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리

2015년 12월 06일

중국에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하늘과 땅이 그를 멸한다” “일은 하나 보태는 것보다 줄이는 것이 낫다” “남의 덕을 볼 줄 모르면 멍청이다” 등등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이런 말들을 격언과 명언으로 삼고 심지어는 제가 처세하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어떤 때는 일을 하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어도 저는 이런 “최고 명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이런 말들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져 왔으니 틀림없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차츰차츰 탐욕스러워졌고 정직했던 마음도 점점 마비되어 갔습니다.

한번은 차를 타고 시내에 가게 되었는데, 차에 올라 탔는데도 매표원이 저에게 표를 사라고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한테 표를 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돈 주고 살 필요는 없지. 바보가 아닌 이상!’ 이렇게 저는 모르는 척 무임승차 했습니다. 그 일이 지나고 나서도 저는 이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 번 이득을 본 것에 기뻤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이런 “최고 명언”대로 살아왔고 계속 제가 맞다고 여겼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많은 사람들 모두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관점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으며, 매사에 그에게 거짓을 꾸미지 않고 다 털어놓고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환심만 사려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직이란 일하고 말함에 여러 가지 뒤섞임이 없고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셨고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상관없이, 형제자매들과 함께 지내든 이방인과 함께 지내든지를 막론하고 어떤 일이든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해야 하고 남에게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려 하거나 기만을 해서도 안 되며,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가져 올 수 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선한 것이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깨어나게 했고 예전의 일들을 되돌아보게 해주셔서 저는 부끄러움에 낯이 뜨거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신의 모든 행위가 다 옳고 틀리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나서야 제 자신이 원래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돈 몇 푼 때문에 사람됨됨이의 원칙과 인격을 잃었으며 남에게서 이득을 보려 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게 처리한 것을 남 몰래 기뻐했다는 것에 그야말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최고 명언”이 저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마음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익을 조금 얻긴 했지만 잃은 것은 오히려 인격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가치와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심하게 사회의 전염을 받았고 봉건 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급 학부”의 교육을 받았다. 낙후한 사상, 부패한 도덕, 저열한 인생관, 비열한 처세 철학,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존, 미천한 풍속과 생활, 이런 것들이 모두 심하게 사람의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으며, 심하게 사람의 양심을 파괴하고 있고 사람의 양심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고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대적한다.” “……사람은 사탄의 사악하고 추한 영향 아래서 생존하는 것이지 진리의 세계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성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광명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진리가 구비될 수 없고 더욱이 태생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질이 있을 수 없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람은 사탄이 타락시킨 이 사악한 세상에서 생존하기에 무엇이 정의이고 광명인지 모르고 사탄의 이러한 사상에 완전히 젖어 정확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러한 사탄의 사악한 권세 하에서 생존해온 사람으로,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이러한 “최고 명언” 즉, 사탄의 독소가 저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저의 생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광명이고 흑암인지 몰랐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을 몰랐기에 비천한 인생관과 가치관이 있게 되었고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비록 더러운 곳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저를 싫어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권고하시면서 저에게 정확한 인생길을 가리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밖에서 일처리를 다하고 차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표를 사려고 10위안을 꺼내 매표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매표원은 저에게 거스름 돈으로 4.5위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제가 20위안을 준 것으로 착각했는지 14.5위안을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받는 순간 이득을 본 것 같아 마음속으로 또 기뻤습니다. 그때 문득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윗사람을 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깨우침과 요구를 생각하니 기뻤던 마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돈을 선뜻 돌려주기는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다른 승객들이 알면 저를 바보라고 말할 것이고……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성품이고 어떤 성격이든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해보세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은 마치 어둠속의 등잔불처럼 저에게 실행의 길을 밝히 알려주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득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손해보는 것을 늘 싫어했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오셔셔 구원 사역을 하시는데, 그분은 예전에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시지 않고 지금 제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길, 생명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만 비로소 구원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보든 개의치 않고 먼저 가서 매표원에게 거스름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거나 바보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매표원이 고마워하면서 따뜻하게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비록 마음속으로 조금 망설였고 약간 고민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하고 나니 제 마음은 처음으로 즐거웠고 매우 편안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또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전체 경영 계획에서 즉 6천년의 경영 계획에서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누는데, 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 (즉 구속시대), 마지막 때의 국도(國度)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같지 않음에 따라 나의 역사 내용도 서로 같지 않다. 그러나 매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확실하게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시행한 간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간계를 다 폭로해 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탄의 그지없이 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피조물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내가 만물의 주재임을 알게 하고 사탄이 인류의 원수ㆍ쓰레기ㆍ악한 자임을 분명히 보게 하고 선과 악, 진리와 그릇된 이치, 거룩함과 더러움, 위대함과 비열함을 아주 명확히 가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무지한 인류로 하여금 모두 나를 위해 증거할 수 있게 하는데, 즉 “내”가 인류를 타락시킨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조물주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사람에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 주며 나는 만물의 주재이고 사탄은 피조된 다음 또 배반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사역의 의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타락된 인류의 추한 몰골을 파헤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말씀을 발표함으로써 사람을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많은 말씀을 발표하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선과 악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고 또 사람이 어떻게 정확한 인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지도 가리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저의 추악상을 드러내시는 것은 저를 정결케 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고 또한 이것이 저에 대한 구원임을 말씀 가운데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전에 제가 지켜왔던 “최고의 명언”들은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최고의 명언”에 따라 행하면 사람의 마음이 점점 더 추해져 사람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진리를 베풀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실질이 공의롭고 거룩하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으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10월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나는차에 앉아 차창 밖의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셨다. 창밖에 떨어지는 꽃잎과 노란빛을 띤 나뭇잎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신비함에 감탄했다. 서서히 차를 움직여 마을 근처에 있는 공사장을 지날 때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물었다. “저 사람 당신 친구 아니야?” 남편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 난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그 사람을 쳐다봤다. 근심으로 가득 차 초췌한 얼굴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있었다. 땀으로 젖은 옷이 깡마른 몸에 들러붙어 있었고, 힘들게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우람한 체격에 기세등등했던 사장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저렇게 초라한 모습만 남았단 말인가?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궁금한 맘에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휴, 세상에 노력만으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니까. 재처럼 말이야. 작업반장으로 돈을 벌더니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야심에 가득 차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큰 사업을 벌였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어.” 남편의 말에 남편과 겪었던 힘든 시절이 떠오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 남편과 나는 우리의 힘만으로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성공하여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어린 애를 어머님께 맡기고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륜차를 끌며 찬 바람을 뚫고 20여 리 떨어져 있는 시장에 물건을 팔러 갔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어보려는 마음에 매일 저녁 늦게 거리에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일했지만 간신히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벌 수 없었다. 나중에 남편은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홀로 수천 리 밖에 있는 하이난(海南)에 일하러 갔다. 하이난(海南)에서 성공해보려고 했지만, 남쪽 지방은 매우 습하고 일교차도 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번 돈은 모두 병원비로 나갔다. 병이 낫고 집 근처에는 벌이가 마땅치 않자 남편은 또다시 하이난(海南)으로 향했다. 하지만 겨울이 되자 남편이 일하던 곳의 사장은 돈을 들고 도망갔고, 남편이 번 돈은 10만원 가량의 교통비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아름다운 터전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런데 3개월간 일하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번 돈을 소매치기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남편이 돈을 두 곳에 나눠 있어서 반만 소매치기 당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절반은 생활비로 모두 썼다…. 그때 우린 부자가 되겠다고 악착같이 일했다. 몇 년간 악착같이 매달린 끝에 남편에게 남은 건 허리통증이었고, 내게 남은 건 디스크뿐이었다. 우리는 겨우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너무 답답했다.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는데 왜 우린 돈을 벌 수 없는 걸까? 대체 왜 이런 걸까. 그 후 나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1년에 200만 원을 벌고, 2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3년째에도 200만 원을 벌고. ‘왜 돈이 늘어나지 않는 거지?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힘을 써도 왜 항상 제자리인 걸까. 조금 벌었다 싶으면 또 돈이 새어나가 계속 제자리이고. 조금이나마 더 버는 게 이리도 힘드니 원하는 만큼 번다는 건 더 힘들겠다. 그건 헛된 희망, 지나친 욕심이야. 사람이 얼마를 벌 수 있는지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어. 나는 하나님의 주재를 진심으로 믿어!’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게 맞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고, 스스로 다시 말했어요.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믿어.’ 예전에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나요?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요? (그건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도대체 얼마나 큰지 시험해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 권능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고, 사람이 평생 얼마큼의 부를 쌓고, 어떠한 삶을 사는가는 하나님께서 이미 명정해놓으셨다. 그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욕심내다간 탈 난다’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내 힘으로 아름다운 내일을 만든다’과 같은 사상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힘으로 더 많은 돈을 벌고,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좋은 나날을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주재에 맞서면 운명과 싸우는 힘든 삶을 살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없게 된다. 남편의 친구처럼 말이다. 정해진 운명을 따르지 않고 수년간 필사적으로 살았지만, 온갖 고생 끝에 약간의 돈은 벌었으나 결국 사업 실패로 번 돈을 모두 날려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남편과 나도 마찬가지였다. 힘들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결국 몇 푼 벌지 못했고 우리의 운명도 바꾸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고 운명에 맞서 싸워 생긴 결과가 아닌가? 이로써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세가 닿는 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마다 얼마큼의 부를 축적할 것인가는 하나님에게 달려있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하나님은 이미 정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으로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사람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진정한 인생 얻기를 추구해야만, 점차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인생의 모든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다.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만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 나는 과거 악착같이 살던 나날들과 작별했다. 더는 어떻게 하면 내 힘으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했다. 그 후, 남편은 새로운 화물차를 한 대 샀고, 집 근처에서 물건 배송 일을 하게 되었다. 예전처럼 악착같이 일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예전에는 운명과 맞서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에 따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도 찾았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빵빵”, 갑작스레 들려온 경적에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운명과 싸우며, 고통 속에 살고 있을 남편 친구와, 운 좋게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행복한 삶을 사는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다….

인터넷 채팅에 푹 빠져있던 남편이 끝내 정신차리다

양유(杨柳)와 향명(向明)은 소개팅을 통해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그들의 생활은 비록 그다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향명은 양유를 살뜰히 보살폈고 양유가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향명은 늘 옆에서 도와 주었으며 외출하여 산책하거나 쇼핑할 때에도 항상 같이 붙어 다녔습니다.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이웃들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당신 둘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니는군요, 정말 금슬이 좋은 부부네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도 자신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향명이고, 일생의 동반자도 향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나게 되자 가정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넘쳐났고 가정 생활은 안정되고 즐거웠습니다! 아는 친척이 그들 부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어 온 가족이 모두 주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양유는 운 좋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었고 같은 해에 그들은 넓고 아늑한 집도 짓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비록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양유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고 그들의 부부 관계도 여전히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향명이 식품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유는 남편이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산책하고 있을 때, 몆 번이나 향명의 전화 벨이 울리면 향명은 재빨리 한쪽에 숨어서 전화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밖에 나가 일하면서 설마 외도라도 한 걸까?’라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항상 자신에게 잘 대해주었고 이 가정을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 하는데 아니겠지라며 다시 생각을 고쳐 먹게 되었습니다. 비록 생각은 이렇게 하였지만 양유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어느 날 향명이 곤히 자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통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양유는 요즘 들어 남편의 행동이 왠지 모르게 미심쩍다는 생각에 문자를 확인해 보았는데 위챗 여자 친구가 보낸 문자였습니다. 양유는 “더 이상 제 남편이랑 채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요?”라고 문자로 답변을 보냈더니 채팅 그 여자는 오히려 “이건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고 당신 남편에게 물어 봐야 할것 같은데요, 우리는 서로 말이 잘 통해 아주 즐겁거든요! 당신은 당신 남편 간수나 똑바로 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 왔습니다. 채팅 그 여자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양유는 너무 화가 나서 바로 남편의 휴대폰을 꺼버렸습니다. 이튿날 양유는 향명에게 더 이상 위챗 여자 친구와 채팅을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향명은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부터 양유를 피해 다니기 시작하였고, 집에 있을 때에도 급히 식사를 끝내고는 온갖 핑계를 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여자들과 채팅을 즐겼습니다. 하루는 양유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향명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가정을 지키고 싶기는 한가요! 위챗 채팅이 그렇게 좋아요? 채팅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아님 제가 중요한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향명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차가운 말투로 “여자랑 채팅하는 게 중요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다들 이런 경로를 통해 인맥을 넓히고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다고. 이런 거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이것이 바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라고!”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남편의 냉정한 말에 양유는 자신과 20여 년을 함께 생활해 온 남편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비통하고 처량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바람에 양유는 화가 나다 못해 몸이 부들부들 떨려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이혼을 생각했고 이 가정을 떠나려고 하였지만 아이에게는 온전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양유는 향명과 각방을 쓰기 시작하였고 비록 한 집에서 생활은 하였지만 마치 서로 남남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은 예전의 따뜻함과 화목함을 잃게 되었습니다. 양유의 마음은 고통스럽고 답답했습니다. 그녀는 향명이 왜 이렇게 예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상하고 고민에 빠진 양유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하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는 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이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 한 차례 한 차례의 이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건전하지 못하고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르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꺼이 이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하였고, 사탄의 생존 관점, 인생철학,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하였으며,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삶에 대한 방식과 그것이 ‘선사해 준’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하였는데, 사람은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더욱이 저항할 의식마저도 없다.”라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남편이 그렇게 변하게 되고 부부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나 조류의 영향을 받아 초래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하였고 이 가정도 매우 아끼고 살뜰히 유지하려고 했고 책임감도 있었는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터 동료들의 영향과 환경의 지배하에 위챗 채팅에 빠지기 시작하여 매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치를 않았으며 채팅에 푹 빠져 가정도 저도 아이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양유는 그들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 원흉이 다름 아닌 사회조류가 가져다준 사악한 풍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남편은 위챗 채팅에 푹 빠지게 되었고 남편은 무고하고 가엾은 피해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양유는 더 이상 남편을 예전처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양유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사탄의 사악한 조류와 한차례 쟁탈전을 벌여 남편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건져 내야 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양유는 예전처럼 향명을 냉대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그와 마음속말도 하기 시작했고 시간만 있으면 향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조류가 사람에게 가져다 준 해악과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통해 주기도 했습니다. 향명은 양유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차분하게 앉아 양유와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양유는 향명에게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었습니다: “마귀 사탄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꾀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가상의 세계에서 살면 정상적인 인성에 관련되는 모든 생활에 대해 흥미를 잃고, 일을 하거나 공부할 마음도 없어지며 늘 그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는데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다.” “그러므로 한 가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이 환경이 너에게 무엇을 주입하게 되면 너는 무엇으로 변하게 되고 무엇을 주입하면 너는 무엇을 얻게 된다. 그가 너를 어떻게 제어하면 어떻게 인도하면 결국 어떤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람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극도로 나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너에게 가져다준 것은 바로 이 딴 것이다. 그럼 이런 환경을 지배하는 조정자는 누구일까? 그의 본성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렇게 변하고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는지 본인도 모르고 잘 알지 못한다. 어떻게 변했는지 본인도 잘 알지 못하는데 결국 오늘날의 너가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왜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이 왜 지금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냥 흐리멍덩하게 살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과정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하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패괴하고 사람은 이렇게 타락하게 된다 .” 양유는 남편과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예전에 당신은 지금 같지 않았어요, 제게도, 아이에게도 잘하고 우리 가정도 아주 사랑했어요. 하지만 당신이 위챗 채팅에 빠진 후부터 더 이상 나랑 아이를 신경쓰지 않았고 심지어 내가 당신한테 말을 해도 들어주질 않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잃었어요. 당신이 식사하는 걸 보면 배가 고픈지, 부른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고 대충 두어 술 뜨고는 허둥지둥 밖으로 나갔어요. 직장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것 같았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으로 채팅할 생각, 채팅하는 여자만 생각하는데, 당신이 이 사악한 조류에 완전히 제어되어 있다는 걸 설명해요. 당신이 여자랑 채팅하면서 일시적인 스릴과 위안을 찾을 때,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인터넷 채팅이 진정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은 많은 여자들이랑 채팅하는 것으로 남은 인생 살아 갈 수 있겠어요? 우리 주변에 수많은 가정들이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인터넷 채팅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어떤 가정은 여자가 남편을 포기하고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남자랑 도망갔고 어떤 집은 남자가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채팅하던 여자랑 놀아나게 되었잖아요. 이러한 비극들은 모두 사탄이 일으킨 사악한 조류에 의해 초래된 것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진리가 없기에 사탄의 궤계를 꿰뚫어 보지 못하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탄의 음흉한 속셈은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어요. 사탄은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타락시키는데 우리로 하여금 더러운 정욕과 사욕에 사로 잡혀 죄속에서 낙을 누리게 하고 결국 사람을 삼킬 목적을 달성하여 그것과 함께 멸망될 것을 바라죠. 우린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되요!” 향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양유의 얘기를 듣고나서 너무 두렵고 부끄러운 나머지 “여보, 전에 난 다들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보니 당신이 속이 좁아 나랑 시시콜콜 따진다고 여겼어요. 오늘에야 사탄이 나를 패괴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탄은 나를 지옥으로 끌어 가고 있었어요! 사실 가끔은 나도 네티즌이랑 채팅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부부 사이에도 좋지 않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도 없어지게 하고 특히 당신 기분이 상하면 나도 마음이 아팠어요. 몇 번이나 더 이상 놀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나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어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탄이 휴대폰 채팅을 통하여 나를 미혹하고 해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더 이상 사탄의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리고 위챗 채팅에 더 이상 빠져 들지 않겠어요. 우리 다시 예전처럼 잘 살아 봐요!”라고 확고하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향명의 말을 듣고 양유는 마음이 따뜻해졌고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습니다. 향명은 회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양유가 보는 앞에서 위챗 프로그램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양유는 향명의 휴대폰에 위챗 문자가 온 것을 또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향명에게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더니 향명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양유에게 앞으로 다시는 채팅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또한 휴대폰을 불 타고 있는 아궁이에 던져 버리는 것으로 채팅하던 여자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리라는 결심을 보였습니다. 양유는 사악한 조류가 향명에게 가져준 독해가 너무 깊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향명을 인도하여 사악한 조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가져야 할 생활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나중에 교회의 한 자매님이 양유의 집을 찾아와 예배 드릴 때 향명과 교통도 하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읽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단 네 머릿속에 담기고 네 마음속에 박히기만 하면 마치 마귀의 저주 속에 빠진 듯… 그것이 너의 삶과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고, 또한 네가 사물을 판단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치며, 더욱이 네가 진정한 인생길을 추구하는 것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바로 마귀의 저주이다! 네가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고, 잘라 내려고 해도 잘라 낼 수 없으며, 떼어 버리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게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각종 방식으로 사람을 패괴시키고 틈만 있으면 들어오고, 또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그러면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럼 인류에게 희망이 있느냐?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느냐? (구할 수 없습니다.) 옥황상제는 어떠냐? 공자는? 관음보살은? (구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십니다.)” 자매님은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상대로 우리는 자신의 의지력으로만 개변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바른길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는데 두게 되면 사탄은 더 이상 우리의 마음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게 되면 진리를 좀 알게 되고 사탄의 사악한 조류를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을 증오하게 되고 더 이상 그 속에 빠져 미혹받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라고 교통해 주었고 향명은 머리를 힘있게 끄덕였습니다. 그후부터 향명은 양유를 따라 함께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 되었고 차츰 마음도 더 이상 인터넷 채팅에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휴대폰에 위챗이 깔려 있어도 더 이상 향명의 마음을 유혹하지는 못했습니다. 양유는 향명이 전화상으로 채팅하던 여자에게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말라고 질책하는 통화 내용을 몇 번이나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과 진리를 교통하는 것을 통해 향명은 위챗 인터넷 채팅은 사탄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의 가정을 파괴하고 심지어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수단과 방법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어떤 것이 부정적인 사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가라앉히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탄의 변두리까지 왔던 가정에 드디어 예전처럼 기쁘고 즐거운 웃음 소리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양유와 향명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그 모든 짓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고 있다. 사탄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조류를 일으킬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살며시, 조용히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한 사람에게 사역을 하기 시작할 때, 한 사람을 택할 때, 그는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았고,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그 어떤 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단지 말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하고 있었다. ”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관리하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순복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아가면 심령 깊은 곳이 밝고 안심되고 더없이 달콤함을 느낄 수 있고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된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구원이 없고, 하나님 앞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가정은 벌써 파탄되고 말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너무나 진실하다는 것을 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양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고 길을 잃어 헤맬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고 사탄이 우리같은 무지한 사람에게 준 상처를 똑똑히 보게 하였습니다. 저는 사탄을 증오하게 되자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그를 증오하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남편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궤계를 간파하도록 남편을 인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의 사악한 조류를 따라 타락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경력 가운데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에게 통찰력을 키워주어 분별 능력을 자라게 하였고 사탄이 사람을 독해하는 각종 음모 궤계를 간파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저희가 사악한 조류의 공격을 이겨내는 가장 유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저희 마음속에 있다면, 마귀 사탄은 더 이상 저희를 농락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남편이 잘못을 깨닫고 다시 돌아오게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가정을 구원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유도(刘涛)

불임에 처한 딸에게 자녀가 있을지의 여부는 누가 결정합니까

딸의 불임에 사방을 다니며 의사를 수소문 하였지만 매번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시 딸의 결혼 생활이 영향을 받지 않을지, 친척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지, 이런저런 걱정에 고통스럽기만 한 그는 몇 번의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하자 뜻밖의 은혜가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기도의 힘 — 남편의 교통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동행을 느끼다

남편의 갑작스런 교통사고에 그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고통 속에서 드린 한 번 또 한 번의 기도로 그녀는 하나님의 동행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남편을 통해 기적도 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

오늘날 사람들이 다니는 크고 작은 길 곳곳에서는 다이어트 뷰티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수요가 있어야 시장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최근 다이어트 뷰티샵이 이렇게 많은 건 바로 현대인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몇 년간 다이어트를 위해 경락 다이어트 샵에 다니며 혈자리 지압 다이어트를 해봤습니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 다이어트 침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침으로 감싸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다이어트 약도 먹어봤지만 중국 제품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미국 유명 브랜드의 다이어트 약도 써보았습니다. 결국 전 다양한 제품과 다이어트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제품을 사용할 때만 살이 빠지고 나중에는 요요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돈은 돈대로 쓰고 제 위장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습니다! 휴! 이 대가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다이어트에 매달리는지 궁금하신가요? 바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악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취직과 연애를 할 때는 더는 인품과 능력을 보지 않습니다. 여자라면 몸매와 얼굴형을 보고 남자라면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취업 면접에서 저보다 마르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저보다 합격할 기회는 더 많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고 몸매가 좋은 친구들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몸매가 좋아야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운 시선을 받습니다. 하지만 통통한 저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고 심지어 비웃음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쇼핑하며 옷을 살 때면 직원이 제 살을 보고선 “사이즈 없어요!”라고 말하며 제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통통했던 저는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가끔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도 살찐 제 모습보다 마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살은 제 자신감과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취미 생활은 곧 다이어트가 되어 각종 다이어트 제품을 찾았고 휴대폰만 열면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며 바로 저장했습니다. 뉴스에서 종종 다이어트가 절실하여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약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의 소식도 자주 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위해 거식증에 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이 아무 영양도 흡수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만을 맞이합니다. 이 같은 소식을 볼 때마다 저도 두려워 어떤 모습이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옷이 작아 못 입는 제 모습을 보거나 여름이 다가와 몸매 좋은 사람과 예쁜 옷을 볼 때면 다시 다이어트가 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서 “진리는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이는 절대적이다”라는 말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과연 내 뚱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진 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펼쳤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정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 지금껏 살을 빼면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연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사람의 몸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이미 주재하고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몸매가 좋지만 직장과 가정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겉모습은 별로지만 따스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순간 제 관점이 황당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릇된 관점으로 수년간 돈도 낭비하고 고생도 했구나. 참으로 어리석었어!’ 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가 일어날 때마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그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그런 조류는 어떤 것일까? 그 조류는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조류가 유행될 때, 급선봉이 되어 그런 일을 시작하고 그런 사상과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부지중에 계속 그런 조류에 감염되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조류를 받아들이게 되고, 나아가 그런 조류에 파묻히고 통제되기까지 한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그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달갑게 그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사탄에게서 온 생존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사탄이 알려 준 삶의 방식과 사탄이 ‘선사’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는데, 사람에게는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저항할 의식은 더더욱 없다.』 사람들이 왜 이 같은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자기의 외모와 몸매를 바꾸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바로 이 사악한 어둠의 사회 풍조를 따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사탄의 권세 속에 살아가고 있어 사물과 인생을 보는 관점이 모두 사탄에 속해있습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 역시 왜곡되어 완전히 사탄의 관점에 따라 사물을 바라봅니다. 사탄이 사악한 풍조를 일으킬 때마다 사탄은 겉만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게 만들어 사탄의 우롱과 조종을 받게 합니다. 사탄은 또 인터넷 매체, 사회상층인물 등을 통해 사탄의 관점을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시켜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추함인지도 모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는 다 속마음이 겉모습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휴대폰 속 뉴스는 온통 어떻게 다이어트를 하는지, 누가 가장 예쁜지, 갑부에게 시집간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도 겉모습이 예쁘고 잘 생긴 연예인을 출연시킵니다. 연예인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성형과 다이어트를 하였고 대중에게 다이어트 경험을 종종 소개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끊임없이 고가의 명품 화장품으로 피부 관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좋은 직장 구하는 것보다 나아. 남자들은 다 예쁘고 섹시한 걸 좋아하니까 나도 관리해야지.” 제 친구가 이런 사상을 가진다는 건 이 사회가 주입시킨 관점이 초래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좋은 몸매, 예쁜 얼굴을 항상 추구하는 건 모두 사탄이 이끄는 사악한 풍조가 아닐까요?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 사탄의 사악한 풍조의 피해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이 사악한 풍조를 분별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사악한 풍조가 추구하는 소위 “아름다움”을 더는 숭배하지 않고 사탄의 우롱을 받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따르고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제 인생의 길을 걷길 바라면서 더는 저 자신의 몸매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네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에게 너무나 유익하고 너무나 큰 보호가 됨을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너는 이런 고통이 차츰 경감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너의 전인(全人)도 점차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와지고 해방될 것이다.』 전 여전히 통통하지만 직장과 결혼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전 매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입니다. 아이들 역시 통통한 선생님을 좋아하고 부모님들도 매우 절 존경합니다. 제 남편과 시댁 분들 또한 제게 너무 잘해주다 보니 결혼과 직장 같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외모와 몸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했던 최근 몇 년을 돌이켜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는 걸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을 더욱 허황하고 사악하게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정정당당한 사람이 바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아들의 웃음을 돌려주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어느 날, 류화(劉華)는 학교로부터 학부모회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학교 측은 2학년 학생과 학부모 전체가 면학반 개방 프로그램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날 학교 행사장은 학생과 학부모들로 가득 찼습니다. 학교 측 대표는 강단에 올라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면학반 학생들의 우수한 수능 결과를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면학반’은 중학교 2학년 학생 중 일부를 선발해 고등학교 입시를 면제해 주는 특별 우수반을 뜻합니다. 면학반에는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교사를 배정하고, 학생들에게는 무료 숙식이라는 특별 대우를 제공합니다. 면학반에 합격한 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2~3개월 안에 모두 끝내야 할 만큼 공부의 강도도 셌습니다. 보통 학생들이 자정이 넘어서야 숙제를 마무리하는 걸 보면 면학반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에 힘쓰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집에 돌아오면 류화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학반 학생들은 다 ‘악바리’에다 ‘잠도 안 자는 무적인간’인가 봐요. 교실 등이 24시간 내내 켜져 있다니까요.”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류화는 놀람을 금치 못했고, 아이들의 몸이 과연 견딜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유년시절의 활기를 잃어 갔고, 모두 애늙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앞다투어 자녀를 면학반에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간간이 울려 퍼지는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를 따라 류화는 회상에 잠겼습니다… 류화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었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영특함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류화는 ‘어리석은 새가 먼저 숲으로 간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아들 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아들에게 학습 계획표를 짜주고 단원별, 주별, 월별로 시험지를 풀게 했으며, 복습 교재도 많이 사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아들이 숙제를 마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연습문제를 풀었습니다.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를 보면 참지 못하고 지우개로 다 지워 버린 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답이 틀렸을 때는 그 벌로 틀린 문제를 여러 번 베껴 쓰게 했습니다. 아들은 매번 원망스러운 눈으로 류화를 쳐다봤지만 류화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주말도 없었고 TV도 볼 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끝없는 숙제와 문제들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을 토할 때면 류화는 아들을 달랬습니다. “이 시험지만 다 풀면 놀고 맛있는 것도 사줄게.” 하지만 시험지를 다 푼 후에는 다른 시험지를 풀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더는 류화의 말을 믿지 않았고, 울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야. 난 거짓말쟁이 엄마가 미워!” 류화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직 어려서 철이 없고 커서 성공하면 자신의 노력을 이해할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렇게 류화의 ‘도움’으로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류화에게 있어 아들의 100점짜리 시험지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도 같았습니다. 학부모회를 갈 때면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운 눈빛을 받고 더욱 뿌듯해했으며,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이 올라갈수록 자신과는 관계가 점점 멀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고 매일 방과 후 집에 오면 어두운 표정뿐이었습니다. 류화가 다가가면 아들은 몸을 움츠려 자신을 건들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문제를 풀게 할 때는 눈을 치켜뜨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들과 멀어진 류화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고통에서 헤매었고, 과연 누가 자신을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류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과 미약함의 근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지식을 미끼로 삼는다. 잘 듣거라.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미끼일 뿐이다. 사람에게 ‘공부를 잘하여 나날이 향상하자’라며 지식을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게 한 다음, 그 지식으로 과학의 대문을 열게 한다. 바로 네가 배운 지식이 많으면 아는 것이 더욱 많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모두 사탄이 사람에게 알려 준 것이다. 사탄은 또 사람에게 지식을 배우는 동시에 원대한 꿈(원문: 理想)을 품게 하여 ‘포부’가 있고 ‘꿈’이 있게 한다. 사람이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탄은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적지 않게 주입시켜 사람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것이 옳고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지중에 이런 길을 가게 되었고, 부지중에 자신의 ‘꿈’과 ‘포부’에 끌려 앞으로 나아간다. …사실상, 사람의 꿈이 얼마나 원대하고 소망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하든, 사람이 실현하려는 것과 추구하려는 것은 두 글자에서 떠나지 못한다. 이 두 글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각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이것 또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것이다. 어떤 두 글자일까? 하나는 ‘명(名)’이고 다른 하나는 ‘리(利)’이다. 즉, ‘명예’와 ‘이익’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 자신의 앞날과 운명까지 기꺼이 다 사탄에게 맡기게 되었는데도 전혀 의심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전혀 되찾아 올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에게 가서 이렇게 의탁하고 충성을 바치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럴 수 없다. 사람은 철저히 사탄에게 통제되고 완전히 수렁에 빠져 스스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밑바닥에서부터 살길을 찾아야 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아들을 출세시키고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게 하려고 류화는 온갖 방법으로 아들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공부에 엄격했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아들은 숨을 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은 조금씩 반항심이 생겼고 결국 모자 관계가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그제야 자신이 사탄에게 타락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익의 소용돌이에 빠져 아들을 이익의 희생물로 삼았던 것입니다. 아들을 대했던 모든 순간을 떠올리니 류화의 마음은 자괴감과 자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류화는 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아들의 삶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여유 시간에는 밖에 나가 놀도록 해 주었습니다. 아들에게는 공부 스트레스가 줄었고 느긋한 여유도 생겼습니다. 더는 울면서 화난 얼굴로 류화에게 불만을 토하지도 않았습니다. 새장을 벗어난 작은 새처럼 매일 즐거워했고, 귀엽고 작은 얼굴에는 찬란한 미소가 생겼습니다. 주말이 되면 류화는 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말씀 낭송을 들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를 듣고 영화와 MV도 보며 하나님의 사랑 속에 젖었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사랑의 돌봄 속에서 자유롭고 기쁘게 자랐습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되었고 예전보다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류화는 오랜만에 이 같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078"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 후 모범생들의 경쟁 속에서 아들의 성적은 조금씩 떨어졌습니다. 매달 월말고사 후에 열리는 학부모회에서 류화는 더 이상 뿌듯해하며 선생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충고를 들어야 했습니다. 매번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때마다 다른 학부모들의 눈빛이 류화에게 화살같이 쏟아졌습니다. 류화는 마치 이들의 눈빛에 온몸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조금씩 학부모회가 싫어졌습니다. 류화는 언젠가 아들의 성적이 다시 좋아지기를 무척 바랐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랑스러워하며 선생님의 칭찬과 다른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회가 끝난 후 류화는 아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마친 뒤 아들이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해도 허락해 주지 않고 문제집을 펼친 후 문제를 풀어야 놀 수 있다고 했습니다. 류화는 아들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류화는 방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알고 심란해졌습니다. 이 같은 심란함 속에서 류화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지금 너무 힘듭니다. 아들에게 억지로 공부를 시키는 게 잘못되었다는 걸 저도 압니다. 하지만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익에 얽매이지 않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기도를 마친 류화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 말씀을 찾아 펼쳤습니다. 『사람은 자녀를 대함에 있어 그들이 다 두각을 나타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람마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학문을 더 닦고 학위를 취득하고 학력을 갖게 한 다음 두각을 나타내어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가 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고, 자녀가 더 높은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은 다 하찮고 독서만이 고상하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의 이 사회에서는 경쟁도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학력이 없고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이후에 생존해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각 사람의 사상 관점이다. 즉, 네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학력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후의 직업과 전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일생 동안 이것에 의지해 살려고 잘 계획해 놓고,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고등 교육을 받거나 일류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자녀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큰일로 여긴다.』 류화는 자신이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상에 깊이 빠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커서 출세하기를 바라면서 ‘공부만이 살 길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매일 열심히 배우자’ 등과 같은 사상을 아들에게 주입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류화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면서 밝고 찬란해야 할 유년시절에 ‘어두운 그림자’를 덮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자 관계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져 버렸습니다. 류화는 강한 자책감을 느끼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아들딸이 훌륭한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라는 사탄의 독소는 이미 류화의 목숨처럼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운명을 제어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아들의 성공만 바랐습니다. 또한 사탄의 사상과 관점에 깊은 해를 받아 항상 아들이 뛰어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마음은 조금도 돌보지 않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은 결국 독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를 생각하니 류화는 마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류화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사람의 이런 정형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바로 이전의 생존 방식에서 떠나고, 이전의 인생 목표에서 떠나며, 자신의 이전 생존 방식, 이전의 인생관, 이전의 추구와 소망과 꿈에 대해 총결하고 해부한 다음 다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등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에게 정확한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 사람으로 더욱더 진리를 깨달으면서 살고 인성 있게, 사람 모양이 있게 살게 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네가 이런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음으로 네가 해야 할 것은 바로 낡은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가지 함정을 멀리하며, 너의 인생을 하나님이 너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게 하고 너를 위해 안배하게 하며, 하나님의 지배와 하나님의 인도에 순복하기만을 구하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류화는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었습니다. 아들의 성공, 직업, 인생은 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창조주의 안배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주재에 따라야만 편안하게 미래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피조물의 진정한 미래인데, 류화는 아들에게 억지로 이익의 길을 추구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건 아들을 불구덩이로 떠미는 것과 같았습니다. 반평생 이익만을 좇았지만 영혼의 평안함을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자신과 아들에게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더는 공부를 강요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아들의 운명이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다 알맞은 안배를 해 놓으신 것입니다. 류화는 아들에게 하나님을 착실히 믿고 진정한 인생의 길을 가기를 바랐고, 자신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신 운명을 따르기만 바랐습니다. 그 후, 류화는 아들과 함께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을 찬미 하곤 했습니다. 그랬더니 찬란한 미소가 아들의 얼굴에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함으로 말미암아 삶도 유난히 아름답게 바뀌었고, 류화에게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게 되자 아들의 담임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이번 학기에 아드님의 성적이 크게 올랐습니다. 볼수록 너무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칭찬을 들은 류화는 하나님께 진실한 감사와 찬미를 올렸습니다. 학부모회에 참석한 부모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류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올리는 사이에 면학반 개방일 프로그램은 어느덧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의 안내에 따라 학부모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학생들의 공연을 감상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면학반 학생들은 낭독 공연을 펼쳤고, 무대 아래에서 학부모들은 부러움과 시기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이 장면을 본 류화는 마음이 살짝 쓰라렸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쌍하고 비참해 보였습니다. 또한 자신과 아들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면서 하나님의 구원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취직 어려움, 이것만 알면 힘들지 않다

“그대도 나처럼 태양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땀 흘리며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고 있나요? 그대도 나처럼 사람들의 냉정한 눈빛을 받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있나요?” 귀에 익은 선율이 들릴 때마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 졸업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다. 2011년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의연하게 교육의 질이 높은 인근 현으로 재수를 하러 갔다.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자습하고 나서도, 밤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한 권 또 한 권 뗐고, 정치 책은 하도 넘겨봐서 다 너덜너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나의 노력이 꼭 보답을 받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2012년 대학 입학시험에서 564점(커트라인 보다 2점 높음.)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고 나는 무척 기뻤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으니 명문 대학에 응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졸업 후에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첫 번째 지원 대학은 자신만만하게 명문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응시한 대학의 합격선이 565점이었다! 단지 1점 차이로 내가 꿈꾸던 대학과 멀어졌다. 이때, 내 마음은 실망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노력했는데 이런 결과를 받고 보니 실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대학 입시가 끝난 후, 어머니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모임에 나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운명을 바꾸려고 했다. 나중에 나는 이 지역의 평범한 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대학 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력만 하면 분명 보답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나는 제일 먼저 일어나고, 수업을 제일 열심히 듣는 그런 학생이었다.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전공 지식을 열심히 필기하고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 밖에, 나는 자주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전공 외의 책들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충실했다. 종합 평가점수를 높이려고 학생회에 가입하고, 학교에서 주최하는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단체를 만들어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활동에도 참여했다. 학교 평가에서는 여름방학 기간의 사회 실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사회 실천 논문은 학교 신문에도 실렸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나는 나의 전공 소양을 높이기 위해 휴가도 포기하고 매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교육 기관에 가서 직업기술 교육을 받았다. 나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내 인생의 이력을 풍부히 하고, 좋은 점수를 받아 미래에 좋은 직장을 구하는 데 든든한 기초를 쌓고 싶었다. 나의 노력은 상응하는 보답도 받았다. 나는 여러 번 학교의 1등, 2등 장학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나는 당연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에게 의지하다 여러 번 벽에 부딪히다. 대학 시절은 금방 지나갔다. 이제 곧 졸업이라 직장을 구해야 한다. 나는 전에 받은 상과 참여한 경력으로 빼곡히 채운 이력서를 들고 자신만만 하게 10여 군데의 취업 설명회를 다니며 굵직한 대기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력서는 그 자리에서 받기를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제출하고 나서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대학에서 노력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인가? 내 졸업장과 받은 상장이 좋은 직장을 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일까?’ 하루는 예배에서 구직의 고충을 형제자매들에게 토로했다. 자매가 나에게 교제해 주었다. “우리의 앞날과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어요. 자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하나님이 이미 정해 놓으셨어요. 결코 우리의 이력과 졸업장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직장을 찾을 때 하나님에게 많이 의지해야 해요.” 나는 자매님의 위로를 듣고 입으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히 지식이 운명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어. 자매님은 인간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지만 난 내 실력을 믿어. 분명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후 나는 또 여러 군데 이력서를 넣었고, 대형 취업설명회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았다. 나는 반드시 내 전공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는 여러 번 벽에 부딪혔다.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가 아니면, 회사에서 일반 대학생을 모집하지 않았다. … 참담한 현실 앞에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고, 앞날에 대해서도 막막했다. 하지만 졸업장과 성적 증명서를 가지고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전공으로 찾을 수 없다면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라도 찾자! 내 실력으로 좋은 회사를 못 찾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어! 나는 전공과 맞지 않는 일자리에도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하루는 한 작은 정보기술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한 명문대 졸업생과 마주쳤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왜 여기에 응시했을까? 명문대 졸업장이 있는데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한 걸까?’라며 의아해했다. 그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렇게 노력해도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 내 운명을 장악할 수 없을까?’ 마음이 해방되고 근원을 찾아내다. 설 연휴를 맞고도 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무척 초조했다. 매일 핸드폰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채용 정보를 보며 좋은 일자리를 놓칠까 봐 계속 업데이트했다. 또 친척과 친구들이 취직했냐고 물어볼까 봐 찾아가지도 못했다. 내가 매일 취업 문제로 걱정하고 궁지에 빠져 있을 때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직장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나 막막하고 무기력합니다.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쳐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기도 후에 갑자기 자매님이 전에 나에게 나누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장악되어 있다. 너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없는데, 설령 늘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장악할 수 없다. 네가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운명을 장악할 수 있다면, 너를 어찌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이어서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다. 『운명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제 뜻대로 안개 속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에게 삶은 너무나 어렵고 가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재를 알게 되었을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 주재에 대해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를 추구하던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재수를 선택했던 일, 힘든 고3의 시기를 두 번이나 겪은 일, 그럼에도 1점 차이로 명문 대학과 멀어졌던 기억을 회상했다. 대학 시절, 나는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려고 적극적으로 각종 활동과 전문 기술 교육에 참여했고, 졸업 후, 나는 비바람을 맞으며 취업설명회에 참가했지만 내 이력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 지나간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는 깨닫기 시작했다. 공부부터 취업까지 나는 줄곧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두 손으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자'라는 신념을 갖고 살면서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희생하며 좋은 졸업장만 있으면 분명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번번이 벽에 부딪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름다운 대학 시절을 모두 '학문의 세계'에서 보냈다.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건강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귈 시간도 놓쳤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여전히 줄기차게 노력했다. 비록 학업에 성취도 있었고,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디딤돌도 얻었지만 운명의 안배에 불복하고 항상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졸업장과 성적에 의지해 대기업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되지 못했을 때 고통 속에서 힘겹게 발버둥 쳤다. 하나님은 내가 사탄에게 고통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매와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는 사탄의 허튼소리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고 여전히 사탄에게 끌려다니며 스스로의 능력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망상했다. 결국 스스로 고통 속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존을 위해 믿었던 사상과 관념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우롱하는 수단이었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계속 이런 관점을 지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나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해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뜻에 들어맞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삶을 맡겨 계획하고 다스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과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를 몰랐을 때 항상 자신의 두 손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고, 자신의 운명을 다시 쓰려고 했지만, 사탄의 우롱과 괴롭힘 속에 살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정확한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이전의 잘못된 관념을 내려놓고 더 이상 사탄의 철학에 의해 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와 운명에 달려 있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졸업장과 업무 경험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피조물이다. 나의 인생은 마땅히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한다.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해야만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인한 몸부림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홀가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062" align="aligncenter" width="615"] 글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입니다[/caption] 하나님께 의지하니 아름다운 꿈이 현실이 되었다. 나중에 일자리를 구할 때 나는 더 이상 내 능력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모두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느냐는 모두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고 당신의 말씀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맡겼을 때 하나님의 기묘하신 역사를 보았다. 설날을 보낸 후, 인터넷에 이력서를 하나 넣었고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집이랑 아주 가까워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나중에 출근 해서야 회사에서 한 번도 당해 졸업생을 채용한 적이 없었고 내가 첫 번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면접에는 명문대 졸업생도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나를 채용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았을 때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로써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재를 보았다. 내가 하나님의 주재에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었다. 일 년 동안 직장을 다닌 후, 회사가 지방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나를 파견해 매주 3일 동안 지방에 상주하게 했다. 지방은 너무 멀어서 왕복으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예배도 제대로 나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여자인 내가 외지로 돌아다니니 안전이 걱정되어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반대했다. 눈앞의 환경에 직면해서 나는 갈등했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했는데, 그만두면 또 이렇게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장기간의 출장으로 인해 몸이 견딜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제대로 모임에 갈 수도 없으니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내가 머뭇거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복하고 매일 하나님이 안배한 환경과 하나님이 준 생활에 순복하고 즐겁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돼.’ 너에게 이런 마음 상태가 있다면 부지중에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리면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포기한 후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께 의지해야 하고, 앞으로 내가 적합한 직장을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이 주재하도록 하자. 하나님이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신다면 나는 구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지 않으시더라도 억지로 구하지 말고 순종하자.’ 이렇게 생각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드렸다. “하나님, 저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당신의 손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당신의 섭리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며칠 후, 나는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력서를 낸 다음 날, 유명한 회사에서 면접에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면접에 참여했는데, 예상 밖으로 면접 당일 오후에 채용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이 회사는 주말에 이틀을 쉬어서 예배에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입사 후 상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보통 남자만 채용했는데, 이번 면접에 남자도 한 명 있었지만, 당신을 채용했으니까 열심히 일하셔야 해요. …” 이번 체험을 통해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것을 보았다. 상사의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한 것도 하나님의 주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길을 열어 주셔서 적합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기쁨도 알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에서 얻어야 할 인생 깨달음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을 떠날 때 왜 아쉬움을 안고 갔는지 알고 있나요? 그의 유언이 우리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