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ble Reading Made Easy

임신 7개월 된 그녀가 갑작스런 강도의 납치를 당한 후…

2019년 04월 17일

“움직이지 마. 조용히 해! 내 말 안 들으면 너희 둘은 죽은 목숨이야!” 흉악한 강도가 날카로운 칼을 들고 무방비 상태의 임산부를 협박했습니다….

이건 십여 년 전 리아이가 겪었던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후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 가득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만약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지켜 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땐 2006년 10월이었습니다. 리아이와 남편은 외곽에 집을 샀습니다. 하지만 남편 회사와 너무 멀어 그 집을 세를 주기로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장을 열 예정이라고 말한 한 중년 남성이 가족들이 와서 살 거라며 집을 빌리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의 만남 끝에 가격을 정하고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리아이와 중년 남성은 그녀의 집에서 계약서에 서명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에 서명하려던 순간 리아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년 남성은 리아이를 작은 방으로 끌고 가 무방비 상태의 그녀에게 갑자기 날카로운 칼을 꺼내 배 속의 7개월 된 태아를 향해 칼을 들이대며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움직이지 마. 조용히 해! 내 말 안 들으면 너희 둘은 죽은 목숨이야! 나는 원래 이런 일을 하던 사람이야. 감옥도 몇 번 들락거렸다고.” 리아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너무 놀랐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드라마,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실제로 자신에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조금 전까지 온화하게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차가운 살인마로 변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리아이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고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끝이야. 난 죽고 말 거야. 정말 날 다치게 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이렇게 생각한 리아이는 태중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겁먹지 않은 척 남성에게 말했습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어머니께서 아시면 얼마나 속상해하시겠어요. 당신도 부모로 될 때가 있잖아요. 절대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될 짓을 해서는 안 돼요….” 리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년 남성은 조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흥!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는 말하면서 리아이를 구석으로 몰았고 리아이가 벽에 등을 대고 서게 했습니다. 그리고 리아이에게 삿대질하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휴대폰 내려놓고 두 손 들어. 거기 서서 움직이지 마!” 리아이는 두려웠습니다. 이 강도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었습니다. 강도의 화를 돋우지 않기 위해 리아이는 할 수 없이 그가 말하는 대로 했습니다. 휴대폰을 바닥에 내려놓는 그 순간 리아이는 더욱 긴장됐습니다. 왜냐하면 휴대폰은 리아이가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마저 강도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리아이는 어떻게 도움을 청한단 말입니까? ….

리아이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강도는 험상궂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알아서 잘해. 집에 있는 모든 은행 카드 다 가지고 나와!” 강도는 칼을 든 채로 리아이를 따라다녔으며 험악한 눈빛으로 계속 리아이를 쳐다봤습니다. 돈과 목숨 사이에서 리아이는 자신과 아이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은행 카드를 순순히 강도에게 넘겼습니다. 리아이는 돈을 주면 아무 일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은행 카드를 받아 든 강도는 리아이의 손을 뒤로하고는 주머니에서 밧줄을 꺼내 리아이의 양손과 양발을 꽁꽁 묶었습니다. 리아이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습니다. 이어서 강도는 주머니에서 반짝하고 빛을 내는 작은 칼을 꺼내 리아이의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행 카드 비밀번호 불어. 나한테 거짓말하면 내가 돌아와서 너희 모자의 목숨을 모두 가져갈 거야. 내 칼 한 방이면 두 목숨이 날아간다고! 잘 생각하고 대답해!” 강도의 칼이 자신의 배로 향한 모습을 본 리아이는 두려운 마음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지? 어쩌지? 만약 저 사람이 정말 칼을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우리 모자는 죽은 목숨일 텐데. 누구도 우리를 구해줄 순 없는 건가?’ 당황한 마음에 어찌할 줄을 모를 때 문득 평상시 엄마와 언니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로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고 했던 말도 떠올랐습니다. ‘맞아.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야. 곤경에 빠졌을 때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내가 의지할 곳이야. 나는 하나님께 의지해야 해!’ 이렇게 생각한 리아이는 서둘러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무척 두렵습니다. 저와 아이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세상만사를 배치하십니다. 저도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부디 제가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기도드린 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두려움을 제거하라. 내가 너의 뒷받침이 되는데 누가 길을 가로막으랴? 꼭 기억하라! 꼭 기억하라!』그때 권능과 위력을 가진 하나님의 말씀이 리아이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습니다. 리아이는 생각했습니다. ‘맞아. 하나님만이 나의 의지처이고 피난처야. 하나님께서 나를 든든하게 지켜 주고 계시니 그 누구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어. 나와 아이의 목숨은 모두 하나님에게 달렸어. 그리고 강도 역시 하나님의 수중에 있어.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는 내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 나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져야 해. 하나님께 의지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해야 해!’ 하나님의 말씀은 리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리아이는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긴장했던 마음도 서서히 평정을 찾았습니다. 그때 리아이는 냉정하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디모데전서 6:8) 재물은 원래 몸 외의 것입니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모자의 안녕이고 태아가 놀라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렇게 생각한 후 리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비밀번호를 강도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강도는 은행 카드와 비밀번호를 알게 된 후 착한 척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은 언제 와?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때 리아이는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리아이는 계속 하나님께 가호를 빌며 사탄의 계략을 꿰뚫어 보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때 리아이는 현재 집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통장에 있는 돈이 얼마 되지 않고 방금 강도가 가져간 은행 카드에 약 13만3천 원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깟 돈으로는 강도의 욕심을 채울 수 없습니다. 만약 정말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면 강도는 자신과 태아를 인질로 삼아 남편에게 돈을 갖고 오라고 협박할 게 분명했습니다. 그럼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리아이는 사뭇 긴장되었고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으며 강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성을 잃은 강도는 천을 리아이의 입에 넣고 테이프를 붙인 후 모든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그고 도망갔습니다.

리아이는 작고 답답한 방에 갇혀 고독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다 첫 번째 임신한 아기가 산소 부족으로 유산된 일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입과 코가 막혀 있고 문과 창문까지 굳게 닫혀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 오래 있다 보면 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도 숨 막혀 죽을 것 같았습니다. 고통과 무기력함 속에 리아이는 하나님께 가호를 빌었습니다. ‘하나님, 혹시 태아가 산소 부족으로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리고 강도가 은행 카드에서 돈을 찾은 후 얼마 되지 않다며 다시 돌아와 저희에게 위협을 가하진 않을지 걱정됩니다. 하나님, 저와 태아의 생사가 모두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보살펴 주소서!’ 기도드린 후 리아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만유의 머리, 전능한 하나님이 보좌 위에서 왕권을 잡고 우주와 만유를 주관하며 지금 온 땅에서 우리를 인솔하고 있다. 시시로 그와 가까이하고 안정하여 그의 앞에 와서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 수시로 배울 공과가 있다. 주위의 환경과 인ㆍ사ㆍ물(人ㆍ事ㆍ物)은 다 보좌의 허락이 있으니 절대 원망의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부활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믿음이 부족하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 진실한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 감미롭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특효약이다! 마귀와 사탄을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 말씀을 더듬으면 의탁할 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효과 빠르게 마음을 구한다! 만사는 전무하고 모든 것은 평안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한번 리아이에게 믿음과 힘을 주셨습니다. 리아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온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겪은 이 상황 역시 하나님께서 주재하심을 믿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던, 리아이와 태아가 모두 죽는다고 해도 절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리아이는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겠다며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드린 후 두려웠던 마음이 평정을 되찾았고 문득 문고리를 이용해서 입의 테이프를 뜯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정상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리아이는 천천히 문으로 기어가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떼어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창문으로 기어가 머리로 창문의 손잡이를 움직여 온 힘을 다해 창문을 열었고 그렇게 산소 부족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때 리아이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힘임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혼자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리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리아이는 창틀에 앉아 창밖의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하늘도 점점 어둑해졌습니다. 건너편 병원은 6시 정각에 불이 켜집니다. 리아이는 두세 시간만 지나면 남편이 오니 몇 시간만 무사히 넘기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부가 급하게 리아이의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리아이가 있는 작은 방문과 맞은편 화장실 문 사이에 밧줄로 묶여 있는 것을 보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20여 분이 지나자 경찰이 와서 문을 열었습니다. 제부가 리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처형한테 계속 전화를 했는데 안 받길래 형님한테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형님이 오늘 10시가 넘어야 집에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고 너무 불안해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나 걱정됐어요. 그래서 그냥 한번 와 봤어요.” 제부의 말을 들은 리아이는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더욱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부의 마음을 움직여 제부가 집으로 달려왔던 것입니다.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 리아이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임신 7개월 차 임산부가 아무 문제없이 강도 사건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가호 덕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생명이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세상 만물은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모두 하나님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주재하십니다. 사람의 마음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배치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리아이는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실제로 느꼈습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리아이에게 빛을 비춰 주셨고 믿음과 함께 침착하게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용기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혜를 주시고 리아이와 태아가 무사히 곤경을 넘기도록 모든 것을 배치하셨습니다. 리아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확실히 봤고 자신을 이끌어 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아이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외곽 지역에서 돌아온 후 리아이는 참으로 감개무량했습니다. 짧은 몇 시간 동안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습니다. 하나님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자신과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였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서 남편이 퇴근 후 돌아왔습니다. 리아이는 오늘 겪었던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모자의 무탈한 모습을 본 남편은 리아이를 꽉 껴안은 후 감격에 겨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가호와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아무 일도 없다니 다행이야!” 그 후 리아이와 남편은 뉴스에서 납치 사건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도는 한 아이를 인질로 잡아 아이의 부모에게 약 1억6천7백만 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습니다. 아이는 손발이 묶인 채로 외딴곳의 허름한 집에 갇혔습니다. 놀란 아이는 울부짖으며 불안에 떨었고 계속 울며 엄마와 아빠를 찾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리아이는 오후에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이끌어 주지 않았더라면 리아이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 두려움에 떨며 고통 속에 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뉴스를 본 후 리아이의 남편은 감격에 겨워 말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당신을 지켜 주셨어! 요즘 집 문제 때문에 한동안 예배도 못 갔지? 내일은 형제자매님을 찾아가 봐. 착실하게 하나님을 믿어야 해!” 남편의 말은 리아이를 일깨워 주었고 리아이는 집을 새로 산 후 한동안 집 문제를 처리하느라 영적 생활과 예배를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고 하나님과도 멀어졌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도 리아이에게 위기가 닥쳐왔을 때 하나님의 가호를 빌고 하나님을 앙망하자 하나님께서 리아이와 함께해 주셨고 말씀으로 리아이를 이끌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리아이에게 믿음을 주시어 리아이가 공포와 두려움에 떨지 않고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강도를 대하며 자신과 태아도 지켜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리아이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정말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참회와 자책이 리아이의 마음속에서 떠올라 리아이는 뉘우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후 리아이는 정상적으로 예배에 참여했으며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리아이는 남은 생과 아이의 일생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과 아이의 모든 것을 배치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리아이의 남편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본 후 하나님나라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리아이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감사드렸습니다.

“엄마, 식사하세요!” 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리아이는 오래전 기억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리아이는 귀여운 아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눈 깜짝할 새 십여 년이 흘렀고 이 몇 년 동안 하나님께서 줄곧 가족들을 보살펴 주시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아이는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날들이 평안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이탈리아 리아이

행복한 부부, 화목한 가정이 되려면

내가 열두 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성년이 되었고, 그 후 아버지가 정해주시는 대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무식할 뿐만 아니라 욱하는 성질까지 있다는 걸 결혼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집안의 시시콜콜한 일들로 인해 늘 쉴 새 없이 다투곤 했다. 딸이 막 2학년이 되던 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자, 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나는 아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 무식한 여자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집을 새로 지었고, 나도 돈을 빌려 낡은 우리 집을 허물고 집을 새로 지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살 수 있는 집을 왜 새로 지어야 하느냐’ 며 반대하였다. 나는 입이 닳도록 설득해보았지만 아내는 여전히 반대하였고, 우리는 이 일로 인해 또 반 년 동안을 다투며 살았다. 서로 마음이 좀 누그러졌을 때,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가장이고, 당신보다 내가 아는 것도 더 많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데, 당신은 왜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그러자 아내가 지지 않고 말했다. “왜 내가 항상 당신 말을 들어야 돼? 당신은 나를 이해해주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와 아내는 서로 아무도 지려고 하지 않고, 짧게는 사흘에서 닷새, 길게는 십여 일을 서로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하며 지내곤 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보며, 난 늘 하늘을 원망하곤 했지만, 이혼을 하자니 아이가 불쌍했고, 안 하자니 일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2012년, 친구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고, 인간을 정결케 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시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타락을 드러내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타락된 성품도 해결해 주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만 하면, 우리 부부의 다투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아내와 반평생을 다투며 살았는데, 만약 하나님을 믿어서 우리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고, 그 후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형제자매님들과 자주 함께 모임을 갖고 교통하였다. 어느 날, 나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다. 『부부 사이에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함께 생활하지 않았고 또한 똑같은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몇 년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적응된다. 서로 얼마간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인성이 정상적이라면 늘 서로 마음속 말을 나누게 된다. 생활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거나 직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고 자신이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이후에 어떻게 처리하려고 계획한다거나 네가 직장에서와 아들딸을 대함에 있어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 모든 일을 그에게 말한다면 서로 매우 가깝고 마음을 잘 알지 않겠느냐? 만일 그가 지금까지 너와 마음속 말은 하지 않고 돈을 벌어다 주면 그만이고, 너도 지금까지 그에게 마음속 말을 하지 않고 흉금을 터놓지 않는다면 서로의 마음에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 틀림없이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너와 거리가 있고 너도 그와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너는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도 네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지 못하며, 너는 그의 필요를 모르고 그도 너의 요구를 모른다. 말의 소통이 없고 심령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 수 없고 서로 공급하거나 도와줄 수 없다.』 하나님은 내가 아내와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원인이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내와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 여태 아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고, 아내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했으며, 여태 한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줄을 몰랐다. 그저 상대방에게 내 말을 따르게만 하고 싶었지, 상대방의 고충은 헤아려 본 적이 없었다. 다툼이 생기면 그게 모두 상대방의 잘못이라고만 여겼기에, 우리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멀어졌고, 갈등은 더욱 더 커졌다. 나는 이 말씀을 아내에게 보여주었고, 아내는 이 말씀을 보고 머리를 연신 끄덕이면서, “하나님 말씀이 모두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시는 것 같아, 우리 두 사람 정말 그렇잖아. 그럼 이후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서로 ‘속마음 털어놓기’를 본받아,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실행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다시 다투게 되지는 않을 거잖아” 라고 말했다.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나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핸드폰 문자를 보려고 이리저리 안경을 찾았다. 아내는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는 나를 보고 책망을 하였다.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은 안 보고, 왜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다 낭비해버리는 거야. 그러려면 채소밭에 가서 채소나 따 와!” 아내의 명령조 지적에, 화가 난 나는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며, 밖을 나갈 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작은 의자를 발로 확 차서 넘어뜨리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채소밭으로 가버렸다. 마음속으로, ‘나처럼만 잘해 보라지, 집안 일에 바깥 일까지 죄다 도맡아 하는 내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날 조금이라도 존중하기는 하는 거야?’ 나는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채소를 따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이 화를 낸 것은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것임을 깨닫고, 곧바로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하였다. 기도를 하고 나자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 떠올랐다. 『사람은 일단 지위가 있으면 종종 정서를 자제할 수 없어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분풀이하고 불만을 털어놓으며, 기분 풀기를 좋아하고 항상 공연히 화를 내며, 당신의 능력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그의 신분과 지위가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지위가 없는 타락된 인류의 정서도 항상 통제력을 잃는데,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항상 자신의 이익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타락된 인류는 당신의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정서를 쏟아내고 교만 방자한 본성을 드러낸다. 사람이 화를 내는 것과 분풀이하는 것은 모두 죄악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불만 정서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불순물과 음모 그리고 간계가 가득 차 있고 또한 사람의 타락과 사악도 가득 차 있으며, 더욱이 사람의 야심과 욕망도 가득 차 있다.』 하나님 말씀은 마치 소화기처럼, 내 마음속의 그 알 수 없는 분노를 즉시 사라지게 만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내의 좀 심한 말투와 내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에 화를 내고 발끈한 것이었다. 내가 화낸 것은 그저 나 자신의 체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사탄의 타락된 성품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줄곧 내가 가장이고, 내가 아내보다 아는 게 많고, 아내는 일자무식이며, 아내의 생각이나 견해가 나보다 못하니까, 아내는 내 말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그 즉시 아내에게 벌컥 화를 내곤 했다. 알고 보니,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아내와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모두 내가 언제나 가장의 지위에 서서 거만하게 아내를 깔보고, 어디에서나 모든 것을 내가 장악하려고 해서 생긴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 아내의 말투가 좀 심하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잘되라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보고 진리를 갖추라고 그런 것이었는데,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의 태도가 안 좋다고 싫어하다니, 난 정말 너무 이성적이지 못했어! 집에 돌아 온 후, 나는 아내에게 마음을 열고 내가 인식한 것들을 교통하였다. 그러자 아내도, “방금 내 말투가 좀 심했어. 내 잘못이야, 이게 다 사탄의 거만한 성품 때문인 것 같아. 하나님이 이런 환경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려는 것이니까, 이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야” 라고 말했다. 아내의 교통을 듣고, 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공과를 배우게 하고, 우리의 타락된 성품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사탄에 의해 극히 타락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인·사·물을 예비해 주셨다. 벼 벨 때가 되었지만, 아들의 집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던 아내는 돌아올 수가 없었기에, 나는 집에서 800평이나 되는 벼를 혼자 베느라 녹초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아내가 왔길래, 나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 한번 봐봐, 이렇게 많은 벼를 어떻게 나 혼자 다 베라고 그러냐? 게다가 밥도 해야 되고 빨래도 해야 되고, 그런데 당신은 도와주러 오지도 않고…” 아내는 나의 주절주절 끝 없는 잔소리에 화를 냈다. “당신 혼자 집에서 일하느라 힘들어서 나한테 화내는 줄은 나도 알겠는데, 나라고 무슨 수가 있냐고? 아들과 손자가 나 혼자만의 자식은 아니잖아. 당신이 자꾸 이러면, 나 이제 안 돌아 올 거야.” 아내의 말에 나는 더욱 화가 나서, 욱하는 마음에, “그래, 그럴 능력 있으면 오지 마!” 라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아내가 신경질을 확 내고 진짜 가버릴 줄은 몰랐다. 아내가 가버린 후,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마음속으로, ‘내가 왜 또 화를 낸 거야, 이게 사탄의 간계에 빠진 게 아니면 뭐지? 아, 정말! 아내는 이미 가버렸고 이제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왠 일인가? 이튿날, 아내가 다시 돌아왔다. 아내는 문을 들어서자 마자, 어제 저녁 마음이 너무 괴로워 잠을 못 잤고, 그렇게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리면 안되는 거였다고 말했다. 나도 뉘우치며 아내에게, “어제 저녁에 나도 당신처럼 벌컥 화내고 나니까 마음이 괴로웠어, 게다가 며칠, 일 때문에 바빠서 하나님 말씀도 안 읽어서,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어, 우리 같이 하나님 말씀 읽자.” 이어서 우리는 같이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었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사람의 삶은 늘 사탄에게 방해받고, 심지어 사탄에게 통제받기까지 한다. 다시 말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사탄에게 구금되어 있는 사람이고, 자유가 없는 사람이며, 사탄의 손에서 풀려 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경배할 자격과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사탄에게 끊임없이 뒤쫓기고 가차 없이 공격당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행복을 논할 여지가 없고, 정상적인 생존 자격을 논할 여지가 없으며, 인간의 존엄을 논할 여지는 더욱 없다. 사람이 스스로 나서서 사탄과 싸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경외를 무기로 삼아 사탄과 결사전을 벌여 사탄을 철저히 물리침으로 사람을 보기만 하면 피하고 간담이 서늘해지게 만들면, 사탄은 사람에 대한 공격과 참소를 철저히 포기할 것이다. 그때면 사람은 구출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말씀을 다 읽은 후, 나는 아내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명확해. 사탄에게 타락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전혀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도 없고, 어떤 일에 부딪히면 이성도 전혀 없어. 나 혼자 농삿일 하느라 좀 힘들어지니까, 당신이 나 안 도와준다고 바로 원망하고 당신한테 화내고 불끈하고, 난 너무 이기적이고 거만해.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고, 늘 당신한테 내 말에 순종하라고만 하고, 당신 감정 따위는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어!” 라고 말하자,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이 날 나무란다고 나도 오기를 부렸잖아, 내가 게으름피우는 것도 아닌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나를 비난하는 거냐고 생각했어. 역시 우리는 사탄에게 너무 깊게 타락 되어서 항상 거만한 본성에 따라 살고 있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라는 생각만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줄은 몰랐어, 그러니 안 다툴 수 있겠어? 우리 지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아, 우리 몸의 사탄 성품과 싸워 이기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살자.” 나는, “그래!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해야만 진정한 변화가 있을 수 있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 그러면 우리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다음부터는 어떤 일을 만나든, 다시는 거만하거나 제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상대방 말이 옳으면 바로 받아들이고 따르고, 진리가 우리의 주인이 되도록 하자고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 후, 우리는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상대방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늘 하나님 앞에 와서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타락됨을 반성하고 인식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점점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내가 먼 곳으로 본분을 하러 갔을 때,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서둘러 밥을 다 해 놓았는데도 아내가 아직 귀가 전이라, 나는 손전등을 들고 거리로 아내를 마중 나갔다. 아내가 집에 있을 때는 집안밖의 모든 일을 앞다투어 다 하면서, 줄곧 내가 집안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도록, 진리를 많이 갖추도록, 어떤 성과가 있으면 아내와 함께 같이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는 늘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하나님 말씀의 인도로 우리는 다투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주위의 우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점점 젊어진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에서 어떻게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자녀를 가르치기 전에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자녀 교육은 이미 부모들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럼 부모가 아이를 잘 교육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진정한 '아름다움'

오늘날 사람들이 다니는 크고 작은 길 곳곳에서는 다이어트 뷰티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수요가 있어야 시장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최근 다이어트 뷰티샵이 이렇게 많은 건 바로 현대인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몇 년간 다이어트를 위해 경락 다이어트 샵에 다니며 혈자리 지압 다이어트를 해봤습니다. 또한 비싼 돈을 들여 다이어트 침을 맞아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침으로 감싸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다이어트 약도 먹어봤지만 중국 제품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미국 유명 브랜드의 다이어트 약도 써보았습니다. 결국 전 다양한 제품과 다이어트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제품을 사용할 때만 살이 빠지고 나중에는 요요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돈은 돈대로 쓰고 제 위장은 상할 대로 상해버렸습니다! 휴! 이 대가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다이어트에 매달리는지 궁금하신가요? 바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사악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취직과 연애를 할 때는 더는 인품과 능력을 보지 않습니다. 여자라면 몸매와 얼굴형을 보고 남자라면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취업 면접에서 저보다 마르고 몸매가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저보다 합격할 기회는 더 많습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쁘고 몸매가 좋은 친구들이 남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을 받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몸매가 좋아야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운 시선을 받습니다. 하지만 통통한 저는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고 심지어 비웃음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쇼핑하며 옷을 살 때면 직원이 제 살을 보고선 “사이즈 없어요!”라고 말하며 제 반응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부터 통통했던 저는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가끔은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도 살찐 제 모습보다 마른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살은 제 자신감과 생활 태도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취미 생활은 곧 다이어트가 되어 각종 다이어트 제품을 찾았고 휴대폰만 열면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보며 바로 저장했습니다. 뉴스에서 종종 다이어트가 절실하여 검증되지 않은 다이어트 약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의 소식도 자주 접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위해 거식증에 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몸이 아무 영양도 흡수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만을 맞이합니다. 이 같은 소식을 볼 때마다 저도 두려워 어떤 모습이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옷이 작아 못 입는 제 모습을 보거나 여름이 다가와 몸매 좋은 사람과 예쁜 옷을 볼 때면 다시 다이어트가 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저는 “생명 진입의 설교 교통”에서 “진리는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이는 절대적이다”라는 말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과연 내 뚱뚱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의문을 가진 채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펼쳤고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창세 이래부터 나는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예정하고 택했는데, 즉 오늘의 너희들이다. 너희의 성정ㆍ소질ㆍ생김새ㆍ키, 태어난 가정, 너의 직업ㆍ혼인, 너의 전부, 심지어 너의 머리털의 색, 너의 피부색, 너의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 손의 안배이다. 네가 날마다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도 역시 내 손의 안배이다. 게다가 너를 오늘 내 앞에 데려온 것은 더더욱 나의 안배이니 스스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창조주의 주재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 지금껏 살을 빼면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연인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건 사람의 몸매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이미 주재하고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을 생각하니 몸매가 좋지만 직장과 가정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겉모습은 별로지만 따스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순간 제 관점이 황당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릇된 관점으로 수년간 돈도 낭비하고 고생도 했구나. 참으로 어리석었어!’ 전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이 한 차례 한 차례의 조류가 일어날 때마다 한 가지 사악한 기운을 띠고 있는데, 그 사악한 기운은 사람을 끊임없이 타락되게 하고, 사람의 도덕이 점점 추락되게 하며, 인격과 품격도 점점 떨어지게 한다. 심지어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격과 인성이 없고, 양심도 없으며, 더욱이 이성도 잃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그런 조류는 어떤 것일까? 그 조류는 네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조류가 유행될 때, 급선봉이 되어 그런 일을 시작하고 그런 사상과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부지중에 계속 그런 조류에 감염되고, 동화되고, 매료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그런 조류를 받아들이게 되고, 나아가 그런 조류에 파묻히고 통제되기까지 한다. 한 차례 한 차례의 그런 조류는 그렇지 않아도 심신이 온전하지 못하고,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아주 달갑게 그런 사회 풍조를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사탄에게서 온 생존 관점을 받아들이고 사탄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사탄이 알려 준 삶의 방식과 사탄이 ‘선사’한 생존 방식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는데, 사람에게는 저항할 힘도 능력도 없고, 저항할 의식은 더더욱 없다.』 사람들이 왜 이 같은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견디면서까지 자기의 외모와 몸매를 바꾸려고 하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바로 이 사악한 어둠의 사회 풍조를 따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사탄의 권세 속에 살아가고 있어 사물과 인생을 보는 관점이 모두 사탄에 속해있습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 역시 왜곡되어 완전히 사탄의 관점에 따라 사물을 바라봅니다. 사탄이 사악한 풍조를 일으킬 때마다 사탄은 겉만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게 만들어 사탄의 우롱과 조종을 받게 합니다. 사탄은 또 인터넷 매체, 사회상층인물 등을 통해 사탄의 관점을 사람에게 강제로 주입시켜 무엇이 아름다움이고 추함인지도 모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말로는 다 속마음이 겉모습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서는 그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휴대폰 속 뉴스는 온통 어떻게 다이어트를 하는지, 누가 가장 예쁜지, 갑부에게 시집간 사람이 누구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도 겉모습이 예쁘고 잘 생긴 연예인을 출연시킵니다. 연예인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성형과 다이어트를 하였고 대중에게 다이어트 경험을 종종 소개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 대학 동창이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끊임없이 고가의 명품 화장품으로 피부 관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남자한테 시집가는 게 좋은 직장 구하는 것보다 나아. 남자들은 다 예쁘고 섹시한 걸 좋아하니까 나도 관리해야지.” 제 친구가 이런 사상을 가진다는 건 이 사회가 주입시킨 관점이 초래한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좋은 몸매, 예쁜 얼굴을 항상 추구하는 건 모두 사탄이 이끄는 사악한 풍조가 아닐까요? 이 사악한 풍조를 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수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 사탄의 사악한 풍조의 피해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제게 이 사악한 풍조를 분별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사악한 풍조가 추구하는 소위 “아름다움”을 더는 숭배하지 않고 사탄의 우롱을 받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따르고 하나님께서 안배하신 제 인생의 길을 걷길 바라면서 더는 저 자신의 몸매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하지만 네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것을 참으로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네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에게 너무나 유익하고 너무나 큰 보호가 됨을 참으로 인식하게 될 때, 너는 이런 고통이 차츰 경감되는 것을 느낄 것이고, 너의 전인(全人)도 점차 홀가분해지고 자유로와지고 해방될 것이다.』 전 여전히 통통하지만 직장과 결혼에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전 매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입니다. 아이들 역시 통통한 선생님을 좋아하고 부모님들도 매우 절 존경합니다. 제 남편과 시댁 분들 또한 제게 너무 잘해주다 보니 결혼과 직장 같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외모와 몸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했던 최근 몇 년을 돌이켜보면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는 걸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을 더욱 허황하고 사악하게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게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정정당당한 사람이 바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고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어디가 당신의 귀숙인가?

2015년 7월 1일, 뉴스에 의하면 선양(沈陽) 시내에서 한 여성이 10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고 올라갔다가 삶과 죽음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건물 아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 휘파람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답니다. 구경꾼이 갈수록 많아지면서 사람들이 그 건물 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웅성거리고 있었고 또 휴대폰으로 다른 사람에게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 있어, 빨리 와서 구경해. 진짜 볼 만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구경꾼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휘파람 소리와 조소 소리가 들려왔고 어떤 사람은 “떠들썩하게 굴지 말고 재간 있으면 뛰어내려!” “빨리 뛰어내려, 보기도 힘들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지만 주택 단지에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불이 났다고 했답니다. 뉴스에 의하면 그 여성이 뛰어내린 그 순간에는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답니다. 뒤이어 사람들은 계속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와, 정말 뛰어내릴까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방금까지도 살아있던 한 생명이 이렇게 없어지다니요?” “너무 참혹해요! 에휴, 다들 떠들지 않았더라면 혹시……” 뉴스를 보고서 저는 그 여자가 자살한 것에 대해 비애에 잠겼습니다. 사람이 이토록 취약하여 일시적 충동으로 빚어낸 것은 자기에 대한 포기와 가족에게 주는 상처인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 사람들의 냉담과 조소 그리고 생명 경시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뉴스는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 간에 인정미가 조금도 없고 진정한 관심과 도움도 없으며 모두 “자신과 무관한 일이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각자가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고 남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역경에 처하면 도리어 남의 재앙을 보고 기뻐하며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처음의 순진함을 잃었습니까? 왜 우리가 이토록 냉담해졌습니까? 어떤 고통이 당신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했습니까? 당신은 누군가 당신을 격려해주고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런 결과일 줄 생각지 못했습니까? 어디가 당신의 귀숙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초에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ㆍ하와는 거룩한 사람이었다. 즉 에덴 동산에서 그들은 성결하였고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 충성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배반할 줄을 몰랐다. 왜냐하면 사탄 권세의 방해가 없었고 사탄의 독소가 없었으며, 그들은 가장 성결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났는데, 더러움이 그들을 더럽히지 못하였고 육체가 그들을 점유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아 독사의 독소가 있게 되었고 여호와를 배반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으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그들은 시초에 성결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였는데, 이야말로 사람인 것이다. 후에 사탄의 유혹을 받은 다음, 선악과나무의 실과를 먹고서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탄에게 점점 패괴되어 사람의 원래 형상이 없게 되었다. 시초의 인류는 여호와의 생기가 있었으며, 패역이 조금도 없었고 사람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는데, 그때의 사람이 진정한 인류인 것이다.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짐승으로 되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전부 다 악이고 다 더러운 것이며, 선이 없고 거룩함이 없다. 이것은 사탄이 아닌가?』 『사람의 패괴 성정의 근원은 사람이 이미 사탄의 독해를 받고 이미 사탄에게 짓밟혀 사람의 사상, 사람의 도덕,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가 모두 사탄에게 심히 파괴됨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의 근원적인 것들이 이미 사탄에게 패괴되어 전혀 하나님이 본래 창조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키려면 먼저 사람의 사상, 사람의 견식, 사람의 이지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진리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가장 심하게 패괴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무엇을 하나님이라 하는지,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지를 더욱더 모르며,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심하게 패괴된 사람일수록 더욱 이지와 견식이 부족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근원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까닭이다. 사탄의 패괴로 인하여 사람의 양심이 마비되었고 도덕이 패괴되었고 사상이 부패하게 되었고 정신 면모가 낙후하게 되었다.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은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순복하는 사람이었고, 본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순복하는 사람이었으며, 본래 이지와 양심이 건전한 사람이었고, 본래 인성이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사람의 원래 이지, 원래 양심, 원래 인성이 모두 마비되었고 모두 사탄에게 파괴되었다. 이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순복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마저도 다 잃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지 않았고 마음속에 사악이 없었기에 그때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람은 사탄의 독해를 받아 사탄이 권세잡고 있는 이 흑암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살기에 사회 기풍이 날로 나빠지고 도덕이 부패해지고 세상이 음험하고 잔인하며 인정세태가 야박해지고 사람 간에 진정이 없고 따스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알다시피, 우리가 악한 자에게 침해받고 하나님의 보호와 지킴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럽고 무기력하고 냉담해지고 이기적이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어떤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국도(國度)는 나의 말의 완선(完善)함에 따라 땅에서 차츰 형성되고 사람도 차츰 정상을 회복하여 땅에서 나의 마음속의 국도를 세운다. 국도에서 모든 자민은 다 정상 사람의 생활을 회복한다. 더는 쌀쌀한 겨울이 아니라 사계절이 봄 날씨 같은 세상이다. 사람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쓸쓸함을 접촉하지 않고 더 이상 인간 세상의 냉랭함을 이겨내지 않는다. 사람 간에 다투지 않고 나라 간에 싸우지 않으며, 더 이상 참살하는 상태가 없고 더 이상 참살하여 흐르는 피가 없으며, 온 땅에는 즐거움이 넘치고 곳곳마다 인간 세상의 따스함이 넘쳐 흐른다. 나는 온 땅에서 다니고, 나는 보좌 위에서 누리며, 나는 뭇별 가운데서 생활한다. 천사는 나에게 새 노래와 새 춤을 바치고 더 이상 자신의 ‘취약’함 때문에 눈물로 볼을 적시지 않는다. 나의 앞에서는 더 이상 천사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향해 고충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오늘은 너희가 모두 나의 앞에서 생활하고 내일은 너희가 모두 나의 나라에서 생존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람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오늘의 대가로 인하여 장래의 복을 이어받을 것이고 나의 영광 속에서 생활할 것이다. 너희는 설마 여전히 나의 영의 실질을 접촉하기 싫단 말인가? 설마 여전히 자신을 참살하기를 원한단 말인가? 설사 보이는 약속이 잠시라 해도 사람은 모두 그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설사 내일의 약속이 영원까지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 바로 내가 멸하려는 것이고, 사람이 만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이루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면 꼭 그대로 하시고 그대로 하시면 꼭 이루시며 이루시면 꼭 영원까지입니다! 믿건대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미 답을 찾았겠죠?!

하나님께서 왜 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곧 있으면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다른 과목은 걱정이 없는데, 제가 가장 취약한 유기화학 과목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만 이 과목에 점수를 높일 수 있을까? 이 과목 시험을 망친다면 전체 성적이 하락 할 것이고, F학점을 받아 낙제하면 더 골치 아파질 텐데 마음이 초조해지자 제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열심히 공부했고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필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또 한 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저의 기억력을 높여주시고, 이 모든 지식을 제가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또한,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는 항상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기숙사 룸메이트들이 노는 것을 보면, ‘하루 종일 공부를 했으니 이제 나도 컴퓨터 게임을 좀 하면서 쉬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게임을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한 단락이라도 더 본다면 하나님께서 기특하다고 해주시며 이 시험을 잘 칠 수 있게 도와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게임 시간까지 할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로 했습니다. 예배 갈 시간이 되었을 때 다른 학생들이 모두 복습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과목이 본래 취약한데, 복습시간이 타 학생들보다 적다면 내 성적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예배에 나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이 예배에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텐데, 그렇다면 시험을 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여기서 억지로 암기하고 있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이런 생각에 주저 없이 복습을 포기하고 먼저 예배에 나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어느덧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이 과목에 들인 노력과 시간, 그리고 하나님과의 ‘호흡’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나님께선 분명 이번 시험을 잘 칠 수 있도록 축복을 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험 보는 그 날 찬양을 흥얼거리며 강의실에 들어갔고 평온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은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꼭 이번 시험을 잘 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간이 일분 일초가 지나갔습니다. 앞장의 문제는 비교적 잘 넘어갔는데, 마지막 문제에서 막혔습니다. 복습할 때 분명 본 문제인데, 어떻게 푸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시험 마감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이 초조해지고 심장은 쿵쿵댑니다. 이때 저는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아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구원요청을 했습니다. 기도 후 마음이 평온해지며 곧 실타래가 풀리듯 답안을 적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기뻐서 하나님께 계속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주가 지나 성적이 공개되었습니다. 반 친구들은 쉴새 없이 인터넷으로 성적을 조회했습니다. 친구들의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를 듣게 되자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보며 예배도 빠지지 않았기에 분명 좋은 성적을 얻게 해주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문제는 분명 하나님이 도와주셨으니 점수가 아무리 낮더라도 얼마나 낮게 나오겠나 하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성적을 조회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성적은 73점이었습니다. 멍하게 있다가 소리치고 말았습니다. ‘73점이라니? 어쩜 이렇게 낮을 수 있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점수가 낮다니, 설마 교수님께서 채점에 실수했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그동안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했는데, 점수가 이렇게 낮다니? 하나님은 어째서 내게 축복해 주지 않은 걸까?’ 매우 큰 상실감이 찾아왔습니다. 기숙사로 돌아온 후 매일 게임을 즐겨 하던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75점 맞았어. 복습도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이거 너무 쉬운걸? 사실 과락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 말을 들으니 저는 더욱더 억울해져 원망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쟤는 매일 복습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점수가 높을 수가 있지? 내 점수가 이렇게 낮은데 하나님은 왜 도와주시지 않은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로워졌고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습니다. 그때 문득 예배에서 형제자매들이 교통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니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먼저 순응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시험을 잘 치지 못해 너무 괴롭습니다. 이번 일에서 당신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예배 때 이 일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통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주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늘 요구가 있는데,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늘 관념이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문제이냐? 사람의 본성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 나는 사람이 어떤 일에 부닥치든, 어떤 일을 대하든 늘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육체만 고려하며, 늘 자신을 위해 이유와 핑계를 찾고 진리는 전혀 없으며, 모두 자신의 육체를 위해 변호하고 자신의 앞날을 위해 타산하며, 모두 하나님께 은혜를 요구하고 어떤 이득이든 다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하나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많을까?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매우 탐욕스럽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이성이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 사람이 하는 모든 것, 기도하든 교통하거나 설교하든, 어쨌든 사람의 추구, 사람의 생각, 사람이 동경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 뭔가 요구하고, 뭔가 토색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뭔가 얻어 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말씀을 읽은 후 자매님은 “우리가 사탄에게 부패한 후 내면에는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사악한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는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스럽게 변했습니다. 어떤 일을 하건 불순한 의도가 있고, 하나님께 많은 요구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를 원하기만 합니다. 평소에 우리가 말씀을 먹고 마시고, 기도와 예배하는 것 모두 하나님과의 거래입니다. 항상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꾸려고 하죠. 우리가 하는 행위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이번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거역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추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하나님의 말씀과 자매님과의 교통으로 자신을 책망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일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매일 기도하고 하나님께 다가갔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게임을 즐길 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고, 다른 친구들이 복습에 열중해 있을 때 저는 시간을 쪼개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행동을 했으나 실제로는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좋은 성적을 달라고 하기 위함이었고 진실한 경배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저의 목적이 올바르지 않아 매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매번 하나님의 말씀을 본 것도 사실은 주마간산 식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었으며, 예배도 항상 시간에 맞춰 참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앉아있어도 마음속으로는 빨리 끝내고 복습하러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가식적인 행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축복의 조건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고 무리하게 요구만 했던 것입니다. 맨 마지막 문제를 풀었을 때 저는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73점이라는 점수를 확인했을 때는 하나님께 따지고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정말 일말의 양심과 이성도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저의 모든 행동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축복을 위한 하나님과의 거래였던 것입니다. 이를 깨닫자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빚을 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매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 그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토색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은,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자신이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바뀔 수 없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하나님의 이름은 당연히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화를 입는 것도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며,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하고 있으며, 조석으로 변하는 사람의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을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어느 각도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것은 욥이 한평생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다. 욥의 그런 모든 마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귀에 상달되었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여겼다. 하나님은 욥의 그런 인식을 소중히 여겼고, 욥에게 있게 된 그런 마음도 소중히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에게 임하게 될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욥은 하나님에게 요구가 없었다. 욥이 자신에게 요구하여 행한 것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마주하고, 순복하는 것이었다. 욥은 이것을 자신의 직책으로 여겼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이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욥의 경험에 큰 격려를 받고 고무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으며, 절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액의 자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났을 때, 욥은 비록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이치를 따지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축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조건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또한 피조물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야 하며 인간은 하나님과 이치를 따질 자격이 없고 주신 이도, 거두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칭송을 받아 마땅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욥에 비교하여 생각하자 더욱더 부끄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지 수년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예배, 기도 이 모두가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관계없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일에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고,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관념에 따라 판단하면 안 된다는 정확한 노선을 찾았습니다. 오직 기다림과 수용,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을 받아들이자 그 게임을 자주 하는 친구가 고등학교 재학시절 동일 과목을 공부하여 이번에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대다수 문제는 기존에 아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와 달리 저는 이 과목을 기존에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즉 기초가 탄탄하지 않았으므로 시험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더욱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도움 없이 마지막 문제를 틀렸다면 이 과목에서 과락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르고 되려 비이성적으로 하나님만 원망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우매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속 응어리가 모두 풀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직접 체험하고 또 형제자매님과의 교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과 거래하거나 하나님께 뭔가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진리추구, 순종만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이는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값진 깨달음입니다. 이를 깨닫고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가득해졌습니다. 다시는 점수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시험장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 시험점수가 몇 점인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상관없습니다. 전 기쁘게 받아드릴 것입니다. 평정심을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기도 후 마음이 평안해졌고, 시험 중간중간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시험 종료 후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성적이 나왔고, 86점이란 점수를 얻었습니다. 시험이 저번보다 더 어려웠지만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지녀야 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과 그래야만 마음과 영혼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m 깊이의 제언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60대 할머니 이야기

2015년 8월의 어느 날,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후 6시. 난 여느 때처럼 제언으로 가 오리를 집에 데려오려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가 쫓아갈 때마다 오리가 도망가서 제언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러다 오리는 주변을 맴돌지 않고 갑자기 제언으로 뛰어들어 수영하기에 이르렀다 난 화도 나고 급한 마음에 막대기를 들고 제언 언저리에서 오리를 쫓았다. 오리에 너무 집중해서였을까.나는 내가 10m가 넘는 제언 옆에 있었단 사실을 망각했고 발을 헛디뎌 ‘풍덩’ 소리와 함께 제언에 빠지고 말았다.생존본능에 막대기를 꽉 잡고 발버둥 쳤다. 물을 얼마나 마셨던지. 문득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당황한 나는 더욱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하지만 내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제언 바깥으로 갈 수가 없었다. 순간 느껴지는 무력함에 나는 ‘끝났구나,이 제언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생각할수록 두려웠고, 두려움이 커질수록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발은 땅에 닿지 않았고, 손은 의지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잡지 못했다. 제언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지만 그러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또 미친 듯이 벽을 향해 헤엄쳤다. 순간 머리가 물 밖으로 잠깐 나왔고, 어둑해진 하늘과 아무도 없는 주변, 무서울 만큼 가득한 적막함이 나를 에워쌌다. 물속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도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희망의 끈이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내게 죽음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정말 무서웠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던지 온몸에 힘이 빠졌다.‘이젠 정말 끝이구나. 이대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긴박한 순간,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가 어찌 하나님을 깜빡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전능하신 하나님! 저를 구해주세요! 저 좀 구해주세요! 당신만이 저를 구원해주실 수 있나이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너는 이것저것 두려워하지 말라. 온갖 고난을 막론하고 너는 내 앞에 안정할 수 있어야 한다.…너의 두려움을 제거하라. 내가 너의 뒷받침이 되는데 누가 길을 가로막으랴?』 그렇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세상만사를 주재하고 배정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시는데 두려울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내게 무한한 믿음과 힘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하나님께 외쳤다. “하나님, 오늘 제 목숨은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겠나이다. 죽어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산다면 그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겠나이다.” 이때 기적이 일어났다. 어떤 큰 손이 나를 물속에서 꺼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나는 물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때 잔잔하던 수면에 크게 울렁이는 물결이 ‘철퍼덕’소리를 내고 있었다. 긴장되고 무서웠다. 이때 큰 물결이 나를 제언 벽으로 떠밀었고, 나는 그대로 벽을 잡고 올라가 쓰러졌다. 감격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위대한 힘으로 저를 물에서 구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군요!” 물 밖으로 나온 나는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고, 심지어 망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서둘러 휴대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그제야 내가 물속에 1시간 넘게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힘겹게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길, 몇 번이나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온몸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하나님께 믿음과 힘을 더해달라 울부짖었고,온 힘을 다해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7살짜리 손자가 나를 보고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진흙과 잡초투성이에 얼굴에는 구정물이 묻어있으며 알 수 없는 것들이 온몸에 붙어있고 계속 떨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할머니,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난 대답할 힘도 없었다. 조금 있다가 나는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제언에 빠졌었단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너를 다신 못 봤을 지도 몰라.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내가 빠져나올 수 있었단다.” 침대에 막 몸을 기대어 누웠을 때 코피가 흘렀고 많은 피를 토하기까지 했다. 손자를 불러 옆집(먼 친척 손자가 살고 있다)에 가서 의사를 불러 달라고 시켰다. 잠시 후, 손자 부부가 우리 집으로 와 깜짝 놀라 물었다. “할머니! 어쩌다 제안에 빠지셨어요? 거긴 10m도 넘는 덴데! 어떻게 빠져나오신 거예요? 정말 운이 좋으셨네요! 대체 누가 구해준 거예요!…” 나는 쇠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운이 좋은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주신 거야”. 잠시 후, 의사가 와서 링거를 놓고 약을 줬다. 그제야 나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제언에 빠졌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자 다시금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기묘하시고, 당신은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주재이자 당신의 뜻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튿날, 형제자매들이 우리 집에 모여 예배를 보게 되었는데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는 나를 보곤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어제 겪은 하나님의 기묘함을 간증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입을 모아 하나님께 찬미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선 우리 곁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계시나이다.” 주 자매가 격동된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권능을 갖고 있다. 그의 권능은 사람이나 사물, 공간,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세를 행사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의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만물에게 제공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며 태고부터 변함없는 진리이다! 』 주 자매가 말했다. “하나님께선 유일무이한 권세를 갖고 계시며 세상 만물과 만사를 주재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묘함을 경험하니 다니엘이 사자 우리에 갇혀서도 하나님께 기도드리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사자의 공격을 받지 않게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권세가 만유를 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자매의 교제를 듣자 우리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한 여인이 선물을 들고 친정에 오다가 실수로 강에 빠졌는데, 마침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어 바로 여인을 구하러 강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인은 보이지 않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60살 먹은 할머니인 내가 겪은 일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난 수영도 못하고, 제언에 1시간도 넘게 빠져있었으며, 누구 하나 나를 구하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고통스러움에 무기력해지고, 거의 죽어가던 그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 의지하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나타나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나를 바깥으로 밀어내 목숨을 구해주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살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직접 겪은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시고 살아 계시는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 것이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재를 깨달아 하나님의 주재에 따르고 충심으로 본분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시켜드릴 것이다.

기적처럼 사라진 남편의 뇌종양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을 느끼다

갑작스레 남편에게서 뇌경색에 뇌종양까지 발견하게 되자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변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길 원한 기도를 하면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달콤함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천 부모 필독: 교육에 올인하는 부모,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인가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좋은 미래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준비한 계획에 따라 아이를 교육하려고 합니다. 계획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아이를 생각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더해 주곤하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부모는 어떻게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할까요?