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님이 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을까?

2017년 4월 12일 성경 스토리1

성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칭찬받은 사람이 몇몇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욥입니다. 욥은 거액의 재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지만, 그는 의연히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찬송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생자인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복으로 인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5장 28절에서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어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바로 가나안 여자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15장 22절과 26~28절에서는 이와 같이 기록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으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저는 이 몇 구절 경문을 볼 때마다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주 예수님은 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사람을 개로 비교 하셨을까? 후에 자료를 찾아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유태인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선민이라 여기고 이방인들을 모두 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시 유태인의 습관적인 용어였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역시 그때의 배경에 근거하여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자는 오히려 억울하게 여기거나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태도를 보시고 주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께서는 왜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게 되었을까요? 이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주 예수님의 재림, 말세의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왜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칭찬하셨는지를 밝혀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그 일은 이런 일이다. 왜 주 예수가 그 사람의 믿음을 칭찬했겠느냐? 그녀가 개가 되고 싶어 했거나 상에서 떨어지는 그 부스러기를 먹고 싶어 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다 부차적인 것이다. 주 예수가 칭찬하는 것은 어떤 부분이냐? 그녀는 주님이 자신을 개로 보든, 사람으로 보든, 마귀 사탄으로 보든 무엇으로 봐도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주님을 하나님으로 보았고, 예수가 주님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고 사실이다. 주 예수가 하나님이고 주이며, 그녀가 마음속으로 확신하는 그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주님이 그녀를 구원해도 좋고, 그녀를 구원하지 않아도 좋고, 그녀를 한 밥상에 앉아 같이 밥 먹는 사람으로 봐도 좋고, 제자나 그를 따르는 자로 봐도 좋다. 또 한 마리 발바리나 집 지키는 개로 봐도 좋다. 다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었든, 그녀가 마음속으로 주 예수를 자기 마음속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그녀의 가장 큰 믿음인 것이다.” (<좌담기록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가장 큰 수혜자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보다시피 가나안 여자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주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대하시고 그를 어떻게 여기시든지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지위는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그의 딸의 병을 치료해 주셨는지와 상관없이 그는 주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시인하였습니다. 이것도 역시 가나안 여자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가나안 여자의 태도에는 이지가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이 사람들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것을 값없이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전혀 하나님께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든지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오히려 각종 시련에서 항상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사람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없을 때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 집을 원망하게 되며,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보시든, 어떻게 대하시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환경을 마련해 주시든,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순복하는 우리의 믿음은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도 역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추구하여 도달해야 할 목표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께 순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방식으로 너와 말을 하든 네 마음속의 하나님의 지위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하나님과의 거리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나 하나님의 실질과 지위도 마음속에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너와 하나님 사이의 그 관계를 잘 처리할 수 있게 되고, 합당하게 이성적으로 대할 것이고, 선이 있게 되고, 제약을 받게 된다. 그렇지? 하지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도달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쉽게 해내지 못할 것이다.” (<좌담기록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계획 중에서 가장 큰 수혜자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기에 온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성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교만 자대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곡하고 궤사한 등등입니다. 이런 패괴 성정들은 오직 하나님 말세의 심판 형벌을 거쳐야만 점차적으로 변화될 수 있으며, 최종에 가서야 사람이 더 이상 하나님께 패역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수 있고, 하나님을 진실로 조물주로 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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