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예수님은 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요

2018년 09월 12일

성경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 몇 명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욥은 거액의 재산을 잃고 온 몸에 악창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했고, 그의 믿음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자신의 독생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은 그에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15: 28)라고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가나안 여인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2, 26~28) 이 몇 구절을 볼 때 저는 예수님이 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하셨을까, 하나님은 왜 사람을 개에 비유해 말씀하셨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선민이라고 생각하고 이방인은 다 개라고 불렀기에 이것도 당시 유대인이 흔히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의 배경대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은 억울하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인의 태도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고, 성경의 기록은 더욱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개와 여인,가나안 여인,가나안 여인의 믿음,

오늘날 하나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해 주신 이유를 밝혀 주셨습니다.『왜 주 예수가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했느냐? 그녀가 개가 되고 싶어 했거나 상에서 떨어지는 그 부스러기를 먹고 싶어 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다 부차적인 것이다. 주 예수가 칭찬하는 것은 어떤 부분이냐? 그녀는 주님이 자신을 개로 보든, 사람으로 보든, 마귀 사탄으로 보든 무엇으로 봐도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하나님으로 보았고, 예수가 주님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사실이다. 주 예수가 하나님이고 주이며, 그녀가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그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이 그녀를 구원해도 좋고, 그녀를 구원하지 않아도 좋고, 그녀를 한 밥상에 앉아 같이 밥 먹는 사람으로 봐도 좋고, 제자나 그를 따르는 자로 봐도 좋다. 또 한 마리 발바리나 집 지키는 개로 봐도 좋다.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그녀가 마음속으로 주 예수를 자기 마음속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가나안 여인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지 그녀가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고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는 변함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아이를 고쳐 주든 안 고쳐 주든 그녀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인의 태도는 인성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것을 값없이 누리게 하시기에 사람은 하나님께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각종 시련 속에서 늘 믿음을 잃게 됩니다. 삶에 축복이 없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든 어떻게 대하시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환경을 배치하시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복하려는 믿음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하여 이루어야 할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방식으로 너와 말을 하든 네 마음속의 하나님의 지위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하나님과의 거리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나 하나님의 실질과 지위도 마음속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와 하나님 사이의 그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게 되고, 합당하게 이성적으로 대할 것이고, 선이 있게 되고, 제약을 받게 된다. 그렇지? 하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쉽게 해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사탄에게 타락되었기에 온 몸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성품, 즉 교만 자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한 사탄의 성품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렇게 타락된 성품은 하나님의 말세 심판 형벌을 겪어야만 점차 변화될 수 있고 나중에는 더 이상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대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 재림에 관한 성경의 예언은 어떻게 응하는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오랜 소망이 이루어져 주님의 약속을 받고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하루속히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는 우리 마음은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사도행전 1장 11절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복음 14장 3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기에 형제자매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오실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정말 우리 생각처럼 구름을 타고 오실까요? 우리 생각이 예언이 응하는 실정일까요? 우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반드시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흐리멍덩하게 대한다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잃기 쉽습니다. ‘예언’을 언급하면 우선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즉 예언은 이후에 발생할 일을 말한 것인데 예언이 응하기 전에는 누구도 예언의 진정한 가리킴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언’ 속에는 하나님의 기묘와 지혜가 있고 비밀이 그 속에 있기에 예언이 어떻게 응하여 사실로 이루어지느냐는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것이자 깨닫기 어려운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측량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고, 하늘과 땅이 떨어져 있는 만큼 하나님의 생각도 사람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33~34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또 고린도후서3장 6절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언이 응하는 것은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말할까요? 당시에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를 돌아보면 예언이 경문의 글귀와 사람의 상상대로 응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하루빨리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특히 구약 율법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절박해졌습니다. 하지만 메시아가 정말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게다가 그분을 대적하고 저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성경 예언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라고 분명히 쓰여져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볼 때 마리아는 분명히 남편이 있는 여자인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이 어떻게 그녀의 몸에서 응할 수 있겠느냐고 여겼던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확실히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지만 당시에 이 사실을 믿은 사람이 또 몇이나 되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본 마리아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다시피, 당시의 사람들이 본 것과 예언이 응한 실제 사실은 전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또 한 곳의 예언을 봅시다. 이사야 9장 6~7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화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것은 예수님이 강생하시기 전의 예언입니다. 이 예언에 근거하여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풍부한 상상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정권을 담당하는 메시아는 틀림없이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고, 틀림없이 위풍당당하게 기세를 떨치며 그들을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으실 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예언이 응할 때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시기는커녕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그들 상상 속의 왕처럼 위풍당당하기는커녕 사람이 보기에 아주 평범한 목수였으며, 군사를 거느리고 로마 정부의 통치를 뒤집어엎기는커녕 포용하고 인내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남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언의 응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상에 부합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상상과 예언의 실제적 응함은 정말로 천지차였으며, 예언의 응함은 완전히 사람의 상상에 부합되지 않았고 사람의 관념에도 부합되지 않았고 더욱이 성경의 글귀대로 응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지만 또 메시야의 도래를 저버리고 대적했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메시야의 예언에 대해 환상으로 가득찼고 예언의 응함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이 응했을 때 그들의 관념과 상상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예수님을 극력 대적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완고하고 오만하고 진리를 찾고 구하지 않는 그들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실패한 원인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이 구약의 예언을 지키면서 메시야의 도래를 대적한 것은 설마 예언이 틀린 것이란 말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이 경문의 글귀만 너무 중요시하고 오히려 예언이 응하는 실질은 홀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언은 그들이 메시아를 알고 메시아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메시아를 대적하는 자본이 되고 메시아를 저버리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인자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범하여 망국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이미 마지막 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예언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직도 글자 뜻대로 “주님이 어떻게 가셨으면 그대로 오신다”고 이해하겠습니까? 만약 주님의 재림이 우리가 바라고 상상한 것과 같지 않다면 우리는 또 어떻게 직면해야 하겠습니까? 경문의 글귀만 지키고 자기 자신의 상상대로 주님의 재림을 영접하겠습니까 아니면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여전히 바리새인처럼 다시 오신 예수님을 문밖으로 거절하겠습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은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고 진리의 성령이 이미 인간 세상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백만 자의 말씀을 발표하셨고 작은 책을 펼치셨으며 하나님의 6천년의 경영 계획의 모든 비밀을 전 인류에게 풀어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역사가 중국에서 전개된 지 20여 년간 각종각파는 마치 깨끗이 정리된 것 같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찾고 구하는 사람은 다 각종 각파에서 나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의 심판 형벌의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종교계에서 기세 드높이 확장될 때 이방인들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이 도둑 같이 오신다는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응했습니다. 이 단계를 은밀한 강림이라고 칭하는 까닭은 이 단계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다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 몸에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에게는 은밀한 것입니다. 이것도 베드로전서 4장 17절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를 응했고 열 처녀의 비유를 응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사람은 먼저 알게 되고(외치는 사람) 어떤 사람은 나중에 알게 되고(열 처녀) 어떤 사람은 모릅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외치는 사람은 주님을 믿고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맹목적으로 정죄하거나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주님이 오셔서 추수하고 키질하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며 만교가 하나로 되는 등의 예언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끊임없는 확장에 따라 점차 응했습니다. 주님이 이미 은밀히 강림하셨다면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는 것을 또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천 년 이래, 사람은 줄곧 구세주의 강림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고,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바라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람은 또 구세주가 돌아와서 사람들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바로 사람과 수천 년 동안 이별한 구주 예수가 다시 돌아와 여전히 유대인 가운데서 하였던 그의 구속 사역을 하여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사람의 죄를 사하고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는 것으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해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구주 예수가 여전히 사람의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존경스러운 구세주로 되어 사람에게 전혀 노하지 않고 사람을 책망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고 담당하며 더 나아가 여전히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가 떠난 후부터 그를 따르던 제자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모든 성도들까지도 이렇게 그를 애타게 그리워하였고 그를 기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를 입고 구원을 얻은 은혜시대의 모든 사람들은 구주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말세의 어느 큰 기쁨의 날에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여 만인에게 나타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이것도 역시 오늘날에 구주 예수의 이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바라는 것이다. 전 우주 아래에 무릇 구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홀연히 강림하여 예수가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어떻게 가면 또 어떻게 오리라”고 한 말씀이 ‘응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여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후, 흰 구름을 타고 하늘 위 지극히 높은 자의 우편으로 돌아갔으니 마찬가지로 그가 여전히 흰 구름을 타고(흰 구름은 예수가 하늘로 돌아갈 때 타고 간 흰 구름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형상을 지니고 유대인의 옷차림으로 그를 수천 년 동안 간절히 기대하던 인류 가운데 강림하여, 그들에게 나타나서 양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생수를 부어주며, 은혜와 자애가 충만하게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는데 매우 생생하다는 등등 이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에서 여긴 것이다. 그러나 구주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것은 사람의 관념과 전혀 상반되었다. 그는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 사람들 가운데 강림하지 않았고 또한 ‘흰 구름’을 타고 만인에게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가 이미 강림하였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미 흰 구름을 타고 (흰 구름은 그의 영, 그의 말씀, 그의 모든 성품과 소시를 가리킨다) 말세에 온전케 하려는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 가운데 강림하였다는 것을 사람이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사람이 어찌 거룩한 구주 예수가 비록 자애가 가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가 어찌 더러움이 가득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런 ‘성전’ 안에서 역사할 수 있겠는지를 알겠는가? 사람들이 비록 그의 강림을 기다리지만 그가 또 어찌 불의한 자의 살을 먹고 불의한 자의 피를 마시며 불의한 자의 옷을 입고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고 줄곧 그에게 토색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날 수 있겠는가? 사람은 단지 구주 예수는 자애와 긍휼이 가득하고 또한 그가 구속이 충만한 속죄제라는 것만 알 뿐 그가 공의와 위엄, 진노와 심판을 만재한, 권세를 지니고 존엄이 가득한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이 모두 구속주의 돌아옴을 애타게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며 심지어 사람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케 하였을지라도 구주 예수는 오히려 그를 믿으면서도 그를 알지 못하는 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은밀히 역사하시는 기간에 무릇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사람,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말세의 구원의 사역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왔고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자신의 오만으로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정죄하고 모독한 탓에 하나님에 의해 악한 자의 행렬에 들게 되었는데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징벌일 것입니다. 구원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죄받는 기호이다. 너희들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고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 오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복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래야 너희에게 유익하다.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고, 더욱이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구비해야 할 것은 겸손하고 온화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매 무지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듣고서도 마음대로 단정하거나 정죄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만한 따위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들은 모두 이지(理智)가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혹시 네가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언어를 본 후에, 이런 말씀이 단지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에 부합되고 성경에 부합된다고 여긴다면, 너는 이 만분의 일의 언어 가운데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너에게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고, 너무 자신하지 말고 너무 자고(自高)하지 말라고 권한다. 너의 조금밖에 없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가운데 장차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인데, 네가 자세히 고찰하고 반복적으로 상고하면, 너는 이 마디마디의 말씀이 도대체 진리인가 아닌가, 생명인가 아닌가를 알게 될 것이다. 혹시 어떤 사람은 말씀을 몇 마디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정죄하여, “이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려고 온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적다. 내가 권하는데 너는 그래도 다시 시작하여라! 너희들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 하여 맹목적으로 하나님이 발표한 언어를 정죄하지 말고, 미혹받을까봐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이렇다면 너무 애석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양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만 하나님이 이미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죄에 관한 성경 구절 - 죄를 벗어 버리는 길

예수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았지만 왜 계속 죄를 짓게 되는 것일까요? 죄를 지은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죄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요? 이번 주제와 관련된 구절을 통해서 죄를 벗어 버리는 길을 찾아 봅시다.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내주셨을까

처음 를 봤을 때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1:8~12) 여기서 보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사탄은 욥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욥은 가산과 아들딸을 잃고 욥 본인도 중병에 걸렸습니다. 욥은 그렇게 큰 시련이 임했을 때 하나님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고 의연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믿음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의 간증으로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물러가게 되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은 욥에게 임하였으며, 그 후 욥은 기한이 차서 죽게 됐습니다. 욥의 간증은 후세 사람들에게 푯대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욥에 대해 탄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속으로 ‘욥이 하나님의 안중에 완전한 사람이었는데, 사탄이 욥을 시험할 때 하나님은 왜 사탄이 욥을 잔혹하게 공격하도록 허락하셨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저는 여기에 관한 내용이 성경에는 없는지 여러 번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문제의 답을 찾지 못했고, 분량이 너무 작은 저는 욥과 같은 시련을 견디지 못할까 봐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어도 곤혹은 저의 마음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욥의 인성과 추구를 부러워하는 동시에, 하나님에게 ‘욥은 그렇게 순전하고 정직하며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랑받았는데,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까?’라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다 품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그런 의문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문제이다.』 이 말씀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환해졌습니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지금까지 풀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던 거잖아. 그럼 하나님은 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어 그렇게 많은 고통을 받게 하셨을까?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신 걸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봤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일부러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강조하였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사탄에게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 때문에 증오하고 분노하여 욥을 공격하게 하였다. 따라서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것’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여 사탄이 철저히 수치당하고 실패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더 이상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것을 의심하거나 참소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욥은 비록 직접 사탄의 참해를 겪었지만 영원한 자유와 해방을 얻었고, 영원히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고 사탄의 참해와 참소를 받지 않고 아무런 근심 걱정도 우려도 없이 하나님의 얼굴 빛 속에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는 그런 권리를 얻었다. 그 권리는 아무도 박탈할 수 없고, 아무도 파괴할 수 없으며, 아무도 점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권리는 욥이 스스로 자신의 믿음과 의지력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로 바꾼 것이다. 욥은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땅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진정한 피조물로서 *천경지의로 창조주를 경배하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을 자격과 권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욥이 시험을 겪은 후에 얻게 된 최대의 성과이다.』 이 말씀을 본 저의 마음은 마치 큰 돌멩이를 내려놓은 듯 드디어 의혹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원래 욥은 하나님 앞에서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지만, 사탄이 수없이 갖은 방법을 다해 욥을 참소하는 바람에 욥이 사탄의 시험을 이겨 내고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굳게 설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은 사탄이 철저히 수치를 당하고 패하여 다시는 욥을 참소하지 못하고 욥에게 완전히 손을 떼게 하게 하기 위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욥이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벗어나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욥을 사탄의 손에 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사탄에게 타락될 대로 타락됐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복으로 인해 사탄의 시험에도 완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고 간증을 굳게 서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완전한 사람인 욥인데도 불구하고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늘 참소했습니다. 사탄에게 깊이 타락된 말세의 사람은 특히 욥과 같은 경외심이 없는데, 욥처럼 하나님께 구원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심판과 시련,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정결케 되고 온전케 될 수 있으며, 타락과 죄악을 벗어 버리고 깨끗하게 되어 변화받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 외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의 본성과 실질에 대해 손금 보듯이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인류의 패역과 인류의 패괴를 심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하늘의 하나님을 대표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분 외에는 하나님의 권병,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존엄을 갖춘 사람이 없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는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표되었다 …그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하여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고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고, 또한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부탁을 발표하고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발표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어떤 방식으로 하든, 어떤 것을 대가로 하든, 어떤 것을 목표로 하든, 하나님이 하는 일의 취지는 불변하다는 것이다. 그 취지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요구,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사람 안에 이루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여기는 모든 긍정적인 것을 다 하나님의 절차에 따라 사람 안에 이루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실질을 알고 이해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복할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는 일의 한 방면의 취지이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사탄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부각물이 되고 힘쓰는 존재가 되기 때문에, 사람은 늘 사탄에게 넘겨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사탄의 시험과 공격에서 사탄의 사악하고, 추하고, 비열한 몰골을 보게 한다. 그리하여 사탄을 증오 하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 인식이 있고 분별이 있게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점차 사탄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탄의 참소와 방해와 공격에서 벗어나게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순복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으로 인해 사탄의 공격을 완전히 이겨 내고 사탄의 참소를 완전히 이겨 내게 되면, 사람은 철저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출될 수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지려면 반드시 사탄에게서 오는 크고 작은 시험과 공격에 직면해야 한다. 거기에서 걸어 나와 사탄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결박하고, 엿보고, 참소하고, 해칠 수 없는, 완전히 자유를 얻은 사람이고, 완전히 해방되고 해탈된 사람이다. 욥이 바로 그런 자유인이었다. 하나님이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었던 의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하여 더 이상 사탄의 참소와 공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셨지만 사람에 대한 역사 취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사람을 구하고 깨끗게 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밝혀 나중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사람은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돈과 재물과 명예와 지위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탄의 괴롭힘 속에 살면서도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사람은 돈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착한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당하고, 순한 말은 사람을 태워야 한다’,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등등의 사탄의 독소로 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면서도 벗어날 힘이 없어 사탄이 타락시키는 대로 살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훼멸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의 시험과 공격을 통해 사람들에게 사탄이 어떻게 사람을 타락시키고 결박하는지 그 모든 과정을 보게 했으며, 아울러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와 시련 연단을 통해,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알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진실한 순복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외가 있게 되고, 욥처럼 조금씩 사탄의 공격과 시련을 거쳐 나중에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사탄에게 넘겨주게 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하나님께 구원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음이 아주 밝아졌으며, 하나님이 하신 말세의 사역에 대해 이해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욥을 사탄에게 넘겨주게 된 원인과 의의를 알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사탄으로부터 오는 크고 작은 시험을 받아야 되는데, 그때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와 순복으로 사탄의 진영에서 나오게 된다면, 사탄의 참소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사는 구원받은 자유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사탄의 시험이 올까 봐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태복음 23:8)

결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주제별 성경 구절 21가지

크리스천으로서 결혼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합니다. 아래 결혼에 관한 성경 구절이 어떻게 우리의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 드립니다.

왜 예수님만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스도’라는 말은 오직 신약성경에만 있으며, 형제자매들은 모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문이 생긴 분들도 있는데 그럼 왜 예수님만 그리스도라고 불리셨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3가지 근거, 알고 있습니까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에는 3가지 근거가 있는데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천국'은 정말 하늘에 있을까요?

저는 배를 타는 선원입니다. 저는 90년대 중반 해외에서 성경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성경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의 특성상 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저의 신앙 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여러 번 '천국'을 언급하신 것을 보고 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천국'과 관련된 일부 성경 구절들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태복음 3: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 5:3)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와 같은 말씀입니다. 천국에 대한 이런 성경 구절들을 마주하면서 저는 상상으로 가득했는데 천국은 반드시 하늘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2~3절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잖아.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될 거야. 장래에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하늘로 영접할 것인데 그럼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과 만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런 성경 구절들을 볼 때마다 천국에 대해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영화에서 보는 신선들이 사는 신비로운 곳처럼 바닥은 보석으로 깔려 있고, 성(城)은 황금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천국에 있는 사람은 다 영화에 나오는 신선들처럼 자유자재로 살면서 영생을 누릴 거야.’라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저는 천국에 대해 무한한 동경으로 가득 찼는데, 어떤 때는 꿈속에서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배에서 예수님을 믿는 선원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 역시 저와 똑같이 모두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서 읽다 보니 성경 분문의 어떤 말씀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6장 10절에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또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는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런 말씀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또 어찌 된 영문인가? 천국은 당연히 하늘에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또 땅에 있을 수가 있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 계시록의 말씀은 성령이 요한에게 계시한 이상이므로 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잖아. 그렇다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후에 베드로 후서 1장 20~21절에서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맞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보다 높기에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자신의 상상에 근거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땅에 있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계속 저에게 의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2012년, 설이 막 지나자 저는 승선하라는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오후, 저의 먼 친척인 고모 할머니(그분은 전에 예수님의 복음을 저에게 전해주셨던 분입니다.)가 갑자기 엄청난 희소식을 알려 주겠다며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저를 찾아오셨는데, 당시에 저는 호기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흥분하시며 “우리가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단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거야. 성경에서 말한 천국이 이미 내려온 거라구!” 저는 놀라서 “주님이 돌아오셨다구요? 천국이 내려왔다구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주님이 돌아오셨단다. 그분은 바로 말세 그리스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 번 더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주로는 말씀을 선포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신단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그 가운데서 자신의 추악하고 패괴(역주: 부패, 타락, 망가짐을 포함하여 더 깊은 뜻이 있음)된 본성 실질을 인식하게 하고,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의 실상을 분명하게 보도록 하신단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인데 이 단계사역을 마치시면 하나님은 대재난을 내려 상선벌악 하신단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훼멸될 것이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셔서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 후에 이 땅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민이 되고 땅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되는 것이란다. 그때 인류는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된단다.” 고모 할머니가 전해준 희소식을 들으면서 저 역시 조금 격동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있다고 하시는 걸까? 천국이 도대체 하늘에 있는지 아니면 땅에 있는지 하는 이 문제로 몇 년간 계속 곤혹스러웠기 때문에 그때 저는 한번 잘 찾고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방금 할머니께서 땅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이 장래에 영원히 땅에서 생활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성경 여러 곳에 천국에 관한 기록이 있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다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주님이 다시 오셔서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하늘로 영접한다고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어째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있다고 하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사람들의 관점은 다 똑같은데 모두가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여기지. 말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반드시 그들을 하늘 위로 이끌어 올려 거기에서 살게 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우리들이 자세하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지을 때도 땅에서 하셨고, 또한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사람을 위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다 예비해 주셨지. 더군다나 하나님이 인류를 지으신 이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이 있니?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3장13절에서 말씀하셨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보듯이 인류는 오직 땅에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할머니의 교통을 들으면서 저는 그것이 아주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지으셨고, 당시에 아담과 하와가 있었던 에덴동산 역시 땅에 있었어. 인류가 하늘에 올라가서 살 거라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에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왜 그들을 하늘에 두지 않았을까? 보아하니 사람이 정말로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같아.’라며 한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어떤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은 인류가 구원받고 사탄이 훼멸되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 하나님이 더 이상 사람에게 역사하지 않고 사람도 더 이상 사탄의 권세하에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처소가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이 가야 할 곳이 있다.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계속 전 인류를 이끌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늘의 유일한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지 않고, 사람도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처소에서 살 수 없으며,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경지에서 살 수 없지만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사람이 안식할 곳은 땅에 있고, 하나님의 안식처는 하늘에 있다. 사람은 안식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은 안식 속에서 남아 있는 인류를 이끄는데,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끄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이고 사람은 여전히 육신이기에, 하나님과 사람은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안식한다.’ “하나님은 아주 분명하게 말씀했단다. 사람과 하나님은 같은 경지에서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은 하늘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고 땅은 사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지. 사람은 단지 피조물로 오직 땅에서만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지막 처소도 땅에 있는 것이야.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천국은 여전히 땅에 있는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때 온 땅의 나라는 다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인류는 땅에서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데, 천국의 생활이란 바로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이란다.” 할머니가 말씀 나누시는 것을 듣고 난 후, 저는 감탄조로 “하나님의 말씀은 제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 주셨어요.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하늘이 아닌 땅에서 살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마련해 준 생존 환경은 바로 땅에 있기 때문이네요. 그러므로 인류의 마지막 처소 역시 땅에 있어요.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과 완전히 일치해요. 알고 보니 천국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여 구원받은 후에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네요. 하나님의 말씀은 이전의 저의 관념과 상상을 깨뜨렸고 또 저에게 실제적인 희망을 가져다 주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한참 흥미롭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의 아내가 친정 식구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고모 할머니는 사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떠나기 전에 저에게 메모리 카드를 주면서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 배에서 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거듭 묵상하면서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재림하신 예수님이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 인을 떼신 어린양이고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진리를 발표하여 모든 심오한 비밀을 다 알려 주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마지막 처소에 관해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복 사역이 끝나면 인류는 아름다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땅에서 살게 되지만 지금 사람이 사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 삶은 전 인류가 정복된 후에 있게 되는 삶이고, 인류가 땅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이다. 인류에게 그런 삶이 있게 되면 그것은 인류가 새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경지에 들어섰음을 증명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사람이 땅에서 함께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삶이 있게 되는 전제는 반드시 사람이 정결케 되고 정복된 후 모두가 창조주 앞에 순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은 인류가 아름다운 처소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맨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있게 되는 그런 삶은 앞으로의 땅에서 사는 삶이고, 땅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사람이 지향하는 삶이고, 유사 이래 사람에게 없었던 삶이다. 그것은 6천년 경영 사역의 최종 효과이고, 인류가 가장 소망하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약속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반드시 일정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마지막 이 단계의 사역을 끝마치고 사람이 철저히 정복되면, 즉 사탄이 철저히 패배당하면, 인류는 이후의 처소로 들어가게 된다. ”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는 아주 실제적입니다. 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는 땅에서였는데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땅 위에 아주 적절하게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사람을 위해 아주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말세에 그분은 다시 성육신으로 땅에 오셔서 그분의 6천년 경영 계획의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을 하십니다. 그분은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여 사람들을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며,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하늘의 생활같이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때의 생활은 지금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데 더 이상 사탄의 방해가 없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생활인 것입니다. 천사와 같은 생활이고 다군다나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와 말세에 태어난 사람의 가장 큰 복입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우여곡절 끝에 현지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와 연락이 닿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으로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과 양육을 누리게 되었고, 교회 생활의 달콤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비할 데 없는 기쁨과 평안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