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면 형상을 바꾸실까요

2019년 02월 10일

하나님의 약속 형제자매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 가지 문제에 대해 구하고 싶습니다. 성경 구절에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11)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은 유대인의 복장을 하시고 유대인의 형상으로 승천하셨으므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도 틀림없이 유대인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실 거라고 줄곧 여겨왔습니다. 하루는 설교를 들었는데,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형상으로 강림하신다고 명확하게 예언되지 않았고 예언의 비밀은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상만으로 주님 재림의 형상을 규정할 수 없다고 설교자가 말했습니다. 만일 상상만으로 주님의 형상을 규정하면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아주 혼란스러운데,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정말로 유대인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까? 만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형상을 바꾸시면 어떻게 해야 만이 주님을 알아보고 제때 예수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이 해답을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시영

시영:

안녕하세요! 이전에 저 역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형상이 바뀌지 않고 유대인의 형상으로 강림하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성경을 자세히 보고 다른 자료를 살펴본 후에, 저의 이런 인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은 떨기나무와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4 참조) 그리고 은혜시대 예수님은 역사하는 기간에 제자들 앞에서 형상을 바꾸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1에서 2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바뀔 수 있고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한복음 4:24),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립보서 2:5~7) 여기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은 원래 영으로 형상이 없지만, 사역의 필요에 따라 형상을 취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시대, 하나님께서는 유대에서 한 단계 인류 구속 사역을 위해 성육신하셔서 유대인의 형상을 취하셨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 구속 사역을 더 잘 완성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여전히 유대인의 형상으로 강림하실 거라고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형상을 바꾸시는데, 만일 우리가 유대인의 형상을 취하시지 않아서 강림하시는 주님을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들림 받을 기회를 놓칠지도 모릅니다! 마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성경 예언에 근거하여 오실 메시야는 왕궁에 태어나고 범상치 않은 풍모를 지녔으며 위대한 형상을 지닌 것으로 여긴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취하신 형상은 보통 인자의 모습이었고, 게다가 예수님의 사역이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아 예수님은 오실 메시야가 아니라고 규정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의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관념과 상상으로 다시 오실 주님의 형상을 제멋대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예수님과 아이들 이미지,

지금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중요한 순간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형상을 바꾸신다면, 어떻게 해야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당시를 되돌아봅시다. 당시에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과 신도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 즉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점차 알아차린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7에서 49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은 처음에 예수님이 곧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의 상황을 말씀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곧 오실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또 사마리아 여인은 본래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녀의 은밀한 일, 즉 다섯 남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듣고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깨달아 예수님께서 곧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또 베드로, 요한, 마태, 마가 등도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곧 메시야라는 것을 알아차려 주님을 따르게 되었고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과 관련된 성경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29) 이 예언을 보면, 말세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 사역을 하시는데,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마태복음 25:6)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는 방식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통해, 혹은 친척들이나 친구들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혹은 인터넷 등등의 많은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고 하나님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현현을 영접하고 싶다면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든, 우리의 상상과 관념에 부합되는지의 여부를 떠나 마땅히 슬기로운 처녀처럼 겸허한 마음으로 구하고 알아보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당신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이상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 그렇게 행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아래 내용과 함께 자신을 반성해 보시고 참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하고 사용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성경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도 진입할 수 있다. 』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되는가

기도는 항상 많이 하지만 응답 받는 기도가 없으면 아무런 감동과 은혜를 느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응답 받는 기도가 왜 이뤄지지 못하는지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어떻게 분별하는지 아십니까?

송려 지금은 이미 말세의 마지막 때라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네 번의 피빛 달 예언도 완전히 이루어졌고, 각종 재난도 나날이 전 인류를 향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터넷에나 주변에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은“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태 24:23~24)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형제자매들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의 재림에 관한 복음을 들을 엄두도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대접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또 ‘거짓 그리스도를 경계하여 오히려 참 그리스도를 문밖에 거절한다면,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수년간의 추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하나님의 도래를 영접하려면, 우리는 피동적으로 회피하고, 경계하고, 거절할 것이 아니라,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면의 진리를 깨닫기만 하면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영접할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첫째, 거짓 그리스도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아래의 성경 구절에서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라고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말세에 거짓 그리 스도는 주로 예수님의 사역을 모방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는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타내는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고 재림 예수님으로 잘못 알도록 해서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주요 수단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일부 교파의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사역을 모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쫒아내는 등, 하찮은 이적을 행하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마치 디모데후서 2장 9절에서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는 진리가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본성 실질이 악령이 사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사역를 모방하여 보잘 것 없는 이적을 좀 행할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풍랑과 바람을 잠잠케 하는 등의 표적과 기사를 거짓 그리스도는 아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말세에 만약 표적과 기사를 나타낼 수 있고, 또 귀신을 내 쫓고 병을 고치며 많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자칭 재림 예수라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거짓 그리스도이고 악령이 사칭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경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계시이고, 또한 우리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실질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시대를 끝마치고 은혜시대를 개척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죄사함 받게 하셔서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하셨는데, 그 모든 사역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을 낮추시고 역사하시면서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몸소 체험하셨고, 인류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속해내시기 위해 추호의 원망도 없이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고 더욱이 지위에 서지도 않으셨으며 독선적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표하신 긍휼과 사랑의 성품, 그리고 포용과 인내의 소유소시는 그 어떤 패괴된 인류에게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발표하실 수 있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은 비록 겉모습이 평범하고 정상이지만, 이 평범한 육신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완전히 정반대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표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람을 미혹하면서 자신을 힘써 추켜세우고, 드러내고, 스스로 자랑하는데, 그들이 유로해내는 것은 모두 교만하고 망령되며, 사악하고, 간사한 등의 사탄 성정으로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합니다. 세째,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며,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에게도 진리, 길, 생명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발표할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소시를 발표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발표하신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 실행의 방향을 가르켜 줄 수 있어 사람에게 행할 길이 있게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로 지키게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땅위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죄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지 하는 등을 다 알게 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 난 인류는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킴으로 질서정연한 삶이 있게 되었고 과거의 난잡하고 무질서하던 생활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역사하실 때는, 또 진리를 발표하셔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실행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고, 사람을 용서하라는 등을 가르쳐 주심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점점 더 인성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의 역사는 중복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행의 길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요한 등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발표하신 것이 다 진리임을 보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나 악령은 아무리 그리스도라고 자칭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실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에, 그들은 단지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할 줄만 알고 진리는 전혀 발표해 내지도 못하며, 단지 예수님 사역의 기초에서 모방하고, 뒤따르고, 이적을 행하여 사람을 미혹할 뿐, 사람들에게 실행의 길은 전혀 가져다 주지 못해 결국 스스르 무너지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또한 따르던 사람들도 아무런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은 악령이 들려 마찬가지로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기독교의 일부 교파들에 다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진리, 길, 생명이고,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절대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한 방면의 원칙입니다. 위에서 어떻게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가 하는 진리 원칙의 교통을 통해, 저는 세상 끝날에 주님이 오실 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을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우리를 일깨워 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세상 어디에나 다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사람을 미혹할 때가 바로 참 그리스도가 이미 나타나셔서 역사하실 때인 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고 구하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갖추어 그리스도의 실질에 대해,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수단에 대해 알고 분별할 줄을 알아야만 재림하신 예수님, 즉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원칙을 분명히 알게 되면, 더 이상 피동적으로 다시 오신 예수님의 복음을 경계하고 회피하고 듣지 않거나 무턱대고 대적하거나 거절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찾고 구하며 알아 보고 분별하면서 진리 원칙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는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세에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또 음성을 발하시고 말씀하시며 진리를 발표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예언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2:11)우리들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발하신 음성과 말씀을 듣고 갈망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구할 때, 하나님께서 꼭 우리를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우리의 밝히 분별할 수 있게 하시여 말세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고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크리스천이 사람과 지낼 때 지켜야 할 4가지 원칙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셨는데, 많은 크리스천들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4가지 원칙을 알게 된다면 일상 생활에서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들림받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경 참고: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계 19:9) 관련된 하나님 말씀: 『‘들림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상상한 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긴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틀린 것이다. ‘들림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무릇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무릇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받는다.』 <제104편 말씀>에서 발췌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미 형성되었는데, 전부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고 영정(靈程)에 오른다. 유일한 참 하나님이 이미 말씀이 육신 되고 우주의 통치자가 만유를 주관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입증이고 철 같은 증거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 오늘 당신께서 뭇 교회―빌라델비아 교회를 완성하셨고, 당신께서 6천년의 경영 계획을 이미 이루셨나이다. 뭇 성도는 당신 앞에 겸손히 순복할 수 있으며 영 안에서 서로 통하고 사랑 안에서 서로 따르며 원천에 연결되나이다. 생명수는 쉼없이 솟아흘러 교회의 흙탕물을 깨끗이 제거하여 재차 당신의 성전을 정결케 하나이다. 실제의 참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 속에서 행하며 자기의 기능과 본분을 알고 최대한 모두 교회를 위해 화비하고 있나이다. 항상 당신 앞에 안정하고 성령 사역에 주의를 기울여 당신의 뜻이 우리 몸에서 가로막음을 받지 않게 하리이다. 성도 간에 서로 사랑이 있고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나이다. 늘 영 안에서 행할 수 있고 성령이 빛 비춰 주고 깨우쳐 주어 진리를 깨달으면 즉시 실행하고 새 빛을 따르고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나이다. …………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하나님과 협력하고 협력과 섬김이 하나로 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고 하루속히 거룩한 영체로 되어 사탄을 짓밟고 사탄의 운명을 끝마친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앞에 들림받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나타난다.』 <제2편 말씀>에서 발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경의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부한 은혜를 누리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섬기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주 연약해지기도 하고 또 자주 강건해지기도 하면서 모든 행위는 다 주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고,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는 또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었다. 주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며, 주 예수의 영광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땅에서의 생활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이 <계시록>에 예언한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 재난을 가져오고 상선벌악(賞善罰惡)하며, 그를 따르는, 그의 돌아옴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나게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은 감개무량하였고, 자신이 말세에 태어나 운 좋게 주님의 강림을 볼 수 있게 된다고 다행스러워하였다. 비록 박해는 당하지만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꿔 올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인가! 이 모든 간절한 바람과 주님이 베풀어 준 은혜는 우리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다그쳐 예배하게 하였다. 혹시 내년에, 혹시 내일에, 또 혹시 더욱 빠른, 사람이 예상치도 못한 때에 주님이 홀연히 강림하여 그를 절박하게 기다리는 한 무리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다투며 누구도 뒤떨어지려 하지 않았는데, 이는 주님의 나타남을 제일 먼저 보는 자가 되기 위해서였고, 주님께 들림받는 자 중의 하나가 되기 위해서였다 ………… 하나님은 침묵을 지키고 우리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그는 온 땅을 감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사람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을 친히 보고 있다. 그는 계획 있게, 절차 있게 그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조용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한 걸음씩 인류에게 다가와 번개처럼 신속히 우주 가운데 그의 심판대를 펼쳤고, 그의 보좌도 곧이어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것은 얼마나 위엄 있는 장면인가! 그것은 얼마나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인가! 그 영은 마치 비둘기처럼 또 포효하는 사자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였다. 그는 지혜이고, 그는 공의이고 위엄이며, 권병(역주: 권세)을 지니고 자비와 긍휼을 만재(滿載)하고 조용히 우리 가운데 강림하였다. 그가 오신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고, 그가 오신 것을 영접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더욱이 그가 하려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의 생활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소의 마음, 평소의 세월이다. 하나님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따르는 자로서, 평범한 신자로서 우리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그에게는 자신의 추구와 목표가 있고, 더욱이 보통 사람에게 없는 신성도 있다. 아무도 그의 신성의 존재를 주의하지 못하였고, 또 아무도 그의 실질이 사람과 구별이 있음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 ……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 은밀히 거하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는 새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설명하거나 온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지도 않고 다만 그의 계획과 절차에 따라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발하는 음성과 말씀은 갈수록 빈번해졌는데, 위로, 권면, 일깨움, 경고에서 책망, 징계에 이르기까지, 어조가 부드럽고 자상하던 데에서 언사가 격렬하고 위엄 있는 데까지 모두 사람으로 한껏 긍휼을 받게 하고 또 매우 두려워하게 하였다. 그의 말씀은 모두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비밀을 적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영을 찔러 아프게 하였고, 우리를 몸 둘 바 모르게 하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게 하였다. …… 부지중에 우리는 그 작디작은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의 하나 또 하나의 역사 절차에 들어가 수많은 시련과 수많은 채찍질을 겪었으며 죽음의 시험도 겪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누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지혜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게 되었다. 그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실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의 본성 실질도 인식하게 되었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로 죽게 하였고 또 부활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로 위로받게 하였고 또 갑절로 가책받고 갑절로 빚졌다고 느끼게 하였으며,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었고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도 하였다. 때로 우리는 그의 손의 어린 양과 같아서 그에게 목숨을 맡겼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눈동자와 같아서 그의 사랑을 누렸으며, 때로 우리는 그의 원수와 같아서 그의 눈에서 그의 노기에 의해 재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고, 우리는 그의 눈에 구더기이며, 우리는 또 그가 밤낮 생각하며 되찾으려는 잃어버린 양이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우리를 혐오하며, 우리를 끌어올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권면하며,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에게 깨우쳐 주며, 그는 또 우리를 책벌하고 징계하며,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를 밤낮으로 걱정하고 밤낮으로 보살피고 보호하면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심혈과 대가를 기울였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렸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귀숙도 보았다. …… 하나님은 계속 그의 음성을 발하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방식과 여러 가지 각도로 우리가 해야 할 바를 훈계해 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의 소리도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말씀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에게 행할 길을 보여 주었고, 우리로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하였고, 그의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에 주의하기 시작하였으며, 눈에 띄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의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를 위하여 침식도 편하게 하지 못했으며, 그는 우리 때문에 울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며, 우리 때문에 병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우리의 귀숙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굴욕을 참고 있었지만, 우리의 무감각, 우리의 패역은 그의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였다. 이러한 소시소유는 보통 사람에게 없는 것이고, 또한 패괴된 어떠한 사람도 갖추지 못하고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일반인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가 있으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광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심오한 비밀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시대와 새 기원을 개척하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역사를 가져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으며, 막연함 중에서 지내던 우리의 삶을 끝냈고, 우리(원문: 我們全人)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철저히 보게 하였다. 그는 우리(원문: 我們全人)를 정복하고 우리의 마음을 얻었다. 그 시각부터, 우리의 마음은 지각이 있게 되었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하였다. ‘이 평범한 사람, 이 작디작은 사람, 우리 가운데 생활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오랫동안 버림받았던 이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그리워하고 밤낮으로 바라던 주 예수가 아닌가? 그분이다!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바로 진리ㆍ길ㆍ생명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였고, 우리로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떠돌아다니지 않게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우리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을 보게 되었고 앞길을 보게 되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완전히 그에게 정복되어 더 이상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의 역사와 말씀을 저촉하지 않았고, 온 몸과 마음이 그의 앞에 엎드러졌으며, 오로지 이 한평생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만을 원하였고, 그에 의해 온전케 되어 그의 은총에 보답하고 우리에 대한 그의 사랑에 보답하며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하고 그의 역사에 협력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부탁을 완성하기만을 원하였다. ………… 우리는 사탄의 패괴 성정을 가지고 있는 이런 한 무리 평범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은 사람들이며, 하나님이 거름 더미에서 끌어올린 궁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정죄하였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정복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도를 얻었다. 하늘 끝이든 바다 끝이든, 핍박이든 환난이든,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떠날 수 없다. 이는 그가 우리의 조물주이고 우리의 유일한 구속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다>에서 발췌

어떻게 교회 생활을 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답: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는 여러 해 교회 생활을 했습니다. 매번 만족을 얻고 누림이 있었습니다.” 네가 그에게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기를, “가자마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합니다. 형제자매들도 모두 입을 열어 하나님께 말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매우 원합니다. 그다음 노래하고 찬미하는데 노래하면 모두 감동되어 온 얼굴에 눈물범벅입니다! 어떤 때는 흥분되면 땀이 계속 나서 수건을 다 적십니다. 형제자매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데 교회 생활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우리 마음속을 꿰뚫는 것 같습니다. 여럿이 교통하면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교회 생활을 해도 나중에는 어떠한가? 누구도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을 해부하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정형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 누구도 자신의 진실한 실질을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누거나 드러내지 않았다. 이 10여 년의 교회 생활을 이렇게 허송세월로 보냈고, 이렇게 춤을 추면서 사람의 감각 속에서 사람의 누림 속에서 보냈다. 사람의 그 누림과 그 쾌락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틀림없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 몸에서의 변화를 보려 하고 사람 몸에 이미 하나님 말씀의 실제적 살아냄이 있는 것을 보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보려 하는 것이지 네가 집회할 때에 또는 매우 열성적일 때에 찬양책을 들고 노래하거나 하나님을 찬미하며 춤을 추는 것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대단히 가슴 아파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많이 하였지만 참으로 어떠한 사람 몸에서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살아내지 못하여 하나님이 매우 슬퍼하고 조급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걱정하는 바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 생활이 좀 있으면 자만자족하며, 기쁨과 평안과 희락이 좀 있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마음이 즐겁고 위로되거나 정신적 풍부함이 있으면 이미 하나님을 아주 잘 믿는다고 여긴다. 이런 가상(假相)을 줄곧 보존하고 이런 가상을 줄곧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최고로 얻어야 할 것과 자신이 이미 얻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런 것으로 성정 변화와 구원받는 길에 진입한 것을 대체하므로 사람은 추구하지도 않고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한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매우 걱정한다는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경력을 함께 나누고 경력을 교통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함께 나눈다는 것은 바로 네 개인의 마음속에 생각한 것과 너의 정형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경력과 인식, 그리고 자신 안의 패괴 성정을 다 말해낸 다음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부정적인 것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함께 나누는 것이고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교통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보임이 있다든가 네가 시가의 어느 절에서 어느 정도 보임이 있어 아무렇게나 교통하고는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실제 생활과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이 다들 도리적 인식만 말하고 이론적 인식만 말하는데, 실제 경력의 인식은 조금도 없다. 누구나 다 빙빙 돌려 말하며, 개인의 생활을 피하고 교회 형제자매들의 생활의 그 범위를 피하고 개인의 내적 세계를 피하는데, 이러면 사람 간에 어찌 진정한 소통과 진실한 신뢰가 있겠는가? 없다!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여태껏 마음속 말을 한 적이 없다면 그들 둘이 절친한 부부인가? 서로를 잘 알겠는가? 모른다. 가령 남편이 밤낮 아내에게 “자기야 사랑해!” 아내도 밤낮 남편에게 “자기야 사랑해, 영원히 사랑해, 당신을 버리지 않을 거야.” 단지 이렇게 말할 뿐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편에 대해 어떤 요구가 있는지, 또는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남편에게 아예 말하지도 않고 흉금을 털어놓는 말이 없다면, 그들 둘이 서로 사랑하는 부부인가? 둘이 함께 있으면 전부 원칙적인 말만 하는데 이는 참된 부부인가? 틀림없이 아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으면 서로 허물없이 지내고 서로 도와주고 공급해주어야 한다. 반드시 사람마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해야 한다. 개인의 진실한 경력을 말하지 않고 원칙적인 말만 하고 글귀 도리와 글자 표면의 뜻만 말한다면 너는 성실한 사람이 아니고 성실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언어 소통이 없고 심령상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간에 서로 알 수가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었는가? 만약 너의 친구가 어떤 말이나 다 너에게 말하고 그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든지, 마음에 어떤 고초가 있든지, 어떤 기쁜 일이 있든지 다 너에게 말한다면, 너는 그와 아주 친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가 너에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는 것은 너도 마음속 말을 그에게 하고 네가 그와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그와 잘 어울리며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다. 만약 교회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이런 것이 없다면 영원히 형제자매들 간에 화목하게 함께 지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한 조목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니 이렇게 어렵구나,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까지 다 남에게 말해야 합니까? 긍정적인 것만 교통하면 되지 않습니까? 자기의 어두운 방면이나 패괴된 방면은 남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네가 말하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영원히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자신이 어떤 놈인지를 모르며 다른 사람도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네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를 신뢰하게 하려면 먼저 네가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먼저 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너의 마음을 보게 하고 너의 생각을 알게 하고 너의 진실한 면을 보게 해야 한다. 가장하지 말고 포장하지도 말라. 그래야 다른 사람이 너를 신뢰하게 되고 너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다. 이것이 전제이다. 네가 늘 가장하고, 늘 자신이 거룩한 척하고, 늘 자신이 고상한 척하고, 늘 자신이 위대한 척하고, 늘 자신의 인격이 높은 척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너의 패괴를 보지 못하게 하고 너의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사람에게 가상을 보여 주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네가 아주 정직하고 아주 위대하고 아주 자신을 희생하고 아주 공정하고 이기적이 아니라고 여기게 하는데, 자신을 가장하거나 포장하지 말고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네가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고 속으로 생각한 것이나 하려고 한 것이 긍정적이든 아니면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이는 성실한 것인가 아닌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하나님도 너를 보고 말씀할 것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도 다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나의 앞에서도 틀림없이 성실한 사람이다.” 네가 단지 다른 사람 모르게 하나님께만 드러내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하고 고상한 척하고 또는 대공무사한 척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보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겠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는 진짜 궤사한 사람이고 진짜 위선자이고 소인이지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성실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든 아니면 사람 앞에서 한 것이든 다 마음을 털어놓고 드러내야 한다. 이것을 쉽게 해낼 수 있는가? 여기에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속에 싸움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부단히 훈련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마음을 털어놓게 되고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지 않고, 전혀 너 자신의 비밀을 해부하지 않고 자신의 어려움도 해부하지 않거나 또는 이런 사적인 일을 전혀 남에게 말하지 않고, 남에게 털어놓고 교통하고 해부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없다. 네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네가 이렇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의 패괴 성정이 영원히 변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뜻이다. 네가 변할 수도 없는데 무슨 구원받는다고 말하겠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이 단락 말씀의 뜻이다. 무엇 때문에 자꾸 성실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가? 그것은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직접 네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람이 됨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매 한 편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하나님이 현시에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듬을 수 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협력해야 하고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 효과에 달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진입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고, 하나님의 현시 역사의 동태와 성령 역사의 경향을 더듬을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마시고 나서도 실행할 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네가 여전히 먹고 마실 줄 모르고 먹고 마시는 방법과 원칙을 찾아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몸과 마음을 하나님 말씀 안에 몰입하는 것은 주로 하나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기를 중요시하며 하나님 말씀에서 더 많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방면에서 도리를 깨닫는 것을 중요시한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신학 지식을 얻는 것을 중요시한 것도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더듬는 것을 중요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데에 달한 것이다. 동시에 또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각종 패괴 정형과 사람의 패괴 본성과 사람의 진정한 부족함을 알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각 방면의 요구에 달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만족케 하였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에서 이렇게 많은 정확한 실행이 있게 된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데의 가장 좋은 협력이다. ……베드로는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 역사에서 자신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알게 되었다. 이 밖에, 그는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사람이 어떤 방면에서 하나님을 만족케 해야 하나님 뜻에 부합되는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시하였다. 이 방면에서 그는 큰 노력을 들여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 달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진입에 대해 매우 유익한 점이 있다.』 ≪베드로의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말씀하는 것에 의하여 너에게 공급하는데, 네가 순복하고 받아들인다면 성령은 꼭 네 몸에서 역사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말하면 성령이 어떻게 한다. 너희들이 내가 말한 것에 따라 행하면, 성령은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나는 새 빛을 내보내어 너희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너희들을 모두 현시의 빛 속으로 이끌어들어간다. 네가 현시의 빛 속에 들어가면 성령이 즉시 네 몸에서 역사한다. 어떤 사람은 불복하여 “저는 절대로 당신의 것대로 실행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네가 현재에 길이 없을 것이고 메마를 것이고 생명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말하니, 성정 변화를 경력하고 현시의 빛을 따르는 것은 가장 관건이다. 성령은 하나님이 쓰는 일부 사람들 몸에서 역사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역사하는데, 누구의 몸에서 역사할지 모른다. 이 한동안 네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경력하게 되고 다음 한동안 다른 사람 몸에서 역사하면 네가 얼른 뒤따르라. 현시의 빛을 뒤따를수록 생명이 더욱 자라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성령이 한 것이기만 하면 너는 뒤따르라. 너의 경력 중에서 그의 경력을 실제적으로 체험하면, 너는 또 더 높은 것을 얻게 된다. 이렇게 실행하면 더 빨리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이고 생명이 자라나는 경로이다. 온전케 되는 길은 바로 네가 성령의 역사에 순복하는 것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 의해 너를 온전케 할 것인지를 모르며, 어떤 인ㆍ사ㆍ물에 의해 너로 하여금 얻게 하고 보임이 있게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설 수 있다면,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데에 매우 희망이 있음을 설명한다. 네가 만약 이 길에 들어설 수 없다면, 너의 전망이 어둡고 암담하여 빛이 없음을 설명한다. 네가 이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면, 모든 일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다. 성령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계시하든지 네가 그의 인식에 따라 경력하면 너의 생명으로 될 것이다. 너는 이 경력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말을 흉내내는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은 경력이 없는 사람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의 빛비춤과 깨우침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실제적으로 직접 경력한 것과 인식한 것을 말하면 자신의 생명에 더욱더 도움이 된다. 너는 이렇게 경력하여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모든 것에 순복하며, 너의 생명이 자라나도록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워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가장 빨리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무엇을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는가? 바로 너에게 어떤 패괴 성정이 있든 또는 너의 본성에 큰 붉은 용의 어떤 독소가 있든, 하나님 말씀으로 드러내면 시인하고 순복하며, 다른 말 없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얼마나 마음을 찌르게 말씀하든, 어떤 어휘를 사용하든, 진리이기만 하면 받아들여야 하고 사실의 진상에 부합되기만 하면 시인해야 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이면 얼마를 깨닫든지 순복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이 성령이 깨우쳐 준 빛을 교통할지라도 받아들이고 순복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추구하면 진리를 얻고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