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의 이름은 말세 재림 때도 여전히 예수님으로 불리시는가

2019년 05월 01일

주 안의 형제자매들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이고, 신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세에 다시 오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여전히 예수로 불리실까요?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드시 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이처럼 성경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여전히 예수님으로 부른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 정확한 것일까요?

하나님의 이름,성경 예언,

여러분은 성경 이사야 43장 11절의 말씀을 기억할 것입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출애굽기 3장 15절에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이러한 성경 구절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은 대대로 기억하고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여호와 하나님 외에 구원자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까? 여호와라는 이름이 영원하고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습니까?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상충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이름’, ‘대대로 기억할’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말씀한 것으로, 본 시대의 사역이 끝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한 시대에 행하신 한 단계의 사역만 대표하기 때문에, 나타내신 것은 그분의 일부분의 성품입니다. 마치 여호와라는 이름이 율법시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처음 난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배우도록 하셨고, 위엄, 진노, 저주, 그리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본 시대 하나님의 이름,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영원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 수 있고 율법의 인도에 따라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었을 때, 인류가 사탄에 의해 점점 타락하여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면서 율법에 의해 정죄되고 저주받을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새로운 시대의 사역,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펼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도 바뀌게 되었는데 여호와에서 예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고, 나타내신 성품은 긍휼과 자비입니다. 사람들은 오로지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고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만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라는 성경 구절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고 불리건 아니면 예수님이라고 불리건 모두 한 분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하셨고, 은혜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여전히 예수님으로 불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떤 책에서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왜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가 되었느냐? 메시야가 올 거라고 했는데 어째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왔느냐? 하나님의 이름이 어찌하여 바뀌게 되었느냐? 이런 것은 이미 했던 사역이 아니냐? 그런데도 하나님이 오늘날 새로운 사역을 하면 안 된단 말이냐? 어제의 사역도 바뀔 수 있고, 여호와의 사역도 예수가 이어 갈 수 있었는데, 예수의 사역은 또 다른 사역으로 이어질 수 없겠느냐? 여호와의 이름이 예수로 바뀔 수 있으면, 예수의 이름도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 이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다. 다만 사람의 머리가 너무 단순한 탓에 일어난 일일 뿐이다.』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는 예수님으로 바뀔 수 있고, 예수님은 다른 이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 역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자신의 머릿속의 상상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규정해서는 안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오로지 여호와 혹은 예수님으로만 불리고, 다른 이름으로는 불릴 수 없다고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저는 문득 계시록 3장 12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여기에서 ‘나의 새 이름’이라고 언급하셨는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이전에 사용하신 적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이미 사용하셨고, 예수님이라는 이름도 이미 주님을 믿는 우리에 의해 2천 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말세에 주님이 다시 오시어 여전히 예수님으로 불린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로써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면, 더는 예수님이라고 불리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울까요? 우리 함께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보겠습니다! 계시록 1장 8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시록 11장 17절에도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계시록 15장 3절에도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라고 말씀하셨고, 계시록 4장 8절, 16장 7절, 19장 6절 등 여러 성경 구절에서 말세에 하나님의 새 이름은 ‘전능자’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예언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시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말세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면 복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에 의해 정결케 되고 구원을 받으며 결국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여러분 모두가 답을 얻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는 일에서 우리의 상상에 근거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여전히 예수님으로 불린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을 영접하여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갈 기회를 아주 쉽게 잃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관념과 상상 그리고 그릇된 관점을 내려놓고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 5: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님이 오실 때, 왜 땅위의 모든 족속이 다 애곡할까요

요한계시록1장 7절에서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도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셔 우리를 맞아가기를 기다립니다. 그때 우린 기뻐서 춤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왜 모든 족속이 그 분때문에 애곡한다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속의 비밀을 알려면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서부터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주님이 다시 오시는 데에 대한 예언이 아주 많은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시록16:15)“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태복음 25:6),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 (태24:44)“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태24:36),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1 :7),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태24:30), 이런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의 예언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방식에는 공개적인 강림도 있고, 또 ‘도적같이’ 혹은 ‘밤중’, ‘인자’ 이런 은밀히 강림한 말씀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은밀한 강림과 공개적인 강림, 이 두가지 방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주님의 나타나시는 방식이 같지 않음은 주님이 다시 오실때 절차를 나누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먼저 은밀하게 오시고 나중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선은 ‘도적같이’ 오십니다. 즉 성육신하여 ‘인자’의 신분으로 은밀하게 강림하여 진리를 발표하여 말세의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마치 당초에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실때 인자의 형상으로 인간세상에 와서 역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육신은 평범하고 정상이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지 못해 그의 사역은 은밀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기간 총명한 처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신랑이 온 것을 알고 다 잇따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요한복음10장 27절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한 양을 그분의 보좌 앞으로 부르시려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밀을, 산양과 양을, 악한 종과 선한 종을 가르고 동시에 한 무리의 이긴자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러면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누어지고 하나님이 은밀하게 강림하신 사역도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만인에게 나타나시고, 대재난을 잇따라 내리시고, 상선벌악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 기간에 성경 구절을 고수하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관념으로 가득차 구하지도 알아보지도 않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맹목적으로 종교 지도자와 중국 공산당 정부를 따라 하나님을 정죄하고 모독하면서 유언비어와 그릇된 논조를 퍼트리는 사람들, 또 자신의 명예와 지위와 밥통을 위해 집권당과 결탁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종교계의 지도자들은 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드러난 악한 종이고, 적그리스도로 구원의 기회를 철저히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고 정죄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임을 보게 될 것이니 그들이 어찌 가슴을 치며 애곡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때 “모든 족속이 다 애곡 ”하는 장면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처럼 홍수가 오지 않은 날에는 은밀한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홍수가 올 것이다’는 것을 전할 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공격과정죄, 비난과 훼방을 받았었지만 홍수가 올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을 징벌하는 날이 올 때(즉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사람들이 아연실색하고 모두 노아가 전한 하나님의 뜻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최종에는 홍수에 훼멸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은밀하게 역사하시는 단계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구원이십니다.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곧 징벌입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은 벌써 중화 대륙에 널리 퍼지고 집집마다 알고 있어 각 종교 각분야를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바라는 수 백만의 사람들은 이미 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중국 공산당 정부와 종교계의 핍박과 박해중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한 무리의 이긴 자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각국 각방에 널리 전파됨에 따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잇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세에 은밀하게 강림하여 사역하시는 계단은 끝나게 됩니다. 만약 사람이 시종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지도, 찾고 구히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오시기를 기다린다면, 그럼 주님이 공개적으로 강림할 때에는 재난 가운데서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똑 같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른다는 각 성도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되는 날은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일 것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 믿으면서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 말씀을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예수의 재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표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와 긍휼이 있을뿐만 아니라 더욱이 위엄과 진노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순복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긍휼이고 구원이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을 저버리고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죄이고 징벌이고 저주이며 최종에는 훼멸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애쓰시는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만든 사람이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총명한 처녀가 되어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자취를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된 길을 찾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이 말씀은 또한 요한계시록 중의 14장 4절의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란 예언을 응한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은밀히 강림하셔 진리를 발표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구속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다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진심으로 찾고 구하고 그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무릇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사람은 어린 양이 베푼 연회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경력하여 정결케 되고 변화되어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나라에 이끌어 들어가게 되고, 새 하늘 새 땅의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 천국에 데려가기만을 기다리면서 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음성을 발하셔 하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서 도태될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 재난속에 떨어져 이를 갈며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에 관한 성경 구절 ― 지혜를 얻는 길에 대하여

지혜에 관한 구절을 통해 지혜의 시작을 알게 되며, 지혜를 얻는 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에서 얻어야 하는 깨달음

다윗의 이야기에서 그는 하나님의 축복도 누렸고 징벌도 받았지만 여기에는 모두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져 있었고, 또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원칙이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축복에 관한 성경 구절 ―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축복에 관한 구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알게 될 것이며, 축복받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매일 성경 _ 잠언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찌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잠언 3:7)

기독교 신자의 일기 — 천국은 하늘에 있을까요

천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은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주님이 오시면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이뤄질 수 있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요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 2:18~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 구절에서 저는 아담이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아담이 각종 육축과 공중의 새, 들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으니 그는 확실히 각종 생물을 다 알고 있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담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름을 생각해 낼 수 있었겠어?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미리 알려 주셨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원인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각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게 하신 그 뒤에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람에게 사실을 하나 알려 주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아담을 지은 후, 아담은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느냐? 글을 아느냐?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한 후, 아담이 그 각종 생물들을 보고 다 알고 있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으라고 알려 주었느냐? 당연히 하나님은 아담에게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럼 아담은 그런 생물들에게 이름을 어떻게 지어 줘야 하는지, 어떤 이름을 지어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그것은 아담이 지음받았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더해 주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 사실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지혜를 더해 주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에게 생기를 주었고, 사람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소유소시(所有所是)도 조금 주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런 것을 준 후,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낼 수 있었고,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나 해낸 일들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면 하나님은 열납하였지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 것이 옳은 일이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고 한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각종 생물들의 이름에 대해 하나님은 그 어떤 정정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아담이 뭐라고 이름 지으면 하나님은 “그래”라고 말씀하면서 그 이름을 확정하였다. 하나님께 의견이 있었느냐? 없었다. 그것은 확실하다! 너희는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지혜를 주었고, 사람은 하나님이 준 지혜로 일을 했다. 만약 사람이 한 것이 하나님이 보기에 긍정적인 일이라면, 그 일은 하나님 편에서 확정되는 것이고 인정되는 것이고 열납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그 어떤 평가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인류나 그 어떤악령이나 사탄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너희는 하나님 성품의 유로를 보았느냐? 만약 사람이라면, 패괴된 사람이나 사탄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대신해 일을 하도록 허락하겠느냐?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혹은 자신과 다른 세력과 그 자리를 쟁탈하지 않겠느냐? 꼭 쟁탈할 것이다! 그때 패괴된 사람이나 사탄이 아담과 함께 있었다면, 아담이 한 것을 틀림없이 부인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독립적인 사고력이 있고 독특한 견해가 있다는 것을 실증하기 위해 아담이 한 모든 것을 부정했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 부르겠다면 난 기어코 저렇게 부를 거야! 네가 장모 씨라고 한다면 난 기어코 이모 씨라고 불러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줄 거야!” 이런 것은 어떤 본성이냐? 교만이 아니냐?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런 성품이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한 그 일에 대해 그 어떤 비정상적이거나 반대하는 기미가 있었느냐?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하나님 성품의 유로에는 분쟁이나 교만과 독선적인 것이 전혀 없다. 그런 점은 여기에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났다. 비록 아주 작은 일이지만 네가 하나님의 실질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네가 속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하였는지, 하나님의 태도가 어떠하였는지를 묵상해 보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 성품의 발표와 유로를 볼 수 없다. 그렇지? 그럼 내가 방금 설명해 준 이런 것을 너희는 인정하느냐? 하나님이 비록 아담이 한 그런 일에 대해 “잘했다! 제대로 했다! 난 찬성한다!”라고 떠들썩하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인정한 것이다.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이것은 창세 이래 인류가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나님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인데, 그 일은 하나님을 대신해 한 것이자 하나님을 대표해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안중에 그 일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준 지혜에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고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때 아담이 한 것은 인류에게서 첫 번째로 선명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인데, 그때 선명하게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에게 알려 주고 싶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부 소유소시와 지혜를 더해 준 까닭은 하나님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되게 하고, 그런 살아 있는 존재가 하나님을 대표해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바랐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저는 아담이 생물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처음부터 그런 생물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미리 그에게 어떤 이름으로 지으라고 알려 주셨던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 아담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더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신 지혜로 그렇게 많은 생물에게 각기 다른 이름을 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어 준 그 이름들이 재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초에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지혜와 소유소시도 사람에게 더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독립적으로 어떤 일들을 생각하거나 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행사가 아담을 통해 선명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실질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한 일이 긍정적이기만 하면 그가 한 일을 열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의견도 내놓지 않으시고 전혀 간섭하지도 않으셨으며, 아담이 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서 긍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이런 성품은 타락된 사람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견해가 독특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하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부인하는 것에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 내면에 있는 사탄의 오만한 성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는 교만이나 분쟁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그 작은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낮추심과 사랑스러움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를 사람에게 베풀어 주셨고 그분의 소유소시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담처럼 하나님을 대신해서 일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과 요구에 맞게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께 칭찬받고 축복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살아내고 그분을 선명하게 나타내고 그분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지음받은 의의입니다. 저는 드디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각종 생물의 이름을 짓게 하신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아주 작은 일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소시가 숨겨져 있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저의 의문점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린이

'들림 받는 길’이 여기에 있다!

무더운 오후, 매미는 나무에 붙어 맴맴맴맴 끊임없이 울고, 길가의 화초와 나무는 혹서에 시달려서 모두 힘 없이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 한 주택가에서 한나가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7) 지금 교회의 형제자매님들의 모습과 세상의 정세로 봤을 때 말세는 이미 왔어요! 주님이 오신다는 예언도 기본적으로 다 이루어졌어요. 주님은 반드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실 것이고, 그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과 만날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약속에 믿음을 가져야 해요!” 한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동역자들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 딴 생각을 하며 성경을 뒤적이고, 어떤 이는 살짝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탄식하고, 어떤 이는 귓속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속삭이기도 했다. 이 자매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형제자매들은 주님의 재림이 자꾸 늦어지다 보니 다들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어요! 각처에서 재난이 점점 더 심해지고, 네 번의 핏빛달도 이미 나타났어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우리가 아직 들림 받지 못했는데, 누가 연약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장 형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아이 참! 누가 아니래요! 대재난이 곧 닥치는 게 눈에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도 들림 받지 못했으니 대체 뭐가 문제죠? 참, 송 자매님, 자매님은 계속 외지에 있느라 우리 동역자 모임에 어렵게 참석하셨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송가인은 모두를 보더니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어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태복음 24:35)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은 기본적으로 벌써 이루어졌어요.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다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전하고 있어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들림 받지 못했을까요? 이 의문을 가진 전 애가 타서 사방으로 구하러 다녔고 드디어 그 원인을 알게 됐어요. 원래, '들림 받다'는 우리가 상상한 그런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었어요….” 송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래 무거웠던 방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져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나는 송가인에게 시선을 보내며 정중하게 말했다. “송가인 자매님, 우리가 주님을 믿으면 매사에 성경을 따라야 해요. 공중에 끌어올려 주님과 만난다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어요. 자매님이 '들림 받다'가 공중에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성경의 근거가 있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송가인을 향했다…. 송가인은 미소를 띤 채 모두를 보며 말했다. "'들림 받다'가 땅에서 하늘로 끌어올려진다라는 주장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요, 우리 먼저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찾아봐요. 계시록 21장 2~3절에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말씀하셨어요. 계시록 11장 15절에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라고 하셨구요. 이 예언들 중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셨는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말씀하셨으니 분명 땅에 있어요. 우리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 알고 있어요. 이건 하나님이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말씀이에요. 예언에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라고 하셨어요. 이런 예언은 우리가 결국에는 땅에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늘이 아니라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만약 우리가 '들림 받다'를 하늘로 끌어올려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소망은 물거품이 되지 않겠어요? 계시록의 이 예언들이 또 어떻게 이루어지겠어요?" 장 형제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런 구절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는 뜻이네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분명할 줄이야! 전에 우리는 왜 그 뜻을 읽어내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데, 우리는 하늘로 들림 받아 가려고만 했어요. 이건 주님의 말씀에 역행하는 거예요!" 송가인이 이어서 말했다. "맞아요! 하나님이 인류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의 사역은 줄곧 땅에서 이루어졌어요.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우리가 땅에서 사는 것이지 우리를 하늘로 보내 살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어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았어요. 그때부터 인류의 조상은 땅에서 그들의 범죄 후의 생활을 시작했어요. 범죄 후의 사람이 땅에서 살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도 당연히 땅에서 이루어지죠. 율법 시대에 하나님은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서 인류가 땅에서 살도록 이끄셨어요. 은혜 시대,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우리가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셨죠. 이런 사역은 다 땅에서 하신 거예요. 또 계시록에 앞으로 하나님이 남아있는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귀착지는 여전히 땅에 있다고 예언했어요." 임 자매가 손에 든 물컵을 얼른 내려놓으며 감격해서 말했다.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예전에 저는 우리의 육체적인 몸만 생각했어요. 이렇게 무거운 몸을 어떻게 공중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말씀을 나누고 보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어요!” 형제자매님들의 한바탕 말에 한나는 미간이 찌푸려지고, 송가인의 나눔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한나: “송가인 자매님, 자매님이 하신 말은 일리가 있지만 성경에는 분명 에녹과 엘리아가 들림 받아 승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하죠?” 송가인은 한나를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 39~40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성경 구절에서 빌립이 하나님의 영에게 이끌려 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우리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빌립은 분명 주님에게 들림 받아 하늘로 갔어요. 하지만 사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에서 주님의 뜻을 행했다고 했어요. 거기서 우리는 '들림 받다'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다 우리의 고정 관념이고, 사실이 아니에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3:13) 예수님만이 천국의 대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해요. 만약 우리의 생각으로 에녹과 엘리아가 하늘로 들림 받았다고 이해한다면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죠? 우리의 상상이 정확할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정확할까요?" 한나는 그동안 추구했던 목표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반문했다.설마 그동안 간절히 바랐던 '들림 받다'가 정말 틀린 것일까?’ 마음속에서 한바탕 격렬한 전쟁이 일어난 후, 그는 송가인에게 질문했다. "송가인 자매님, 만약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추구했던 '들림 받음'이 틀렸다면 무엇이 진정한 '들림 받음'인지 한번 얘기해 보세요." 송가인은 얼른 가방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저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속 시원하게 나눌 수 있는 한 단락을 적어 왔으니까 여러분에게 읽어 드릴게요. 『‘들림 받는다’는 것은 내가 예정한 후에 또 택하는 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고, 예정하고 또 택한 모든 사람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누가 장자 명분을 얻고 뭇 아들 명분을 얻으면 혹은 자민이라면 모두 끌려 올라가는 대상인데, 이 하나가 사람의 관념에 가장 부합되지 않는다. 나의 이후에 집에서 분깃이 있는 자는 모두 내 앞에 들림 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주 확실한 일이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이것은 사탄에 대한 반격이다. 내가 예정한 자라면 내 앞에 들림 받는다.』 '들림 받다'는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상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우리가 한꺼번에 공중으로 들려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서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율법 시대 말기, 예수님이 사역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리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들림을 받았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았어요.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는 이렇게 예언하고 있어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태복음 25: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말세의 오늘,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주님의 재림을 받아들이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들림 받음이에요.” 이 자매가 기뻐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진정한 '들림 받음'은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장 형제가 감격하며 말했다. "맞아요! 오늘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라면 몇 년을 더 기다려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어요.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진리를 선포하실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듣고 '신랑의 음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게 들림 받는 길이 생겼어요!” 송가인과 동역자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