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왜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을까요

2018년 10월 14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저는 목사님이 읽어주시는 이 성경 구절을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보혈로 온 인류를 구속하셨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하나님 앞으로 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가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면 전 벅찬 감동을 느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굴욕과 고통을 참으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감동하면서도 저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고 모든 일을 이뤄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천지가 개벽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사탄의 권세 속에 있는 인간을 구원해 내실 수 있으실 텐데 왜 성육신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방법으로 인류를 구속하신 걸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형제자매와 목사, 장로님께 답을 구했지만 제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 안에 있는 자매님과 깨달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누던 중에 저는 마음속에 갖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고 자매님과 함께 답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자매님은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진리의 기묘함이 숨어 있답니다! 예전에 저도 그런 고민에 휩싸인 적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 책에서 이것과 관련된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제 고민은 해결되었답니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류를 구속하신 건지 같이 보도록 할까요?” 그러면서 자매님은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람을 구속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에 대해 항상 관념이 있어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구속하실 때, 사탄에게 ‘나는 전능하다. 네가 감히 인류를 나에게 안 주겠다고? 반드시 나에게 줘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기만 하면 해결됩니다. 하나님께는 권병(역주: 권세)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 준다고 말씀하시기만 하면 사람에게는 죄가 없게 될 텐데, 이런 일은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에 달려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한마디 말씀을 하시니 천지 만물도 다 생겼는데, 이 일은 왜 해결하시지 못합니까? 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까?”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면도 있고, 실제적인 면도 있다. 실제적인 면은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하여 땅에서 33년 반 동안 거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피를 흘리며 가장 심한 고통을 받은 것이다. 나중에 죽음에서 부활하였는데, 부활은 전능한 면이다. 하나님은 어떤 예시로, 또는 피를 좀 흘리거나 비를 좀 내리는 것으로 그것이 곧 속죄제라고 말씀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친히 말씀이 육신 되어 온 인류와 접촉하고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인류에게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알게 하였다. 그 사실로 인류에게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하였다는 것을 알게 하였는데, 하나님이 확실히 사람을 구원한 그런 증거가 있게 하였다. …영은 피를 흘릴 수 없고 육신만이 피를 흘릴 수 있는데, 그 보혈이 바로 속죄제의 증거이다. 하나님의 육신이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인류를 대신해 고통을 담당했다. 영은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기에 인류를 대신해 고통을 받을 수 없고, 사람의 죄를 속량할 수 없다. 그것은 인류를 위해 한 것으로, 실제적인 그 일면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다. 왜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고, 전능한 면이 있다고 말하겠느냐? 일을 할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면이 있고, 실제적인 면도 있다. 하나님의 전능은 바로 그의 실질이며, 그의 실제적인 면에도 그의 실질적인 면이 있다. 이 두 방면은 서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은 후 자매님은 제게 이렇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하는 건 하나님의 전능함과 실제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천지 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에는 관념이 없지만 하나님의 실제에 대해서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실제는 항상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자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 사역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당시 애굽의 바로가 애굽을 떠나려는 이스라엘 백성을 막아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와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셨을 땐 요나에게 니느웨 성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실제 사역의 일부입니다. 하지만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분부를 듣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쳐 여호와로부터 숨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배에 올랐을 때 하나님께선 파도를 일으키시어 요나는 배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바다에 던져졌고, 물고기에게 잡아 먹힌 후에도 사흘간 살아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율법시대 말기,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의 굴레를 쓰고 매일 죄 속에서 살아가 율법으로 정죄 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졌습니다. 그때 그들에겐 영원한 속죄제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선 성육신하시어 직접 인간 세상으로 오셨고 실제로 고통을 받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주셨고 그렇게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여 제자들을 향해 40일동안 나타나신 것도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사역 중 어느 단계의 사역을 하시든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실제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확실한 증거이자 사탄의 권세를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증거로 사탄이 고개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구원,십자가 사랑,

자매님이 읽어주는 구절을 듣고 자매님과 나누고 나니 마음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전능하심뿐만 아니라 실제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쁜 나머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줄만 알았지 하나님께서 왜 성육신하시어 친히 인간 세상에 오시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지는 몰랐어요. 이제야 하나님의 사역에서 전능하심과 실제가 공존하는 것이고 뗄래야 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의 행사는 정말 기묘하고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자매님, 궁금한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죄를 짓고 뉘우치는 상황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 저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까요?”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고 과거에 지은 죄이건 앞으로 지을 죄이건 모두 사해주셨으니 주님께서 오시면 우린 바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주님의 말씀에 부합 될까요? 주님께서 우리의 생각대로 사역을 하실까요? 성경에서 하신 말씀을 살펴볼게요. 베드로전서 1장 16절 말씀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요한복음 8:34~35)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를 사함 받았지만, 죄의 본성은 아직도 우리에게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죄를 짓고 뉘우치는 악순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선 타락한 성품을 모두 벗어 던지고 죄의 본성을 해결해 하나님의 뜻에 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주님께 버림 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가름 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어떤 사역으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구원해주실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누가복음 17:24~25),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한복음 5:22),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한복음 5:27)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실 때는 성육신 하신 인자로 음성을 발하고 심판 사역을 하시겠다고 분명하게 예언하셨습니다. ‘아들’과 ‘인자’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말씀하신 겁니다. 하나님이 영이라면 ‘인자’라고 칭하지 않으셨겠죠. 성육신하시어 인자가 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은 현실적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초자연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매님이 이어서 교제했습니다. “그럼 책에는 어떻게 적혀 있는지 보겠습니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를 타락시켜 사람은 사탄의 화신이 되었고, 하나님이 패배시킬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탄과 싸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모두 땅에서 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어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사역이다.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것도 사실은 육신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고, 육신에서 역사하는 것은 영계에서의 사역을 하는 것인데, 그는 영계에서의 사역을 전부 땅에 실제화하였다. 정복하는 것은 그를 거역하는 사람이고, 패배시키는 것은 그를 적대시하는 사탄의 화신이며(물론, 역시 사람이다), 결국에 구원을 받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그리하여 그는 더더욱 피조물의 외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였다. 그래야 사탄과 실제적인 싸움을 하여 그와 같은 외형이 있는, 그를 거역하는 사람을 정복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외형이 있는, 사탄에게 해를 입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그의 원수는 사람이고, 정복할 대상은 사람이며, 구원할 대상도 역시 피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사람이 되어야 하였다. 그러면 그의 사역은 매우 편리하게 되어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정복할 수도 있고, 더욱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현실 속 우리는 사탄에게 타락된 나머지 사람다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매일 유로하는 것은 교만, 왜곡, 비겁함 등 사탄의 타락한 성품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화신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탄의 권세 속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시어 직접 인간 세상에 오셨고, 진리를 선포하시고 심판 사역을 통해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정결케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사역은 비범한 권세와 능력을 통해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일깨워주시고 우리의 타락한 성품을 심판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탄의 사악함과 추악함, 비겁함을 똑똑히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 아름답고 선함을 알게 되어 우리가 사탄을 배반하고 버려 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사탄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죠. 하나님께선 이런 현실적인 사역으로 우리 사람을 구원해주시는 겁니다.”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난 후, 저는 감격에 겨워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나눔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저의 고민이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실제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꼭 알아야 하는 성경 구절 16가지

자녀를 위한 성경구절이 크리스천 부모가 주님의 뜻에 맞는 실행 방법을 찾으시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온라인 채팅으로 더 많은 내용을 나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신 하나님의 뜻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다’라는 대표적인 이야기를 볼 때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에 진심으로 탄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분부하셨는지,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고 하셨는지, 등의 이런 많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뜻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한 영적 서적에서 아브라함의 스토리에 대해 풀어놓은 것을 보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마음의 궁금증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에서 멈추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웅대하고 위대한 계획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 것은 단지 하나님의 전체 경영 계획의 서막을 열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시각, 또 누가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그 일을 시작으로 조용히 상연될 줄을 알았겠는가!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한 많은 일은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움직이려고 할 때, 그 ‘움직임’은 많은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또 사람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사람에 대한 검증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복을 나타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요구에 순복할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택한 아브라함에 대해 진정으로 안심하게 되었고 인정해 주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그 인물이 자신의 약속을 담당할 수 있고 자신의 다음 경영 계획을 담당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선도자라는 것을 확정하였다. 비록 그 일은 단지 시련과 검증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기쁨과 위로를 느꼈고, 하나님에게 드린 사람의 사랑을 느꼈으며, 사람에게서 오는 전에 없던 위안을 느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멈추게 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삭의 목숨을 취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브라함에게 그 행위를 멈추게 했다. 하나님이 보기에, 아브라함의 순복은 이미 검증을 통과했으며, 그가 한 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려고 했던 일에서 이미 결과를 본 것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 아니냐? 그 결과는 하나님이 만족하는 것이고 원했던 것이며, 하나님이 보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것은 진실하지 않으냐? 비록 하나님이 서로 다른 배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각 사람을 시험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자신이 바랐던 것을 보았다. 곧, 아브라함의 마음은 진실한 것이고, 아브라함의 순복은 무조건적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 ‘무조건적’이 바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이스라엘 선민이 생기게 한 다음, 그 선민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뜻을 정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담당하게 하려고 했고,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발표한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서 계속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다.』 이 말씀에서 저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을 담당하는 선봉으로 뽑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분부대로 이삭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의 진심과 조건 없는 순종은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하게 되어 하나님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소망을 이루시려고 정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창조하신 다음 계속 하나님 자신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마다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가치와 의의가 있으며, 모두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은 단지 인류를 경영하고 구원하는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계속해서 구원 사역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는 소망을 실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계속 자신의 사역을 하시면서 묵묵히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 책에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보았고, 하나님의 검증을 통과한 것도 보았다. 비록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복을 열납하였을지라도, 아브라함은 아직 하나님의 지심인(知心人)이 되기에는 부족했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사람이 되기에는 부족했으며,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수는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외로웠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외로울수록, 안타까울수록, 되도록 빨리 자신의 경영을 계속하고, 되도록 빨리 한 무리 사람들을 선정하고 얻어 자신의 경영 계획을 이루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야 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이다. 하나님은 처음에 인류를 창조하면서부터 한 무리 이기는 자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랐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이해하고 알 수 있는 한 무리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뜻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든, 앞길이 얼마나 간고하든, 또한 하나님이 바라는 목표가 얼마나 아득하든, 하나님은 인류에게 둔 기대를 지금까지 바꾼 적이 없고, 또 포기한 적도 없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는 일에서 순종했지만,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역사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욥이나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이긴 자들을 더 많이 얻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 하나님께 축복받을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시록 2:7~11) 이삭을 바치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시고, 저의 마음의 궁금증도 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샤오묘

욥은 왜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을까요

욥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의롭다 칭함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욥이 가산과 자녀를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나는 시련을 겪고서도 여전히 굳센 간증을 섰는데 왜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게 됐을까요?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불만 이였을까요?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신자들은 세례를 받고 나면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성경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성경 예언이 하나씩 성취되면서, 성도들은 성경 예언을 연구하는데 많은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경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누구도 그 참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는가?

TO.사역자에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TO.효정 자매님: 자매님, 안녕하세요! 어제 유형제님한테서 우리 고향에 있는 교회가 더 황량해졌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자매님이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자주 금식 기도를 한다는 것도요. 20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어서 쓰러진 적도 있다면서요. 그 얘기를 듣고 빨리 돌아가 자매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교회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갈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이렇게 유형제님 통해서 편지 보내요. 자매님, 교회의 황량은 지금 교계의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그리고 지금 재림에 관한 예언이 거의 다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주님을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나가서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야 돼요. 자매님도 기억할 거예요. 전에 자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곳이 어디일지에 대해서 얘기 나누하면서 스가랴 14장 4절을 봤었죠.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이것을 보면서 주님이 돌아오실 때, 유대의 감람산에 서서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하고는 최근 몇 년간 계속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특히 네 번의 핏빛 달이 나타나니 더욱 이스라엘에 집중하고 있었죠. 그래야 최대한 빨리 재림에 대한 메시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지인이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돌아왔고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고 계신다고 전해 주면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빨리 구해 보라고 했었잖아요. 근데 우린 그것이 성경 예언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님이 두 번 다 이스라엘에서 사역을 전개하셨고, 원래부터 하나님을 믿어 오던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셨는데 재림 때 어떻게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실 수 있겠냐고 생각했었죠. 중국은 여태껏 향을 피우고 불상에 절하며 악령을 섬겼고 게다가 크리스천을 심각하게 박해하고 있고, 제일 낙후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 나라니까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실 리가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바로 거절하고 주님이 감람산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러다 여기 와서 조형제님을 만나게 됐는데, 그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관점을 돌리게 됐어요. 형제님이 이렇게 얘기해 주더라고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죠.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롬 11:33~34)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것보다 높습니다. 아무도 측량할 수가 없죠. 우리는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사역을 분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미리 상의하고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해야 할 사역을 바로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겁니다. 말세에 예수님이 돌아오셔서 사역하실 때도 똑같아요.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걸 사람의 생각으로 규정해 버리면 안 되고, 많이 구해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예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말을 들으면서 바리새인이 생각났어요. 그들은 계속 예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불리지 않고, 또 왕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그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하나님의 진노 속에 떨어졌죠. 말세에, 자기 생각과 상상으로 재림에 관한 예언을 대한다면 무의식중에 바리새인이 주님을 대적했던 길로 가게 돼요. 그럼 정말 위험해요! 형제님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을 내려놓고 주께 인도해 달라고 자주 기도드렸어요. 주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어요. 어느 날 성경에서 이런 말씀들을 보게 됐어요. 말라기서 1장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사41:2~3)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7) 여기 ‘이방’,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이런 말씀들에서 주님이 돌아오실 때 사역하는 장소는 동방이고, 또 이방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중국은 세계의 동방에 있고, 무신론 나라이고, 참 하나님을 경배한 적도 없고, 지금껏 크리스천을 박해해 왔어요. 그래서 일부 기독교 나라에서는 중국을 ‘이방개’라고 불렀죠. 중국은 전형적인 이방 나라예요. 성경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말세에 하나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신다는 예언이 진짜 성경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전에 우리가 장담했었던 것들이 다 자기 상상이고 관념이었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알고 싶어서 조형제님을 찾아갔어요. 그날 형제님 교제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됐는데, 그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말씀을 자매님한테도 보내 드릴게요.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인솔하였든, 유대 땅에 태어났든, 또 이방 땅에 태어났든, 그가 한 사역은 모두 그가 지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은 백배로 기뻐하고 이방인은 천배로 혐오하겠느냐? 이런 것은 다 너희의 관념이 아니냐? …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또 이스라엘의 다윗 집만 하나님이 처음으로 태어난 곳이므로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어느 족속도 하나님을 ‘탄생시킬’ 자격이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어떤 이방 족속도 여호와의 역사를 직접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그렇게 여긴다면 완고파가 된 것이 아니냐? … 너희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이방 중에 친히 강림하실 수 있을까? 그분은 시내산이나 감람산에 강림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맞는 거잖아. 이방인(이스라엘 외의 사람)은 모두 그분이 혐오하시는 대상이 아닌가? 그분이 어떻게 친히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실 수 있을까?’ 이런 것은 모두 너희에게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깊이 뿌리박힌 관념이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너희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친히 너희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고, 시내산도, 감람산도 아니라 전에 인솔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 가운데 나타난 것을 보게 되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방 각 족속의 하나님임을 알게 할 것이다. 설령 내가 저주한 족속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사역이고 말세에 이루려고 계획한 나의 역사 취지이며, 말세에 성취하려는 나의 유일한 사역이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이 전 세계를 창조하셨으니 어느 나라에서든지 다 역사할 권리가 있고, 규례의 속박을 받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느 국가나 민족의 사유재산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린 하나님이 앞 두 단계 사역을 이스라엘에서 전개하셨으니 재림 때도 이스라엘에 오시고 이방에서는 사역하실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주님이 만약 또다시 유대에 강림해서 사역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히 이스라엘에 규정해 버릴 거예요. 그럼 당시 바리새인들이 성경의 글귀를 지키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잖아요? 이건 하나님을 오해하고 규정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이 중국에 성육신해서 사역하시는 것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가 있어요. 단지 우리가 꿰뚫어 보지 못했을 뿐이죠. 전에는 관념 속에서만 살면서 주님이 중국에 오셨다고 해도 구해 보지 않고 주님이 이스라엘의 감람산에 나타나시기만 기다렸는데, 너무 어리석었어요. 지금 교계가 다 황량해졌고, 재난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그러니 더는 자기의 생각과 상상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안 돼요. 국적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발자취와 주님의 나타남을 찾고 구해야 해요. 그래야 교회가 황량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요즘 계속 하나님이 중국에 오셔서 사역하시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는데 거기 말씀이 다 진리였어요. 그분들 교제를 들으면서 어려운 점들이 해결되고, 또 교회가 황량해진 원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게 됐어요. 생명에 정말 도움이 되더라고요. 자매님도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말세에 오셔서 하시는 사역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길 바라요. 그래서 교회 형제자매들과 같이 그 황량해진 상황에서 빨리 나오길 기도할게요.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FROM:이옥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100세일 때 하나님이 그에게 아들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또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