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하나님의 이름은 왜 바뀌는가

2019년 06월 13일

구약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애굽기 3:15)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로 바뀌었고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 수 있습니까? 그 속에 또 어떤 오묘한 비밀이 있습니까?

저는 이와 관련해 한 권의 책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란 내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할 때 택한 이름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저주하며,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람(하나님 선민)의 하나님이자, 크나큰 능력을 지닌 지혜가 충만한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예수’란 본래 임마누엘을 가리키며,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사람을 속량하는 속죄제를 의미한다. 예수는 은혜시대 사역을 행했고 은혜시대를 대표하지만, 경륜의 일부 사역만 대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여호와만이 이스라엘 선민의 하나님이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다. 또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 족속을 제외하고는 모두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그를 위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성전 안에서 제사장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들이 소망하는 것은 여호와의 재현이다. 오직 예수만이 인류의 구속주이고, 인류를 죄에서 속량한 속죄제이다. 다시 말해,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에서 비롯된 이름이고, 은혜시대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름이다. 예수란 이름은 은혜시대의 사람들이 거듭나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생겨난 이름이고, 온 인류를 속량하기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그러므로 ‘예수’란 이름은 구속 사역을 대변하고 은혜시대도 대변하는 이름이고, ‘여호와’란 이름은 율법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생겨난 고유한 이름이다. 각 시대, 각 단계 사역마다 내 이름은 대표적 의의가 있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의의는 바로 이름마다 한 시대를 대변한다는 것에 있다. ‘여호와’는 율법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일컫는 존칭이며, ‘예수’는 은혜시대를 대변하며, 은혜시대에 속량받은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시는 사역과 본 시대에 나타낼 성품을 근거로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이름을 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름은 그저 한 시대의 한 단계 사역, 그리고 하나님 성품의 일부만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고 본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 불렀으며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율법시대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율법을 반포하여 사람이 땅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사람들이 땅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을 받았고 만일 율법을 어기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거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은 공의와 위엄의 성품을 나타냈고,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한 것은 곧 율법을 반포한 하나님의 사역 및 그가 나타내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시대 말기가 되어 인류는 갈수록 깊이 타락하여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어겨 징벌을 받고 정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친히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은혜시대를 여시고 구속 사역을 행하심으로써 인류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자비의 성품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죄 속에서 구속해 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만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에 고유한 하나님의 이름이며 은혜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을 대변하고, 또한 은혜시대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셨던 이전 두 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사역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에 취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대표성을 띠고 있고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은 본 시대의 사역 및 본 시대에 나타내신 모든 성품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시대를 여시고 이름으로 시대를 바꾸십니다. 즉, 시대가 바뀌고 사역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은 이름을 바꾸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사역의 원칙입니다. 비록 인류를 구원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로 불린 적이 있고 또한 예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영원히 하나님이시고 시종일관 한 분의 하나님께서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직업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학생들은 그를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나중에 그가 직업을 바꾸어 의사가 되면 ○○ 의사라고 부릅니다. 또 만일 그 사람이 사장이 되면 ○○ 사장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떻게 부르든 그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사람은 동일한 것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부르는 그의 호칭도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사역의 변화와 시대의 전환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이름으로 사역을 전개할 때, 그분의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여야만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으며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키고 불렀습니다. 율법시대의 사역이 몇 천 년이나 지속되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자 하나님의 이름도 그에 따라 예수로 바뀐 것입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시대와 사역이 달라짐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만이 자신들의 하나님, 즉 그들만의 구주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이사야 43:11)라는 말을 대대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속 사역을 했을 때 그들은 미친 듯이 정죄하고 대적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극악무도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세에 다시 오셔서 각기 종류대로 나누는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라는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자비와 긍휼의 성품을 나타낸다면,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말세에 하나님도 사역의 필요에 따라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한결같이 자신의 관점을 견지하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바뀌지 않고 여전히 예수로 불린다고 여긴다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여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은 바뀔까요? 아니면 여전히 예수님이라고 불릴까요? 계시록의 예언입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시록 3:12) 여기에서 ‘새 이름’을 언급했는데, 새 이름이란 전에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의지하여 구원받게 해 주신 이름이고, 아울러 예수라는 이름은 은혜시대 사람들에 의해 2천년 동안 불려졌습니다. 만일 계시록에 예언된 새 이름이 여전히 예수라면, 또 어떻게 새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서 새 이름이라고 말했으니 틀림없이 이름이 또 바뀐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을 보며, 계시록 1장 8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계시록 11:17) 또 19장 6절 등 여러 곳에 말세에 하나님은 ‘전능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언에서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전능자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교제를 통해, 말세에 하나님이 다시 오시면 그분의 이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해야 합니까? 이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바라는 모든 형제자매가 신중하게 대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는 무엇을 뜻하는가

성경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죽은 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또 어떻게 부활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재림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실까요?

최근 몇 년간, 인터넷에서도 예수님이 벌써 2번째로 성육신하여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게 하는 사역을 하신다는 간증들이 나돌고 있는데, 이 소문은 종교계를 들끓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 대해 댓글을 달았습니다. “4복음서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영체가 사람들 가운데서 40일 나타난 후 하늘로 돌아가실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라고 말했다고 분명히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영체로 돌아가셨기에 재림하실 때에도 당연히 영체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육신으로는 오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성육신으로 재림하실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오실 거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관점은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나타나 역사하실까요? 저도 정말 곤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많은 예언들이 이미 다 이루어졌고 말세가 도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와서 사역하는 지를 모른다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한 저는 그 답을 찾으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문하였습니다. 마침 주님께서 예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Peter 형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는 주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는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저는 Peter형제가 식견도 넓고 빛비춤이도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곤혹스러운 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의 말을 다 들은 Peter 형제는 “지금 많은 형제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영체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주님께서 영체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도 있지만,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는 예언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17:24-25) 이 말씀에서도 모두 ‘인자가 오리라’ ‘인자가 강림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라고 하면 곧 사람에게 나서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영체라면 ‘인자’라고 칭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은 정상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이 구절에서 그 점을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영체로 온다면 영체는 특별히 비범하고 위대하여 사람이 영체에 대해 개념도 없고 접근할 수도 없는데 고난을 받는 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육신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만 되는데, 그의 외모가 평범하여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관념이 생기게 되니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논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은 성육신으로 온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Peter 형제가 성경과 결부하여 교통해 주는 것을 듣고 그제서야 저는 성경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음도 환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성경을 많이 보았는데 왜 그때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이때 Peter 형제가 “이 형제님,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물어 보았는데 저는 “네, 알아들을 수 있어요.”라고 기쁘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눠 봅시다. 사실 우리가 주님께서 왜 성육하여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는지 이 방면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한 데 대해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에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피조된 사람의 외형을 취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역시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전혀 그에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육신에 가져와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친히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보고, 나아가 그의 도를 얻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성육신되지 않았다면, 혈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당할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는 연고로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혀 갈 것이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한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신다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공급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성경에도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20:18-19)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요12:28-29) 이 말씀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말을 할 때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더듬을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감에 떨려 하나님 앞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역사하실 때 발표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위엄이고 진노의 성품입니다. 율법시대처럼 사람이 죄를 범하기만 하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거나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사탄에게 패괴된 우리는 날마다 사탄의 성정을 유로하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하나님을 거스려 하나님께 격살당하게 되므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됩니다. 반대로, 성육하신 하나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성의 각도에서 진리를 발표하고 신성의 언어를 알아듣기 쉬운 인성의 언어로 전환하여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을 더 잘 알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패괴 성품이 유로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패역과 패괴를 인식할 수 있고 제때에 악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고, 우리가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와 권유와 믿음의 힘을 더해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한 것은 사람에게 이롭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을 더 잘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Peter 형제의 말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 주님께서 영체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이라고 줄곧 자신의 상상과 관념속에서 살아 왔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주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패괴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인자로 그가 발표하신 말씀은 다 인류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인성 언어입니다. 예를 들면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들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다가가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래에 재림하여 더 많은 진리를 발표하고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영체의 방식으로 이 사역을 하신다면, 하나님의 영은 가장 위대하고 성결하신데 우리가 매일 범죄하고 죄를 뉘우치는 삶을 살고 또한 죄의 속박에서 살며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해 반드시 하나님께 격살당할 것이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인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심판하고 정결게 해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 성결해 질 수 있습니다!” Peter 형제의 말에 저는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Peter 형제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형제님이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진리를 발표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것을 제외하고 것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곧 말세에 양과 염소를 분류하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상선벌악의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영체로 역사하게 되면 사람마다 하나님께 공손하며 아무도 대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사탄의 무리도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의 증거가 없게 되고 선과 악도 가를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책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부각에 의해 비로소 사람의 원래 관념이 다 드러나게 되었는데, 성육신 하나님과의 대조가 없었더라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에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적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성육신하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겸손하게 찾고 구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얻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고 말씀했는데 이렇게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시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마다 다 자신이 가장 충심이 있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장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주님의 재림이신 성육신이 평범하고 실제적이기 때문에 사람 안의 관념과 상상, 패역과 대적을 전부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역사하실 때 바리새인과 일부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의 평범한 모습에 예수님을 보통 인간으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논단하고 대적하고 정죄하며, 또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예수님이 발표하신 진리를 전혀 찾고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요한, 나다나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았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의 가르침을 지켰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역사하는 것은 양과 염소를 드러내고 선한 종과 악한 종을 드러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운 성품을 충분하게 나타냈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을 듣고 저의 마음은 많이 설렜습니다. 예전에는 주님께서 재림하면 상선벌악하시고 양과 염소를 분류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역사하는지는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에야 비로소 주님은 인자인 사람의 모습으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여 매 사람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검증하고 이것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우시고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가늠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잠시후에 Peter 형제가 말씀 한 단락을 보내 주었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였는데,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한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성육신 하나님은 더 이상 속죄제가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 온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그리하여 죄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정이 변화되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 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Peter 형제는 이 말씀으로 저와 교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성육신한 것은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위해서인데 그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철저히 정결게 하고 변화되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려는 사람들을 다 얻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하는 사역을 하시어 나중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된 사람들을 아름다운 거처에 처소로 데려 갑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두 번의 성육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경영 계획을 완성하였고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지 않습니다.” Peter 형제의 교통과 하나님이 발표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속의 의혹이 완전히 해결되었고 또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은 시대를 끝마치는 사역이고, 이미 성육신의 의의를 온전게 하였으며 더 이상 세 번째, 네 번째로 성육신하여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

말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된 것만 해도 200곳이 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죄 사함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왜 말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말세에 어떻게 심판 사역을 하는지 알아보고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예수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생겼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런 모습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일’은 정말 이뤄질 수 있는가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된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울이 한 말이고,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들림받는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신자들은 세례를 받고 나면 새사람으로 거듭나서, 주님의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구원의 은혜도 받았지만 여전히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심판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계시록 20장에는 주님이 마지막 날에 심판을 하신다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지막 날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에 대한 상상과 추측을 갖게 되는데, 아래 형제자매님들의 교재를 통해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길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3가지 근거, 알고 있습니까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들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의 여부에는 3가지 근거가 있는데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