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2019년 01월 29일


 

저는 주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매일 같이 기도하고, 성경 말씀 보고, 또 주님을 위해 헌신도 해 왔습니다. 근데 주님과의 관계가 멀게만 느껴졌었어요. 기도하거나 성경을 볼 때는 종종 딴생각에 빠지고 생활 속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방해를 받아서 정말 마음을 주님 앞에 평온히 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몇 년 동안은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별로 깨닫지도 못하고 영적인 생명도 크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근데 제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우리가 영적인 훈련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데에 진입해야 하더라구요.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고, 영적인 삶이 정상 궤도에 들어가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점점 자라날 것입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요? 제가 책에서 얻은 실행의 길을 여러분과 구체적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기도에 집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매일 주님께 기도드리실 겁니다. 하지만 기도를 형식적으로 할 때가 많고, 진심으로 마음을 평온히 하여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마음속 깊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모르는 문제나 어려움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구하지 않고,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기 위해 구하지 않으며, 말씀에서 더 많고 더 새로운 것들을 깨우쳐 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무 생각없이 무릎을 꿇고서 상투적인 말들을 중언부언 늘어놓는 경우가 많죠. 때로는 일이나 외적인 여러 가지 상황들로 바빠 서둘러 기도를 끝내려고 간단히 두어 마디로 얼버무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무릎은 꿇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마음을 주님 앞에 평온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영적인 소통이 없이 주님께 얼버무리고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증오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여기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정직하고 오직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한 생각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마음에 어떤 생각이나 계획이 있든지 모두 하나님께 완전히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관심을 보이시고, 우리로 성령의 감동을 더 많이 받게 하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에서 깨우침을 받고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돈이나 육적인 일에 마음을 뺏겨 교회의 사역에 마음을 쓰지 못할 때, 우리는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면 됩니다. ‘주님, 저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항상 육의 지배를 받고, 저의 생활과 미래를 계획하느라 온전히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이 육적인 것을 등지고 주님의 뜻을 살피는 것을 보면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도 주님의 뜻을 살피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저의 믿음이 너무 작으니,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고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육적인 지배에서 점차 벗어나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 드릴 때는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환경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따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6) 이 말씀처럼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는 마음을 평온히 하고, 마음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평소에 우리는 자주 성경을 보지만 그 가운데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대충 한 번 읽어 본 후 글자의 의미만 이해하고 끝나죠. 심지어 어떤 때는 눈은 말씀을 보고 있고, 입으로도 말씀을 읽고 있지만 마음은 세상을 떠돌고 있어 다 읽고 나서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묵상해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노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해 하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진입해야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마음으로 묵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오랫동안 믿어 왔고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봤어도 하나님의 뜻은 별로 알지 못하고, 실행해야 할 많은 진리 앞에서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을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그 말씀에 내포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생명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입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태복음 19:24) 우리는 주님이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하셨는지, 하나님의 어떤 뜻과 성품을 나타내신 건지, 우리에게는 어떤 효과를 얻으려고 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물질만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시대에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내려놓을 수 없고, 질적으로 좋은 삶의 조건을 포기할 수 없어 주님을 믿으면 영생이 있고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물질이 아니라 생명을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중요시하다 그 물질을 얻고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점점 이해하게 되고,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뜻대로 더 잘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간절한 마음의 기도,

3. 일이 닥칠 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훈련을 일상생활 가운데서 제한적인 시간 내에서만 하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이와 무관하게 외부 일이나 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면 성경과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을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훈련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진리에 따라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 되는지를 장악한 다음, 자신을 바로잡아 정확한 방식에 진입해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일언일행, 일거일동, 마음과 생각을 성찰하고 자신의 진실한 상태를 파악하여 성령의 역사 방식에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인지를 가늠함으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고, 사람의 본질을 인식하고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실제적인 체험에 진입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 자신을 배반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항상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임하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만 자기 자신의 진실한 상태와 부족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임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실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주님과 정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주님 앞에서 살 수 있고, 사탄의 시험과 계략에 빠지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욥이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미움을 사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욥은 자녀가 연회를 베풀어 먹고 마실 때 그것을 멀리 했고, 하인을 보내 자녀를 깨끗게 하도록 하고, 본인은 또 자녀를 위해 번제를 지냈습니다. 심지어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 온 산의 소와 양, 막대한 가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도 아주 고통스럽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했지만, 계속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심케 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대적하는 일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욥은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아름다운 증거를 했고, 이에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로써 욥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는 복을 받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는 기회도 얻었고, 또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받지 못한 큰 상까지 받았습니다.

4. 매일 자신의 문제점을 반성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매일 밤 주님 앞에 나와 하루동안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떤 일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해 진리에 합당한 일을 했는지, 또 어떤 일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주님의 뜻을 어겼는지를 성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노트를 준비해 이런 문제점들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인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거기에 맞는 말씀을 찾아 성찰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지내면서 스스로는 형제자매들을 아주 진실되게 정직하게 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밤에 책상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이익 때문에 형제자매에게 거짓말을 했던 일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간사하고 타락한 성품을 알게 되는 거죠. 또,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미워하시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며, 단순하고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형제자매에게 다가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털어놓으면서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매일 자신이 어떤 타락한 일을 했는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이런 것들을 사소한 일로 여긴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라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항상 반성하며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점점 자라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갈수록 가까워지고, 또 점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드린 이 4가지 방법이 바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는 데 진입하는 방향과 실행의 길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죠?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실행해 보셔서 유익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정

어떻게 실행해야만 진리를 깨닫고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는 여간 간단치 않다. 글자 표면으로 하나님 말씀을 그럴듯하게 해석한다 하여 하나님 말씀을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글자 표면으로 아무리 해석해도 사람의 상상이고 사람의 사유이니 쓸데없다! 하나님 말씀을 해석하는 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데는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관건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말세 역사를 이스라엘에서 하시지 않고 중국에서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말세의 사역을 중국, 이 가장 어둡고 가장 낙후한 곳에서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어두운 곳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목적과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 『예수는 인간 세상에 와서 은혜시대를 가져오고 율법시대를 끝마쳤다. 말세에 하나님은 또 말씀이 육신 되었는데, 이번의 성육신은 은혜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나라시대를 가져왔다. 무릇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시대로 이끌려 들어가고,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단지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결코 사람의 패괴된 성정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은 다시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을 이끌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였고 형벌, 심판의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 사역은 인류를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들어갔다. 무릇 그의 권세 아래에 순복하는 사람은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며, 진정으로 빛 가운데서 살게 되고 진리, 길, 생명을 얻게 된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사역이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끝마치는 사역이다. 그것은 때가 이미 가까이 왔고, 하나님의 날은 이미 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 즉 그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하는 사람을 모두 하나님 자신의 시대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시대가 아직 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은 사람의 행위를 살피거나 사람의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역을 심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보좌 앞에 온 모든 사람을 정결케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무릇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상,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정결케 할 대상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를 받아들인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이 심판할 대상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현재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주로 생명의 말씀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성 실질 및 패괴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람의 종교 관념, 봉건사상, 낡은 사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이나 문화와 같은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드러내야 정결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말세에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결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온전케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한다.』 <하나님의 현재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의 이번 성육신의 역사는 주로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여 그의 성품을 발표한다. 이 기초 위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실행을 가리켜 줌으로써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여 패괴된 성정을 벗겨 버리는 그 목적을 이룬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사역을 하는 내막이다.』 <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을 하는 것은 두세 마디 말씀으로 사람의 본성을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폭로하고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이 각종 방식의 폭로와 훈계, 책망은 결코 일반적인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전혀 없는 진리로 대체하는 것인데, 이러한 방식을 비로소 심판이라고 한다. 이러한 심판이라야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고,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심복구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참된 인식도 있게 할 수 있다.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본래 모습에 대해 알 수 있게 된 것이고, 사람이 패역 진상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판 사역은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사역 취지에 대해 많이 깨닫게 하였고, 사람이 알 수 없었던 심오한 비밀을 많이 이해하게 하였으며, 또한 사람의 패괴된 실질과 패괴된 근본 원인도 인식하게 하고 알게 하였으며, 사람의 추악한 몰골도 발견하게 하였다. 이런 사역의 효과는 모두 심판 사역이 가져온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의 실질은 사실 하나님의 진리, 길, 생명을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심판 사역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이번 단계 심판, 형벌의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추하고 패괴된 실질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되어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심판과 형벌에 의해, 연단에 의해 패괴를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번 단계 사역을 구원의 사역이라고 하기보다는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사실상, 이번 단계는 정복의 사역이기도 하고, 제2단계 구원의 사역이기도 하다. 사람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께 얻어지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연단하고 심판하고 폭로하는 것으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 관념, 속셈 또는 자신의 소망을 다 드러내는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이 심판 사역과 형벌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기 위해, 모두 그를 증거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패괴 성정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인식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를 증거하기 위해,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많은 사람에게 그의 모든 것을 공포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개적인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성정이 변화되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게 한다. 사람의 성정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 역사 중에서 변화된다. 사람이 만일 성정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과 합할 수 없다. 사람의 성정 변화는 바로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참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형과 표본 그리고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고, 참으로 하나님의 뜻과 합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상징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땅에 와서 역사하고 있는데, 그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그를 알게 하고 그에게 순복하게 하며 그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즉,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역사를 알게 하고,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역사에 순복하게 하며,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역사와 사람을 정복하는 그의 모든 행사를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증거라야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이러한 증거라야 사탄을 부끄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훈계와 책망을 경력하여 그를 알게 된 사람을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하며, 성정이 변화되어 그의 축복을 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원하지 않고, 또한 그의 구원을 거치지 않은 사탄의 종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할 리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서 성육신 하나님은 말씀을 하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정복한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말세에 온 것은 바로 이 사역을 위한 것이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제적인 의의를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단지 말씀만 하는데, 사실로 임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실질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것, 즉 ‘말씀’이 ‘육신’에 온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말세에 이 사역(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이 사역)을 이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전체 경영 계획 중의 제일 마지막 항목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반드시 땅에 와서 그의 말씀을 모두 육신에서 나타내야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성육신하여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을 더 잘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게 하고, 사람의 본질과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하게 한다. 말씀으로 말씀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으로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으로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듣고 말씀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도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는 비록 평범하고 간단하지만, 성육신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시켰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옛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직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은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가운데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은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말씀의 심판과 형벌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다 옛 세계의 원래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인도하며, 또 말씀으로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 전체 옛 세계를 끝낸다. 그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전체 하나님나라시대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역사 효과에 도달한다. 하나님은 표적을 나타내지 않고 이적도 나타내지 않으며, 오직 말씀으로 역사한다.』 <하나님나라시대는 바로 말씀시대이다>에서 발췌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주로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이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에게 말씀의 훈계와 연단을 받아들이게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공급받고 생명을 얻으며, 말씀에서 그의 역사와 행사를 보게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너를 형벌하고 연단한다. 그러므로 설령 네가 고통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사실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말씀이 너에게 임한 후에야 성령이 비로소 너에게 역사하여 너로 고통을 받거나 단맛을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실제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네가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이 말세에 하는 사역은 주로 말씀으로 각 사람을 온전케 하고, 말씀으로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다 말씀으로 하는 것이므로, 사실로써 너를 형벌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말세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주로는 말씀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모든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너는 그의 말씀에서 비로소 그의 소시(所是)를 볼 수 있고, 그가 곧 하나님 자신임을 볼 수 있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땅에 와서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말씀만 한다. 그러므로 사실이 필요 없이 말씀만 해도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가 온 까닭은 주로 사람에게 그의 말씀에서 그의 큰 능력과 지극히 높음을 보게 하고, 그의 비미은장을 보게 하고, 그의 전부를 알게 하는 이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소시와 소유(所有)는 다 그의 말씀 속에 있고, 그의 지혜와 기묘도 다 말씀 속에 있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이 육신 된 실제 하나님 자신은 말씀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진리이다! 그는 말씀으로 너를 온전케 하며, 말씀으로 너를 먹이고 양육한다. 그는 또한 말씀으로 역사하고, 말씀으로 사실을 대체하여 사람에게 그의 실제를 인식하게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이 부분 역사를 꿰뚫어 보았다면 쉽게 소극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그는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제압하여 신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 표적과 기사만 나타낸다면 하나님의 실제를 나타낼 수도, 사람을 온전케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로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을 양육하고 목양한다. 그 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순순히 순종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고 말씀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고, 말씀과 여러 가지 역사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한다. 말씀으로 연단하든, 훈계하든, 책망하든, 공급하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각도의 말씀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에 대해 더욱 인식이 있게 한다.』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이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은 말씀으로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은 말씀을 통해 많은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고, 역대 이래 하나님이 한 사역을 깨닫게 된다. 또한 말씀을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받게 되고, 역대 이래 사람이 열지 못한 심오한 비밀을 깨닫게 되며, 역대 이래 선지자와 사도가 한 일과 사역한 원칙을 알게 된다. 사람은 말씀에서 하나님 자신의 성품도 깨닫게 되었고, 사람이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와 모든 말씀을 통해 영의 역사를 인식하게 되었고, 성육신이 한 사역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더욱이 그의 모든 성품도 인식하게 되었다. 네가 하나님의 6천년 경영 사역을 인식한 것 역시 말씀에서 알게 된 것이다. 지난날 자신에게 어떤 관념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버리게 된 것 역시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더냐?』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세의 사역은 여호와가 한 사역, 예수가 한 사역,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사람에게 열어 놓고 인류의 귀숙과 결말까지 드러내어 인류 가운데서의 구원 사역을 모두 끝마친다. 말세 이 단계 사역은 마무리하는 사역이므로, 반드시 사람이 알지 못했던 심오한 비밀을 다 열어 놓아 사람에게 이런 심오한 비밀을 명확히 알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게 해야 한다. 이래야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할 수 있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말씀 사역의 가장 큰 의의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는 전제하에서 진리를 실행하여 성정 변화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자기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직 말씀하는 역사 방식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할 수 있고, 오직 말씀만이 진리를 천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말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한 가지 방식도 사람으로 하여금 더 명확하게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후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 모든 진리와 모든 심오한 비밀을 사람과 말씀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열어놓아 하나님에게서 참 도와 생명을 얻게 하고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이르게 한다.』 <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나라시대 기간에는 사람을 철저히 온전케 할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 사람은 연단과 환난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환난 속에서 이기는 자, 간증을 서는 자는 최종에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곧 이기는 자들이다. 환난 속에서의 사람에 대한 요구는 바로 이번의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단은 최후의 한 차례 사역인데, 전체 경영 사역이 끝나기 전에 있게 되는 최후 한 차례 연단이다. 무릇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최종의 검증을 받아들여야 하고, 이 최후의 한 차례 연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이 단계 사역에서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할 것이다. 그가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을 온전케 한 후, 그들이 그의 행사를 증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있을 수 있고 실제적으로 그를 만족케 하면서 그에게 죽기까지 충성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얻은 것이다.』 <“천년 하나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를 간략하게 논하다>에서 발췌 『정복 사역 후에는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전 우주에 확장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 가운데 두며,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흑암 가운데 두어 재앙이 닥치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각기 부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으며,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가운데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말이 다 가까웠고, 사람의 결말도 다 눈앞에 드러났다. 만물은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라고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말세가 이미 되어 만물이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모두 서로 다른 성질에 따라 서로 다른 유별로 구분된다. 그때는 바로 하나님이 사람의 결말과 귀숙을 드러내는 때이다. 사람이 형벌과 심판을 경력(역주: 체험)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패역과 불의가 드러날 수 없다. 오직 형벌과 심판에 의해야만 만물의 결말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속에서만이 원형이 드러나게 되어 악은 악에 속하고 선은 선에 속하여 다 각기 부류대로 된다. 형벌과 심판으로 만물의 결말을 드러내어 상선벌악(賞善罰惡)하는 데에 이르고, 만인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귀복시킨다. 이런 사역은 모두 공의로운 형벌과 심판으로 도달해야 한다. 사람이 극도로 패괴되고 사람의 패역이 너무 심하기에, 오직 형벌과 심판을 위주로 하는, 말세에 나타낸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만이 사람을 철저히 변화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으며, 악을 드러낼 수 있다. 그에 따라 모든 불의한 사람을 호되게 징벌한다. 그러므로 이런 성품은 다 시대적 의의가 있는 것이고, 성품을 나타내고 공개하는 것은 각 새 시대의 사역을 위한 것이지, 결코 의의 없이 마음대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말세는 정복하는 것으로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한다. 정복하는 것은 말세 사역이다.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말세 사역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각기 부류대로 될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의 발단이 된다. 그 이후에는 각 지역, 각 족속의 사람들도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즉, 무릇 피조된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될 것이고, 다 심판대 앞에 귀복하여 심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고, 각기 부류대로 되지 않을 어떤 사람도, 어떤 것도 없는데, 사람은 모두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그 원인은 만물의 결말이 가까웠고 온 천지도 끝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인간의 생존이 끝나는 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무엇이 심판이고, 무엇이 진리인지, 너는 다 깨달았는가? 네가 깨달았다면, 나는 네가 또한 고분고분 심판받기를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 이끌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정결케 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즉 심판 사역에서 도망간 사람들은 영원히 하나님께 혐오 받아 버림받을 것이다. 그들의 죄상은 바리새인들보다 더 중하고 더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효력할 자격마저도 없는 그 사람들은 더 심한 징벌을 받을 것인데, 영구한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로는 충성하면서 그를 배반한 어떠한 배신자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ㆍ혼ㆍ체가 모두 징벌받는 보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유로(역주: 흘러나옴)가 아닌가? 이것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사람을 드러내는 목적이 아닌가? 하나님은 심판 기간에, 악을 많이 행한 사람들을 악령이 득실거리는 곳에 두어 악령이 마음대로 그들의 육체를 훼손하게 하는데, 그들의 육체에서는 시체의 냄새가 풍긴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야 할 보응이다. 하나님은 전혀 충성하지 않는 그 거짓 신도들과 거짓 사도들, 거짓 일꾼들의 각종 죄상을 그들의 기록 책에 일일이 적어 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그들을 더러운 귀신 가운데 던져 더러운 귀신이 마음대로 그들의 온몸을 더럽히게 하며, 그들로 영원히 환생하지 못하게 하고, 더 이상 영원히 광명을 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한동안 효력은 했지만 끝까지 충성하지 않고 외식하는 사람들을 악인들 가운데 두어 악인과 야합하여 오합지졸이 되게 하며, 최종에는 그들을 멸해 버릴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충성한 적이 없거나 힘을 조금도 바친 적이 없는 사람들을 한쪽에 던져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시대를 바꿀 때 모조리 멸해 버릴 것인데, 그들은 더 이상 땅에서 생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고, 마지못해 대충대충 대하는 사람을 자민(子民)을 위해 효력하는 사람들 가운데 넣어 둘 것이다. 그 사람들은 소부분만 생존할 수 있고, 대부분은 효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훼멸될 것이다. 최종에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심합의하는 모든 사람, 하나님의 자민, 뭇 아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으로 제사장이 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인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가운데서 얻은 결정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분한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은 다 이방인의 행렬에 들게 되는데, 그들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는 너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말은 다 하였으니,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는 모두 너희들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너희는 이런 말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느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누구에게나 다 무정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진리로 심판의 사역을 한다>에서 발췌 『열국과 만민이 다 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때, 나는 곧바로 하늘에 있는 모든 풍부함을 인간 세상에 베풀어 주어 인간 세상이 나로 인해 비할 바 없이 풍부하게 할 것이다. 옛 세계가 존재할 때, 나는 열국을 향해 크게 진노하고 전 우주에 공개할 행정을 반포할 것이다. 만일 누가 거스른다면,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전 우주를 향해 말할 때, 모든 사람은 다 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즉, 전 우주 아래에 있는 나의 모든 행사를 보게 된다. 나의 뜻을 어기는 자, 다시 말해, 사람의 행위로 나와 맞서는 자는 나의 형벌 속에서 넘어질 것이다. 나는 하늘의 뭇별을 모두 새로이 바꿀 것이고, 해와 달도 나로 인해 바뀌어 더는 이전의 하늘이 아니며, 땅의 만물도 새로이 바꿀 것인데, 나의 말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전 우주 아래의 열국을 모두 새로이 나누어 내 나라로 바꿀 것이고, 땅에 있는 나라를 영원히 사라지게 하여 나를 경배하는 나라가 되게 하는데, 무릇 땅에 속한 나라는 다 훼멸되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다 멸망되어 사라질 것이다. 무릇 사탄을 경배하는 사람은 다 나의 불사름 속에서 넘어질 것인데, 즉 지금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 외에는 전부 잿더미가 될 것이다. 교계는 내가 만민을 형벌할 때, 각기 다른 정도로 내 나라에 돌아오고 나의 행사로 말미암아 정복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흰 구름을 탄 거룩한 자’가 이미 오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다 각기 부류대로 되고, 행위의 차이로 인해 각종 형벌을 받을 것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라면 다 멸망되지만 땅에서의 모든 행위가 나와 관련되지 않는 자는 그 태도로 인해 땅에 존재할 것인데, 뭇 아들과 자민(子民)의 관할 아래에 있을 것이다. 나는 만국 만민을 향해 나타나고, 땅에서 나의 음성을 친히 발표하고, 나의 큰 공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여 모든 사람에게 눈으로 직접 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6편 말씀>에서 발췌 『최종의 상선벌악 사역은 전적으로 전 인류를 철저히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은 온전히 성결해진 인류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전체 경영 사역 중에서 마지막 한 단계이다. 만일 악한 자를 멸하지 않고 남겨 둔다면, 전 인류는 여전히 안식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도 전 인류를 더 아름다운 경지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게 되는데, 그런 사역은 완전히 끝난 사역이 아니다. 사역이 끝날 때, 전 인류는 온전히 성결하게 된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매우 평온하게 안식 중에 거할(원문: 生活)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그가 세우려는 나라는 그 자신의 나라이고, 그가 원하는 인류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완전히 순복하는 인류이고, 그의 영광이 있는 인류이다. 만일 패괴된 인류를 구원해 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을 만든 의의는 사라지게 되며, 사람들 가운데에 그의 권병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또한 땅에 그의 나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만일 그를 거역한 원수들을 멸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영광을 받을 수 없고,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울 수도 없다. 인류의 그 패역자들을 철저히 멸하고 온전케 된 그 사람들을 다 안식으로 이끌어 들어가는 것은 그의 사역이 완성된 상징이고, 그의 큰 공이 이루어진 표징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에서 발췌 『나의 말이 마무리(원문: 完善)되어 감에 따라 나의 나라는 땅에서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내 마음속의 나라를 세운다. 나의 나라에서 모든 자민(子民)은 다 정상 사람의 삶을 회복하는데, 다시는 차디찬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날 같은 아름다운 세상이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싸늘함을 겪지 않는다. 사람은 서로 다투지 않고, 나라도 서로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광경과 그로 인해 흘리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으로 들끓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뜻함이 넘쳐흐른다.』 <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발한 음성ㆍ제20편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2)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체험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

말세에 하나님이 이미 새로운 사역을 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은혜시대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까?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단지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패괴 성정을 다 벗겨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내려면, 예수가 속죄제로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의 성정을 완전히 벗겨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합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그의 역사하는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조심하세요! 바리새인들의 길을 걸어가지 마세요

이경애 하나님께서 이전에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하신 역사를 회상해보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는데 대면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였고 직접 조물주의 나타나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으로 그들을 부러워했고 그들이 너무나 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저를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한 것은 예수님이 뜻밖에 우리 가운데 은밀히 강림하신 것입니다. 마치 당시에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유대에서 역사하신 것이 완전히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처럼, 비록 그분의 사역이 완전히 저의 상상을 벗어났지만 저는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 권세와 위력을 지닌 말씀에 정복되어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경력을 회상하면 지금도 여전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사역에 직면하여 저는 진심으로 순복하고 추구한 것이 아니라 성경으로 대조하고 가늠하였으며 자기의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도 이미 적그리스도로 되어 하나님께 징벌받았을 것입니다. 저의 관념을 내려놓게 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야 자신이 이전에 하나님을 대적한 실질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실질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해 사이에, 저는 주님을 믿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초의 저와 마찬가지로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한마음으로 주님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주님의 도래를 저버리고 주님의 도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오늘의 우리는 공통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메시아가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메시아를 아예 본 적도 없고 그저 구약 성경으로부터 어느 정도 메시아의 도래에 관한 소식만 알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비록 예수님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여태껏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이 역사하시던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접촉하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직분을 하신 3년 반 동안에 많은 사역을 하셨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 조금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0)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 21:25)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단지 신약 성경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듣고 조금 알게 된 것이지 전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모두 이론이지 실제가 아니며, 이 속에는 또 사람의 상상이 너무 많아 실제 사실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당시에 성전 안의 사람들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규정하고 메시아의 도래를 저버릴 수 있었는데, 설마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념과 상상에 따라 예수님의 재림을 규정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바리새인과 같은 선택에 직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바리새인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형제자매님, 아래에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더욱 분명히 보고 일찌감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갈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영원한 징벌 속에 떨어지지 않도록,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표현과 오늘날 각 종파에서 말세의 도성육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을 대조해봅시다. 형제자매 모두가 자신의 귀숙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를 신중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1. 오늘의 신도와 바리새인의 공통점은 바로 성경의 글귀를 고집스럽게 지키며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관념 속에서 오실 그분은 마땅히 메시아로 불려야 하고 처녀에게서 태어나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하며, 다윗처럼 싸움에 능하여 그들을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사 7:14, 9:6)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미 5:2) 그러나 주님께서 오셔서 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 상상한 것과 같지 않았고, 그들이 본 것은 성경의 예언(문자 표면상의 뜻)과 맞지 않았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본 예수님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했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고 게다가 그들은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요 7:52 참조) 성경 예언에는 오실 그분이 임마누엘로 불린다고 했지만 오신 분은 예수로 불렸습니다. 성경 예언에는 메시아가 와서 정권을 담당하신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정권을 담당하시기는커녕 바리새인들의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이 절대 오실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최종에 그들은 성경의 글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 마찬가지로 아주 많은 상상과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면,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는 안 되고 마땅히 모든 사람들이 보도록 유대인의 의복을 입고 유대인의 모습으로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날아오셔야 하며, 그런 다음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과 만나고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상은 마치 사람의 머릿속에 새겨져 지워 버릴 수 없는 듯하고, 게다가 사람은 또 성경의 근거를(이런 근거는 다 글자 표면상의 뜻임) 찾아냅니다. 예를 들면,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 1:9, 11) 오늘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으니 반드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이런 관념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이런 상상과 관념은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상상과 참으로 판에 박은 듯이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차 육신으로 돌아오셨을 때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굳어진 상상과 관념으로 대조해보는데, 맞추지 못하면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합니다. 거짓이라고,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등등입니다. 2.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전하는 도가 아무리 높아도 불복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마 15:12)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자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요 7:45-49) 이 두 곳의 경문에서 보다시피,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오만하여 자신이 율법을 잘 안다고 여기면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신도들을 미혹하여 “당신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생명도 작으니까 저의 말을 들으면 틀릴 리가 없어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미혹되지 마세요.” “그들이 아무리 잘 설교해도 듣지 마세요. 참 도라 해도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는데, 이런 말의 실질은 바리새인들의 표현과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모두 사람의 오만 자대(自大)와 진리에 불복하는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3.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헐뜯고 비방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각 방면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아울러 모독하고 정죄합니다. 경에 기록되기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눅 11:53-54)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마 22:15-16) 여기에서 보다시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또 그들의 오만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일들을 하여 하나님 앞에서 천고의 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재차 도성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공급하는 많은 언어를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찾고 구하고 고찰하기는커녕 하나님 말씀에서 약점을 잡으려 하였고, 어떤 말씀이 성경의 글귀와 부합되지 않으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고 훼방했습니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을 본받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에 사람을 파견하여 정황을 알아보게 한 후 사실을 왜곡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훼방하며, 심지어 거짓 증거를 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해치는 것으로써 사람을 농락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보전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합니다. 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대적하면서 주님과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을 관청에 넘겨주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요 7:32)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 (마 27:1-2) 오늘 각 종파의 인솔자들도 신도들에게 가르치기를, “전능자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붙잡아서 정부에 넘겨주든지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청에 보내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신고하는 바람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전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당국자들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5. 오늘날의 사람들과 바리새인들의 또 한가지 최대 공통점은 바로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하고 도성육신 하나님의 입에서 발표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이런 말씀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분이신데,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여전히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의 도래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질책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7-28) 이런 말씀들은 예수님이 전능하여 모든 은밀한 속사정을 살피신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분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이렇다 해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이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고,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주셨으며, 소경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걸을 수 있게 하시고 문둥병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런 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인 것이 아주 뚜렷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사람을 미혹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바알세불(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두 번째로 도성육신 되어 새 시대를 개척하셨고 생명의 언어를 발표하셨으며 모든 비밀을 풀어주셨고 참으로 사람에게 진리ㆍ길ㆍ생명을 가져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책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라고 정죄하였는데, 이것은 아주 눈먼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이번에 도성육신 되어 정복과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셨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만민을 심판하십니다. 무릇 진심으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지극히 큰 구원을 받아 인성의 살아냄이 갈수록 정상적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더욱 알고 패괴 성정도 점차 변화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다해 복음사역에 나서서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며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그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이룬 효과입니다. 하지만 각종각파의 인솔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가정도 버리고 믿는데 모두 미쳤어요, 이상해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오늘의 정죄와 대적은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한 것과 또 무슨 차이점이 있습니까? 이들의 끝장은 또 어떤 것이겠습니까? 위의 대조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역사(歷史)의 비극을 되풀이하고 모두 바리새인들의 길을 다시 걷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왜 말세에 재림하신 구주 예수를 저버리고 이전 사람들이 걸었던 실패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까? 바리새인들은 왜 메시아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최종에는 또 메시아를 대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환상이 가득찼고, 또한 그들은 메시아가 오리라는 것만 믿으면서 생명의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까지도 여전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말해보아라, 그들이 이렇게 우매하고 완고하며 이렇게 무지한데, 하나님이 베풀어주는 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이 메시아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그들이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그들이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그들이 메시아에 대하여 알지 못한 연고이다. 바로 그들이 메시아를 본 적도 없고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메시아의 실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의 실질은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당신이 가르친 도가 얼마나 높든, 당신의 권세가 얼마나 크든, 당신이 메시아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관점은 매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 황당한 것이 아닌가?』 바리새인들은 자기의 오만함과 완고함, 진리에 복종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들이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를 대적하고 정죄했는데, 그럼 우리는 오늘 또 어떻게 다시 오신 예수님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는 정말 주님의 재림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예수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너희들이 당시의 바리새인의 잘못을 아주 쉽게 재범하지 않겠는가? 너는 무엇이 진리의 도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가? 너는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로 보증할 수 있는가?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을는지를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사망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아를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훼방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예수를 잘 알지 못한 사람은 모두 예수를 저버리고 예수를 모욕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볼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너희들은 두렵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파기하고, 예수의 입으로 발표한 언어를 타기(唾棄)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이처럼 혼미한데, 예수로부터 또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이처럼 잘못을 고집하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온 사역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알린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송이송이 흰 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를 줄곧 기다리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멸망의 족속이다.』 형제자매님, 예수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주님께로 향한 사람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범치 않은 역사는 더욱더 포도원 안의 ‘악한 종’들을 드러내고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한 무리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지혜는 누구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롬 11:33-34 참조) 하지만 사람은 오만 자시하여 늘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 대해 손금 보듯 환하고 절대적인 파악이 있다고 여기는데, 사실이 정말 이러할까요? 마치 당시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마 27:25)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판단은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까?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눅 23:44-48) 그때에는 사람들이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너무 늦었으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관념으로써 하나님의 새 사역을 가늠하고 규정하며 말세에 도성육신 된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든 지간에 우리는 모두 이런 한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인 이상,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사람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처음으로 도성육신 되어 이스라엘에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대적ㆍ훼방ㆍ거절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소부분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속하신 복음은 여전히 우주 땅끝까지 널리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어떠한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각성하십시오! 우리가 기다리던 주 예수님이 이미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바리새인들의 길을 걷지 마십시오. 하나의 피조물로서 오직 자신의 상상과 관념을 버리고 겸손하게 진리를 찾고 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계하셨습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형제자매님, 우리 함께 현실에 직면합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매우 정확한 진리입니다! 미혹될까 두려워 진리를 얻을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악한 종들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유언비어를 곧이듣지 마십시오. 형제자매님, 바리새인들이 걸은 길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바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모든 행위를 대조하고 또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우리도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어떻게 바리새인들의 몸에서 교훈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세 역사에 순복하며 따라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성육신 하여 인류를 구원해야만 했던 이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속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