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메시아의 예언은 이루어 졌는데 왜 유대인은 인정하지 않았는가

2018년 08월 29일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후, 수민이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간간이 방안으로 불어와 여름의 무더위를 쫓아냈다. 수민은 거실로 돌아와 앉았고, 이설매, 전가희는 한창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데…

전가희: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아요! 유대교의 제사장, 서기관은 조상 대대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기로 예언된 메시아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어요. …

수민: 전 자매님, 우리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우리가 2천년 전의 유대인이었다면 아마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이설매: 수민 자매님 말이 맞아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누가복음 11:29) 악한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죄 속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전가희: 그런데 제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수민: 그게 뭔데요? 얘기해 보세요. 우리 같이 토론해 봐요.

전가희: 로마인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유대인은 조상 대대로 모두 하나님을 믿었어요. 특히 유대교의 서기관, 바리새인은 모두 성경을 숙독하고, 도처로 전도를 다녔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할 때 그들은 오히려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어요. 저는 이걸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이설매: 전 자매님이 얘기한 그 문제는 저도 좀 이해가 안 돼요.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보고 자랐고, 예언에서 구세주 메시아가 오셔서 그들을 구원해줄 거라는 것도 알았어요. 게다가 그들도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이 온 유대 땅을 뒤흔든 것을 보았고, 또 주님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어요. 예를 들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고, 장님이 앞을 볼 수 있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셨어요. 주님이 하신 이런 일들은 권세와 능력이 있고 사람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구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 알아낼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기까지 했어요. 이건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수민: 예전에 저도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에 이 문제를 아주 쉽게 설명해 놨어요. 같이 한번 보실래요.

수민이 읽었다.『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예수와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금과옥조처럼 여겼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가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아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대체 무엇인가?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들은 그저 ‘성경’의 구절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내 뜻과 내 역사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만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명성을 지키기 위해 어질고 자애로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그 이유는 그들이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사람들에게 성경 구절을 잘 지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제를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너희는 바리새인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은가?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은가?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것은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한 까닭이고, 예수가 한 진리의 말씀을 인식하지 못한 까닭이며, 더욱이 메시아를 알지 못한 까닭이다. 메시아를 본 적도, 메시아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아란 이름을 헛되이 지키며 온갖 수단으로 메시아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원칙은 ‘가르치는 진리가 아무리 높아도, 권능이 아무리 커도, 메시아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는 것이다. 그들의 그런 관점은 매우 잘못되지 않았는가? 너무나 황당하지 않은가?』

수민: 성경에 예수님이 사역할 때 온 유대 땅을 뒤흔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님은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고,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따랐지만 대부분의 유대인, 특히 유대교의 상층 지도자는 예수님의 사역을 마주하며 전혀 구하거나 살펴보려는 마음이 없었어요. 단순히 성경의 글귀만 지키면서 오실 그분이 메시아로 불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또, 예수님이 모세의 율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정죄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규정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제한했어요. 그들은 교만한 본성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대했어요.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예수님의 사역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은 찾지도 살펴보지도 않았어요. 그들이 이런 태도로 어떻게 성령의 계시를 얻을 수 있고, 예수님이 오실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겠어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그들이 너무 교만하고,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지켰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하려고 했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죄를 저질렀어요.

이설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근원적인 문제를 이야기 했는데, 보통 사람들은 말할 수 없어요! 당시 유대인은 성경의 예언을 보고 메시아가 오실 거라고 말했어요. 그들은 예언의 글귀 그대로 메시아를 기다렸어요. 예수님이 오시자 유대인은 성경의 글귀를 가지고 예수님의 사역을 평가하며, 아무리 해도 하나님 사역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유대인은 성경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했어요. 이게 바로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였어요.

성경 책,

수민: 맞아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9) 하나님의 사역은 기묘하며, 누구도 이해할 수 없어요. 유대인은 성경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제한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성경을 벗어나는 걸 허용하지 않았고, 이런 태도로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을 대적할 수 밖에요!

전가희: 자매님들이 이렇게 교제하니 저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당시 유대인은 성경으로 예수님을 규정하고 정죄했어요. 요한복음 19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아요. 제가 읽어 볼게요.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9:6~7) 유대인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살펴보지 않았고, 구약 성경의 말씀만 지키고, 하나님의 사역이 구약 성경을 벗어나기만 하면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구원을 잃게 되더라도 성경 책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과 같아요.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제를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이설매: 맞아요, 성경에 또 이런 예를 기록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장님의 눈을 치료하셨는데, 유대 바리새인은 이 일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오셨다는 사실을 부정했어요. 그들은 구약 율법으로 하나님을 규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했어요. 장님이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이 그의 눈을 치료해주었다고 말했을 때, 바리새인은 이렇게 말했어요.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요한복음 9:16),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요한복음 9:28~29) 이처럼 유대인은 성경만 인정하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면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고, 더욱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아! 그동안 고민했던 문제가 오늘 드디어 해결되었어요. 감사합니다. 하나님!

전가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유대인이 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인정하지 않았는지 이제 이해했어요. 수민 자매님,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고민한 문제를 속 시원하게 말해줬어요. 정말 보통 책이 아니에요. 아! 유대인은 매일같이 메시아의 재림을 바랐지만 정작 메시아가 오셨을 때는 오히려 알아보지 못하고 정죄하고 대적했어요. 이 문제는 우리가 고민해볼 필요가 있고, 교훈으로 삼을 가치가 있어요!

이설매: 네, 이건 정말 우리가 각성해야 해요! 요즘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토론한 화제가 바로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거였어요. 성경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신 예언은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목사와 장로도 항상 주님이 문 앞에 서 계신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주님을 영접하지 않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 수민 자매님, 이 책에서는 어떻게 말했는지 봐요.

수민: 책에 정말 이 방면의 내용을 언급했어요. 우리 같이 봐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새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고, 하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행사가 있으며, 하나님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고, 하나님이 나타나는 그곳에 진리, 길,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을 간과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얻고 나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은 것이라 생각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나타남이라고 인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실수인가! 하나님의 나타남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될 수 없고, 사람의 바람에 따라 실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과 계획, 자신의 목표와 방식으로 사역을 한다. 하나님이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과 의논할 필요가 없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모든 사람들이 응당 알아야 할 바이다.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고자 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먼저 스스로의 관념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지나치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나아가 하나님을 너희의 범위 안으로 한정하거나 너희의 관념 속에 가두어 놓지 말아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아야 할지, 하나님의 나타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에 어떻게 순종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은 모두 진리가 아니며 또 진리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찾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말들은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에 귀 기울여 듣는 거예요. 만약 누군가 어디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주님이 어디서 말씀하신다고 전한다면 우리는 주의해서 구하고, 겸손히 알아봐야 해요.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어요. 이 책은 또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면 한 걸음씩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시든 우리는 구하고, 순종해야 해요. 유대인의 잘못된 길을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의 관념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규정해서는 절대로 안 돼요. 유대인은 메시아를 간절히 바랐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에 제한해서 이미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오늘날의 우리도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에만 제한해서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게 아닐까요? 이건 우리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어요.

전가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난 이제 깨달았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성경의 유한한 글귀에 따르거나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맞는지를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해요. 진리의 선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타남이 있어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고, 주님의 재림이에요.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가장 정확해요.

세 사람은 기쁘게 웃으면서 교제를 계속 이어갔다.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재림에 관한 성경의 예언은 어떻게 응하는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오랜 소망이 이루어져 주님의 약속을 받고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하루속히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오실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정말 우리 생각처럼 구름을 타고 오실까요? 우리 생각이 예언이 응하는 실정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반드시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흐리멍덩하게 대한다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기 쉽습니다. ‘예언’을 언급하면 우선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즉 예언은 이후에 발생할 일을 말한 것인데 예언이 응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언의 진정한 가리킴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언’ 속에는 하나님의 기묘와 지혜가 있고 비밀이 그 속에 있기에 예언이 어떻게 응하여 사실로 이루어지느냐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자 깨닫기 어려운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늘과 땅이 떨어져 있는 만큼 하나님의 생각도 사람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33~34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또 고린도후서3장 6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언이 응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할까요? 당시에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돌아보면 예언이 경문의 글귀와 사람의 상상대로 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하루빨리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약 율법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정말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게다가 그분을 대적하고 저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 예언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분명히 쓰여져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볼 때 마리아는 분명히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이 어떻게 그녀의 몸에서 응할 수 있겠느냐고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확실히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당시에 이 사실을 믿은 사람이 또 몇이나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본 마리아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당시의 사람들이 본 것과 예언이 응한 실제 사실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또 한 곳의 예언을 봅시다. 이사야 9장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화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강생하시기 전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 근거하여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부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정권을 담당하는 메시아는 틀림없이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고, 틀림없이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떨치며 그들을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예언이 응할 때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시기는커녕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들 상상 속의 왕처럼 위풍당당하기는커녕 사람이 보기에 아주 평범한 목수였으며, 군사를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기는커녕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언의 응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상상과 예언의 실제적 응함은 정말로 천지차였으며, 예언의 응함은 완전히 사람의 상상에 부합되지 않았고 사람의 관념에도 부합되지 않았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또 메시야의 도래를 저버리고 대적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메시야의 예언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찼고 예언의 응함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응했을 때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극력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그들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실패한 원인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구약의 예언을 지키면서 메시야의 도래를 대적한 것은 설마 예언이 틀린 것이란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경문의 글귀만 너무 중요시하고 오히려 예언이 응하는 실질은 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언은 그들이 메시아를 알고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본이 되고 메시아를 저버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망국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이미 마지막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글자 뜻대로 “주님이 어떻게 가셨으면 그대로 오신다”고 이해하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바라고 상상한 것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직면해야 하겠습니까? 경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자신의 상상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겠습니까 아니면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전히 바리새인처럼 다시 오신 예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겠습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고 진리의 성령이 이미 인간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백만 자의 말씀을 발표하셨고 작은 책을 펼치셨으며 하나님의 6천년의 경영 계획의 모든 비밀을 전 인류에게 풀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가 중국에서 전개된 지 20여 년간 각종각파는 마치 깨끗이 정리된 것 같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다 각종 각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종교계에서 기세 드높이 확장될 때 이방인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이 도둑 같이 오신다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응했습니다. 이 단계를 은밀한 강림이라고 칭하는 까닭은 이 단계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다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몸에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은밀한 것입니다. 이것도 베드로전서 4장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를 응했고 열 처녀의 비유를 응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사람은 먼저 알게 되고(외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되고(열 처녀) 어떤 사람은 모릅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외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맹목적으로 정죄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이 오셔서 추수하고 키질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며 만교가 하나로 되는 등의 예언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끊임없는 확장에 따라 점차 응했습니다. 주님이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다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것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 수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구주 예수가 여전히 사람의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로 되어 사람에게 전혀 노하지 않고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 여전히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도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였고 그를 기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말씀이 ‘응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 지극히 높은 자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기대하던 인류 가운데 강림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서 양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생수를 부어주며, 은혜와 자애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는데 매우 생생하다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람이 어찌 거룩한 구주 예수가 비록 자애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를 알겠는가? 사람들이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그가 또 어찌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줄곧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는 자애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그가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 뿐 그가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한, 권세를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의 돌아옴을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케 하였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오히려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은밀히 역사하시는 기간에 무릇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의 사역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으로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정죄하고 모독한 탓에 하나님에 의해 악한 자의 행렬에 들게 되었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일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기호이다. 너희들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 오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네가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언어를 본 후에, 이런 말씀이 단지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에 부합되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여긴다면, 너는 이 만분의 일의 언어 가운데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너에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너무 자고(自高)하지 말라고 권한다. 너의 조금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장차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인데, 네가 자세히 고찰하고 반복적으로 상고하면, 너는 이 마디마디의 말씀이 도대체 진리인가 아닌가, 생명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몇 마디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정죄하여, “이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온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내가 권하는데 너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여라! 너희들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발표한 언어를 정죄하지 말고, 미혹받을까봐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렇다면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양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만 하나님이 이미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나는 '천국 꿈'에서 깨어났다

봄날의 이른 아침, 태양은 동쪽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햇빛은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었습니다. 길가의 풀과 꽃들은 혈기왕성하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활기가 넘쳤고, 작은 새도 뒤질세라 나무에서 재잘재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생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이양은 즐거운 마음으로 밝은 햇살을 받으며 예진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진의 집에 도착한 이양이 상냥하게 물었습니다. "예진아, 요즘 뭘 그렇게 바쁘게 보내니?" 이양이 묻자 예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빼고, 틈만 나면 복음을 전하러 나가. 어제는 황 자매님이랑 옆 동네 둘째 숙모님 댁을 찾아갔지.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장장 5리를 걸어갔다고! 하지만 둘째 숙모님이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었지." 그러자 이양이 "엄청 좋아하는구나." 예진이 말했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너 알아? 우리 목사님이 말씀하셨어. 천국에 들어가고 싶으면 수고를 많이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전도를 많이 해서 열매를 맺고, 힘써 사역하면 주님이 오실 때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 주실 거야!" 예진의 말을 들은 이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예전에 내 생각도 너랑 똑같았어. 열심히 사역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고, 주님 위해 봉사하고, 나의 청춘을 바치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꼭 천국으로 데려가실 거라고. 그런데 난 최근에 진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설교자들을 만났어. 그분들과 교류하면서난 생각이 달라졌어. 우리의 이런 추구는 천국에 들어가는 기준과 거리가 아주 멀어. ” 예진은 의아해하며 이양에게 "뭐?"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하지만 사도 바울도 말했잖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디모데후서 4:7~8)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위해 뛰어다니고 고생하며 힘들게 봉사하는데 설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없겠어? 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지만. 이양이 말했습니다. "예진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을 믿고, 누가 한 말이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맞는지 고려해야 해. 주님의 말씀에 맞으면 듣고, 주님의 말씀에 맞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의 관념과 상상에서 나온 거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 듯 눈썹을 찡그린 채 듣고 있었습니다. 이양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기적을 행하고, 사방으로 전도와 설교를 하러 다니고, 연약한 형제자매들을 항상 도와주는 것을 보았어. 그들은 모두 열심히 사역하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왜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전혀 모른다고 하고, 게다가 그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찾아 볼 필요가 있어. 이런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 생각과 상상대로 추구하다 결국 주님께 버림받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하겠어?” 예진은 이양의 말을 듣고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고생하며 사역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인데, 왜 이런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더러 주님은 그들을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했을까?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양이 끈기 있게 말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지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고, 육지와 바다를 두루 다니며 전도하고, 평상시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입으로는 늘 경건을 말했어.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지.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아.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1: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태복음 23:23)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볼 때는 바리새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허상일 뿐이야.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았어. 복음을 전했지만 마지막 결과는 어땠을까? 사람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이끌었지. 예수님이 새로운 사역을 하실 때,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려고 주님의 말씀이 진리인 줄 알면서도 여전히 관념을 고수하며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리고 신도들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 막았지. 심지어 신도들을 데리고 로마 정권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 이것은 그들이 진리를 증오한다는 것과 외식하는 그들의 본질을 명백히 보여 준 거야. 비록 그들이 고생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헌신했지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켜 행한 사람들이 아니었어.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들과 똑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며 열심히 전도도 하고 있어.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 아니야.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는 일은 거의 없어. 대부분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처리하고 항상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고 계획해. 특히 마음에 안 들고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는 일이 임하면 어떤 진리을 알아야 하는지, 자신을 내려놓고 어떻게 주님의 뜻에 맞게 행할 것인지,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만족게 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람이 될 것인지 등등 우리가 가장 먼저 알아야 하고 가장 먼저 진입해야 할 진리에는 진입하지 않고 오히려 항상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는 거야. 더구나 지금 우리는 영이 메말라 있어서 성령의 사역을 느끼지 못해. 그럼에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찾아보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지 물어보지도 않잖아. 그냥 단순히 사역만 하고 있지.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라고 하신 이 말씀과 완전히 어긋나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힘들게 사역하는 모습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도 할 수 없지!” 예진은 이양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고, 그 말로 인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말도 맞는 거 같아. 당시 바리새인들도 힘써 사역하고 고난 받으며 헌신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진리와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어. 여전히 고집스럽게 반항하고 정죄했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어. 나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영적으로 어둡고 갈증을 느끼면서도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를 찾아보지 않았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야!’ 그러고 나서 예진은 감개무량해서 말했습니다. "응, 네가 한 말도 일리가 있어. 이게 다 우리의 현실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태복음 22:37~38)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어. 바로 우리가 마음과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는 거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오로지 주님의 자리밖에 없어. 모든 일을 주님의 요구대로 하고 자신의 선택이 섞이지 않아.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쳤을 때 자신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요구를 대할 때는 말씀을 따라 순종했어.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의 행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 그의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졌어. 욥도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 했어. 그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온 산에 가득했던 소와 양은 달아났고 자녀들은 죽었어. 몸에는 병도 생겼지.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어. 그래서 하나님은 욥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어. 베드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를 추구하였고 죽기까지 순종했어. 예수님이 그에게 한 말씀을 모두 그의 가슴에 새겼지. 그 말씀을 본인에게 비춰 보면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 모든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했어.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고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 그의 추구로 인해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천국 열쇠를 주었지. 역대의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잖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것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야.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바라는 인간의 모습대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런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어." 예진은 이양의 말이 진리에 맞다고 생각되어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이양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의 좋은 행위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관념과 상상을 따르면 안 돼.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해! 속담에도, "일을 주인 뜻대로 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헛수고이다."라는 말이 있잖아. 만약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꿈에 불과하고 일방적인 소원일 뿐이야!” 예진이 감격하며 말했습니다. "네가 한 말들은 너무 옳아. 하나님이 깨우쳐 주신 거라 진리에도 부합되고 주님의 말씀과도 부합돼.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주님의 요구대로 따르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야! 하지만 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어. 겉으로 좋은 행동을 하고 복음을 많이 전하면 천국의 복을 받을 줄 알았거든. 이것은 내 관념이었고 상상이었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줄도 모르고 있었네! 이대로 가다간 결국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3) 이 우리한테 나타날지도 몰라. 그 결과는 정말 너무 엄중해. 주님 감사합니다! 이양아, 너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 이제 나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구나!" 이양은 예진을 보면서 이양과 예진은 마주보면서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창밖의 작은 새는 여전히 나무에서 재잘거리고, 태양이 비추고 있는 꽃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당신은 '들림 받다'의 참뜻을 아십니까?

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 몇 조각이 떠 있고, 백화는 교회를 가는 길이었다. 저 멀리서 새빨간 교회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백화의 기분은 화창한 날씨만큼 좋지 않았고, 그의 마음속은 고민과 막막함으로 가득했다. 잠시 후, 교회 문밖에 도착한 백화는 마음을 한번 가다듬은 후 느릿느릿 걸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교회 안에는 10여 명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고, 형제자매는 삼삼오오 모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화는 입구에 서서 좀 보다가 약간 무거운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서 형제님이 오늘 아침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천국으로 돌아갔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서로 귓속말로 속삭이며 수군거렸다. 한(韓) 자매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며칠 전에도 제가 시장에서 형제님을 보고 인사까지 했는데요. 멀쩡하던 형제님이 어떻게 갑자기 떠났다는 거죠?" 백화가 말했다. "어제 형제님이 아들 집에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이미 응급처치가 늦어서 오늘 아침에 떠났어요. 내일 아침 7시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니까, 형제자매님들이 모두 가서 배웅해 주길 바랄게요…." 모두가 이야기하는 틈을 타서 백화가 강단에 올라 형제자매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조용히 좀 해주세요…." 모두의 눈길이 백화에게 쏠리자 백화는 진지한 눈빛으로 형제자매를 향해 말했다. “형제자매님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주님을 믿지만 정말 들림 받아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형제자매들은 평소 전도자의 자세가 아닌 백화를 보고 약간 의아해하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모임은 전보다 훨씬 가벼운 분위기에서 다들 한마디씩 발언하기 시작했다. 찬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백화 자매님, 오늘 어쩐 일이세요? 전에는 항상 우리한테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바울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앞으로 죽든지 아니면 살아있어도 모두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여기에 의심할 게 뭐가 있어요?”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백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때, 하린 자매님이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그건 바울이 한 말이에요. 그가 한 말이 주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최근에, 저는 계속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고민했어요.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9~10) 성경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세워질 거라고 우리에게 계시하는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왜 우리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겠어요? 하지만 바울은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공중에 끌어올리신다고 했는데, 그건 주님의 뜻과 반대로 가는 게 아닌가요?" 그 말을 듣던 형제자매들은 모두 귓속말로 속삭였고, 어떤 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백화는 이런 나눔이 꽤 신선하고 깨달음이 있다고 느꼈고, 본인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헤아렸다. “맞아. 주님의 뜻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거야. 난 매일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어떻게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지?" 동역자인 장린 자매가 말했다. "하린 자매님, 우리는 그동안 주님이 오시면 들림 받아 천국에 간다고 믿었는데, 왜 지금 의심하시는 거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전 이해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천국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분명 하늘에 있어야지 어떻게 땅에 있을 수 있어요? 전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백화는 형제자매들이 술렁대는 것을 보고 화제를 이어받아 말했다. "형제자매님,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오늘 이 화제가 나온 이상 우리 차분하게 한번 토론해 봐요. 방금 하린 자매님이 나눈 이야기는 정말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예요. 예전에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들림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를 추구했지만 천국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어요. 하린 자매님의 나눔을 듣고, 저는 계시록의 말씀이 생각났어요.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시록 21:3),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계시록 11:15) 이 예언들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언급했어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이 땅 위에 이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우리 하린 자매님에게 계속 나눠달라고 해요.” 백화는 말을 마치자 또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하린 자매님, 자매님이 얼마 전 진리를 알아보러 나간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찾았는지 모르겠네요. 오늘 자매님이 나누신 깨달음이 나가서 듣고 오신 건가요? 우리한테도 좀 들려주세요." 백화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잇따라 하린에게로 향했다. 하린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전 그동안 정말 성령의 역사를 찾으러 나갔었어요. 지금 주님 재림의 여러 가지 징조가 다 이루어졌어요. 이것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는 뜻이에요. 며칠 전, 사촌 남동생한테서 영적 서적을 한 권 얻었는데 그 안의 말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고, 성령께서 직접 발하신 음성이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말세에 주님이 오셔서 성도들을 데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나눴을 때, 사촌 남동생이 저에게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말했어요. 예전에, 우리는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가 규정할 수 없어요." 말이 끝나자, 교회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렇게 깨닫는 게 주님의 뜻에 합당해요. 우리는 왜 생각하지 못했죠?", "맞아요. 우리는 천국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럼 얼마나 막막해요. 하늘에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사람이 하늘에서 어떻게 살아요!", "맞아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는 땅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우리는 이 성경을 몇 번이나 읽고도 어떻게 몰랐을까요!”, “역시 하린 자매님이 나누니까 알겠어요. 우리 계속 들어봐요.” 이때, 장린이 약간 난처한 듯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말했다. “만약 형제자매님들이 하시는 말이 맞다면, 앞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있다는 건데 그럼 주님이 오셔서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죠? 성경에 말씀하신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7)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순간 다들 말문이 막혀서 잇달아 하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백화도 확실히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하린은 계속해서 참을성 있게 나눔을 이어갔다. ‘들림 받다'에 대해서 대부분은 주님이 오셨을 때 성도를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고 생각해요. 저도 오랫동안 이렇게 들림 받기를 바라며 기다렸어요. 하지만 나중에 구하고 알아보면서 저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고 '들림 받다'에 대해 다른 깨달음과 견해가 생겼죠.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이 책의 한 단락을 읽어 드릴게요. 모두 듣고 나면 이해가 될 거예요." 하린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그리고 그는 또 나누며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가 우리의 상상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공중으로 끌어올려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진정한 '들림 받다'는 하나님 사역의 발자취를 따르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오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걸 말하는 거예요. 무릇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들림 받지' 못하는 사람이고, 주님에게 버림 받는 사람이에요. 율법 시대에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비록 성경을 숙독하고, 성전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지만 성육신한 예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오셔서 사역하실 때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알아보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이런 사람들은 주님 앞에 들림 받지 못하고 버림 받아 도태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앞으로 들림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모두들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창밖의 작은 새가 지저귀면서 날아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어느새 정오가 되어 모임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백화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나눔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들림 받다'인지 새롭게 알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계시록의 예언이 떠오르네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시록 14:4) 우리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 진정한 들림 받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근거가 있어요!” 형제자매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교회를 떠났다. 백화도 이렇게 좋은 진리는 아주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그는 묵묵히 마음속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올렸다. 그가 고개를 들자 가방을 정리하던 하린이 눈에 들어왔다. 하린은 벌써 가방을 메고 교회를 나섰고, 백화는 얼른 따라나갔다. 그는 그 책을 너무 너무 얻고 싶었다. 그 책 속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반복해서 짓는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크리스천이라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길 원한다. 그런데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이 몹시 괴롭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 아래 내용을 통해 죄의 근본을 알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신앙 일기] 죄를 짓고 자백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2017년 10월 27일 구름 많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의 생명의 대가로 우린 죄 사함을 받았다. 나는 그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주 죄를 지었다.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을 살다 보니, 사는 게 정말 괴로웠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지만 죄를 이겨낼 능력이 없었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죄를 짓는 문제는 줄곧 해결하지 못했다. 2017년 11월 1일 구름 많음 주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며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 말씀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때로는 집에서 사소한 일로도 아내와 말다툼했다. 교회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속으로 괴롭고 기분이 나빠져 형제자매에게 선입견이 생겼고, 그들과 상대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봉사를 할 때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아! 사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항상 주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최대한 자제하고, 형제자매님들과 서로 사랑하고, 내 행동을 최대한 단속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다투거나 싸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사람에 대한 질투와 선입견이 항상 나타났고,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항상 어쩔 수 없이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문제로 나는 무척 괴로웠고, 이대로 살다 가는 주님이 오실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늘 성경을 찾아봤지만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여러 번 나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항상 어떤 힘이 내 안에서 포기하지 말라고 나를 지탱해주었다. 주님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누가복음 11:9)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8일 흐림 오늘 성경을 읽을 때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을 보았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전에 여러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내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사소한 일로 가족들과 언쟁을 벌이고, 형제자매님들과도 마음속으로 다퉜다.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고,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이 있는 나는 확실히 ‘정결케 되지 못했구나!' 오랜 세월 신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겉으로는 전도하며 수고하고 봉사했다. 하지만 나는 죄 인줄 알면서도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또 죄를 자백했다. 이것은 공공연하게 주님께 반항하고 거역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나는 몇몇 동역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리 형제님 역시 나랑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 자매님은 강조하며 말했다. “주님은 자애롭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더라도 주님은 모두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아요.” 왕 자매님도 장 자매님의 관점을 인정하며 말했다. “요한1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항상 죄를 짓지만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면 주님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보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약간 편안해졌다. 내가 주님 앞에서 죄를 잘 자백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헌신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죄를 짓는 일로 더 이상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 2017년 11월 13일 구름 많았다가 개임 오늘 아침,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린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성경을 펼치고 영적 수련을 시작했다. 아래의 계시록 말씀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 성경에서 정결케 되지 못한 자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성'은 천국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보아하니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또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보았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을 본 후 나는 매일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항상 죄를 짓고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하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님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한 나를 떠올렸다. 나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데, 그럼 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지만 요한1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정결케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어째서 이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과 다를까? 나는 이 세 구절의 말씀을 펼쳐 놓고 대조한 결과, 계시록 21장 27절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이 모두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분명하게 드러났다. 요한1서 1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는 이 말씀을 반복적으로 묵상했다. 이 말씀은 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우리의 죄가 주님께 사함 받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정결케 되는 것과 죄 사함을 받는 것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개념이다. 우리는 전에 성경의 말씀을 오해해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정결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죄 속에 살면서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 타락한 것이 아닌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5~16)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 6:23) 이 두 구절을 통해 만약 우리가 낮에 죄를 짓고, 밤에 죄를 자백하는 생활을 한다면, 결국에는 정결케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얼굴을 볼 자격도,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더럽고 타락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훗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된 큰 일이다. 다음 주에 있을 성경 읽기 모임에서 반드시 이 문제를 내어놓고 다 같이 연구해 봐야 한다. 영적 수련이 끝나고, 나는 주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예수님!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정말 부패하고 타락해서 주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2017년 11월 25일 맑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요즘 나는 기분이 좋다. 친구가 나에게 영적 서적을 한 권 선물해 주었고, 그 영적 서적에 있는 많은 진리도 함께 나누며 그 동안의 미혹감과 당혹감을 풀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았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할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는데, 도대체 그는 어떻게 강림하는가?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말씀을 보고, 친구와 나눴던 것들이 떠오르면서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졌다. 원래 예수님이 하신 일은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일 뿐,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위해 길을 닦은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항상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을 무시한다. 누가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입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증오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기뻐하고,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원망한다. 항상 남에게 이득을 보려고 하고, 손해를 보려고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를 짓고,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받는 이런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사도 바울이 한 말처럼 말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 이와 같이 만약 하나님이 직접 나서서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사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고, 누구든지 죄를 짓고, 세상의 사악한 흐름을 따르고, 죄악의 즐거움을 탐하며, 전혀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자백하기만 할 뿐 진리를 행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평생 동안 믿었던 사람, 또는 성경을 숙독하고, 학식과 경륜이 풍부한 종교 지도자라할지라도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 봐야 겠다! 2017년 11월 28일 흐렸다가 개임 저녁 무렵,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나타났다. 나는 서재에 앉아서 계속 그 책을 읽었다. 그 책 속에서 나는 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사람은 하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탄의 타락된 옛 성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성이 완전히 벗겨지고 더 이상 발전되지 않도록 사람을 사탄의 타락 성품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어 사람의 성품이 다 변화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길을 알게 하고 생명의 말씀을 깨닫게 하고 성품 변화의 경로를 알게 해야 하며, 또한 이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성품을 점차 변화시켜 빛 비춤 아래에서 살게 해야 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해야 한다. 또한 사람에게 사탄의 타락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철저히 죄 속에서 나올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온전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알고 보니 내가 죄를 짓는 근원은 모두 사탄의 타락 성품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전서 1장 5절 말씀과 같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예전에 나는 우매하고 눈이 멀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했다. 오직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 고수하며 예수님이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으니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보니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바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같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내 나라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더러운 사람이 거룩한 땅을 더럽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수년간 사역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도 여전히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다면, 내 나라에 들어가려는 것은 천리(天理)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으로 접근하려는 어떤 사람에게도 편의를 봐준 적이 없다. 이것은 천상의 법칙으로,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를 지니고 있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일깨워주었다.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자애로우시다. 동시에 공의로우시고 성결하신 거룩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의 죄성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꿈은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푸른 하늘이 보인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다만 구원을 받았지만 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찾고 받아들여야 겠다. 그래야 정결케 될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계시록의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시록 21:27)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어떻게 해야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려면 꼭 예비해야 할 2가지

지금 세계 각지에서 점점 큰 재난이 일어나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기독교인은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천국에 데려가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44) 주님은 우리가 깨어서 예비해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비해야 할까요? 1. '영적인 귀'를 예비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계시록에서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7)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두 성경 구절은 모두 우리에게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문을 두드릴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은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이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또 말씀을 선포하시고 사역하시며, 모든 비밀을 열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진리를 모두 알려주시고, 모든 진리를 깨닫고 진입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이를 통해 진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분명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고, 생명을 내려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를 예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비유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마태복음 22:2~3) 또 계시록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시록 14:6) 주님은 말세에 하나님이 그의 종을 보내어 우리를 잔치에 초대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보내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시고, 이 영원한 복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구하고 알아보고,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할 때, 주님의 음성이면 얼른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recommendpost id="18116"] 2.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 5:8),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4:11)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고, 겸허하게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라는 큰 사건을 대할 때, 누군가 우리에게 주님이 이미 오셨다고 증거하고, 주님의 음성과 말씀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알아보고, ‘영적인 귀’로 주님의 음성인지 아닌지를 들어야 진정으로 ‘깨어서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도록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예를 들면, 에디오피아 내시는 높은 신분과 지위가 있었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겸허히 빌립에게 구할 줄 알았고, 빌립이 간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사적을 들은 후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 진리를 구하고,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 이러한 예는 더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예비해야 할 일은 겸손하게 진리를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과 말씀을 들을 줄 알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구하는 주 안의 형제자매님들이 하루빨리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기를 축원합니다! [recommendpost id="20875"] [recommendpost id="21561"]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