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을 믿으면서 절대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경을 떠나면 가짜이고 이단입니다. 이 말이 도대체 성립됩니까?

2018년 10월 31일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39-40)

하나님 말씀 답:

『성경은 역사책에 속한다. 네가 구약 성경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먹고 마시거나, 구약 시대에 요구한 것을 은혜시대에 가져다가 실행한다면, 예수는 너를 버리고 정죄할 것이다.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틀에 맞춘다면, 너는 바리새인이다. …… 예수 시대에, 예수는 당시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에 따라 유대인들을 인도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인도했다. 예수가 행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든 예수는 상관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인도할 때 성경에서 길을 찾지 않았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쳐 주었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예수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한 적이 없었고, 그의 사역과 가르침, 그의 말씀의 권능과 능력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새로운 사역만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구약 성경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넘어섰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했던 사역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일부러 구약 성경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가 온 이유는 단지 자신의 직분을 다하여 자신이 오기를 갈망하고 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기 위함이었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사역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은 성경의 근거 유무를 전혀 고려할 필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구약의 계명과 안식일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이미 구약 율법을 뛰어넘었고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아졌다. 그는 구약 율법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이미 구약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으면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지만, 아직도 성경, 특히 구약의 율법을 내세우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성경은 거룩한 책이므로 반드시 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느 때든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라 폐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어느 때든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너무 그릇되지 않느냐? 예수가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 예수가 죄를 짓기라도 했단 말이냐? 누가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성경에 관하여 1≫에서 발췌

성경에 대하여,성경 문답,

『하나님의 역사는 줄곧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비록 역사의 취지는 변하지 않지만, 그의 역사하는 방식은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이리하여 하나님을 따르는 그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많을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더욱 전면적이고 또한 사람의 성정도 하나님의 역사에 따라 상응하게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변화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사람들,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그 터무니없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역사가 언제나 항상 새롭고 그가 낡은 사역을 중복하지 않고 이전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중복된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의 과거의 역사로써 하나님의 오늘의 역사를 가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매 단계 새 시대의 사역은 전개하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의 애로는 너무나 많다! 사람의 사상은 너무나 수구(守舊)적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또 하나님의 역사를 규정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잃고 진리를 잃고 하나님의 축복을 잃었다. 그러나 사람은 또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더욱이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더 큰 축복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얻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변동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을 고정불변한 것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사역이 언제나 정체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개하고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이 다만 율법 아래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다만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여기며, 하나님이 성경을 초월하지 말아야 하고 성경을 초월할 수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의 ‘여김’은 그들을 단단히 낡은 율법 아래에 박아놓았고 죽은 규례에 박아놓았다.

……

당시에 예수가 여호와의 사역이 은혜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였는데, 마치 오늘 내가 예수의 사역이 뒤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은혜시대가 없고 율법시대만 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고 온 인류를 구속할 수 없다. 만약 율법시대만 있다면,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역사(歷史)는 앞으로 추이하는 것이다. 역사(歷史)가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상 법칙이 아닌가? 온 우주 아래에서 사람을 경영하는 하나의 화폭이 아닌가? 역사(歷史)는 앞으로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앞으로 발전하며, 하나님의 뜻은 부단히 변하고 있다. 그는 한 단계 사역을 6천년이나 지속할 수 없다. 사람이 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기에,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과 같은 한 항목의 사역을 줄곧 연속하여 한번ㆍ두 번ㆍ세 번……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없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사람의 인식법이다. 하나님은 한가지 사역을 지속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부단히 변화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사역이 있다. 마치 내가 너희에게 날마다 새 말씀을 하고 새 사역을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사역인데, 관건은 하나의 ‘신(新)’자에 있고 하나의 ‘기(奇)’자에 있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 규정하는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에서 발췌

『사람이 만일 관념으로써 하나님을 가늠하여 하나님을 규정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상이라고 하는 것처럼 완전히 하나님을 성경에 규정하고 하나님을 유한한 사역에 고정시킨다면, 너희들이 하나님을 정죄하였음을 증명한다. 마치 하나님을 메시아라 할 수밖에 없고 메시아라 하는 분만이 하나님이라는 것처럼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마음속의 형태가 고정된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상(무생명)처럼 삼아 섬기고 경배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사형 판결하였는데, 본래 무죄한 예수가 죽을 죄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무고한 분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놓아주지 않고 억지로 사형 판결하였다. 그리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고정불변한 분이라고 여기면서 성경 한 권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규정하였는데, 마치 하나님의 경영을 꿰뚫어본 듯하고 마치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사람의 장악 중에 있는 듯하다. 인류는 극도로 황당하고 극도로 거만하며, 사람은 모두 호언장담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인식이 얼마나 높든지, 나는 그래도 너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하고 너를 하나님을 가장 대적하는 사람이라 하고 너를 하나님을 정죄하는 사람이라 한다.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역에 전혀 순복할 줄 모르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악인은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에서 발췌

미혹될까 찾고 구하는 것이 두렵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세에 여러 이단과 거짓 진리가 나타나면서 많은 분들이 능동적으로 찾고 구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미혹의 두려움을 버리고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진실로 경배하는 것이란?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형제님 한 분이 꿈에 교회에 갔다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한 자매를 보았는데,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찬양대와 신도들이 함께 찬양을 하는데도 소리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기도하는 것마저도 입술만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형제님은 아주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꿈속의 천사가 말해 주기를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저 형식에 불과하다고 알려줬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이건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의 진실한 모습이다.’라는 것이 저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진실한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자신의 병이 치료받기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가정의 평안과 육체의 누림을 위해서 믿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자신의 사업이 번창하기 위해서 믿고, 또 어떤 사람은 지위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 믿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믿습니다. 우리는 병이 치유됐을 때, 돈과 지위와 권세를 갖게 됐을 때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위해 시간과 힘을 다해 헌신하려고 합니다. 또한 가정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거두어가셨을 때, 재앙이 우리에게 닥칠 때는 소극적이 되고 연약해지고 하나님께 원망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오로지 나에게서 자신의 병을 고침받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의 능력으로 자신들의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인 부를 얻어 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금생에서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서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 평안하기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를 쏟았을 때, 사람에게 원래 있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을 주고 천당의 복을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화를 내었다. 사람이 나에게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혐오했더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더러운 사술을 행하는 술객의 술법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시 거두어 갔을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까닭은 나의 은혜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고, 나를 믿어서 얻는 좋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께 득을 보려 하고 축복을 얻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가정이고 또 돈과 지위와 권세 등등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몸은 하나님 앞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말하지만 행하지 않았습니다. 말에는 거인이지만 행동에는 난쟁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가 그저 형식적인 경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진실한 믿음이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삶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하도록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너에게서 나타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며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너 자신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라,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주로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 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시다시피,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흡족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하루 밤사이에 모든 재산과 아들딸을 잃었고, 그 뒤에는 또 그의 온 몸에까지 악창이 났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칭송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순복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든 재앙을 받든 진정으로 하나님의 배치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어야 진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진실한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비록 당신을 믿고 있지만 그것은 다 자신을 위한 것이고 복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지만, 타락된 성정에 묶여 세상의 것도 내려놓지 못하고, 일이 닥치면 늘 당신을 거역하고 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과 힘을 더해 주셔서 우리가 진심을 내놓을 수 있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든 베풀어주시든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고 경배하게 하소서. 당신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바빠 예배하고 말씀 볼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지금 많은 분들은 일에 바빠 예배하고 말씀 볼 시간조차 없어 주님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복음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복음이란” 쉽게 말하자면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열심히 전하긴 했지만 당신은 복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성경 예언에는 마지막에 영원한 복음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영원한 복음을 위해 우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어하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노아,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그들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땅히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맺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하나님을 믿으면 최소한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없으면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은 것이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모두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것을 통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의심하지 않고 부인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순복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속마음이 바르고 자신을 위해 타산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안배에 순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을 할 때마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고, 설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고 해도 있는 힘껏 자신의 본분과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에 따라 실행해도 늦지 않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요구대로 실행하며,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교회를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으며, 형제자매들의 생명에 유익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덕이 되지 않는 말을 하지 않으며,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지 않고, 하는 일마다 광명정대하고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비록 때로는 육체의 연약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집의 이익을 중요시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공의를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네가 이렇게 실행할 수 있으면,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 된 것이다. 너는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속마음이 올바른지를 검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요구대로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다. 이것은 최저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속마음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올바르지 않은 속셈이 나올 때 그것을 배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정상이 되었고,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일을 할 때마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며, 감정과 자신의 뜻에 따라 일 처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 처리하는 원칙이다. 한 가지 작은 일에서도 사람의 속마음과 분량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려면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속마음을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훈계, 책망, 징계, 연단으로 마땅히 있어야 할 효과를 너에게서 볼 수 있게 된다.』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서 발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영적 노정에 들어서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어서 개인이 바꿀 수 없을지라도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는지는 모두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인지의 여부에 근거해 결정되는 것이다. 어쩌면 너에게 연약한 점과 패역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너의 관점이 바르고 속마음이 올바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정상이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자격이 있게 될 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지 않고 그 관계가 육체를 위하거나 가정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애써도 헛수고이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좋아진다. 하나님은 다른 것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너의 관점이 바른지만 본다.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도대체 누구를 믿는지, 누구를 위해 믿는지, 왜 믿는지 하는 이런 것을 꿰뚫어 보고 관점을 바로잡아 실행할 수 있다면, 너의 생명이 자랄 수 있고 틀림없이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만약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이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치우쳐 있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고 어떤 식으로 믿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네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이어야만, 육체를 배반하고 기도하고 고통받고 인내하고 순복하고 형제자매들을 도와주거나 하나님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하는 등등의 이런 일들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으려면, 우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야 한다. 온 마음을 하나님께 기울인 후에야 점차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마음이 하나님께 있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담을 자신의 부담으로 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고 종교 인사의 소행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체험 중에서 보다시피,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의 영 생활과 사람의 생명이 자라는 문제에 관련된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킨다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비로소 효과가 있게 될 것이다. 네가 부담을 갖고 하나님 앞에 왔기에 늘 자신에게 부족함이 너무 많고, 아직도 알아야 할 진리가 많고 체험해야 할 실제가 많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일들이 늘 마음에 걸려 그것이 너를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내리누르는 듯한데, 너는 이로 인해 마음이 무거워진다(그러나 소극적인 ①정형은 아니다). 이런 사람이라야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부담과 무거운 마음으로 인해, 다시 말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치른 대가와 받은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바꿔 온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고, 마음대로 사람에게 베풀어 주지도 않고, 조건 없이 사람에게 더해 주지도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한 방면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제 삶 속에서 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였고, 최소한 마음조차도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도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별로 큰 변화가 없다고 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만 살면서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기준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부담이 있으며,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고, 진리를 찾고 구하려는 심지(心志)가 있는 이런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야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고, 늘 깨우침과 빛 비춤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시간을 정해 마음을 전념하여 기도하고, 시간이 아무리 촉박하더라도,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날마다 정상적으로 기도하고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도록 하여라.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영 안에 특별히 누림이 있고, 또한 주위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에 방해받지 않으며, 평소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할 때 겉면의 일에 지장받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분량이 있는 것이다. 먼저 기도하는 방면에서 시작하여라. 하나님 앞에 안정하여 기도하면 가장 큰 효과가 있게 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묵상을 통해 깨우침을 얻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말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터득하는 것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된다. 평소에 마음으로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으면, 바깥 사물의 방해를 받지 않게 된다. 네가 마음을 일정한 정도까지 안정시킬 때면 조용히 생각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어 어떤 상황에서든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가까이할 수 있다. 나중에는 어느 정도까지 도달하게 되어 마음속에서 찬미가 흘러나오게 되는데 심지어 기도하는 것보다도 더 좋다. 그것은 일정한 분량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그런 정형에 도달할 수 있으면, 너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안정되었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첫 단계의 기본기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된 후에야 성령의 감동,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과 진실한 교통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를 더듬을 수 있다. 그러면 영 생활의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먹고 마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안정하는 첫걸음이다. 네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안정할 수 있다면,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이 너를 따르게 될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 것에 관하여>에서 발췌 [recommendpost id="19571"]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직접적인 것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기도할 때에 가장 가깝다. 네가 평소에 일을 할 때 곧바로 무릎 꿇고 기도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사람이 무릎 꿇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가깝게 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기도한 다음 다시 본다면 또 다른 느낌이다. 네가 한동안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면 깨닫지 못할 것이고, 다 읽고 나서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사람이 기도를 하는 목적은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다. 네가 늘 기도하고 늘 하나님 앞에 온다면, 늘 하나님과 관계가 있게 되고, 내면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감동이 있고 언제나 하나님의 공급을 받게 된다. 계속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이 변화되고 정형도 점점 좋아지고 가라앉지 않게 된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함께 기도하면, 기도가 끝난 후에 아주 힘이 나고, 얼굴 가득 땀이 맺히며,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사실, 며칠 동안 함께 있으면서 교통한 것은 별로 없지만, 기도로 사람의 힘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가정이든 세상이든, 단번에 다 포기하고 싶어지고,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하나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힘이 얼마나 큰지 보아라!』 <기도의 의의와 실행>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이다. 기도하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성령의 깨우침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이 현재 하려는 것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밝히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행 길이 있게 되어 옛것을 지키지 않게 된다. 실행하는 것은 모두 생명이 자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도는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한바탕 크게 울며 자신의 빚짐을 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을 운용하는 것을 훈련하기 위한 것이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찾고 구하는 것을 훈련하여 사람의 마음이 날마다 새로운 빛에 이끌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며, 소극적이 되지 않고 나태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날마다 새로운 빛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참된 인식이 있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밝히 깨달을 수 있기를 추구하고 모든 일에서 실행의 길이 있기를 추구해야 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는 새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여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고,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움직여 늘 하나님 앞에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이 뒤떨어질까 몹시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이 이런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과 찾고 구하는 마음이 있고 또한 끊임없이 진입하기를 원한다면 영 생활의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향상심이 있는 사람,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려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서 더 깊은 인식이 있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초자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실제적으로 진입하여 자신의 체험을 더 참되게 하고 더 실제적이 되게 하며, 텅 빈 글귀 도리를 추구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느낌 더듬기를 추구하지도 않고 어떤 큰 인물도 숭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정상적인 영 생활에 진입한 것이다. 그가 한 것은 모두 생명에 더욱 진보가 있고, 영 안이 생기 있고 침울하지 않으며, 언제나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영 생활에 관하여>에서 발췌 『네가 그때그때의 빛 비춤을 따르지 못한다면, 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소원(疏遠)해지는데, 심지어 단절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럼 너에게 정상적인 영 생활이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는 하나님의 현재 말씀을 받아들이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너에게는 정상적인 영 생활이 있느냐? 너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가 있느냐? 너는 성령 역사를 따르는 사람이냐? 성령의 그때그때의 빛 비춤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진입할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성령의 흐름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최신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라>에서 발췌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며 생명 진입을 추구하고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항상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규례로 지키더라도 꼭 해야 한다. 시련이 아무리 커도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잃지 않고, 기도하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떠나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를 시련할 때에도 진리를 찾고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영 생활의 최저선이다. 늘 찾고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전력을 다해 협력하고 전신의 힘을 다 써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겠느냐? 이 기초에서 다시 분별에 대해 말하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사람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정형이 정상이면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느끼며, 하나님이 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네가 상태가 좋지 못하다면, 하나님이 한 사역이 아무리 좋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듣기 좋게 말해도 상대하기 싫어진다. 사람의 상태가 비정상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할 수가 없다. 그러면 사람의 성정도 변화될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한 너의 충성심을 지켜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가 없다면 네가 어떻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수호하든,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그것은 사람의 처세 철학에 속한다. 너는 사람의 관점과 철학으로 사람들 가운데서의 너의 지위를 수호하여 사람들이 너를 칭찬하게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다른 사람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네가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정상 관계를 수호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줄 알면 너는 자연히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정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와 다른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기초에서 맺어진 것이다. 육체적인 왕래는 거의 없지만 영적으로는 교통이 있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공급한다. 행하는 그 모든 것은 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기초에서 하는 것이고, 사람의 처세 철학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부담으로 자연히 형성되는 것이다. 너의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 없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대로 실행하면 된다. …사람과 사람의 정상 관계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한 기초에서 맺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과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만 있게 되는데, 그것은 다 비정상이고, 모두 정욕을 방종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만일 네가 너의 영 안에 감동이 있다고 말하지만 늘 네 마음에 맞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좋아하고 늘 네가 중요시하는 사람과 교통하기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이 찾고 구하는데도 너의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오히려 편견을 가지고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사적인 감정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정상 관계가 전혀 없음을 더욱 증명한다. 너는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의 추악한 몰골을 덮어 감추는 것이다. 설사 네가 인식을 좀 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너의 속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네가 하는 것은 모두 인위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어서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는 육체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부담으로 인해 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너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안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 정상적으로 왕래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면 네가 사람과 어떻게 접촉하든 그것은 처세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담을 헤아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정상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에서 발췌 [recommendpost id="18783"]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체험해야 한다. ... 』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1)

『하나님이 시대를 한 번 이끌면 사람은 일부분 해방받게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이 이기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이기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