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매일 드리는 기도 – 오늘도 주님과 대화를 하셨나요

2018년 09월 25일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성경 구절을 빌어 며칠 전 인터넷에서 봤던 이야기를 우선 나누고 싶다. 아주 바빠서 늘 기도할 시간이 없었던 한 신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기도문을 써서 벽에 걸어 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주님께 자기가 너무 바빠서 기도드릴 시간이 전혀 없으니 주님이 알아서 보시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여러분도 내가 처음 봤을 때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습은 확실히 주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님들의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를 소홀히 할 때가 아주 많다.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대충 형식적으로만 할 뿐이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실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적당하지 않은 예를 하나 들자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면 분명 무슨 말이든지 다 이야기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때가 없을 것이다. 반면에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없다면 ‘말이 통하지 않아 한 마디 말도 많다’고 여겨질 것이다. 사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정상적인 기도와 교제가 없다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어떻게 정상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정상적인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은 또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기도는 크리스천으로서 매일 꼭 해야 하는 영적 수련 방식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의 의의를 모르기 때문에 기도를 별도의 부담으로 여기고, 심지어 짐처럼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과 협력하는 경로이고,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사람이 하나님 영의 감동을 받는 과정이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기관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기도가 없으면 정상적인 영 생활을 할 수 없고, 더욱이 성령의 역사를 따를 수도 없다. 또한 기도가 없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기도가 많을수록, 즉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을수록 그런 사람은 더욱 심지가 있게 되고, 더욱 하나님의 가장 새로운 깨우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만이 성령께 빨리 온전케 될 수 있다.』

기도하는 시간,주님과 대화하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방식이며, 하나님의 영과 접촉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에 접촉할 방법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무릇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깨우쳐주시어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될 수 있게 하신다.

생각해보면, 당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리고 성을 공격했던 것도 기도를 통해서였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던 것도 기도를 통해서였다. 내 실제 체험에서도 느꼈었다.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나 간파하지 못한 일이 많을 때 기도를 하면 어느새 깨닫고 있고,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위험이 닥치고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진다. 체험을 통해 기도의 깊은 의의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

만약 당신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속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면 당신도 분명 기도의 위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기도의 의의를 깨닫는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과 가깝게 지내기를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말씀이 육신 되어 인자로 사람에게 나타나셔야 합니까?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그의 역사하는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착한 일을 해서 덕을 쌓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솔이 없으면 설사 통치자거나 사회학자가 모두 머리를 짜서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도 인류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울 수 없다. 그것은 어느 한 사람도 사람의 생명으로 될 수 없고 어떠한 사회 논조도 사람의 공허함의 괴롭힘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받아들여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되어야지, 한 지경에만 정지되어 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 사역에 정지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그 패역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모두 완성된 것을 뜻하나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된 것을 뜻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다 이루었다”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정확할까요?

세상은 왜 어둡고 사악합니까? 인류가 극도로 패괴되면 훼멸되어야 합니까?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기능을 잃게 되어, 모두 하나님을 거역하는 원수로 되었다. 사람이 모두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면서 사탄의 지배를 받으므로, 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서 역사할 수 없었고 더욱이 피조물의 경외도 받을 수 없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니, 본래는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배치되면서 사탄을 경배하였으니, 사탄이 사람 마음속의 우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지위를 잃었고 즉 사람을 창조한 의의를 잃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해야만 구원받고 온전케 될 수 있습니까?

『진리를 추구해야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바이고 이런 일을 모두 꿰뚫어보아야 한다. 진리를 너무 적게 깨달으면 쉽게 착오가 생기고 치우친 길에 들어선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이루었다”라고 하실 때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대가로 전 인류를 구속하는 역사를 하시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하면 주님을 따르는 형제자매들은 다 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을 믿고 나서 평안과 기쁨이 생겼다면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가정과 생활과 사업에서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주님께 기도하여 해결받으면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 치유되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을 값없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는데,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와 축복뿐일까요? 요즘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은 숨어 있을 때도 있지만 그런 사랑이 우리의 영적 생명에는 유익한 점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널리 알려진 믿음의 아버지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 아들 이삭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볼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풀어 주신 아이이고 또한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이니 아브라함이 그 무엇보다 이삭을 사랑한 것은 틀림없었을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선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어. 하나님께선 이삭이 자란 후 번제로 바치게 하시면서 왜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주셨을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뜻은 뭘까?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알아야 할까?’ 나중에 저는 영적 서적을 보고서야 곤혹이 풀렸습니다. 그 책에서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한 때부터,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정말로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그 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보았다. 이전에 아브라함이 어리석었고 무지했으며 하나님을 오해했다 할지라도, 이때만큼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진짜였으며 진실했다. 아브라함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삭을 ― 그의 아들을 ― 하나님께 돌려드리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순종을 보았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한 것이었다.사람이 봤을 때, 하나님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기이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지배하고자 할 때, 이 ‘지배’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이자, 하나님의 검증인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때, 바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요구에 ― 이삭을 바치라는 것에 ―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인류에 대해, 즉 자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참으로 안심하였고, 그를 진정으로 인정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그 사람이 자신의 약속과 앞으로의 경륜을 맡아서 실행해 나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주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다.』 이런 말씀을 통해 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게 한 일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하나님 경영 계획의 선도자로 택하셨기 때문에, 즉 아브라함에게 약속과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시련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말 칼을 들어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즉, 아브라함이 진실로 순종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할 때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마음이 참되고 정직하다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흡족해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은 정말로 이삭의 목숨을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소중히 여기셨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얻으셨을 때 시련은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 마음을 놓고 인정하신 후에야 그에게 더 큰 부탁을 맡겨 줄 수 있었고, 또 아브라함이 구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크나큰 축복을 베풀어 주실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6~18)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 책에는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준 일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이유 하나로 하나님은 그에게 이처럼 큰 복을 내렸다.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이 일은 아주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를 귀히 여기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진심을 보이는 자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보기에 이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로 하나님께 드린 가장 진귀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이 ‘제물’은 하나님이 그토록 힘들게 기다렸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제물을 처음 피조물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선물로 간주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과 순종을 보셨을 때, 마음이 기뻤고 감동받았으며 또한 매우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현재 아브라함의 후손은 온 땅에 가득합니다. 이스라엘만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 몇 십 개 나라들도 모두 그의 후손인데, 여기에는 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마다 그 속에는 다 하나님의 계획과 고심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련하신 이 일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와 바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시면 그 사람에게 부탁이 있으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하실 때 시련을 통해 그 사람의 진심과 순복을 검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 우리에게는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난처하게 하고 고생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역사를 잘 받아들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에 대해 진심과 순복이 있어야 시련을 거쳐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또 모세가 광야에서40년 양을 방목한 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광야는 기후도 아주 나쁜 데다가 야수까지 출몰하고 게다가 광야에는 사람도 없는데 모세 혼자 동반자도 없이 40년 동안 양을 방목했으니, 매일 양 말고도 별과 달과 마주한 그 날들은 틀림없이 아주 고생스러웠을 거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왜 모세를 광야에 있게 하셨을까? 그것도 40년이나 말이야.’ 그 책에는 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혼자 어떻게 광야에서 40년을 생존하였을까? 참된 믿음이 없다면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 하나님에 대한 이런 참된 인식이 있으면 그 믿음은 어떠냐? 크지 않으냐? (큽니다.) 하늘을 찌를 만큼 크다, 그렇지? 그러므로 모세가 광야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였느냐? (모세에게 애굽 왕 바로를 찾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 위해 먼저 그의 믿음을 연단하였다. 보아라, 하나님은 말씀을 하지 않았고, 사역을 하지 않았으며, 진리를 공급하지 않았고, 설교도 하지 않았다. 또한 모세에게는 책과 서류들도 없었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그저 혼자 광야에서 지내왔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은 모세의 참된 믿음을 이루었다. 그럼 하나님은 왜 그 일을 했을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일을 맡기려고 하였고, 그를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크게 쓰려고 했고,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모세를 단련시켰다. 무엇을 단련시켰느냐? (믿음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얻으려고 했던 것이지, 단련시킨 것이 아니다. 무엇을 단련시켰느냐? (모세의 의지와 의지력을 단련시켰습니다.) 그렇다, 의지력이다.』 이 말씀을 보고서야 저는 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양을 방목한 거기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열악한 환경을 통해 모세의 믿음을 연단하고 또 그의 내면에 있는 열심과 좋은 마음과 혈기에 속하는 것을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래야 그를 크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의 그런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은 고통스러운 환난을 겪어야 생기게 됩니다. 안일한 상황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는 게 쉽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참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다 압니다. 반대로 열악한 상황에 있을수록, 마음의 고통이 클수록 하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지고, 고통스러울수록 힘껏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며, 또 그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진실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있게 하신 것이 사람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으로 모세를 단련시켜 그에게 참된 믿음과 의지력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하여 그러한 조건을 갖추게 한 뒤에야 하나님은 모세를 크게 써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중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오면서 부딪힌 여러 가지 고난과 시험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의지력으로 인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께서 주신 부탁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도 증명되다시피, 오직 모세만이 그 중임을 감당할 수 있었고, 그 부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모세가 비록 연단의 고통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아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또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고, 또한 그를 120 살까지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매사마다 겉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들고 때로는 우리로 고통받게 할 때도 있지만 그 뒤에는 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온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저는 우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깊고 크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우리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해도 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실질이 사랑이기에 우리를 괴롭히거나 혹은 일부러 우리를 고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매사마다 다 하나님의 계획과 고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런 깨달음이 있었을 때, 저의 마음은 감동으로 차 넘쳤습니다. 저는 하나님에 대한 진심과 순복이 너무 적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으로 인해 저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짐을 느꼈고,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사람의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더욱더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멘! 이묘

성경의 서신은 모두 사람이 쓴 것인데, 만일 사람이 한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이 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사람은 언제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여기기를,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것만큼 말씀하였고 성경의 그렇게 많은 말씀은 모두 하나님이 말씀한 것이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여기기를, 신구약 66권의 모든 책은 비록 사람이 쓴 것이지만 모두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이 한 말씀의 기록이라 한다. 이것은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터득법이며, 사실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