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경을 떠나면 가짜이고 이단입니다. 이 말이 도대체 성립됩니까?

2018년 10월 31일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하나님 말씀 답:

『성경은 역사책에 속한다. 네가 구약 성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먹고 마시거나, 구약 시대에 요구한 것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실행한다면, 예수는 너를 버리고 정죄할 것이다.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틀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 예수 시대에, 예수는 당시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에 따라 유대인들을 인도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했다. 예수가 행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든 예수는 상관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인도할 때 성경에서 길을 찾지 않았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고, 그의 사역과 가르침, 그의 말씀의 권능과 능력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새로운 사역만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구약 성경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넘어섰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했던 사역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가 온 이유는 단지 자신의 직분을 다하여 자신이 오기를 갈망하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사역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은 성경의 근거 유무를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구약의 계명과 안식일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이미 구약 율법을 뛰어넘었고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아졌다. 그는 구약 율법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이미 구약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지만, 아직도 성경, 특히 구약의 율법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성경은 거룩한 책이므로 반드시 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느 때든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라 폐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어느 때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너무 그릇되지 않느냐? 예수가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 예수가 죄를 짓기라도 했단 말이냐? 누가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성경에 관하여 1≫에서 발췌

성경에 대하여,성경 문답,

『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더욱 전면적이고 또한 사람의 성정도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상응하게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터무니없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역사가 언제나 항상 새롭고 그가 낡은 사역을 중복하지 않고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중복된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의 과거의 역사로써 하나님의 오늘의 역사를 가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매 단계 새 시대의 사역은 전개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의 애로는 너무나 많다! 사람의 사상은 너무나 수구(守舊)적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또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잃고 진리를 잃고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다. 그러나 사람은 또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더 큰 축복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고정불변한 것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나 정체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만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다만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성경을 초월하지 말아야 하고 성경을 초월할 수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의 ‘여김’은 그들을 단단히 낡은 율법 아래에 박아놓았고 죽은 규례에 박아놓았다.

……

당시에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이 은혜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였는데, 마치 오늘 내가 예수의 사역이 뒤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은혜시대가 없고 율법시대만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고 온 인류를 구속할 수 없다. 만약 율법시대만 있다면,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역사(歷史)는 앞으로 추이하는 것이다. 역사(歷史)가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상 법칙이 아닌가? 온 우주 아래에서 사람을 경영하는 하나의 화폭이 아닌가? 역사(歷史)는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앞으로 발전하며, 하나님의 뜻은 부단히 변하고 있다. 그는 한 단계 사역을 6천년이나 지속할 수 없다. 사람이 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기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한 항목의 사역을 줄곧 연속하여 한번ㆍ두 번ㆍ세 번……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사람의 인식법이다. 하나님은 한가지 사역을 지속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부단히 변화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사역이 있다. 마치 내가 너희에게 날마다 새 말씀을 하고 새 사역을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사역인데, 관건은 하나의 ‘신(新)’자에 있고 하나의 ‘기(奇)’자에 있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사람이 만일 관념으로써 하나님을 가늠하여 하나님을 규정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상이라고 하는 것처럼 완전히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하고 하나님을 유한한 사역에 고정시킨다면, 너희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였음을 증명한다. 마치 하나님을 메시아라 할 수밖에 없고 메시아라 하는 분만이 하나님이라는 것처럼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마음속의 형태가 고정된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상(무생명)처럼 삼아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형 판결하였는데, 본래 무죄한 예수가 죽을 죄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무고한 분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놓아주지 않고 억지로 사형 판결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고정불변한 분이라고 여기면서 성경 한 권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규정하였는데, 마치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본 듯하고 마치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사람의 장악 중에 있는 듯하다. 인류는 극도로 황당하고 극도로 거만하며, 사람은 모두 호언장담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얼마나 높든지, 나는 그래도 너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고 너를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사람이라 하고 너를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라 한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전혀 순복할 줄 모르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에서 발췌

기도에 비결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실행함에 있어 기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임하든, 생활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혹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든, 이 모든 것 중에 어느 하나라도 기도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효과를 보고 싶어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형제자매들은 비록 자신이 늘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깨우침을 거의 얻지 못해 영 안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 교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도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의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효과도 보지 못하는 것입니까? 설마 기도에 또 어떤 비결이 있는 것입니까?”라고 합니다. 이전에 저에게도 이런 의문이 있었고, 나중에 영적 서적을 보고 기도에 정말로 비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안정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진실하게 교통하고 기도하라는 것이지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속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루려는 것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너를 많이 깨우치고 빛 비추어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나님께 세운 심지를 포함하여 자신의 실제 정형과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가져와 기도하여라. 기도는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께 찾고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너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의 마음을 보호해 달라고 구하는 것이다 … 사람이 진심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한다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역사하기 원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의 교활한 마음이 아니라 단순하고 *성실한 마음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역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기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참된 말을 하는 것이고, 자신의 결함이나 패역 성정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너의 기도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에게 얼굴을 가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어떤 책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로움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실질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반드시 성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가 마음을 나누지 않고 속심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교제했다 해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게 되고 더욱이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없으며 상대방의 진심어린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든 매일 기도를 얼마나 드리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 드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가식적인 기도로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기도할 때, 듣기 좋은 말로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혀 실행하지 않습니다. 마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사거리이나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여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경건하고 충성심이 많아 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역사하실 때, 그들은 찾고 구하며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모독하고 정죄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드린 기도가 다 가식적인 것이었음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기도는 주님께서 혐오하실 뿐만 아니라 또 그것으로 그들이 화를 입을 것이라고 정죄까지 했습니다! 그럼 어떤 기도가 진실한 기도일까요? “기도는 형식을 따르고 과정을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도에 좋은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해야만 깨우침과 빛 비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이 제기한 요구에 대해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구에 도달하기 원하고,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을 증오할 수 있으며, 이 기초에서 인식을 더하여 하나님이 천명한 진리에 인식이 있어 흐리멍덩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된다. 기도한 후에 심지와 믿음이 있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어야 진실한 기도라고 한다. 이런 기도라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 어떤 것이 진실한 기도일까? 바로 하나님께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더듬으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과 아주 가깝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이 바로 네 앞에 있다고 느끼게 되며, 하나님께 할 말이 있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속이 아주 환하게 되며, 하나님이 매우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고, 특별히 격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들이 듣고는 누림이 있어 네가 하는 말이 그의 마음속 말이고 그가 하려는 말이라고 느끼게 되고, 네가 하는 말이 곧 그가 하려는 말을 대체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기도이다. 네가 진실한 기도를 하고 나면 마음속에 평안을 얻게 되고 누림이 있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의 있는 일이라고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기도가 효과가 있음을 증명한다.” 이 말씀에서 무엇이 진실한 기도인지, 그리고 진실한 기도의 효과는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와서 듣기 좋은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서 좋은 효과를 얻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관건적인 것은 기도가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는 우선 기도할 때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오직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라야 영안에 감동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에서 기도해야 더 많은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나면 우리 안에 심지가 있게 되고 믿음이 생기고 인식과 실행의 길이 있게 됩니다. 이런 기도는 효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는 것인데, 기도할 때 하나님과 아주 가깝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 현실의 뜻을 더듬어 기도하고 이전의 규례와 종교적 방법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가장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상의 효과에 도달하는 기도가 바로 진실한 기도이고 하나님도 열납하시는 기도입니다. 이런 것에 결부시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실한 기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가정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다는 기도, 형제자매들의 부족한 면과 애로사항을 하나님께 맡기며 말씀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라는 기도, 복음 전도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으로 인해 그리고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야 하는지를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뜻을 깨닫기 위한 기도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실행하는지를 위한 기도, 또 우리가 박해받고 고난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을 위해 간증을 설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라는 기도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는 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진실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열납해 주십니다. 이제 기도의 비결을 알았으니 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와서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과 마음속 말을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누는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훈련을 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가 점점 더 진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효과에 도달할 수 있고,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며,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우리의 영 안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런 비결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 다 함께 현실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하는 훈련해 봅시다! *성실(誠實): 거짓이나 꾸밈이 없음.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율법시대는 바로 여호와를 대표한 하나님 이름의 사역이고 여호와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전부의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구약은 여호와의 사역을 기록한 것이며, 신약은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것인데 예수 이 이름을 위주로 한 사역이다. 예수의 이름이 도대체 무슨 뜻이고 그가 한 사역에 모두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은 거의 다 신약에 기록되었다.』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와 영의 역사는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성경 참고: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18~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출 19:20~21)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8~19)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되려는 육신에 가져와야만 이 ‘도’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친히 만들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얻어서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 되지 않았다면, 무릇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하나님은 성육신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볼 수도,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고, 사람은 다 육체에 속한 피조물인 데다가 사람과 하나님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있고, 또한 서로 다른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은 육체에 속한 사람과 조금도 맞지 않아 전혀 ‘수교’할 수 없다. 거기에다 사람이 영으로 될 수도 없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피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영으로 될 수 없고, 더욱이 지극히 낮은 곳에 낮출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성육신을 예로 들면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구속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의 속죄제가 될 수 있지만, 사람은 직접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예비한 속죄제를 가져올 수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늘과 땅 사이를 몇 번 더 왕복해야지’, 그렇다고 사람에게 하늘에 올라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 가게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타락되었고, 또한 하늘에 전혀 올라갈 수 없으며, 더욱이 속죄제를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친히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이 전혀 완성할 수 없는 그런 사역을 해야 하였다. 매번 말씀으로 된 육신은 모두 너무나 필요하다. 만일 한 단계라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억울함을 참고 모욕을 당하면서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그럼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 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육신에서 역사하면 비록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곤란이 있지만, 육신이 역사하여 최종에 도달하는 효과는 그래도 영이 직접 역사하는 효과를 훨씬 뛰어넘는다. 육신이 역사하면 비록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고, 결코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도 있을 수 없으며, 더욱이 영과 같은 권병(역주: 권세)도 있을 수 없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 육신이 역사하는 실질은 영이 직접 역사하는 실질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이 육신 자체는 모든 사람의 필요이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사용가치는 육신의 사용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체가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더욱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어지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묘막측 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기는 더욱 어려워 다만 근거 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는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들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이 깨우쳐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인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가 있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영의 이런 역사는 결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뿐이지 결코 말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상상할 필요도,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합할 뿐, 결코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정확한 목표를 요구하고 또 사람이 인식을 얻는 그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다. 패괴된 사람에게는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적인 역사와 시기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취향에 맞고, 오직 실제적인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이런 것은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도달할 수 있고,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옛 성정에서 구원해 낼 수 있다. 영은 비록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지만, 이런 사역은 오직 육신으로만 할 수 있다. 영만 단독으로 역사한다면 역사 효과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진리를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나타남을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감동이나 묵시만 줄 뿐이고, 기묘막측(奇妙莫測) 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한 느낌만 줄 뿐이며, 위대하고 비범하고 사람이 모두 앙모하면서도 도달하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느낌만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 마치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또한 영원히 서로 같을 수 없는 듯하고,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은 영이 사람에게 주는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은 다만 영과 사람이 동류가 아니고, 영과 사람이 영원히 한 세계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영은 사람이 갖추고 있는 어떤 것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말하면, 영은 사람의 필요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영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역사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를 주고, 명확한 말씀을 주며,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느낌을 주고, ‘보잘것없고’ ‘평범한’ 느낌을 준다. 사람이 비록 두렵다고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접촉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 육신은 사람에게 아득히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측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사람과 같은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을 때, 사람은 하나님이 했던 많은 말씀들을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은 완전한 신성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했던 각도와 배경은 사람이 볼 수 없는 영계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는 것이며, 그 영계 또한 육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가로지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 인성의 각도에 서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기에 영계의 범위를 벗어났고 초월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 속에서 상상한 것이나 사람의 생활 속에서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일들이나 혹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말이나 인류가 장악하고 있는 지식으로 신성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성품과 뜻 그리고 자신의 태도를 표현하여,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정도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아가며,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 기준을 이해하고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성에서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이다. 비록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하는 방식과 원칙은 인성에 의하거나 인성을 통해(원문: 透過) 더욱 많이 도달하지만, 오히려 신성이 직접 역사하여 도달할 수 없는 효과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이것이 하나님 성육신의 ‘우세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과 인성의 언어를 이용해 사람에게 말씀하여 자신의 바람을 표현할 수 있었고,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심오한 신성의 언어를 인성의 언어와 방식으로 사람에게 해석해 주거나 ‘통역’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면,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해 주고,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데에 유리하다. 그 밖에, 하나님은 또 사람의 각도에서 사람의 언어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사람과 대화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언어, 지식으로 말씀하고 역사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이 친절하고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 자신 3>에서 발췌 『영이 하는 사역은 묵시(원문: 隱含)적이고 난측(難測)하며, 또한 사람에게 간담이 서늘케 하여 접근하기 쉽지 않게 하므로 직접 구원 사역을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이하는 다른 한 가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하나님이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이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영의 사역을 대신해야 한다. 이 역사 방식은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더없이 적합한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직접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음성’ 앞에 순복하게 되고, 말씀으로 드러낼 필요 없이 사람은 모두 엎드러지게 된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빛 가운데 엎드러진 것과 같다. 하나님이 또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영원히 말씀의 심판으로 자신의 패괴를 인식하여 구원받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말씀을 각 사람에게 직접 전해 줄 수 있기에, 귀 있는 자들은 모두 그의 말씀을 듣고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말씀으로 도달한 효과이다. 영이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적이면서도 비범한 사역으로 사람의 깊은 곳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옛 성정들을 완전히 들춰내어 인식하게 하고 변화되게 한다. 이런 것은 다 성육신이 하는 실제적인 사역인데, 아주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아주 실제적으로 심판한다. 따라서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효과에 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성육신의 권병이고 성육신 된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육신도 권병을 지닐 수 있고, 또한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도록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는 모든 권병을 지닌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역사 효과도 뚜렷하다. 그것은 말씀으로 된 육신이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역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신의 외형은 권병을 지니고 있지 않아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지만, 그의 실질은 권병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그의 권병을 보지 못한다. 사람은 그가 말씀하고 역사할 때에도 그의 권병을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그가 실제적으로 역사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그의 이런 실제적인 역사는 모두 효과에 도달할 수 있는데, 비록 사람은 다 그가 권병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가 거스를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의 진노를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밀한 권병, 은밀한 진노, 공개한 말씀을 통해 그가 말씀을 하는 효과에 도달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어조와 말씀의 준엄함, 말씀의 모든 지혜로 사람을 심복구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권병이 없는 듯한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순복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말씀이 육신 된 또 다른 의의이다. 즉, 더 실제적으로 말씀하기 위한 것이고, 또한 말씀의 실제가 사람에게서 효과를 보게 하고 하나님 말씀의 위력을 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 하나님이 이 사역을 하지 않는다면, 전혀 효과를 볼 수 없고, 죄악된 사람을 완전히 구원하지도 못한다고 한다.』 <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심판하는 것은 패괴된 사람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을 직접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 사역을 영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가 패괴된 것을 심판하는 사역을 하기에는 오직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적합하고, 육신의 하나님만이 가장 자격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주도면밀하게 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그것은 영은 사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분명히 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육신의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사탄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부터 범속한 인간보다 위대하다. 하나님의 영은 본래부터 거룩한 존재이고, 본래부터 육체를 능가하는 존재이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도 한데, 사람은 영에 대해 본래부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확실하게 들춰낼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하는 것을 통해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들춰냈는데,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도달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육신의 하나님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의 하나님에 대해 대적에서 순복으로, 핍박에서 수용으로, 관념에서 인식으로, 저버림에서 사랑으로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 효과이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고, 모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통해 그를 점차 알게 되며, 모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모두 그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생명의 공급을 받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육신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지 결코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그러나 너는 이러한 사실, 즉 사람의 패괴 성정과 거역과 대적은 모두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나는데, 그때의 거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완전하고 철저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가? 그리스도가 인자이기 때문에, 곧 정상 인성이 있는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를 무례하게 대하고, 또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은 남김없이 생생하게 폭로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인류의 패역을 다 끄집어냈고, 인류의 본성을 다 안받침해 냈다고 한다. 이것을 ‘호랑이를 유도하여 산에서 내려오게 하고, 늑대를 유도하여 굴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 실제와 사람의 상상 속에 있는 막연하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성육신 하나님이 정식으로 역사할 때는 사람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된다. 성육신 하나님의 안받침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즉, 실제적인 안받침이 없으면 막연한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사역은 아무도 말로 대체할 수 없고, 역시 아무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원문: 說透)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지 사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말이 얼마나 풍부하든지 하나님의 실제와 정상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형상과 소시를 전부 공포해야만 사람이 그를 더 실제적으로 알 수 있고,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이 효과는 육체에 속한 사람은 아무도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사 효과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은 결코 하나님의 영이 직접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할 수 있는 사역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육신에서 역사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과 정확한 부탁을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비로소 그가 육신에서 한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이 도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으로 전해 줄 수 있다. 육신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게 되어서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을 참으로 실현하게 되었고,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듣는 이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성육신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마지막 한 차례 성육신 하나님의 역사는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 들어갔다. 율법과 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심오한 비밀과 귀숙을 펼쳐 보이는 하나님,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 몇천 년이나 숨겨 왔던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역사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이 다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런 것들을 찾거나 모색하지 않게 되고,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육신에서 한 사역을 확장할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가 육신에서 하였던 사역을 다 각종각파(各宗各派)에 전할 것이고, 그의 모든 말씀을 전 인류의 귀에 전할 것이다. 무릇 그의 복음을 받는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은 모두 그가 역사한 사실일 것이며, 사람이 직접 보고 직접 들은 것이고 또한 사실이지 뜬소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모두 그가 사역을 확장하는 증거(證據)이자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만일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의 복음은 각 지역, 각국에 널리 전파될 수 없다. 사실이 없이 사람의 상상만 있다면 영원히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역사한 사실을 남겨 놓을 수 없으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고,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신앙할 것이며,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한 것은 어쨌든 텅 빈 것이어서 결코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역사는 사람이 연기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해야만 하늘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땅에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인데,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지금 저는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당신들은 왜 제가 이렇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까?

성경 참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5-16)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하나님 말씀 답: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자나 의인으로 온전케 되려는 것이 그렇게 쉬운가? “세상에는 의인이 없고 의인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나니”란 이것은 참말이다. 너희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너희들이 입은 옷을 좀 보고 너희들의 일언일행, 일거일동, 매 하나의 마음과 생각을 좀 살펴 보아라. 너희들이 날마다 꾸는 꿈마저도 자기를 위한 것인데, 이것이 실정이 아닌가? ‘의’란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말다툼하지 않고 빼앗지도 않고 훔치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부탁을 자신의 임무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복함을 천직(天職)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마치 주 예수가 한 모든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하는 의이다. 롯이 의인으로 칭함받을 수 있었던 것은 롯이 자기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를 구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에 한 일을 의롭다고 칭할 수 있을 뿐, 그를 의인이라고는 칭할 수 없다. 롯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두 딸을 두 천사와 바꾸려 하였지만, 그가 이전에 행한 것이 다는 의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에 의인이 없다”고 한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는다≫에서 발췌 『너희 이러한 죄인들이 갓 구속되어왔는데,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지 않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너 옛 사람, 예수가 너를 구원해온 것은 틀림없다. 네가 죄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한 것이지만 너에게 죄가 없고 더러움이 없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네가 변화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는가? 너의 안이 아직도 더러움뿐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면서도 네가 예수와 함께 강림하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좋은 일이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한 단계의 과정이 적은데, 다만 구속되었을 뿐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맞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되기만 하고 거룩함에 달할 수 없다. 이러면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한 단계에서, 바로 변화되고 온전케 되는 관건적인 한 단계에서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갓 구속받은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산업을 직접 이어받을 수 없다.』 ≪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정결케 하는 사역이라야 인류의 불의를 다 정결케 하며, 형벌ㆍ심판의 사역이라야 인류 중의 그 패역한 것들을 다 드러내어 구원할 만한 사람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내고 존류할 만한 사람과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을 다 분별해낸다. 사역이 끝날 때, 존류할 만한 사람은 다 정결함을 받고 인류의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 인류의 땅에서의 더 아름다운 두 번째 생활을 누릴 것이며, 머지않아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존류할 수 없는 사람은 형벌ㆍ심판을 거친 후 원형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후에 다 훼멸되어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는 땅에서 생존할 수 없다. 이후의 인류 가운데 더는 이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최후의 안식의 땅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징벌받을 대상이고 악한 자이지 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에서 발췌 『어떤 사람들은 최종에 “제가 당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하였는데, 공로는 없다 하더라도 고생은 했으니 하다못해 천당에 들어가 생명 과실을 먹게 해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너는 알아야 한다. 국도에 더러운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더러운 사람이 성지(聖地)를 더럽히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네가 비록 많은 사역을 하였고 네가 비록 다년간 사역하였지만 결국은 여전히 더럽기 짝이 없으면서도 나의 국도에 들어가려 하는데, 그것은 이치로써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창세부터 오늘까지 나는 사적인 감정을 바치는 어느 한 사람에게도 이런 편리한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다. 이것은 천규이니 누구도 타파할 수 없다!』 ≪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현실 말씀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복이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사람이 어떠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이전에 사람 몸에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가에 개의치 않고 최신 역사를 얻은 사람은 다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이다. 오늘 최신 역사를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다 도태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새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며,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사람이다. 무엇 때문에 정결한 처녀로 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찾고 구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낡은 관념을 버릴 수 있고 하나님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는 이 무리 사람들은 하나님의 만세전의 예정이고 가장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어떻게 성경을 대할 것인가

주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모두가 성경을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게다가 성경은 아주 권위있는 서적이기에 사람 마음속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성경을 봐야 하고 성경을 봐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 어떤 사람도 성경의 말씀을 어겨서는 안 되고 모두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논하려면 반드시 성경의 내막을 잘 알아야 하고 성경의 내용과 성경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요해와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 성경의 구약 부분은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지혜서 그리고 일부 선지자의 예언서로 되어 있는데, 주로 기록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 사역과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에 하신 사역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어떻게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지, 인류가 어떻게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범죄한 후의 인류를 인솔하셨고 또 어떻게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는지, 노아 일가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고 또 어떻게 율법을 반포해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생활하도록 인솔하셨는지, 그리고 또 일부 선지자들의 예언 등등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하신 사역과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시대에서 생활한 실상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및 성도들의 일부 서신 그리고 마지막의 계시록이 있습니다. 주로 예수님의 강생, 예수님이 유대 각지에서 어떻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또 어떻게 각지에서 전도하시면서 당시의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는지,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저버렸는지,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 후에 부활하셨는지, 예수님 부활 후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했고 예수님을 위해 간증했는지, 나중에 또 어떻게 성령의 인도 하에 그때의 교회들을 목양했는지……등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성경이든 신약성경이든 기록된 내용이 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셨던 사역과 일부 발생된 일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런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결코 성경이 없었고 하나님은 성경에 근거하여 역사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리라 믿습니다. 또 예를 들면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지 300여 년 후에야 예수님이 땅에서 하신 역사를 사도들이 기록한 것과 교회들을 목양할 때 사도들이 쓴 서신 그리고 주후 90여 년 후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이상(異象)을 사람들이 한데 모아 편집한 것입니다. 그중 사도의 서신은 모두 그들 자신의 경력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인식인데, 그들은 이런 경력과 인식을 통해 당시의 교회들을 목양했습니다. 하지만 각 방면의 원인으로 인해 그들은 어떤 때에 직접 교회에 갈 수 없어서 서신의 방식으로 그곳의 형제자매들을 목양했습니다. 사실 당시 그 사도들이 쓴 서신은 성경에 기록된 그 내용만이 아니라 그중 많은 서신이 수백 년 동안 전해내려오면서 유실되었습니다. 주후 300여 년 후에 당시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서신이 사람에 대해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이 읽기 편하도록 전해내려온 많은 서신 중에서 일부를 골라 한데 정리했습니다. 위에서 우리는 성경의 유래와 성경이 산생된 배경을 논했는데, 그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비록 하나님 역사의 진실한 정경이지만 어쨌든 하나님께서 이미 하셨던 사역이기에 결코 하나님의 현시의 역사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성경을 본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두 단계 역사임을 다 알고 있다. 성경 구약에 기록된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인데, 창세로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역사하였는가 하는 것이 기록되었다. ……성경에는 신ㆍ구 시대에 여호와ㆍ예수를 섬긴 사람의 경력과 인식이 기록되고 수집되었다. 그러므로 후세 사람이 이 책에서 많은 깨우침ㆍ빛비춤과 실행의 길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저작보다 훌륭한 까닭은 바로 영적 위인의 어떠한 저작도 다 성경에서 취재한 것이며 그들의 경력이 다 성경에서 온 것이고 또한 성경을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사 사람이 어느 한 영적 위인의 책에서 공급받을 수 있을지라도 사람이 숭배하는 것은 여전히 성경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성경이 너무나 높고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비록 성경에 ‘바울의 서신’ ‘베드로의 서신’ 이 부류의 책과 같은 일부분 생명의 말씀의 책들이 수집되었고 또한 사람이 이런 책에서 공급받고 도움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책들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책이고 여전히 옛 시대의 책이다. 그들의 이런 책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한 시기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영원토록 남아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기에 바울ㆍ베드로 그 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고 즉 영원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은혜시대에만 머물러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말하니, 이런 책은 은혜시대에만 적응될 뿐 마지막 때의 국도시대에는 적응될 수 없으며, 은혜시대의 신도에게만 공급할 수 있을 뿐 국도시대의 성도에게는 공급할 수 없으며,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다. 바로 여호와의 창세의 사역처럼, 또 여호와의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처럼,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나갈 때가 있다. 또 하나님의 사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끝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원히 창세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영원히 십자가의 사역에 머물러있을 수도 없다. 십자가의 사역이 어떻게 설득력이 있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효과에 어떻게 달할 수 있든지 사역은 어쨌든 사역이고 시대는 또 어쨌든 시대이다. 사역은 언제나 한 기초에 머물러있을 수 없고 시대도 영구불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창세가 있으면 꼭 말세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필요에 근거해 가장 새롭고 가장 현실적인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며, 하나님이 하신 각 시대의 사역은 여태껏 성경에 근거한 적이 없는데,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께서 이전에 하신 사역에 대해 증언한 것일 뿐이지 결코 사람에게 현실적인 생명 공급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한복음 5:39, 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보다시피, 성경에는 전혀 영생이 없고 더욱이 사람들에게 생명을 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최신 인솔을 따라야만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행할 길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진리, 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생명의 실질을 갖추었고,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생명의 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끊임없이 솟아흐르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한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가져온 것은 장구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는 경로이며,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는 유일한 경로이다. 네가 만약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고 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너는 역사(歷史)의 괴뢰이고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에, 글귀에, 역사의 멍에에 제어된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얻은 것은 몇천 년 동안 지켜온 더러운 물일 뿐 보좌 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수의 공급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영원히 사탄의 노리개이며 영원히 지옥의 자식이다. 이러한데, 그래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는가? 』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오신 것은 생명이고 가져오신 것은 장구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가 바로 오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발하신 음성이고 즉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관념 속에서 나오고 성경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발자취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따르면서 하나님의 최신 인도에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따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형벌과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진리를 얻을 수 있고 가장 현시적인 생명 공급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미경은 도대체 어떻게 응하여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이 크게 진노할 때 온 세상은 이로 인하여 각종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하늘 위에 올라서면 땅 위에 각종 재해가 하루하루 전 인류에게 다가오는 것을 족히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니, 땅 위는 마치 지진 전의 각종 광경과 같다.』

예수님이 성육신 하여 인류를 구원해야만 했던 이유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인류를 구원함으로 구속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신약에서는 왜 성육신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했을까요?

도대체 어떻게 성경을 대하고 사용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 성경의 고유한 가치는 무엇인가?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에서도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도 진입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