 성전이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린 주요 원인이에요. 또, 예수님이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이때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다시 성령의 역사를 얻고 평안과 기쁨과 희락을 누릴 수 있었어요.” 림하가 놀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의 뜻은 지금 교회의 황량함이 율법시대의 말기와 똑같이 목사와 장로가 주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께 버림받고 진작에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주님은 이미 돌아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네, 그래요,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교회의 상황은 우리가 잘 알고 있어요. 형제자매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같이요. 강단 위에서 하는 설교는 항상 똑같고, 강단 아래서는 잡음이 끊이지 않아요. 젊은이들은 자꾸 손목시계를 보고, 노인들은 쿨쿨 잠을 자죠. 7시에 예배를 시작하면 8시에 도착하거나, 9시에 와서 듣는 사람도 있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슬그머니 도망쳐요. 만약 성령이 아직도 교회에서 역사한다면 이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목사와 장로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고, 형제자매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끌어들여서 마지막에는 주님에게 버려지고 도태될 거예요.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금식 기도를 드려도 다 소용없어요!” 말하면서, 효진은 태블릿 PC를 켜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루고자 한다. 즉, 전 우주의 사람들이 다 와서 하나님을 알현하게 하고, 다 와서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한다. 하나님이 다른 곳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될 것이다. 요셉에게 먹을 양식이 있었기에 사람마다 먹을 것을 얻으려고 그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 말씀을 찾게 된다. 온 종교계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명수의 원천이며,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원천이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이 단락에서 우리는 더욱 분명히 알 수 있어요. 현재 교계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해 있어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구하고 생명수가 흐르는 원천을 찾는 거예요. 그래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가 있어요. 우리는 지금 예언에서 말씀하신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어요. 지금 당장 할 일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계속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다리다가는 정말 바싹 말라죽을 거예요!” 림하는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 자매님의 나눔은 성경과도 일치해요. 계시록에 기록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라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교회의 황량함은 확실히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불안한 외부 상황과 점점 커지는 재난 등 여러 가지 조짐으로 볼 때,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은 모두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능동적으로 구하고 알아보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어린양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까요?” 효진이 말했습니다. “계시록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세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시록 2:7) 또, 요한복음에도 있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들을 통해서, 마지막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여러 교회에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을 받고, 타락에서 벗어날 모든 진리를 알려주시고, 모든 비밀, 예언, 인류의 결말, 종착지를 다 드러내신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성령이 가장 최근에 하신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시는 진리의 공급을 누려야 해요. 이렇게 해야 교회의 황량함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림하가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반평생 성경을 읽었는데도 어떻게 이런 비밀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주님은 벌써 우리에게 알려주셨네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많은 진리를 선포해 우리에게 공급해 주신다고요. 이것은 계시록의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록 7:16~17)라는 말씀을 이룬 것이 아닌가요?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물을 얻기만 하면 교회의 황량함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어요. 우리의 영적인 목마름의 문제는 금식 기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주님, 감사합니다!” 림하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었습니다. 힘들게 금식 기도를 하고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던 날은 드디어 지나갔습니다. 석양의 어스름이 그들을 비추었고,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3가지 방법 -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것인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없기에 사람이 성경을 지키고 숭배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생명의 도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지니고 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 자신이 바로 생명이고 진리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의 인도와 부축 그리고 공급이 없다면, 네가 얻는 것은 단지 글귀이고, 도리이며, 더욱이 사망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은 동시에 공존한다. 네가 만약 진리의 근원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생명의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네가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온몸은 상상과 관념을 제외하고 너의 육체뿐인데, 비린내로 가득 찬 너의 그 육체이다. 너는 알아야 한다, 책의 글귀를 생명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歷史)의 기록을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로 하나님의 현실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발표한 말씀만이 진리이고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역사 방식이다. 네가 하나님의 지난 시대의 말씀 기록을 오늘에 가져와 지킨다면, 너는 바로 고고학자이다. 그러므로 너를 역사문물 연구 전문가라고 하면 가장 적합하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이 이전에 역사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이전에 인간 세상에서 역사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이전에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알려 준 도만 믿고, 오히려 하나님이 현재에 역사하는 동향은 믿지 않으며, 하나님의 현재 영광의 얼굴은 믿지 않고, 하나님이 현재에 발표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기 때문에, 너를 뛰어난 비현실적인 공상가라고 해도 나무랄 데가 없다. 만약 지금 네가 여전히 사람으로 살게 할 수 없는 그 글귀를 지킨다면, 너는 만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쓸모없는 인간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옛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꽉 막혔기 때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 『이 3단계 구원 사역 중에서 제1단계 율법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차이가 많은데, 구원 사역의 겉면만 조금 있을 뿐 결코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는 사역에 착수한 것이 아니다. 제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까닭은 율법 아래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 뿐 더 많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고, 율법시대의 사역이 사람의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고 더욱이 어떻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 내야 하는가 하는 사역에도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정에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한 것이다. 그 단계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고, 정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다지 큰 관련이 없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여호와가 한 사역은 율법을 정하여 직접 사람을 인도하고 목양함으로 사람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하고, 정상적으로 여호와를 경배하게 한 것이다. 율법시대의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이었다. 그는 단지 최초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인도하고, 그 사람들을 가르치고 목양하였기 때문에 그가 말씀한 내용은 단지 율례와 법도 그리고 사람됨의 상식이었을 뿐,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진리는 전혀 아니었다.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은 사탄에게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행한 율법 사역은 단지 구원 사역의 가장 기초적인 것이고 최초의 구원 사역이어서 사람의 생명 성정 변화에는 거의 관련되지 않았다.』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에 관해 복음을 전하였고,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완성하였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예수는 서로 상관이 없기 때문에 서로 맞는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예수는 당시에 은혜시대의 제자들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일련의 은혜시대의 도만 말하였다. 그가 한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각 시대에 사역을 하는 데는 분명한 범위가 있는 것이다. 그는 본 시대의 사역만 할 뿐, 결코 다음 단계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그의 각 시대에서의 대표적인 역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예수는 당시에 말세에 어떤 징조가 있다는 것만 말하였고, 어떻게 인내하고 어떻게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만 말하였지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예수는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사역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어떤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교훈할 때는 모두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설사 성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가 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이 아니고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인류의 속죄제로만 되었을 뿐 인류의 말씀 원천이 되지는 않았다.』 <역사 이상 (1)>에서 발췌 『예수가 와서 그 단계 사역을 하였지만 결코 하나님의 전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그는 표적과 기사를 조금 행하였고 말씀도 어느 정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그는 하나님의 일부분을 대표한 것이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대표한 것은 아니며, 하나님을 대표하여 한 부분의 사역을 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기묘하고 너무나 위대하여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며, 그 밖에,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부분의 사역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깨닫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면 참 도를 찾은 것이라고 여긴다. 사실, 정말로 그렇게 간단한 것일까? 성경의 실제 내막이 어떤지를 사람은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일을 기록한 역사(歷史)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의 증거일 뿐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역사의 취지를 깨달을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는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로,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에 대해 기록되었다. 신약에는 예수가 땅에서 했던 사역을 기록한 4복음서도 있고, 바울이 한 사역도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역사(歷史)를 기록한 것에 속하지 않는가?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에 속하게 되고,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歷史)일 뿐이다. 역사(歷史)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歷史)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지금 하고자 하는 사역을 알지 못하고,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歷史)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네가 오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죽은 글귀 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歷史)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도 아닌 이상,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좋다.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오늘날의 뜻을 찾고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성경에는 비록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과 같은 생명에 관한 말씀 책이 일부분 모아져 있고, 또 사람들이 그런 책 속에서 공급을 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지만, 그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또한 구시대의 책이다. 그런 책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한 시기에만 적용될 뿐,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 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용될 뿐, 마지막 때의 하나님나라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자들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하나님나라시대의 성도들에게는 공급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여호와의 창세 사역처럼, 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처럼, 그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고 흘러갈 때가 있는 것과 같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 사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십자가의 사역에 어떤 설득력이 있거나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든, 사역은 어디까지나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디까지나 시대이다. 사역은 계속 어느 한 기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생명의 말씀’, 즉 ‘사도 서신’, ‘4복음서’를 오늘에 가져왔을 때는 모두 역사책이 되고 모두 노황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노황력이 어찌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런 노황력이 아무리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줄 수 있고, 아무리 사람을 십자가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할지라도 모두 시대에 뒤처진 것이 아닌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더 이상 그 노황력을 미신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 노황력은 너무 ‘낡아서’ 너를 새로운 사역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고 짐만 될 뿐이며, 너를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진입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를 낡은 종교적인 회당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뒷걸음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관한 논법 (4)>에서 발췌 『너는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내가 너에게 유익한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데려올 수는 없다.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일 뿐,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결코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줄 수 없고,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도와줄 수도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왜 오늘날의 하나님의 역사를 찾지 않는가? 오직 하나님의 역사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몇천 년이나 되었어도 변화가 전혀 없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관한 논법 (3)>에서 발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오늘날 성령의 말씀을 들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였는데, 너희가 들었는가? 하나님이 말세에 말씀 사역을 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성령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령이고,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전에 말한 성령의 말씀은 바로 오늘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많은 그릇된 사람들은 성령의 말씀이라면 마땅히 하늘에서 음성을 발하여 사람에게 듣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성령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는 것이다. 성령이 사람과 직접 말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시대에도 여호와가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 이 시대에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역사하려면 말씀이 육신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사역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영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역사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다. 현재는 성령의 시대라고 여기면서도 성령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막연한 신앙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성령이 직접 말씀하고 역사하기만 바라고 오히려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영원토록 새 시대에 진입할 수 없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철저히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해 놓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長久)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 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만 지키려고 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원 상태만 유지하려고 하면서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歷史)를 도태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과 적이 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은 호호탕탕하여 용솟음치는 파도와 같고, 진동하는 우렛소리와 같은데, 네가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면서 만일의 요행을 바란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누렇게 된 너의 그 책 속의 글귀가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시대를 뛰어넘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하나님 역사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게 하겠느냐? 또 어찌 너를 이끌어 천당에 가게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잠시 너에게 위안이 되게 할 수 있는 글귀일 뿐, 네게 생명을 얻게 할 수 있는 진리가 아니다. 네가 읽는 글귀와 경문은 너의 혀를 충실케 하는 경문일 뿐, 인생을 알게 하는 철리(哲理)가 아니고 더욱이 너를 온전케 되게 하는 길도 아니다. 그런 차이가 설마 너를 반성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네게 그 속의 비밀을 깨닫도록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네 스스로 하늘에 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네가 스스로 천당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천륜지락(天倫之樂)을 누릴 수 있겠느냐? 지금 너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권하겠다. 너의 그 꿈은 이제 그칠 때가 되었다. 너는 지금 누가 역사하고 있고, 누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생명도 얻지 못한다.』 <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베풀어 줄 수 있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