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성경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

2019년 01월 15일

예언은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예언의 참뜻을 정확히 이해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영적인 위인들조차도 예언을 추측하고 추정할 뿐이지, 이해하고 있는 것과 예언에 담겨 있는 참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예언을 마주하여, 우리가 예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까요?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베드로후서 1:20~21),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후서 3:16),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린도후서 3:6)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언은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지, 절대로 우리의 머리와 상상에 의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에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 바로 자기 뜻을 고집하며 문자 의미대로 예언을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언을 잘못 이해하기 쉽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언을 잘못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남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현혹시키거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은 메시아 강림의 예언을 대할 때 자기 뜻대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세상에 오시기 전에, 유대 바리새인은 이사야 7장 14절, 9장 6절 및 미가 5장 2절의 예언대로 주님이 오실 때의 상황을 머리에 다 상상해 놓았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왕궁에서 자라고,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 그러나 예언이 이루어졌을 때, 이는 사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언이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혼한 마리아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예수라 지었고, 나사렛에서 태어나 목수의 집안에서 자랐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는 예언의 문자 의미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이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모욕하며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어 영원히 주님의 죄 사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새인이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머리로만 상상하고, 예언의 문자 의미에만 매달렸던 것이 그들이 실패를 초래한 점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예언

2천년이 흐른 지금은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역시 바리새인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며 주님의 재림에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는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아주 많아서 우리가 성경의 문자 의미대로 이러한 예언들을 해석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의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밤중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6:15, 마태복음 25:6 참조). 우리는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밤중에 오셔서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독교인들은 밤에 자면서도 외투를 입고서 주님이 오셨을 때 단정한 모습으로 들림 받아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예언에는 주님이 구름 타고 오셔서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다고 나와 있습니다.(계시록 1:7 참조) 우리는 또 문자 의미대로 주님이 대낮에 구름 타고 오셔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또 온종일 고개를 쳐들고 구름을 바라보며 예수님이 어느 날 갑자기 공중의 구름을 타고 우리 가운데로 내려오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상상들이 정말 너무 많습니다. 그럼 대체 주님은 어떤 예언을 이루실까요? 여기에는 모두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들이 상상하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하나님의 뜻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가? 너는 성령이 너를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인가? 성령이 지시한 것인가, 아니면 너의 관념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기 머리로 주님이 오실 장면을 상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우리도 모르며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이루셨을 때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피조물이기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모릅니다. 일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은 할 수 있었을지라도 그들도 예언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대해 우리는 자기 머리로 상상하며 맘대로 해석하고 규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겸손히 구하면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의 재림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당초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베드로, 요한, 나다니엘 등이 메시아를 영접했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진리를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이러한 권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에 따라 예수님을 메시아의 재림이라고 단정짓고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의 문자에 매달리지 않았고, 예언의 문자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이 어떻게 오셔야 한다며 맞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에 집중하고 귀 기울여 들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성공적으로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겸손히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증거하면 예언의 문자 의미와 다르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거절해서는 안 되며 직접 구하고 알아봐야 합니다. 이렇게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됩니다. 또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지애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

주님을 믿어서부터 저는 줄곧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려왔습니다.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각 사람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우 기대하고 있고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를 위해 저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했고 많은 형제자매들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분이 가신 그대로 오신다고 했으니 오실 때는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진심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위에 들림받아 주님과 만날 수 있기에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하고 주님에 대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면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이 틀림없이 먼저 알 것입니다. 그분들을 따라 믿으면 틀림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저는 저도 계속 이렇게 지켜왔었습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해가 지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믿음이 식어가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두 돈벌이에 바빠 예배할 시간도 없고 설교자들의 매 설교가 다 늘 하던 말이라서 들어도 누림이 없으니 저의 예전의 열정도 점점 사그라들었으며 주님의 함께하심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설마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셨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돌아오심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야 오셔서 저희들을 데려가십니까? 지금 저는 당신의 함께하심도 느끼지 못하겠고 예배드리기도 싫어졌습니다. 당신은 저의 발의 등이요 길의 빛이시니 저를 인도해주십시오. 아멘!” 그 후 시간이 흘러 어떤 예배에서 저는 한 친구를 사귀게 되어 주님의 돌아오심에 관해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저에게 “주님이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실까?”라고 묻자 저는 “당연히 흰 구름을 타고 오시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만약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하나님께서 오실 때 영체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는 건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당연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성경≫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리고 또 17장 24~25절도 보여주었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그리고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 구절에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만약 주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면 사람마다 볼 텐데, 그럼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겠어? 그러니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하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오실 때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는지 알아야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제가 “그럼 주님이 어떤 방식으로 오시는 거야?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어?”라고 묻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다음 구절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자! 누가복음 17장 24~25절에 인자의 강림을 언급했는데, 인자라고 하면 육신을 말하는 거야. 육신만이 인자로 불릴 수 있잖아. 그리고 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재림하시는 방식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예시해주는 거야. 왜냐하면 육신만이 고통을 받을 수 있고 영은 고통받을 수 없고 게다가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당하셨잖아. 여기에서 또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또 한번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심을 가리키는 거야.” 그리고 나서 성경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니 정말로 친구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왜 보지 못했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영접해야 할까요? 친구는 또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자의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어떻게 영접해야 할까? 만약 하나님이 오셔서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생김새에서 알아봐야 할까 아니면 다른 방면에서 알아봐야 할까?” 제가 “주님이 오시면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보실 거야. 그분들은 다 주님을 다년간 섬기던 분들이라 주님께서 오시면 틀림없이 먼저 그분들에게 나타나실 거야.”라고 말하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에 이미 답이 있어. 계시록 여러 곳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는데 왜 이 한마디를 계시록에 여러 번이나 중복해서 말했을까?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기 위한 거야. 계시록 3장 20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아.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구절에서 보다시피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을 수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생김새나 명망(名望)에 근거한다면 하나님을 사람으로 여겨 대하면서 하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기 아주 쉽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더 잘 영접해서 예수님을 거절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게 예수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우리 각 사람이 신중히 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당시를 돌이켜보면 구약 성경에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이 오셔서 이름을 예수로 불렸고 게다가 또 성전 밖에서 역사하셨잖아. 그러나 여호와를 다년간 섬기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눈으로 본 것과 상상에만 근거해 메시아라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어. 나중에 예수님이 그렇게 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로부터 은혜를 얻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셨는데, 이런 사실들은 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증명하잖아! 근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못 알아보고 나중에 예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들이 다 하나님을 다년간 섬긴 사람들이 아닌가? 그럼 우리가 주님의 돌아오심을 대하는 일에서 만약 맹목적으로 사람을 숭배하고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모른다면 아주 가련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우리는 꼭 이전 사람들의 실패 교훈을 받아들여야지 전철을 밟아선 안 돼!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것은 다 그분 자신의 계획에 따라 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시든지 아무에게도 알리실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을 자신의 상상과 관념 속에 규정하면서 하나님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지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고 찾고 구하는 태도로 우리에게 임하는 인사물을 대해야 해. 그리고 또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고 무엇이 사람의 소리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치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하신 많은 말씀이 구약 성경에 부합되지 않았지만 성령께로부터 온 하나님의 말씀인 것과 마찬가지야. 바리새인들이 한 말은 경문에 부합되어도 사람의 말이야.” 친구가 한 이런 말은 제가 다년간 하나님을 믿었어도 들어보지 못한 것이어서 저는 속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고 느껴져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호기심 때문에 제가 “넌 어디에서 설교 들어? 나도 같이 가서 들어보면 안 될까?”라고 묻자 친구는 “되고 말고! 듣고 싶다면 정말 좋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처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생기발랄하고 얼굴의 웃음꽃은 제가 몇 년 이래 종교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특별히 배려해주고 또 매우 참을성있게 저에게 교제해주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간의 사랑을 느꼈고 성령 역사를 누리면서 마음속으로 주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린양이 펼친 책≫ 한 권을 주었고 저는 이 책에서 ≪‘구주’는 이미 ‘흰 구름’을 타고 다시 돌아왔다≫는 제목을 보고 나서 신기하게 느껴져 속으로 ‘그래? 가능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알아보기 위해 저는 계속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에는 이렇게 씌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라 한 적이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도 불린 적이 있으며, 사람이 나를 애대(愛戴)하여 구주 예수라고도 부른 적이 있다. 오늘날 나는 더는 사람이 알고 있던 여호와나 예수가 아니라 말세에 다시 돌아온 시대를 끝마치는 하나님이며, 나의 모든 성품을 만재(滿載)하였을 뿐만 아니라 권병과 존귀와 영광이 가득하게 땅끝에서 일어선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은 나와 접촉한 적이 없고 나를 알아본 적도 없고 나의 성품을 안 적도 없으며, 창세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나를 본 적이 없다. 이는 바로 말세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나 또 사람들 가운데 은밀히 거하는 하나님인데, 생생하게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있다. 뜨거운 해 같이 또 불꽃 같이 능력이 충만하고 권병을 가득 지니고 있으므로 나의 말에 심판받지 아니할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불의 불사름 아래에서 정결케 되지 아니할 일인일물은 없다. 최종에 만국은 기필코 나의 말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고 또한 나의 말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말세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구세주의 다시 돌아옴이고 내가 전 인류를 정복한 전능한 하나님임을 보게 하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사람의 속죄제로 된 적이 있으나 말세에 또 만물을 불사르는 해의 불길로 되었고 역시 만물을 드러내는 공의로운 해임을 보게 한다. 이것이 나의 말세의 사역이다. 내가 이 이름을 취하고 또 이러한 성품을 지닌 까닭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공의로운 하나님이고 해이자 불꽃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나━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본래 모습, 즉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만이 아니고 또한 구속주만이 아니라 상천 하지와 창해 속의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보고 나서 저는 말씀에 그토록 권병과 위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한동안의 고찰을 통해 저는 이전에 몰랐던 하나님의 이름, 도성육신의 의의, 인류의 귀숙과 결국 등등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더욱 실증하게 되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계시록 2:17)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빨리 그분의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그 어떤 한 사람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고 그분을 믿는 각 사람의 마음문을 두드리실 것입니다.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하루빨리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 일지 — 뒤늦게 알게 된 교회의 황량함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잃어버리게 되면 겉으로 아무리 활발해도 신도들의 영혼은 목말라 있을 거고 생명도 발전이 없을 겁니다. 이번 글쓴이의 예배 일지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는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 인지 아님 황량한 교회 인지를 생각해 볼까요?

성경에서 말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많은 주 안의 형제자매들은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죽었던 역대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럼 성경의 예언은 정말로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이루어지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푸른 하늘에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다니고 날아다니던 새들은 만남의 장소인 나뭇가지 위에 모여 앉아 지저귀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 가족 교회의 집회장소에서 설교자 이선, 친구 양민(지방에서 사역하는 동역자)과 함께 사역자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중에 그들은 구원과 천국 입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이선이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9~10) 주께선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우린 이제 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으며,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때문에 주님이 오실 때에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태까지 제가 갖고 있었던 생각입니다. 그런데 요즘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거룩하시다는 건 여러분 모두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저지르는 우리가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구원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 동역자가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마가복음 16:16) 여기서 예수께서는 주를 믿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라고 정확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모든 죄를 사함받고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면 우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의심할 게 뭐 있습니까!” 마건이 말을 이어받았다. “아멘! 서 동역자가 한 말이 맞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수금이 일어나 의문을 제기했다. “주 예수께서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왜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라고 하셨겠습니까? 주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의식중에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양민이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말했다. “형제님, 그리고 자매님. 우리는 예수의 구원으로 더는 죄에 속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 죄가 없다거나 때 묻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도 낮에 죄를 범하고 밤에 죄를 뉘우치는 타락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를 믿는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말했었죠.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로마서 7:18~19)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민이 있었죠. 바로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종종 무의식중에 죄를 범해 하나님께 대적하고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는 수없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라고 했죠. 바울의 고민이 바로 주 안에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의 고민입니다! 우리에겐 오만함, 이기심, 간사함, 탐욕, 사악함 등 여러 가지 사탄의 독소로 가득차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 흐름을 좇고, 지위나 부, 명예를 추구하고 죄 속의 즐거움을 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린 아직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천국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우리가 아직도 죄중에 살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말에 따르면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죄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 양민이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2~23)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했던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 정죄 받을 대상이 아닙니까?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몰래 제물을 훔쳐먹고,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겁 많고, 음탕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정죄받고 버림받을 것입니다. 또한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자들은 형벌도 받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브리서 10:26~27)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좋아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수 있는 자만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고, 그리스도에게 그 어떠한 편견도, 거역도, 대적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선이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서 동역자가 반박했다. “예수의 속죄제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다고요! 양 자매님, 지금 예수의 구원을 부인하시는 겁니까? 그럼 자매님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신 겁니까? 한번 말씀해 보세요!” 양민이 부드럽게 얘기했다. “형제자매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제하는 것이 주 예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여러분이 순수하게 주의 구원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에요. 구원과 관련해서 제가 아는 걸 얘기해보도록 할게요. 율법시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반포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따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사람들은 율법만 지키면 정죄당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율법 말기, 이스라엘 백성은 점점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눈이 멀거나 다리를 저는 소와 양, 비둘기를 여호와의 제단에 올리기도 했죠. 사람들의 죄는 점점 커졌고, 속죄제를 통해 속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정죄로 죽을 위기에 처했었죠. 하나님께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행하셨고, 율법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고하고 회개하면 인간의 죄는 사함 받아 율법으로 죽음에 처하지 않게 되었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구원의 정의에 대해 어느 한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예수가 당시에 한 사역은 전 인류를 구속하는 것이기에, 그를 믿는 자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다. 그를 믿기만 하면 속량 되었고, 그를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을 또 천천히 벗어 버려야 한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사람이 완전히 예수에게 얻어졌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죄에 속하지 않고 죄가 사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주 예수의 구원을 얻으면 주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로부터 우리는 죄에 속하지 않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는 본성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계속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곤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주께 완전히 구원받지 않았으며 영원히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며, 서서히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된 사람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층 무거워진 어투로 말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양 자매님 말이 맞아요. 주께선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이지, 우리는 여전히 죄악 속에 살며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린 정말 하나님께 완전히 구원받지도 않았고,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부족한 것 같군요!” 양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성경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1:16),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요한복음 8장 34~3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기준입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아직 정결케 되진 않았습니다. 주님을 뵙거나 천국에 들어가기엔 많이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이때 안수금이 일어나 말했다. “양 자매님, 방금 교제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죄를 사함 받았을 뿐 정결케 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정결함을 받는 것이 정말 중요하네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결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자매님 의견을 얘기해 주시겠어요?” 양민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문제에 대해 성경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 9:28)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죠.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7~48) 성경에서 보았듯이 죄악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 사역을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겨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서적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만 완성하였고 사람의 속죄제만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된 성품을 다 벗겨 버리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완전히 구원해 내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겨 버려야 한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예수는 구원의 사역만 행하셨을 뿐 인간의 죄를 완전히 해결해주시진 않았습니다. 오직 말세의 심판 형벌 사역만이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주고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주며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탄의 타락한 성품을 벗겨주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향해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주실 겁니다. 그런 사람만이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계시록에 나와 있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록 14:5),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시록 22:14)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옷을 깨끗이 씻고, 거룩하며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바로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안수금이 기뻐하며 일어나 말했다. “자매님과의 교제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구원을 얻긴 했지만,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은 천국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씻겨지지 않아 예수께서 재림을 통해 행하시는 말세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군요!”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이선이 기뻐하여 일어나 말했다. “형제님, 자매님. 오늘 토론을 통해 구원 받는다는 것이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찾고 정결함을 받아 천국에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내일 집회에서 계속 교통하도록 해요! 양 자매님도 우리와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양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잘 됐어요!” 이때, 집회장소가 기쁨으로 가득 찼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

크리스천은 반복해서 짓는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크리스천이라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길 원한다. 그런데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죄를 자백하는 삶이 몹시 괴롭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다. 아래 내용을 통해 죄의 근본을 알고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예수님이 재림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실까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도 예수님이 벌써 2번째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간증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소문은 종교계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4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영체가 사람들 가운데서 40일 나타난 후 하늘로 돌아가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체로 돌아가셨기에 재림하실 때에도 당연히 영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는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재림하실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나타나 역사하실까요? 저도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이미 다 이루어졌고 말세가 도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와서 사역하는 지를 모른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그 답을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문하였습니다. 마침 주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Peter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저는 Peter형제가 식견도 넓고 빛비춤이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곤혹스러운 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다 들은 Peter 형제는 “지금 많은 형제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영체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있지만,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는 예언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17:24-25) 이 말씀에서도 모두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면 곧 사람에게 나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체라면 ‘인자’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정상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이 구절에서 그 점을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체로 온다면 영체는 특별히 비범하고 위대하여 사람이 영체에 대해 개념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데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되는데, 그의 외모가 평범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생기게 되니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은 성육신으로 온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Peter 형제가 성경과 결부하여 교통해 주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저는 성경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이때 Peter 형제가 “이 형제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는데 저는 “네,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 봅시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서 왜 성육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한 데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12:28-29) 이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감에 떨려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위엄이고 진노의 성품입니다. 율법시대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성정을 유로하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께 격살당하게 되므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반대로, 성육하신 하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성의 각도에서 진리를 발표하고 신성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여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패괴 성품이 유로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제때에 악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권유와 믿음의 힘을 더해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한 것은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Peter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주님께서 영체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줄곧 자신의 상상과 관념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그가 발표하신 말씀은 다 인류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인성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들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래에 재림하여 더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체의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영은 가장 위대하고 성결하신데 우리가 매일 범죄하고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살고 또한 죄의 속박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반드시 하나님께 격살당할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Peter 형제의 말에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Peter 형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진리를 발표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곧 말세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상선벌악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체로 역사하게 되면 사람마다 하나님께 공손하며 아무도 대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탄의 무리도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의 증거가 없게 되고 선과 악도 가를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부각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적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고 말씀했는데 이렇게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다 자신이 가장 충심이 있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의 재림이신 성육신이 평범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 패역과 대적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실 때 바리새인과 일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평범한 모습에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논단하고 대적하고 정죄하며, 또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전혀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양과 염소를 드러내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충분하게 나타냈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을 듣고 저의 마음은 많이 설렜습니다. 예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면 상선벌악하시고 양과 염소를 분류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주님은 인자인 사람의 모습으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여 매 사람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가늠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잠시후에 Peter 형제가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Peter 형제는 이 말씀으로 저와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성육신한 것은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정결게 하고 변화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다 얻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을 하시어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사람들을 아름다운 거처에 처소로 데려 갑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완성하였고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지 않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의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었도 또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이미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으며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을 어떻게 바르게 대해야 하는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지, 이것은 성도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예언에 관한 강해를 많이 들을수록 더 모호해 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을 맞이 하기 위해 먼저 어떻게 성경의 예언을 바르게 대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천국의 비밀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래 토론에서 천국의 비밀을 알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