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오디오북)

2019년 01월 29일


 

저는 주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매일 같이 기도하고, 성경 말씀 보고, 또 주님을 위해 헌신도 해 왔습니다. 근데 주님과의 관계가 멀게만 느껴졌었어요. 기도하거나 성경을 볼 때는 종종 딴생각에 빠지고 생활 속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방해를 받아서 정말 마음을 주님 앞에 평온히 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몇 년 동안은 주님의 말씀에 대해서 별로 깨닫지도 못하고 영적인 생명도 크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근데 제가 최근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우리가 영적인 훈련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데에 진입해야 하더라구요.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어서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고, 영적인 삶이 정상 궤도에 들어가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도 점점 자라날 것입니다. 그럼 이걸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요? 제가 책에서 얻은 실행의 길을 여러분과 구체적으로 나눠 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는 기도에 집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매일 주님께 기도드리실 겁니다. 하지만 기도를 형식적으로 할 때가 많고, 진심으로 마음을 평온히 하여 단순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마음속 깊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이 모르는 문제나 어려움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구하지 않고,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기 위해 구하지 않으며, 말씀에서 더 많고 더 새로운 것들을 깨우쳐 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무 생각없이 무릎을 꿇고서 상투적인 말들을 중언부언 늘어놓는 경우가 많죠. 때로는 일이나 외적인 여러 가지 상황들로 바빠 서둘러 기도를 끝내려고 간단히 두어 마디로 얼버무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무릎은 꿇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하죠.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마음을 주님 앞에 평온히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영적인 소통이 없이 주님께 얼버무리고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성령의 감동과 깨우침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증오만 가중시킬 뿐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 여기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정직하고 오직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한 생각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마음에 어떤 생각이나 계획이 있든지 모두 하나님께 완전히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관심을 보이시고, 우리로 성령의 감동을 더 많이 받게 하시는데, 그러면 우리는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에서 깨우침을 받고 점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돈이나 육적인 일에 마음을 뺏겨 교회의 사역에 마음을 쓰지 못할 때, 우리는 주님께 솔직히 고백하면 됩니다. ‘주님, 저의 분량이 너무 작아서 항상 육의 지배를 받고, 저의 생활과 미래를 계획하느라 온전히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형제자매들이 육적인 것을 등지고 주님의 뜻을 살피는 것을 보면서,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도 주님의 뜻을 살피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며 살고 싶습니다. 주님,저의 믿음이 너무 작으니, 저를 인도하여 주시고, 저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고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을 보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가 육적인 지배에서 점차 벗어나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 드릴 때는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환경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따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6) 이 말씀처럼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는 마음을 평온히 하고, 마음으로 묵상해야 합니다.

평소에 우리는 자주 성경을 보지만 그 가운데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대충 한 번 읽어 본 후 글자의 의미만 이해하고 끝나죠. 심지어 어떤 때는 눈은 말씀을 보고 있고, 입으로도 말씀을 읽고 있지만 마음은 세상을 떠돌고 있어 다 읽고 나서도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묵상해도 아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더 이상 노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해 하나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진입해야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마음으로 묵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오랫동안 믿어 왔고 하나님의 말씀은 많이 봤어도 하나님의 뜻은 별로 알지 못하고, 실행해야 할 많은 진리 앞에서도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말씀을 아무리 많이 보더라도 그 말씀에 내포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생명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입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태복음 19:24) 우리는 주님이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하셨는지, 하나님의 어떤 뜻과 성품을 나타내신 건지, 우리에게는 어떤 효과를 얻으려고 하시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물질만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시대에 주님을 따르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재산을 내려놓을 수 없고, 질적으로 좋은 삶의 조건을 포기할 수 없어 주님을 믿으면 영생이 있고 천국에 들어갈 기회가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물질이 아니라 생명을 추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물질을 중요시하다 그 물질을 얻고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점점 이해하게 되고, 어떤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뜻대로 더 잘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간절한 마음의 기도,

3. 일이 닥칠 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훈련을 일상생활 가운데서 제한적인 시간 내에서만 하고, 대부분의 시간에는 이와 무관하게 외부 일이나 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면 성경과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을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다양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훈련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진리에 따라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하면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 되는지를 장악한 다음, 자신을 바로잡아 정확한 방식에 진입해야 한다. 시시각각 자신의 일언일행, 일거일동, 마음과 생각을 성찰하고 자신의 진실한 상태를 파악하여 성령의 역사 방식에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인지를 가늠함으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바로잡아야 하고, 사람의 본질을 인식하고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통해 실제적인 체험에 진입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 자신을 배반할 수 있으며,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항상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임하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만 자기 자신의 진실한 상태와 부족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임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실행하여 주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는 주님과 정상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주님 앞에서 살 수 있고, 사탄의 시험과 계략에 빠지지 않고, 주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욥이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미움을 사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욥은 자녀가 연회를 베풀어 먹고 마실 때 그것을 멀리 했고, 하인을 보내 자녀를 깨끗게 하도록 하고, 욥 본인은 또 자녀를 위해 번제를 지냈습니다. 심지어 사탄의 시험을 받아서 온 산의 소와 양, 막대한 가산과 자녀를 잃었을 때도 아주 고통스럽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했지만, 계속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입으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심케 하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대적하는 일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욥은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라고 말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위해 힘 있게 아름다운 증거를 했고, 이에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로써 욥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는 복을 받았고,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시는 기회도 얻었고, 또 지금까지 그 누구도 받지 못한 큰 상까지 받았습니다.

4. 매일 자신의 문제점을 반성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매일 밤 주님 앞에 나와 하루동안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어떤 일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행해 진리에 합당한 일을 했는지, 또 어떤 일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주님의 뜻을 어겼는지를 성찰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노트를 준비해 이런 문제점들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은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인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거기에 맞는 말씀을 찾아 성찰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지내면서 스스로는 형제자매들을 아주 진실되게 정직하게 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밤에 책상에 앉아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이익 때문에 형제자매에게 거짓말을 했던 일이 떠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간사하고 타락한 성품을 알게 되는 거죠. 또,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미워하시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시며, 단순하고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형제자매에게 다가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털어놓으면서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에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자신을 반성하지 않고, 매일 자신이 어떤 타락한 일을 했는지도 돌아보지도 않고, 이런 것들을 사소한 일로 여긴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은 자라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하나님 앞에 평온히 하고, 항상 반성하며 자신에게 있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점점 자라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갈수록 가까워지고, 또 점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알려드린 이 4가지 방법이 바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는 데 진입하는 방향과 실행의 길입니다. 별로 어렵지 않죠?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실행해 보셔서 유익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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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 』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원칙

1.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는 진실한 의의는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절대 종교 의식을 해서는 안 된다. 2. 반드시 현실의 어려움과 문제에 결부시켜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해야지 실제를 벗어나 빈말과 글귀 도리를 말해서는 안 된다. 3. 반드시 본분을 하는 것과 생명 진입의 모든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며, 진리를 찾고 구하고 깨달아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4. 간구하고 기도함에 있어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고 또한 이지가 있어야지,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강요하거나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되고 더욱이 거래해서도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기도는 형식만 따르고 과정만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좀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는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기도여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기도가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그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은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를 인식하고 그것에 흐리멍덩하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에만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다면, 이러한 기도는 이미 하나님과 진실하게 교통하는 경지에 진입한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적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흡인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행실을 중요시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여 생명이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람의 편차적인 면이다.』 <정상적인 영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한 가장 낮은 표준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참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사람은 모두 이런 경력(역주: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닥치면 매우 괴로워하는데, 괴로울 때 누구와 말이라도 하면 조금 후에는 괴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괴롭지 않아도 자신의 정형은 해결되지 않았다. 때로 사역에 어려움이 생기면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훈계와 책망이 임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몇 번이나 하나님 앞에 와 기도한 적이 있느냐? 모두 스스로 조절하여 흐리멍덩하게 지나왔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스스로 아무렇게나 하는데, 아무런 가치도 없다. 마치 거지가 쓰레기통에서 이것저것 가득 주워 담아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모두 제멋대로 한다. 보라, 사람은 항상 바른길에서 벗어나고, 가다가 빗나가게 된다. 여기서도 사람의 본성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일을 통해 너는 무엇을 보았느냐? 사람의 본성은 배반이다. 사역을 하다가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게 되면, 사람은 또 ‘나는 하나님을 믿는데 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지?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다.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으면, 사역을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이 일은 가장 깊은 것이다. 네가 이렇게 저렇게 섬겨도 기도마저 없다면 헛되이 섬기는 것이다. 너의 정형이 비정상일수록 더욱 효과가 없게 된다. 기도할 때에는 얼마나 멋진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마음속의 말을 하고 솔직한 말을 하며 자신의 어려움에 근거해 사실대로 말하고 피조물의 각도에 서서, 순복하는 각도에 서서 말하면 된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 강퍅한 것을 아십니다. 하나님, 이 일에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제가 연약하고 너무 형편없어 당신의 쓰임에 합당치 않음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에게 패역이 있어 사역을 하기만 하면 당신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는데, 모두 당신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는 다만 협력할 뿐입니다……” 이런 말도 해내지 못하면 너 같은 사람은 끝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할 때에도 이지적으로 기도했는지 분별해야 하니, 그러면 기도도 할 수 없겠네.’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것은 한동안 훈련하면 되기에 괜찮다. 기도를 하다 보면 어떤 말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평소에 네가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까운 때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정말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의의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본다면, 너는 기도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교통이 부족해서는 안 된다. 만일 기도가 부족하면 너는 육체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의 매임에서 살게 되며, 진실한 기도가 없으면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된다.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날마다 진실한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규례를 지키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효과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잠을 좀 적게 자고 좀 적게 누리면서 새벽 기도를 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싶지 않은가? 이렇게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먹고 마시면 더욱 하나님께 열납된다. 네가 아침마다 이렇게 실행하고, 날마다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훈련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사귀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은 반드시 많아질 것이고 더욱 하나님의 뜻을 더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저는 저의 본분을 하기 원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도록, 당신께서 우리 이 무리 사람들에게서 간증을 누리시도록, 저는 당신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칩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여 우리가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만족케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당신을 추구 목표로 삼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여 너에게 이 부담이 있게 될 때면, 하나님은 꼭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자신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또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가장 진실하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통행되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인가?』 <기도의 실행에 관하여>에서 발췌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거기에는 많은 의의가 있다. 사람의 기도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이 직접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가 만약 이 일을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기울여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편에서 너는 열외로 취급받는데, 하나님께는 너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너에게 어찌 성령 역사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사람이 사역을 하다가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도하지 않으면 사역도 하지 못한다. 기도로 사역을 가져오고 기도로 섬김을 가져오는 것이다. 네가 인솔자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전혀 기도에 공을 들이지 않고 기도를 참답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저렇게 섬기다가 넘어질 것이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가 늘 혼자 하고 늘 기도가 없이 하나님을 등지고 이것저것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경영을 하면 정죄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겉으로 보기에는 네가 방해하는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모독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엇나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비록 네가 엇나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성질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본분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너는 언제나 ‘이 본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을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원칙과 진리를 찾고 구하며,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면, 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은 그런 일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이런 참된 정형과 이런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이 실행 방면에서 범하는 가장 큰 착오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을 믿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냐?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계속 믿는다면 어떤 효과가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의의가 또 어디에서 실현되겠느냐? …… ……네가 어떤 일을 처리하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하든 아니면 너 자신의 사적인 일을 하든, 너는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인성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지, 네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이런 것은 네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바이다. 네가 이렇게 한다면, 너는 바로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이렇게 모든 일과 모든 진리를 참답게 대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다.』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진리를 최대한으로 실행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에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지, 어떤 것을 사모하든지,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지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지,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지,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지, 이런 말의 표현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저로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하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얼 무얼 주십시오. 저를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결정한 것이다. 비록 네가 이렇게 기도할지라도 이런 기도에 대해 성령은 ‘네가 이미 스스로 결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이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라고 여긴다. 기도에는 마땅히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기를 원하고, 당신 앞에서 찾기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며,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는 오로지 당신의 뜻대로 하기만을 원합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만약 네가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저에게 적합한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합당한 사람을 예비해 주셔서 저로 사역을 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만 한다면, 이렇게 기도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께 너의 뜻대로 일을 해 달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너희는 기도할 때 한 말에 이지가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네가 우매하든지, 일부러 그렇게 했든지 너의 기도에 이지가 없으면 성령이 네게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기도할 때, 이지 있게 말해야 하고 어조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저의 연약함을 아시고 저의 패역을 아십니다. 저에게 힘을 더해 주셔서 이런 환경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기만을 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뜻대로 이루십시오. 저는 그저 이렇게 구할 뿐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설사 저로 효력을 하게 하시고 안받침물이 되게 하실지라도 저는 기꺼이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힘과 지혜를 더해 주셔서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케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복하기만을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고 나면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구하기만 한다면 구한 후에도 역시 빈말 무더기뿐이다. 왜냐하면 너의 뜻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당신께서 사람의 연약함을 아시고 사람의 정형을 아십니다. 이 일에서 저를 깨우쳐 주셔서 당신의 뜻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의 모든 안배에 순복하기를 원하고, 저의 마음이 당신께 순복하기를 원합니다……” 네가 이렇게 기도하면 성령이 너를 감동시킨다. 만약 네가 기도하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면 무미건조하고, 성령이 너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네가 중얼중얼하기만 하고 묵도하거나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그것은 순전히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 것이다. 네가 대충대충 하여 속이는데 성령이 역사할 리가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오면 공손하고 정직해야 하며,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와야 한다. 율법시대를 보면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칠 때, 모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도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도 여전히 제멋대로이고 또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워서 눈을 감고 기도하려고 하는데, 이래도 되겠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의 기도에 이지가 없을 때가 너무나 많은데, 모두 “하나님, 당신께서 저를 인솔자가 되게 하신 이상, 제가 모든 것을 합당하게 하고 당신의 사역에 엇나가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꼭 제가 이렇게 하도록 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말투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가? 이런 기도에는 이지가 없지 않으냐? 네가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는 것이 이렇게 이지가 없는데,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겠느냐? 네가 그리스도 앞에 와서 내게 말할 때 이지가 없는데, 내가 들어줄 수 있겠느냐? 너를 단번에 차버리겠다! 네가 영 앞에 있는 것과 그리스도 앞에 온 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할 때, 어떻게 말해야 이지가 있는 것인지, 어떻게 말해야 정형을 경건한 위치에까지 조절하여 겸손하고 낮아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기도하면 좋아질 것이고, 기름을 바른 것 같을 것이다. ……예수의 기도를 보아라(예수의 기도를 언급하는 것은 사람이 꼭 그의 그 각도에, 그 위치에 서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일 할 만하시거든……”라고 기도하였는데, 즉 만약 할 수 있으면이라는 이런 뜻으로 상의한 것이지 “해 주소서”라고 말하지 않았다. 예수는 순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순복하는 상황에서 기도하였다.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두 번째도 같은 말로 기도하였고, 세 번째도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더듬어 “당신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완전히 순복할 수 있었고 자신의 선택이 조금도 없었다. 그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 피 흘릴 것을 생각하니 매우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에 관련되는 일이고 또한 그가 아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더듬지는 못한 전제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고통스러울 것을 생각했음에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주아주 순복한 것이다. 그의 기도는 정상인데, 조건을 따지며 말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지나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한 것이다. 첫 번째로 기도할 때는 깨닫지 못하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했는데, 순복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두 번째도 역시 그렇게 기도했는데, 모두 세 번 기도하였다(물론 세 번 기도한 시간은 3일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고 난 후 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처음 두 번 기도할 때는 모두 찾고 구하였는데, 역시 순복하는 상황에서 찾고 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시고, 저를 어떻게 어떻게 인도해 주시고, 저에게 조건을 예비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아마 너에게 적합한 조건을 마련해 주지 않고 너로 그 고통을 받게 할 수도 있다. 만약 사람이 기도할 때 늘 “하나님, 저에게 마련해 주시고,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런 기도는 얼마나 이지가 없느냐! 너는 기도할 때 이지가 있어야 하고, 순복하는 전제하에서 기도해야 하며,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어떻게 어떻게 해 달라고 구해야지.’라고 정해 놓는데, 이런 기도는 너무나 이지가 없다. 많은 경우에 그 영이 사람의 기도를 전혀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기도해도 무미건조한 것이다.』 <좌담 기록ㆍ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 역사는 하루하루가 다르고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아지며, 내일의 계시는 오늘보다 더 높고 차츰차츰 더욱 높은 단계로 계속 나아간다.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에 의하여 사람을 온전케 한다. 사람이 만일 따라가지 못한다면 수시로 도태될 것이며, 사람이 만일 순복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면 끝까지 따를 수 없다. 낡은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는 새로운 시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