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미혹될까 찾고 구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9년 04월 23일

안녕하세요! 최근 몇 년간 목사님과 장로님이 줄곧 제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말세의 마지막 시기입니다. 재난이 점점 커지고 있고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이 대부분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곧 돌아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여러 이단과 거짓 진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기도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 주님께서 돌아오셨다고 전하거든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지도, 보지도, 받아들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께 내쳐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형제자매님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미혹될까 두려워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말씀을 모두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접하지 않는다면 이건 주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는 있을까요?” 현혹될까 두려워 외부와 단절하는 방식이 옳은 태도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교제해 주세요.

광명 형제

광명 형제님!

안녕하세요! 형제님의 메일을 받고 형제님의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는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이는 주님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이 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 함께 의견을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대담하고, 두려움은 사탄에서 온 것이다

말세 주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와 함께 여러 이단과 거짓 말씀이 나온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두렵다고 해서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것과 관련된 모든 말씀을 듣지 않고 보지 않고 접하지 않는다면 물론 거짓 말씀에 미혹될 일은 없겠지만 참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실천은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 여기에는 사탄의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좇아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리에게 황당한 이론이나 생각을 주입해서 우리를 미혹하고 구속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소극적인 태도로 누군가 예수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해도 이를 구하고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일에 관해 우리가 이단과 거짓 말씀을 방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진리를 알아보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이건 소탐대실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아무리 이단과 거짓 말씀을 방비하더라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련한 처녀가 되어 결국 하나님께 내쳐지고 도태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을 겁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풍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예레미야 51:46) 그리고 디모데후서 1장 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강인한 마음이고 두려움의 근원은 사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으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런데 미혹될까 두려워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생각이 있고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단이나 거짓 말씀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어리석고 생각이 없는 사람들만 이단과 거짓 말씀에 미혹됩니다.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복음을 알아보고 구할 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진리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를 이끌어 주시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고 거짓 말씀에 미혹되지 않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목사나 장로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듣지 말고 보지 말고 접하지도 말라고 한 실천 방식은 결코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참 진리를 알아보려는 우리의 앞길을 막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기회를 빼앗아 갈 뿐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똑똑히 봐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알아보고 구해야 참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따라서 믿음은 반드시 들음에서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들음을 통해야만 그 말씀이 참 진리인지, 하나님의 현현 사역이 맞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현현 사역 하셨을 때를 돌이켜보면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예수님의 사역이 참 말씀이라는 것을 부인했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을 미혹해 구하거나 알아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분별력이 없었던 유대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바리새인의 말을 따랐고 예수님의 설교를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을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마태, 마가, 요한 등 제자들은 바리새인이 퍼뜨리는 소문을 믿지 않았으며 미혹될까 두려운 마음에 주님의 복음을 거부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모하고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곳이면 예수님을 따라가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모하고 구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서 권능이 있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분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메시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 말씀을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계시록 여러 곳에 예언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시록 2, 3장)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예수님은 말세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음성을 발하시고 사람을 통해 ‘음성’을 내심으로써 우리에게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일에 있어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전하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이니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고 알아보며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진리가 있는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 살펴야만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때 자발적으로 구해야 하며 소극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았습니다. 바로 반드시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는 원칙을 파악해야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흡족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질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믿는 이유도 그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믿는 것은 역시 영을 믿는 것이다. 영과 육신이 서로 구별되긴 하지만, 그 육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 진리를 구별하려면 먼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다음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란 정상적인 인성이 지닌 생명 성품이다. 즉,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으로, 모든 정상적인 인성(이성,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말씀을 통해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적인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그 진리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갈수록 정상이 된다. 또한 사람의 인성과 이성은 갈수록 온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적 생활이 갈수록 질서를 갖추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이 된다. 이것들이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역과 진리를 체험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는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갈수록 가까워지는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참 진리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말씀이 초자연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인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춘다면 그 말씀이 참 진리인지 확신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이 갈수록 정상이 되고, 또한 인성이 갈수록 정상이 되며,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의 성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해 갈수록 더 잘 알게 되며, 갈수록 더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은 갈수록 더 성장하고, 사람의 타락 성품은 갈수록 더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본래의 뜻이다. 그 말씀이 사람의 본질적인 것들을 드러낼 수 없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올 수 없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인성이 나빠지게 하고 이성이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참 진리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거나 옛 말씀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참 진리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고 그것이 바로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진리에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가 있으니 당연히 성령의 수호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러 오셨을 때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시며 회개의 말씀을 가져오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와 진심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면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주님께서 사람에게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그의 죄는 사함 받을 수 있고 마음은 평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나 문제에 직면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으로 옮기면 마음의 해방과 자유를 느낄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책망으로 가득 차 주님께 죄스러운 기분이 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사역을 계속 체험하면서 주님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은 점점 커집니다.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로마 정부와 유대교의 정죄와 핍박을 받았음에도 예수님의 복음은 유대인의 지역에서 활기차게 퍼져 나갔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한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천년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많은 국가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이와 반대로 거짓 진리는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거나 지켜 주지 않습니다. 이를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나 사랑이 없습니다. 게다가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열정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정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람에게서 난 것은 반드시 망하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반드시 흥한다’ 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역사의 유무를 통해 어떤 것이 참 진리인지 분별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참 말씀에는 진리와 생명의 선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진리를 선포하실 수 있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가 현실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에게 실행의 길을 가리켜 주며 우리의 모든 문제와 혼란, 그리고 어려운 점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말기, 사람들이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게 되고 속죄제를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속죄 제물이 없어 율법으로 정죄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펼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진리를 선포하시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고 포용하고 인내하며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심령이 가난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고 이들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외식하며 남을 속이고 진리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정죄하는 대상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으며 진심과 정직으로 주님을 경배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등과 같은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 등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실천하면 우리의 어려움과 문제 및 혼란이 모두 해결됩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달을수록 인성은 점점 정상적으로 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가까워집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뤄 낸 성과입니다. 참 말씀에는 진리와 생명의 선포가 있으며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수요를 공급해 줄 수 있고 새로운 실천의 길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새로운 실천의 길도 가리켜 주지 못한다면 단지 과거 하나님께서 하셨던 사역과 말씀을 반복하거나 그럴듯한 도리를 깨우치게 하며, 예전의 규칙을 고수하는 것은 참 진리가 아니고 옛 진리 혹은 거짓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사탄 악령이 하나님의 과거 사역을 모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참 진리를 판단하는 세 번째 원칙은 바로 그 말씀이 갈수록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게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사역하실 때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에 관한 진실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율법시대처럼 말입니다. 당시 하나님께서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시고 사람들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이건 일반 백성이건 율법과 계명을 따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면 하나님의 축복과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만약 제사장이 율법과 계명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일반 백성 중 누구든 율법과 계명을 어기면 다른 사람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바로 영이시며 어디에나 계시고 하나님께서 전 우주를 지켜보시고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은 주로 위엄, 진노, 저주, 불사름으로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은혜시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인류를 구속하는 한 단계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주셨으며 사람들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포용과 인내,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몸소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 위엄, 저주, 불사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긍휼도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으로 사역을 하실 수 있으며 육신으로 오시어 스스로 낮추시고 사람이 되실 수도 있고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실 수도 있으며, 사람에게 사랑과 포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낮추심과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겪을수록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람의 보잘것없는 모습을 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공의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성품에 관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진리를 살아내기를 갈망하고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인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참 진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인식을 가져다주고 하나님의 성품을 한층 더 이해하게 해주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고 거짓 진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진실하고 실제적인 인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유발할 수도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가 바로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해 낼 수 있는 원칙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 우리가 진심으로 구하고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먼저 알아보고 앞서 말한 세 가지 원칙에 따라 가늠하고 분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우리에게 빛 비춤을 주시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 우리가 거짓 진리에 미혹되는 것이 두려워 무조건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접하지 않는 태도로 문을 굳게 잠그면 이런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태도로는 영원히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광명 형제님, 제 답변이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요. 혹시 다른 질문이 있다면 언제든 함께 이야기 나눠요!

사랑의 쉼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해야만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바이고 이런 일을 모두 꿰뚫어보아야 한다. 진리를 너무 적게 깨달으면 쉽게 착오가 생기고 치우친 길에 들어선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신분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신분이고 세례 요한은 그저 선지자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신분과 세례 요한의 신분은 도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다음의 3가지 방면에서 구별할 수 있다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참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말씀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 진리와 거짓 진리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율법시대는 바로 여호와를 대표한 하나님 이름의 사역이고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전부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며,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고 그가 한 사역에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다 신약에 기록되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 』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

도대체 무엇이 진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가?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질문: 저는 성경의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떤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일까요? 답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전부의 역사, 하나님 경영의 취지, 그리고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마지막에 도달하려는 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4장4절에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최신 사역에 따르고 순복해야 하고, 하나님이 어느 정도까지 사역하셨으면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따라야 하고, 또한 하나님 오늘날의 뜻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싹 따르지 못한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율법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 땅에 있는 사람을 인솔하는 사역을 하였셨는데, 사람들에게 계명, 율례, 법도를 지키도록 요구하셨고, 사람이 만약 여호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엄격히 실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 그리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이 구속 사역을 하셔서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며, 겸손하고 인내하고 포용하여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등등을 요구하셨습니다. 사람은 오직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고,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더 이상 율법으로 정죄 받거나 사형 당하지 않게 되고, 또한 하나님의 풍부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만 지키고 주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칭찬 받지 못할뿐더러 정죄까지 당했습니다. 그때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와 마태 등과 같은 그런 사도들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주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들이고,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고수하던 서기관, 제사장, 바래새인들은 비록 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면서 전도하고 일생동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었지만 주 예수님께서 역사하러 오셨을 때, 그들은 율법을 고수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신도들 가운데서 자신의 지위를 공고이 하기 위해 도처에서 예수님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트려 신도들을 미혹했으며 최종에는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고통을 받고 화비했었다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 징벌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다시 육신으로 돌아 오신 예수님,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은혜 시대를 끝마치고 하나님 나라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진리, 길, 생명을 가져왔고,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한다는 사역을 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16장12~13절의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는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주로 진리로 심판, 형벌하여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데,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어 하나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현실의 요구에 따라 실행해야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다만 예수님의 그 단계 구속 사역에만 순복하고 하나님 말세의 역사에 대하여 순복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고 정결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인 후, 무릇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역사를 거쳐 패괴 성정도 어느 정도 정결케 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의 역사만 지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는 정형에서 살고 있으며 죄의 묶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여전히 죄의 자손들이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4~35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로지 정결함을 얻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경력하여 정결함을 얻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전체 경영 계획, 다시 말해 6천년 경영 계획은 모두 3개 절차, 즉 3개 시대로 나뉘는데, 그것은 최초의 율법시대, 은혜시대(즉, 구속시대)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나라시대이다. 이 3개 시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역사한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각 단계 역사는 모두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사탄과 싸울 때에 사탄이 행한 궤계에 따라 한 것이다. 이는 사탄을 패배시킴으로 나의 지혜와 전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고, 또한 사탄의 궤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에 따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있는 전 인류를 구원해 내는 것이다.』『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다. 글귀 도리를 고집스레 지키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도태될 사람이다. 하나님은 시기마다 새로운 사역을 전개하므로 각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한 시대에만 적합한 이런 진리만 지킨다면, 사람은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 없고, 영원히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든지 사람이 아무런 의혹도 없이 따라가고 또한 바짝 따른다면, 사람이 또 어찌 성령께 도태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사람이 오로지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런 우려 없이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한다면, 사람이 또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멈추지 않았고, 그의 발걸음도 지금까지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이 늘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하나님이 인류를 6천년동안 경영하면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두 3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 은혜시대, 하나님 나라시대 사역을 하셨습니다. 3단계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고 매 단계 사역은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드높고 깊어진 것이고 또한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한 사역입니다. 사람이 만약 율법시대 여호와의 사역만 지키면서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죄는 사함 받을 수 없고 예수님께 인정 받지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날에 사람이 만약 은혜시대 예수님의 역사만 고집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의 범죄 본성이 깨끗함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죄인은 이제 갓 구속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너 같은 옛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틀림없다. 또한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는 속이 여전히 더럽기만 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예수와 함께 임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 과정이 하나 빠졌는데,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되었을 뿐 거룩하게 될 수는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과 더불어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에게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가장 중요한 한 단계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기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번 단계의 심판, 형벌 사역으로 사람에게 자기 안에 있는 더럽고 타락된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게 하고, 또한 완전히 변화시켜 정결함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한다. 그래야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자격이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행하는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이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데, 말씀의 심판과 형벌로, 연단으로 타락함을 벗어 버리고 정결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떠날 수 없고 동시에 사람의 협력도 아주 관건적인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 말해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역사에 순복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하나님의 오늘날의 도를 준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순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그 단계 사역은 성도들에게 갈 곳을 예비하는 사역이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야말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적인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을 믿은 적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오로지 말세 이 단계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실행하기만 한다면 마찬가지로 구원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역사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 중에서 한 단계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정결케 되어 온전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