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어떻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습니까

2019년 02월 22일

이른 새벽, 저와 사촌 언니는 함께 성경을 봉독했습니다. 계시록 19장 7절에서 9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성경 본문을 다 보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우리는 이런 말씀은 요한이 본 이상으로, 말세에 주님께서 재림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고 있어. 지금은 이미 말세에 이르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된 거지.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천국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잖아.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준비해야 해. 매주 일요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새벽 기도와 밤 기도 예배를 지켜야 하며, 또 주님을 위해 열심히 전도해서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해. 그러면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언니가 말해봐.”

사촌 언니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저에게 말했습니다. “음, 네가 말하는 것들은 대다수 크리스천의 실제적인 삶이지만, 그런 것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님이 오실 때,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영접하여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르는 거야. 계시록 14장 4절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라고 예언된 것처럼 말이야. 이래야만 우리는 말세에 주님이 오실 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거야.”

사촌 언니가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저는 성경에 기록된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복음 25:1~7, 10) 이처럼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여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그 음성을 듣고 적극적으로 얼른 나와 맞이해 어린양의 발자취를 바짝 따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슬기로운 처녀는 또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데, 이것 역시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중요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신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사촌 언니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한복음 10:27)라고 말씀하셨고, 계시록 2장과 3장에도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라고 예언되어 있어. 또 계시록 3장 20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라고 예언되어 있어. 그리고 인터넷 복음 사이트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지.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면 주님이 오셔서 또 음성을 발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주 중요해. 오로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아야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고,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기회가 있게 되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저는 사촌 언니의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촌 언니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여기까지 말하니, 나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역하신 때가 생각났어. 베드로, 빌립, 나다니엘 등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곧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거야.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그를 보지 않았을 때,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일을 말씀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아.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47~49) 그러므로 무릇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들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지. 반대로 예수님 당시에 성전 안에서 율법만을 지켰던 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어. 예수님이 말 한마디로 바다를 꾸짖어서 풍랑이 잠잠해지고, 또 말 한마디로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나사로를 무덤에서 걸어 나오게 하는 등등 설령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권능과 권위가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할지라도, 그런 사실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여전히 완고하게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어,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저주를 받았고, 결국 영원히 메시야의 강림을 영접하지 못한 거야. 그래서 말세에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되면 안 되는 거야. 반대로 베드로와 같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적극적으로 찾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누가 전하면 겸허한 마음으로 찾아보고, 하나님의 현현인지, 하나님의 음성이고 말씀인지를 보아야 해. 그리고 나서 그 음성이 성령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얼른 따라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잔치에 참석하는 거지!”

사촌 언니가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려, 알고 보니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주님이 오실 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아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였어. 이렇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이고 가장 복 있는 사람인 거네. 언니가 이렇게 교제해 주니 진리에 부합되잖아! 그런데 나에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어.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지?”

사촌 언니는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라고 말씀하셨지.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사람에게 진리와 생명을 베풀어 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마치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야. 그의 말씀에는 권능과 능력이 있고 사람에게 진실로 공급할 수 있어서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도록 하지.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4:17)라고 전파하며 말씀하셨지. 또 사람들에게 어떻게 포용하고 인내하고, 고통을 참아 내고, 십자가를 지는 등의 은혜시대 기간에 사람들이 준행해야 하는 말씀을 가르쳐 주셨어.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말씀은 다 진리이므로 사람들에게 새 시대의 실행의 길과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알도록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지. 게다가 그런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알게 되는 거야. 이것 외에 주님은 또 천국의 비밀과 천국으로 들어가는 조건을 알려 주셨지. 우리는 그런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의 사역인지와 그분의 음성인지를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 외에 그런 진리를 선포할 수 있고 그런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마찬가지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음성을 발해 말씀하시는 거야.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진리를 가져다주고 더 많은 비밀을 풀어 주시는 거지. 바로 주님의 예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그래서 저는 “음, 언니가 이렇게 말하니 조금 알 것 같아. 언니는 아는 것이 정말로 많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촌 언니가 “나 역시 인터넷 복음 사이트에서 이 방면에 관한 많은 교제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거야. 사이트 주소를 알려 줄게, 너도 수시로 로그인해서 볼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뻐서 “오, 좋아!”라고 말했고, 우리는 계속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니루

"열 처녀의 비유"를 비롯해 진행된 토론

열 처녀의 비유를 보게 되면 누구나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가 슬기로운 처녀이고, 어떤 이가 미련한 처녀 인지 알고 계십니까? 또 어떻게 해야 슬기로운 처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는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죽은 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또 어떻게 부활하는 것일까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이미 왔습니다. 우린 어떻게 주님을 맞이해야 할까요?

오시경 재림에 관한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 24:32~34) 크리스천들은 이것이 재림을 예언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은 바로 이스라엘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주님이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오늘날 이스라엘도 회복된 지 수십년이 지났으니 이 예언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37~39, 42),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고, 서로 죽이고 음란이 본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더럽고 타락됐었죠.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홍수로 멸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거짓 신과 악령을 경배하고 있으며 극도로 사악하고 타락됐습니다. 서로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아귀다툼하며,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세상이 점점 더 사악해지고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럼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어떨까요? 명의상으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고, 교회도 장사하는 소굴로 전락되고 다 황폐해졌습니다. 심지어 많은 성도들은 사악한 조류를 좇고 있고 세속에 빠져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고 쾌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노아 시대와 비해 보면 그 정도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 사이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각종 재난도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징조로 재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이미 임했다는 뜻이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을 규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주님을 여러 해 믿어 오면서 여느 형제자매들과 다름없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마다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주님은 구름을 타고 가셨습니다. 지금 재림에 관한 징조가 이미 다 나타났는데 왜 주님은 구름 타고 우리를 데리러 오지 않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주의 재림을 놓칠까 봐 불안하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의 재림을 맞이해 버림받지 않도록 그 길을 깨우쳐 주고 인도해 달라고 늘 주께 기도드렸습니다. 저한테는 여러 해 전도하면서 사역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근에 모처럼 만나게 돼서 저의 고민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걱정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친구가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그래서 우린 다 주님이 무조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거라고 믿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규정하는 게 정말 주님의 뜻에 맞는 걸까? 사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형제자매들은 재림하는 방식에 대해 예언한 말씀이 아주 많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 3:3),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마 24:5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어떤 말씀에서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니 각인의 눈이 다 본다고 했고, 어떤 말씀에서는 또 도적같이 오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했어. 여기서 주님이 두 가지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알 수 있는데, 하나는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나타나시는 방식, 또 하나는 도적같이 은밀히 오시는 방식이지. 우린 다 주님의 말씀은 헛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잖아. 그래서 이 두 가지 방식은 무조건 다 이루어질 거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 그래서 사람의 생각으로 재림 방식을 단정 지으면 안 돼.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만 고집하면서 은밀히 오신다는 건 부인한다면 우리는 은밀히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놓쳐 버리게 될 수도 있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계 1:7) 이 예언처럼 주님이 구름 타고 올 때면, 우리는 은밀히 강림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해서 애곡하게 될 거야. 그게 다 자기 생각 때문에 구원받을 기회를 잃는 거잖아.” 저는 그 말을 듣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빛 비춤이 있어. 재림을 너무 쉽게 생각했어. 성경에 재림에 관해서 예언한 게 이렇게 많은데 잘 읽어 보지도 않고 묵상도 안 하고 그저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렸어. 오늘 너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성경에 구름 타고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예언 말고도 은밀히 오신다는 예언도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아님 은밀히 오시는 주님을 놓칠 뻔했어.” 친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다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거야. 같이 하나님 말씀 좀 볼까? 『‘하나님’과 ‘사람’은 같이 논할 수 없다. 그의 실질과 그의 역사는 모두 사람이 측량하기 가장 어렵고, 이해하기도 가장 어렵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은 모두 무능한 자들이고, 모두 교만방자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해서는 안 되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눈에 사람은 그야말로 개미보다도 작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측량할 수 있겠느냐?』 이 말씀에서 깨닫는 게 있을 거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성이 있어야 돼.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는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리고 예언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서 우리 생각과 상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구약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데,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바리새인은 이 예언을 보고는 자기 상상으로 메시아가 오실 때면 왕으로 왕궁에서 태어날 거고, 훤칠한 외모에 위풍당당하고 풍채가 남다를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사실은 그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어.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높은 신분과 지위도 없었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어. 바리새인은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 예수님이 아무리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진리를 발표하고, 설교를 깊게 해도 그분이 발표하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그분이 바로 장차 오신다고 예언한 메사아라는 것도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천고의 죄인이 됐어. 우리의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을 단정 지으면서 구름 타고 오지 않으면 주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2천년 전에 주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과 다를 게 없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야. 교만하고 독선적인 타락 성정으로 재림의 방식을 규정해 버리고, 성경의 문자적인 뜻으로만 주님의 뜻을 해석하면 너무 위험해. 이렇게 실패한 걸 교훈으로 삼아야 돼.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이후에 어떻게 사역하실지 사람은 측량할 수 없어. 어떻게 사역해야 한다고 규정할 자격도 없지. 안 그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봐도 다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해.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거야. 예수님 말씀이 딱 맞아.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4) 이런 사람은 미련한 처녀잖아. 재림하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워!” 저는 친구가 읽은 말씀과 교제해 주는 것을 들으면서 제 자신이 정말 교만하고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사람이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규정한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주님을 대적해서 하나님께 벌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더 잘 영접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 한 이상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발표가 있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려 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의 관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고, 더욱이 하나님을 자신의 범위와 관념 속에 제한하지 말며, 마땅히 너희 자신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나타남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새 사역에 순복해야 하는지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고 사람에게 진리가 갖춰지지 않았기에,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찾고 구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주님을 영접할 희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계시록에서 예언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계 14:4)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많은 진리를 가져오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인지를 확정하려면 반드시 자발적으로 찾고 구하고 알아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하나님도 그분의 양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천국'은 정말 하늘에 있을까요?

저는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해외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저의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천국'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천국'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들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와 같은 말씀입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성경 구절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상상으로 가득했는데 천국은 반드시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잖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될 거야. 장래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늘로 영접할 것인데 그럼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런 성경 구절들을 볼 때마다 천국에 대해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처럼 바닥은 보석으로 깔려 있고, 성(城)은 황금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에 있는 사람은 다 영화에 나오는 신선들처럼 자유자재로 살면서 영생을 누릴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으로 가득 찼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배에서 예수님을 믿는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이 모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읽다 보니 성경 분문의 어떤 말씀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6장 10절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런 말씀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인가? 천국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또 땅에 있을 수가 있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이 요한에게 계시한 이상이므로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에 베드로 후서 1장 20~21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맞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기에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저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2년, 설이 막 지나자 저는 승선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오후, 저의 먼 친척인 고모 할머니(그분은 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저에게 전해주셨던 분입니다.)가 갑자기 엄청난 희소식을 알려 주겠다며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시에 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흥분하시며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단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거야. 성경에서 말한 천국이 이미 내려온 거라구!” 저는 놀라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구요? 천국이 내려왔다구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돌아오셨단다. 그분은 바로 말세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로는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자신의 추악하고 패괴(역주: 부패, 타락, 망가짐을 포함하여 더 깊은 뜻이 있음)된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인데 이 단계사역을 마치시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려 상선벌악 하신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훼멸될 것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 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 되고 땅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되는 것이란다. 그때 인류는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단다.” 고모 할머니가 전해준 희소식을 들으면서 저 역시 조금 격동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있다고 하시는 걸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지 아니면 땅에 있는지 하는 이 문제로 몇 년간 계속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그때 저는 한번 잘 찾고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방금 할머니께서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땅에서 생활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천국에 관한 기록이 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하늘로 영접한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관점은 다 똑같은데 모두가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지.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반드시 그들을 하늘 위로 이끌어 올려 거기에서 살게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자세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도 땅에서 하셨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이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니?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13절에서 말씀하셨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보듯이 인류는 오직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할머니의 교통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지으셨고, 당시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 역시 땅에 있었어.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서 살 거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왜 그들을 하늘에 두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사람이 정말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어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훼멸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고 사람도 더 이상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계속 전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지 않고, 사람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처소에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살 수 없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사람이 안식할 곳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안식처는 하늘에 있다. 사람은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를 이끄는데,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이고 사람은 여전히 육신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식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단다. 사람과 하나님은 같은 경지에서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고 땅은 사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단지 피조물로 오직 땅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지막 처소도 땅에 있는 것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온 땅의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인류는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데, 천국의 생활이란 바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란다.” 할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듣고 난 후, 저는 감탄조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셨어요.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생존 환경은 바로 땅에 있기 때문이네요. 그러므로 인류의 마지막 처소 역시 땅에 있어요.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요. 알고 보니 천국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후에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저의 관념과 상상을 깨뜨렸고 또 저에게 실제적인 희망을 가져다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참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의 아내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저에게 메모리 카드를 주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배에서 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묵상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인을 떼신 어린양이고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여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알려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마지막 처소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게 되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전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창조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그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땅에서였는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땅 위에 아주 적절하게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아주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말세에 그분은 다시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그분의 6천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며,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하늘의 생활같이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의 생활은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생활이고 다군다나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말세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우여곡절 끝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와 연락이 닿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양육을 누리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달콤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할 데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

주님을 믿어서부터 저는 줄곧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각 사람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대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실 때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위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주님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틀림없이 먼저 알 것입니다. 그분들을 따라 믿으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저도 계속 이렇게 지켜왔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믿음이 식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돈벌이에 바빠 예배할 시간도 없고 설교자들의 매 설교가 다 늘 하던 말이라서 들어도 누림이 없으니 저의 예전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돌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야 오셔서 저희들을 데려가십니까? 지금 저는 당신의 함께하심도 느끼지 못하겠고 예배드리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신은 저의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시니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그 후 시간이 흘러 어떤 예배에서 저는 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주님이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라고 묻자 저는 “당연히 흰 구름을 타고 오시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만약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영체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또 17장 24~25절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만약 주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마다 볼 텐데, 그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겠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제가 “그럼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라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자! 누가복음 17장 24~25절에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고 하면 육신을 말하는 거야. 육신만이 인자로 불릴 수 있잖아. 그리고 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재림하시는 방식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거야. 왜냐하면 육신만이 고통을 받을 수 있고 영은 고통받을 수 없고 게다가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당하셨잖아. 여기에서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또 한번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성경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니 정말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왜 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친구는 또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까? 만약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생김새에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면에서 알아봐야 할까?” 제가 “주님이 오시면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보실 거야. 그분들은 다 주님을 다년간 섬기던 분들이라 주님께서 오시면 틀림없이 먼저 그분들에게 나타나실 거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미 답이 있어. 계시록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왜 이 한마디를 계시록에 여러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을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거야.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생김새나 명망(名望)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겨 대하면서 하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기 아주 쉽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더 잘 영접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각 사람이 신중히 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당시를 돌이켜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이름을 예수로 불렸고 게다가 또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잖아. 그러나 여호와를 다년간 섬기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본 것과 상상에만 근거해 메시아라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어. 나중에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는데, 이런 사실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하잖아! 근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예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이 다 하나님을 다년간 섬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주님의 돌아오심을 대하는 일에서 만약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아주 가련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이전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전철을 밟아선 안 돼!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다 그분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든지 아무에게도 알리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상상과 관념 속에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고 찾고 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임하는 인사물을 대해야 해.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무엇이 사람의 소리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신 많은 말씀이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성령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마찬가지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경문에 부합되어도 사람의 말이야.” 친구가 한 이런 말은 제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저는 속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느껴져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제가 “넌 어디에서 설교 들어? 나도 같이 가서 들어보면 안 될까?”라고 묻자 친구는 “되고 말고! 듣고 싶다면 정말 좋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생기발랄하고 얼굴의 웃음꽃은 제가 몇 년 이래 종교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특별히 배려해주고 또 매우 참을성있게 저에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느꼈고 성령 역사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린양이 펼친 책≫ 한 권을 주었고 저는 이 책에서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을 보고 나서 신기하게 느껴져 속으로 ‘그래? 가능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보기 위해 저는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씌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병과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말씀에 그토록 권병과 위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통해 저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이름, 도성육신의 의의, 인류의 귀숙과 결국 등등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더욱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빨리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그 어떤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분을 믿는 각 사람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하루빨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신자의 일기 — 천국은 하늘에 있을까요

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뤄질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