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화복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였다

2018년 08월 31일

욥이 하나님을 찬송하다,

성경에 기록된 욥의 이야기에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언급할 중점이다. 욥이 하나님을 보지 못했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을지라도,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했느냐? 바로 앞에서 말한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는 태도였다. 이 ‘찬송’에는 조건도 배경도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여기서 욥이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주관하도록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결심하고 계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숨김없이 다 열어 놓았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과 대립되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하나님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달라고, 무엇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 또한,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을 경배하면 무언가 얻을 것이라는 허황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뭘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가 복을 받거나 화를 당한 것으로 인해 그렇게 한 것은 전혀 아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능은 변함없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능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배치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능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다. 욥의 이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그의 모든 행실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그것을 중히 여겼으며, 욥의 그러한 인식을 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마음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바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배치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욥이 생각하는 자신의 책임이자,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었다. 욥은 하나님이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거나, 무엇을 명령하거나, 무엇을 가르쳐 주거나, 무엇을 알려 주는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말로 하자면, 그에게 진리에 대한 하나님의 그 어떤 깨우침이나 인도, 공급이 없는 상황에서, 그가 그러한 인식을 가질 수 있었고 하나님을 그런 태도로 대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하나님이 보기에 욥의 그러한 행동은 아주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의 증거는 하나님이 칭찬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것이었다. 욥은 하나님을 본 적이 없었고,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는 말씀을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심오한 이론만 떠들어 대며 큰소리치고, 번제만 중시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인식도 없고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지도 않는 사람들보다는 욥의 마음이나 사람됨이 하나님에겐 훨씬 소중했다. 욥은 마음이 순결하고 하나님께 숨기지 않았고, 그의 인성은 정직하고 선했으며, 또한 정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성을 갖추고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길을 좇아 행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과 큰 능력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수 있다. 그가 화복을 따지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므로 사람이 걱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무지하며 이성이 없는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태도이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행동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욥의 이러한 인식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었다. 지금 볼 때, 하나님에 대한 욥의 이론적 인식이 너희보다 더 많으냐? 하나님이 그 당시에 행한 사역과 말씀은 매우 적었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욥이 그러한 성과를 이룬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적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적도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 그러한 태도를 갖춘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인성과 그의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인성과 그의 추구는 지금 사람들이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자가 세상에 없다고 말씀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이미 그에 대해 이러한 평가와 결론을 내렸는데, 하물며 지금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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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성경 _ 욥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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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29절을 통한 성찰: ‘주님을 보고 믿은 의심 많은 도마의 믿음’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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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와를 만들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창 2:18~20)

욥의 증거가 후세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와 계시

사람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완전히 얻는 전 과정을 깨달은 동시에,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긴 목적과 의미도 알게 되었다. 또 더 이상 욥이 받았던 고난을 마음에 두지 않게 되었고 욥이 받은 고통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이 생겼다. 사람은 더 이상 욥과 같은 시험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0~21)

욥은 왜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을까요

욥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욥이 가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는 시련을 겪고서도 여전히 굳센 간증을 섰는데 왜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됐을까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불만 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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