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어떻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까

2019년 02월 22일

이른 새벽, 저와 사촌 언니는 함께 성경을 봉독했습니다. 계시록 19장 7절에서 9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성경 본문을 다 보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는 이런 말씀은 요한이 본 이상으로, 말세에 주님께서 재림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고 있어. 지금은 이미 말세에 이르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된 거지.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천국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준비해야 해. 매주 일요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와 밤 기도 예배를 지켜야 하며, 또 주님을 위해 열심히 전도해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해. 그러면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언니가 말해봐”

사촌 언니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음, 네가 말하는 것들은 대다수 크리스천의 실제적인 삶이지만, 그런 것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영접하여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르는 거야. 계시록 14장 4절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라고 예언된 것처럼 말이야. 이래야만 우리는 말세에 주님이 오실 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거야.”

사촌 언니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저는 성경에 기록된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복음 25:1~7, 10) 이처럼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여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 음성을 듣고 적극적으로 얼른 나와 맞이해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슬기로운 처녀는 또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데, 이것 역시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중요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신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사촌 언니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한복음 10:27)라고 말씀하셨고, 계시록 2장과 3장에도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예언되어 있어. 또 계시록 3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예언되어 있어. 그리고 인터넷 복음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지.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면 주님이 오셔서 또 음성을 발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주 중요해. 오로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아야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고,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기회가 있게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저는 사촌 언니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촌 언니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나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역하신 때가 생각났어. 베드로, 빌립, 나다니엘 등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곧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거야.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그를 보지 않았을 때,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일을 말씀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아.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47~49) 그러므로 무릇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지. 반대로 예수님 당시에 성전 안에서 율법만을 지켰던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어. 예수님이 말 한마디로 바다를 꾸짖어서 풍랑이 잠잠해지고, 또 말 한마디로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는 등등 설령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권위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실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완고하게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어,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저주를 받았고, 결국 영원히 메시야의 강림을 영접하지 못한 거야. 그래서 말세에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되면 안 되는 거야. 반대로 베드로와 같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적극적으로 찾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누가 전하면 겸허한 마음으로 찾아보고, 하나님의 현현인지, 하나님의 음성이고 말씀인지를 보아야 해. 그리고 나서 그 음성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얼른 따라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하는 거지!”

사촌 언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려, 알고 보니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주님이 오실 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였어. 이렇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이고 가장 복 있는 사람인 거네. 언니가 이렇게 교제해 주니 진리에 부합되잖아! 그런데 나에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지?”

사촌 언니는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라고 말씀하셨지.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베풀어 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마치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야. 그의 말씀에는 권능과 능력이 있고 사람에게 진실로 공급할 수 있어서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도록 하지.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라고 전파하며 말씀하셨지.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포용하고 인내하고, 고통을 참아 내고, 십자가를 지는 등의 은혜시대 기간에 사람들이 준행해야 하는 말씀을 가르쳐 주셨어.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말씀은 다 진리이므로 사람들에게 새 시대의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게다가 그런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알게 되는 거야. 이것 외에 주님은 또 천국의 비밀과 천국으로 들어가는 조건을 알려 주셨지. 우리는 그런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사역인지와 그분의 음성인지를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그런 진리를 선포할 수 있고 그런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음성을 발해 말씀하시는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비밀을 풀어 주시는 거지. 바로 주님의 예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그래서 저는 “음, 언니가 이렇게 말하니 조금 알 것 같아. 언니는 아는 것이 정말로 많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촌 언니가 “나 역시 인터넷 복음 사이트에서 이 방면에 관한 많은 교제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거야. 사이트 주소를 알려 줄게, 너도 수시로 로그인해서 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뻐서 “오, 좋아!”라고 말했고, 우리는 계속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니루

'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무더운 오후, 매미는 나무에 붙어 맴맴맴맴 끊임없이 울고, 길가의 화초와 나무는 혹서에 시달려서 모두 힘 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 주택가에서 한나가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지금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의 모습과 세상의 정세로 봤을 때 말세는 이미 왔어요!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역자들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딴 생각을 하며 성경을 뒤적이고, 어떤 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고, 어떤 이는 귓속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속삭이기도 했다. 이 자매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형제자매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꾸 늦어지다 보니 다들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어요! 각처에서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네 번의 핏빛달도 이미 나타났어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아직 들림 받지 못했는데, 누가 연약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장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아이 참! 누가 아니래요! 대재난이 곧 닥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들림 받지 못했으니 대체 뭐가 문제죠? 참, 송 자매님, 자매님은 계속 외지에 있느라 우리 동역자 모임에 어렵게 참석하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송가인은 모두를 보더니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기본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어요.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들림 받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을 가진 전 애가 타서 사방으로 구하러 다녔고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됐어요. 원래, '들림 받다'는 우리가 상상한 그런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송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래 무거웠던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져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송가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정중하게 말했다. “송가인 자매님,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매사에 성경을 따라야 해요.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어요. 자매님이 '들림 받다'가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송가인을 향했다… 송가인은 미소를 띤 채 모두를 보며 말했다. "'들림 받다'가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려진다라는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 먼저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찾아봐요. 계시록 21장 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하셨구요. 이 예언들 중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땅에 있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에요. 예언에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하셨어요. 이런 예언은 우리가 결국에는 땅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만약 우리가 '들림 받다'를 하늘로 끌어올려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어요? 계시록의 이 예언들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겠어요?" 장 형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는 뜻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할 줄이야! 전에 우리는 왜 그 뜻을 읽어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우리는 하늘로 들림 받아 가려고만 했어요. 이건 주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거예요!" 송가인이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땅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가 땅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를 하늘로 보내 살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어요. 그때부터 인류의 조상은 땅에서 그들의 범죄 후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범죄 후의 사람이 땅에서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도 당연히 땅에서 이루어지죠. 율법 시대에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서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이끄셨어요. 은혜 시대,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셨죠. 이런 사역은 다 땅에서 하신 거예요. 또 계시록에 앞으로 하나님이 남아있는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귀착지는 여전히 땅에 있다고 예언했어요." 임 자매가 손에 든 물컵을 얼른 내려놓으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예전에 저는 우리의 육체적인 몸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무거운 몸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보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어요!” 형제자매님들의 한바탕 말에 한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송가인의 나눔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송가인 자매님, 자매님이 하신 말은 일리가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 에녹과 엘리아가 들림 받아 승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하죠?” 송가인은 한나를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 39~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빌립이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려 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빌립은 분명 주님에게 들림 받아 하늘로 갔어요. 하지만 사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게다가 빌립은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뤘어요. 거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고, 사실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예수님만이 천국의 대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만약 우리의 생각으로 에녹과 엘리아가 하늘로 들림 받았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우리의 상상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할까요?" 한나는 그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했다.설마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들림 받다'가 정말 틀린 것일까?’ 마음속에서 한바탕 격렬한 전쟁이 일어난 후, 그는 송가인에게 질문했다. "송가인 자매님,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음'이 틀렸다면 무엇이 진정한 '들림 받음'인지 한번 얘기해 보세요." 송가인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나눌 수 있는 한 단락을 적어 왔으니까 여러분에게 읽어 드릴게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들림 받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율법 시대 말기,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들림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말세의 오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들림 받음이에요.” 이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진정한 '들림 받음'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장 형제가 감격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라면 몇 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고 '신랑의 음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게 들림 받는 길이 생겼어요!” 송가인과 동역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

주님이 오실 때, 왜 땅위의 모든 족속이 다 애곡할까요

요한계시록1장 7절에서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도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우리를 맞아가기를 기다립니다. 그때 우린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왜 모든 족속이 그 분때문에 애곡한다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속의 비밀을 알려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서부터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데에 대한 예언이 아주 많은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16:15)“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태복음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태24:44)“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태24:36),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1 :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태24:30), 이런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의 예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는 공개적인 강림도 있고, 또 ‘도적같이’ 혹은 ‘밤중’, ‘인자’ 이런 은밀히 강림한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은밀한 강림과 공개적인 강림, 이 두가지 방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나타나시는 방식이 같지 않음은 주님이 다시 오실때 절차를 나누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먼저 은밀하게 오시고 나중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선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즉 성육신하여 ‘인자’의 신분으로 은밀하게 강림하여 진리를 발표하여 말세의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마치 당초에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실때 인자의 형상으로 인간세상에 와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육신은 평범하고 정상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지 못해 그의 사역은 은밀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기간 총명한 처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신랑이 온 것을 알고 다 잇따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요한복음10장 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한 양을 그분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려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밀을, 산양과 양을, 악한 종과 선한 종을 가르고 동시에 한 무리의 이긴자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누어지고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사역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대재난을 잇따라 내리시고, 상선벌악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 기간에 성경 구절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관념으로 가득차 구하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종교 지도자와 중국 공산당 정부를 따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면서 유언비어와 그릇된 논조를 퍼트리는 사람들, 또 자신의 명예와 지위와 밥통을 위해 집권당과 결탁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악한 종이고, 적그리스도로 구원의 기회를 철저히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임을 보게 될 것이니 그들이 어찌 가슴을 치며 애곡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때 “모든 족속이 다 애곡 ”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처럼 홍수가 오지 않은 날에는 은밀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홍수가 올 것이다’는 것을 전할 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공격과정죄, 비난과 훼방을 받았었지만 홍수가 올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을 징벌하는 날이 올 때(즉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아연실색하고 모두 노아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최종에는 홍수에 훼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단계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구원이십니다.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곧 징벌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벌써 중화 대륙에 널리 퍼지고 집집마다 알고 있어 각 종교 각분야를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바라는 수 백만의 사람들은 이미 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종교계의 핍박과 박해중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한 무리의 이긴 자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각국 각방에 널리 전파됨에 따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은밀하게 강림하여 사역하시는 계단은 끝나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시종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지도, 찾고 구히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린다면, 그럼 주님이 공개적으로 강림할 때에는 재난 가운데서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똑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른다는 각 성도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은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일 것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 믿으면서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 말씀을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와 긍휼이 있을뿐만 아니라 더욱이 위엄과 진노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순복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이고 구원이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저버리고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이고 징벌이고 저주이며 최종에는 훼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애쓰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만든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총명한 처녀가 되어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또한 요한계시록 중의 14장 4절의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란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은밀히 강림하셔 진리를 발표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무릇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어린 양이 베푼 연회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여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게 되고, 새 하늘 새 땅의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 천국에 데려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셔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도태될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재난속에 떨어져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꼭 예비해야 할 2가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점점 큰 재난이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주님은 우리가 깨어서 예비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비해야 할까요? 1. '영적인 귀'를 예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계시록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두 성경 구절은 모두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릴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또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역하시며, 모든 비밀을 열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리를 모두 알려주시고, 모든 진리를 깨닫고 진입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를 통해 진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분명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고, 생명을 내려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예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비유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태복음 22:2~3) 또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주님은 말세에 하나님이 그의 종을 보내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시고, 이 영원한 복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구하고 알아보고,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할 때, 주님의 음성이면 얼른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2.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라는 큰 사건을 대할 때,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오셨다고 증거하고, 주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영적인 귀’로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들어야 진정으로 ‘깨어서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를 들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높은 신분과 지위가 있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겸허히 빌립에게 구할 줄 알았고, 빌립이 간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사적을 들은 후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 이러한 예는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예비해야 할 일은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구하는 주 안의 형제자매님들이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 (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

주님을 믿어서부터 저는 줄곧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각 사람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대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실 때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위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주님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틀림없이 먼저 알 것입니다. 그분들을 따라 믿으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저도 계속 이렇게 지켜왔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믿음이 식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돈벌이에 바빠 예배할 시간도 없고 설교자들의 매 설교가 다 늘 하던 말이라서 들어도 누림이 없으니 저의 예전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돌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야 오셔서 저희들을 데려가십니까? 지금 저는 당신의 함께하심도 느끼지 못하겠고 예배드리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신은 저의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시니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그 후 시간이 흘러 어떤 예배에서 저는 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주님이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라고 묻자 저는 “당연히 흰 구름을 타고 오시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만약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영체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또 17장 24~25절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만약 주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마다 볼 텐데, 그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겠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제가 “그럼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라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자! 누가복음 17장 24~25절에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고 하면 육신을 말하는 거야. 육신만이 인자로 불릴 수 있잖아. 그리고 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재림하시는 방식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거야. 왜냐하면 육신만이 고통을 받을 수 있고 영은 고통받을 수 없고 게다가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당하셨잖아. 여기에서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또 한번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성경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니 정말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왜 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친구는 또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까? 만약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생김새에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면에서 알아봐야 할까?” 제가 “주님이 오시면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보실 거야. 그분들은 다 주님을 다년간 섬기던 분들이라 주님께서 오시면 틀림없이 먼저 그분들에게 나타나실 거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미 답이 있어. 계시록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왜 이 한마디를 계시록에 여러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을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거야.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생김새나 명망(名望)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겨 대하면서 하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기 아주 쉽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더 잘 영접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각 사람이 신중히 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당시를 돌이켜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이름을 예수로 불렸고 게다가 또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잖아. 그러나 여호와를 다년간 섬기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본 것과 상상에만 근거해 메시아라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어. 나중에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는데, 이런 사실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하잖아! 근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예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이 다 하나님을 다년간 섬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주님의 돌아오심을 대하는 일에서 만약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아주 가련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이전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전철을 밟아선 안 돼!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다 그분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든지 아무에게도 알리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상상과 관념 속에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고 찾고 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임하는 인사물을 대해야 해.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무엇이 사람의 소리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신 많은 말씀이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성령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마찬가지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경문에 부합되어도 사람의 말이야.” 친구가 한 이런 말은 제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저는 속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느껴져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제가 “넌 어디에서 설교 들어? 나도 같이 가서 들어보면 안 될까?”라고 묻자 친구는 “되고 말고! 듣고 싶다면 정말 좋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생기발랄하고 얼굴의 웃음꽃은 제가 몇 년 이래 종교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특별히 배려해주고 또 매우 참을성있게 저에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느꼈고 성령 역사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린양이 펼친 책≫ 한 권을 주었고 저는 이 책에서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을 보고 나서 신기하게 느껴져 속으로 ‘그래? 가능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보기 위해 저는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씌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병과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말씀에 그토록 권병과 위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통해 저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이름, 도성육신의 의의, 인류의 귀숙과 결국 등등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더욱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빨리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그 어떤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분을 믿는 각 사람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하루빨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들림 받다'의 참뜻을 아십니까?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조각이 떠 있고, 백화는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서 새빨간 교회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백화의 기분은 화창한 날씨만큼 좋지 않았고, 그의 마음속은 고민과 막막함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교회 문밖에 도착한 백화는 마음을 한번 가다듬은 후 느릿느릿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교회 안에는 10여 명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형제자매는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화는 입구에 서서 좀 보다가 약간 무거운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서 형제님이 오늘 아침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돌아갔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서로 귓속말로 속삭이며 수군거렸다. 한(韓) 자매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도 제가 시장에서 형제님을 보고 인사까지 했는데요. 멀쩡하던 형제님이 어떻게 갑자기 떠났다는 거죠?" 백화가 말했다. "어제 형제님이 아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이미 응급처치가 늦어서 오늘 아침에 떠났어요. 내일 아침 7시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니까, 형제자매님들이 모두 가서 배웅해 주길 바랄게요…" 모두가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백화가 강단에 올라 형제자매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조용히 좀 해주세요…" 모두의 눈길이 백화에게 쏠리자 백화는 진지한 눈빛으로 형제자매를 향해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정말 들림 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들은 평소 전도자의 자세가 아닌 백화를 보고 약간 의아해하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모임은 전보다 훨씬 가벼운 분위기에서 다들 한마디씩 발언하기 시작했다. 찬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백화 자매님, 오늘 어쩐 일이세요? 전에는 항상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앞으로 죽든지 아니면 살아있어도 모두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기에 의심할 게 뭐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백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때, 하린 자매님이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건 바울이 한 말이에요. 그가 한 말이 주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최근에, 저는 계속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고민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9~10)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질 거라고 우리에게 계시하는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왜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겠어요?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공중에 끌어올리신다고 했는데, 그건 주님의 뜻과 반대로 가는 게 아닌가요?" 그 말을 듣던 형제자매들은 모두 귓속말로 속삭였고, 어떤 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백화는 이런 나눔이 꽤 신선하고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고,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헤아렸다. “맞아. 주님의 뜻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야. 난 매일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어떻게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지?" 동역자인 장린 자매가 말했다. "하린 자매님, 우리는 그동안 주님이 오시면 들림 받아 천국에 간다고 믿었는데, 왜 지금 의심하시는 거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전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천국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분명 하늘에 있어야지 어떻게 땅에 있을 수 있어요? 전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백화는 형제자매들이 술렁대는 것을 보고 화제를 이어받아 말했다. "형제자매님,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오늘 이 화제가 나온 이상 우리 차분하게 한번 토론해 봐요. 방금 하린 자매님이 나눈 이야기는 정말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예요. 예전에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를 추구했지만 천국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어요. 하린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저는 계시록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시록 11:15) 이 예언들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언급했어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이 땅 위에 이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 하린 자매님에게 계속 나눠달라고 해요.” 백화는 말을 마치자 또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린 자매님, 자매님이 얼마 전 진리를 알아보러 나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찾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자매님이 나누신 깨달음이 나가서 듣고 오신 건가요? 우리한테도 좀 들려주세요." 백화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잇따라 하린에게로 향했다. 하린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전 그동안 정말 성령의 역사를 찾으러 나갔었어요. 지금 주님 재림의 여러 가지 징조가 다 이루어졌어요. 이것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는 뜻이에요. 며칠 전, 사촌 남동생한테서 영적 서적을 한 권 얻었는데 그 안의 말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성령께서 직접 발하신 음성이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말세에 주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데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나눴을 때, 사촌 남동생이 저에게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말했어요. 예전에, 우리는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어요." 말이 끝나자, 교회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렇게 깨닫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해요.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죠?", "맞아요. 우리는 천국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럼 얼마나 막막해요. 하늘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사람이 하늘에서 어떻게 살아요!", "맞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이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도 어떻게 몰랐을까요!”, “역시 하린 자매님이 나누니까 알겠어요. 우리 계속 들어봐요.” 이때, 장린이 약간 난처한 듯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만약 형제자매님들이 하시는 말이 맞다면,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있다는 건데 그럼 주님이 오셔서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죠? 성경에 말씀하신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7)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순간 다들 말문이 막혀서 잇달아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백화도 확실히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하린은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나눔을 이어갔다. ‘들림 받다'에 대해서 대부분은 주님이 오셨을 때 성도를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랫동안 이렇게 들림 받기를 바라며 기다렸어요. 하지만 나중에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고 '들림 받다'에 대해 다른 깨달음과 견해가 생겼죠.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이 책의 한 단락을 읽어 드릴게요. 모두 듣고 나면 이해가 될 거예요." 하린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또 나누며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가 우리의 상상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공중으로 끌어올려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진정한 '들림 받다'는 하나님 사역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오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걸 말하는 거예요. 무릇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들림 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님에게 버림 받는 사람이에요. 율법 시대에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비록 성경을 숙독하고, 성전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성육신한 예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오셔서 사역하실 때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알아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런 사람들은 주님 앞에 들림 받지 못하고 버림 받아 도태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앞으로 들림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창밖의 작은 새가 지저귀면서 날아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어느새 정오가 되어 모임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백화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나눔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들림 받다'인지 새롭게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계시록의 예언이 떠오르네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 우리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들림 받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근거가 있어요!” 형제자매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교회를 떠났다. 백화도 이렇게 좋은 진리는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가방을 정리하던 하린이 눈에 들어왔다. 하린은 벌써 가방을 메고 교회를 나섰고, 백화는 얼른 따라나갔다. 그는 그 책을 너무 너무 얻고 싶었다. 그 책 속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실까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도 예수님이 벌써 2번째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간증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소문은 종교계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4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영체가 사람들 가운데서 40일 나타난 후 하늘로 돌아가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체로 돌아가셨기에 재림하실 때에도 당연히 영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는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재림하실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나타나 역사하실까요? 저도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이미 다 이루어졌고 말세가 도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와서 사역하는 지를 모른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그 답을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문하였습니다. 마침 주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Peter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저는 Peter형제가 식견도 넓고 빛비춤이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곤혹스러운 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다 들은 Peter 형제는 “지금 많은 형제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영체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있지만,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는 예언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17:24-25) 이 말씀에서도 모두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면 곧 사람에게 나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체라면 ‘인자’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정상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이 구절에서 그 점을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체로 온다면 영체는 특별히 비범하고 위대하여 사람이 영체에 대해 개념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데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되는데, 그의 외모가 평범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생기게 되니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은 성육신으로 온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Peter 형제가 성경과 결부하여 교통해 주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저는 성경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이때 Peter 형제가 “이 형제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는데 저는 “네,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 봅시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서 왜 성육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한 데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12:28-29) 이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감에 떨려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위엄이고 진노의 성품입니다. 율법시대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성정을 유로하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께 격살당하게 되므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반대로, 성육하신 하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성의 각도에서 진리를 발표하고 신성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여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패괴 성품이 유로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제때에 악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권유와 믿음의 힘을 더해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한 것은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Peter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주님께서 영체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줄곧 자신의 상상과 관념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그가 발표하신 말씀은 다 인류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인성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들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래에 재림하여 더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체의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영은 가장 위대하고 성결하신데 우리가 매일 범죄하고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살고 또한 죄의 속박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반드시 하나님께 격살당할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Peter 형제의 말에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Peter 형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진리를 발표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곧 말세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상선벌악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체로 역사하게 되면 사람마다 하나님께 공손하며 아무도 대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탄의 무리도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의 증거가 없게 되고 선과 악도 가를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부각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적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고 말씀했는데 이렇게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다 자신이 가장 충심이 있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의 재림이신 성육신이 평범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 패역과 대적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실 때 바리새인과 일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평범한 모습에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논단하고 대적하고 정죄하며, 또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전혀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양과 염소를 드러내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충분하게 나타냈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을 듣고 저의 마음은 많이 설렜습니다. 예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면 상선벌악하시고 양과 염소를 분류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주님은 인자인 사람의 모습으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여 매 사람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가늠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잠시후에 Peter 형제가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Peter 형제는 이 말씀으로 저와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성육신한 것은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정결게 하고 변화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다 얻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을 하시어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사람들을 아름다운 거처에 처소로 데려 갑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완성하였고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지 않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의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었도 또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이미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으며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